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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인물] ‘㈔시민연구원’ 공동대표 이용모 건국대 교수 

“이제 시민들이 나서서 생활정책 만들어가야” 

글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대학교수·시민운동가·변호사·기업인 등 각계 인사가 참여한 시민단체 발족… 내년 대선에선 한국정책학회 차원에서 여야의 ‘생활정책’ 검증에 나설 채비

▎이용모 ‘㈔시민이 만드는 생활정책연구원’ 공동대표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법안을 제안하고 입법화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6월 30일 건국대 서울캠퍼스의 상허연구관 713호. 이 학교 행정학과 이용모(52) 교수의 책상 한쪽엔 스크랩용으로 잘라놓은 신문 기사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미세먼지’, ‘공공기관’, ‘구조조정’, ‘R&D(연구개발)’ 등 기사 제목에 있는 키워드는 다양했다. 이 교수는 “시간이 되는 날은 하루에 두 시간씩 신문기사를 읽는다”면서 “생활정책 관련 아이디어나 정보가 담긴 기사는 잘라서 모아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6월 26일 발족한 ‘㈔시민이 만드는 생활정책연구원(이하 시민연구원)’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시민연구원은 기성 정치인이 중심의 ‘정치를 위한 정치’에서 벗어나 시민들과 밀접한 생활정책,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법안을 제안하고 입법화를 추진하기 위한 설립된 단체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창립총회에는 새누리당 유의동,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이 참석해 시민 입법협약서에 사인했다. 유 의원 등은 연구원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 추진하는 생활입법 발의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미에서 협약을 맺었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황인국(52) 서대문청소년수련관장은 한국청소년재단 상임이사로 재직 중이다. 마침 청소년재단 운영이사인 이 교수와 인연이 닿아 시민연구원 설립에 의기투합했다. 둘은 동갑내기다. 창립멤버로는 대학교수·시민 운동가·연구원·변호사·기업인 등 120명의 인사가 참여한다. 이 교수는 “이름을 들으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대부분이 일반 시민”이라고 강조했다. 시민연구원을 시작하기 전 이 교수의 고민은 이랬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기성세대로서 너무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젊은이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4년제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취업하기가 어려운 세상이잖아요. 여기엔 고용정책·대학정책·기업을 지원할 산업정책 등이 종합적으로 다 연결돼 있어요. 사회에 나가서도 10~20년 뒤에 어떤 사회에서 생활하게 될지 너무나 불확실해요. 지금보다 나은 미래가 아니라서 너무 미안한데 현실정치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봤어요.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이 참여해 의견을 모으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죠.”

이 교수가 그 대안으로 본 것이 시민이 주도하는 생활정책(생활정치)이다. 그는 영국과 미국, 프랑스 등의 사례를 들어 생활정책을 설명했다.

영국의 ‘클레어법’, 미국의 ‘레몬법’의 공통점은 바로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률이다. 클레어법은 2009년 페이스북으로 만난 남자친구에게 살해된 여성의 이름을 따서 만든 법률로 데이트 폭력을 막기 위해 연인의 폭력 전과를 공개·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레몬법은 ‘오렌지인 줄 알고 샀는데 맛은 레몬처럼 시다’는 말처럼 불량품을 구입한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경우 동일한 문제로 여러 차례 수리를 받으면 교환이나 환불을 해주도록 했다. 프랑스에는 사진에 포토숍 작업을 하면 알려야 하는 ‘사진보정표시법’,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밸런타인데이에 선물을 금지하는 ‘밸런타인 금지령’ 같은 법도 있다. 생활에 밀접한 ‘깨알입법’이기도 하지만 시민의 권리 제한이라는 면에서는 중론을 모을 필요가 있는 법이기도 하다.

“일반시민은 진보·보수의 이념논쟁에 관심 없어”


▎‘㈔시민이 만드는 생활정책연구원’이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모집해 운영한 대학생정책 동아리 ‘마이폴(MyPOL)’ 1기생의 활동장면. 대학생 20여 명이 10주간 각계 전문가 특강, 국회 참관, ‘깨알입법’ 제안 등 입법워크숍에 참여했다.
정치권에서도 생활정책에 대한 관심이 늘어 20대 국회에서는 특히나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했다. 새누리당은 ‘청년기본법’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가습기 살균제 대책을 담은 법안을 각각 1호 법안으로 제출했다. 더민주는 ‘생활화학물질 피해구제법’, 국민의당은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을 냈다. ‘칼퇴근법(더민주 이찬열 의원)’과 ‘퇴근 후 카톡금지법(더민주 신경민 의원)’, 어버이날 공휴일 지정 등을 담은 ‘효도법안(새누리당 경대수 의원)’ 등이 각 의원의 1호 법안으로 발의됐다.

국회 개원과 함께 3당의 수뇌부가 전한 메시지도 생활정치였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 활력을 위한 법안에 초당적 협력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상시청문회법 거부와 같은 정치적 쟁점에 매몰될 게 아니라 민생에 충실한 태도를 가지면 국민을 우리 편으로 끌 수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어떤 청년을 만났는데 성장이나 분배보다는 아르바이트 급여를 받을 수 있을까가 더 절박한 문제라고 했다”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생활정책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반시민들은 정책이 자신의 삶과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고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관심이 있지, 보수와 진보의 거대 담론이나 정쟁엔 별로 관심이 없어요. 얼마 전, 2700년 로마 역사상 최초의 여성 시장으로 제1야당인 오성(五星)운동 소속 비르지니아 라지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승리의 원동력은 ‘큰 정치’를 하는 기존 정당과의 차별화였습니다. 깨끗한 상수도, 교통정체 해소, 쓰레기 처리 등 시민의 일상적 불편을 해소하는 생활밀착형 공약을 내놨습니다. 로마뿐만 아니죠. 파리·바르셀로나 등에서 모두 생활정책을 표방한 여성 후보들이 부패한 기성정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죠. 우리도 기성 정치권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4·13총선에서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액티브 엑스 폐지, 대학생 버스 할인제부터 추진


시민연구원은 ‘혁명적 수준의 시민운동’을 위해 더 많은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낼 계획이다. 무엇보다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을 통해 전달되는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에 주목한다. 시민연구원이 창립총회를 앞두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형태인 ‘시민정치플랫폼 오픈(OPEN)’의 개발에 나선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홈페이지(openpolicy.or.kr)와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 구축이다.

“플랫폼은 시민의 제안을 받거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책과 추진 결과 등을 알리고 확산시키는 공간입니다. 연구원은 시민들의 의견을 다듬고 현실에 맞는 법인지, 실현 가능한지를 검증해 피드백을 줍니다. 또 국회나 지방의회와 연결해 실제 입법화를 위한 노력도 하게 됩니다.”

앱 개발은 시민연구원의 운영이사인 최훈민(21) 씨투소프트 대표가 맡고 있다. 최 대표는 중학교 3학년 때 한국정보올림피아드 부문 금상을 받은 경력이 있는 IT 영재다. IT특성화고인 안산 한국디지털미디어고에 진학했다가 중퇴 후 “죽음의 입시경쟁 교육을 중단해달라”며 1인시위를 벌여 화제가 됐다. 이후 ‘희망의 우리학교’를 설립했고, 벤처사업가로 거듭났다.

최 대표는 시민정책플랫폼 소개자료를 통해 “시민연구원이 시작한 이유는 내 삶을 바꾸는 ‘깨알생활정책’을 ‘내 삶에서 불편을 느끼는 시민’의 참여로 만드는 것”이라며 “시민과 가장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은 페이스북,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온라인”이라고 설명했다. 앱에서는 ‘당신이 국회의원이라면?’, ‘시민 여러분께 국회의원을 빌려드립니다’ 등을 통해 시민들이 쉽게 입법 제안을 하고, 정책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 교수는 시민연구원에 참여한 각각의 인사가 맡은 역할에 대해 “정책학을 전공한 저와 20년간 시민운동을 해온 황인국 대표, IT에 익숙한 최훈민 대표 등 서로 갖고 있는 것이 다르지만 시민들이 주도하는 생활입법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톱니바퀴처럼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연구원은 1호사업으로 국내 인터넷쇼핑과 금융거래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액티브 엑스(ActiveX)와 공인인증서 사용 의무화 폐지를 추진한다. 앞서 정부가 규제 개혁을 통해 순차적으로 액티브 엑스와 공인 인증서 사용을 최소화하고 있지만 금융사 등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시민이 겪는 불편함은 여전하다.

“현재 우리 인터넷 환경에서는 사용자가 본인의 인증과 결재에 대해 책임을 지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요. 금융기관과 공기관에서 확실하고 검증된 장치인 공인인증서 등을 계속 사용하는 이유예요. 그러나 유럽이나 미국은 금융결제사가 보안상의 책임을 지고 관리하거든요. 액티브 엑스와 공인인증서 둘 다 없애도 결제사가 기술적으로 충분히 보안을 유지할 수 있고, 이미 대안기술이 개발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관련 상임위인 국회 정무위에 소비자 불편을 덜 수 있도록 전자 서명법과 전자금융거래법을 추가로 보완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요구할 예정입니다.”

그 밖에 시민연구원은 2호사업으로 만 18세 이하 선거권 연령 인하, 3호사업으로 만 24세 이하 청소년 대중교통 할인을 추진한다. 투표할 수 있는 연령을 만 19세에서 한 살 낮추는 내용은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 등에게 의견을 전달해 이미 관련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시민연구원은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 밖 지원을 할 예정이다. 3호사업은 이미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누리게 하자는 취지다.

“청소년기본법에 청소년은 24세까지예요.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과 관련 조례는 청소년 할인에 대학생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는 거예요. 법적 대상 연령인 대학생까지 포함한 대중교통 할인이 가능하도록 지자체와 지방의회를 직접 방문해서 관련 조례를 개정하는 활동을 벌이려고 해요.”

“정치 영역은 무궁무진, 시민참여는 ‘제3지대’”

시민연구원은 참여 주체로 우선은 ‘대학생’들에게 방점을 찍었다. 온라인 플랫폼 이용에 대학생들이 익숙하기도 하거니와 처음 연구원을 설립할 단계에서 고민했던 ‘청년실업’ 등 대학생들의 당면문제가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제기를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 소재 여러 대학을 직접 방문해 플랫폼을 소개하고, 입법 동참을 호소하는 서명도 받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민연구원은 대학생 정책동아리 ‘마이폴(MyPOL)’ 1기생을 모집해 운영 중이다. 4월부터 6월 말까지 20여 명의 대학생이 10주간 입법 워크숍에 참여했다. ‘정치야 너 누구니(곽윤석 여주대 교수)’,‘좋은 법, 나쁜 법, 이상한 법(강윤주 변호사)’, ‘조례의 의미와 재정 사례(서윤기 서울시의원)’, ‘SNS와 깨알입법(유원일 팬덤 대표)’ 등 각계각층의 멘토가 나서서 특강을 했다.

국회 투어와 ‘당선자·낙선자와 함께하는 토크 콘서트’도 열었다. 이 기간 중 대학생들은 ‘내 삶을 바꾸는 깨알입법’을 직접 내놓기도 했다. 이때 나온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가 3호 사업으로 추진하는 ‘만 24세까지 청소년 교통요금 할인 혜택’이다. 학생들은 또 생계 때문에 식사를 못 하는 어린이를 위해 도입한 ‘꿈나무 카드’ 제도 개선과 단기 아르바이트 해고제도 개선 등 본인과 주변 경험을 통해 느꼈던 정책 아이디어도 내놨다. 가을학기에도 2기생을 모집한다.

이 교수는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통계학을 전공했다. 이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경영학 석사, 하버드대에서 정책학 석사를 마치고 뉴욕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책과 행정분야에 정통하며 특히 지방재정과 행정계량분석 전문가다.

그는 지난해 말 한국정책학회의 차기 회장에 선출돼 내년 1월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정책학회 회장에 취임한 후에도 학술적 담론만이 아닌 생활입법을 위한 세미나 등을 계획하고 있다. 내년에는 대선이 있는 해인 만큼 각당의 생활 공약에 대한 검증도 학회 차원에서 나설 예정이다.

그는 사실 정치와 ‘친숙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6선(11~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그의 부친이다. 이 교수는 아버지에 대한 질문에 말을 아꼈다. “순수한 시민단체로 시작했는데 이런 백그라운드(가족사)가 알려지면 시민연구원의 취지가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다만 아버지에 대해 “자식들에게 무한한 신뢰와 무조건적 사랑을 주셨고, 제가 무엇을 하든지 믿어주셨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인터뷰 말미엔 최근 읽고 있는 <불가능의 예술>이라는 책 얘기를 꺼냈다. ‘벨벳혁명’의 주역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담은 연설문을 묶은 책이다.

“하벨이 말하는 정치철학의 핵심은 ‘정치는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을 실천하는 예술’이라는 거예요. 좋은 이상은 생각만으로는 안 되고 더 늦기 전에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죠. 뭐가 어떻게 될지 가늠할 수 없는 게 정치이지만 그만큼 정치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해요. 다만 지금의 기성 정치권에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민운동이 필요한 겁니다. 궁극적으로 생활밀착형 정책을 만들어내는 지속가능한 시민운동단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정당이나 정파·진영을 떠나 시민이 참여하는 영향력 있는 ‘제3 지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겁니다

- 글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201608호 (20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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