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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MB정부 마지막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천영우의 안보론 

“박근혜 정부, 북한 4차 핵실험 막을 수 있었다” 

글 박성현·박지현 기자 psh@joongang.co.kr / 사진 오상민 기자 oh.sangmin@joongang.co.kr
■ 2013년 3차 핵실험 직후 강력한 대북 제재방안 박근혜 정부 인수위에 전달
■ 제재안에 개성공단 폐쇄, 북한선박 입항금지 등 담았지만 새 정부는 골든타임 놓쳐
■ MB정부 ‘북한 붕괴 시나리오’ 작성… 급변사태시 한국군 북한 안정화에 나서야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의 체제종식을 위한 전략을 가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경북 성주 배치 결정이 국내외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국내에서는 성주를 비롯한 대구·경북 주민들의 격렬한 반발이 물리적 실력 행사로 나타났다. 중국·러시아와는 외교와 경제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사드라는 주사위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 던져졌다. 북핵이 없었다면 사드도 없었다. 사드 한국 배치에 따른 후폭풍을 지켜보는 천영우(64)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심경은 착잡하기만 하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2013년 지금과 같은 강력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뒤따랐다면 북한이 그리 쉽게 4차 핵실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나서지 못했으리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북한은 이명박(MB) 정부의 끝무렵이자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인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했다.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외교안보수석이던 천 전 수석은 임기 종료 10여 일을 앞두고 북한 핵실험이라는 사태를 맞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대북제재 방안을 대통령직인수위에 제출하는 것 등이 고작이었다고 하겠다. 그는 당시 대북제재 방안이 제대로 집행됐다면 한반도 안보 환경은 사뭇 달라졌을 것이라고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다시 말해 MB 정부 때 만든 독자 대북제재안을 박근혜 정부에 넘겼지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때문에 무용지물이 됐다는 말이다. 게다가 천 전 수석은 역대정부들과 마찬가지로 MB정부도 북한 급변사태, 붕괴 이후 시나리오를 작성했음도 시사했다.

천 전 수석은 6월 17일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 ‘이용문 장군 탄생 100주년 호국안보 강연회’에 참석해 “북한의 체제종식에 대비해야 한다”며 “북한의 신정체제를 약화시키는 데 성공하면 김정은이 변화를 거부하다 변란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도 주장했다. 7월 9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그를 만나 북한 핵실험과 남한의 사드배치에서 파생되는 각종 안보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대면 인터뷰 이후 발생한 사안에 대해서는 e메일 인터뷰를 통해 보완했다.

사드배치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어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킬 체인과 미사일 방어체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미사일 방어체계만 가지고 핵미사일을 다 막아낼 수가 없다. 80~90%는 사용하기 전에 무력화시켜야 한다. 10~20%는 미사일 방어체계로 막아야 실제 북한의 핵 공격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괌이나 오키나와에서 오는 미사일은 몇 십만 명이 죽은 뒤에야 응징하는 거라 의미가 없다. 필요에 따라 북한을 선제 공격할 수 있는 첨단 재래식 무기를 갖추는 건 당연한 선택이다.”

그럼에도 국내 여론의 반발이 심하다.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지키는 데 필요한 수단을 강구하는 건 책임 있는 정부라면 당연히 취할 조치이다. 대한민국의 자위권적 주권에 속하는 사안이라 주변국의 눈치를 보거나 설득할 일도 아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인지, 김정은의 자비에 국민의 안위를 맡길지 선택하는 자명한 문제를 두고 정치인들이 논란을 벌이는 모습이 정말 한심하다.”

한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도 북한을 옥죄는 카드가 되지 않나?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제재 이외 모든 수단은 이미 다 써봤다. 대화도 해보고 인센티브도 줬지만 실패했고, 제재는 북한에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북한의 전략적 계산을 바꿀 제재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도록 혹독한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

어떤 제재가 가능한가?

“(이번과 같은) 북한인권 관련 제재는 상징적 조치로 북한에 큰 타격을 줄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제재는 북한과 거래하는 제 3국 기업을 국제 금융거래, 달러 거래 시스템에서 퇴출시킬 수 있는 세컨더리(secondary) 보이콧이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제재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제재다. 예를 들어 북한 노동자를 고용해서 월급을 주는 쿠웨이트 기업이 있다고 한다면 달러 거래를 못하게 막는 식이다.”

박근혜 정부 강경한 대북정책, “선택의 여지 없어”


▎2013년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긴급회동이 청와대에서 열렸다.
얼마 전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명기된 북한인권제재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월 개성공단을 전면 폐쇄한 데 이어 지난 3월에는 역대 가장 강력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도 채택되며 박근혜 정부와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강도는 유례없이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전임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닮아간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날로 강경기조를 달린다. 출범 초기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같은 기조와 사뭇 다르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3년 전 3차 핵실험 때 그랬어야 했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3년이라는 학습기간이 걸린 셈이다. 이른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야 북한을 제대로 보게 된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뀄다는 말인데.

“(북한을) 가만두면 이렇게 되리라 예상했다. 박근혜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내걸어 북한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줬다. 지금 하는 제재를 2013년 3차 핵실험 직후 이명박 정부가 계획했지만 권력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는 다른 길로 갔다. 마땅히 해야 할 제재를 하지 않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3차 핵실험 당시 어떻게 움직였나?

“대통령직인수위에 MB정부가 준비한 조치를 설명하고 관련 자료를 전달했다. 하지만 새 정부가 대북제재보다는 북한과의 대화에 방점을 뒀다. 북한 김정은에게 ‘핵을 가지고 있어도 괜찮다’는 시그널을 준 것이다.”

MB정부 제재안이 실행되었다면 북한이 4차 핵실험까지 못했을까?

“물론 알 수는 없지만 3차 핵실험을 하자마자 우리가 계획한 제재를 집행했다면 4차 핵실험까지 가는 과정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아마 더 큰 대가를 지불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3차 핵실험하고 나서 대북제재안을 마련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나? 정부 임기 완료 10여 일 전에 벌어진 일인데.

“(우리는) 그걸 사전에 준비했었다.”

미리 예측했다는 말인가?

“언젠간 하리라고 예상했었다. 그래서 사전에 ‘유엔 안보리 결의가 채택되고 난 다음에 독자제재로 가자’고 플랜을 만들어놓았다. 안보리 제재 결의안이 나온 다음에 한국이 움직이는 게 온당한 수순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시간이 촉박했다. 안보리 제재 결의안도 새 정부 출범 이후 채택됐다. 공이 다음 정부로 넘어간 것이다. 그런데 새 정부는 선교사적인 접근 방식을 꾀했다. 그럴 바에야 MB 정부가 먼저 독자적으로 제재를 치고 나가는 게 더 좋았을 법했다.”

3차 핵실험 이후 마련한 제재방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나?

“북한에 갔다 온 선박들의 입항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이 골자다. 북한 선박이나 북한을 갔다 온 중국 선박이 우리나라 항구에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또 북한 화물을 싣고 있다면 항구에 들어오기 전에 외항에서 검색한다는 조건도 있었다. 여러 관계부처와 협의를 해서 만들었다. 개성공단 폐쇄방안도 계획에 다 들어 있었다.”

현 정부에서는 MB정부의 대북강경책이 무위(無爲)로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인데.

“MB정부에서 성과가 없었던 것은 그 전에 (북한에) 준 돈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전 진보정부 10년 동안 체력을 비축한 북한을 5년간의 제재로 어떻게 한다는 건 무리다.”

“중국은 북한에 인질로 잡혀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 평양시민들이 기차역 앞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북한의 3차 핵실험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전략이 성공할까?

“제재의 성공 여부는 중국에 달렸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은 막아야 하지만 북한 체제를 위협할 수준의 제재는 못하겠다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다. 이것이 북한이 핵무장을 격려하는 효과를 줬다. 중국은 북한이 버틸 만큼의 제재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에 인질로 잡혀 있다. 북한은 핵 포기를 안 해도 괜찮을 거라는 보험을 중국에 든 셈이다. 중국이 북한 비핵화보다 북한체제의 안정을 더 중요시하는 한 그렇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핵무기에 집착하는 김정은 체제와는 장기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결국 김정은 체제를 종식시키는 길밖에 없다. 새로운 북한 정권으로 대체해 비핵화로 가도록 해야 한다. 다양한 수단을 지금부터 개발해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천 전 수석은 1977년 11회 외무 고시에 합격해 35년간 공직생활을 한 외교관이다. 당시 외무부에서 유엔대표부 참사관,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 파견관, 외교정책실장 등 외교라인을 두루 거쳤다. 참여정부 시절엔 초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으로 임명돼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았다.

2010년 10월 외교통상부 제2차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에 임명되며 남북관계 실무를 현장에서 책임졌다. 5·24 대북 제재조치를 입안하고, 미사일 가이드라인 개정, ‘아덴만의 여명’ 작전, G20 서울정상회의 등 대외정책 전반의 조타수 역할을 맡았다.

김정은 체제의 종식을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하나?

“제일 효과적인 것은 대북방송이다. 북한에서는 주파수를 고정하지 않은 라디오를 장마당 가면 구입할 수 있다. 사실 탈북단체들의 삐라(전단살포)는 상징적인 것이고 큰 효과는 없다. 대북 확성기 방송 또한 그리 파괴적이지 않다. 북한이 과민 반응하는 것일 뿐이다. 가장 위협적인 건 전파다.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바꿔 정권교체의 압력을 높여야 한다. 주민들의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대북 정보전과 심리전만을 벌일 것이 아니라 국정원의 대북 공작도 본격 가동해야 한다.”

김정은 체제의 붕괴가 일어난다는 건가?

“민란이 일어날 수 있고 체제에 대한 불만이 봉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북한 주민이 북한 자신과 외부 세계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북한 내부 신앙이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유일한 백두 혈통에 의한 지배체제가 공화국 불행의 원천’이라고 하는 것을 북한의 모든 성직자 즉 당 간부, 협력자들이 알게 되는 순간 북한 체제는 무너진다.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불만이 임계점에 도달한다면 언젠가 폭발할 수밖에 없다. 권력 상층부에서도 ‘우리가 사는 길은 교주를 몰아내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그래야 쿠데타, 민란이 일어날 수 있다.”

만약 그런 방식으로 북한이 붕괴하게 되면 우리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하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군에 있다. 민란이 일어나 북한이 무법천지가 되면 우리 군 주도로 대규모 병력을 최단 시일 내에 북한에 진입시켜 안정화해야 한다. 많은 사상자가 생길 수 있는 안정화 작전을 누군가에게 의존할 생각을 한다면 우린 통일의 기회를 또다시 상실하는 것이다. 남에게 신세지는 만큼 우리의 발언권이 줄어든다.”

MB정부는 북한의 급변사태 대응전략 마련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외교안보장관 회의. 2013년 1월 31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류우익 통일부장관, 원세훈 국정원장, 안호영 외교통상부 1차관, 안광찬 국가위기관리실장, 천영우 외교안보수석, 하금열 대통령실장, 김관진 국방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우리가 의존하는 대상이 누군가?

“미국이든 중국이든 북한을 안정화하는 데 의존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한미동맹이 있다고 해서 미국의 도움을 받는다면 중국 개입의 빌미를 줄 것이다. (안정화 때) 한국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면 안심하겠지만 미국이 함께 가면 중국이 오판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수백 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한 통일의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안정화는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이뤄져야 하나?

“정확한 시간을 정하진 않았지만 얼마나 많은 병력을 단기간에 투입하느냐에 따라서 기간이 결정된다. 불안정한 사태가 오래 지속되면 북한 주민들이 학살당할 수 있고, 난민도 생길 수 있고, 주변국들이 개입할 빌미가 많아진다. 신속하게 상황을 장악하고 안정화해야 한다.”

군이 가면 우리 정부가 그 지역을 수복해서 헌병 통치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가?

“군이 행정조직을 접수해서 임시행정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공무원들이 가서 수복한 지역에 식량 배급망도 구축하고 현지의 일자리도 만들어야 한다. 안정화 전까지는 공무원이 들어가서 행정부를 접수하고 업무를 시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군이 안정화해서 수복한 지역을 민간에 넘겨야 한다.”

역대 정부는 충무, 부흥계획 등의 이름으로 급변사태에 대한 대응 계획을 세웠었다. 현직에 있을 때 북한 지도자의 유고, 무정부상태, 쿠데타 등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별 대응방식을 짰을 것 같은데?

“그런 건 책임 있는 당국자라면 항상 생각하는 문제다.” 그와 관련해서 공론화된 논의나 비공식적인 회의가 있었나? “공개적으로 밝힐 내용은 없다. 모든 책임 있는 정부는 나라에 일어날 여러 가지 비상 상황에 대비한 전략과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계획을 세우지 않는 정부는 세월호 선장과 같은 자세로 나라를 이끌어 가겠다는 사람들이다.”

급변사태 시 대응 방안에 관한 액션 플랜을 직접 작성했다고 들었다. 실제로 작성한 것이 맞는가?

“그런 것까지 얘기할 수는 없고. 모든 정부의 외교안보수석은 항상 있는 계획을 업데이트하고 리뷰하는 것이 임무이다. 누구든지 하는 것이다.”

MB정부 때 김정은 체제를 종식시키고 이후에 무정부사태가 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들었다.

“그렇다. 그 전부터 모든 정부가 계획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바뀌면 리뷰하고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북한의 모든 사태에 대비하는 전략을 짰다는 말인가?

“짰다기 보다는.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아무리 정교한 플랜을 짰다고 하더라도 80~90%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 상황이 벌어지면 그중 10분의 1밖에 못 쓴다. 그래도 미리 준비가 된 상태에서 수정하는 것과 아무 준비 없이 회의만 하고 있는 건 다르다. 지금 생각도 안 나지만, 그런 계획이라는 것은 완벽할 수가 없고 항상 불완전해서 계속 보완해야 할 계획이다. 누가 만들었든지 간에.”

전쟁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있나?

“전쟁으로 갈 상황이 되면 북한은 재래식 공격보다는 핵 공격에 나설 것이다. 그런데 전쟁 계획은 (북한체제 붕괴 전략과는) 다르다. 전쟁 때는 한미연합군이 다 움직이는 것이다. 북한의 내란 상황은 전쟁상황과 다르다. 법적으로도 우리밖에 북한에 군대를 파견 못한다.”

어떤 법적 근거인가?

“1993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우리가 북한의 헌법상 영토일 뿐 아니라 우리는 서로 주권국가가 아니다’라고 합의를 했다. 남북은 국가관계가 아니라고 표기돼 있다. 남북 관계를 관통하는 대원칙은 ‘우리는 각 주권국가로 인정하더라도 남북 간에는 주권국가가 아니다’로 압축된다. 북한과 남한은 서로 무허가 지자체로 본다. 지자체가 자치 능력을 상실하면 중앙정부가 직접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해석하면 ‘북한이 자치능력을 상실하면 대한민국 중앙정부가 북한이라는 지자체에 자치권을 회수해서 중앙정부가 직접 통제권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북한이 핵 공격이든 재래식 공격이든 휴전협정 자체가 폐기될 때는 미군도 함께 갈 수가 있지만 북한에 내전이 발생했을 때는 다르다. 미군이 자위권 행사 범위를 벗어나는 군사행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엔 안보리 승인이 있어야 한다. 반대로 우리는 남북한의 합의로 승인 없이 (진군) 가능한 법적 근거가 있다.”

“남북 협력만 한다고 평화통일 오지 않는다”


북한 급변사태가 일어났을 때 우리가 운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법적 근거가 남북기본합의서라는 말인가?

“그렇다. 이를 동의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독자적으로 안정화할 능력이 있다 없다의 문제와 우리에게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유엔 동시가입 이후에 남북간 법적인 개입을 해소하기 위해서 만든 게 남북기본합의서이다.”

외교안보 수석으로 있을 때 그 내용이 그 플랜에 들어갔겠다.

“그게 하나의 전제였다.”

천 전 수석은 김정은의 힘이 아버지 못지않다고 언급했었다. 그러면 북한체제 종식은 더 요원해지는 것 아닌가?

“우리는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북한주민 의식을 변화시킬 비대칭적인 수단을 가지고 있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에게는 핵보다 더 무서운 진실을 가지고 있다.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이 북한 체제를 무너뜨릴 바이러스다. 북한은 이 바이러스를 막아낼 백신이 없다. 북한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파고 들어가면 우리가 비대칭적인 수단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북한 주민들의 의식, 사상을 파고들 수 있다.”

만약 ‘바이러스’를 침투시켰을 때 김정은이나 수뇌부가 벼랑끝 전술을 시도할 수도 있지 않나?

“핵은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핵을 쓰면 북한은 무조건 망한다. 핵을 쓰지 않으면 앉아서 망하는 것이고, 혹시라도 운명을 되돌릴 가능성이 10%라도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 핵을 쓰는 것이다. 우리가 대북 심리전을 한다고 해도 북한이 핵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유사시 한국군이 북한에 진주할 근거가 있다는 걸 북한도 인지하고 있나?

“북한이 지금까지 남북간의 합의 내용 모두를 다 포기해도 남북관계가 국가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부정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북한이 남한을 해방할 수 있는 법적 논거가 남북기본합의서이기 때문에 남조선을 해방시킬 권리를 포기하는 결정을 할 수가 없다. 북한이 이런 자충수에 매달리는 것이 통일 과정에서 우리에겐 오히려 축복이 된다.”

MB정부 당시 혹시 통일의 호기가 있었나?

“통일의 기회는 없었다. 통일은 북한이 생존의 벼랑끝에 몰렸을 때 오는 것이지, 북한의 독자 생존이 가능한 상태에서는 오지 않는다. 북한을 도와주고 남북이 잘 지내는 것만 평화통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통일의 유일한 기회는 북한이 모든 것을 다 잃게 될 상황에서 통일을 통해 일부라도 건질 희망이 남아있을 때 온다.”

그건 흡수통일 아닌가?

“흡수통일과 구분해야 한다. 흡수통일은 북한이 고집부리다가 기회를 놓쳐 모든 것을 다 잃었을 때를 말한다. 평화통일은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김정은이 잡느냐, 놓치느냐에 달려 있다. 김정은이 국제형사재판소에 수배돼 망명도 가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보자. 그때 ‘신변 안전을 보장받는다면 다 내놓겠다. 가족, 측근의 생명만 보장해주면 권력을 내놓겠다’고 할 때 평화통일이 되는 것이다. 남북간 협력만 잘하면 통일이 온다고 생각하는 건 환상이다. 현실에서 그런 평화통일은 없다.”

- 글 박성현·박지현 기자 psh@joongang.co.kr / 사진 오상민 기자 oh.sangmin@joongang.co.kr

201608호 (20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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