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단독 인터뷰] 대권 도전 의지 밝힌 이재명 성남시장 

“정권교체에 도움된다면 대선 나설 것” 

만난 사람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 사진 강정현 기자
문재인은 품위 넘치는 ‘도성 안 대신’, 나는 ‘변방의 장수’… 비상시국 맞은 대한민국은 강력한 지도력 갖춘 ‘장수’가 필요하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대선 출마 의지를 밝혔다. 문재인 대세론에 정면 도전하는 모양새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도 광복절 영화감상에 초대하는 등 이 시장의 행보에 관심을 보인다. 대선 경선 참여는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를 두 차례 만나, 5시간에 걸쳐 정치 소신과 대선 구상을 들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정권교체를 통해 대한민국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를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월간중앙>과 인터뷰에서 “내년 대선 경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으며, 정권교체에 도움이 된다면 대권 도전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의 대선 참여 가능성은 그간 꾸준히 거론됐지만, 스스로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그는 “경선에 나서야 할 상황에 대비하여, 20∼30개의 핵심 공약을 다듬고 있다”면서 “출마를 위한 출마, 지는 싸움은 하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경선에 나가면 반드시 승리하는 전략을 세우고, 그에 걸맞은 공약을 제시할 것이란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 시장은 그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 관련한 이슈로 갈등이 적지 않았다. SNS를 통한 정권 비판도 잦았다. 지지자들에겐 환호를 받았지만 그에게 비판적인 보수층 다수를 적으로 만들었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평가가 나온다. “정치가 타협의 예술이란 걸 모르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와 함께, “실사구시적인 태도로 편중된 이념과 노선을 교정할 것”이란 낙관론이 그것이다. 두 가지 의견 모두 언행과 정치기술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그에게 시사한다.

이 시장의 정치적 입지는 아직 협소하다. 성남시라는 기초자치단체의 장(長)일 뿐이다. 여의도 내 정치 기반은 거의 전무하다. 그를 지지하는 핵심 그룹의 면면도 아직 제대로 공개된 적이 없다. 형식 논리로만 치면 그가 대권을 넘본다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시장은 더민주 핵심 지지층 사이에서 잠재적 차기 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3~4%의 지지율로 유승민, 안희정보다 앞서는 저력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반대해 광화문에서 단식 농성을 벌일 때는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김부겸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등을 제치고 문재인 전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에 이어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재명 시장이 뜨는 배경은 두 가지다. 성남시 행정에 뛰어난 실천능력을 보였다는 점이 우선 주목의 대상이 됐다. 실제 이 시장은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5700억원에 달하는 성남시의 부채를 3년 6개월 만에 해결하는 수완을 보였다. 거기에 다양한 정치·사회 이슈에 대한 쾌도난마식 입장 표명이 네티즌의 큰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지지자들의 의견을 물으면 “어쩐지 말에 그치지 않고 그가 표방하는 진보적 어젠다가 실천될 것 같은 묘한 힘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이재명 신드롬’을 더 깊게 들여다보면 거기엔 위기를 맞은 한국사회 갖가지 상흔이 드러난다. 여론조사 전문가 윤희웅 씨는 “미국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 신드롬이 불었던 것처럼, 한국 사회 저변에도 기존 정치권을 뒤엎을 수 있는 새로운 인물에 대한 갈망이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신드롬의 저변에 양극화 등 좀처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회적 갈등의 잔영이 짙게 깔려 있다는 해석이다.

미디어정치 능력은 이 시장의 강점이다. 정치인 중에는 가장 강력하고도 독보적인 SNS 팬덤을 거느린다. 핵심 지지자 50만 명과 SNS를 매일 쌍방향으로 의견을 나누는 수준이다. SNS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그의 언설은 공격적이고 날카로우며 한편 즉흥적이고 가볍다. 이 시장은 그간 ‘탈권위주의와 소통의 논리’로 자신의 ‘가벼움’을 옹호했다. “권력의 맛에 취하지 않기 위한, 권위주의가 소통을 훼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가벼움”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선 출마를 고려하는 마당에 그가 이런 태도를 계속 견지할 순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약이었던 것이 독이 될지도 모른다. 이 시장도 인터뷰에서 “보다 절제된 방식으로 SNS를 활용을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지난 1월 4일 이재명 성남시장의 기자회견.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올해부터 청년배당과 교복지원, 공공산후조리지원 등 성남시 3대 무상복지사업을 전면 시행한다고 선포했다.
이 시장의 고향은 경북 안동이다. 정확히는 경북 봉화·영양과 접한 안동의 구석진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적빈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13세에 성남시에 올라와 공장에서 ‘소년 노동’을 시작했다. 야구글러브 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다 프레스 사고로 왼쪽 팔을 다쳐 장애인이 되는 불운을 맞았다.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치고 장학금을 받고 중앙대 법학과에 진학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그가 내장한 일생의 스토리는 그 사연이 핍진하고 무궁무진하다. 그는 자신의 고향 TK의 전통을 안동의 강직한 선비 기질 속에서 찾는다. “조선시대 정권에서 배제된 선비들이 강한 야성을 견지하며 지조를 지켰던 역사를 늘 상기한다”고 말했다.

최근 관심을 끄는 대목이 이 시장과 김종인 더민주 대표와의 ‘독특한 관계’다. 김 대표와 이 시장은 정책과 이념을 떠나 기질적으로 의기투합하는 측면이 있다. 김 대표는 정치인을 평가할 때 ‘실천 능력’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 경향이 있다.“말은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김 대표의 냉소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을 정도다.

‘내년 초 깜짝 놀랄만한 후보’는 이재명?


▎5월 31일 국회 더민주 대표실에서 열린 ‘지방재정 개편관련 지방자치단체장 면담’. 왼쪽부터 김종인 대표, 최성 고양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이재명 시장의 책임감과 행정 능력을 김 대표가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증거는 여럿 있다. 이 시장 역시 인터뷰를 통해 “김종인 대표의 정치적 조언을 늘 듣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마침 광복절 오후에는 김 대표가 이 시장을 초대해 영화 <덕혜옹주>를 같이 관람했다. 김 대표가 ‘대선후보 플랫폼’이나 ‘내년 초 깜짝 놀랄만한 후보’ 등을 언급한 점을 상기할 때, 두 사람의 밀월은 앞으로 눈여겨봐야 할 내년 대선의 포인트 중 하나다.

그렇다고 김 대표가 이재명 시장을 차기 후보감으로 낙점했다고 보는 것은 성급하다. 총선 직후 “더민주를 수권정당으로 만들고, 최적의 대선 후보를 만들어보겠다”는 발언의 연장선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분명한 것은 김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와의 거리감이 더욱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장 입장에선 김 대표와 연합하는 것이 대선 전략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떠올랐으나,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위해선 자신의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지지율 상승을 일궈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시장이 김종인 대표가 사석에서 했던 이런 말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 일을 도모하려는 사람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위대한 점은 그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인터뷰는 이재명 시장의 개방 집무실에서, 당권 도전을 고민하던 지난 7월 14일에 이어 8월 8일 등 세 차례, 총 5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7월 중순 더민주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를 고려하다 결국 포기했다. 그 정확한 이유를 듣고 싶다.

“고민을 거듭했다. 시민들의 의견과 정치적 조언을 들어보니 무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만일 당 대표가 된다면 시장직을 사퇴할 수밖에 없는 점이 가장 컸다. 그렇게 되면 성남시장 보궐 선거를 해야 하는데 그 비용을 모두 성남시가 부담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시 사업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시민에게 돌아가는 불이익이 너무 크고, 결국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 아니냐는 비판을 이겨낼 뾰족한 방법과 명분이 없었다.”

출마는 불발되었지만 높은 지지율이 공개되어 정치적으로는 상당한 득을 봤다는 평가도 있었다.

“많은 사람이 조용히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수치로 확인한 셈이다. 일부러 장난질한 것 아니냐며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최고위원 생각은 있었지만 당 대표는 꿈도 안 꾸었기에 특히 놀라웠다.”

출마 철회 후의 여론은 어땠나?

“대체로 아쉬워하는 쪽도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대세는 잘했다는 것이었다. (출마를 포기해)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분에게서 받았다.”

당대표 출마 포기를 차기 대선 출마 의지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직 지지율이 높지 않은 처지에 대선 경선을 미리 예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그러나 ‘안 하겠다’고 하는 것도 사실은 거짓 말일 것이다. 대선에 어떤 형태로든 역할을 할 것이다. 정권교체에 내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광복절 날 김종인 대표와 영화 <덕혜옹주>를 보며 덕담을 나눴다. 정치인 김종인을 어떻게 보고 있나?

“나는 김 대표가 프로라서 좋다.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의 철학이 확고하다고 할까? 보수, 진보를 떠나 권력을 국민을 위해 쓸 줄 아는 몇 안 되는 훌륭한 지도자로 본다. 의료보험 도입, 재벌 부동산 규제 실천, 1987년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 도입 등 독보적인 실천능력을 입증했다. 다만 이런 큰 인물은 모시기가 쉽지 않다. 놀랍게도 김 대표는 당에 들어오기 전부터 저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들었다. 입당한 후에도 여러 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감사할 따름이다.”

내년 대선의 성격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나?

“내년 대선은 보수정권 10년이 끝나는 시점에 이뤄진다. 정치사의 분수령적 계기라 할 수 있다. 또한 내년 대선은 개인 대 개인의 경쟁으로 치러지지 않는다. 집단과 집단이 경합하는 선거다. 과거 3김처럼 개인적 역량만으로 대선을 치를 수는 없다. 집단 대 집단이 부딪히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나의 역할이 분명 있을 것이다.”

촉매제 역할은 하지 않겠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8월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대청마루 청년소환’에 참석해 대청마루의 2030 청년위원들과 토론하고 있다. ‘대청마루’는 서울시가 지난 2월 출범시킨 대한민국 청년을 위한 범사회적 논의기구다.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고, 궁극적으로 집권을 꿈꾸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냥 집권만 하는 것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할 순 없다. 정권교체는 협소한 개념이다. 정권 담당자의 교체만 가지고는 안 되고, 실제로 대한민국의 상황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국가권력의 정상화’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비정상, 불합리가 너무 과하다.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지났다. 정치권을 포함한 기득권 세력의 역량이나 인식이 너무 전근대적이다. 이제는 대한민국 헌법이 지향하고 있는 정의와 형평, 실질적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권력을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비정상의 정상화’란 표현을 썼다.

“실천하지 않으므로 구두선에 가까운 얘기다. 실제로 그럴 의지가 있느냐, 믿을 수 있느냐, 실천력이 있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그런 기준으로 봤을 때 정직한 용어가 아니라고 본다.”

만일 대선 경선 참여를 결정한다면 문재인 전 대표와 정치적 차별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문 전 대표는 대통령이 되기에 충분한 역량과 경륜을 가진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경선에 나설 것을 고려하는 이유가 있다. 문 전 대표가 품위 넘치는 ‘도성 안 대신’이라면 나는 ‘변방장수’같은 존재다. 현재 우리 사회는 비상대응이 필요한 전쟁 같은 상황이다. 이런 시대에는 강한 지도력을 가진 장수가 필요하다.”

경선을 치열한 경쟁체제로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하겠다는 건가?

“아니다. 출마를 위한 출마, 지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경선에 나가면 반드시 승리하는 전략을 세우고, 그에 걸맞은 공약을 제시할 것이다. 경선에 나서야 할 상황에 대비하여 20∼30개의 핵심 공약을 다듬고 있다.”

연말쯤 대선경선 참여 여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결정기준은 무엇인가?

“나의 경선 참여가 정권교체에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정치는 생물이라니 그때 가봐야겠지만 국민들께서 ‘이재명이 한번 나서볼 만하다’고 인정하는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미세하나마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김종인 대표가 ‘대선후보 플랫폼’이나 ‘내년 초 깜짝 놀랄만한 후보’등을 언급한 점을 상기할 때, 혹시 이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두 사람이 노선과 지향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 대표의 이념이나 지향이 저와 너무 달라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할 수도 물론 있다. 그러나 ‘실사구시적’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한다고 본다. 자갈은 아무리 많이 모아도 돌무더기에 불과하지만, 시멘트와 모래 그리고 물이 만나면 콘크리트가 된다. 정치는 팀플레이 경기인 만큼 서로 다른 역할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길면서 동시에 짧을 순 없다. 역할 분담으로 보완해야 한다. 김 대표는 뛰어난 역량뿐 아니라 내게 없거나 부족한 것을 너무 많이 갖고 있는 분이다. 언감생심이지만 함께 일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분을 꼭 모시고 싶다.”

반기문을 포함한 여권 정치인 중 야권이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잠재후보는 누구라고 보나? 또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권 후보가 누구냐 보다 야권 후보가 국민에게 새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상대하기 어렵거나 상대가 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굳이 고른다면 유승민 의원을 꼽겠다. 유 의원이 개혁적 이미지를 활용해 정권비판의 제스처를 취하며 여당 내 야당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다. 새누리당 집권 10년을 심판하는 야당의 공세가 무뎌질 수도 있다.”

자본주의 지키려면 복지 확대해야


▎지난해 12월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복지후퇴 저지 토크 콘서트’.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시 대표(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왼쪽), 이재명 성남시장이 패널로 참석했다.
새누리 이정현 새 대표가 풀어야 할 국정 1순위 과제를 무엇이라 보나?

“워낙 많은 것이 엉망이 된 상태라 1순위 하나를 꼽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정부와 여당의 거짓과 무능, 불통을 사죄부터 해야 하지 않겠나? 제일 급한 것은 경제침체의 큰 원인인 양극화와 불평등을 줄이고 공정성을 강화해 경제 활성화에 나서는 일이다.”

국민의 삶이 그 어느 때보다 고단하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나?

“글로벌 차원의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경제주체가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엄청나게 커졌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 농민 등 각 영역의 다수를 차지하는 약자들이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됐다. ‘세계적 차원의 독점화’로 부를 수 있는 현상이다. 미래가 불투명하니까 아이를 낳기도 두려워졌다. 전 세계가 위기상황의 초입에 들어선 국면이다.”

양극화가 세계적인 추세라 해도 우리나라만의 특수성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그 구조적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의 특수성 중 하나는 역시 분단이다. 우리 사회는 평등의 가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위험한 사상을 가진 자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빨갱이, 종북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 저변에는 자유와 평등이란 가치 중 ‘자유’에 치중하는 가치관이 형성됐다. 그것이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불평등 심화와 겹치면서 양극화와 같은 상황을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 툭하면 빨갱이로 몰리니까 불평등한 사회를 고치기 위한 노력이 항상 억압을 받게 된다. 또 하나는 독재체제의 비민주성과 전근대성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분단과 독재체제 유산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맞물리면서 상황을 더 엄혹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양극화 해소와 관련하여, 보편적 복지와 조세정책의 문제가 늘 첨예한 이슈다. 보수와 진보 진영이 갈등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지방정부 차원을 넘어 (전국 차원에서) 바람직한 복지와 조세정책의 대강을 밝힌다면?

“복지를 시혜적인 조치로 생각하는 자세부터 뿌리뽑아야 한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복지를 많이 하면 국민이 나태해진다’고까지 말한 적이 있다. 그게 우리 사회의 전근대성이다. 헌법 34조 2항을 보면 국가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민 복지를 증진할 의무가 있다. 국가경영을 대리하는 사람들은 국가 운영비용을 최대한 적게 들이고, 나머지 돈을 복지에 써야 하는 것이다. 그걸 공짜, 시혜 이렇게 부르면 안 된다. 복지는 선이다. 그렇다면 복지는 왜 확대해야 하는가? 그것이 자본주의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당태종 이세민, 에이브러햄 링컨을 존경


▎이재명 시장은 선이 굵은 보수적 자유주의자 김구, 실패를 자원으로 만드는 데 능했던 링컨 대통령을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꼽았다.

▎2010년 6월 3일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으로 당선된 이재명 후보. 성남시는 당시 수도권 최대 격전지 중의 하나로 꼽혔다.
성격과 관련하여, 적과 친구를 너무 분명하게 가르는 경향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 국가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포용력을 더 키워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나는 정치적 반대자를 적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내가 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들 안에 있는 불합리와 부패와 전근대성과 폭력일 뿐이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과도 나는 잘 지낸다. 예를 들어 성남시의 보수·안보 단체에 속한 분들과 나는 굉장히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정치적으로 어느 편도 들지 마라. 내 편도 들 필요 없다. 정치에 휘둘리지 않아야 권위도 생기고 회원들에게 인정도 받는다…’, 내가 그분들에게 늘 하는 말이다.”

SNS 활용이 너무 잦은 것 아닌가? 올리는 글이 너무 거칠고 전투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지금까지는 정치적 비중도 낮고 존재감도 미약했으니까 세상에 나의 이야기, 주장을 전할 때 좀 시끄러운 방식을 동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1980년대는 유인물 50장 뿌리고 감옥 가던 시대였다. 지금은 돈 한푼 안 들이고 SNS 통해 하루 수십만, 수백만 장의 유인물을 뿌릴 수 있게 됐다. 정보화 사회의 이 엄청난 미디어를 내가 발견하고 그동안 열심히 사용했다. 그런데 위치나 비중이 달라지면 거기에 따라 나도 변화할 것이다. 이미 작년부터 내가 쓰던 단어나 문체가 달라졌다. 필요하다면 언어와 태도와 표정도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 공화당 트럼프는 후보가 된 후에도 고치지 못 하던데…. 나는 앞으로 변화할 것이다.”

SNS 팬덤의 충성도는 어느 정도인가?

“내가 직접 전달하는 사람만 50만 명이다. 한두 번 거쳐 가고 리트윗 해주면 150만, 200만까지 갈 수도 있다. 대한민국 정치인 중에는 나의 팬덤이 가장 열정적인 것 같다. 다른 정치인들은 일방향이지만 나는 쌍방향이다. 늦은 밤까지 일일이 답해준다. 의견을 서로 주고받으니까 진짜 소통이 되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충성도 측면에선 우리가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누구를 이용하는 관계가 아니라, 진짜 동지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수평적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반응이 폭발적이다.”

고인이 된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각각 평가한다면?

“박정희 대통령이 대한민국 근대화의 토대를 닦은 것은 인정해야 한다. 독재의 나쁜 측면 역시 부인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을 절대화해선 안 된다. 공과를 모두 인정해야 더 큰 평가를 받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공적은 역시 평화적 정권교체다. 한민족 역사상 최초가 아닌가 싶다. 민주주의의 새 장을 연 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공로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끌어내렸다. 민주주의가 우리의 삶 자체라는 걸 깨우친 분으로 나는 그를 기억하고 싶다.”

삶과 정치를 본받고 싶은 국내 외 정치인이 있다면?

“나는 새로운 질서, 또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좋아한다. 미국의 실패를 하나의 자원으로 만든 사람이 있는데, 바로 링컨 대통령이 그 일을 했다. 링컨은 스스로 엄청난 실패를 거듭했던 사람이다. 대통령이 된 다음에도 중요한 포스트에 사람을 쓸 때 낙선해보지 않은 사람을 쓰지 않는 원칙을 고수했다. 사실 실패라는 것은 그 다음 일을 단단하게 보장해주는 측면이 있다. <정관정요>를 통해 파악한 당태종 이세민도 대단한 리더다. 그는 사람을 잘 썼고, 타인의 비판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비판을 잘하는 신하에게 상을 내렸다.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용이하게 하는 시스템을 만든 사람이다. 조선을 열었던 정도전, 선이 굵은 보수적 자유주의자의 삶을 살았던 김구 선생도 깊이 존경하는 인물이다.”

국민은 새로운 지도자를 찾고 있다


▎이재명 시장은 “야권 후보의 분열로 차기 대선은 ‘경적’하면 필패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내년 대선이 야당이 집권할 절호의 기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우 어려운 승부가 될 거다. 양당체제에서 양자구도라면 일반적으로는 야권이 유리한 게 맞다. 왜냐하면 권불십년이고 보수 10년 정권이 잘한 것도 솔직히 없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새로운 걸 바라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야권을 지지할 가능성이 많다. 문제는 정치판이 3자구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야권 후보간 연대가 쉽지 않은 게 문제다. 유력 후보간 감정의 앙금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우리가 아닌 여권 쪽으로 연대가 이뤄질 수도 있다. ‘경적’하면 필패할 것이다. 새로 구성될 더민주 지도부도 한 후보로 쏠림현상이 발생하면 본선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다시 말해 문재인 독주체제로는 필패한다. 판을 키우고, 참여자를 늘리고, 룰을 공정하게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약한 주자들에게 유리하게 해서, 실제 경쟁력을 북돋아야 할지도 모른다. (새 지도부가) 국민들이 봤을 때 흥미진진하고, 또 결과가 나왔을 때 흔쾌히 승복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수단은 무엇인가? 평소의 독서습관과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책과 저서 등을 밝힌다면?

“주로 역사서, 또 역사소설, 전략서, 경세제민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사물과 현상을 거시적 역사의 관점으로 보려 노력한다. 요즘엔 경제, 정치, 시민사회와 관련된 책을 많이 찾아 읽고 있다.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은 감동이 컸던 역사소설인데, 그 책을 통해 호남 사람에 대한 나의 편견과 오해를 완전히 털어냈다. 그래서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하나를 꼽으라면 <태백산맥>이다. <태백산맥>에 쓰였던 호남 사투리에 익숙해지면서 그 감칠맛과 함께, 호남의 정서와 사상을 이해하게 됐다. 역시 위대한 문학은 사람의 삶을 바꾼다.”

정치인 이재명에게 왜 적지 않은 사람이 지지를 보낸다고 생각하나?

“기존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너무 크다. 국민은 실천력과 믿음을 갖춘, 정말 국민들을 위해서 일할 사람을 찾고 있다. 불평등을 해소해서 기회와 자원을 공평하게 만들어주는, 꿈과 희망을 만들어 줄 사람이 과연 누굴까? 얼마 전 호남지역을 방문했을 때 비슷한 말을 들었다. ‘호남의 지도자 그룹이 새로운 지도자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도 묻고 있다. 과연 누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인간 이재명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

“아주 철학적으로 얘기하면 인간 존중, 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공평한 사회다. 인간은 한 명 한 명이 그야말로 우주의 무게를 가진 소중한 존재이고, 그 점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나에겐 성공과 실패의 남다른 철학이 있다. 무슨 일을 할 때 최선을 다하지만,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그게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 자체를 하나의 성취로 보는 관점이다. 예를 들어 내가 대선 경선에 나가 꼭 후보가 안 되어도 상관없다. 실패를 하나의 성취로 삼아, 그 축적된 힘으로 다른 길을 가면 된다. 이런 마음으로 임하면, 삶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하나의 여행이다. 결과가 좋으려면 그 과정이 아름다워야 한다. 마음 깊이 새기고 있는 나의 소중한 가치다.”

- 만난 사람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 사진 강정현 기자

201609호 (2016.08.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