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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보수 진영의 내부 비판자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임기 30% 남은 대통령 유종의 미 거둘 시간 있다” 

만난 사람 = 강민석 중앙일보 정치부장 mskang@joongang.co.kr / 정리 이가영·채윤경 기자 / 사진 오상민 기자 osang@joongang.co.kr
“국민 마음 헤아리고 국익에 따라 올바른 결정한다면 가능… 친박, 친이로 시작된 10년간의 계파갈등 이제 끝내야 할 때”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한국에서도 보수개혁을 시작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의 국회의원회관 사무실(916호)에 들어서자 테이블 위를 뒤덮은 책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맨 위에 놓인 것이 유 의원이 최근 탐독한다는 존 롤스의 <정의론>. 그는 인터뷰 내내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시한 게 ‘보수개혁’이었다. 차기 대선 출마에 대해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2017년 권력 교체기를 향해 있는 듯했다. 한국 사회의 최대 과제로 떠오른 저출산·고령화 문제에서부터 시작된 인터뷰는 2시간30분 동안 이어졌다.

저출산·고령화가 요즘 큰 과제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가장 심각한 문제다. 인구구조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사실 경제 때문에 그렇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5년 장기 경제성장률 전망을 매우 비관적으로 본 보고서를 냈는데, 가장 큰 원인을 저출산·고령화로 꼽았다. 노동인구가 감소하고 부양할 인구는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 말이다. 기본적으로 돈 버는 사람이 없어지는 노동인구 절벽 현상이 제일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언론의 촉구에 의해 비로소 움직임이 있는 걸 보면 새누리당은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정권이 바뀌는 5년마다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만든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만든 저출산·고령화 대책 가지고는 불충분했다고 본다. 저출산은 10~20년 내에 재앙으로 나타나고,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요인으로 남을 거다. 저출산은 보육, 교육, 노동시장, 복지 이런 분야를 모두 개혁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저출산·고령화는 구조적으로 예측된 재앙이었는데 그걸 실효성 없는 대책으로 방치한 건 정말 잘못된 것이다. 20대 국회도 저출산·고령화특위를 만들긴 했다. 국회 특위에서 어떤 얘기를 할지 모르겠으나 이 문제는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서 어떻게든 10~20년 안에 극복하지 않으면 재앙으로 나타난다.”

여러 가지 문제가 뒤엉킨 사안이기도 하다.

“주택문제도 연관돼 있다. 보육·교육·노동·복지·주택 이런 문제가 다 해당되기 때문에 저출산문제는 보육 한 가지로 해결하려는 방식의 접근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 없다. 국가운영의 제일 중요한 분야에서 엄청난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문제를 제일 심각한 국가과제로 다뤄야 한다.”

국회 중심으로 풀 수 있는 문제인가?

“대통령중심제 국가인 만큼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보건복지부나 여성가족부 같은 어느 한 부서에만 맡겨선 될 일이 아니다. 똑똑하고 앞날 내다보는 정부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보육뿐 아니라 복지·노동시장 다 건드리려면 엄청난 개혁에너지를 갖고 있는 정부가 하는 수밖에 없다.”

더민주, 사드 관련 상상 못할 정도로 성숙된 자세


▎2014년 11월 국회 본회의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을 상대로 사드 도입에 관한 대정부질문을 펴는 유승민 의원.
현정부 임기가 1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통령 프로젝트로 추진해야 한다. 임기 5년의 단임대통령이라면 5년 내내 그거 가지고 매달려서 씨름해도 모자란다. 대통령 프로젝트는 너무 많이 잡을 필요도 없다. 역대 정권마다 트레이드마크 같은 정책이 있었잖나. 4대강, 창조경제…. 이것보다 너무나 평범하지만 구조적이고 중요한 저출산 문제에 매달리는 게 훨씬 더 국가적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집중해서 일관되게 5년 밀어붙이면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미 대통령 어젠다가 되어 있었어야 했다. 지금 현재 정책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나오는 정책들이 이제까지 하던 정책을 약간 수정해서 조금 더 하는 수준이었다. 제 느낌에는 저출산 기본계획을 봐도 기존에 하던 정책에 이만큼 예산 더 집어넣어서 이런 거 한번 해보자, 소득공제나 세금혜택 이 정도 더 주자,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볼 때 보육은 0~5세 아동에 대해서는 지금하고 있는 방식이 문제 있다면, 진짜 획기적으로 바꿀 생각을 해야 한다. 양육수당 문제도 선진국에선 다 하는 거다. 선진국에선 보편적인 게 우리나라에선 각 당이 경쟁하다 변질된다. 선진국에서 어느 정도 증명된 정책수단이고, 검토해서 우리에게 맞다 싶으면, 그럴 때는 돈 아낄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화제를 바꿨다. 7월 당내 대구·경북(TK) 지역 의원 21명이 성주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냈지만 유 의원은 빠졌다.

왜 성명서에 서명하지 않았나?

“18·19대 국회 8년간 초반 7개월을 제외하곤 국방위원회에 있었다. 국방위에 있으면서 제일 심각하게 본 게 핵과 미사일 문제였다. 북한이 노동과 스커드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해 서울이나 제주로 쏠 수 있다는 게 현존하는 실질적 위협이 돼버렸다. 국방위에서 군사기밀이던 노동과 스커드미사일의 궤적을 공개한 적이 있다. 대기권(지상으로부터 100㎞)을 벗어난 130~150㎞ 정도의 아주 높은 고도로 날아가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뚝 떨어지는 걸 확인했다. 그러니 사드는 필요한 것이다. 나는 2014년 대정부질문 때도 그렇게 주장했다. TK 의원들 성명은 사드 반대가 아니라 배치될 때의 문제점에 대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사드배치를 줄곧 주장해온 내가 거기 이름을 올리는 건 조금이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 안 올리는 게 맞다고 봤다.”

평소 남한 전체 방어를 위해서는 사드 포대 두세 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는데.

“그렇다. 휴전선 이남을 다 방어하려면 최소 두세 개는 돼야 하고 현재 48발씩인 포대별 발수도 여분을 더 들여올 필요가 있다. 노동, 스커드 1000발 이상을 보유한 북쪽에서 기만탄을 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주 사드배치를 놓고 TK 민심이 좋지 않을 텐데.

“성주 자체도 너무 안 좋고 TK 전체도 지난번 영남권 신공항 무산과 맞물려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국방부 등이 나서 성주군민의 전자파 우려를 잘 해명해야 한다. 이럴 때 정치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드와 관련, 과거 같으면 상상 못할 정도로 성숙한 자세를 보인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국민의당이 국민투표를 제안하고 사드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건 이해할 수 없다. 사드를 찬성한 입장에서 주민 설득 과정에 내가 할 역할이 있으면 하겠다.”

지금 답변을 청와대가 들었다면 고마워해야 할 거 같다.

“(웃음) 굉장히 중요한 안보이슈여서 그런 입장을 갖고 있는 건데 그걸로 고마워하고 말고 할 게 아니지 않나. 청와대에서 고맙단 얘길 듣지 않았다.”

자연스레 대화는 청와대 쪽으로 옮아갔다. 지난달 8일 새누리당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박 대통령과 유 의원은 ‘35초 대화’를 나눴다.

K2 이전부지 정부 임기 내 확보가 내 목표


▎박근혜 대통령은 7월 8일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헤드테이블 뒤쪽에 자리 잡은 유승민 의원(뒷줄 오른쪽부터 넷째).
7월 8일의 ‘35초 대화’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사흘 뒤 박 대통령은 대구 현안인 K2 공군기지의 이전을 약속했다. 청와대가 고마움을 표시한 건 지도 모르겠다. 당시 어떤 대화가 오갔나?

“다른 의원들과 다 같이 가서 똑같은 방식으로 잠깐 대통령을 뵌 건데…. 지난해 2월 원내대표에 당선된 뒤 청와대 가서 인사 드리고 1년5개월 만이었다. 내가 ‘오랜만에 뵙는다’고 인사했고, 대통령께서 ‘상임위 어디로 갔느냐’고 물으셨다. 영남권 신공항 발표 직후라 내가 ‘TK 민심이 안 좋다’고 말씀 드리니 대통령께서 K2 공군기지 얘길 꺼내시며 ‘잘됐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그게 전부다.”

35초 대화 시 심경이 어땠나? 지난해 7월 박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으로 둘 사이에 놓인 장벽이 걷어졌다고 보나?

“(잠시 뜸을 들이다) 35초 대화가 그런 기회가 되겠나. 너무 오랜만에 뵈니 만감이 들었다. 2000년 2월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왔을 때 박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2004~2007년 굉장히 가까이서 일하며 여러 가지 많이 도와드렸다. 지난해 2월 원내대표 된 뒤 7월 8일 물러날 때까지 김영란법과 공무원연금 개혁을 통과시켰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꼭 통과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야당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국회법 시행령 개정문제가 튀어나와 ‘그 정도는 해줘도 되겠다’ 싶어서 받았다. 그런데 내가 직접 대통령에게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중간에서 누군가 대화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쌓인 부분이 많다고 본다. 원내대표 사퇴 결심을 하고, 사퇴 직전 (당시 이병기) 비서실장에게 대통령을 뵙고 차 한잔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대통령 퇴임 이전이든 이후든, 언젠가는 쌓인 오해를 다 풀고 싶다. 인간적 신뢰를 회복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조급하게 서두르진 않겠다.”

대통령이 당시 만남을 거부한 건가?

“당시 분위기 때문에 제 면담 요청이 아예 대통령께 전달되지 못한 것으로 안다.”

그래도 만남 사흘 뒤 K2 공군기지 이전 추진을 대통령께서 공식화한 건 ‘정치적 선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대통령께서 실마리와 돌파구를 찾게 하고 힘을 실어주신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보수정권 10년간 두 번의 대선과 세 번의 총선에서 문서로 약속한 사안이다. 나는 이번 정부 임기 내에 이전부지를 확정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다. 새로 옮겨갈 후보지는 경주 방사능폐기물처리장 결정 때처럼 원하는 지역들이 주민투표를 실시하고 찬성이 가장 높은 지역에 주는 식으로 하면 된다. 2013년 내가 주도해 통과된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그런 내용이 담겼다.”

대통령과 오해를 풀고 싶다고 했는데, 2014년의 ‘청와대 얼라(어린아이)’ 발언이 오해의 단초가 됐다는 얘기가 있다. 그 발언은 어떻게 나온 건가?

“2014년 10월 국회 외통위 국정감사장에서 한 달 전 이뤄진 대통령의 UN방문과 연설에 대해 질문했다. 당시 박 대통령이 ‘한국이 중국에 치우쳐 있다’고 한 미국 언론의 보도에 대해 연설키로 했고, 보도자료까지 배포됐지만 이후 실제 연설에선 빠졌다. 왜 그렇게 됐나 캐물었더니 외교부는 자기들이 안 했다고 했다. 청와대에서 한 거라면 비서진을 질책해야겠다는 생각에 ‘얼라’란 표현을 쓴 거다. 경상도에선 크게 나쁜 뜻이 아닌데, 그게 대통령을 겨냥해 발언했다는 오해를 받았다. 이후 해명할 기회도 없었다.”

정치할 이유가 있는데 불출마 선언하는 건 계산된 행동


▎유승민 의원은 지난 3월 새누리당이 대구 동을 무공천을 결정하자 기자회견을 열어 새누리당 탈당을 선언했다.
현 정권이 후반기로 가고 있다. 대통령 단임제에선 권력누수(레임덕)가 필연인데, 앞으로 당에서 각을 세울 일이 많을 것 같다.

“요즘 대통령 주변에서 안 좋은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국가적으로도 어려운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해서 지켜보는 저로선 안타깝다. 그러나 대통령에겐 남은 임기 1년 반이 있다. 전체 임기의 30%가 남은 거다. 그 기간 국민들 마음이 어떤 건지 헤아리시고 국가이익이 뭔지 잘 생각해 올바른 결정만 한다면 대통령께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레임덕을 막기 위해 매달린다고 해서 레임덕이 막아지는 건 아니다. 대통령 본인이 먼저 그런 생각을 하시고 참모들도 새롭게 심기일전해 대통령을 모셔야 한다.”

대통령 임기 후반으로 가면 여당 내에서도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탈당하라며 차별화를 꾀하는 차기 대선주자들이 있을 텐데.

“나는 박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할 생각이 전혀 없다. 권력이 힘이 셀 때는 옳은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 권력에 힘이 빠질 때 그런 얘기를 하는 건 비겁하다. 개인적으로는 레임덕이라는 표현도 쓰기 싫다. 남은 임기도 임기 아닌가.”

새누리당의 참패로 이어진 이번 총선 결과를 예측했나?

“새누리당이 170~180석, 개헌선까지 확보할 것이란 보도가 많이 나왔다. 하지만 수도권 중도층, 무당층, 새누리당 지지자 중 일부에게 총선 과정에서 보인 당의 오만이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여론조사는 꼭 바로잡아야 한다. 1인당 스마트폰 보급대수가 제일 많은 우리나라에서 집 전화, 유선전화로 여론조사를 하고 그것으로 공직자 후보를 선출하는 건 문제가 있다.”

새누리당이 보인 오만한 모습의 중심에 유 의원 낙천 문제도 있는 것 같다. 당시 심경이 어땠나?

“오만이란 건 결국 당이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고 권력을 무서워했던 것이다. 표를 주는 국민을 무서워해야 하는데 당장에 공천 주는 권력을 무서워했단 얘기다. 사실 저는 원내대표 그만두고 지난해 가을부터 공천받기 어려울 것이라 보고 무소속 출마를 각오하고 있었다. 내가 힘들었던 건 낙천이 아니라 다른 두 가지다. 첫째, 저와 뜻을 같이한다는 이유로 새누리당에서 가장 젊고 유능하고 개혁적인 의원들이 공천 학살을 당했을 때였다. 굉장히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었다. 둘째는 나에 대한 정체성 시비였다. 다니던 직장인 한국개발연구원(KDI) 그만두고, 내 발로 야당 연구소장(한나라당 여의도 연구소장)으로 올 때 어떻게 하면 이 당을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건전한 보수정당으로 만드느냐를 고민했다. 새누리당이 저의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체성 시비를 거니 당혹스러웠다. 지금도 정체성 문제로 절 비난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이 말하는 정체성으로 가면 당의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낙천되기 전 ‘아예 이참에 국회의원을 한 텀 쉬어가라’는 권유도 있었을 것 같다.

“많았다. 길게 보고 이번에 불출마·백의종군을 선언하고 당에 남아 있으면 재보선이나 더 좋은 기회 있지 않겠냐는 얘기들이었다. 그때 내가 한 고민이 ‘나는 왜 정치를 하느냐’였다. 내가 정치를 더 이상 할 이유가 없다면 그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치를 그만뒀을 거다. 그러나 정치를 할 이유가 있으면, 불출마선언은 계산된 행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내가 정치하는 방식이 아니다.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새누리당 후보와 붙으면 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승패를 떠나 정의도, 원칙도, 상식도 아닌 결정에 굴종할 순 없었다.”

고민의 답은 얻었나, 유 의원은 정치를 왜 하는가?

“보수개혁을 위해서다. 보수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내가 주장하는 건, 지금 시대엔 보수당이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오랜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기둥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결국 보수층이다. 그분들이 바뀌면 한국이 진짜 바뀔 거다. 내가 어느 위치에 서든, 그 신념을 실현시키는 게 제가 정치를 하는 이유다. 선진국의 위대한 사회 개혁은 결국 보수 지도자들이 많이 했다. 보수에겐 공동체를 유지해야겠다는 강한 본능이 있다. 이 시대의 과제는 진보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보수가 하려고 하면 진짜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공동체를 유지해야겠다는 게 보수의 강한 본능이다. 공동체가 파괴되거나 붕괴되지 않고 어떻게든 발전시켜서 안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보수의 본능이다. 선진국들도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보수층 지도자들이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 위대한 사회보장개혁, 복지개혁을 많이 했다.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다 그렇다. 그런 보수개혁을 우리나라에서 드디어 시작할 때가 됐다. 우리 새누리당이 그 방향으로 갈수만 있도록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면 만족한다.”

구체적으로 보수개혁을 어떻게 할 건가?

“제일 중요한 게 정책이다. 제가 늘 친박-비박 나눠서 싸우지 말자고 하는데, 이걸 뒤집어 말하면 당의 노선과 이념에 대해서 싸우지 않기 때문이다. 친박, 친이로 시작된 10년 간의 계파갈등은 끝낼 때가 됐다.”

어떻게 끝낼 건가?

“정책 경쟁, 노선 경쟁을 하면 된다. 보수당이지만 경제정책을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재벌들에게 계속 혜택을 주는 것으로 할 거냐, 필요한 복지인데도 돈 없다고 계속 인색하게 갈 거냐, 공교육 무너지는 거를 계속 방치할 거냐, 보육정책도 제대로 안되고 있는데 그대로 갈 거냐, 노동-비정규직은 이대로가 좋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갈 거냐….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 당이 노선을 확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가 있는데, 보수정당이라고 해서 5년, 10년, 20년 전 정책을 고수하는 건 발전을 포기한 보수다.”

대선 도전 감당할 준비됐는지 진지하게 고민 중


▎올 4·13 총선에서 대구 동을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유승민 의원.
그런 입장이 진보와 무엇이 다른가?

“진보와는 구별이 있다. 사드만 해도 뚜렷이 구별된다. 북한의 노동과 스커드미사일 궤적을 봤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면, 10~11㎞ 상공으로 난다. 스커드나 노동은 고도 130~150㎞까지 날아갔다. 대기권 밖을 30~50㎞나 더 벗어나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동해안에 떨어뜨리는 연습을 하는데, 사드가 필요없다는 주장을 국내 좌파라는 사람들이 하고, 중국이 그 주장을 받아서 또 한다. 중국 정부와 언론이 우리의 방어적 안보주권에 저렇게 오만하게 나오는 것은 전략적 동반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단호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가 원하는 정치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대통령 한 번 해보고 싶은가?

“야당 때는 제가 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 독하게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대여투쟁을 진짜 열심히 했다. 늘 선봉에 섰고…. 그때는 정말 이겨야겠다, 우리가 상대하는 저 여당은 자격 없고, 무능하고, 부패하다고 생각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이겨야겠다, 이기는 게 정의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여당 의원을 8년 해보면서 그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이 모든 실정이나 실패에 대해 같이 책임을 지고, 같이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입장이 되다 보니 대통령 선거라는 게 무조건 이기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그렇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기는 것보다 집권 후에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정부가 되는 게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정말 중요하다. 선거에서 이기는 것보다 잘하는 게 훨씬 더 어렵기 때문에 진짜 그런 도전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지, 저에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 용기나 의지가 있는지, 그 점에 대해 사실 굉장히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다음 대통령은 지금 이 시대적으로 양극화, 불평등, 불공정 이런 게 쌓여있는데 그걸 해결하는 대통령이 되려면 엄청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제가 그런 개혁을 추진해낼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 그런 점에 대해서 고민 안 할 수가 없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여권 차기 주자 적합도에서 1등을 했던데.

“지금 지지도는 큰 의미 없을 거다. 기본적으로 새누리당은 내년 대선 승리의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래서 우리당의 경선은 그 어느 때보다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고, 경선룰도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공정할 룰로 해야 하고, 노선과 이념·정책으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총선 이후 새누리당 내에선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승리를 위해선 가능한 많은 주자가 나서 치열한 경쟁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전제란 데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차기 대선주자 군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대선후보 경선, 투명·공정하며 열린 경선 해야


▎유승민 의원은 다수 국민에게 정의를 실현하는 정책시스템을 새로 짜겠다는 입장이다.
문호를 개방해 치열하게 경선하자고 했는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포함되나?

“당연하다. 그분이 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해주신다면 그건 우리 당 입장에서나, 저 개인적으로나 환영할 만한 일이다.”

반 총장과 개인적 인연이 있나?

“사실 잘 모른다. 국회 외통위원회서 활동할 때 뉴욕에서 만나 잠시 인사했고, 내가 원내대표 시절 국회를 찾으셨을 때 잠시 뵌 정도다. 만약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다면 그분으로서도 얼마나 어려운 결심을 하신 건가.”

반 총장이 앞서 유 의원이 말한 ‘대단한 개혁’을 할 수 있을까?

“저도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그분도 시대적 문제,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어떤 개혁을 하시겠다는 건지 밝혀야 한다. 그분은 외교 쪽만 하셔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구상을 밝힐 기회가 없었다.”

김무성 전 대표와는 대체재 관계인가, 보완재의 관계인가?

“(웃음) 제가 경제학과 출신이라 대체재와 보완재를 많이 봤다. 정치인들을 두고 대체재-보완재라고 하는 건 동의할 수 없다. 제가 다른 분들에 대해 평가하고 그런 건 진짜 조심스럽다. 김 전 대표는 제가 당에 들어온 이후 이회창 전 총재 때는 여의도연구소장(유승민)-비서실장(김무성)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엔 비서실장(유승민)-사무총장(김무성)으로 함께 그분들을 도왔다. 잘 알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도 할 수 있는 사이라 생각한다.”

김 전 대표가 총선 때 ‘옥새파동’까지 일으키면서 유 의원을 위해 지역(대구 동을)에 새누리당 무공천을 했다.

“지난 3월 23일 탈당 결심을 하고 대구로 돌아와 기자회견을 준비하면서 김 전 대표와 통화했다. 김 전 대표가 ‘무공천하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만약 정말 무공천할 거면 나 이외 다른 공천 신청자(이재만 후보)들에게도 똑같이 그 사실을 알려 드려라. 그게 공정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분들도 그때 탈당 안 하면 아예 출마할 수 없어서다. 그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른다. 제가 당사자인데 뭐라고 하겠나.”

남경필·원희룡·정병국, 이른바 남원정 그룹과는 경쟁관계인가?

“그분들이 16대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부터 여의도연구소장이어서 정말 오래된 사이다. 남·원 지사 두 분 모두 좋아하는 후배다. 세 분과는 늘 가까이 지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내년 대선후보 경선이 아무런 제한 없이 최대한 개방적으로 투명 공정한, 열린 경선이 되려면 그분들이 결심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결심한다면 당연히 그들과 경쟁할 거다. 최근 들어 자주 못 봐서 그렇지 상당히 좋은 관계이고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 등 친박 주류들과의 관계 설정은?

“정치를 제가 17년째 하면서 옛날부터 알던 분들이고, 서청원 대표는 훨씬 더 오래됐고. 그분들과 친박-비박 틀 안에서 관계 설정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친박으로 불리는 분들 중에도 ‘우리당이 왜 총선에서 졌나, 우리당이 어떻게 해야 국민들이 다시 쳐다보게 되고, 어떤 개혁을 해야 희망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분들 중에서 저와 뜻을 같이할 수 있는 분들, 시대가 요구하는 고민을 다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분들도 총선에서 왜 졌는지는 말 안 해도 속으로는 다 알고 계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뜻을 합칠 수 있는 분들이 있다고 본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정치인을 꼽아달라’고 했더니 유 의원을 꼽더라. 안 전 대표를 어떻게 평가하나?

“안 전 대표가 정치를 시작하고 국회의원이 되신 뒤에 몇 번 대화한 적이 있다. 제가 원내대표할 때도 김영란법 때문에 공개적으로 찾아왔다. 그분이 경제·민생, 이런 쪽으로 나랑 비슷한 생각이라고 하던데 저도 그분이 경제나 복지, 교육, 이런 부분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신 건 평가한다. 특히 김영란법에 대해 의지가 강하시더라.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드 반대 입장은 이해를 못 하겠다.”

정의가 실현되는 정책 시스템을 새로 짜고 싶어


▎유승민 의원은 지난 8월 국회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경제민주화를 표방해온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와 자리를 함께했다.
야당 정치인 중에 인상적인 정치인을 꼽는다면?

“한 사람 찍어서 얘기하는 게 부담스러운데, 안철수 전 대표는 민생 이슈에서 그분이 취하는 입장은 존경하는 편이고 좋아하지만 사드문제를 잘 이해 못 하겠고…. 정의당 심상정 대표에게 굉장히 호감을 갖고 있다. 민생 이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진취적인 말씀을 하시면서도 현실정치의 어려움도 잘 이해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랑은 왕래가 있나? 야권 내 ‘문재인 대세론’에 대한 평가는?

“왕래는 전혀 없다. 국민들이 5년 단임을 6번 하면서 보수 10년-진보 10년-보수 10년을 겪고, 여기에서 학습한 게 많다고 생각한다. 내년 대선에 대한 평가는 국민들 마음속에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하실 거라 본다.”

개헌에 대한 입장은?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등은 국회에 행정권력까지 맡기는 거라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 권력구조만 뜯어고치는 개헌도 국민들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 개헌은 국민들과 충분히 소통하며 해야 하는 거니 시간이 걸릴 것이라 본다. 다만 우리의 경제와 사회 수준이 선진국으로까지 올라가고 통일이 이뤄지는 시점까지는 4년 중임 대통령제가 맞다고 본다. 통일이 되면 양원제도 해야 하고 선진국이 되면 내각제도 검토해볼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정치를 하면서 꼭 해결하고 싶은 문제는 뭔가?

“제가 요즘 정의와 공화주의에 푹 빠져 있다. <정의론>을 읽으면서 가장 감동 깊이 와 닿았던 건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서 있었던 고민들이다. 존 롤스가 말하는 ‘정의’를 현재 우리 국민이 무척 갈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20년 전 KDI 도서관에서 <정의론> 원서를 대출해 읽을 때는 와 닿지가 않아서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 읽으면 느낌이 다르다.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두 가지 원칙이 있는데, 하나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자유, 둘째는 기회 균등의 원칙이다. 특히 기회균등이라는 것, 그 부분에 대해 사람들이 진짜 절망하는구나, 그거야말로 국가가 바로잡아줘야 할 문제가 아니냐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탈리아 공화주의자들의 ‘비지배의 자유’도 공감이 간다. 한국의 양극화, 불평등, 불공정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때도 우리가 경제민주화를 얘기했는데, 이것도 정의 안에 들어가는 조그만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당장 수중에 돈이 생기는 것보다는 불공정과 불평등의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

국민들은 어떤 ‘정의’를 갈구하나?

“초반에 말씀드린 교육·보육·노동, 재벌이 지배하는 시장경제, 이런 게 사전적으로 어떻게 경쟁하느냐와 관계된 거고, 그게 공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국민이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난 거다. 벤처 창업할 때 돈 준다고 기업가정신이 발현되는 게 아니다. 재벌이 지배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라는 게 아니라 평평한 운동장에서 하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똑똑해서 기업가정신 발휘할 수 있다. 조금만 싹이 터도 밟아버리고 시장에서 말살시키고, 이건 생태계 문제인데 그런 걸 손 안 대고 평소에 하던 식의 산업정책, 단기부양책, 금리정책, 이런 걸 하면서 성장이 될 거다라고 생각하면 그건 정말 아닌 거다. 그리고 경쟁 후에 나오는 문제가 복지와 세금이다. 국민 다수에게 공정과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정책 시스템을 새로 짜는 것, 이런 것을 꼭 해보고 싶다. 그게 돼야 경제도 바꿀 수 있고, 저출산도 해결할 수 있다.”

- 만난 사람 = 강민석 중앙일보 정치부장 mskang@joongang.co.kr / 정리 이가영·채윤경 기자 / 사진 오상민 기자 osang@joongang.co.kr

201609호 (201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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