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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 문정인이 만난 ‘친노좌장’ 이해찬 전 국무총리 

“내년 대선은 후보 단일화 아닌 유권자 단일화로 간다” 

사회 박성현 기자 / 정리 박지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 대선에서 문재인 지지, 야권 대선후보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뛸 것
■ 안철수 해선 안 될 일로 냉소 자초… 인위적 후보 단일화는 안 돼
■ 박원순·안희정, 지자체장 신분으로 경선 나서면 탄력 붙지 않을 것
■ 참여정부 반기문 외교장관의 업무 능력 ‘그릇이 아니다’ 실망감
■ 사드배치 국내외 갈등 자초한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은 ‘재앙’ 수준


▎이해찬 전 국무총리(왼쪽)와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정권의 향배와 무관하게 외교·안보정책은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이해찬(64) 전 국무총리는 현재 무소속 국회의원이다. 4·13 총선을 앞두고 30년 가까이 몸담은 정통 야당(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배제되자 “불의(不義)한 결정”이라며 탈당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재고’ 요청에도 더민주 공천관리위는 그의 공천 탈락을 확정·발표했던 것이다. 지역구인 세종시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그는 새누리·더민주·국민의당의 후보들을 제치고 7선 고지에 올랐다. 당선과 동시에 정치적 고향인 더민주에 복당을 신청한 상태다.

무소속 신분이지만 그는 이른바 ‘친노의 좌장(座長)’로 불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실세 총리를 지냈고, 2012년 대선에서는 민주통합당의 대표로 문재인 후보 선거운동을 지휘했다. 그는 1988년 13대 총선 당시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 공천을 받아 서울 관악을에서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이후 치러진 다섯 번의 대통령선거에 야권의 브레인으로 참여해 두 번 이기고, 세 번 졌다. 그에게 내년 대선은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전환점이다. 진보 집권 플랜을 갈고 닦았을 법하다. 그는 또 김대중 정부 교육부 장관,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를 지내는 등 진보정권 국정운영에도 깊숙이 참여했다. 아마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누구보다 풍부한 경험과 지략, 관점을 갖춘 그이지만 4·13 총선 이후는 물론이고 그전에도 언론에 좀처럼 나서지 않았다. 지난해 4월 일간지 인터뷰가 마지막이었다고 참모들은 전한다. 여러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외면해 온 그가 <월간중앙>과 마주했다. 그의 오랜 정치적·정책적 동반자인 문정인(65)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와의 대담을 통해서다. 문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외교·안보 분야의 정책브레인으로 ‘햇볕정책’과 ‘동북아평화번영정책’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일조했다. 2000년,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해 대북 포용정책의 생성과 발전, 소멸 과정을 지켜봤다. 그는 현재 박근혜 정부에서 통일준비위원회(외교·안보 분야 민간위원)에 참여하고 있다.

<월간중앙>은 이 전 총리와 문 교수 대담을 통해 진보정부 10년, 이후의 보수정부 9년의 공과를 조망했다. 두 사람은 한반도 외교·안보 정세,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여야의 경쟁력과 내년 대선의 향배 등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과 신랄한 비평을 쏟아냈다. 대담은 8월 9일 서울 마포구 소재 노무현 재단 회의실에서 2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이날은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사드배치 문제로 중국을 방문해서 정치권이 공방을 벌이고 있던 때였다.

사드배치와 한중관계 | 미·중 갈등 이슈에 한국이 왜 양자택일하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경북 성주 배치 결정으로 정부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어렵게 쌓아 올린 한중관계도 흔들린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이하 이해찬): “사드배치는 절차와 내용 면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절차적으로 먼저 국회에서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 국회 국방위원장 시절에 유승민 의원이 사드배치를 주장하자 같은 당 소속 윤상현 의원은 논의 자체를 반대하지 않았나. 그런데 충분한 논의도 없이 급작스럽게 결정되면서 성주 군민들의 화를 돋우는 결과를 낳았다. 내용 면에서는 요격미사일이 아니라 엑스밴드 레이더가 문제다. 중국은 자국의 동해안 쪽 군사정보 노출을 걱정하는 데 이건 미·중 간에 대화로 풀 사안이다.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왜 이렇게 갑작스런 결정을 하게 됐을까. 만약 내년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사드배치가 어려워지리라는 강박관념에서 미국이 한국을 압박한 건 아닐까?”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이하 문정인): “사드 한 개 포대로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억지(deterrence)도, 북한의 행태를 바꾸는 강압(compellence) 수단도 되지 못한다. 군사적 유용성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얘기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와의 외교적 마찰에 따른 외교·군사·경제적 손실은 클 것으로 보인다. 엄밀한 국익의 관점에서 볼 때 과연 사드배치 결정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든다.”

사드배치는 안보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충돌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이런 모순적 상황에서 국가 지도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해찬: “중국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본다. 사드배치에 관해서 한국의 외교장관이나 주중한국대사가 외교부장을 자주 만나면서 설득하는 과정이 없었다.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한번도 본격적인 의제로 다뤄진 적이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중국의 동의 없이 사드를 배치하면 안 된다고 두 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주한중국대사도 강력하게 촉구했다. 외교관이 그렇게 강력하게 의사를 표명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은 중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문정인: “안보와 경제에 관한 양분법적 프레임은 언론과 학자들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본다. 얼마든지 미국, 중국과 동시에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여기서 변수는 남북관계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한미동맹을 그렇게 내세울 필요가 없고 중국과 각을 세울 이유도 없다.”

이해찬: “미·중 간 갈등 이슈를 두고 한국이 한미동맹이냐, 한중 관계냐를 양자택일할 건 아니다. 중국과 미국이 직접 대화해야 한다. 우리는 올해 말이든, 내년이든 충분한 시간을 갖고 꾸준히 논의를 하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 국회 비준을 안 받아도 되는 사안이면 바꾸는 것도 어렵지 않다.”

문정인: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한미동맹이 깨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사드배치 시 중국의 보복은 예상된 것 아닌가. 사드배치 결정을 통해 우리가 미·중 갈등의 소용돌이에 제 발로 들어가버린 꼴이 됐다.”

박 대통령, 중국의 비핵화 의지 인식 못하는 것 같아

사드배치를 대하는 중국의 언론이나 여론이 다분히 도발적이다. 앞으로 한중 관계를 조망한다면?

문정인: “시진핑 주석은 박 대통령에게 기대를 많이 했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타결하겠다는 것은 시 주석의 일관된 자세였다. 그래서 6자회담과 북미대화 재개에 공을 들여왔다. 당초 중국에서는 박 대통령 인기가 대단했다. 박 대통령 자서전이 30만 부 이상 팔리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부터 우리 정부는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한 대북정책을 전개해왔는데 이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10월 17일 워싱턴 방문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북한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서(‘2015 북한에 관한 한미 공동성명서’)를 채택하기도 했다. 내심 박 대통령이 북미대화 재개에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던 시 주석으로는 상당한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과 각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 베이징을 방문했는데 일부 중국 공산당 간부와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시 주석이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도 박 대통령은 결국 미국의 아시아회귀전략(Pivot to Asia)에 충실한 일원이 되고 있다. 중국의 배신감은 매우 크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라고 비판하더라. 중국 내에서 반한(反韓)·혐한(嫌韓) 기류가 고조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닌가 한다.”

이해찬: “나는 현직에 있던 장쩌민 주석, 후진타오 주석, 시진핑 주석 세 사람을 다 만나봤다. 중국의 일관된 동북아 기본 전략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위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가 긴요하다’는 걸로 압축된다. 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상상도 않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 붕괴를 전제했다. 북한을 압박해 핵을 포기하게 해서 한반도의 평화를 이룬다는 생각이다. 많은 사람이 중국을 오해를 하는데, 중국도 북한의 핵실험을 절대 반기지 않는다. 북한 핵실험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군비증강 명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북한의 핵실험에 매우 화를 냈다고 한다. 2차 핵실험을 예고하자 후진타오 주석은 탕자쉬안 국무위원을 특사로 보내 만류했다. 이번 4차 핵실험 때도 중국은 북한제재 수위를 결정할 안보팀을 꾸렸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내게 말해줬다. 박 대통령과 우리 안보팀은 중국이 대북제재를 거의 안 하는 걸로 인식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평가 | “정치화된 국정원의 정보분석… 대통령 오판 불러”


▎2015년 8월 한민구 국방부 장관(왼쪽),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함께 3군사령부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결정 과정에 어떤 문제라도 있나?

문정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 결정과정이 투명하지 않는 것 같다. 국방부장관, 외교통상부장관, 통일부장관 등 NSC 멤버들이 자유롭고 활발한 토론을 벌이는지 의문스럽다. 대통령의 일방적 지시만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6월 28일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국회에서 ‘사드배치가 올해 안에 결론 나지 않겠느냐’고 언급했고 7월 5일 국방부는 ‘배치 시기와 지역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밝힌 바 있는데 7월 8일 사드배치 공식화를 발표했다. 사드배치 결정도 그렇고 개성공단 폐쇄도 그렇고 주요 안보 사항들이 수직적으로 결정된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이해찬: “지금 NSC는 군 출신 인사들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듯하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겉도는 느낌이다. 개성공단 폐쇄에 대한 논리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 안보도 중요하지만 대외 수출의존도가 아주 높은 한국경제의 특수성과 외교적 고려도 함께해야 한다.”

문정인: “윤병세 외교, 홍용표 통일 등 민간인 출신 장관들이 NSC에서 어느 정도의 입김을 발휘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등 군 출신 인사들 중심으로 정책결정이 이뤄지는 게 아닐까?”

정보의 편식, 편중 현상이 있다는 말인가?

이해찬: “당연하다. 현재 국정원의 대북 정보수집은 아주 낮은 수준이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소식도, 4차 핵실험 때도 국정원은 몰랐다. 이처럼 낮은 수준의 정보를 폐쇄적 방식으로 보고하면 상황은 더 어려워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정원의 직접 보고를 받지 않으려고 총리인 내게 보고하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국정원 보고를 받았는데 첩보와 정보가 구분이 안 됐다. 양은 많은데 제대로 된 정보를 걸러내지 못하더라.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객관적인 판단을 하겠나.”

문정인: “정보 수집의 실패 못지않게 분석 실패도 걱정이다. 지난해 7월 박 대통령은 통일준비위원회에서 ‘내년에 통일이 올 수도 있으니 통일 준비를 잘 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아마 지난해 5월 북한 정찰총국 대좌가 망명한 것을 두고 이런 추론을 한 것 아닌가 한다. 여기에는 국정원의 대북 정보 분석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본다. ‘고위 탈북자 증가, 북한 정정불안, 체제 변화 가능성 증대’ 이런 유형의 정보분석 보고서가 박 대통령의 대북 인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대통령의 희망 사항을 정보분석 보고서 형식을 빌려 만족시켜주는 ‘정치화된’ 정보기관이 문제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

대북 정보의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말로 들린다.

이해찬: “2006년 북핵 6자회담 직후 1차 핵실험이 있었는데 당시 국정원은 몰랐다. 북한은 중국에 2시간 전에 통보했다고 한다. 당시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외교장관에게 6자회담 당사국에 빨리 통보하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중국이 김하중 당시 주중한국대사에게 설명했다. 그때까지도 국정원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6자회담이 중요한 이유다. 여기 있는 문정인 교수가 예전에 만났던 상당수의 북한 당국자가 김정일 위원장한테 직접 보고하는 사람들이었다.”

문정인: “북한과의 대화 통로로는 당국자 간의 공식 채널, 국정원 등과 같은 기관 간의 막후교섭 채널, 비정부단체 간 물밑 접촉 등이 있다. 국정원이 북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최선의 방식은 북한의 고위인사를 만나는 거다. 영상, 암호 첩보도 중요하지만 인간 첩보가 제일 바람직하다. 북한에 직접 가서 사람들을 만나 들어봐야 하는데 지금 북한에 대한 정보는 거의 모두 탈북자들에게 의존하는 실정이다.”

“김정일은 권위가 있고, 김정은은 권위주의적”


▎철권 통치에 의존하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외부세계에 폭압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박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 3년반을 평가한다면?

이해찬: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전제는 남북관계 개선인데 정부는 그런 노력을 게을리했다. 내가 늘 강조하는 게 ‘시기’다. 임기 말로 접어들면 정상회담은 불가능해진다. 참여정부의 경험이 그랬다. 남북관계는 대통령 임기 초반에 불가역적으로 만들어놔야 실효성이 생긴다. 2013년 3차 북한 핵실험이 상황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간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한국은 해법을 찾으려 노력했어야 했다.”

문정인: “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다. 박근혜 정부가 초기에 내놓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균형외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우리 국민들뿐만 아니라 중국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현 정부를 함께 일할 상대로 본 것이다. 지금 정반대로 간다. 이제는 ‘한반도 신뢰 파괴 프로세스’, ‘동북아 갈등 대립구상’, ‘편중 외교’ 그리고 ‘결딴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북한은 핵실험을 두 번이나 했고, 미사일 발사 빈도도 더 높다. 개성공단도 폐쇄됐다. 박 대통령은 자꾸 북한 탓만 하는데 우리가 보다 전향적인 예방외교를 통해 막을 순 없었을까?”

올해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얼어붙은 남북관계는 돌파구를 잃고 말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어떤 인물로 와 닿나?

이해찬: “김정은 개인보다 북한의 내부 사정에 주목하고 싶다. 상황이 나아졌다는 걸 알아야 한다. 식량난이 많이 해소됐다. 김대중 정부 때는 필요한 식량의 3분의 2밖에 공급되지 않았다. 예컨대 450만 톤 중 150만 톤이 모자랐다. 우리가 50만 톤, 세계식량프로그램(WFP)에서 50만 톤을 보탰다. 지금은 부족분이 30~40만 톤으로 줄었다. 장마당도 400여 개가 가동되면서 식량 문제에 숨통이 트였다. 정치적 리더십을 보자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유연하면서 권위가 있었다. 권위주의가 아니라 권위다. 권좌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김정은은 그런 권위가 없다. 권위주의로 통치를 하다 보니 외부세계엔 폭압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큰 실수를 한 것 같기도 하고 정치도 불안하긴 하지만 경제는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쉽게 무너진다는 관측은 속단일 뿐이다.”

문정인: “김정은의 개성이나 북한 체제의 성격은 이미 알려져 있는 것 아닌가. 북한에는 김정은 체제의 존속이 절체절명의 목표다. 이를 위해서 북한은 어떤 도발적, 기만적 행동도 할 수 있다. 이를 상수로 간주하고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에 나서야 한다. 현 정부는 북한을 ‘신뢰하기 어렵고 도발적이며 예측불가능하다’고 못박고 있다. 상대가 이런 걸 다 뜯어고치면 대화를 하겠다는 건데 그건 정치도, 외교도 아니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대북정책과 외교적 상상력이 요구된다.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 북한더러 핵무기, 미사일을 없애야 대화한다면 움직이겠느냐. 미국 핵물리학자 지그프리트 해커 박사의 ‘3NO(핵무기 양을 안 늘리고, 질도 안 높이고, 확산해서도 안된다)’ 원칙을 이 시점에서 되새겼으면 한다.”

두 분은 과거 정부에서 북한 당국자를 만나 어떤 얘기를 나누었나?

이해찬: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쯤이었다. 17대 대통령 선거의 향배와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 노선에 북한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김양건 당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원동연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등등이 내게 몇 번이나 물었다. 내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 같다’고 했더니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할 건가’라고 되물었다. 그래서 ‘전면적이진 않겠지만 서로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승계할 것’이라고 답했다.”

문정인: “나도 김양건과 원동연에게 그렇게 말했다. 둘 다 틀렸다.”(웃음)

이해찬: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니까 북한의 어떤 관리는 현직에서 물러났더라.”(웃음)

여권 잠룡들 평가 | “반기문이 강단 있는 지도자? 괜히 하는 소리”


새누리당이 정권재창출에 성공할 경우 다음 대통령은 지금과는 다른 대북 접근방식을 꾀하지 않을까?

이해찬: “새누리당이 재집권해도 차기 대통령은 이렇게 가는 게 나라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권에서) 누가 집권하더라도 남북관계가 이렇게 얼어붙어선 정치·외교·안보 측면에서 안정을 꾀하기 어렵다. 중국과 사이가 틀어질수록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과 금융자본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하니까.”

문정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대통령이 되면 접근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근데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집권한다면…. 한미공조를 강화하고 강력한 대북 압박정책을 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누구를 중심으로 정권을 재창출하느냐에 따라서 집권여당의 대외 정책의 성격이 달라질 것이다.”

반기문 총장은 “남북 대화의 길을 다시 찾아야 하며 어떤 형식이든 도움을 주고 싶다”는 취지를 밝힌 바 있다.

문정인: “지난해 만나기도 하고 예전에도 얘기를 해봐서 아는데 이건 확실하다고 본다. 반 총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국민통합에도 나설 것이다.”

이해찬: “반 총장은 외교관 출신이라 기본적으로 밀리터리(군사) 멘탈리티가 없는 분이다. 누차 얘기했는데 외교관은 정치를 못한다. 우리가 많이 봐와서 안다. 비단 반 총장뿐만이 아니라 다른 외교관들도 그랬다. 정치의 본질은 뭔가? 갈등 현안을 타결하고 어려운 숙제를 푸는 자리다. 그러자면 몸에 물을 묻히면서 흙탕물을 건너기도 해야 한다. 그게 정치적 리더십인데 외교관은 그런 일 절대 안 한다. 외교관 출신 중에 지역구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누가 있나?”

문정인: “19대 국회 당시 새누리당 심윤조(서울 강남 갑), 김종훈(서울 강남 을) 의원 등은 외교관 출신 아닌가.”

이해찬: “서울 강남구는 (새누리당 일방적 우세 지역이므로) 선거라고 할 수 없는 곳이니까. 외교관 출신 비례대표 의원에게 지역구에 출마를 권했더니 손사래를 치더라. 야당에 그런 일이 실제 있었다.”

그걸 전체 외교관으로 일반화하는 건 좀 곤란하지 않나?

이해찬: “외교관이라는 자리는 업무의 성격상 스스로가 뭔가를 타개하는 자리가 아니다.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실한 외교적 언어와 사고방식에 익숙한 게 외교관이다. 최규하 대통령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안 건너간다고 그랬다.”(웃음)

반 총장 측은 유엔이라는 국제무대에서 그가 매일같이 결단력과 조정력을 발휘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국제사회의 갈등 현안을 조율하는 강단 있는 지도자라고 하던데.

이해찬: “(웃음) 괜히 하는 소리지. 유엔에서 사무총장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유엔에 가보니까 사무총장은 판공비도 변변히 없다. 직원들 밥 한 번 사기에도 벅차다. 전용기가 없어 방문국의 항공기를 빌려 타는 신세다. 유엔은 안보리이사회 5개국 등 강대국 중심으로 돌아가는 조직이다. 사무총장이 할 일이 별로 없는 곳이 유엔이지. 참여정부 시절 반 총장이 외교장관을 오래(2004~2006년) 한 것도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 도움을 주자는 정부의 배려였다.”

문정인 “그게 노무현 대통령의 뜻이기도 했다.”

“유승민의 안보관은 극우… 진정성 의심스러워”


▎2009년 김해시 봉하마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안장식에 참석한 이해찬 전 총리(앞줄 왼쪽부터 넷째) 등 친노 진영 인사들.
당시 반 총장의 외교부장관으로서의 일처리는 어땠나?

이해찬: “2004년 당시 총리로 있을 때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 지진·해일 참사가 발생한 일이 있다. 반기문 외교장관의 대처를 보면서 ‘깜이 아니구나’라고 느꼈다. 총리인 나더러 현지 방문을 요청하면서 100만 달러를 원조 자금으로 쥐어 주는 거야. 당시 일본이나 중국은 3~5억 달러에 이르는 거액을 쾌척하던 때라 ‘이렇게 들고 가면 나라 망신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지금 당장 남은 예산이 그 정도라고 하더라. 내심 ‘판단이 그것 밖에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2005년 1월 4일 이해찬 총리 주재로 열린 민관종합지원협의회에서 쓰나미 복구 피해복구를 위해 당초 500만 달러에서 3년간 50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여권 잠룡 중 남북관계의 적임자가 있을까?

문정인: “새누리당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사건 등 정치적 이유로 국가안보를 정쟁화했다. 이게 관성이 되다시피 해서 누가 대선후보가 되더라도 기존의 경직된 대북정책에서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자면 엄청난 정치적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이해찬: “4월 총선을 통해 대선주자들이 거의 사라졌기에 반기문 총장을 영입하려는 것 아닌가.”

잠재적 대선주자로는 유승민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여럿이 있다.

이해찬: “그 정도로는 대통령 후보 되기 어렵다.”

문정인: “유승민 의원은 사드 도입에 목숨을 거는 정치인이다.”

이해찬: “유 의원이 안보 현안 얘기하는 거 보면 보수 정도가 아니라 극우다. 그냥 보수가 아니다.”

유승민 의원도 대결주의적 대북정책을 취하리라 보나?

이해찬: “그중에서도 선봉이다. 유 의원이 국회 국방위원장을 역임한 게 정치적 장래에 큰 굴레가 될 것이다.”

문정인: “유 의원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대구 지역 내 기피시설인 K2 공군기지 이전을 위해 국회 국방위원장도 했는데 이건 님비(NIMBY: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 현상, 즉 지역 이기주의라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 이를 카무플라주(camouflage·위장)하기 위해 국방과 안보에 강경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아닌가? (국방위원장 역임과 안보 강성 발언 등이) 도구적 성격인지 진정성의 발로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해온 발언으로 봐서는 국방 쪽에서는 보수를 넘어 극우적이다.”

새누리당에 변변한 대선 후보감이 없다고 보는 건가?

이해찬: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만한 탄력성을 보유한 후보감이 사라진 것이다. 물론 어떤 식으로든 후보를 내기는 하겠지.”

야권 정권교체 가능성 | “(문재인 나온다면) 우리야 당연히 지지하지”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문정인 동북아시아시대위원회 위원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내년 대선에서 야당의 승리 가능성이 더 높다는 데 동의하나?

문정인: “아직은 모를 일이다.”

이해찬: “한국의 정치지형은 여당(보수 진영)에 유리하게 짜여 있다. 야당 후보(진보 진영)가 대통령이 되기까지는 정말 예상치 못하는 변수가 많다.”

그 변수가 어떤 건가?

이해찬: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당선 당시 두 번 다 대선기획을 담당했다. 내심 두 분 다 안 되리라고 예상했었다. 1997년은 DJP(김대중+김종필) 연대를 이루고 이인제 씨가 독자 출마해 영남, 충청표를 갈라 먹었지만 여전히 DJ는 여당 후보에게 15%가량 뒤지고 있었다. 선거 한 달 남겨두고 외환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가까스로 판세를 뒤집은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정몽준 씨와의 단일화를 이뤄 승기를 잡게 됐다. 내년 대선 여건은 야당에 유리한 편인 게 사실이다. 새누리당에는 강력한 주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지형이나 언론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놓고 보면 녹록한 선거만은 아니다.”

문정인: “그렇다. 총선 압승 등 현재적 상황에 안주해서 야당 후보들이 매너리즘에 빠져선 곤란하다. 각고의 노력을 쏟아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고,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진심이 전달되는 정치를 해야 한다.”

이해찬: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 층도 각양각색이다. 이렇게 넓은 유권자 스펙트럼을 포용할 수 있는 야권 대선후보가 나와야 한다.”

기존의 야권 주자 중에 그럴 만한 인물이 보이나?

이해찬: “충분할 수는 없다. 그런 시각과 자세로 1년 남짓 남은 기간 동안 노력과 정성을 다해야 한다.”

문정인: “야당에는 문재인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 쟁쟁한 주자들이 있다. 경선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다면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지지율에서 앞서가는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후보 경선에서 독주하지 않을까?

이해찬: “선거라는 게 원래 역동적인 거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보라. 노무현 후보가 된다고 보는 사람이 있었나. 다들 이인제 후보의 낙승을 예상했다. 그런데 광주에서부터 뒤집어지지 않았나. 조그만 구멍이 생겨도 일순간에 확 무너지는 게 대선후보 경선이다.”

문정인: “정치의 속성이 그런 거다. 미국을 봐도 도널드 트럼프에 뒤지던 힐러리 클린턴이 지금은 10% 이상 앞선다. 감동을 주고 국민의 가슴에 와 닿는 대선후보 경선을 치른다면 야권의 승리 가능성이 커진다. 여권은 그런 인물군이 취약하기에 반기문 총장 영입설이 나오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내년 대선에도 나선다면 밀 것인가?

이해찬: “우리야 당연히 지지하지. 꼭 문재인 전 대표만이 아니고 야당 후보라면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뛰어야 한다.”

박원순 시장, 안희정 지사 등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켜 이변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은?

문정인: “당연히 있다고 본다.”

이해찬: “그분들 생각이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충분히 잠재적 주자라고 봐야 한다. 그들이 (시장, 도지사직을) 중도 사임하고 경선에 임할지, 직을 갖고 경선에 뛰어질지에 따라 양상은 달라진다. 말하자면 시장, 도지사 신분으로 나오면 탄력이 붙지 않는다. 사퇴하고 죽기 살기로 나선다면 예측을 불허하게 된다.”

2012년 대선 당시 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 대표였던 이 전 총리는 박지원 당시 원내대표(현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으나 대선 패배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야권이 분열돼 있다. 내년 대선 후보단일화 전망은 어떠한가?

문정인: “인위적 후보단일화는 국민의 반발을 살 것이다.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본다.”

이해찬: “그렇게 단일화한다고 해서 국민이 따라가진 않을 거다. 이번 총선을 보면서 확연히 느꼈다. 이제는 (후보 단일화가 아니라) 유권자 단일화로 가야 한다. 2030세대의 투표율이 높아졌다. 젊은 세대들이 날로 심화되는 양극화에 분노하고 있다. 기저에 깔린 이런 민심이 대선 때 격발되는지 지켜볼 일이다.”

“안철수 지지율 10%는 선호도일 뿐 의미 없어”

안철수 전 대표는 10% 안팎의 고정 지지층을 갖고 있다. 표 분산으로 야권에 타격을 주진 않겠나?

이해찬: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 10%란 선호도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실제 표로 연결되는 게 얼마나 될까. 지난 대선 당시 안 전 대표가 배낭 메고 미국으로 훌쩍 떠난 거나 이번에 총선을 앞두고 탈당해서 창당한 거나 정치인이 해선 안 될 일을 했다. 냉소를 살 뿐이다. 정치에서 중요한 건 지더라도 안에서 다시 도전해 뜻을 이루는 것이다. 안 된다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안 될 일이다. 호남 유권자들이 정권 교체를 얼마나 열망하는데. 안 전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국민의당 의원이 따라 갈까? 결국 야권의 대선후보를 따라가는 길밖에 더 있겠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뒷이야기 | “정권 빼앗기니 모든 정책이 무너져 내렸다”


▎이해찬 전 총리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참여정부 시절 각각 국무총리와 외교부 장관으로 국정에 참여했다
두 분 모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두 전직 대통령은 무엇이 닮고 또 달랐나?

이해찬: “그분들은 가치관이 분명하고 시종일관 진정성이 있었다. 민주주의, 인권, 남북평화, 지역주의 타파 이런 가치에 투철한 분들이었다. 자기 책무감, 국가에 대한 책임감도 뚜렷했다.”

문정인: “두 분은 역사인식이 상당히 강했다. 또 망원경같이 멀리 내다봤다. 또 분열을 싫어했고 통합을 선호하는 점도 닮았다. 민주주의, 평화, 지역균형발전, 양극화 극복에 노력한 분들이다.”

두 사람의 차이점을 꼽으라면?

이해찬: “노 전 대통령은 도발적인 반면, 김 전 대통령은 인내심을 갖고 여러 경우의 수를 다 재는 케이스다. 김 전 대통령은 많은 고난 속에 단련된 그런 게 있었다.”

문정인: “김 전 대통령은 말씀이 많은 분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정말 말씀이 적은 분이었다. 한 시간을 만나도 50분을 내가 얘기하는 편이고 김 전 대통령은 주로 들었다. 아주 사려가 깊고, 경청하며, 완벽을 추구한 지도자였다. 노 전 대통령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인간적인 터치 때문에 포퓰리즘을 하는 것처럼 비쳤다. 노 전 대통령은 가까이서 쉽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면 김 전 대통령은 만나면 왠지 어려웠다. 살아온 배경과 관련이 있는 거 아닐까.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랄까.”

김 전 대통령은 늘 기록하는 분이었다고 들었다.

이해찬: “당총재 시절 공식회의 말고도 꼭 3, 4개의 외부 스케줄을 잡았다. 외부 인사들과 밥 먹는 자리에서도 모든 걸 일일이 기록했다. 항상 똑같은 까만 노트에 적었다. 일일이 메모하니까 나중에 틀린 수치를 보고하면 곧바로 집어내곤 했다.”

문정인: “퇴임 후 김대중 노트가 80권 가까이 되더라. 반면 노 전 대통령은 기록하던 기억이 거의 없다. 기억력이 좋았다. 회의 중 지루하면 낙서를 하기도 했다.”(웃음)

이해찬: “녹음이 다 되기 때문에 기록하고 말고 할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녹취 풀어서 보면 되니까. 편하게 대화하고 약간은 개구쟁이 같은 분이 노 전 대통령이다.”

진보정부 10년 동안 주역으로 활동했다. 나중에 미련이랄까 아쉬움도 컸을 텐데.

이해찬: “정권을 빼앗기니 모든 정책이 무너져 내리더라. 남북 관계, 경제정책 줄줄이 깨져나가는데 심지어 세종시까지 백지화하려 들지 않았나. 노 전 대통령이 서거까지 하시고…. 한 번쯤 더 집권해서 참여정부 정책을 되돌릴 수 없게끔 안정화 시켰어야 했다. 그게 제일 안타깝다.”

문정인: “나는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다 수행했다. 남북 총리, 부총리, 각종 회의에서 45개 남북 합의사항이 도출됐었다. 그게 이행됐다면 남과 북에 모두 이롭고, 특히 기업들에 좋은 기회가 됐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 다 무력화된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해찬: “남북정상 간 합의사항을 깬다는 게 도대체 가당한 것인가.”

문정인: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하는 걸 보면서 정치가 무섭고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년에 가령 정권이 교체된다 해도 지난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부정하거나 배제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정책의 연속성 확보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유시민 장관 발탁 놓고 대통령과 총리가 ‘대충돌’


▎이해찬 전 총리와 문정인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도발적이면서도 인간적이며,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2006년 1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이해찬 총리는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의 보건복지부장관 발탁을 놓고 정면충돌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유 의원의 입각에 반대했고 이 총리 또한 유 의원 임명을 제청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급기야 노 대통령은 이 총리에게 끝까지 버티겠다면 총리직을 그만두라고까지 언성을 높였다. 이는 2015년 5월 발간된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의 <바보, 산을 옮기다>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비화(秘話)다.

이와 관련해 이 전 총리는 당시의 정황을 처음으로 언론에 밝혔다. 대통령과 총리가 일촉즉발의 충돌상황으로 치닫자 유시민 의원이 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입각 포기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2016년 당시 장관 제청권을 놓고 대통령과 총리 관계가 아주 위태로웠다고 들었다.

이해찬: “당시 노 대통령이 유시민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하고자 했다. 이재정, 이상수 전 의원을 각각 노동, 통일장관에 입각시키는 것도 어려웠기 때문에 유시민 장관 입각은 정치적 부담이 컸다. 그래서 내가 ‘유시민 의원은 안 된다’면서 ‘임명 제청권은 총리에게 있는데 왜 대통령께서 먼저 말씀하시느냐’고 반문했다. 차라리 보건복지장관 지명을 몇 달 미루자고 건의했다. 그렇게 4시간 가까이 줄다리기를 한 것 같다. 끝내 양보를 안 하셨고 나도 양보 못한다고 버텼다. 헌법에는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이 총리에게 있으니까. 서로가 지쳐갔다. 그래서 내가 유시민 의원에게 전화를 넣어 ‘이번엔 당신이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얼마 뒤 노 대통령이 돌아와서 ‘유 의원에게서 장관직을 고사하겠다는 전화가 왔다. 총리가 시켰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유 의원 본인 뜻은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응답했더니 ‘그렇게 제청을 하지 않겠다면 총리 그만두라’고 하시는 거다. 그래서 ‘제가 해임당하면 대통령 입장이 뭐가 되시겠느냐. 이번엔 제가 물러서지만 또 한 번 이러면 다신 참지 않겠다’고 했다. 얼마 뒤 유시민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는데 주례회동 석상에서 노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 ‘거 봐요. 유시민 장관도 통과됐잖아요!’”

이 전 총리도 한때의 별명이 ‘송곳’일 정도로 꼿꼿하기 그지없는 스타일인데 당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나?

이해찬: “그런 일로 총리가 옷을 벗으면 나라 꼴이 뭐가 되겠나. 국무총리의 제청권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후 대통령이 예고도 없이 차관 인사권을 총리에게 다 넘겨주더라. 청와대 비서실에서 난리가 났다. 차관 인사권을 총리가 행사하면 청와대 비서실은 ‘열중쉬어’가 된다. 그래서 대통령 비서실장, 청와대 정책실장, 국무조정실장을 불러 그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차관 인사 절차는 총리의 결재를 받지만 내용상으로는 청와대 인사수석과 협의를 하는 선에서 교통정리했다. 이는 지금까지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스토리다.”

문정인: “2006년 6월 제주평화 포럼 참석 차 당시 제주도에 노 대통령과 함께 갔을 때다. 대통령이 ‘이해찬 총리, 유시민 보건복지장관은 아이디어맨’이라고 했다. ‘대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이었다.”

- 사회 박성현 기자 / 정리 박지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201609호 (201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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