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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검찰 저격수’ 황운하 경무관의 고백… 수사비화, 그리고 검경개혁을 말하다 

“홍만표 사건 제대로 수사하면 해경처럼 검찰 해체 얘기 나올 것” 

글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 사진 김춘식 기자 kim.choonsik@joongang.co.kr
■ 검찰에 진경준은 버리는 카드, 홍만표는 보호해야 할 대상
■ 권력부패 사건, 검찰 빼고 ‘공직자비리수사처’에 전담수사권 보장해야
■ 검찰은 직접수사권 배제, 경찰은 정치권력에서 독립성 확보가 과제
■ 페이스북에 경찰청장 비판 글, 강신명 청장이 내 진심은 이해해줄 것
■ “경찰이 장관 사병이냐” MB 정부 때 장관 비서실장과 언쟁도
■ 김학의 차관 성상납 사건 수사한 경찰들 좌천시킨 것은 잘못된 인사


경찰대학 1기 출신으로 대표적인 ‘검찰저격수’로 통하는 황운하 경무관(54·경찰대학 교수부장).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며 검찰을 비판해온 그가 최근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 개혁의 소신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보신에 급급하고 정치권 눈치를 많이 본다”며 경찰 수뇌부를 향한 내부비판까지 그의 쓴소리는 검경을 가리지 않는다.

8월10일 <월간중앙>은 황 경무관과 4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기고백을 담은 경험담 그리고 검경 갈등을 빚은 수사비화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검경 개혁과 관련해서는 각각 ‘직접수사권 배제’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핵심 내용을 제시했다.

현직 고위 경찰공무원 신분으로서 SNS에 쓰고 있는 검경 개혁, 경찰청장 비판 등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경찰 내부 경로를 통하는 건 실효성이 없고, 언론에 기고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솔직한 내 생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페이스북에 글쓰기더라.”

검찰은 물론이고 경찰청장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나섰는데 윗선의 질책이나 감찰을 걱정하지 않나?

“옳은 일이라면 징계를 걱정하지 않는 게 맞다고 본다. 가급적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도록 신경 쓰며 글을 쓴다. 청장을 포함해 수뇌부는 불편해 하겠지만 감찰을 받은 적은 없다.”

공무원으로서 이런 글쓰기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

“복무규율 위반 여부를 검토한다는 내부 반응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비방이 아니라 조직 발전을 위한 내부 소통의 한 방법으로 건강한 비판이란 게 있지 않나. 강신명 청장은 나의 이런 발언에 대한 진정성이나 맥락을 상당부분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강 청장과도 페이스북 친구 사이인가?

“강 청장과도 페이스북 친구다. 내 글을 가끔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경찰 총수로서의 입장에서야 물론 편치 않겠지.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누구보다도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고 있을 테니 밖에서 보는 것처럼 전혀 이해를 못하거나 불편해 한다고만 생각지는 않는다.”

이런 글쓰기에 대해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

“소위 ‘공무원스럽지 않은’ 글쓰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분도 있겠지만 글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은 공감한다고 하더라. 그래서인지 페이스북 친구 맺기 요청이 최근 부쩍 많아졌다. 폐친 맺기가 최대 5000명까지로 제한돼 있어 더 늘릴 수는 없더라. 내 의견이 세상에 많이 알려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강한 전파력이 있는 분 위주로 친구 맺기를 하고 있다.”

계속 승진에서 누락되는 등 불만이 많아 이런 글을 올리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 이도 있다.

“그렇게 폄하하는 의견이 있는 줄 안다. 그런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다. 경찰로서 내가 존재하는 이유, 또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내 생각을 시민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인가?

“우리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경제정의가 화두인 시대다. 하지만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고 그 기반이 허약하면 경제정의는 꿈꿀 수조차 없지 않으냐.”

우리나라가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는 얘긴가?

“고위 검사가 퇴직 후 짧은 기간에 수백억 원을 챙기는 행태가 정상적이고 정의로운 사회에게 가능한 일인가. 어디 이번 한 번뿐이겠나.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홍만표·진경준 사건 등 최근 법조계에서 펑펑 터지는 사건들 보면 강도떼가 설치는 나라와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나.”

펑펑 터지는 법조비리, 강도 떼가 설치는 나라 같아


▎홍만표 변호사의 사건으로 검찰이 내상을 입었다지만 탈세 외에 각종 몰래 변론의 진실은 다 드러나지 않았다. 홍 변호사가 5월 27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다.
검찰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자.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지나치게 정권 눈치를 본다’는 등 청장을 세게 비판했다.

“강 청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역대 청장 상당수도 정치권 눈치 많이 보고 또 퇴임 후 다른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나. 임기만 채운다고 잘한 건 아니다. 청장이 자기 소신이 부족하고, 정치권 등 외부에 휘둘리면 조직이 어찌 되겠나. 전임자의 공과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후임 청장에게도 도움이 된다. 개인 감정을 담아 한 얘기가 아니다.”

후임 청장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나?

“위에 눈치보고 할 말 못하고 그랬다가는 나 같은 사람한테서 ‘내부 비판을 받는구나’ 하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거다. 내부에서 비판적 목소리도 나오고 해야 청장도 그걸 핑계삼고, 기댈 언덕 삼아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리더십 발휘하며 조직을 끌어갈 수 있지 않겠나.”

강 청장이 본인의 입장을 정말 이해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나?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강 청장은 내게 진로 상담도 하고, 조직에 대한 걱정과 고민도 서로 나누고 했다. 실제로 골치 아픈 사건도 같이 경험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오래전부터 잘 알 테고.”

같이 경험한 골치 아픈 사건? 어떤 일을 겪었나?

“2011년 내가 서울 송파경찰서장을 하던 때다. 강 청장은 서울청 경무부장이었다. 당시 정부 고위직 인사와 관련한 경비 문제로 말썽이 난 적이 있다. 모 장관 자택에 경찰을 배치하는 문제를 두고 부탁이 들어왔는데 내가 반대하면서 사단이 났었다.”

자세히 얘기해 달라.

“이명박 정부 때 맹형규 씨가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다. 맹 장관의 자택이 내 관할인 송파구에 있었다. 어느 날 장관 비서실장이 ‘민원인이 자꾸 장관 집에 찾아와 귀찮게 하는데 경찰이 차단해달라’고 전화로 부탁한 적이 있다. 경찰 몇 명 보내 집 주변을 지켜달라는 거지. 나는 ‘못하겠다’고 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신속히 처리해줄 수 있지만 따로 경찰을 보내 보초를 서는 건 부적절하다고 했다.”

다른 부의 장관도 아니고 경찰청이 소속된 정부부처의 장과 관련된 민원인데 거부했나.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이다. 장관 비서실장과 언성이 높아지고 말다툼을 하다 ‘경찰이 장관 사병인 줄 아느냐?’라고 했다. 그러자 비서실장이 ‘당장 오라’고 하면서 난리가 났다. ‘내가 왜 그쪽으로 가나. 당신이 오든지 하라’며 옥신각신하다 결국 제3의 장소에서 만나기로 타협했다.”

제3의 장소는 어디였나?

“강신명 청장이 근무하는 서울청 경무부장실에서 보자고 하더라. 결국 경무부장실로 나갔는데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장관 비서실장은 경무부장 체면도 있고 하니 내가 상관인 경무 부장실에서 고개 숙이기를 원했던 것 같다. 당시 강 청장도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승진은 못 시켜도, 승진 막을 힘은 있으니…”


▎김현웅 법무부장관이 7월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 나와 진경준 검사장 사건과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김 장관은 “국민께 사죄의 말씀을 드리며 조속히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강 청장이 뭐라고 하던가?

“내게 따로 전화해서 ‘장관 비서실장이 선배님을 승진시킬 힘은 없을지 모르지만, 승진하지 못하도록 할 힘은 있지 않겠습니까’라면서 ‘나쁜 관계를 맺지 말라’고 걱정해주더라. 내가 이런 식으로 살아온 걸 강 청장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본인에 대해 비판적으로 얘기하는 것 역시 사심에서 나온 얘기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경찰청장 교체기다. 신임청장은 뭘 해야 하나?

“경찰청장이라는 자리는 지엽적인 실무 차원의 사안을 신경 쓰는 자리가 아니다. 청장은 국민, 특히 정치권력을 상대로 경찰이 어떤 존재로 인식되느냐는 문제에 신경 써야 하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조직의 미래비전, 큰 틀에서의 발전방향을 고민하는 자리다. 청장이 온갖 사소한 문제를 다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검찰 얘기 좀 해보자. 홍만표·진경준 사건 어떻게 받아들이나?

“홍만표 변호사의 전관예우 사건으로 검찰은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 반면 진경준 사건은 역시 검찰 이미지에 타격을 줬지만 검찰 입장에서는 꼭 나쁠 것도 없는 사건일 수 있다. 진경준 사건은 아무리 파봐야 현관(현직 검사들을 뜻함)들하고 연결될 것이 별로 없을 테니까. 오히려 수사 잘 마무리하면 검찰 스스로 자정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효과도 있다. 그래서 검찰 입장에서는 진경준은 봐줄 필요가 없는 버리는 카드다.”

그럼 홍만표 변호사 사건은 다른가?

“검찰 입장에서 홍만표 변호사는 완전히 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탈세 문제만 따졌고 현관(전관예우)은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홍 변호사가 퇴직 후 연평균 100억원, 서초동 법조타운 안팎에서는 300억원 이상 소득을 올린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더라. 사건도 많이 쓸어갔지만 건당 수임료도 대단했다. 의뢰인들이 왜 유독 홍 변호사에게 만 몰리고 거액을 갖다 줬을까. 그의 약발이 현관들에게 잘 먹힌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 아니었겠나. 법조 브로커나 의뢰인들 사이에서 이런 소문은 빠르고 정확하다.”

검찰이 치부를 감추려고 홍 변호사를 봐줬다고 보는 건가?

“당연한 얘기다. 홍 변호사에 대하 검찰 수사의 핵심은 현관들에게 어떤 약발이 먹혔는지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언론 보도대로라면 홍 변호사는 몰래 변론(소위 전화변론)한 것만 62건 정도 된다는 것 아닌가. 대한변호사협회에서 홍 변호사 징계를 위해 몰래 변론한 사건 내용을 달라고 검찰에 요구해도 검찰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감추려는 게 뭔지 홍 변호사가 관여한 사건 하나하나 다 살펴볼 수 있으면 좋은데….”

검찰은 전관으로서 로비 시도를 했는데 실패한 것이라고 하지 않나?

“대한민국에서 그걸 그대로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몰래 변론한 사건들 검찰이 제대로 수사했다면 내사종결, 무혐의, 불구속 내지는 축소수사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나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수사가 이루어졌다면 해경처럼 검찰 해체하라는 말까지 나왔을 것이다. 홍 변호사 사건은 최소한 특검으로 가야 할 사안이다.”

그렇다 해도 검찰 해체까지 얘기하는 건 좀 심한 말 아닌가?

“검찰의 존재 의의를 흔히 거악(巨惡) 척결이라고 하지 않나. 우리처럼 검찰이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데다 검찰수사 내용을 중심으로 뉴스가 돌아가는 나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검찰이 그동안 거악 척결을 잘해왔다면 우리는 반부패 분야에서 상당히 앞서 있어야 맞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는 여전히 부패지수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다른 나라에도 없고 유례없이 막강한 권한이 있는 검찰이 거악 척결을 잘해왔다고 봐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검찰을 어떻게 개혁하자는 건가?

“거악을 척결한다는 검찰이 스스로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고 전관에 휘둘리고 하는 것을 막으려면 그들이 갖고 있는 ‘직접수사권’을 없애야 한다. 막강한 수사권이 없는 검찰을 정치권력은 물론이고 누구도 사적인 목적에 이용하려고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정권만 바뀌면 벌어지는 표적수사, 보복수사 시비도 없어지지 않겠나.”

홍만표가 관여한 ‘몰래 변론’은 왜 더 안 파나


▎2011년 10·26 재보궐 선거일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마비시키는 디도스 공격 사건이 터졌다. 경찰 수사결과 여당 국회의원 비서출신이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 큰 파문이 일었다. 당시 수사기획관이던 황운하 경무관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서지 않으면 경찰이 다 하면 되는 건가?

“경찰도 아직 국민 신뢰를 확실하게 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검사가 직접 수사권을 행사해야만 거악과 부패가 청산된다고 볼 수는 없다. 어려운 시험 합격한 똑똑한 사람들이 수사하면 더 나을 것이라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수사와 기소라는 두 개의 칼을 혼자 다 갖고 있으면 오히려 유혹에 취약해지고 도덕적으로 무감각해질 가능성만 더 높아진다.”

그렇다 해도 검찰 수사권 배제는 너무 앞서나가는 주장 아닌가?

“지금 당장 검찰 수사권을 없애자고 하면 과격한 주장으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방향으로 가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맞다. 검찰은 기소권을 갖고 경찰은 수사를 열심히 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나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대선 때 수사와 기소 분리원칙을 분명히 언급했었다. 또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을 축소하고, 또 검찰의 직접 수사를 원칙적으로 배제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결국 경찰 수사권이 독립돼야 한다는 주장 아닌가?

“전에는 경찰 수사권 독립을 주장하면서 검찰로부터 수사지휘를 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검찰의 직접수사권이 없어지면 경찰은 검찰로부터 감시 통제(수사지휘)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정치권에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보다는 공직자비리수사처 설립 문제에 관심이 더 많다.

“정치권에서 검찰의 직접수사권 배제를 어렵게 생각하다 보니 우선적으로 공수처 설립을 추진하는 것이다. 나도 조건부로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조건부 찬성이 무슨 얘긴가?

“야당의 공수처 법안을 보면 검찰의 기존 권한에 대해서는 손대지 않고 있다. 막강한 검찰 권한을 그대로 두고 공수처를 만들게 되면 검찰 개혁의 효과가 있을까. 공수처 역시 실효성 논란, 개점 휴업사태, 무용론까지 제기될 수 있다. 권력형 부패범죄에 한해서 만큼이라도 공수처에 배타적 전속관할권을 줘야 한다.”

공수처에 배타적 관할권을 줘야만 실효성이 있다는 건 어떤 근거에서 주장하는 건가?

“검찰은 겉으로는 공수처를 만드는 데 반대하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검찰 개혁안 중에 오히려 공수처 설치가 가장 미약한 개혁안이라고 여길 수 있다. 공수처 만들어봤자 결국 흐지부지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할 수 있다. 요즘 대통령직속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민정수석 사건을 다루고 있다. 특별감찰관 제도는 만들어놨지만 그동안 한 게 없지 않나. 자칫 공수처가 특별감찰관처럼 운영되면 무용론이 나올 수 있다. 이번에 공수처 법안을 잘 만들어 검찰의 공고한 기득권에 작은 구멍을 내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 수사 과정에서 검찰의 지휘를 받으면서 갈등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아는데.

“경찰청 수사기획관 시절(2011년), 한 대기업을 수사한 적 있다.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잡고 수사했다. 당시 물증 확보를 위해 관련 회사 압수수색을 해야 하는데 검찰이 계속 뚜렷한 이유 없이 영장을 기각하더라. 그러면서 필요한 자료를 회사 측으로부터 임의제출 받아 수사하라는 지휘가 내려왔다. 이건 수사하지 말라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황 경무관을 수사의 핵심 지휘라인인 본청 수사기획관으로 발탁한 게 조현오 청장 때였지 않나?

“조 청장은 경찰도 제대로 된 부패 수사를 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내게 수사기획관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본청에는 범죄정보과와 지능범죄수사대 등 핵심 부서가 그때 만들어졌다. 권력형 비리·부패 등 민감한 사건들을 다루는 조직이었다. 청장이 의지가 강하다 보니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당시 정권 실세들 이름이 실명으로 적힌 각종 첩보·정보들이 문서 보고로 올라올 정도의 분위기였다.”

검찰이 불편해 하지 않았나?

“자신들을 직접 겨냥해 수사하려 한다고 못마땅해 했다.”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당시 서울고검 김광준 부장검사를 수사할 때도 검찰과 갈등이 있지 않았나?

“본청 범죄정보과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조희팔 비자금 수사와 관련해서다. 내부 검토를 거쳐 본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수사를 맡았다. 수사 과정에서 차명으로 관리되고 있는 계좌의 실제 주인이 현직 검사일 가능성이 대두됐다. 관련 계좌를 압수 수색해 들여다봐야 하는데 검찰이 계속 영장을 기각하더라. 결국에는 검찰로부터 본청이 직접 수사하지 말고 조희팔 관련 사건 수사가 진행 중인 대구지방경찰청으로 이첩하라는 지휘가 내려왔다.”

검찰이 수사에서 손 떼라는 지휘를 한 건데 어떻게 돌파했나?

“특수수사인데다 민감한 내용이라 지방청보다는 본청에서 해야 했는데 그걸 못하게 한 거다. 결국 우회루트를 만들었다. 검찰 지휘대로 사건을 대구청으로 내려 보내고, 본청 수사팀을 대구청 소속으로 파견을 보내 수사를 계속하게 했다. 계좌추적 영장의 경우에는 현직 검사 계좌추적을 위한 영장은 검찰이 기각할 것이 뻔해서 추적하고 있는 다른 계좌들과 섞어서 슬쩍 영장신청을 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진행했다면 꼼꼼히 스크린하는 과정에서 걸러져 영장 기각됐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김광준 검사의 범죄사실이 세상에 드러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에는 검찰이 사건을 가져가지 않았나?

“경찰 수사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안 김광준 검사가 검찰 내부에 보고하고 검찰은 내부 감찰로 적당히 해결하려고 입장 정리를 했던 것으로 안다. 그러다 언론을 통해 사건 내용 일부가 공개되자 특임검사 쇼를 한 것 아닌가.”

수사하다 보면 본인에게도 부탁도 들어오고 그런 적 있었을 텐데.

“수사기획관 시절 피의자가 내 친구인데 구속 수사까지는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내가 여기서 적당히 봐주면 원칙이 무너지고 또 밖으로 소문이라도 나면 그동안 내가 주장해온 얘기를 누가 순수하게 받아주겠나 싶더라. 거절하고 구속했다. 마음은 아팠지만 할 수 없었다.”

외부에서 전화도 많이 받았겠다.

“수사기획관으로서 첫 사건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사건이다. 2011년 10·26 재보궐선거날 선관위 홈페이지가 디도스 공격을 받아 다운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 수사결과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의 최 모 의원 수행비서가 범인으로 밝혀졌다. 투표율을 떨어뜨려 서울시장 야당후보로 나선 박원순 변호사를 낙선시키기 위한 시도였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심지어 선관위가 개입했다느니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투표율을 떨어뜨리려고 공작한 것 아니냐는 둥 별별 얘기가 다 돌았다. 사안이 워낙 민감해서 그랬겠지만 청와대 김효재 정무수석에서부터 여의도 정치권 등 여기저기서 경찰청장과 수뇌부에 전화가 많이 갔더라. 수사지휘 책임을 지고 있는 나에겐 전화가 없었고 다 (전화) 받았다고 하더라.”

검찰도 그렇다지만 경찰 역시 문제가 많지 않나?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경찰 인사에서 정치권의 영향력을 차단해야 한다. 특정 정치인 등 외부인사에게 잘 보이려 하고 눈치 보면 모든 게 다 틀어져버린다. 그런 측면에서 김학의 차관 성상납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경찰들 좌천시킨 것은 잘못된 인사다.”

경찰이 안 팠으면 김광준 검사 사건 터졌겠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엔 경찰청장의 리더십이 가장 중요하다. 신임청장은 경찰 인사과정에서 어떻게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할 지에 대한 명확한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안되면 정치권 유력 인사에 줄대고 눈치 보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중립성도 중요하지만 평소 경찰의 부당한 사건 처리에 대해 불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한 아이 엄마가 남성흡연자에게 담배 피우지 말라고 얘기했다가 뺨을 맞은 사건을 경찰은 쌍방폭행으로 처리해 공분을 샀다.

“근본적으로 그런 문제도 정치적 중립성과 무관하지 않다. 힘센 편으로 기울어진 경찰 조직의 잘못되고 건강하지 못한 내부문화가 뿌리깊게 박혀 있다 보니 약자 편, 정의의 편, 소수자 보호에 힘써야 할 경찰이 목소리 크고 힘 있는 쪽에 치우치게 된다. 하위직 현장 경찰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존중해주는 문화도 있어야 한다. 최대한 자율적 권한을 주면서 책임도 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그냥 기계적으로 처리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둔감하게 된다. 국민 법감정과도 멀어지게 되고….”

동기나 후배들은 승진하는데 황 경무관은 자주 누락됐다. 검찰에 밉보여서 그런 것 아닌가?

“조현오 청장이 퇴임 후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적이 있다. 2010년 내가 서울청 형사과장 하던 때다. 조 청장이 내 승진인사를 포함한 경찰 인사안을 들고 청와대에 들어갔는데 모 수석비서관이 끝까지 반대해 무산됐다고 하더라. 겉으로는 서울시내 경찰서장을 하지 않은 인사를 경무관으로 승진시킨 예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건 명분일 뿐이었다. 검찰과 각 세우는 사람을 승진시키기 싫었던 것 아닐까.”

조현오 청장으로서는 청와대의 반대를 무시할 수 없었을 텐데.

“나중에야 알게 됐다. 끝까지 내 승진을 반대한 청와대 모 수석을 조 청장이 만나 ‘황운하 승진은 올해 없던 것으로 하겠다. 대신 청장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좀 도와달라. 그리고 내년에는 황운하 승진 인사 반대하지 말아달라’라는 조건으로 일단 받아들였다고 하더라.”

그런데 지난해 말에도 치안감 승진 인사에서 제외됐지 않나?

“나와 함께 승진한 사람은 대부분 치안감으로 승진했다. 나보다 승진이 늦은 사람도 치안감 승진을 하더라. 승진에서 자꾸 누락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면 승복할 텐데 그런 이유도 없다. 왜 이유도 없이 인사에서 계속 불이익을 주는지 큰 모욕감을 느꼈다.”

윗선에 줄이라도 대서 하소연이나 부탁할 생각은 안 해봤나?

“이제 고백하건대 지난해에는 승진 좀 해야겠다는 생각에 청와대 실세와 잘 안다는 사람을 통해 부당하게 불이익받지 않게 해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계속 배제될 이유가 없는데 너무 답답하다 보니…. 지금 생각하면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더라. 평소 소신과도 맞지 않고 스타일만 구긴 것이지.”

계급 정년이 내년인데 이제 치안감 승진은 포기한 건가?

“포기하지 않았다. 인사만 합리적이라면 승진하리라 기대한다. 약하고 비굴한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건 지금까지의 내 삶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당하게 평가받아 승진하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조직에서 내 마지막 꿈 중 하나다.”

- 글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 사진 김춘식 기자 kim.choonsik@joongang.co.kr

201609호 (201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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