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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소리의 마술, 콘서트홀의 미학] 신축 롯데콘서트홀 어떤 음악 들려줄까 

빈야드식 좌석에 파이프오르간의 위용 돋보인다 

황진규 음악 칼럼니스트
민간기업이 세운 최초 대형 연주회장인 롯데콘서트홀 개관… 어중간한 실력의 지휘자들에게 ‘무덤’ 될 가능성도 있어

▎롯데홀의 개관으로 한국 음악계는 일본 도쿄의 산토리 홀과 같은 빈야드식 연주회장을 갖게 됐다. / 사진·중앙포토
위기를 맞고 있는 롯데가 콘서트홀을 개관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 콘서트홀의 등장이 음악계에 지니는 의의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우선 새로운 실험이 이미 그 형태 안에 깃들어 있다. 음악인도 청중도 콘서트 홀이 빚는 소리의 마술이 실현되길 기대한다. 과연 어떤 미학을 담아 선보일까?

8월 19일에 클래식 전용 공연장 롯데콘서트홀(이하 ‘롯데홀’)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후술하겠지만 이것은 정식 개관공연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빈약한 클래식 공연 인프라를 생각해볼 때, 이것은 일대 사건이라 할 만하다. 경사라고 해도 좋겠지만, 그렇게 단정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롯데홀이 개관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극적인 사연들을 되짚어보고, 이 공연장이 지닌 특징과 장차 이 공연장이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짚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롯데홀 건립은 롯데월드타워를 비롯한 잠실 제2롯데월드 계획의 일부로서 발표되었다. 당초에는 건립 계획에 없었으나 제2롯데월드 설계 변경을 서울시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계획이 잡혔다고 한다. 제2롯데월드 공사를 둘러싼 여러 가지 사고는 주로 가장 난공사였던 롯데월드타워에 집중되어 있지만, 쇼핑몰동 내부에 공사하던 롯데홀도 사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4년 12월에 공사 관련 근로자 한 명이 추락으로 추정되는 사고로 사망한 일이 있었다. 롯데홀은 아니지만 쇼핑몰동 내부에 일어난 것까지 합치면 사고가 몇 건 더 있었다.

이런 난관을 뚫고 2015년 9월에 공사를 마치고 개장하기는 했으나, 개장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질 예정이었던 개관 공연은 무산되었다. 개관 공연은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할 예정이었으며, 이외에도 존 엘리엇 가디너가 몬테베르디 합창단 등을 이끌고 지휘하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할 예정이던 뮌헨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등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들 공연이 모두 취소되었던 것이다. 이즈음에 많은 사람이 한숨을 지으며 “롯데홀 정말 괜찮겠어요?” 하고 묻곤 했다.

다시 내부 정비를 거쳐 롯데홀이 발표한 개관 공연일은 2016년 8월 18일이었다. 그러나 언론인들과 주요 음악계 인사 및 롯데그룹 주요 임원 등이 참석할 예정이었던 개관 공연은 최근 무기한 연기되는 것으로 발표됐다. 아무래도 롯데가 그룹 차원에서 검찰 조사를 받는 와중에 이런 행사를 여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차후 개관 공연을 다시 열지는 알 수 없으나, 원래 예정되어 있던 19일의 일반인 대상 공연이 개관 공연의 성격까지 겸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공연장 부족 상당부분 해소될 듯


▎새로 지은 롯데콘서트홀의 외관. 메세나 운동의 성공적 사례로 기록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 사진·중앙포토
이전에도 개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몇 차례 비공식 공연이 있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롯데홀에서 이루어지는 최초 공연은 아니지만, 이번 공연은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최초의 공식적인 연주라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모은다. 정명훈의 지휘로 서울시향이 연주할 이 공연에서는 세계적인 명성의 작곡가 진은숙의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가 초연된다. 여기에 정명훈의 대표적인 장기에 속하는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 등이 추가로 연주될 예정이다.

앞서 언급한 우여곡절로 다소 의미가 퇴색한 감은 있지만, 그렇더라도 롯데홀의 개관이 한국 음악계에 갖는 의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일단 롯데홀은 사기업 주도로 건립된 최초의 대형 콘서트홀이다. 물론 이전에도 금호아트홀이나 호암아트홀 등 기업이 건립한 콘서트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모두 소규모였다. 이번에 롯데가 어느모로 보나 그룹 규모에 걸맞은 대형 콘서트홀을 지은 것은 기업의 문화활동 지원, 다시 말해 메세나 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 법하다.

처음에 잠깐 언급했듯이 국내 클래식 관련 인프라는 상당히 빈약한 편이다. 가장 여건이 낫다는 서울만 하더라도 대형 공연장은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 정도가 전부였다. 서울 인구의 약 4분의 1에 불과한 영국 런던의 경우에는 대형 콘서트홀이 셋이고(최대 5272석 규모의 로열 앨버트 홀, 2900석의 로열 페스티벌 홀, 바비컨 센터 내에 위치한 1943석의 바비컨홀), 이 가운데 콘서트홀이라기보다는 다목적 홀에 가까운 로열 앨버트 홀을 제외하면 전부 한두 개의 오케스트라가 상주하고 있다.

물론 클래식 공연의 천국인 런던과 일대일로 비교하는 게 무리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산술적으로 비교할 때 런던의 네 배 규모인 서울에 대형 공연장이 더 적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홀 같은 어엿한 대형 공연장이 생긴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대관 예약을 잡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듣곤 했는데(실제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약 1년 전에 대관 예약이 만료되다시피 한다), 롯데홀의 개관으로 사정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듯하다.

롯데홀은 지금까지 한국에는 없었던 형태와 음향을 지닌 최초의 콘서트홀이기도 하다. 롯데홀 고유의 개성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측면이고, 궁금해 할 분도 많을 듯하다. 롯데홀 내부에 들어가보면 가장 큰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 무대 뒤쪽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일 것이다.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 빈 무지크페라인잘, 산토리홀 등 세계의 이름난 공연장은 상당수가 파이프오르간을 갖추고 있다.

많은 음악애호가가 세종문화회관의 오르간이 갈수록 노후화되고 예술의전당에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하려던 계획이 무산된 현실을 아쉬워하던 터였다. 손가락보다 간신히 굵은 것부터 굵기는 한아름 되는데다 높이는 10m에 이르는 것까지 4958개의 크고 작은 파이프들이 자아내는 장관에 가슴이 설렐 사람이 한둘은 아닐 듯하다. 이 파이프오르간의 제작사가 다름아닌 빈 무지크페라인 잘과 산토리홀의 파이프를 제작한 바로 그 회사(리거 사)이며 개발부터 설치까지 3년 이상 공들였다는 사실은 더욱 흥미를 돋운다.

무대 주변에 좌석 집중되는 빈야드 홀의 매력


▎8월 1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코리안심포니의 리허설 공연. 롯데콘서트홀은 가변식 어쿠스틱 배너를 설치해 잔향 시간에 따르는 문제를 해결했다. / 사진·중앙포토
그러나 사실 파이프오르간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무대와 좌석의 배치 형태다. 무대를 기준으로 사면이 객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런 형태의 좌석 배치를 ‘빈야드형’이라 부르는데, 세계적으로 따져봐도 독일의 베를린 필하모니 홀과 일본 산토리홀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클래식 콘서트홀은 형태에 따라 대략 네 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상자형이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며,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유형이다. 세계적으로는 1744석 규모의 빈 무지크페라인 대형홀(황금빛 내부장식 때문에 ‘황금홀’로도 불린다)이 대표적이다. 국내에는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이나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공연장은 설계하기가 쉽고 음향이 비교적 고르게 퍼지는 장점이 있는데, 실제로 앞서 언급한 공연장들은 모두 뛰어난 음향 조건을 자랑한다. 그러나 일부 좌석은 무대를 바라보기에 상당히 불편하기 때문에 대형 콘서트홀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둘째로 말발굽형(또는 U자형)이다. 공간 한쪽을 둥글게 처리한 형태로, ‘사각형’의 개량형이라 할 수 있다. ‘루체른 페스티벌’로 유명한 KKL 루체른 콘서트홀(1898석)이 여기에 해당한다. 비교적 우수한 음향 조건을 지니며, 사각형 유형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시야의 사각(死角)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장점이 있다.

셋째는 부채꼴형으로 무대를 중심으로 뒤로 갈수록 좌우로 넓게 퍼져가는 형태의 공연장을 말한다. 최근 수십 년 사이에 가장 많이 지어진 유형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바로 이 유형에 속한다. 많은 좌석을 배치할 수 있기 때문에 대형 콘서트홀에 적합한 형태지만, 음향이 고루 퍼지기 어렵기 때문에 좌석 위치에 따라 음향의 수준이 차이가 난다는 단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빈야드형(포도밭형)은 앞서 설명한 대로 무대를 좌석이 사면으로 둘러싼 형태다. 베를린 필하모니 홀(대형홀 기준 2440석)과 도쿄의 산토리홀(메인홀 기준 2006석), 로스앤젤레스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2265석)이 대표적인 빈야드형으로 꼽힌다. 이 공연장은 무대 주변에 좌석이 집중돼 있기 때문에 비교적 작은 공간 안에 많은 좌석을 배치할 수 있고, 청중이 연주자 가까이에서 교감하기 쉽다는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무작정 크게 짓기 어렵고,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유형이라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다른 형태의 공연장에 비해 설계하기가 까다롭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곤 한다.

롯데홀 내부를 처음 견학했을 때 처음 받은 인상은 ‘아담하다’는 것이었다. 2036석 규모의 어엿한 대형 콘서트홀에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 같지만 실제로 그랬다. 실제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2523석)이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3022석)에 비하면 규모에 비해 무척 작다는 느낌이 든다. 이를 단순히 빈야드형 공연장의 특징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같은 빈야드형이라 해도 좌석이 들쭉날쭉하게 파격적으로 배치된 베를린 필하모니 홀과는 달리 객석이 무대를 중심으로 ‘얌전하게’ 모아진 듯한 배치 탓에 한층 더 공간이 작아 보였다. 좌석을 무대와 최대한 밀착시키고자 한 배려가 돋보였으며, 롯데홀 3층 좌석이라 하더라도 예술의전당 2층보다도 오히려 무대와 거리가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무대와 가까울수록 음향이 감쇄하지 않고 잘 전달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롯데홀은 그 상식을 최대한도로 구현하려 한 공연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특정한 형태로 지었다 해서 음향이 좋고 나쁘고를 단정할 수는 없다. 앞서 말한 부채꼴형 공연장도 짓기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음향 조건을 지니게 할 수 있고, 빈야드형이건 뭐건 엉터리로 지으면 음향도 엉망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 점을 전제로 하고 말하자면, 롯데홀이 엉터리로 지어졌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시공에 1500억 원이 투입되었다거나, 국립중앙박물관을 만든 회사에서 설계하고 산토리홀과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등의 음향설계를 총괄한 회사가 음향설계를 맡았다는 단순한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롯데홀은 국내 공연장 최초로 바닥, 벽, 천장 등 콘서트홀의 내부를 외부와 완전히 분리한 ‘박스 인 박스(Box in box)’ 구조를 도입했다. 외부 공간을 이중으로 감싸면서 소음과 진동을 완벽히 차단해 관객의 공연 몰입도를 극대화하자는 의도에서였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바로 이 이유로 그냥 무턱대고 쇼핑몰동 8층으로 올라가서는 롯데홀의 입구를 찾지 못하고 외부 공간에서 헤맬 우려가 있다. 롯데홀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롯데홀 전용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이 점에 대한 안내가 부족해 보인다.

롯데홀 고유의 음향은 무엇일까?


▎빈야드식으로 설계된 롯데콘서트홀은 소리의 전달력이 우수해 연주자의 실수가 고스란히 노출될 듯하다. / 사진·중앙포토
롯데홀은 기본적으로 클래식 전용 공연장으로 지어졌지만 경우에 따라 다른 장르의 공연도 소화할 수 있는 다목적홀의 성격도 띤다. 장르에 따라 요구되는 최적의 잔향 시간이 다르기 마련인데, 클래식 공연은 특히 긴 잔향 시간을 요구한다. 단순히 잔향 시간을 각 장르별 요구치의 평균값으로 산정해서는 클래식 공연에 맞지 않게 된다. 간혹 각 시도의 문화회관에서 이루어지는 클래식 공연이 음향 면에서 만족스러운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롯데홀은 가변식 어쿠스틱 배너(음향 반사판)를 설치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또 자유롭게 무대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리프트를 설치함으로써 관현악곡이나 합창곡부터 실내악, 독주회에 이르기까지 공연 규모에 맞는 무대 환경을 조성하도록 했다. 어쩌면 롯데홀의 ‘정성’ 가운데 관객 입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른 데 있을지도 모르겠다. 공연 시에 환기 혹은 냉·난방을 위해 가동하는 공조 시스템의 울림 때문에 음악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하소연은 한두 번 들어본 게 아니고, 필자 역시 여러 번 겪은 일이다.

지난해 10월 3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아노 카르미뇰라의 내한공연은 이 문제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공연장 상부에 설치된 환풍기에서 나오는 바람 때문에 악보가 자꾸 넘어가자 카르미뇰라가 연주를 중단하고 퇴장했다가 다시 들어오는 돌발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롯데홀에서는 이런 문제를 겪을 일이 없다. 좌석마다 아래 설치된 환기구가 환기 및 냉·난방을 담당한다. 직접 체험한 바로는 무척 조용해 감상에 지장을 주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점에 특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길 법하다. “그래서, 다른 공연장과 차별화되는 롯데홀만의 특별한 음향(홀톤)이 있는가?” 물론 있다. 롯데홀의 홀톤은 대단히 특이해서 국내에는 비슷한 데가 전혀 없고, 외국에도 드물다고 말해두고 싶다.(굳이 말하면 월트디즈니 홀이 비슷한 홀톤을 지녔는데, 음향설계를 총괄한 회사가 동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앞서 말했던 잔향 시간이 너무 짧거나 음향 구조상의 문제로 소리가 잘 뻗지 못할 경우에는 공연 시 건조하고 뻑뻑한 소리가 나게 되고, 반대로 잔향이 너무 길면 소리가 너무 울려 멍멍한 음향을 듣게 된다.

‘습식 사우나’의 음향을 듣는다

음악 애호가들은 후자의 경우를 농담 삼아 ‘목욕탕 사운드’라 부르기도 한다. 원론적으로는 초점이 분명하면서도 잘 울리는 소리가 가장 이상적인 음향이겠지만, 이를 완전히 충족하는 콘서트홀은 거의 없다. 현실적으로는 초점이 선명한 대신 건조하거나 차가운 음향이 나는 경우 아니면 목욕탕 사운드이기 십상이다. 참고로 말해두자면 청중은 풍성하고 잘 울리는 음향을 좋아하는 반면 연주자들은 좀 건조하게 여겨지더라도 자신이 낸 소리가 직접적으로 들리는 경우를 선호한다. 그리고 똑같은 목욕탕 사운드라 하더라도 소리의 질감에 따라 동네 목욕탕과 호텔 사우나 급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그럼 롯데홀의 음향은 이 가운데 어디에 해당할까?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굳이 비유해서 말하자면 ‘습식 사우나’ 정도가 적당할 듯하다. 롯데홀 측에서 정식 개관을 앞두고 언론인들과 음악평론가 등을 초청해 일종의 시범 공연을 가진 적이 있었다. 이 공연에서는 임헌정이 지휘하는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슈만의 첼로 협주곡과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을 연주했다. 이때 내가 들었던 음향은 그냥 잔향이 풍부한 정도를 넘어서 물기를 잔뜩 머금은 소리였다. 물에 살짝 적셔둔 한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것을 꼭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소리 자체는 무척 듣기 좋게 울릴 뿐만 아니라 전달력이 좋기 때문에 독주회나 실내악 혹은 소규모 고음악 연주회의 경우에는 롯데홀만큼 궁합이 잘 맞을 콘서트홀을 달리 찾기 어려울 것 같다. 대형 콘서트홀에서 독주회나 실내악 공연이 열릴 경우 소리가 왜소하게 들리기 십상이지만 장담컨대 롯데홀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대편성 관현악이나 합창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에는 각 파트의 소리가 번지는 과정에서 서로 섞이기 십상이며,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소리 자체의 전달력은 좋기 때문에 실수가 묻히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정확히 누가 실수한 것인지 가려내기는 어렵겠지만 실수 자체는 분명히 들린다는 얘기다. 따라서 그냥 다른 콘서트홀에서 하듯이 연주한다면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반드시 롯데홀 특유의 음향구조에 맞춘 접근법이 필요하다.

우선 약간 호흡이 짧아지더라도 각 파트의 초점을 분명히 맞춰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은 말은 쉽지만 굉장히 어려운 과제다. 따라서 롯데홀이 앞으로 어중간한 실력의 지휘자들에게 무덤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반대로 뛰어난 실력의 지휘자라면 다른 콘서트홀에서보다 훨씬 더 돋보이는 성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각 악기군의 특성을 감안해 연주 방식이나 음량 비중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금관의 경우 그렇게 큰 힘을 들이지 않더라도 소리가 잘 퍼지기는 하겠지만, 힘을 많이 들이더라도 소리가 뭉친 채 뻗어나가는 느낌을 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러시아 악단의 금관주자들이 곧잘 들려주곤 하는 질박한 금관 사운드는 롯데홀에서 접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타악기, 또 특히 팀파니나 큰북은 다른 파트들이 묻히지 않도록 힘을 좀 조절해서 연주하는 게 좋으리라 생각한다.

[박스기사] 주목할 만한 롯데홀의 공연 - 생상스 ‘오르간교향곡’ 말러 ‘천인교향곡’ 공연에 관심


▎지휘자 정명훈
롯데콘서트홀의 개관 일정이 연기되는 바람에 그동안 예정돼 있던 좋은 공연이 여럿 무산됐다. 그러나 이번에 롯데홀 측에서 마련한 공연 라인업 역시 그 못지않게 훌륭하다. 모든 공연에 참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분들을 위해 특히 주목할 만한 공연을 소개한다.

먼저 8월 19일에 열리는 첫 공식 공연이다. 앞서 언급했듯 정명훈의 지휘로 서울시향이 연주하며, 진은숙의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가 초연되고 아울러 생상스의 걸작 ‘오르간 교향곡’이 연주된다. 롯데홀에 설치된 대형 파이프오르간의 향연을 맛볼 수 있는 기회다. 8월 25일과 27일에는 임헌정이 지휘하는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8번’을 연주한다. ‘천인 교향곡’이라는 별명을 지닌 이 곡은 실제로 8명의 독창자와 대규모 합창단까지 포함해 최대 1000명 이상 연주할 수 있는 곡이며, 이번 공연에서도 그에 준하는 규모로 연주될 예정이다.

앞서 말한 롯데홀의 특성에 비추어볼 때 좋은 음향이 나올 수 있을지 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호기심이 드는 공연이기도 하다. 어차피 자주 들을 수 있는 곡이 아니기 때문에 이 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일종의 사건이다.

1000명의 음악가가 일제히 한 곡을 연주하는 장면은 시각적으로도 대단한 체험을 선사한다. 8월 29일과 31일에는 정명훈이 지휘하는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각각 베토벤 교향곡 ‘9번’과 베르디의 비극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를 공연할 예정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한국에서 거의 연주되지 않았지만 베르디의 걸작 오페라 중 하나이기에 오페라 애호가라면 절대 지나칠 수 없는 공연일 것이다.


▎지휘자 성시연
9월에는 오르가니스트 장기유가 연주하는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공연이 20일에 열린다. 이 곡을 관현악곡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라벨이 편곡한 것이고 원곡은 피아노곡이다. 피아노보다 훨씬 다채로운 음색을 지닌 오르간으로 이 곡을 듣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23일에는 도이치 방송 오케스트라가 현재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있는 성시연의 지휘로 공연을 갖는다. 주요 연주곡 중에 정명훈과 겹치는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28일에는 시대악기 연주의 거장인 톤 쿠프만이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하이든의 ‘오르간 협주곡 1번’ 등을 연주할 예정이다. 오르간과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는 것 외에도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약할 쿠프만의 모습이 기대된다.

10월 공연 중에는 15일에 열릴 윌리엄 크리스티와 레자르 플로리상의 공연이 단연 주목할 만하다. 시대악기 연주의 또 다른 거장인 크리스티와 그가 직접 창단한 레자르 플로리상은 오랜 세월에 걸쳐 완벽한 호흡으로 많은 명연을 낳은 바 있다. 26일에는 현대음악계의 전설이 된 고 피에르 불레즈가 생전에 창단한 현대음악 전문 공연단체인 앙상블 앵테르공탱포랭의 공연이 열린다. 중견 작곡가이기도 한 마티아스 핀처가 지휘를 맡으며, 불레즈의 <메모리알레>등 현대음악으로만 짜인 프로그램을 연주한다.

11월 4일과 5일에는 현재 중국 출신 작곡가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명성이 높은 탄둔의 작품들이 연주된다. 탄둔은 영화음악 분야에서도 많은 업적을 쌓았는데, 이번에는 그 가운데 각각 <와호장룡>과 <영웅> <야연>에서 선율을 뽑아 작곡한 협주곡 세 곡을 연주한다. 22일에는 현재 활동 중인 바리톤 가운데 가장 대가 축에 속하는 마티아스 괴르네가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노래한다. 단순히 피아노 반주로 노래만 하는 게 아니라 윌리엄 켄트리지가 제작한 영상이 함께 상영된다. 27일에는 ‘건반 위의 시인’이라 불리는 노르웨이 출신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가 9년 만에 내한 독주회를 갖는다. 그리그의 ‘서정 소곡집’ 등을 연주할 예정이다.

12월은 요엘 레비가 지휘하는 KBS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회로 시작한다. 2일과 3일, 10일, 11일에 걸쳐 연주된다. 8일에는 중국 최고의 인기 피아니스트 랑랑이 독주회를 갖는다. 알베니스의 ‘스페인 모음곡’ 등을 연주할 예정이며, 차분하고 서정적인 스타일의 안스네스와 화려한 기교를 마음껏 과시하는 랑랑의 스타일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황진규 -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 코리아>에서 기자로 일했다. <객석> <스트라드> <인터내셔널 피아노> 등의 잡지와 일간지에 리뷰와 평론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대관령국제음악제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금호아트홀 등의 프로그램 해설을 쓰기도 했다. 말러·브루크너·쇼스타코비치·닐센의 음악을 가장 좋아하며, 지휘자 가운데서는 귄터 반트와 스타니수아프 스크로바체프스키를 특히 존경한다.

201609호 (201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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