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Home>월간중앙>히스토리

[김승중 교수의 ‘그리스 문명의 결정적 순간’(6)] 심포지온과 디오니소스 

와인처럼 어둑한 바다를 마시다 

김승중 캐나다 토론토대 희랍미술고고학과 교수 seungjungkim@gmail.com
심포지온의 꽃은 프로페셔널 엔터테이너였던 헤타이라이… 글을 알고, 즉흥시를 짓고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던 해어화(解語花)
플라톤은 아테네에서 유행했던 심포지온을 대담하고 유장하게 변호한다. 그에 의하면, 심포지온을 통해 쾌락을 배우는 것이, 스파르타식의 교육을 통해 고통을 배우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심오한 ‘중용의 이상’에서부터 생성된 의견이다. 무릇 모든 삶이 고통이라면 쾌락을 즐길 권리도 허여되어야 한다.


▎1. 헤타이라이(hetairai)라고 불리는 기생들과 함께하는 심포지온. 스미크로스(Smikros)라는 아티스트가 크레이터 와인 항아리에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BC 510년경) / 2. 디오니소스의 졸개인 사튀르들도 술잔치를 벌인다. 아예 가죽부대를 입에 대고 희석되지 않은 와인을 직접 들이키고, 또 다른 사튀르가 그 위에 매병으로 술을 더 붓는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Herodotus, BC 484~BC 430-420 추정: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의 희랍사가. 아테네에서도 살았고 이집트 등 페르시아제국의 엄청난 영역을 여행하였다)가 전하는 수많은 일화 중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시키온(Sicyon: 펠로폰네소스반도에 위치한 도시국가)의 통치자 클레이스테네스(Kleisthenes: BC 600∼BC 556)에게는 애지중지하는 아가리스트(Agariste)라 불리는 아리따운 딸이 하나 있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혼기에 이른 이 딸에게 그리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좋은 신랑감을 찾아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클레이테네스는 올림픽 경기에서 네말전차 경주 부문에서 우승을 하자 모두에게 이렇게 선포했다.

“그리스의 청년들이여! 그대들 중 이 위대한 클라이스테네스의 사윗감이 될 자신이 있으면 60일 이내에 혹은 더 빨리 시키온으로 오시오. 그대들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을 60일째부터 계산하여 1년 이내에 내 사위로 삼을 것이오.”

그리하여 그리스 방방곡곡에서 집안 좋고 인품이 뛰어나다는 젊은이들이 모두 시키온으로 몰려들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1년 동안 이들을 꼼꼼히, 그리고 여러모로 지켜보며 무예와 운동실력도 시험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들의 태도와 사람 됨됨이였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그는 자주 향응을 베풀었으며, 그 과정에서 클라이스테네스는 아테네에서 온 젊은이들이 월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테이산드로스(Teisandros)의 아들 히포클레이데스(Hippokleides)가 사윗감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는 아테네에서 가장 부자였고, 가장 잘생긴 사나이였다.

디오니소스가 관할하는 술자리 심포지온


▎영국 도르셋(Dorset)에 있는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의 자택인 클라우스 힐(Clouds Hill). 앞문 위에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구절 “뭔 상관이오?”가 새겨졌다.
드디어 클레이스테네스가 사위를 지명하는 날이 되었다. 100마리의 소를 희생시키고 술과 고기가 넘치는 잔치에서 젊은이들이 돌아가며 마지막으로 음악과 연설의 콘테스트를 벌였다. 이때 술에 취한 히포클레이데스가 신이 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상을 가져오라고 해서 그 위로 껑충 뛰어올라가 춤을 추었다. 그 모습을 아주 못 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클레이스테네스는 그래도 꾹 참고 있었다. 그런데, 히포클레이데스가 갑자기 물구나무를 서서 다리를 휘저으며 망나니 짓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스인들의 복장은 키톤(chiton)이라 하여 짧은 원피스 같은 옷이고 바지나 가랑이가 막힌 속옷을 입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이 상태에서 물구나무를 서면 성기가 노출될 것은 뻔한 이치다. 이를 보고 더 이상 참지 못하던 클레이스테네스가 불쑥 외쳤다. “테이산드로스의 아들이여, 당신은 지금 춤으로 혼인을 말아먹었소!” 그런데 흥에 겨운 청년은 창피해 하기는커녕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뭔 상관이오!”

헤로도토스는 당시 관용구로서 유행하던 “뭔 상관”이라는 구절은 바로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한다. ‘케세라세라’라는 노래가 “될 대로 되라지”라는 뜻의 구절을 유행시켰듯, 히포클레이데스의 이야기는 아마도 술에 취해 흥겨운 상태에서 걱정근심이 없는 마음가짐을 표현하는 유행어가 되어 널리 유포된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헤로도토스를 팔 밑에 끼고 사막을 건넜던 그 유명한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 본명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 Thomas Edward Lawrence, 1888∼1935)가 영국의 도르셋(Dorset)에 있는 클라우즈 힐(Clouds Hill)이라 이름을 가진 자신의 집 문 위에 바로 이 구절을 손수 새겨 넣었다고 한다.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 집을 베두윈(Bedouin)족의 텐트와도 같이 검소하고 평범하게 유지하여 이 세상에 걱정거리를 만들지 않고, 모든 인간세상의 집착에서 벗어난다는 뜻에서 이 구절을 새겼다고 한다.

결국 아가리스트의 남편이 된 사람은 히포클레이데스가 아니라, 아테네의 명가 출신인 알크마이온의 아들 메가클레스(Megakles)였다.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외할아버지와 똑같이 클레이스테네스라고 이름지었다. 이 손자 클레이스테네스(Kleisthenes, BC 570년경∼BC 508년)가 바로 그리스 민주주의 창시자라고 알려져 있는 무척이나 훌륭한 인물이다. 그리고 히포클레이데스는 비록 술 때문에 왕실과의 혼인을 말아먹기는 했지만, 그의 행동방식은 당시 사람들의 삶의 낙천적 일면을 말해주고 있다. 그의 일화는 그만큼 널리 퍼져 있는 고대 그리스의 음주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음주문화라 하면 물론, 무소부재한 이른바 심포지온(symposion)-즉, 술잔치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회에 디오니소스(Dionysos)의 신화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그의 역할을 자세히 검토한 것에 이어서,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디오니소스가 관할하는 심포지온에 관해 살펴보기로 하자.

고대 그리스의 ‘심포지온’이라는 단어는 “함께 마신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물론 심포지엄(symposium)이라는 단어가 현대 용법으로는 학술적인 모임이나 특정한 주제를 토론하는 회의를 가리키지만, 이는 액면 그대로 술을 마시는 모임이라는 원래의 의미에서 벗어난다(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여기서는 라틴화된 표기법인 심포지엄symposium 을 쓰지 않고 고대 그리스 원어 맞춤법에 따라 심포지온symposion을 쓰기로 하겠다). 플라톤(Platon, BC 428∼BC 348)의 <대화>편 중 이 심포지온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바로 이름 그대로 <심포지온>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BC 385년 이후의 작품이다.

여기서 플라톤은 BC 416년에 아가톤(Agathon)이라는 비극작가가 시티 디오니지아(City Dionysia) 행사에서 우승을 한 기념으로 베푼 향연에서 오갔던 대화를 전한다. 소크라테스의 에로스의 이론을, 8명의 등장인물이 돌아가며 하는 담화의 형식으로 풀어간다. 물론 이 연회에서 일어난 일들은 주로 플라톤이 지어낸 픽션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바로 이 대화에서부터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라는 용어가 기원하는 것이다. 현대의 정의로는 성적인 사랑과 상반되는 남녀간의 비(非) 성적인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뜻한다. 플라톤의 원래 설명에 따르면 남성과 남성의 사이에서 생겨나는 사랑이, 남녀간의 계약적인 혼인 관계보다, 더 순수하고 이해타산을 초월해 있으며, 신성한 이데아적 사랑과 더 가깝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동성간의 사랑은 성적인 요소가 물론 있었고, 고대 그리스의 관습에서는 동성애가 보편적이었을 뿐 아니라 필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플라톤의 가장 유명한 저술인 <심포지온>에서 우리는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가 마치 사튀르처럼 못생겼으며, 젊고 잘생긴 남자아이들을 너무 좋아하여 항상 넋을 잃고 그들을 쫓아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을 통하여 알게 되는 더 놀라운 사실은 동성애가 고대 그리스 문화 전반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다. 청소년과 스승의 사이가 일상적으로 동성애적인 요소가 있고, 또 그러한 관계가 교육을 위해 권장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심포지온은 남자의 행사


▎1. 디오니소스와 그의 신봉자들의 행렬인 티아소스(thiasos)를 새긴 로마시대의 사르코파거스 (sarcophagus) 석관. 160∼180년경 작품. 로마국제박물관 소장. / 2. 바다에서 행해지는 티아소스(marine thiasos)가 새겨진 전형적인 로마시대의 사르코파거스 (sarcophagus) 석관. 네레이드(Nereid)가 마린 켄타우로스(marine centaur)를 타고 죽은자의 초상화를 받들고 바다를 건너 저승(또는 천상의 섬)으로 가는 장면이다.
그의 <법률>(Laws)에서도 플라톤은 아테네에서 유행하는 심포지온이라는 관습을 제 1권과 2권에 걸쳐서 대담하고 유장하게 변호한다. 그에 의하면, 심포지온을 통해 쾌락을 배우는 것이, 스파르타(Sparta)식의 교육을 통해 고통을 배우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엔 플라톤답지 않은 개념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심오한 ‘중용의 이상’에서부터 생성된 의견이다. 그 어느 방면으로도 지나침이 없으려면 물론 히포클레이데스처럼 절제력이 없는 과음도 안 되지만, 절대적인 금주도 한쪽으로 치우친 생활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음주습관 외에도 심포지온에서 행해지는 모든 관습이 시민들의 체계적인 교육과정에도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플라톤은 주장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심포지온이라는 행사에서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심포지온이라 일컫는 향연은 고대 그리스 전반에 걸쳐서 행해졌던 참으로 보편화된 생활방식의 일면이다. 이 심포지온이 한동안 아테네에서 특별히 유행했다고 하지만, 그리스 본토의 수많은 도시국가를 비롯하여 동쪽으로는 소아시아 지역(Asia Minor: 현재 터키 서해안), 서쪽으로는 마그나 그레시아(Magna Grecia: 그리스 식민지가 된 이태리 남부와 시실리 지역을 일컫는 말)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이라면 빠짐없이 심포지온을 행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글로 알고, 그림으로 알고, 또 유적으로 안다. 심포지온에서 쓰는 도기들은, 현재 수십만 개가 그리스 영역 전반에 걸쳐 출토되었다. 하물며 그리스인이 가는 데는 심포지온이 간다고 할 정도로 그것은 그리스적인 행사라고 여기었고, 많은 고대 작가가 이방인의 음주 풍습을 자신들의 습관과 관심 있게 비교한다.

이태리 남단에 있는 파에스툼에서 발견된 유명한 무덤을 살펴보자. 다이버의 무덤(Tomb of the Diver, BC 47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다이버 그림이 있어 이런 이름이 생겨났다)이라고 별명이 붙은 이 무덤은 좀처럼 보기 드문 형식의 건조물이며 진귀한 벽화로 모든 표면이 장식되어 있다. 가운데에 눕혀 있는 이 무덤의 주인은 천장에 새겨진 아주 특이한 광경을 목격한다. 높은 곳에서 출렁거리는 물에 멋진 다이빙 포즈로 뛰어들어 갈 찰나를 묘사한 그림이 천정에 그려진 것이다. 그 찰나를 영원으로 포착한 멋들어진 이 그림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첫발을 내딛는다는 뜻의 은유적인 표현일까?

누가 이 무덤의 주인이었던 간에 술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모양이다. 무덤의 벽 사면 모두가 심포지온을 즐기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는 희랍시대의 심포지온 문화의 디테일을 생생히 엿볼 수 있다. 이 안에 누워 있으면 마치 영원히 지속되는 향연 속에서 결코 죽음이 아닌, 디오니소스의 마법 하에 황홀경의 무아상태를 유지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아도 디오니소스의 본성은, 지난달에 설명했듯이, 저승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일 뿐 아니라 소테르적인(soteriological) 구원의 신이다. 그래서 그의 영향력은 개인의 죽음에 관한 한 절대적이다. 로마시대에도 바커스신의 인기는 그리스 시대 못지않게 높았다.

상류층이 통상 쓰는 석관인 사르코파거스(sarcophagus: 살을 먹는 상자라는 뜻)에 양각된 조각들을 보면, 반 이상의 엄청난 양의 석관이 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장식을 과시하고 있다. 주로 사르코파거스의 기다란 모양에 걸맞게 디오니소스와 그의 신봉자들이 축제 분위기의 행렬을 하는 모습이 양각되어 있는데, 이를 일컬어 ‘티아소스(thiasos)’라 부른다. 육지에서든 바다에서든, 이 티아소스 행렬은 석관의 주인을 저세상으로 모시고 간다. 그리고 그것은 그 주인의 편안하고 기쁨이 넘치는 내세의 삶을 약속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근육질의 강건한 반인-반해마를 탄 아리따운 네레이드(Nereid: 물의 신 네레우스의 딸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도 네레이드다)들이 죽은 자의 초상화를 들고 머나먼 바다를 건너 이른바 블래시드 아일스(Blessed Isles: 신성한 제도諸島라는 뜻으로 아킬레우스와 같은 고명한 영웅들이 사후에 가는 천국)로 가는 모습은 그 어느 누가 보아도 사망 후 영혼을 구원한다는 뜻이 분명하다.

사후에 어김없이 디오니소스를 찾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그만큼 생전에도 심포지온 등을 통해 디오니소스와 밀접한 관계를 지녔다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행해진 이 심포지온은 특별히 거창한 프로젝트를 요하는 일이라기보다는 그 형식이 중요했다. 근본적인 예식이 지켜져야 하는 일상적인 행사였다. 친구들을 초대하여 술을 마시고 담화를 나누며 가끔 엔터테이너를 고용해 재미있게 밤을 지내는 것과 별로 다를 바는 없다. 어디를 가도 여러모로 형식이 갖추어진 이벤트였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다. 우선, 그리스의 심포지온은 항시 안드론(andron)이라고 불렸던 입구 근처 사각형의 방에서 행해졌다. 한옥의 사랑채와 같이 손님을 대접하거나 문화적 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그 이름은 ‘남성용’ 방이라는 뜻인데 심포지온의 터전이었다. 두말할 것 없이 심포지온은 남자의 행사였다. 가족의 한 일원으로서 사회적 위치가 있는 시민계급의 여성들(부인, 어머니, 딸들)조차도 심포지온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여자들은 여성 전용의 구역인 귀나이케온(gynaikeion)에 머물렀다. 귀나이케온은 바로 한옥에서의 ‘안채’인 것이다.

심포지온의 주요 참가자는 나이 30이상의 상류층의 남자 시민이었다. 나이가 차지 않은 청년들이나 술을 따르는 시종, 또는 엔터테인먼트를 위하여 고용된 기생들 및 예술가와 소리꾼 등 다종다양의 사람이 드나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민 계급의 여성은 그리스의 심포지온에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었다. 여자라면 헤타이라이(hetairai: 쾌락을 위해 돈으로 고용되는 여자를 아티카에서 듣기 좋게 부르는 말. 포르네와 구분된다)라고 불리우는 기생(courtesan)들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사회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헤타이라이에 관해서는 잠시 후에 논하기로 하겠지만 성별에 관해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그리스의 고대 작가들은 “이태리 중북부나 페르시아와 같은 이방의 나라에서는 어이없게도 술 마시는 자리에서 부인들과 함께 향연을 즐긴다”면서, “어찌하여 그토록 이상한 관습을 갖게 되었을까” 하고 의아해 할 정도였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심포지온 음주문화야말로 제대로 된 것이라 생각했다. 으뜸가는 자랑으로 여겼던 것이다.

심포지온을 으뜸가는 자랑으로 여겼던 그리스인


▎이태리 남부의 파에스툼(Paestum)에서 출토된 다이버의 무덤(Tomb of the Diver). 그리스 시대의 벽화가 드물게 보존된 예다. 무덤의 벽 4면이 심포지온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고, 천장에는 물속으로 다이빙을 하는 장면이 있다. BC 5세기 초로 추정된다.
심포지온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는 물론 와인이다. 파에스툼에 있는 다이버의 무덤 벽화에서 보듯, 사각의 안드론 안에는 항상 클리네(kline)라고 불리는 침대 같은 소파가 벽 4면을 둘러싼다. 방 사이즈에 따라 보통 7개에서 15개 정도의 침대소파가 놓여졌다. 여기에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씩 기대 누워서(대체로 왼 팔꿈치를 받치고 눕는다) 모두 킬릭스(kylix)라는 대접 같은 와인 잔을 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고대 그리스의 도기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그 정밀한 모양과 용도가 체계화된 실용적인 예술품이다. 그리고 모든 심포지온에서는 각자의 술잔 이외에 필수 도기가 하나 있다. 이는 크레이터(krater)라고 불리는 일종의 커다란 항아리다.

클리네로 둘러싸인 방 한가운데에 놓여진 크레이터는 반드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으며, 몇십 리터의 와인이 담겨 있는 센터피스(centerpiece)다. 주둥아리가 넓게 트인 이 크레이터는 독한 와인을 물과 섞어 마시기 위하여 쓰는 도기인데, 그날의 행사 성격에 따라 크레이터에 와인과 물을 1대 1, 2대 3, 혹은 1대 2의 비율로 섞어놓고, 밤새도록 희석된 와인을 퍼마셨던 것이다. 설에 따라 비율이 1대 3, 1대 4 정도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오늘날 약한 맥주 수준으로 도수를 맞추었다고 한다. 이러한 습관 역시 그리스 특유의 것으로, 희석되지 않은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교양이 없는 야만스러운 인간이나 동물적인 미개종족들이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종 페르시아의 오랑캐들이나 반인반마인 켄타우로스, 또는 디오니소스의 졸개인 반인반염소인 사튀르들이 와인을 담는 가죽부대(wineskin)로부터 직접 마시는 모습이 도기화에 종종 보인다. 알고 보면 이러한 이미지는 해학적이면서도 따끔한 경고의 메시지라고도 볼 수 있다. 희석된 와인을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마시며 풍류를 즐기고 철학과 정치를 논하는 것이 그리스의 심포지온이다. 헤라클레이토스와 같은 철학자도 끊임없는 우주의 생성과 변화, 그리고 로고스적 투쟁을 와인과 물이 섞이는 모습으로 설명했다. 동물적인 본능을 부각시키기 위해 센 술을 벌컥벌컥 마셔 취한 상태에 이르는 것은 그리스인의 가치관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소크라테스도 술을 많이 마셨지만 술에 취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로고스였다.

그리스 귀족 무덤에는 심포지온에 쓰는 도기가 즐비


▎1. 간다라 지방에서 출토된 디오니소스의 머리. 굵은 선과 이국적인 얼굴이 간다라 스타일의 부처상과 대조된다. 포도잎 화관이 그의 정체를 알려준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 2. 고대 그리스의 도기의 모양과 이름. 두 번째 열이 각종 크레이터(krater)이고 마지막 열이 킬릭스(kylix)를 비롯한 술잔들이다.
그렇다고 종종 과음하는 경우가 없었다고 하면 믿기 힘들 것이다. 사진에 보이는 장면은 킬릭스 술잔 겉에 피리 부는 소리 장단에 맞추어 술을 마시며 코모스(komos)라 불리는 춤장이들이 춤을 추는 모습이다. 이들은 심포지온을 즐기는 양반이라기보다는, 흥겹게 분위기를 돋구기 위해 춤을 추는 엔터테이너들이다. 그렇지만 크레이터에서 와인을 퍼 담는 장면도 보이고, 손잡이 밑에는 쭈그리고 앉아 술이 동난 항아리를 안타깝게 들여다보는 대머리의 사나이도 보인다. 그런데 여기 대접 같은 술잔을 얼굴에 대고 그 안에 담긴 탁한 와인을 한번에 주욱 마시고 나면, 탁한 색깔의 술이 사라지니까 그 와인잔 바닥에 그려진 장면이 눈앞에 명료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런데 그 그림은 너무 술을 많이 마신 사람이 기분 나쁘게 술을 토하는 것을 소년이 도와주고 있는 장면이다. 이 술잔에 술을 마시는 사람이 당도하고야 마는 꼴을 예시한 것일까? 지금 막 들이킨 술이 입에서 쏟아져 나오게라도 할 참인가? 도대체 이런 술잔은 해학적인 코미디일까, 아니면 진실로 경고의 메시지일까?

이렇듯 그리스 음주문화는 체계화되어 있다. 크레이터에 희석된 와인을 통하여 세련되고, 지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자부심은 명백하다. 어떤 학자들은 크레이터 자체가 그리스적인 문화의 상징이라고도 본다. 상류층 남자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부장품을 보면 주로 그들의 일생이나 업적에 걸맞은 중요한 물건들이다. 이 중에 특히 전투에 쓰는 무기들과 심포지온에 쓰는 도기가 즐비하다.

특히 크레이터가 보이면 백발백중 남자의 무덤이다. 심포지온을 상징하는 그 많은 종류의 크레이터 도기야말로 그리스인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심포지온에서 쓰는 수 많은 도기가 그리스 영역 밖으로도 수출되었다. 그중 부인들과 술자리를 함께한다는 이태리 중북부인 에트루리아(Etruria)에서 특히나 그리스 심포지온용 도기들이 수두룩하게 출토되고 있다. 음주 습관은 달라도, 그리스의 심포지온에서 쓰는 멋진 도기들은 이웃나라 에트루리아에서도 인기가 좋았던 모양이다. 그리스어가 새겨져 있고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는 이 도기들은, 나의 유년기에 일제 코끼리표 전기밥솥이 한국에서 유행했던 것처럼, 에트루리아에서 돌풍을 일으킨 듯하다.


▎에트루리아(Etruria)에서 출토된 사르코파거스(sarcophagus). 그리스의 관습과 어긋나는, 그 지역 고유의 심포지온의 형식대로 부인과 자리를 함께하는 모습을 보이는 BC 6세기 작품이다. 로마 국립 에트루스칸 박물관(National Etruscan Museum) 소장.
말이 전혀 안 되는 그리스 글자들이 마구잡이로 새겨진 도기들도 출토된다. 어차피 그리스 말도 못 읽는 오랑캐들한테 팔아먹을 제품을 무엇 때문에 어렵게 맞춤법까지 따져가면서 만든단 말인가? 글을 쓸 줄 모르는 공예가가 허다했을 것이다. 글자 몇 개 적어놓으면 더욱 멋진 그리스 제품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만든 작품일 확률이 높다. 몇 년 전 중국 베이징을 잠시 방문했을 때 나는 자그마한 상점에서 파는 귀걸이에 두 살짜리 어린애가 베껴 쓴 것 같은 필체로 분명히 한글인 ‘구ㅣ거ㄹ이’를 목격했다. 그때 나는 한류가 무섭긴 무섭구나 하는 느낌과 동시에, 도기에 새겨진 마구잡이 그리스 글자들의 수수께끼가 풀리는 듯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현상은 짙어져 가기만 하는 것 같다. 한글이 도배된 중국 패션 상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웃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그리스의 명품을 찾는 이태리 사람들의 조상, 에트루리아인들이 눈썰미가 좋긴 좋았던 것 같다. 내가 보기에 고대 그리스의 도기화 중에서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화와도 같은 급의 걸작이, 바로 에우프로니오스(Euphronios)가 만든 이른바 사르페돈 크레이터(Sarpedon Krater)다. 이 걸작품 역시 에트루리아에서 출토되었다. 이 도기는 1973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100만 달러라는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가격에 입수되었는데, 오랜 논쟁을 거쳐 몇 년 전 이태리 정부로 다시 반환된 물건이기도 하다. 불법으로 순환하는 수많은 고대의 유물들을 법적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의 선례가 되었기에 그만큼 유명한 작품이다.

이 에우프로니오스의 명작은 호메로스 <일리아드>의 한 일화를 그리고 있다. 바로 제우스 신의 아들이며 트로이를 도우러 온 리시아의 왕자 사르페돈의 죽음을 섬세하게 다루었다. 아무리 제우스라 할지라도 자기 아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던 그 서글픈 마음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당신의 아들이라고 특별한 대우를 하면 다른 신들에게 어떻게 본보기가 될 수 있겠느냐”라는 헤라의 따끔한 말에 제우스는 말없이 그가 헥토르(Hektor)의 칼에 죽음을 당하는 것을 목격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제우스는 쌍둥이 형제인 휘프노스(Hypnos: 수면의 신)와 타나토스(Thanatos: 죽음의 신)를 보내 전쟁터에서 그의 시신을 수습하여 제대로 된 올바른 장례를 치르게 하였다.

지금 보이는 장면은 죽은 영웅 사르페돈의 거대한 시신을, 날개 달린 신성한 형제 둘이서 “영차! 영차!” 하며 땅에서 막 들어 올리는 순간을 포착한다. 사르페돈의 몸이 우리 쪽으로 쏟아지면서 그의 퍼펙트한 바디가 클로즈업된다. 그리스인들의 거의 광적인, 육체적 아름다움의 추구는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완벽한 육체는 아름답고, 아름다움은 신성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에우프로니오스는 이 순간을 포착하려 했을까? 심포지온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생명의 와인이 담긴 크레이터. 두 아름다운 몸종이 이 와인이 담긴 크레이터를 들고 나온다고 상상해 보자.

헤타이라이 기생들은 최초의 자영업자?


▎난센스 한글이 새겨진 중국 상품들. 이태리 중북부 에트루리아에서도 말이 전혀 안 되는 그리스 글자들이 새겨진 도기들이 출토된다.
다시금 그림을 자세히 보자. 크레이터를 든 몸종들과 사르페돈을 든 휘프노스와 타나토스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이때 영웅의 아름다운 시신을 든 날개 돋은 두 신의 크레이터 도기화 모습과 그 크레이터를 양쪽에서 들고 들어오는 몸종들의 전체적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신화와 현실이 일치되는 시각적 아름다움의 과시다. 그리고 아직도 따스한 피가 흘러나오는 사르페돈의 몸에, 크레이터를 들고 들어오는 두 몸종의 흔들림 때문에 크레이터에 가득 차 찰랑찰랑하는 불그스름한 와인이 주르륵 흘려내렸다고 생각해보라. 디오니소스의 혼이 담긴 와인은 신성한 영웅의 피를 되살리는 신비로운 사실주의로 승화된다. 그 와인의 싱싱한 느낌이야말로 우리의 혈관을 흐르는 생명의 핏줄의 약동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심포지온 도기의 와인을 담는다고 하는 용도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재치 있게 제작한 작품들을 보면 우리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와인을 영웅의 신성한 피에 비유한 에우프로니오스의 작품 못지않게 재미있는 장식법이 있다. 우리는 종종 크레이터나 킬릭스 술잔 내부 테두리를 바닷물에 떠 있는 선박으로 장식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바로 호메로스가 즐겨 쓰는 구절, ‘와인처럼 어둑한 바다(the wine-dark sea)’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와인 잔으로 출렁거리는 바닷물을 직접 들이켜 마시는 기분은 오디세우스를 10년간 방황시킨 그 무시무시한 대양을 디오니소스의 힘을 빌려 정복하는 듯한 대담한 느낌을 표출한 것 아닐까?

심포지온이라 하면 무엇보다도 에로스에 관한 토론이 빠질 수 없다. 플라톤이 주로 논하는 철학적인 각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육체적인 욕구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사랑의 형태와 심포지온과의 관계를 논할 필요가 있다. 앞에도 언급했듯 여성으로서 심포지온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헤타이라이(hetairai)라고 불리는 전문적인 기생이다. 이들에 관해서는 차후에 고대 그리스의 여성들을 다룰 때 다시금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대 그리스의 보수적인 사회구조 때문에 중상류층의 시민 여성들의 개인적인 삶에 관해 우리는 아는 바가 적다. 오히려 헤타이라이 계급의 유명인사들에 관해서 종종 듣는다. 예를 들어 프리니(Phryne)라는 기생은 조각가 프락시텔레스(Praxiteles, BC 4세기)의 애인으로서 역사상 최초의 누드인 아프로디테(Aphrodite) 조각상의 모델이었다. 헤타이라이 기생들은 창녀가 아닌 프로페셔널 엔터테이너였다. 글을 읽고 쓸 줄 알고, 즉석 시를 짓고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를 줄 알았다. 여자로서 이름이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는 유교적인 사상과 상통하는 그리스의 문화 때문에 오히려 이 기생들은 명가의 여성들보다 사회적으로 더 두드러졌다. 심포지온을 나타내는 그리스 도기화에도 자주 등장하곤 한다. 이들이야말로 독립적 삶의 기반을 가진 근대적 자영업자에 가까운 인간들이었다.

유명한 기생들의 이미지 옆에 아가페(Agape), 스미크라(Smikra) 등 그들의 이름도 같이 적혀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스 미술에서 누드는 절대적으로 남자의 영역이다. 보통 여자는 절대로 누드로 표현되지 않지만, 옷을 벗었다 하면 이들은 헤타이라이 혹은 매춘부인 것이다. 여기서 스미크라라는 기생이 3명의 다른 기생과 자기들만의 심포지온을 즐기고 있다. 그녀들은 당당하게 벗은 몸을 전시하며 코타보스(kottabos)라는, 주로 남자들이 즐겨 하는, 아주 인기가 많은 심포지온 게임까지 대담하게 하고 있다.

간다라 불교미술에는 디오니소스가 보인다


▎1. 에트루리아에서 출토된 그리스의 암포라(amphora) 모양의 도기.(BC 550년경 작품) / 2. 에우프로니오스의 명작인 이른바 사르페돈 크레이터. 제우스의 명령으로 휘프노스와 타나토스(죽음의 신)가 트로이전쟁의 영웅 사르페돈의 시신을 들어 올린다. / 3. 킬릭스(kylix) 술잔 내부를 장식하는 바닷물과 그 위에 떠있는 선박. 와인이 담긴 채로 보면 선박이 술 위에 떠다니는 것 같은 시각적인 착각을 일으킨다. 파리 메달 박물관(Paris Cabinet de Medailles) 소장. / 4. 마투라(Mathura)에서 온 양각의 기둥. 내용은 디오니소스적인 색이 짙은 광란의 티아소스를 나타내는 반면, 조각상의
인도 북쪽에서부터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구역의 고대 문명을 우리는 간다라(Gandhara)라고 칭한다. BC 1∼2세기부터 AD 3∼4세기까지 꽃핀 간다라 문명의 미술은 99%가 불교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반도의 고대 미술문명과는 또 다른 느낌의 간다라 미술은 주로 그리스와 로마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경향이 짙다. 이는 분명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대제국의 영토와 맞붙는 영역이었다. 그래서 알렉산더 대왕 이후 그리스의 헬레니스틱 왕국의 지도자들이 이민하여 서양문명의 스타일을 투입시킨 것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몇 세기에 걸쳐서 이루어진 이국문화와 토착문화의 복잡한 교류와 합성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지금 흥미롭게 여겨지는 틀림없는 사실은, 일찍이 꽃핀 간다라의 불교미술에 디오니소스적인 요소가 보인다는 것이다(그림 4 참조).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알려진 금욕적인 불교 사상과 환락을 추구하는 디오니소스적 요소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그런데 와인의 신으로서 디오니소스의 원천이 인도의 고대 베다(Vedic) 문명에서 왔다는 견해도 있다. 와인을 통해 개인의 구원을 바라는 사상은, 어떻게 보면 자아를 잃고 열반에 들어가는 해탈과 궁극적으로 상통할지도 모른다.

외국인들과 몇 세대를 거쳐서 섞여 산 간다라 사람들에게는 자비로운 중성적 디오니소스가 관음보살의 원래 화신 아발로키테스바라와 별로 다르게 보였을 리 없다. 그렇지 않아도 디오니소스적인 광란이 서양적인 내용 그대로, 인도적인 마투라 양식으로 표현된 기괴한 기둥도 있다. 이 조각상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지난달에 살펴본 에우리피데스의 명작 <박카에>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광란의 지경에 이르러 디오니소스를 정처 없이 따르는 여인들. 하지만 이번에는 육감적인 인도 배우들을 기용하여 인도 감독이 연출을 한 모양새다.

김승중 - 서울대학교 천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했다. 프린스턴대 천체물리학과에서는 우주론을, 콜롬비아대학 예술사고고학과에서는 희랍미술을 전공해 각각 박사학위를 받았다. 콜롬비아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전에는 버지니아대학에서 미술사학 석사코스를 밟았다. 이 시기 다양한 현지발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고고학의 생생한 지식을 얻었다. 현재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희랍미술고고학을 가르치고 있다.

201609호 (2016.08.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