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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지혜] ‘돌싱’ 변호사의 이혼 컨설팅 

아빠는 아직 출장 중? 

정은세(가명) 변호사 ycnexa2me@gmail.com
배우자와 갈라선 후 싱글가정에서 내 아이 제대로 키우는 법 ... “지속적인 ‘소통’과 애정 어린 ‘관심’만 있다면 좋은 부모 될 수 있어”
최근 한국사회에 이혼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지만 정작 ‘돌싱 라이프’를 위해 참고할 만한 정보가 전무하다. 필자는 15년 차 이혼전문 변호사로서 직접 이혼을 체험한 ‘돌싱’이다. 이혼 이후 좌충우돌하는 돌싱들을 위해 그가 자신의 직장, 가정 등에서 벌어지는 체험담을 전문가 시각으로 독자에게 들려준다.


▎최근 한국사회에 이혼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지만 정작 ‘돌싱 라이프’를 위해 참고할 만한 정보가 전무하다. 필자는 15년 차 이혼전문 변호사로서 직접 이혼을 체험한 ‘돌싱’이다. 이혼 이후 양육 문제로 좌충우돌하는 돌싱들을 위해 그가 자신의 체험담을 전문가 시각으로 독자에게 들려준다. / 사진·중 앙포토
이혼상담을 하면서 왕왕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남편(혹은 아내)이 이혼가정에서 자랐거든요. 그래서 성격이 소극적이에요. 부부가 행복하게 지내는 방법을 잘 몰라요.” 배우자가 이혼가정에서 자란 탓에 정상적인 결혼생활이 힘들었다고 말하는 경우다. 자신의 자녀도 곧 ‘이혼가정의 아이’가 되는 상황에서 이런 편견이 담긴 주장을 마치 확실한 데이터라도 있는 듯이 해오면 당황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고백하건대 ‘돌싱’인 나부터도 이런 편견을 갖고 있었다. 요즘도 가끔 딸아이를 돌보면서 ‘혹시 나중에 커서 결혼생활을 할 때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될 때가 있다.

이처럼 부모에게 자녀는 언제나 아프고 미안한 존재다. 돌이켜보면 이혼 과정에서 느꼈던 가장 큰 괴로움은 아이의 양육문제에서 비롯됐다. 아이를 아빠와 함께 살지 못하게 했다는 죄책감과 이혼가정이란 멍에를 씌워준다는 부담감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다.

이런 부담감은 이혼 후에도 이어졌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크고 작은 현실의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혼가정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는가’에 대해 마땅히 물어볼 곳이 없었다.

이혼한 사실을 너무 미안해하지 마라


▎국내 비행청소년의 성장환경을 분석한 결과 한부모가정 자녀의 비율이 더 높게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한부모가정 자체가 원인이 아니라 특수한 구조에서 기인된 재정적인 문제 등에서 복합적으로 발생된 수치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 사진·중앙포토
이혼가정, 이혼 후 양육 등을 온라인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봐도 원하는 정보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관련된 책이라도 있나 싶어 서점에 갔다가 겨우 찾은 게 미국의 한 카운셀러가 쓴 책 한 권이 전부였다. 게다가 미국인이 저술한 책이다 보니 우리 현실에 적용하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마땅한 정보 없이 홀로 이혼가정을 이끈 지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좌충우돌한 결과 양육에 관한 노하우가 제법 많아졌다. 과거의 내 모습처럼 이혼 후 고민의 시간을 갖고 있는 돌싱들이 여전히 많을 것이다. 이들을 위해 이번 시간에는 양육과 관련된 팁을 풀어볼까 한다.

한 번은 딸아이가 막장을 치닫는 한 드라마를 보다가 “저렇게 싸울 거면 왜 같이 살아. 그냥 이혼하지”라는 말을 해서 나를 기겁하게 한 적이 있다. ‘혹시 얘가 나 때문에 이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하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최근 몇몇 중고등학생과 이혼에 대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부모의 이혼을 반대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극심한 부부갈등보다는 이혼이 낫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결국 “갈등이 심해지면 갈라서는 게 낫다”는 딸아이의 의견도 요즘 젊은이의 흔한 생각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괜히 나부터가 내 딸이 이혼가정에서 자라서 그런 의견을 갖게 된 것은 아닌지 우려했었다.

나 자신이 자녀를 둔 이혼녀면서도 이혼가정의 자녀는 부정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편견을 은연 중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인 수치만을 보고 이혼가정을 분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비행청소년의 성장환경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부모가정 자녀의 비율이 더 높게 나온다. 하지만 비행청소년의 원인은 한부모가정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한부모가정이라는 구조에서 기인된 재정적인 문제와 기타 원인에서 발생된 수치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한 분석일 것이다.

평소 모범적인 행실로 유명한 몇몇 연예인의 경우 이혼가정에서 자란 이가 많다. 이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어린 시절 한부모 밑에서 자란 탓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지만 양육자가 자녀교육에 열성적인 덕분에 성장과정에서 충분한 애정을 받았다고 한다. 양육자의 관심만 있다면 한부모가정의 자녀도 얼마든지 모범적인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다.

반드시 부모가 아니더라도 이혼가정의 자녀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단 한 명의 열성적인 가족만 있다면 절대 아이는 삐뚤게 자라지 않는다는 게 경험에서 나온 지론이다. 부모여도 좋고 조부모여도 좋다. 삼촌이나 이모, 고모여도 상관없다. 아이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양육자가 있는 한 아이는 분명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이의 장래까지 고려해서 고심 끝에 결정한 이혼인 만큼 단지 이혼했다는 사실만으로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하지 말자.

양육자가 이혼에 대해 위축된 모습을 보이면 자칫 아이로 하여금 자신이 비정상적인 환경에 처했다는 인상을 심어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혼 법정에 가면 양육을 둘러싸고 극과 극의 일이 벌어진다. 앞 사건에서는 서로 아이를 키우겠다고 다투더니 바로 다음 사건에서는 서로 아이를 안 키우겠다고 다툰다. 이때 재판부가 가장 난감해 하는 사건은 부모가 아이를 서로 안 키우겠다고 하는 경우다.

변호사로서 재판 순서를 기다리면서 우연히 그런 광경을 접할 때가 많다. 제 아무리 남모를 속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자기 자식을 안 키우겠다니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반면 서로 아이를 키우겠다고 나서는 경우 법원은 양육환경이 누가 더 좋은지를 알아내기 위해 ‘양육환경조사’를 실시한다. 더불어 부부 양쪽을 심층면접하는 ‘가사조사’도 이뤄진다. 여기서 자녀가 미성년일 경우 ‘그동안 주된 양육자가 누구였고, 지금 누가 양육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된다.

만일 아내가 전업주부였거나 친정의 도움으로 양육을 해온 맞벌이 부부였다면 이혼 후 양육권 획득에 있어서 아내 쪽이 더 유리하다. 때문에 이혼 후 양육권을 갖고자 하는 남편은 이혼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찌감치 자녀를 친가에 맡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주된 양육자였던 엄마 품에서 갑자기 멀어졌기 때문에 심리적인 불안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아내 쪽에서 친정 식구와 함께 시댁을 방문해 ‘아이를 내놓으라’며 한바탕 다툼이 일어나는 일도 벌어진다. 이런 광경을 목격한 아이는 회복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자녀는 물건이 아니다. 때문에 어느 한쪽이 자진해서 양육권을 넘겨주지 않는 한 법원이 개입하는 게 쉽지 않다. 소위 아이를 빼돌리는 경우도 있다. 이때 배우자 간의 감정싸움은 극에 달하게 된다.

이때 자녀를 빼앗긴 배우자는 유아인도가처분신청이나 기타 면접·교섭을 정기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사전처분을 신청할 수 있다.

이처럼 이혼 과정에서 나타나는 양육권 다툼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반면 양육비 문제는 특이하게도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어떻게든 양육비를 적게 내려고 앓는 소리를 내는 비양육자의 모습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주로 상대 배우자가 강조하는 만큼 자신의 월수입이 넉넉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정에서 대부분의 양육자는 한 달에 50만원이라도 좋으니 양육비 지급을 성실히 해줬으면 하는 소박한 요구를 하는 게 전부다.

극히 드물지만 배우자가 양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다섯 살 난 자녀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매년 대기업 연봉 액수에 해당하는 양육비를 주기로 하고 이혼한 경우도 있었다. 아마 그녀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던 게 틀림없고 그녀의 남편은 버거운 조건을 받아들였을 정도로 결혼생활에 질렸던 것 같다. 나중에 남자는 재혼했지만 다달이 지출되는 거액의 양육비 때문에 재정에 문제가 생기면서 또다시 이혼해야만 했다. 삼혼도 같은 이유로 얼마 가지 못했다.

앞서의 사례는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다. 이혼 후 양육을 이유로 일을 하지 않고 생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양육비는 자녀의 생활비 중 절반을 부담하라는 뜻이지 양육자의 생활비까지 포함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전 배우자가 양육비를 주지 않아서 아이를 안 보여주는 걸로 보복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돈은 돈이다. 아이를 위해서는 전 배우자를 만나게 하는 게 여러모로 낫다. 양육비를 안 주는 부모라도 아이를 만나면서는 돈을 쓸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전 배우자가 사준 새 신발을 신고 오거나 손에 책 한 권이라도 받아서 오게 하는 게 못 만나게 해서 10원도 못 받는 것보다 낫다.

‘마음 가는 데 돈 간다’는 말 그대로 요즘 아이들도 양육비를 주지 않는 한쪽 부모에 대해서 부모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양육비는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 표시라는 것을 잊지 말자.

이혼소송에서 배우자를 이겨보겠다는 욕심에 어린 자녀를 끌어들이는 부모도 있다. 이를테면 부모의 결혼생활에 대해 미성년인 자녀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고는 답변을 녹음한 파일을 들고 오거나 심한 경우 자녀를 증인으로 신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리 의뢰인을 대변하는 변호사지만 이런 부모를 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수임료라는 ‘족쇄’를 찬 변호사도 이런 느낌이 드는데 재판부는 오죽할까? 그래서인지 미성년인 자녀를 증인으로 받아주는 재판부를 아직까지 본 적 없다.

배우자와 헤어졌어도 혈육은 꾸준히 만나야


▎일러스트·중앙포토
가정폭력에서 벗어나고자 이혼을 결정한 한 여성 의뢰인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남편의 폭력이 반복될 경우 이혼을 대비해 피해와 관련된 증거를 모으는 데 반해 그녀는 묵묵히 참고 견디며 남편이 뉘우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남편이 중학생 자녀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자 그녀도 어쩔 수 없이 이혼을 결심하게 됐다. 아내가 이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낌새를 눈치 챈 남편은 더 이상 아내는 물론 자녀를 때리지 않았다.

그 남편은 이혼소송에서 아내를 때린 적 없다며 폭행 사실을 강하게 부인했다. 다만 자녀에게 손을 댄 건 술김에 실수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객관적인 증거가 전무한 상황이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자녀의 진술서를 받아 제출하기로 했다. 변호사 사무실로 엄마를 따라 온 아이에게 엄마가 아빠와 이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설명해줬다. 이어 ‘아빠가 엄마를 때린 걸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아이는 진술서에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걸 봤다’, ‘그렇지만 부모님의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아빠에게 폭행당하는 엄마를 보면서도 이혼을 원치 않는다는 딸이 순간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자신도 아빠한테 꽤나 맞고 지냈으면서 여전히 아빠와 함께 살기 원하는 아이의 심정도 이해돼 착잡했다. 진술서를 쓰고 사무실을 나가는 그 아이의 뒷모습이 너무 애처로웠다. 그날 이후 이혼 과정에서 미성년 자녀의 진술서를 받을 때는 신중을 기하고 있다.

아이를 양육하는 쪽에서는 일과 양육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곱절로 힘들어진다. 이혼 전부터 일을 하고 있던 경우는 그나마 낫지만 일을 새롭게 시작한 경우 주된 양육자를 구하는 게 급선무다. 그 때문에 이혼 후 가까운 친족이 있는 곳으로 이사 가는 경우가 많다. 염치없지만 가족의 희생이 동반돼야 이혼 후 양육이 그나마 수월해진다.

비양육자에게는 매달 두 차례 각 1박2일 동안 자녀와의 면접·교섭 시간이 주어진다. 양육자 입장에서는 이 기간 동안 오랜만에 잠을 푹 잘 수도 있고 운동도 할 수 있다. 애인이 있는 경우 마음 편히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가 많이 어린 경우 비양육자와의 면접 초반에는 ‘엄마와 떨어지지 않겠다’며 눈물바다를 이룬다. 아이가 아빠의 차 문을 잡고 “가지 않겠다”며 울고 불면 비양육자인 아빠 입장에서는 ‘이게 뭐하고 있는 짓인가’ 싶을 때도 있다. 어떤 아빠는 “차라리 아이를 안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약 3~4개월 정도 지나면 자연스레 부모와 자녀 모두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게 된다. 그 고비를 넘기는 게 중요하다.

미성년 자녀뿐만 아니라 청소년 자녀에게도 부모의 이혼 후 적응기가 필요한 건 마찬가지다. 엄마와 아빠를 따로 만나는 상황이 낯설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색하다. 때문에 주말에 학원을 가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비양육자와의 면접을 빼먹는 경우도 많다.

초등학생 자녀에겐 이혼사실 숨기는 게 낫다


▎부모의 이혼 후 자녀에게도 적응기가 필요하다. 엄마와 아빠를 따로 만나는 상황이 낯설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색하다. 이때 자녀와의 만남이 서먹해졌다고 해도 부모로서 책임감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여전히 널 사랑해”라고 자주 말해주는 게 좋다. / 사진·중앙포토
갑자기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게 된 자녀의 심정을 헤아려야 한다. 그 때문에 이혼 후 자녀와의 만남이 서먹해졌다고 해도 부모로서 책임감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엄마와 아빠는 비록 헤어졌지만 너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다’는 모습을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 부모의 지속적인 관심은 자녀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우선은 자녀와 점심이든 저녁이든 밥 한 끼라도 같이 정기적으로 먹는 게 중요하다.

외도를 저지른 배우자라고 해서 아이에게 꼭 해가 되는 건 아니다. 현실은 ‘그 따위 사고방식으로 사는 인간이 아이에게 무슨 모범이 되겠느냐’며 자녀를 안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한테는 나쁜 남편이지만 아이에게는 좋은 아빠일 수 있다. 괜한 배신감에 부녀간의 정마저 끊지는 말자. 물론 ‘상간자를 아이 앞에 노출시키는 경우 다시는 아이를 못 보게 하겠다’는 경고 정도는 할 수 있다.

비양육자가 재혼한 경우 기존의 자녀와 연락이 끊기는 일이 많다. 이유인즉 재혼을 통해 얻은 새로운 배우자가 전혼간의 관계로부터 완전한 단절을 요구해오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이혼 상담에서 재혼 후 남편(아내)이 전처와 전처와의 자녀를 함께 만나고 오는 상황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의뢰인이 꽤 많았다. 남편(아내)이 전처를 만난 것을 두고 마치 부정이라도 저질렀다는 듯이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전혼에 자녀가 있는 걸 알고 재혼한 사이라면 전처와의 형식적인 교류 정도는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양육자가 새롭게 꾸린 가정을 지키기 위해 기존의 자녀를 만나지 않는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혈육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새로운 배우자의 성화에 전처와의 자녀를 안 만나기 시작하면 제아무리 핏줄이라도 마음이 뜨는 게 인지상정이다. 때문에 각자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한들 성숙한 어른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게 필요하다.

이혼 후 자녀의 전학을 고민하는 양육자가 많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자녀가 학교에서 겪을 곤란한 상황을 방지하고자 부득이하게 전학을 택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부모의 일로 의기소침해져 있는 아이에게 전학이라는 또 다른 환경적 변화까지 겪게 하는 게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는 염려도 있다.

그러나 경험상 초등학생 자녀일 경우 부모의 이혼사실을 숨기고 지내는 게 사회적으로 더 편하기 때문에 이사를 권하고 싶다. 요즘 아무리 이혼이 흔해졌다 하지만 막상 학교 안을 들여다보면 아직은 이혼가정이 적은 편이다.

게다가 아이의 특성상 어릴수록 과장 섞인 가족 자랑이 많은데다 이혼가정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학부모 모임에 낄 수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혼을 숨기는 게 낫다. 이혼 전에 결혼사진과 가족사진을 챙겨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훗날 학교에서 가족과 관련된 과제를 내줄 경우 요긴하게 쓸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어릴수록 ‘이혼’이란 말을 애초에 언급하지 않는 게 좋다. 학교에서 무심결에 아이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경우 상황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자녀에게 이혼 사실을 영원히 숨기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엄마와 아빠가 사정이 있어서 같이 못살게 됐다는 취지로 완곡하게 설명해주는 게 좋다.

부모 한쪽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식의 거짓말로 이혼 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꽤 있는데 이는 결국 아이를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되도록 긍정적인 핑계를 만드는 게 좋다. “아빠가 장기간 외국 출장을 갔다”는 핑계를 추천한다. 다만 중고등학생 자녀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혼을 이해할 정도의 정서적인 성숙이 이뤄졌고 아직 부모보다는 친구가 더 중요한 시기다. 또한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굳이 무리해서 전학을 진행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녀와의 소통이다. 나의 경우 딸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까지 특별히 아빠 얘기를 꺼낸 적이 없어서 부모의 이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굉장한 착각이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빠 얘기를 간간이 꺼내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에서 친구들의 아빠 얘기를 들으면서 궁금한 게 늘어난 것 같았다. 그때마다 “엄마랑 아빠는 서로 맞지 않아서 함께 살지 않지만 아빠는 여전히 널 사랑해”라는 말로 당혹스러운 순간을 넘기곤 했다.

“아빠는 여전히 널 사랑해”


▎사진·중앙포토
“엄마, 성격 때문에 이혼한 거지?” 한번은 딸아이가 전혀 예상 못한 말을 했다. 평소 차갑게 보이는 인상 때문에 ‘저 여자는 빈틈없을 거다’라는 오해를 받고는 했지만 막상 내 딸이 그렇게 말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섭섭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제 아빠에 대해 좋게만 얘기했더니 얘가 이러나?’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전 배우자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미우나 고우나 아이의 아빠이지 않은가? 자녀가 아빠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도록 돕는 게 현명한 처사다.

딸아이의 느닷없는 말은 이어졌다. 어느 날 밤 자려고 불을 끄자마자 아이가 대뜸 “아빠랑 같이 살면 안 돼?”라며 꿈에도 생각 못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 무렵 전 배우자의 재혼 소식을 들었던 터라 재빨리 심호흡을 하고서는 차분하게 답했다.

“정말 미안하다. 그건 불가능해. 왜냐하면 아빠가 재혼을 했어.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엄마는 아빠랑 같이 살 생각이 없어. 미안하다.”

그때 딸아이가 돌아누우며 눈을 쓱 훔치는 걸 보고 말았다. 이혼 때문에 애가 울음을 터트린 건 처음이었다. 그날 밤 가슴속이 면도칼로 사정없이 긁어지는 듯 아리고 쓰려서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덟 살 아이에게 이혼가정이라는 사실은 아프지만 현실이었다.

우리사회에서 재혼과 이복형제의 존재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때문에 지금도 나는 딸아이에게 이복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가 대학생이 됐을 때 말할 생각이다. 그때 즈음에는 우리사회의 인식도 많이 바뀔 거라 기대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아이와 여행을 떠나라


▎이혼은 배우자와의 이별에 불과하다. 자녀와는 여전히 끊을 수 없는 가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새로운 환경으로 인해 혼란스러울 자녀에게 필요한 건 바로 부모와의 소통이다. 이혼 후 아이와 장기간 여행을 떠나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국에서 자연스레 소통의 시간을 가져보자. / 사진·중앙포토
일련의 과정을 겪은 후 현재 딸아이는 아빠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부모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이혼에 이른 상황도 어느새 이해하게 됐다. 요즘에는 또래친구와도 가족에 대한 얘기를 자연스레 해가면서 잘 지내고 있다.

물론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아빠는 출장 중’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 때문에 애가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 발 더 나아가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이상적인 남편상’을 조목조목 대는 걸 들으면 나보다 낫다는 생각도 든다. 이혼 후 양육자는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함께해야 한다. 여자라 해서 몸 안에 남성 호르몬이 없는 게 아니다.

친정엄마가 주된 양육자가 되어 아이를 키워줬기 때문에 집안에서 자연스레 아빠 역할을 맡게 됐다. 일 때문에 늘 늦게 들어오지만 주말이면 아이와 같이 뒹굴면서 지내려고 애쓰고 있다. 평소 신문을 정기구독하면서 사회나 경제에 대해서 쉽게 가르쳐주려고도 노력한다.

아이와 장기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이혼 후 양육에 도움이 되는 좋은 방법이다. 이국에서 장기간 여행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소통이 늘 수밖에 없다. 우리 모녀는 1년에 한 번 이국으로 떠나곤 한다. 여자 둘만 다니는 여행이어서 두려운 점도 있지만 내게 의지하던 아이가 어느새 제법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가는 모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이다.

평소 딸아이에게 “너도 엄마를 도와줘야 해. 엄마는 남편이 없어 혼자 일을 처리해야 하거든”이라고 솔직히 말하고 있다. 우리 가족에는 남편만 없을 뿐 아빠가 없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실상 아이 입장에서 동거하지 않을 뿐이지 아빠가 없는 건 아니니까.

같이 안 산다는 것과 없다는 건 어감이 하늘과 땅 차이다. 형식이 개념을 규정한다고 했다. 아이에게 공연히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싱글 가정이 태반이 될 미래를 대비해서라도 이런 모습은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평소 애 앞에서 무거운 물건을 번쩍 들거나 가전제품 관리도 간단한 건 혼자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남자가 없는 생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 여자들만의 세상인 ‘아마조네스 왕국’이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에궁, 남자가 없으니 이런 건 아쉽네”라는 생각이 안 들도록 애쓰고 있다.

최근 한 원로 배우가 자기 밥 한 그릇 못 챙겨먹는 남편과 아들 둘을 보고 “‘내 이놈의 집구석, 올해 김장만 담가주고 나가리라’ 결심했는데, 벌써 칠십이 넘도록 못 나가고 있다”는 말하는 것을 듣고 박장대소한 적이 있다.

그녀는 재미있게 표현했지만 실상은 가정을 안정적인 분위기로 만드는 데 일생을 노력한 것이다. 만일 자녀가 가정으로부터 안정감을 얻지 못했다면 훗날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엄마는 왜 이혼하지 않았어요?”

부모라면 세상의 편견 따위 무시하고 내 아이가 원하는 가정을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 이혼가정의 자녀로 만드는 게 두려운가? 아이에게 이혼가정을 만들어준 게 잘못이 아니라 이혼을 하고서도 이전과 다름없는 불안한 환경을 지속시킨 것, 바로 그게 잘못이다.

형식보다는 본질이 중요하다. 이혼가정의 자녀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 정은세(가명) 변호사 ycnexa2me@gmail.com

201610호 (201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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