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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중 교수의 ‘그리스 문명의 결정적 순간’(7)] 그리스 올림픽의 이상은 무엇인가 

체육과 에로스, 정신과 육체의 조화 추구했다 

김승중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희랍미술고고학 교수
경쟁을 통해 단결을 도모한다는 개념도 중요한 목표… 현대 올림픽 정신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이상으로 뚜렷이 각인돼

▎고대 올림피아 (Olympia)의 모습을 재현한 일러스트레이션. 가운데 큰 건물이 유명한 제우스의 성전이고 오른편에 달리기 경기장인 스타디온(stadion), 그리고 언덕 밑에 지어진 부채 모양의 극장도 저편에 보인다. / 사진제공·김승중
그리스인들은 체육의 목적을 단순히 군사적 목적을 위한 신체의 단련에만 두지 않았다. 개성의 발전, 신체의 균형, 건강의 유지라는 목표를 관철했다. 개인은 올림픽을 통해 미적 이상의 실현을 꿈꾸었고, 그 이상은 공동체 유지에 필수적인 경쟁과 단결의 의지로 연결되었다.


▎현대 올림픽의 금메달은 여지없이 올림피아에 현존하는 니케 여신상을 선보인다. / 사진제공·김승중
2016년 8월 10일, 아직도 곤히 잠든 서울의 시계는 어둑한 새벽 5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일찌감치 깬 몇몇의 시청자는 올림픽 중계방송을 통해 지구 반대편 브라질의 리우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앳된 모습으로 관중을 사로잡은 스물한 살의 박상영 선수가 펜싱계의 백전노장 임레 게저(헝가리)와 맞서, 개인 에페(Epee: 상대 선수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부분이 표적으로 찌르기만 가능한 경기다) 부문 금메달 결승전의 마지막 몇 분을 남긴 채 분투하고 있다. 현재 점수는 14대 10. 단 한 점만의 찌르기로 승패는 갈리게 될 위기의 순간. 신출내기 박상영은 노련한 거장 임레에게 금메달을 건네주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두 선수가 동시에 찔러도 15 대 11로 결국 금메달은 임레의 차지가 될 것이다. 누가 보아도 결과는 뻔한데, 이 형언할 수 없는 조바심은 왜 우리를 사로잡았던 것일까?

그런데…. 한 점, 두 점, 박상영 선수가 기막히게 날렵한 동작으로 꾸준히 한 점도 내주지 않고 따라잡는다. 14대 13. 이번에 KBS 해설위원을 담당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최병철 선수의 흥분된 목소리가 귀청에 울린다. 14대 14! 믿기지 않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최병철 해설위원은 고함친다: “아아악! 막고 찔렀어! 막고, 막고 찔러써으~!” 눈깜짝할 사이에 14대15로 역전승을 거둔 박상영 선수! 그리고 그를 향해 피 터지는 환성을 지르며 이성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아니! 이게, 이게? 이게? 어떻게, 말이 됩니까… 아아아악! 빡 쌍여-엉 그메다-알! 기적이에요 기적!”이라고 외치는 최 위원의 쉰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울컥 솟아나는 야릇한 감정이 북받쳤다. 울며 웃으며 온 세계와 함께 이 기막힌 승리를 목격했다. 그것은 불가능한 드라마였다. 그 순간 나는 우리나라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웠고, 박상영 선수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고, 당사자보다도 더 흥분한 최 위원이 나와 같은 마음을 표현한 것에 대해 무궁무진한 친근감이 느껴졌다.

능력과 우월함을 과시하는 장엄한 장(場)


▎파이오니오(Paionios)는 BC 420년경에 아테네의 동맹도시국가들이 스파르타를 물리친 전투를 기념해 만든 석상이다. 머리, 날개, 그리고 펄럭이는 망토 등이 손상되었다. / 사진제공·김승중
200여 개국이 참가한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을 지켜보면서 새삼 한 나라의 국민을 연합시키는 운동경기의 엄청난 파워를 목격했다. 펜싱 에페 부문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박상영 선수의 기적적인 역전승처럼, 근대 올림픽 100여 년 역사상 얼마나 많은 하이라이트의 모멘트가 있었을까? 허물없는 기쁨의 순간들, 자기나라 선수를 응원하는 국민들의 계산되지 않은 순수한 지지의 감정, 그리고 자국에 영광을 안겨주기 위해 열심히 뛰는 선수들, 이 모두가 국제적인 무대에서 연대의식을 조성하며, 국내의 애국적인 단결심을 돋우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경쟁을 통하여 단결을 도모한다는 개념 또한, 근 3000년 전 고대 그리스에 원천을 둔 고대 올림픽 경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BC 776년에 처음으로 기록된 올림픽 경기는 4년마다 한 번씩 올림피아(Olympia: 올림푸스산이 있는 곳이 아니고,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북서쪽 엘리스 지역에 있다)에 있는 제우스 신의 성역(Sanctuary of Zeus)에서 일어나는 행사였다. 고대 그리스 전역의 도시국가들이 참가하는 범 그리스적인 4대 경기 중 가장 중요한 행사였고, 올림피아 제전이 행해지는 4년의 시간단위를 올림피아드(Olympiad: 역사가들의 시간 계산의 한 방편으로 활용된다)라고 불렀다. 많은 고대 문서에 올림피아드로 연대를 표기하였고, 엄격히 따지면 2016년 리우올림픽은 699번째 올림피아드인 셈이다. 나머지 세 개의 범 그리스적 경기는 바로 헤라클레스의 12과업 중 제일 첫 번째로 사자를 맨손으로 졸라 죽인 곳인 네메아(Nemea)에서 행해지는 네메아 제전(Nemean Games), 아폴로의 신탁으로 유명한 델포이(Delphi)에서 행해지는 피티아 제전(Pythian Games), 그리고 코린트(Corinth)에서 행해지는 이스미아 제전(Isthmian Games)이었다.

이 경기들은 올림픽 경기가 벌어지지 않는 3년 동안 돌아가며 행해졌다. 운동선수들은 해마다 그리스 곳곳을 찾아가며 끊임없이 범 그리스적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운동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선수들이 차츰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범 그리스적 경기에 참가하는 이들 중 대부분이 귀족출신의 젊은 청년들이었고(혹은 부문에 따라 30~40대의 중년층 남자도 참가했다), 승자 기록에서 지도층 계급이 차지하는 비율이 큰 것으로 볼 때, 우리는 체육이 얼마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이상으로 추구했던 귀족적인 탁월함을 상징하는지 알 수 있다.

현대 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가 추대받는 것 이상으로 범 그리스적 제전의 승자들은 자신의 도시국가에서 진정한 영웅의 대접을 받았다. 한 도시국가의 시민으로서 올림피아 제전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더 높은 명예를 얻는다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 이러한 제전들은 전 그리스의 도시국가가 모여서 자신들의 능력과 우월함을 과시하는 장엄한 장(場)이었다. 제우스 신의 종교적인 절대성의 명분으로 설정된 올림피아의 성스러운 공식적인 무대에서 일어나는 평화로운 경쟁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바로 ‘아곤’ 즉 경쟁이다. 고대 그리스 문화가 아곤적(agonistic)이라 함은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극도의 경쟁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아곤의 근원은 궁극적인 이상인 ‘아레테’ 즉 월등함(excellence)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덕(德) 혹은 ‘버어추(virtue)’는 동양적인 개념과는 달리 이러한 아레테적인 우월함과 상통한다. 플라톤이 말하는 미학적인 아름다움과 도덕적인 선의 관계도 이와 관련해서 이해할 수 있다. 육체적인 아름다움과 월등한 능력이 최고의 선(善)이라는 개념은 언뜻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성형을 고집하는 미의 컬트가 만연한 우리 사회야말로 이러한 서양의 근본적인 이상이 왜곡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병역면제 특권 부여의 아이러니


▎올림피아에 아직도 보존되어 있는 조각상 베이스들 중 하나. 승자의 모습을 한 조각상을 받치는 역할을 했다. 보존된 비문에는 선수의 이름 줄리안, 출신 도시국가 아테네, 그리고 그의 업적 등이 기술돼 있다.
여하튼 올림피아 제전에서의 승리의 소식은 각각의 도시국가로 신속히 전달되었고, 귀국하는 승자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즉각 시행되었다. 돈과 상품을 부여하는 경기들과는 달리 올림픽 승자들에게는 단지 올리브의 잎사귀로 엮은 화환을 선사하였지만, 이는 현재의 금메달 같은 명예로운 상징물이었다. 또한 니케 여신(Nike: 날개가 달린 승리의 여신)이 몸소 두 팔로 껴안으며 축복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신호이기도 했다. 이들이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행렬은 적군을 물리치고 귀국하는 로마황제 못지않은 환대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평생 많은 공식적인(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인) 특권을 누렸다. 어디를 여행해도 이러한 VIP 대접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현대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고대 운동 경기에서 우승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전쟁터에서 승리하는 것과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남성 이상형의 쌍벽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쟁 중의 경쟁은 싸움을 통해 군사적 전투력을 선보이는 반면, 평화 중의 경쟁은 운동경기를 통해 아레테를 달성하는 것이다. 모든 승자는 궁극적으로 아킬레우스(Achilleus)와 같이 영웅적인 클레오스(영광)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기에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병역면제의 특권을 부여하는 한국의 정책은 엄밀히 말하자면 올림픽의 본 정신에 어긋나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오히려 클레오스를 이룰 수 있는 기회의 권리를 박탈하는 어처구니가 없는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이런(Myron)의 디스코볼로스(Discobolos). 영국박물관 소장품으로 원반을 던지기 직전의 카이로스를 포착했다. / 사진제공·김승중
범 그리스적 제전의 승자는 그들의 업적을 찬양하는 문학과, 그들의 완벽한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미술 작품들을 통해 불멸의 클레오스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대 제전에서 우승한 귀족층을 위해 찬승시를 지은 것으로 유명한 핀다로스(Pindaros, BC 522~BC 443: 고대 그리스의 가장 위대한 서정시인)는 그들의 업적을 신화적 맥락에 견주어 영웅으로 추대하였다. BC 6세기 말 이후로는 인간을 소재로 다루는 대부분의 조각상이 운동선수를 나타낸다는 점도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만큼 그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뜻이겠지만, 그러한 의미 이전에 승자의 조각상을 세우는 일은 종교적인 임무임과 동시에 정치적인 필연이었다. 한 교훈적인 일화가 전하기를 돈이 없다는 핑계로 올림픽 승자의 조각상을 세우지 않은 결과로, 그 이후 11 차례의 올림피아 제전에서 그 도시국가는 수많은 선수를 보내었어도 한 번도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음 승자의 조각상을 꼭 바치겠다고 신들에게 맹세를 한 뒤에서야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운동선수의 모습을 한 전신 조각상은 자신의 도시국가 고유의 성전에 감사의 뜻으로 바쳐지기도 하고, 올림피아 성역에 경기를 관할하는 제우스 신에게 바쳐지기도 하였다. 그것은 가문의 영광과 도시국가의 명성을 드높이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올림포스의 신들의 총애를 얻기 위한 행위이기도 했다. 로마시대 때의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Pausanias: 2세기 때의 희랍인 여행가)가 그의 <그리스의 기행록>에 전하기를, 올림피아에서 한때 3000여 개의 승리자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기행록 제 6권에서, 이 3000여 개의 조각상 중 그가 방문했을 때 눈에 띠었던 200여 개 조각상을 자세히 서술하며, 그 인물들의 업적을 기록하고 그것을 조각한 아티스트들을 거론한다.

이 중 퀴니스카(Kynisca, BC 440년 출생)라는 스파르타 공주의 동상도 언급된다. 이륜전차 경기부문에서 두 번이나 우승한 그녀는 말을 직접 몬 것이 아니었을지언정, 올림픽 역사상 공식적으로 최초의 여성 승리자로 기록되었다.(올림픽 게임에서 여성은 선수로서도 관객으로서도 제외되었다는 것이 사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스파르타에서는 여성이 적극적으로 운동 경기에 참여했다. 퀴니스카의 기록은 그 전차의 소유자로서 언급된 것이지만 올림픽 역사상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올림픽과 고대 그리스 미술은 어떤 관계?


▎폴리클레이토스(Polykleitos)의 도리포로스(Doryphoros). 로마시대 대리석 사본으로 왼손에 든 창은 본래 청동으로 만들어 따로 끼워 넣었다. / 사진제공·김승중
불행히도 올림피아에 세워졌던 올림픽 승자의 조각상들은 단 한 점도 현존하지 않지만, 그 많은 조각상을 지탱했던 몇몇의 베이스(base)들이, 본래 새겨진 비문과 함께 전해진다. 그리고 BC 5세기경부터 운동선수를 조각한 유명한 명작들이 수많은 로마시대 사본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정도 그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런(Myron, BC 480~BC 440 활동: 희랍의 조각가)의 유명한 <디스코볼로스(Discobolos: 원반 던지기 선수)>라 불리는 전형적인 남성적 체형미가 넘치는 다이내믹한 동작의 누드가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다. BC 450년에 조각된 마이런의 디스코볼로스는 그리스 미술 역사상 처음으로 신체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시공간의 세부적인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드는, 미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작품이다. 쿠우로스라 불리는, 뻣뻣한 차렷자세로 근 200년간 동안 변함없이 표현되었던 남자 누드 석상들에 반해, 디스코볼로스라는 동상은 브론즈(bronze)라는 재료의 유연함을 이용하여 드디어 시간을 초월한 불변의 틀을 깨고, 명확한 순간의 포즈를 구체화했다.

바로 이때 철학자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BC 515 경 출생)의 제자인 엘레아의 제논(Zeno of Elea, BC 490~BC 430)이 그의 유명한 역설 (Zeno’s Paradox)을 제시하였던 것도 우연이 아닌 듯싶다. 수학적인 방법론을 이용하여 운동 불가능론을 지지한 그는 시공간을 무한정 세분하는 방식으로 결국 아킬레우스가 아무리 빨라도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부조리를 제시한다. 마이런의 작품에 나타난 순간은 언뜻 보아서는 원반을 돌릴 대로 돌려 수축된 스프링처럼 탕하고 튀어나가기 직전의 특정한 시각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반을 던지는 이의 움직임을 자세히 분석해본 결과, 여러 순간순간의 모습이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시공간의 구조와 움직임, 또는 변화와 불변의 본질을 탐구하는 경향이 BC 5세기 중반에 걸쳐 철학과 미술에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참으로 흥미진진한 현상이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의 다비드상도 저리 가라고 말할 수 있는, 실로 서양 미술사의 근원을 이루는 폴리클레이토스의 BC 430년경의 작품, <디아두메노스(Diadoumenos: 머리띠를 묶는 자)> 또한 고대 그리스 미술사의 대 히트작이다. 경기를 끝마친 운동선수가 자신의 머리둘레에 디아뎀(Diadem)이라 불리는, 승자를 표시하는 머리띠를 바짝 조여 묶는 동작을 하고 있다. 마이런의 디스코볼로스처럼 화려하고 다이내믹한 액션이 일어나는 과정을 그리지는 않았다.

폴리클레이토스의 디아두메노스는 경기가 모두 끝난 후 가장 보편적인, 편안하고 자연스런 포즈를 취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느낌으로 디아뎀을 묶는 아주 상징적인 동작을 보여준다. 이 자연스럽다는 포즈는 몸의 무게가 한쪽 다리 위에 치우쳐 있어 엉덩이가 씰룩거리며 어깨가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이른바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의 형상이고, 이것이 바로 나중의 르네상스 미술의 기본형태라 할 수 있다.

더구나 폴리클레이토스는 이 조각상과 또 이 조각상과 쌍을 이루는 도리포로스(Doryphoros: 창을 든 자)를 만들었는데 그의 저서 <카논>에 설명된 미학론을 실제로 예시하기 위해 조각했다고 전한다. 그는 조각가인 동시에 서구 미술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미학 이론가로 꼽힌다. 그의 <카논>은 한마디로 말해서 가장 이상형인 남성의 모든 구체적인 신체 비율을 묘사한 논문이다. 현대 용어인 ‘캐논(canon)’이 표준형, 또는 기준이나 규칙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다름 아닌 이 폴리클레이토스의 저서 제목에서 비롯됐다. 제일 작은 단위인 손가락 마디마디부터 시작해서 손바닥, 팔뚝, 어깨, 그리고 전신의 모든 부분의 비례관계를 자세히 적어놓았다고 한다. 이 논문은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지 않고, 다른 작가들이 짤막하게 언급하는 내용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백 번 듣기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고 하지 않는가?

다행히도 폴리클레이토스의 업적은 이 두 조각상의 100여 개의 로마시대 사본들을 통해 그 형태나마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남성 이상형을 그린 두 작품 중, 하나는 경기에서 승리한 운동선수, 하나는 창을 든 전투사라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전투와 운동은 마치 한 동전의 양면처럼 고대 그리스인들이 추구하는 이상의 쌍벽을 이루는 활동이고, 이 두 가지 활동을 말 그대로 미(美)의 표준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스 도기화에 자주 보이는 구성도 바로 이런 패턴을 보인다. 한 면에는 전투하러 나가기 위해 갑옷을 입고 무기를 준비하는 장면이 보이고, 반대 면에는 운동경기를 위해 훈련을 하고 있는 장면이 선보여지고 있다. 이런 양식이 반복되면서 전하는 메시지는 더더욱 뚜렷해진다.

승리한 운동선수, 창을 든 전투사가 상징하는 것


▎폴리클레이토스(Polykleitos)의 디아두메노스(Diadoumenos). 로마시대 대리석 사본으로 승리의 머리띠인 디아뎀(Diadem)을 묶고 있는 운동선수다. / 사진제공·김승중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첫 번째는 아름다움의 정의와 수학과의 관계다. 제논이 그의 패러독스를 통해 제공하는 아이디어들이 마이런의 원반 던지는 선수에 표현된 시공간의 개념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면, 폴리클레이토스의 <카논>과 그 논문의 화신인 도리포로스와 디아두메노스는 그 당시 유행하던 수학적 신비주의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우리 귀에 익은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70~BC 495)라는 인물이 바로 BC 5세기경에 유행한 이러한 경향의 주도자라고 말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는 이오니아의 사모스 사람으로 사모스의 독재를 피해 이탈리아 남단의 크로톤(Croton) 지역에서 매우 독특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공동체의 컬트의 교주 노릇을 한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인물이다. ‘피타고라스 학파’라고 불리는 그의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들어 수학적인 아이디어들을 전파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그들이 바로 ‘수학’이라는 분야를 최초로 개발했으며, 수학적인 원칙이야말로 모든 사물의 원칙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이러한 수학적인 사고방식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정확성을 상징하며, 종교와 신비성에는 상반된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피타고라스 학파의 일반 성향은 불교의 윤회원리와도 같이 환생을 믿고 채식주의를 고집했으며, 콩을 안 먹는 등 해괴한 터부를 고수했다. 수학적 비례를 원리로 하는 음악의 신비로움과 영혼에 관한 많은 이론을 제시했다. 숫자가 상징하는 추상적인 개념을 종교적으로 숭배했던 것이다. 오르페이즘이 디오니소스 컬트의 개혁운동이었다고 한다면 피타고리아니즘은 오르페이즘의 개혁운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버트란드 러셀이 피타고라스를 지목하여 아인슈타인과 미세스 에디(Mrs. Eddy, 1821~1910: 미국 동부 크리스챤 사이언스의 창시자로 신비로운 종교가)를 짬뽕한 인물이라고 평한 것은 매우 시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여튼 이러한 배경으로 볼 때, 극도의 아름다움이 정확한 수학적 비례로 표현될 수 있다는 집착적인 견해가 그 당시의 미학사상을 휩쓸었다는 사실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종교적인, 철학적인 믿음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파르테논 신전의 건축을 자세히 논할 때 다시금 이러한 아이디어를 설명하겠지만, 서양 건축사의 가장 기본적이고 퍼펙트한 미를 선보인다는 파르테논 신전이야말로 그 수학적 신비성의 완벽한 본보기이다.

올림픽 경기는 나체로 진행했다


▎원반던지기를 연습하는 운동선수와 갑옷을 입고 전투준비를 하는 전사가 각각 도기의 반대쪽을 장식하고 있다. 뮌헨 고고학 박물관 소장. / 사진제공·김승중
두 번째로 논해야 할 주제는 바로 ‘누드(Nude)’에 관해서다. 도대체 왜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이며 도기화에 표현된 사람들이 모두 벌거벗은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제일 직접적인 대답은 바로 운동선수들이 실제로 벌거벗고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운동은 나체로 하는 것이라는 관습이 그리스인들에게는 확고하게 확립되었고, 그러한 이유로 여자는 운동을 하기는커녕 관람하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앞서 말했듯이 스파르타는 예외다) 하지만 이륜전차경기는 나체로 행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이 법칙에서 제외되었다.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모든 도시국가 중 유일하게 여자들에게도 교육과정에서 운동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고대문헌 등에 의하면 강한 전사를 낳기 위해서 몸을 단련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하여 스파르타의 공주 퀴니스카가 바로 이 부문에서 마부(charioteer)를 고용하여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허리가 높고 긴 원피스 같은 의상을 입은 ‘델포이의 마부’라는 유명한 동상이 바로 델포이의 피티아 제전에서 이륜전차 부문의 우승을 하고 세운 기념물인 것이다.


▎델포이의 마부(Delphi Charioteer)로 불리는 동상 원본. BC 478년 또는 BC 474년에 행해진 피티아 제전의 우승자인 젤라의 폴리잘로스(Polyzalos of Gela)일 가능성이 높다.
비싼 재료값 때문에 거의 살아남지 못한 동상들은 가끔 조난선에서 해양 고고학적으로 발굴되지만, 이렇게 땅에서 범 그리스적 성역에서 온전하게 발굴된 것은 델포이의 마부가 유일하다. 이 동상도 BC 5세기 초의 리얼리즘을 자연스럽게 과시하는 작품으로서, 미술사학적으로 아주 유니크한 위치를 차지하는 걸작이다. 그러나 동시대에 만들어진, 시실리의 서해안의 자그마한 섬에서 발견된 <못지아의 마부(Motya Charioteer)>도 같은 주제를 나타내지만, 그 섬세한 표현의 기술이 걸출하다. 이 못지아의 마부는 어느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디테일한 미감으로 창작되어, 델포이의 마부가 부러워할 정도로 섹시한 우아함을 자랑한다. 란제리를 입은 여인과도 같은 몸매가 오히려 나체보다도 더 섹시하다는 의견이 바로 못지아의 마부의 경우에 딱 들어맞는다. 쭈글쭈글한 옷감이 몸에 착 달라붙어서 근육의 곡선 등이 에로틱하게 비쳐 보일뿐더러, 허리에 찬 손이 보들보들한 살 속으로 포옥 눌러 들어간 자리를 보면, 살아 숨쉬는 아이돌을 보는듯하여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런데, 이 모든 미술적인 업적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바로 에로스(Eros)다. 못지아의 마부의 경우가 옷을 입고서도 섹시함을 추구하듯, 남성의 나체를 끊임없이 갈고 닦아 이상형의 모습으로 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에로스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 사회에 만연한 동성애의 개념을 우리는 새삼 제대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파이데이아(paideia: 폴리스의 이상적 멤버를 교육시킴)라고 하는 고대 그리스의 교육과정은 머리를 키우는 공부와 육체를 기르는 운동이 동시에 어우러진 프로그램이고, 귐나지온(gymnasion)이라 하는 학교와도 같은 곳에서 에페베(청소년을 일컫는 그리스 용어)들이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학자들도 이 귐나지온에서 그들의 지식을 가르쳤다. 귐나지움에 가장 중요한 공간은 팔라이스트라(palaestra)라고 하여 기둥으로 둘러싸인 운동장 같은 공간이었고, 여기서 레슬링과 복싱을 주로 연습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은 나체로 훈련을 하였다고 하여 귐나지온이라는 용어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리스 문명과 ‘동성적 에로스의 컬트’


▎폼페이(Pompeii)에 보존된 그리스형의 운동 연습장인 팔라에스트라(palaestra).
귐노스는 ‘나체로’라는 형용사이며 귐나조는 ‘나체로 훈련하다’라는 동사이며, 귐나지온은 ‘나체로 훈련하는 곳’이라는 뜻인 것이다. 체육관이나 헬스클럽이 바로 영어로 짐(gym)이라 불리는 것이 바로 ‘나체 훈련’의 뜻이다. 기계체조(gymnastics)도 엄밀히 말하면 ‘나체로 하는 체조’라는 뜻이다. 고대 문헌에서 가끔가다 동네의 음탕한 노인네들이 이 귐나지온의 담을 넘어 이 청소년들의 매끈한, 운동으로 단련된 아름다운 나체를 훔쳐보며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종종 발견된다. 그리고 지난 회에서 그들의 술 파티인 심포지온(symposion)을 논하면서 잠시 성인남자와 청소년 사이의 동성애 관계를 살펴보았는데, 이 동성 간의 사랑의 관계가 플라톤의 에로스 이론에서는 가장 높은 형태의 사랑이며, 남자 아이의 교육 과정으로 볼 때도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다. 에로테스(Erotes: 사랑을 하는 자)라고 불리는 스승과도 같은 신분을 가진 어른이 에로메노스(Eromenos: 사랑을 받는 자)라 불리는 청소년을 제자로 삼는 지적인 관계가 에로틱한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현대의 사회에서는 물론 완전히 터부(taboo)인 관계이지만.

어떻게 보면 고대 그리스 문명은, 그 전반에 걸쳐 ‘동성적 에로스의 컬트’가 주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대 그리스만큼 여성의 존재성이 불투명한 문명도 참 찾아보기 힘들다. 운동도 그러하고, 군대에서도, 동성애가 짙은 상황 속에서 서로서로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고 생각되었다. 동성애야말로 더 열심히 싸우는 군인들을 양성하는 좋은 결과를 초래한다고 이해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보편화된 에로스의 개념을 빼고 미를 논한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리고 젊음의 컬트(cult of youth) 또한 이러한 선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한창 젊어서 아름다운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영광으로 생각한 것도 그리스인들이다.


▎못지아의 마부(Motya Charioteer) 대리석 원본. 델포이의 동상과는 달리 마부의 옷을 입었는데도 에로틱한 긴장감이 감도는 작품이다. / 사진제공·김승중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클레오비스와 비톤(Kleobis and Biton)이라는 형제의 애틋한 이야기가 그러하다. 아르고스(Argos)의 두 형제는 헤라(Hera)의 여사제, 키디페(Cydippe)의 아들들이다. 헤라 여신의 페스티벌에 참여하러 여행하는 도중, 어머니의 수레를 끌던 소들이 쓸어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그들이 수레를 몸소 8㎞가 되는 거리를 끌고 갔다고 한다. 아들들이 너무 기특했던 나머지 어머니는 헤라에게 유한자인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은혜를 내려달라고 간절한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잔치가 끝난 뒤 피곤하여 곧 성전 안에서 잠이 든 이 두 형제는 그날 밤으로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가장 뛰어난 신체를 지닌, 가장 엄청난 업적을 행한 바로 직후에 즉사한 것이다. 늙지 않고 그 상태로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영광을 맞이하였다는 것인데, 정말 이상한 사고방식이라 생각될 것이다.

아르고스 사람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델포이에 두 형제의 석상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로 1900년대 초에 델포이에서 쌍둥이 형제와 같은 조각상들이 발견되었고 아르고스에서 바쳤다는 비문도 같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강건한 신체가 아르케익 스타일(Archaic Style)로 표현되고, 어김없이 이들은 신체를 자랑하는 누드상이다. 2600년 이후에 델포이 박물관에 자기만의 방을 차지하고 있는 아르고스의 형제들은 죽은 그 순간에 불멸의 영광을 선사받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고대 그리스 운동 경기를 생각하면 수많은 도기화에 표현된 훈련장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의 주인공은, 심포지온에서 쓰는 술잔을 장식하고 있는 멀리뛰기 선수다. 공중에서 사지를 끝까지 뻗쳐 내려앉기 직전의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을 포착했다. 멀리뛰기는 다른 육상종목인 원반던지기(discus throwing)와 장대 던지기(javelin throwing)와 더불어, 단독 부문인 단거리 달리기(stadion)와 레슬링(wrestling)과 함께 펜트아틀론(pentathlon, 5종 경기)이라는 종목을 이루었다. 다섯 개의 경기라는 뜻으로 수영, 펜싱, 사격, 말타기와 장거리 달리기 등으로 이루진 모던 펜트아틀론(modern pentathlon: 현대 5종 경기)과는 실제로 완전히 다르다.

물론 육상에서 달리기 종목들은 별로 변함이 없지만, 마라톤이라는 특별 종목은 1896년에 처음으로 현대 올림픽 종목으로 등장했다(42.195㎞라는 거리는 1921년에 확정됐다). BC 490년에 일어난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마라톤 전투(Battle of Marathon)의 승리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의 40㎞의 거리를 쉬지 않고 한 번에 달린 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라는 메신저의 일화가 그 원천인 것이다.

레슬링이야말로 고대 올림픽에서 가장 으뜸가는 경기 종목이다. 얼마 전 레슬링을 올림픽에서 폐지하려고 했던 그런 무지막지한 결정은 실로 역사적인 비전이 없는 판결이었다. 5종 경기에서도 레슬링에서 지면 우승이 안 되는 원칙이 있을 정도로 이 종목은 중요했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도 탁월한 레슬링 선수다. ‘플라톤’이라는 이름 자체가 ‘어깨가 넓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의 레슬링 코치가 지어준 이름이다. 모든 남자 아이들이 귐나지온에서 밤낮없이 연습하며 자란 것도 레슬링이었고, 이를 창시한 장본인은 다름이 아닌 영웅 중의 영웅 헤라클레스였다.

몸의 언어는 실로 국경이 없다!


▎1. 멀리뛰기를 하는 선수가 그려진 BC 500 년경의 킬릭스(kylix) 술잔. 2. 헤라클레스(Herakles)가 거인 안타이오스(Antaios)와 씨름하는 장면들. 헤라클레스가 목을 조르는 레슬링 기술을 발휘하고 있다. 3. 판크라티온(pankration) 시합이 BC 480년경에 만들어진 킬릭스(kylix)에 그려져 있다. 오른쪽의 선수가 상대방의 눈을 후비는 반칙을 하려고 한다. / 사진제공·김승중
네메아의 사자(Nemean Lion)의 가죽이 화살과 창에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아 결국 온몸을 졸라 죽여야 했다는 신화가 기억날 것이다. 게아(Gea)의 거인 아들 안타이오스(Antaios)와 씨름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땅의 여신인 어머니에게서 힘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를 결국 낚아 들어올려 공중에서 목 졸라 죽였다는 이야기도 모두 레슬링의 원천을 설명하는 신화다.

복싱도 고대 올림픽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BC 688년부터 올림픽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미노아의 벽화에서부터 이미 복싱장갑을 낀 복서들의 복싱 장면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고대 올림픽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종목이 바로 판크라티언(Pankration: 복싱과 레슬링을 짬뽕한 좀 야만적인 운동으로 BC 648년에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됐다)이다. 이는 우리 시대의 이종격투기와 같은 경기로, 단 두 가지의 규칙 외에는 때리고, 차고, 꺾고, 조르고, 바닥에서의 격투 등 무엇이든지 허용되는 좀 끔찍한 경기다. 이 두 개의 규칙은 눈을 후비면 안되고, 이빨로 깨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스포츠맨십이 극도로 요구되는 경기는 아닌 듯하다. 반칙을 하고 있는 선수를 그린 장면들도 보인다. 반칙하는 선수는 매질로 징계했다고 전한다.

지난 8월 온 세계가 지켜본 올림픽 경기를 치르고 나서 새삼 느끼는 것은, 이 행사가 그래도 오늘 이 험악한 대결의 국제정세 속에서 고대 그리스의 운동정신을 계승하여 인간의 힘의 가장 아름다운 표현을 평화로운 경쟁으로 지속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스 체육의 역사는 이러하다. 그리스인들은 체육의 목적을 단순히 군사적 목적을 위한 신체 단련에만 두지 않았다. 개성의 발전, 신체의 균형, 건강의 유지, 오락의 획득 등 개인의 미적 이상의 실현을 위한 신체와 정신의 조화에 두었다.

그러나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실패한 이후로는 그러한 균형감각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마시대에 오면서 이러한 감각은 퇴폐적으로 전락했다.

희랍인들은 콘테스트 자체를 즐겼으나 로마인들에게는 그것은 게임일 뿐이었다. 희랍인들에게 올림픽은 경기자들을 위한 축제였으나, 로마인들에게 올림픽은 관객을 위한 서비스였다. 희랍인들에게 건강한 경쟁이었던 것이 로마인들에게는 순전한 엔터테인먼트의 수단일 뿐이었다. 올림픽 게임은 AD 400년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하여 폐쇄되고 만다.

몸의 언어는 실로 국경이 없다. 앳된 박상영 선수의 경기 모습은 골리앗을 물리친 다비드상처럼, 디아두메노스의 아레테, 국가를 빛나게 하는 클레오스적 영광을 모두 이룬 자랑스런 영웅의 모습이다.

김승중 - 서울대학교 천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했다. 프린스턴대 천체물리학과에서는 우주론을, 콜롬비아대학 예술사고고학과에서는 희랍미술을 전공해 각각 박사학위를 받았다. 콜롬비아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전에는 버지니아대학에서 미술사학 석사코스를 밟았다. 이 시기 다양한 현지발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고고학의 생생한 지식을 얻었다. 현재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희랍미술고고학을 가르치고 있다.

201610호 (201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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