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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르포] '점(占)집’에서 아이의 미래를 묻는 강남엄마들 

“아이가 적성에 맞는 일 해야 성공할 수 있지 않겠어요?” 

글 김포그니 기자 pognee@joongang.co.kr/ 사진 김경록 기자
같은 ‘사주팔자’라도 진로에 따라 대통령도, 구두닦이도 될 수 있어… 자녀 교육을 두고 강남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新) 풍속도
최근 서울 강남에 ‘사주팔자(四柱八字)’로 자녀의 진로 상담을 해주는 곳이 늘고 있다. 과거에는 ‘점집’으로 통했던 곳이 이제는 어엿한 자녀교육 상담업체로 불린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강남 학부모들이 비과학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사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뭘까?


▎한 학부모가 유명 사주상담소에서 자녀의 진로에 대해 조언 받는 모습. 과거 ‘점집’으로 통했던 곳이 이제는 어엿한 전문 ‘멘토링’ 업체로 대우받고 있다.
“가수가 될 아이를 왜 의대에 입학시키려고 해요? 연예 기획사 연습생으로 들여보내는 게 더 나아요.”

서울의 명문 특목고에 입학한 딸을 둔 김미영(47·가명) 씨는 최근 ‘역리학(易學)’으로 자녀의 진로를 상담해주는 신종 ‘멘토링(Mentoring)’업체를 찾았다가 뜻밖의 조언을 들었다. 자신의 딸이 사주 상으로는 의사보다 연예인에 더 적합하다는 얘기였다.


▎한 학부모가 자녀의 적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김두환 덕성여대 교수는 “최근 한국의 자녀교육이 아이의 적성과 흥미에 더 주목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강남 8학군’에 위치한 학교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주변의 부러움을 샀던 딸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사춘기가 찾아왔는지 잦은 결석에 방과후에는 노래방을 찾는 일이 부쩍 많아졌단다. 김씨는 “최근 딸아이가 수능을 앞두고 갑자기 학교를 나가지 않는 등 이상행동을 보여 걱정이 커졌다. 그런데 그게 다 사주 때문이라니 놀랍다. 그러고 보니 평소 아이가 모 케이블에서 방영하는 가수 오디션에 나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털어놨다.

최근 강남 일대에 ‘역리학(易學)’ 및 ‘사주팔자(四柱八字)’를 통해 자녀의 진로를 상담해주는 곳이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점집’으로 통했던 곳이 이제는 어엿한 자녀상담 전문 ‘멘토링’ 업체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멘토링’이란 해당 분야에 경험과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상담자의 진로를 지도해주는 과정을 뜻한다.

그동안 비과학적인 분야로 여겨졌던 점집이 강남 학부모 사이에서 전문 멘토링 업체의 반열에 오르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과연 상담의 효과는 있을까?

자녀 교육을 두고 강남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풍속도를 집중 조명해봤다.

사주팔자, 인생(人生) 집적해놓은 ‘빅데이터’


▎사주전문가 이철용 씨는 “사주는 미신에 의존하는 ‘운명학’이 아니라 통계에 의한 ‘관리학’이다. 하지만 확률에 따른 조언일 뿐 예언이 아니므로 참고만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지난 8월 강남의 한 사주상담소. 자녀의 진로를 상담 받으러 온 학부모 대여섯 명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주상담소를 운영하는 고훈(59) 원장은 15년 경력의 역리 학자다. 강북에서 사주상담소를 운영하다가 지난해 강남에도 분점을 냈다. 자녀 상담을 신청하는 강남 학부모가 최근 1~2년 사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 사주상담소에서 자녀 교육과 관련해 학부모에게 제시하는 해법은 기존의 통념을 뛰어넘는다. 컴퓨터 게임에 빠진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 “(아이에게) 최신식 컴퓨터를 사주고 매일 게임을 하게 해라. 정식으로 프로게이머에게 게임을 배우게 하는 것도 좋다”고 조언하는 식이다. 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아들이 전교 상위권에 드는 우등생이다. 강남의 명문 특목고에 보내도 되겠느냐”는 학부모의 질문에 “강북의 일반고에 보내는 게 더 좋다”고 답한다. 이어 자신의 자녀가 평소 내성적인 성격에 교우관계가 좋지 않아 걱정이라는 학부모에게는 “이 아이는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 아니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게 본인에게 이롭다”며 유학을 콕 집어 권하기도 한다.

컴퓨터 게임에 빠진 아이는 게임을 못하게 해야 하고, 성적 우등생에게는 특목고 입학을 권해보는 게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또한 내성적인 성격의 학생이 타지에 가면 더 위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유학을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고 원장은 왜 통념을 뒤집는 해결책을 내놓았을까?

“사주에 나타난 기질에 따라 조언해줬을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고 원장은 “첫 번째 아이는 지능과 집중력이 굉장한 뛰어났다.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서 대성하는 기질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픈 일에 전념해야 잘 풀린다”고 말했다. 그가 아이에게 게임을 전문적으로 공부해보라고 권유했던 이유다.

이어 두 번째 아이에 대해서는 “공부를 무척 잘하지만 오만한 성격을 가진 케이스”라고 말했다. 이 경우 특목고에 입학하는 것보다는 일반고에서 다양한 성적을 가진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게 훗날을 위해 좋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태생적으로 오만한 기질을 갖고 있는 아이가 엘리트 집단에서만 지내다 보면 장래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 고 원장은 한 명문대 출신의 성공한 의사가 자신의 아내를 말다툼 끝에 살해한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이 의사는 성장과정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엘리트 집단에서만 머물렀던 결과 타고난 오만한 기질이 삐뚤어져서 이런 비극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개방적인 기질을 타고났기 때문에 한국사회 특유의 위계질서와 맞지 않아 본의 아니게 내성적인 성격을 갖게 된 경우도 있다. 세 번째 아이의 경우가 그렇다. 고 원장은 “국내에서 활동해야 잘 풀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해외 생활이 잘 맞는 사람이 있다. 특히 창의적 인재의 경우가 그렇다”고 조언했다.

이처럼 사주팔자로 기질과 적성을 파악한다는 ‘사주’ 상담,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

“사주는 진로를 상담해주는 ‘알파고(AlphaGo·인공지능 프로그램)’다.” 13대 국회의원을 지낸 역리학자 이철용(69) 통연구소 소장은 “역리학의 사주팔자가 인간의 운명을 확률 통계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일종의 경험철학”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실제로 동양철학에 따르면 역리학은 동양판 ‘성격심리학(personality psychology)’으로 분류된다. 알파고처럼 통계에 의한 해석을 위주로 상담이 진행된다.

35년간 역리학을 공부했다는 그는 “역리학의 한 줄기인 사주팔자의 경우 사람의 출생을 나타내는 60갑자(甲子)와 음양오행(陰陽五行)을 결합한 조합이 약 50여 만 건 집적돼 있다. 이를 통해 사람의 성향과 미래의 성패를 예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주팔자가 일종의 ‘빅데이터’인 셈이다.

손금·관상, 현재의 운세 알려주는 ‘날씨예보’


▎2011년 명문고 입학원서 접수 현황을 지켜보고 있는 학부모의 모습. 지난해 학부모 조사에서는 “자녀가 엘리트 코스를 밟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답이 크게 늘었다.
“자신의 사주를 알고 지내는 것은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가는 것과 같다.” 이 소장은 “한번 사는 인생을 지도 없이 헤맬 수는 없지 않느냐?”라며 사주팔자를 참고 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인생의 지도’가 있다면 지도에 따라 목적지로 가는 과정에서 ‘비가 올지, 해가 뜰지’를 알려주는 ‘예보’도 있다. ‘손금·관상’이 그것이다.

역리학에 따르면 손금과 관상은 인간의 기질을 파악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다. 사주팔자가 거시적인 ‘틀’이라면 이 틀이 미시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추정할 수 있는 게 바로 손금·관상이라고 한다. 손금·관상 전문가 이정표(47) J2 대표는 “사주팔자는 바뀌지 않지만 손금·관상은 마치 날씨처럼 시기 별로 변한다. 사주팔자가 틀이나 기둥이라면 손금·관상은 세부적인 보완재라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제아무리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을 가진 사주도 시기에 따라 오만해질 수도 있고 유순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 대표는 집중력이 뛰어난 손금을 가진 한 학생의 일화를 소개했다. 특이하게도 이 학생은 지난해부터 집중력을 나타내는 손금이 점점 희미해졌다고 한다.

이유를 알아보니 스마트폰에 너무 집중하는 바람에 ‘폰 중독’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덩달아 학교 성적도 떨어졌다. “특정 손금이 희미해졌다는 것은 현재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결국 이 대표는 이 학생에게 탁구를 배우게 했다. 작은 탁구공에 집중하면서 몸을 쓰게 하자 스마트폰을 하는 시간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집중력을 스마트폰에 써버리는 대신 운동에 매진하게 함으로써 문제점을 해결한 것이다. 이처럼 손금·관상에 주목하면 현재의 문제점을 파악해 적성을 효율적으로 발달시키는 데 유리하다고 한다. 때문에 손금·관상을 통한 진로 상담을 원하는 학부모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재능이 뛰어난 손금을 가진 학생의 경우 대학 입학을 앞두고 부모와 갈등을 빚는 특이 사례도 많다. 학업운과 예체능운이 동시에 좋은 학생의 경우 어떤 진로를 선택하는 게 좋을까?

일례로 3년 전 한 고등학교에서 전교 2등을 하던 학생이 갑자기 자퇴 선언을 했다. 공부에 흥미가 떨어졌다는 게 그 이유였다. 영문을 몰라 속이 타 들어간 부모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학업 성적이 좋아 법대 진학을 권유했더니 아이가 갑자기 일탈하기 시작했다.” 부모의 고민에 이 대표는 “손금 상으로 두뇌선과 운동선이 모두 뚜렷하다. 경영학과에 보내 스포츠 매니지먼트를 시키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결국 이 학생은 서울 소재 Y대 경영학과에 진학했고 현재 해외에서 스포츠경영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부모의 바람대로 학업을 놓지 않고 명문대에 진학한 것이다. 또한 본인의 적성대로 예체능 계열의 직업을 준비하고 있어 개인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이처럼 손금에서 드러나는 적성의 미시적인 부분이 결과적으로 최적의 직업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잘나가는 대학병원 의사가 사업가로 변신한 이유


▎역리학 상의 사주팔자에는 출생에 따른 인적 특성이 약 50여 만 건 집적돼 있다. 이를 통해 적성과 진로의 성패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일종의 ‘빅데이터’인 셈이다.
이를테면 학업운이 뛰어나지 않지만 친화력을 나타내는 손금이 좋은 학생에게는 심리상담학을 추천하는 식이다. 이 경우 타고난 친화력을 계발하는 일이다 보니 저절로 학업운도 증진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앞서의 학생과 비슷한 친화력을 가졌으나 지배욕과 명예욕의 손금도 뚜렷하다면 어떤 진로를 선택하면 좋을까? 이 대표는 “명예욕을 충족시키고 친화력을 발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직업으로 간호사가 있다. 실제로 이런 손금을 가진 학생에게 간호사관학교에 입학할 것을 권했더니 잘 풀렸다”고 말했다.

태어난 지 1~2년밖에 안된 자녀의 손금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젊은 부모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이 어린 자녀의 손금에서 알아내고 싶은 건 무엇일까? 이 대표는 “자신의 아이가 훗날 인기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를 가장 궁금해 한다. ‘우리 애가 판사나 의사가 될 수 있느냐’를 주로 묻는다”고 말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기 직업에 대한 시선도 달라졌다. 자연히 상담 내용도 변했다. 과거에는 자녀가 예체능에 소질이 있다고 할 경우 대부분의 부모는 크게 실망했다. 그런데 요즘은 “‘한류스타’가 될지도 모른다”며 굉장히 기뻐한다는 것이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학부모 박성경(41) 씨는 “아이가 두 살 때 수학적 두뇌선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듣고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영재 교육을 시키고 있다. 실제로 관련기관에서 검사한 결과 상위 2~3%안에 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손금을 보지 않았다면 아이가 수학 천재인지도 몰라 제대로 된 교육을 못해줬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강남 학부모 사이에서 사주로 보는 자녀의 진로 상담이 화제가 된 덕일까? 자신의 진로를 재정비할 겸 강남에서 입 소문난 사주상담소를 찾는 30~40대 성인남녀도 늘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대부분이 소위 잘나가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3년 전 5급 행정고시에 합격한 최인석(33·가명) 씨는 서울대 출신으로 현재 주요 부처에서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다. 탄탄대로 엘리트의 길을 걸어왔던 최씨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공무원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표를 내려니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역삼동에 위치한 한 사주상담소를 찾았다. 주로 성인 남녀의 진로를 보는 것으로 유명세를 탄 곳이었다.

“행시에 합격했을 때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잔치까지 하셨다. 그래서 사무관 직을 내려놓기 어렵다.” 최씨의 고민에 이 상담소의 고 원장은 “지금은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버텨서 정계로 진출하라”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당신은 참모형이 아니라 보스형이라서 관료사회에 적응하기 쉽지 않다. 주요 부처에서 경력을 쌓은 후 정치인이 된다면 대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명 대학병원에서 외과의사로 일하던 황영철(37·가명) 씨도 이곳을 찾았다. 노력한 끝에 인기 전공과목의 의사가 됐지만 수술할 때마다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부족한 손 기술로 수술 성과가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환자의 피를 보는 게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고 원장은 “사업가가 왜 대학병원에서 학자로 일하고 있느냐. 당장 그만두고 의료 사업을 시작해보라”고 조언했다. 이 후 황씨는 평소 관심 있었던 재활치료 기구를 해외에서 수입해오는 일을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수요가 있으면 다양한 공급이 생긴다. 역리학·사주 등 동양철학을 토대로 진로를 살피려는 사회적 수요가 증가하자 맞춤형 상담도 인기를 얻고 있다.

명문고·대학 재학생 및 명문대학 출신 고시생 등 엘리트를 상대로 사주·기치료를 병행하는 신종 상담소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 상담소는 사주에 드러난 신체 기질에 맞춰 기치료를 해 유명해졌다. 이는 일종의 카이로프락틱으로 약물이나 수술을 사용하지 않고, 근·골격계를 풀어주는 마사지를 말한다.

‘사주’ 시장에 부는 새 바람… 엘리트 상담가 등장


▎1990년대 후반 강북에 위치한 점집촌. 당시 60~70대 남성이 사주가로 활동했다면 최근에는 명문대 박사 출신 젊은 사주가의 활약이 눈에 띈다. 이들은 세련된 양복을 입고 서울 중심가 빌딩에서 전문상담을 주도하고 있다.
이 상담소를 운영 중인 이정노(55) 원장은 32년 경력의 사주·기치료 전문가다. 그는 2012년부터 4년간 한서대학교 물리치료학과 임상실기 강사로도 활동했다.

학생시절 전라북도 육상마라톤 대표 선수였던 그는 슬럼프에 빠진 동료를 돕기 위해 카이로프락틱을 배웠다. 당시 이 동료는 고질적인 등 근육 통증에 시달렸지만 병원에서 의학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원장의 마사지를 받자 그는 통증이 감소했고 점차 긍정적으로 변했다. 자연히 경기 성적도 나아졌다고 한다.

신체의 내적 순환을 돕는 과정이 정신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한 이 원장은 본격적으로 역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역리학을 통해 기질을 알아보고 그에 맞춰 신체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서다. 앞서 그의 동료는 예민한 기질을 타고 태어났는데 이 경우 정신적 긴장감이 등과 어깨에 집중돼 근육이 뭉치게 된다고 한다.

이 원장은 “신체는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신체의 순환이 잘 돼야 정신력도 강해진다. 정신의 불안감이 사라져도 신체가 평안해진다”고 말했다. 정신과 신체를 병행 치유하면 어떤 분야에서든지 성과를 낸다는 것은 그의 지론이다.

대입 수험생, 언론고시·사법시험 등 주요 시험을 앞둔 취업 준비생이 그의 주고객이다. 고등학생 상담자의 경우 사주에 적합한 기순환 치료를 하면서 수험생활을 관리해준다고 한다.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유서연(17·가명) 양은 “독서실에서 공부한 후 몸이 뻐근할 때마다 이곳을 찾아 기 순환 치료를 받는다. 신체의 피로가 줄어들어 공부에 집중이 잘된다”고 말했다. 이어 “올 때마다 사주상담도 받는데 수리 영역에 강하고 언어영역에 약하다고 한다. 실제로 언어 점수가 낮은 편인데, 타고난 적성 때문에 그렇다는 얘기를 듣고서 오히려 자신감이 회복됐다”고 덧붙였다.

소위 명문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주고객이다 보니 이들의 부모도 사주·기치료 상담에 자연히 관심을 갖는 분위기라고 한다. 실제로 외교부의 A 대사부부, 유명 연예인 B 씨의 부인, T그룹 회장의 부인, 인기 예능프로PD C씨 등도 이곳을 즐겨 찾고 있다.

의사도 진료과목마다 전문의가 있고 대학에 전공이 있듯이 이른바 국내 ‘역리학·사주상담’ 시장에도 전문화 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 60~70대 남성이 역리학자·사주가로 활동했다면 최근에는 30~40대 명문대 박사 출신의 젊은 사주가들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이들은 세련된 양복을 입고 서울 중심가 빌딩에서 전문 상담을 주도하고 있다.

노해정(46) 휴먼멘토링 대표는 ‘명리학·멘토링’ 업체의 선두주자로 알려졌다. 그는 명리학 전문가면서 서울소재의 한 명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른바 ‘엘리트’다.

특히 그는 사주상담 자료를 토대로 사회과학적인 데이터를 만들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상담을 받은 10대 청소년 1100 여 명이 실제로 사주에 따라 진로가 결정됐는지 여부를 5~10년 동안 꾸준히 추적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현대적 통계와 계량화로 ‘인간 분석학’을 집대성했다.

노 대표는 “학문의 틀을 그대로 현실에 적용할 경우 자칫 잘못된 진로를 조언해줄 수 있다. 이런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과학적인 데이터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일례로 자녀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주를 타고났다고 해서 학업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일 것이라 기대하지 말라고 그는 조언한다. 논리적인 두뇌를 가진 아이일수록 훗날 학교 성적을 살펴보니 등수가 높지 않았다고 한다. 암기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를 꿈꾸다

노해정 대표는 “두뇌가 뛰어난 아이에게는 평소 이해력 위주로 미국식 공부를 시키되 시험 기간에만 암기 공부를 권유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어 “자녀의 머리가 좋다는 말에 공부만 시키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교육”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시대인 만큼 사주팔자를 한국식으로만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문과·이과 개념을 잘못 인지한 부모들이 많아 우려된다고 그는 말한다.

노 대표는 “사주상 문과로 가는 게 적합하다고 조언해주면 자녀를 법대로 보내려고 한다. 이과라고 하면 무조건 의대로 보낸다”라며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자녀에게 알려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강남 학부모부터 20~30대 직장인들까지 앞다퉈 사주상담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주상담을 받으려는 이들 대부분은 자신 혹은 자녀의 적성을 알고자 하는 게 목적이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전국 만 19세 이상 75세 이하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자녀교육에 관한 조사를 매년 실시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2010년 조사와 비교해 2015년 조사에서는 “자녀교육이 성공했다”는 의미를 묻는 질문에서 ‘(자녀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게 이끄는 게 성공이다’ 항목을 선택한 비율이 13.5%(2010년)에서 21.9%(2015년)로 크게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두환 덕성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의 자녀교육이 아이의 적성과 흥미에 더 주목하는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증거다”라고 말했다.

명문대 입학해도 취업이 안 되는 추세가 계속되다 보니 학업보다는 적성이 중요해졌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세계적인 기업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세계적인 소셜네트워크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처럼 적성에 ‘올인’해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는 “그 결과 자녀적성을 찾는 다양한 노력이 강남 학부모의 사주상담 열풍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사주를 통해 적성을 찾는 노력 자체는 권장할 만하나 상담가의 조언을 너무 맹신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사주전문가 이철용 소장도 같은 생각이다. 이 소장은 “사주상담은 미신에 의존하는 ‘운명학’이 아니라 통계에 의한 ‘관리학’이다. 사주팔자의 경우 확률상 어떤 성향이 높다는 설명에 불과하고 예언이 아니므로 참고만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결국 동양철학에 따르면 사주팔자는 진로의 팁(tip)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을 축구 경기에 비춰본다면 자신의 포지션(직업)이 포워드, 미드필더, 골키퍼 중 어디에 적합할지 사전에 파악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주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인간분석학에 따르면 같은 사주를 가진 두 명이 각각 대통령도, 구두닦이도 될 수 있다. 이에 이 소장은 “적성을 좇더라도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의 그림, 심상이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면 그 어떤 미래의 문도 열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 글 김포그니 기자 pognee@joongang.co.kr / 사진 김경록 기자

201611호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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