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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리더십 연구] 두산 베어스 새 역사에 도전하는 김태형 감독 

“감독 눈치는 보지 마라. 동료와 팬이 보고 있다” 

이창호 야구전문기자·스포츠평론가 river2000@naver.com
선수시절부터 ‘직설적 카리스마’로 미래의 감독감으로 주목받은 ‘곰탈여우’... 정규시즌 93승으로 최다승 기록, 82년 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2연패 노린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선수 시절엔 스타플레이어와 거리가 있었으나 지난해 사령탑에 오른 뒤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두산 김승영 사장과 김태룡 단장은 김 감독에 대해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남달라 일찍부터 미래의 감독감으로 꼽혔던 인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태형(49) 두산 감독은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감독·코치·선수들의 신상명세와 각종 기록을 알려주는 2016 KBO 가이드북의 첫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프로 경력 27년, 1967년생, 키 175㎝와 몸무게 82㎏으로 소개돼 있다. 키가 크지 않다. 덩치가 좋지도 않다. 쉰 살을 눈앞에 둔 평범한 중년 아저씨 같다. 볼 살도 있고, 배도 나왔다.

그런 김태형 감독은 ‘곰탈여우’로 통한다. ‘곰의 탈을 쓴 여우’란다. 느낌은 곰 같은데, 생각과 행동은 여우 뺨친다는 것이다. 이미 선수 시절부터 ‘미래의 감독감’이라고 불린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 감독 얼굴에는 온통 복이 붙어 있는 것 같다.” 두산 베어스 프로야구단 김승영 사장은 싱글벙글하다. 둥글넓적한 김태형 감독을 보면 그저 고맙고 좋단다. 2015년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정규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결국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일궈냈다. 올해는 1995년 이후 21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창단 이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2연패를 노릴 수 있게 됐으니 흐뭇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OB 베어스는 원년 챔피언이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김영덕 감독은 ‘불사조’로 불린 투수 박철순과 함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역사를 썼다. 1995년에는 김인식 감독이 페넌트레이스 막판 극적인 승부 끝에 LG를 제치고 기적 같은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뒤 두 번째 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미러클 베어스’ 신화의 시작이었다.

OB 베어스는 1999년부터 두산 베어스로 이름을 바꾼다. 2001년, 통산 세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2015년. 두산은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NC와의 플레이오프를 거쳐 삼성과 한국시리즈를 치렀다. 험난한 포스트시즌 끝에 대망의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방망이 들고 있는 이유 잊지 마라”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 확정 직후 마운드로 모여 기쁨을 나누는 두산 선수들. 정규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나 넥센·NC·삼성을 차례로 물리치고 우승트로피를 품었다.
‘김태형’이란 이름은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 역사와 깊은 인연이 있다. 통산 네 차례 우승을 하는 동안 세 번이나 그의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1995년에는 선수, 2001년에는 플레잉 코치, 2015년에는 감독으로서 함께했다. 이젠 두산의 사상 첫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복 많은 야구인”이라고 할 만하다.

김태형 감독은 ‘작전’을 최대한 자제한다. 벤치의 작전이 선수들의 플레이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선이 굵은 야구’를 한다. 거기에는 경험이 바탕에 깔려 있다. 승패는 벤치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창조하는 것이다. 감독은 그런 선수들이 마음껏 플레이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면 된다. 대신에 평소 팀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것이 책무다.

김태형 감독은 틈날 때마다 선수들에게 “감독이나 코치의 눈치를 보지 마라”고 강조한다. 그는 삼진을 당했다고, 번트를 실패했다고,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고 눈치를 보는 것을 ‘옛날 야구’로 규정한다. 그런 태도와 의식으로는 공격적인 야구, 팬들이 즐거운 야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수하거나 엉뚱한 플레이를 했을 때도 감독 눈치를 보지 말고, 동료나 팬들에게 미안해하는 것이 바른 자세라고 가르친다. 감독은 선수의 실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면 다른 대안을 찾으면 그뿐이다. 늘 최고 컨디션을 유지하고, 최상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를 찾아내 전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감독의 존재 이유다.

두산 선수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김 감독이 선수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공격적인 야구다.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갔으면 싸우라고 말한다. “방망이를 들고 있는 이유를 망각하고 방어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난센스”라고 말한다. 이제 서로가 교감하고 있다. 감독이 지향하는 방향이 어디고, 무엇인지 선수들도 알고 있다는 얘기다.

두산의 ‘공격 야구’를 대표하는 새 아이콘으로 떠오른 선수를 꼽으라면 박건우와 김재환이다. 박건우는 장타력을 가진 신개념 1번 타자 겸 중견수, 김재환은 해결사 능력이 있는 4번 타자 겸 좌익수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은 타석에서 머뭇거리는 법이 없다. 기다리던 공이 오면 초구부터 공격적인 스윙을 한다. 스리볼에도 방망이를 돌릴 줄 안다. 지난해까지는 ‘진흙 속에 묻혀 있던 진주’였지만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나서부터 자신감을 불어 넣어 귀한 보석으로 재탄생했다.

둘은 기회를 줬더니 꽉 잡았다. 기대 이상으로 맹활약했다. 나란히 정규시즌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감독이 뽑은 MVP들이다. ‘김태형식 공격 야구’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박건우는 6월 16일 광주 KIA전에서 역대 20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는 등 3할대 타율과 20홈런으로 두산 공격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김재환은 두산 타자 중 사상 처음으로 3할 타율-30홈런-100타점-100득점을 돌파한 선수로 기록됐고, 지난해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가 세웠던 한 시즌 최다 타점 121개를 넘어서는 위력도 보여줬다.

김재환은 모든 것을 다 바꿨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타격 타이밍이나 방망이를 돌리는 요령도 고쳤다. 김태형 감독은 김재환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감독의 애정과 관심은 김재환을 새롭게 태어나게 만들었고, 두산도 강한 힘을 얻었다.

“이젠 미러클이란 꼬리표를 떼고 싶다.”

두산 주장 김재호가 10월 4일 홈 최종전이었던 롯데와의 경기에서 연장 10회말 정진호의 끝내기 안타로 역전승을 거둬 역대 최다승 기록인 92승을 달성한 뒤 이렇게 말했다.

‘기적’이란 말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때 쓰인다. 2015년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분명 기적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제대로 대접을 받아야 마땅한 성적을 남겼다. 당당하게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고, 한국시리즈 2연패까지 노린다.

김태형 감독은 이제 2년차다. 아직 초보에 해당한다. 하지만 벤치에서의 모습은 초보가 아니다. 김태형 감독이 코칭스태프, 선수들과 함께 만들어낸 각종 기록은 ‘최강 두산’의 풍성한 열매다.

‘미러클 OB’에서 ‘최강 두산’으로


▎95년 롯데를 꺾고 한국시리즈를 품은 OB 선수들이 맏형 박철순에게 목말을 태우고 있다.
두산은 역대 최초로 10승부터 90승까지 10승 단위 승리를 가장 먼저 올리면서 1위 자리를 지켜낸 팀이다. 역대 최다승 신기록을 세운 10월 4일, 잠실구장엔 또 다른 경사가 겹쳤다. 두산이 사상 첫 8년 연속 관중 100만 명을 돌파했다. 2년 연속 홈 관중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12만381명의 관중을 끌어 모은 데 이어 올해는 116만5020명(경기 평균 1만6181명)에게 야구의 즐거움을 선사하면서 흥행몰이를 이끌었다.

김태형 감독은 실력 우선주의자다. 선수뿐 아니라 코치도 똑같은 원칙으로 판단한다. 한용덕 수석코치 겸 투수코치와 박철우 타격코치, 강석천 수비코치가 김태형 감독과 호흡을 맞추어왔다. 학창 시절이나 현역 때 함께한 시간이나 인연이 깊지 않지만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 힘을 합쳤다. 특히 김태형 감독은 타격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타격 훈련을 할 때면 배팅케이지 뒤에서 유심히 지켜본다.

결과물이 분명하다. 두산은 올 시즌 팀 타율 1위, 홈런 1위, 장타율 1위, 출루율 1위, 득점 1위 등 공격 전 부문에서 최상의 성적을 남겼다. ‘베스트 9’ 중 김재호·김재환·민병헌·박건우·에반스·오재일·양의지 등 7명의 3할 타자를 배출했다. 양의지만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했을 뿐 나머지 6명은 시즌 내내 ‘선 굵은 공격 야구’를 주도했다.

마운드에선 ‘판타스틱 4’로 불리는 니퍼트·보우덴·유희관·장원준이 듬직한 ‘선발 야구’를 보여줬다. 선발투수 4명이 모두 15승 이상을 기록하는 전대미문의 진기록을 세웠다.

두산은 타력과 투수력은 물론 수비력도 강하다. ‘최강’의 조건을 모두 채웠다. 두산은 감독이 할 일, 코치가 할 일, 선수가 할 일에 대한 구분이 정확하다. 서로 각자의 책임과 의무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다. 선수 관리를 코치에게 전적으로 맡기지 않는다. 때론 감독이 나선다. 특히 외국인 선수는 직접 챙긴다. 서로 오해 없이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스스로 ‘욕심이 많은 완벽주의자’라고 평가한다. 성격은 아주 급하다. 아니다 싶은 것을 보면 곧바로 지적한다. 코치들에겐 더 엄격하게 다그친다.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우회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다. 김 감독은 누구보다 두산을 잘 알고 있다. 김인식 감독과 김경문 감독, 조범현 감독 등 선배들과 함께하면서 야구를 배우고 느꼈다. 선배들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보완하면서 새로운 지도자의 모습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옛날 야구’에서 벗어나 선수가 중심이 돼 즐겁게 하는 야구, 팬과 함께하는 야구를 하려 한다. 선수를 믿고 맡긴다. 선수들이 납득할 수 있는 작전과 관리를 한다. ‘진정한 대장’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실천한다.

김태형 감독에게 2016년과 1995년은 어떤 의미일까. 1995년 선수로서 페넌트레이스 1위에 이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2016년 감독으로서 21년 만에 다시 정규시즌 우승을 일궈냈다. 가슴 벅찬 2016년을 되돌아보면 시나브로 즐거웠던 1995년이 겹친다.

# 2016년 9월 22일_ 21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하던 날

두산 장원준과 kt 주권이 선발 대결을 펼쳤다. 경험과 기량에서 장원준이 앞서 있으니 낙승이 예상되는 게임이었다. 두산은 0-1로 뒤진 6회말 선두타자 2번 국해성의 좌중간 2루타에 이어 3번 오재일이 오른쪽 담장 너머로 역전 2점포를 날려 순식간에 전세를 뒤집었다. 주도권을 잡았다. 그리고 4-1로 앞선 8회말 7번 오재원, 9번 김재호, 1번 박건우가 기록한 2루타 3개 등으로 5점을 추가하면서 사실상 승리를 결정지었다. 결국 9-2로 크게 이겨 남은 경기의 결과에 관계없이 21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다.

가슴 벅찬 2016, 즐거웠던 1995


▎프로야구 원년인 8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OB. 주장인 김우열이 서종철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에게 상장을 받고 있다.
김태형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한용덕 수석코치 등 코칭스태프와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기쁨을 나눈 뒤 경기를 끝내고 들어오는 선수들의 등을 토닥거렸다. 김 감독은 “사실 작년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기 때문에 올해는 시작하기 전부터 많이 긴장했다”며 “우승 다음해에 성적이 계속 좋지 않았던 탓에 걱정도 많았는데 선수들이 너무 잘해줬다”고 밝혔다. “생각보다 힘든 시즌이었지만 가슴이 벅차다”고 털어놓았다.

잠실구장은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박정원 구단주를 비롯해 김승영 사장, 김태룡 단장 등 구단 관계자들의 서로 축하와 격려를 건넸다. 어느 팀보다 충성도가 강한 두산 팬들은 목이 터져라 ‘최강 두산’을 연호했다.

# 1995년 10월 22일_ 두 번째로 한국시리즈 우승하던 날

시리즈 전적 3승3패,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OB와 롯데의 최종 7차전은 김상진과 윤학길이 선발로 맞붙었다.

OB는 출발부터 예감이 좋았다. 1회말 1번 김민호가 좌전안타로 포문을 열더니 2번 장원진의 중전안타, 3번 김상호의 좌전안타가 연거푸 터져 먼저 1점을 뽑았다. 그리고 6번 김종석의 내야 안타로 1점을 추가해 2-0으로 앞서 나갔다.

포수 마스크를 쓴 김태형은 6회까지 선발 김상진과 함께 롯데 타선에게 3안타만 내줬다. 2점으로 막았다. 그러나 김상진이 7회초 선두타자 7번 공필성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지자 김인식 감독은 권명철을 마운드에 올렸다. 승부수를 던졌다. 10월 15일 2차전에서 2안타 완봉승, 10월 20일 5차전에서 선발로 나가 5.1이닝 동안 9안타 5실점했던 권명철의 등판은 다소 의외였다. 권명철은 혼신의 힘을 다했다. 무사 1루에서 8번 강성우를 투수 땅볼로 처리한 뒤 9번 대타 이종운을 유격수 땅볼로 막아냈다.

9회말 2사 후 권명철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6번 임수혁과 7번 공필성에게 연속 안타를 내준 데다 8번 대타 손동일의 타석 때 김태형의 패스트볼로 2사 2·3루까지 내몰렸다. 그래도 권명철-김태형 배터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볼카운트 1볼 1스트라이크에서 정면승부를 걸어 투수 땅볼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OB가 통산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김태형은 마운드로 뛰어올라가 권명철과 뜨겁게 포옹했다. 평생 잊지 못할 즐거운 순간이었다.

선수 시절의 김태형은 당돌했다. 언제든 할 말은 했다. 감독이나 코치, 선배들에게 때론 건방지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1995년 롯데와의 한국시리즈 때 김태형은 1차전 선발에서 제외됐다. OB는 1차전에 맞춰 1번 유격수 김민호, 2번 중견수 장원진, 3번 좌익수 김상호, 4번 지명타자 김종석, 5번 포수 이도형, 6번 1루수 김형석, 7번 2루수 이명수, 8번 우익수 심정수, 9번 3루수 안경현으로 선발 라인업을 짰다. 김인식 감독은 그해 홈런 14개를 터뜨리며 장타력을 뽐낸 이도형을 활용해 공격력을 높이려고 했다.

벤치의 뜻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았다. OB 선발 김상진은 7이닝 동안 7안타를 맞고 4실점(2자책)한 뒤 이용호로 교체됐다. OB 타선은 롯데 선발 염종석을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해 6.1이닝 동안 6안타로 2점을 뽑아내는 데 그친 뒤 마무리 투수 김상현에게 2안타 무실점으로 묶여 패전을 감수해야 했다.

당연히 선발로 나갈 줄 알았던 김태형에겐 씁쓸한 여운이 남았다. 경기를 끝낸 뒤 김인식 감독은 김태형을 보자 “도형이 좀 잘 가르치지”라며 특유의 농담투로 한마디를 건넸다. 김태형은 그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선수가 선수를 어떻게 가르쳐요?”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김인식 감독은 2차전부터 선발 라인업에 변화를 줬다. 이도형을 지명타자로 돌리고, 홈플레이트는 김태형에게 맡겼다. 김태형은 여우같이 롯데 타자들의 속내를 읽어내면서, 마운드에 선 권명철이 최대한 편하게 공을 던질 수 있도록 리드했다. 벤치와의 호흡도 척척 맞았다. 0-1로 뒤진 5회말 1사 2루에선 1-1 동점을 만드는 중전적시타까지 날렸다. 결국 OB는 1-1 동점이던 9회말 2사 만루에서 1번 김민호가 롯데 마무리투수 강상수로부터 끝내기 볼넷을 골라 2-1로 역전승했다. 권명철은 110개의 공을 던지면서 2안타 완투승을 거뒀다.

당돌한 포수, 할 말은 하는 주장


▎1. 2001년 두산의 통산 3번째 우승을 일군 김인식 감독. 당시에도 두산은 정규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우승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 2. OB 김태형이 잠실 홈경기에서 홈런을 친 뒤 3루를 돌며 유지훤 작전코치와 손뼉을 마주치고 있다. 유 코치는 현재 재활코치를 맡아 김태형 감독을 보좌하고 있다.
김태형은 벤치의 사인을 그냥 따라 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확인하고, 따지고, 설명했다. 그런 김태형을 김인식 감독은 너그럽게 받아줬다. 김태형의 판단을 믿고 “편하게 해라”며 기를 살려줬다.

김인식 감독은 선수들을 많이 풀어주는 스타일이다. 주장이었던 김태형은 자기까지 풀리면 팀 분위기가 엉망진창이 된다고 판단했다.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분명한 선을 그었다. 팀워크를 해치는 말이나 행동은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군기반장’이란 별명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스타플레이어 김동주를 혼내는 선배였다.

김태형이 1990년 단국대를 졸업하고 OB에 입단할 때부터 줄곧 지켜봤고, 2015년 두산 사령탑으로 영입하는 데 앞장선 김태룡 단장은 “김태형 감독은 일 처리가 투명하고 정확하다”며 “직설적인 성격에서 나오는 카리스마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포수는 ‘그라운드의 야전 사령관’이다. 어머니 같은 존재다. 9명의 선수 중 유일하게 야수들을 바라보고 있는 자리다. 양 팀 벤치의 작전, 타석에 들어선 타자의 성향, 우리 야수들의 움직임, 우리 투수의 상태 등을 두루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어떤 공으로 승부해야 할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야구를 제대로 알아야 하고, 두뇌회전이 빨라야 존재감을 인정받는 포지션이다.

김태형 감독은 두산 사령탑으로 부임하자마자 ‘목표는 우승’이라고 거침없이 밝혔다. 그리고 첫해 정규시즌을 3위로 마감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김태형 감독의 야구 인생은 화려하지 않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신일고 시절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야구 국가대표 상비군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갖고 있었다. 상비군 자격으로 경희대에 입학했지만 대한야구협회의 일 처리 미숙으로 문제가 생겼다. 뒤늦게 상비군 명단에서 빠진 것으로 밝혀져 경희대에선 다시 특기생 자격을 얻을 때까지 유급(留給)을 하거나 군에 입대해야 한다고 했다. 김태형은 학교 측 권유를 거부하고 인천전문대로 학적을 바꿔 야구를 이어갔다. 2학년 때 국가대표 선발되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때 강문길 단국대 감독이 편입을 제의해 다시 학교를 옮겼다.

야구도 결국 기본으로 통한다


▎2016년 프로야구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두산 선수단이 플래카드를 펼쳐 들고 팬들의 성원에 답례하고 있다. ‘사합’ 글자 바로 뒤에 있는 이가 김태형 감독이다.
이런 과정이 야구에 대한 애정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야구를 기본부터 다시 배우게 하는 계기가 됐다. 김태형은 1990년 OB에 입단해 2001년까지 선수로 활약했다. 스타의 상징인 골든글러브를 단 한 번도 받지 못했지만 2002년부터 배터리코치로 후배들을 지도했다. 2011년 김경문 감독이 물러나면서 김진욱 투수코치와 함께 감독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당시 구단의 선택은 김진욱이었다. 김태형은 두산을 떠나 2012년부터 SK의 배터리 코치를 맡았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야구를 좀 더 폭넓게 볼 수 있게 됐다.

두산은 김태형이 SK에 몸담고 있던 3년 사이에 김진욱에 이어 송일수 감독으로 사령탑을 교체하며 변화를 꾀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처음엔 계약기간이 남아 있던 송일수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코치로 김태형을 컴백시킬 복안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차기 감독감으로 염두에 둘 바에야 곧바로 감독직을 맡기자는 쪽으로 의견을 조율했다. 2014년 가을 계약기간 2년에 계약금과 연봉 각 2억원의 조건으로 지휘봉을 맡겼다. 그리고 올해 7월 18일 김태형 감독과 계약기간을 3년 연장하는 데 합의했다. 김태형 감독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김 감독은 특히 기본을 강조한다. 기본에 충실하면 어려움을 최소화할 수 있고, 최고 상태를 오래 이어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반대로 기본이 약하면 슬럼프를 극복하는 힘이 떨어져 더 큰 곤욕을 치른다는 것이다.

개인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것도 기본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올 시즌 초반 베테랑 노경은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 역시 원칙에 따른 결정이었다. 김태형 감독은 2군에서 생각할 시간을 가지라는 뜻이었는데 노경은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결별로 이어졌다. 의사 전달 과정에 문제가 있었지만 일이 불거진 이상 팀 분위기를 위해 노경은의 뜻을 받아들였다. 롯데로 트레이드했다.

김태형 감독은 지도자나 선수들이 갖고 있는 독특한 야구 이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본이 상수이고, 이론은 변수’다. 자신만의 이론에 갇혀 있다 보면 성장은커녕 퇴보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이론이라며 모두에게 따라올 것을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은 지도자다. 좋은 장점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것을 직접 보고 느꼈다. 김태형 감독이 이른바 ‘자기 이론’이란 것을 경계하는 이유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다. 변치 않는 진리가 아니다. 선수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이론이다.

얼핏 보면 김태형 감독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이다. 아니다. ‘챔피언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 ‘언젠가 성적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오락가락한다. 김태형 감독은 여유를 찾기 위해 애견과 산책을 즐기곤 한다.

김태형 감독의 야구 인생은 빠르게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

- 이창호 야구전문기자·스포츠평론가 river2000@naver.com

201611호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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