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레저기획] 영남 최대 ‘억새 1번지’ 화왕산 

분화구서 분출한 듯한 황홀경, 인생 희로애락 같은 변주 

글·사진 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화왕산 정상 쪽에서 바라본 동문 모습. 산성으로 둘러싸인 능선 오른쪽에 억새꽃의 향연이 펼쳐져 있다.
경남 창녕군 화왕산(火旺山·756.6m)은 영남권 최대 ‘억새산’이다. 백두산이나 한라산처럼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산이다. 그래서 분화구였던 자리가 움푹 패어 있다. 바로 이 자리에 드넓은 억새밭이 있다. 산 정상이나 맞은편 배바위(680m)에 오르면 어느 곳에서나 24만㎡의 억새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10월 중순부터 11월까지 솜털 같은 억새꽃이 만발한다.

화왕산을 오르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옥천 매표소에서 출발해 옥천 삼거리와 허준 세트장을 거쳐 화왕산성 남문까지 임도를 따라 곧바로 올라가는 길이 대표적인 길이다. 편도 5.5㎞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다소 완만한 경사길이 계속되지만 어린이와 노인들도 쉬엄쉬엄 걸어올라 갈 수 있을 만큼 어렵지 않은 길이다. 산 전체에 소나무가 많다. 그래서 9~10월이면 배낭을 맨 주민들이 소나무 숲에서 송이버섯을 캐러 다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산길을 걸으면서 30여 분간이나 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특히 허준 세트장 주변은 4~5월에 진달래꽃이 만발해 절경을 자랑하기도 한다. 세트장이 있던 곳은 원래 화전민들이 살던 곳이다. 인근에 이름 없이 봉분이 낮은 묘가 몇 개 보이는데 화전민들이 묻힌 자리라고 한다.

자하곡 매표소에서 도성암을 지나 화왕산성 서문으로 오르는 길은 짧지만 가파른 편이다. 편도 2.6㎞로 2시간 정도가 걸린다. 산행 초보들에게는 힘든 길이다. 그러나 옥천 매표소 길에 비해 등산의 묘미를 더욱 느낄 수 있다. 매표소에서 20분 정도 임도를 따라가면 1·3 등산로 갈림길이 나온다. 1등산로로 오르면 15분쯤 후 다시 1·2 등산로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1등산로로 올라가면 가파른 암석으로 된 길이 계속된다. 허연 속살을 드러낸 기암괴석들이 정상부까지 층층이 쌓인 벼랑 사이로 난 길이다. 층층 암벽이 병풍을 두른 듯 산을 감싸 멀리서 보면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다.

풍수적으로 화형산(火形山), 우포늪이 화기 눌러줘


▎김량한 창녕향토사연구회장이 화왕상 정상에 세워진 표지석을 가리키고 있다.
실제로 화왕산은 창녕 읍내에서 자하곡 매표소 쪽을 바라보면 마치 다섯 손가락을 펼친 것처럼 보인다. 원래 화왕산은 임금 왕(王)자를 써서 ‘불의 왕’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성할 왕(旺)자로 바뀌었다. 고려 개국 후 왕건이 신하를 시켜 전국의 왕(王)자가 들어가는 산의 이름을 모두 바꾸도록 했다는 설과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왕(王)자 앞에 일본을 뜻하는 날 일(日)을 넣은 왕(旺)자로 바꾸도록 했다는 두 개의 설이 있다. 어찌됐든 화왕산은 불의 왕, 불이 성한 산이라는 의미다.

풍수지리로 봐서 화왕산은 ‘화형산(火形山)’에 속한다. 다섯 손가락을 쫙 편듯한 모습의 산을 이렇게 부른다. 서울의 관악산도 화형산이다. 그래서 불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예로부터 화재(火災)를 막는 물의 신수(神獸)인 해태상을 세웠다. 광화문의 해태상이 인공적으로 화기를 누르는 역할을 한다면 화왕산의 화기는 1억4000만년 전에 자연스럽게 생긴 국내 최대 원시늪인 우포늪이 그 역할을 한다고 한다.

화왕산에 오르면 2~3m 높이의 돌담으로 된 화왕산성(2.6㎞)이 주위를 감싸고 있다. 동문을 기준으로 오른쪽 돌담을 따라가면 화왕산 정상을 거쳐 자하곡 매표소로 내려가는 서문으로 갈 수 있다. 화왕산 정상에 서면 창녕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멀리 우포늪과 지리산까지도 볼 수 있다. 반면 왼쪽 돌담을 따라 남문을 거쳐 올라가면 배바위가 나온다. 여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역시 서문이 나온다. 산성 어느 곳에서나 광활한 억새밭의 전경을 볼 수 있다. 특히 동문에서 서문으로 억새밭을 곧바로 가로지르는 길이 400m 정도의 등산로는 억새를 가까이서 보며 마치 어른 키보다 높은 억새밭에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화왕산 억새는 다른 곳의 억새와는 빛깔이 다르다. 능선과 골짜기에 따라 갈대의 빛깔이 다르게 보인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은빛, 잿빛, 황금빛, 흰빛 등으로 색깔이 달리 보이는 것이다. 원래 억새는 9월 말에 꽃을 피워 시간이 흐르면서 갈색으로 바뀌고 다시 은색으로 나중에는 흰색으로 변한다. 화왕산 억새는 마치 이 같은 시간의 흐름이 한곳에 모인 것처럼 보인다. 부산에서 온 천정주(67·여) 씨는 “이곳의 억새는 마치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갖고 있는 것처럼 여러 가지 색깔을 한꺼번에 보여줘서 가을이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화왕산성은 역사를 안고 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7만 5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온 일본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화왕산성을 에워쌌다. 정벌 목표로 잡은 전라도 전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화왕산성 공략에 나섰던 것이다. 당시 성 안에서는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郭再祐, 1552~1617) 장군이 밀양·영산·창녕·현풍 고을의 군사와 백성들과 함께 수성 중이었다. 왜적은 7일간 대치하다 결국 화왕산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함양 황석산성으로 발길을 옮겼다.


▎화왕산 억새밭 중간 지점에 있는 구천삼지(九泉三池: 9개의 샘물과 3개의 연못) 중 가장 큰 연못.
가야 고분 즐비한 고도(古都)답게 전설도 풍부


▎화왕산성 동문 들머리에 있는 허준 세트장. 김량한 회장이 이곳에서 촬영된 드라마와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화왕산성의 정상에서 서문 쪽을 바라보면 왜적들이 왜 화왕산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이기 때문이다. 당시 황석산성은 결국 왜적에 함락됐는데 당시 7000명의 군사와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가 전해지자 화왕산성에 있던 백성들이 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화왕산 계곡에 붉은 노을이라는 뜻의 자하곡(紫霞谷)이란 이름이 붙은 유래다.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간다. 화왕산성은 원래 가야가 신라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성이었다. 당시 화왕산성 안에는 구천삼지(九泉三池), 즉 9개 샘(식수)과 분화구가 변한 3개의 큰 연못(생활용수)이 있었다. 지금은 억새가 우거져 9개 샘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지만 3개의 연못은 일부 발굴돼 보존돼 있다. 이 삼지(三池)를 용지(龍池)라고도 부른다. 3개 연못 중 가운데 가장 큰 연못에서는 가야시대 토기와 군사무기·말발굽·호랑이뼈 등이 나와 이곳에 예전부터 군인들이 상주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화왕산성 길 곳곳에서는 가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파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이 용지는 창녕 조(曺)씨 시조 조계룡(曺繼龍)이 태어났다는 득성 설화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조계룡의 모친이 처녀 때 피부병이 있어 이곳에 자주 목욕을 하러 왔는데 어느 날 연못에 오이가 있어 이를 먹었더니 태기가 있었단다. 이후 아이를 낳으니 겨드랑이 밑에 조(曺)자가 있었다는 전설이다. 화왕산성 동문에서 서문으로 가는 억새길 중간쯤 오른쪽에 ‘용지동천(龍池洞天)’이라는 글이 새겨진 바위와 동문 앞 억새 숲 속에 세워진 ‘득성비’가 이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 비석 등은 조씨의 후손이 129년 전쯤 세워놓았다.


▎화왕산성 서문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쌓아놓은 돌탑. 인근에 모자바위가 있다.
서문에서 화왕상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마치 엄마가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의 ‘모자바위’가 있다. 이곳에도 전설이 있다. 가야시대 화왕산성을 축조하러 온 남편을 찾아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왔다가 내려가지 못하고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실제 웃는 얼굴의 큰 바위 뒤쪽으로 마치 업힌 아이가 고개를 삐죽이 내밀어 멀리 아버지를 찾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바위 인근에 억새가 수북이 피어 있어 애잔한 느낌을 더한다.


▎1597년 곽재우 장군이 정유재란 때 7만 왜군을 물리쳤던 화왕산성. 함양 황석산성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고 백성들이 피눈물을 흘려 화왕산 계곡에 붉은 노을이란 뜻의 자하곡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사진·중앙포토
서문에서 도성암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포옹을 하는 듯한 ‘연인바위’가 있다. 전쟁에 나가는 연인을 보내는 석별의 정을 담고 있다. 정상 맞은편의 배바위에도 전설이 있다. 이 배바위는 노아홍수처럼 천지개벽 때 배를 묶어둔 곳이라는 전설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김량한(47) 창녕향토사연구회장은 “화왕산에는 아름다운 억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억새 속에 숨은 역사와 문화가 있다”며 “곳곳에 숨겨진 이 같은 역사와 문화를 함께 살펴봐야 진정한 억새 여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글·사진 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박스기사] 올해 풍작 ‘옥천산 송이’ 꼭 맛보세요


경남 창녕은 옥천산 송이가 유명하다. 그동안은 자연산 송이의 채취량이 많지 않아 송이를 이용한 각종 음식을 맛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말부터 비가 자주 오고 서늘한 기온이 이어지면서 자연산 송이버섯이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생육조건이 갖춰졌다. 그래서 올해는 송이가 풍작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송이 채취꾼들이 군립공원 화왕산 인근 옥천 지역과 영산면 구계리 함박산 일대 곳곳에서 채취에 나설 만큼 작황이 좋다. 10월 1일 기준으로 송이버섯 1kg 상품이 20만~25만원에 거래된다.

두메산골: (옥천매표소 인근)이 송이를 이용한 닭국은 창녕에서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다. 닭을 자른 뒤 마늘과 소금, 자연산 송이만 넣어 압력솥에 30분 정도 끓여 만든다. 일반 삼계탕이나 백숙과 달리 국물이 맑고 깔끔하고 기름기가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자연산 송이향을 맡으며 국물을 먹다 보면 어느새 두 그릇을 비우게 된다. 가격은 5만~10만원까지 인원수에 따라 달라진다. 송이돌솥밥은 송이의 양에 따라 1만5000원~2만원이다. 055-521-3343(창녕군 창녕읍 계성 화왕산로 501)

청국장마을: (옥천매표소 인근)이 음식점은 손으로 빚은 메주를 띄워 담근 된장과 청국장 간장 등 전통 장류로만 음식을 만든다. 간판 상차림은 ‘청국장 비빔밥(7000원)’이다. 도자기 그릇에 음식을 담아내는 상차림이 인상적이다. 보글보글 끓인 청국장 뚝배기에 각종 나물 등 반찬 12가지가 따라 나온다. 밥 위에 된장 양념으로 버무린 부추 등 야채 겉절이를 넣고 청국장과 함께 비벼 먹는 식이다. 송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옥천의 싱그러운 산내음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오리불고기·훈제(3만5000원 정도), 송이백숙(10만원)도 판다. 055-521-3337(창녕군 계성면 계성화왕산로 287-7)

도천진짜순대: (영산IC 인근) 경남 창녕군 도천면에 있는 진짜순대집은 경남 창원과 인근 대구에서도 모듬순대ㆍ왕순대ㆍ순대전골 등을 먹기 위해 찾아오는 맛집이다. 주말과 휴일에는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북적댄다. 순대 모둠 1만4000원~1만8000원, 순대전골 1인분 9000원, 우동ㆍ라면 사리 각 1000원, 볶음밥 2000원이다. 055-536-4388(창녕군 도천면 일리 532)

여행정보: 경남 창녕에는 화왕산 외에도 우포늪, 우포늪 생태관, 산토끼 노래동산, 따오기 복원센터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가족단위로 여행을 오면 좋다. 특히 창녕박물관을 중심으로 가야 고분 1000여 개가 곳곳에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서울에서 화왕산이 있는 경남 창녕까지는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창녕나들목에서 빠지면 된다. 대중교통은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창녕시외버스터미널까지 오전 9시45분부터 오후 5시5분까지 하루 6차례(4시간 소요) 버스가 출발한다. 부산과 대구 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창녕까지 오전 7시(대구 7시30분)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매시간 버스가 있다.

201611호 (2016.10.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