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레저기획] 가을 진객(珍客)의 군무가 한창인 천관산 

기암(奇岩)과 어우러진 은빛 향연, 다도해가 손에 잡힐 듯 

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서울 광화문에서 정확히 남쪽 끝에 있는 정남진의 가을 진객은 천관산의 억새다. 10월 중순에는 수많은 억새 씨앗들이 하늘을 나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 사진·중앙포토
천관산(天冠山)은 정남진(正南津) 장흥이 자랑하는 명소다. 지리산(智異山)·월출산(月出山) 등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꼽힌다. 이 산에선 10월 초부터 한 달간 억새의 향연이 펼쳐진다. 흐드러진 억새의 물결 속에서 가을을 만끽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10월 중순에는 수정을 마친 억새 씨앗들이 눈송이처럼 하늘을 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정남진의 가을 진객(珍客)으로 억새를 꼽는 이유다. 정남진은 서울 광화문에서 정확히 남쪽 끝에 있어 붙여진 명칭이다.


▎환희대 인근에 있는 은빛 억새능선을 타고 산 정상(723m)인 연대봉 쪽으로 향하는 등반객. / 사진·오종찬 프리랜서
가을 천관산에는 산 정상과 산등성이에만 130만㎡(약 40만평)의 억새밭이 펼쳐진다. 산 전체가 은빛 솜털들을 뿌려놓은 것처럼 잔잔한 억새꽃으로 물든다. 정남진 전망대에서 5㎞가량 떨어진 산 정상에 오르면 가을빛에 물든 억새의 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수만, 수억 송이의 억새꽃이 햇빛을 맞으며 경쾌하게 춤추는 모습이 장관이다. 약한 바람에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억새들의 은빛 춤사위를 보면 축 쳐졌던 어깨에 힘이 솟는 듯하다. 1시간 20분이 넘는 산행에 지쳤던 심신의 고단함을 절로 잊게 하는 절경이다.

천관산을 오르는 길은 크게 세 가지다. 어느 코스를 택하든 하산까지 4~5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약수터는 정상에 한 곳 있으나 사람이 붐비는 억새철에는 미리 생수를 준비하는 게 좋다. 대표적인 길은 장천재(長川齋) 코스. 장천재를 출발해 체육공원~금강굴~환희대~연대봉을 오른다. 총 3.6㎞를 걷는 산행에는 1시간 40분이 걸린다. 이 코스 중 금강굴~환희대 구간은 천관산 특유의 기암괴석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장천재는 실학의 대가인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 1727∼98) 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탑산사 코스도 추천할 만하다. 탑산사 주차장을 출발해 연대봉까지 오르는 2.8㎞ 구간엔 볼거리가 지천이다. 주요 구간은 탑산사~탑산암~구룡봉~환희대~억새평원~연대봉이다. 천관산 문학공원을 시작으로 1시간 30분이면 호남의 대표적 억새산과 문향(文鄕) 장흥의 진면목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출발지점인 문학공원에는 한승원·이청준·송기숙 등 장흥 출신 문인을 비롯해 유명 문인 39명의 작품이 각각의 바위에 새겨져 있다.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탑산사 쪽으로 올라 장천재로 하산하는 천관산 일주 코스를 추천한다. 천관산 문학공원 외에도 천년고찰 ‘탑산사(塔山寺)’, 천관산의 명물인 아육왕탑(阿育王塔), 바위굴 안에 수도 방(房)을 만든 반야굴(般若窟)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억새능선에서 바라본 천주봉(天柱峰). ‘하늘의 기둥’이라는 뜻을 가진 바위다. / 사진·오종찬 프리랜서
문향(文鄕) 장흥의 숨결까지 ‘흠뻑’


▎기암괴석들이 장관을 이룬 구정봉 전경. ‘천자의 면류관 같다’는 천관산(天冠山)이란 이름을 붙게 한 바위군이다. / 사진제공·장흥군
최근엔 천관산 자연휴양림 구간을 택하는 등반객도 많다. 자연휴양림부터 진죽봉~환희대~연대봉까지 2.5㎞를 걷는데 1시간 30분가량이 걸린다.

천관산 억새는 보통 10월 초쯤 갈색에서 은색으로 변한 뒤 다시 흰색으로 바뀐다. 해가 뜨고 질 때면 다도해의 풍광과 어우러진 억새밭이 황금빛 파도처럼 장엄한 자태를 드러낸다. 산 곳곳에 솟은 기암괴석과 여러 동물 형상을 한 바위들을 보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사계절 모두 좋지만 가을철 등반객들이 특히 호사를 누리는 산이다.

산 정상인 연대봉부터 환희대~구룡봉을 잇는 2㎞ 구간은 억새가 특히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억새들이 자아내는 황금빛 능선을 배경으로 매년 10월 초 천관산 억새제가 열린다. 능선 곳곳에 핀 억새가 하얀 솜처럼 피어나는 모습이 등반객들의 혼을 빼놓는다. 올해는 지난 10월 9일 억새를 주제로 한 축제가 산 곳곳에서 열렸다.

연대봉은 고려 의종 때 봉화대를 설치했던 곳인데 전망이 매우 좋다. 출렁이는 억새 물결과 기묘한 바위들, 고즈넉한 다도해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을 때는 멀리 제주 한라산까지도 볼 수 있다.

억새능선의 중간인 환희대는 2013년 영화 <해적>을 촬영한 장소다. 옥새(玉璽)를 삼킨 고래를 잡기 위해 무기와 배를 구하던 산적들이 지친 몸을 쉬던 바위다. 해적으로 전업을 하려던 산적들이 멀리 바다가 보이는 산 위에서 넋을 잃고 쉬는 모습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기암괴석인 환희대와 구정봉 일대의 절경은 죽을 고생한 산적들의 얼굴이 왜 그리도 평온했는지 짐작케 한다. 산 전체가 명소인 천관산에서도 정상에 오른 성취감과 기쁨을 가장 많이 느끼는 장소다.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구룡봉에 오르면 바위 사이에 핀 억새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연대봉~환희대와 함께 큰 삼각형 모양의 ‘억새능선’을 이루는 뷰(view) 포인트다. 웅장한 바위능선과 풍화혈(風化穴) 사이에 핀 억새밭 너머로는 멀리 남해바다가 손에 잡힐 듯 펼쳐져 있다.

천관산 ‘억새능선’에 유명세를 더한 것은 노을과 운무다. 황금빛 억새밭에서 석양과 운무가 연출해내는 절경은 산행의 묘미를 더한다. 천관산은 변화무쌍하다. 한낮에 내리쬐던 햇빛이 약해지면 억새들은 서걱거리며 변신을 시도한다. 솜털 같은 눈꽃을 틔운 억새들이 석양에 물들 때면 산 전체가 온통 노란빛으로 물든다. 서서히 노란색이 진해지는가 싶으면 어느새 금빛, 붉은빛으로 바뀐다. 해가 뜨고 질 때의 황금빛 억새는 그 자체가 환상적인 피사체(被寫體)다.

노을과 운무가 만들어낸 절경은 백미(白眉)


▎억새능선에서 바라본 장흥의 황금들녘. 관산면에서 회진항까지 이어진 들판 너머로 득량만이 보인다. / 사진·오종찬 프리랜서
다도해를 낀 ‘땅끝’의 억새는 남다른 풍모를 지녔다. 남도의 끝에서 보는 가을 억새는 쓸쓸하면서도 고즈넉한 정취를 품고 있다. 산 정상 쪽 환희대에 앉아 뜨고 지는 해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시 한 수가 떠오를 듯하다. 이런 억새꽃은 하루에도 수차례 다른 빛깔로 변신한다.

천관산 억새가 좋은 것은 진한 가을 추억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넓디 넓은 산등성이를 가득 메운 광활한 억새밭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틔워준다. 먼발치부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등산객들을 반기는 모습은 오랜 친구처럼 정겹다. 비단처럼 보드라운 억새꽃에 뺨을 대보면 억새의 따뜻한 손길이 느껴진다.

빽빽한 억새밭 틈새로 피어난 들꽃을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등산로 곳곳에 자라난 꽃들은 억새들 사이에서 간간이 고개를 드러내며 등산객들을 맞이한다.


▎천관산 등산로에 자리한 탑산사 전경. 다도해와 득량만의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천년고찰이다. / 사진·최경호
만개한 억새밭에 운무가 끼면 더욱 장관이다. 바다를 품은 이 산에선 맑은 날에도 5~10분씩 짙은 운무가 끼곤 한다. 해질 무렵 천관산의 ‘억새능선’에는 운무가 산 전체를 덮었다가 걷히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된다. 회색빛 운무가 산등성이를 타고 넘어가는 광경은 수천 마리의 새들이 억새밭으로 날아드는 형국이다. 억새들을 향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운무의 파도는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신묘함을 준다.

잿빛 운무 너머로 살짝살짝 드러나는 남해바다와 섬들, 황금 들녘의 자태도 매력적이다. 산 전체를 휘감은 억새의 향연은 농촌의 한가로운 풍경마저도 절경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 변덕스러운 운무는 갑작스레 산허리 아래로 사라진다. 언제 그랬냐는 듯 운무가 걷히면 사방이 다시 억새빛으로 환해진다. 다도해 앞바다가 ‘훅’ 하고 부는 바람에 온 산을 뒤덮었던 구름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운무가 사라진 자리에 노을이 비치면 산 곳곳에 다시 붉은빛이 감돈다.

억새밭의 황홀한 변신에 눈이 멀다 보면 자칫 하산길이 힘들어질 수 있다. 석양에 물든 억새에 마음을 빼앗겨 머뭇거리다 보면 시간이 흐르는 것조차 잊게 된다. 해가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신선놀음을 하다 보면 금세 산 전체에 어둠이 깔린다. 해가 떨어져 캄캄해진 산길을 내려오는 등산객이 유난히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해 질 녘의 억새는 나른하다. 똑같은 고갯짓인데도 석양을 맞는 억새는 한결 한가하면서도 차분하다. 이때쯤이면 억새 밭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다 잠이 쏟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억새와 가을 정취가 어우러진 천관산에선 외로움과 적막감마저 심신에 편안함을 준다.

- 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박스기사] 정남진 토요시장서 맛보는 ‘장흥 삼합’ 별미


장흥은 청정해역인 득량만과 탐진강을 끼고 있어 물산이 풍부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청정한 남해바다와 황금 들녘 곳곳에선 키조개와 매생이·김·전어·장어·표고버섯 등이 풍성하게 생산된다. 최근에는 장흥산 한우와 키조개·표고버섯을 함께 먹는 ‘장흥 삼합’은 외지인들에게 인기를 누린다. 장흥읍 정남진 토요시장에는 식당 24곳이 모여 한우삼합을 판매하고 있다. 부드러운 한우와 쫄깃쫄깃한 키조개, 표고버섯의 진한 향이 어우러져 고소하면서도 깊은 맛을 낸다. 겨울철에는 웬만한 읍내 식당에선 장흥산 매생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가을 천관산 여행을 더 한층 즐겁게 해줄 정남진 맛집들을 소개한다.

천관마루: 장흥 특산물인 표고버섯 요리가 일품이다. 표고 키조개전골은 참나무에서 자란 표고버섯과 키조개 특유의 맛과 향이 어우러져 감칠맛을 낸다. 오리주물럭구이·오리탕·매생이 탕을 맛깔스러운 반찬들과 함께 맛볼 수 있다. 상에 오르는 반찬 대부분은 주인이 직접 재배한 채소와 음식재료로 만든다. 061-867-2366(장흥군 관산읍 당월길 37)

청송횟집: 회진면사무소 옆에 위치한 장어 전문집. 바닷장어를 통째로 넣은 장어탕은 식감이 좋고 얼큰한 맛을 낸다. 각종 해산물과 전어·농어·돔·도다리 등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15세 때 어부가 된 주인이 바다에서 잡아온 생선을 부인이 회를 쳐서 내놓는다. 전어 회무침과 전어구이·우럭탕도 입맛을 당긴다. 061-867-6245(장흥군 회진면 회진중앙길 16)

삼거리식당: 청정해역인 득량만에서 막 건져 올린 식재료만 사용한다. 메인 요리인 해물탕은 살아있는 싱싱한 해물들로 조리를 한다. 닭해물찜과 연포탕·장어볶음도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정갈하고 맛깔스런 반찬을 푸짐하게 차려내는 상차림도 유명하다. 음식에 조미료를 쓰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061-867-1915(장흥군 대덕읍 대대로 1033)

대도식당: 주말이면 장어 양념전골을 먹기 위해 전국에서 식객이 찾는다. 매콤한 고추장 양념으로 맛을 낸 전골은 신선한 바다장어의 맛과 어우러져 깊은 국물 맛을 낸다. 외지인들이 많이 찾는 각종 축제 때면 장어전골과 복탕·갈치찜·아귀찜을 맛보려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곤 한다. 061-867-1039(장흥군 대덕읍 거정2길 14-24)

여행정보: 장흥은 승용차를 이용하면 서울톨게이트에서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서울 센트럴시티 고속버스터미널과 장흥을 오가는 버스는 하루 6차례 운행된다.

장흥에서는 천관산 억새제, 제암산 철쭉제, 정남진 물축제 등이 매년 개최된다. 9월 29일 개막한 국제통합의학박람회는 10월 31일까지 열린다. 매주 토요일에 전통 장이 서는 정남진 토요시장은 국내 재래시장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각종 문화공연과 장흥 삼합 등을 즐길 수 있는 테마형 시장에는 연중 관광객이 몰린다. 편백나무가 우거진 숲 속에서 삼림욕을 할 수 있는 ‘편백숲 우드랜드’도 호남의 대표적인 숙박시설이다. 자세한 여행정보는 장흥여행(travel.jangheung.go.kr)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611호 (2016.10.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