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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특별기고] 천명(天命)은 이미 박근혜를 떠났다! 

 

혁명은 썩은 살을 도려내고 부드럽게 만드는 무두질의 변혁…막강한 권력의 횡포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은 5천만의 울분, 그 불덩어리

법철학자 루돌프 폰 예링은 “법조문 하나도 투쟁을 거치지 않고서 얻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지만,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일 뿐이란 통찰이다. 고정된 사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동하는 힘으로서의 법을 예링은 웅변한다. 불법에 대한 저항은 인간됨의 의무,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다. 도덕적인 자기보존의 준엄한 명령, 바로 2016년 국민이 듣고 있는 시대의 목소리다.


▎11월 12일 청와대 광화문과 시청 등 도심을 가득 메운 100만 군중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 사진·중앙포토
혁명(革命)이란 무엇인가? 명(命)을 혁(革)한다는 뜻이다. 혁은 타동사로서 명을 목적어로 삼는다. 명은 천명(天命)을 말함인데, 혁은 <주역>의 괘상(卦象)에서 왔다. <주역>의 64괘 중에 49번째 괘가 혁괘인 것이다. 그런데 이 혁괘는 상괘가 태괘로서 연못(澤)을 의미하고 하괘가 리괘로서 불(火)을 의미한다. 생각해보라! 불덩어리가 연못 한가운데 있으니(택중유화, 澤中有火) 그 불덩어리의 치성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불 위에 많은 물이 있으면 당연히 그 불은 꺼지게 마련이다. 11월 12일 광화문광장에 모인 100만 민중의 울분은 연못 속에 눌린 불덩어리 형상이다. 아직도 거대한 연못과도 같은 막강한 물이 5000만의 불덩어리를 휘덮고 있는 형상이다.

그러나 그 불(火)이 연못(澤)을 치고 올라온다. 나는 어려서 <주역>을 읽을 때부터 이 혁괘의 택중유화(澤中有火)의 강렬한 이미지에 항상 전율을 느끼곤 했다. 5000만의 울분, 그 불덩어리는 이미 홍수 같이 밀려드는 막강한 권력의 횡포를 이겨낼 수 있다! 그 괘사(卦辭)는 매우 단순하다. 회망(悔亡)! 혁명이 바른 시기에 바르게 이루어지면 민중의 울분과 원한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회망하지 않는 한 혁명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단전(彖傳)에 말하기를, 재미있게도 혁명은 “두 여자가 동거해서 일어난다(二女同居)”고 했다. 언뜻 황당하게 보이지만 <주역>의 예지는 참으로 놀랍다! 두 여자를 박근혜와 최순실로 대입시켜도 전적으로 무방하다. 박근혜와 최순실, 이 두 여자가 동거했으니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방고전의 지혜인 것이다.

<주역>에는 ‘설괘전(說卦傳)’이라는 해설적 문헌이 날개로 붙어 있는데, 그 ‘설괘전’ 속에서 태괘는 소녀(少女: 작은 딸, 건과 곤을 부모로 상징해서 하는 말)가 되고 리괘는 중녀(中女: 중간 딸)가 된다. 소녀와 중녀가 위아래로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와 최순실이 매우 사이가 좋았던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수화상식(水火相息)’의 꼴이라고 ‘단전’은 말한다. 물과 불이 서로를 잡아먹고 있는(熄滅) 꼴이라는 것이다. 소녀와 중녀는 본시 서로 동거(同居)해서는 아니 되는 사이인 것이다.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파국으로 이끌게 된다는 것이다.

법의 생명은 투쟁이다!


▎도올은 [주역]의 혁괘를 해석해 11월 12일 광화문 광장에 모인 군중의 울분은 연못 속에 눌린 불덩어리의 형상이라고 설명했다. / 사진·중앙포토
보통 혁(革)이라는 글자는 가죽의 뜻으로 쓰인다. 자형(字形)을 잘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동물의 머리와 가슴 정중앙을 갈라 옆으로 쫙 작대기 같은 것을 꿰어 펼쳐놓은 형상이다. 혁은 가죽이다. 가죽은 서양에서는 모든 문헌의 자료 구실을 했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의 불가결한 도구였다. 혁은 ‘삶의 헌법’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깐 가죽이란 썩은 살을 도려내어 무두질을 계속하여 아름다운 무늬(질서)가 있는 헌장으로 변화시킨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썩은 살을 도려내고 부드럽게 만드는 무두질의 변혁을 혁(革)이라고 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법조문 하나도 투쟁을 거치지 않고서 얻어진 것은 없다”라는 루돌프 폰 예링(Rudolf von Jhering, 1818~1892)의 말을 연상할 수 있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지만,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일 뿐이다. 법의 생명은 투쟁이며, 그것은 민족과 국가권력, 계급과 개인의 투쟁에 있다. 법은 고정된 사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동하는 힘이다. 우리 평범한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에 대한 저항은 우리의 인간됨의 의무이다. 그와 같은 저항은 권리자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이다. 그 저항은 도덕적인 자기보존의 명령이며 사회에 대한 의무이다. 법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저항이 필요하다!

맥락은 다르지만 ‘단전’은 혁명의 주체는 문명(文明)의 덕을 갖추어야 하며, 시(時)의 마땅함(當)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근원적으로 민중의 원망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유명한 메시지를 발한다.

“천지혁이사시성(天地革而四時成)”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늘(天)과 땅(地)은 가만히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오로지 끊임없이 변혁됨으로써만이 사시(四時)라는 시간의 질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천지 그 자체가 끊임없이 혁명을 함으로써 사시의 코스모스가 이루어지고 있듯이 인간세도 끊임없이 혁명됨으로써만, 썩은 살이 계속 도려내어짐으로써만, 그 질서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혁명 없는 질서는 없다. 그리고 나서 ‘단전’은 하나라를 은나라로 바꾼 탕왕(湯王)의 혁명, 그리고 은나라를 주나라로 바꾼 무왕(武王)의 혁명을 예찬한다.

“탕무혁명(湯武革命), 순호천이응호인(順乎天而應乎人).”

탕임금과 무왕의 혁명은 하늘의 때를 따랐으며, 민심의 소리에 상응하였다는 것이다. 혁명은 명을 혁파하는 것이다. 명이란 천명(天命)이다. 그러나 천명은 결국 민심(民心)이다. 민이 가장 고귀한 것이다. 군이란 가벼운 것이다(民爲貴, 君爲輕). 민심을 배반한 지도자는 이미 지도자가 아니다.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것이다.

제선왕이 맹자에게 묻는다. “무왕이 주임금을 토벌하였다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가 대답한다. “기록에 전하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신하된 자로서 군을 시해한다는 것이 가합니까?(臣弑其君, 可乎)” “인(仁)을 해친 자는 도둑놈이라 부른다. 도둑놈은 임금이 아니라 한 또라이새끼일 뿐이다. 나는 한 또라이새끼 주를 죽였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聞誅一夫紂矣, 未聞弑君也)” 우리 동방의 사상은 혁명의 도덕적 정당성을 적극 시인한다.


▎촛불 민심이 전하는 혁명의 지혜는 “우물도 끊임없이 퍼내지 않으면 만인이 같이 먹을 수 있는 우물로 개방될 수 없다”는 것이다. / 사진·중앙포토
박근혜는 이미 우리의 지도자가 아니다. 박근혜에게는 이미 대통령의 명(命)이 떠났다. 천명이 이미 그를 버린 것이다. <주역>의 ‘단전’은 이와 같이 장엄한 메시지로써 혁괘에 대한 해설을 종결한다.

“혁지시대의재(革之時大矣哉)!”

아~ 위대하도다! 혁명의 때여! 여기서 말하는 때(時)는 크로노스(물리적 시간의 추이)가 아닌 카이로스(결정적인 타이밍)다. 예수가 “때가 찼고 하나님나라가 가까웠다(The time is fulfilled, and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라고 말했을 때의 그때이다! 우리는 혁명의 그때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자아, 그런데 혁괘의 전후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혁괘의 앞 괘인 48번째의 괘는 우물을 의미하는 정괘이다. ‘서괘전(序卦傳)’은 정괘(井)에 혁괘(革)가 따라붙는 것은 우물 또한 끊임없이 퍼내어 혁하지 않으면 썩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우물도 끊임없이 퍼내지 않으면 만인이 같이 먹을 수 있는 우물로서 개방될 수가 없다. 박근혜는 최순실과 함께 우물의 뚜껑을 덮어놓고 고여 썩은 물만을 몰래 퍼먹고 있었던 것이다.

자아, 그런데 혁괘(革)는 또다시 정괘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 우리는 우리의 작금의 사태를 바라보는 중요한 예지를 발견하게 된다. 혁은 정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과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치국의 방략을 논할 수 없는 사고의 구조


▎사진·중앙포토
혁은 혁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정을 성취해야만 한다. 정이란 무엇인가? 정(鼎)은 경복궁 대궐의 한 켠에 놓여있는 것과도 같은, 고래의 거대한 삼발이 청동그릇이다. 정은 세 발이기 때문에 어디다 놓아도 굳건히 자리 잡는다. 그것은 제왕 권력의 안정성과 권위를 상징하는 고대사회의 가장 으뜸가는 보물이다. 정(鄭)나라의 재상 자산(子産)이 BC536년, 법을 이 정에 새겨 주조하였다는 것은 매우 유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정은 한 나라의 헌법을 상징하기도 하는 입국(立國)의 보기(寶器)인 것이다. 혁의 경우 물과 불이 직접 대치하고 있었으며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는 형국이었다(水火相息). 그러나 정(鼎)의 경우는 불이 그 밑에서 타올라도 정 안의 물이 직접 상극의 파괴를 일으키지 않고 그 안의 쌀을 끓여 제사의 밥을 만든다.

수화상극의 성질이 상생지용(相生之用)으로 창조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바로 지금 이 시점 우리가 혁명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는 것은 위대한 혁(革)의 카이로스를 맞이하여 과연 어떠한 새로운 안정된 정(鼎)을 주조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나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미 오늘의 사태를 예견하였고 공적으로 명언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는 박근혜라는 한 자연인의 인품과 교양의 수준, 그리고 성장과정에서 초래된 성격의 파탄, 그리고 도저히 치국의 방략을 논할 수 없는 사고의 구조를 일찍이 간파(看破: 선종에서 잘 쓰는 말)하였고, CBS 김현정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아니 될 사람이라고 단언하였다. 김현정은 원래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말도 시원시원하게 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의중을 꿰뚫고 논리의 허점을 파악하여 날카롭게 쑤시고 들어오는 장기가 있다. 나는 김현정과의 대화를 매우 좋아한다. 우리 시대의 가장 유능한 뉴스 앵커 중의 한 사람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 김현정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만약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요?” 나는 주저없이 말했다. “환관들만 청와대에 우글우글 들끓게 될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 두 여중생의 모습. 거대한 촛불 행렬에는 남녀노소가 모두 모여 황폐화된 국정을 걱정했다.
환관이란 불알 발린 놈들이니까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온전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나는 불쑥 이런 말을 꺼내게 되었을까? 나는 미래예언자도 아니요, 점쟁이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뭐 대단한 형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때 나는 마침 명(明)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 <명사(明史)>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뭐 대단한 기원을 마련한 인물인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유례를 보기 힘든 독재자였다. 그가 일단 권력을 잡고 나니까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개국 공신들이었다. 재상 호유용(胡惟庸)을 천자암살음모라는 죄를 덮어씌워 가혹하게 죽이는데, 그 죽임에 연좌되어 죽은 자가 1만5000명이나 되었다. 수만 명씩 주륙당하는 이러한 재앙이 수차례 일어났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역사적 전변은 주원장의 아들인 연왕(燕王) 주체(朱棣)-후의 영락제(永樂帝)-가 주원장의 황태손인 제2대 천자 건문제(建文帝)를 폐위시킨 사건이다. 연왕이 조카인 건문제를 폐위시켰으니, 이것은 우리나라 세조의 찬탈과 매우 유사한 사건이다.(시기도 비슷하다)


▎11월 4일 2차 사과담화를 마치고 고개 숙이는 박근혜 대통령. 그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더 크게 타올랐다. / 사진·중앙포토
연왕은 북경에서 군사를 이끌고 남하하여 수도 남경을 쳐들어갔는데, 그때 연왕의 측근들조차 금화학파의 종장인 대유 방효유(方孝孺, 1357~1402)만은 죽이지 말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당시 방효유는 명나라 지식인의 종장이었기 때문에 연왕은 그의 쿠데타를 방효유에게 인가받아야만 했다. 연왕이 남경을 점령한 후 방효유는 근정전의 뜨락으로 불려갔다. 그곳에 지필묵을 깔아놓고 겸손한 척 허리를 굽히면서 즉위의 조칙(詔勅)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방효유는 지체 없이 붓을 들어 “연적찬위(燕賊簒位)”(연나라의 도적놈이 정통의 위를 찬탈하였다)라 쓰고 먹 묻은 붓을 연왕의 면전에 던진다. 격분한 연왕은 그 자리에서 방효유의 귀를 자르고 입을 찢는다. 그리고 9족이 아닌 10족의 주멸을 명한다. 10족 주멸은 중국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것이다. 그 당장에 죽은 자가 73인, 그 절기에 일족 말단까지 합하려 3000여 명이 학살되었다. 금화학파의 고고한 사혼이 여기서 단절되었고, 방효유의 부인과 딸이 노예의 부인이 되고 관기가 되는 치욕을 겪어야만 했다. 명나라는 결국 사대부 지식인들이 이 사건으로 조정에 등을 돌리게 됨으로써 멸망하고 마는 것이다.

중국역사에서 전제(專制)라는 말과 독재(獨裁)라는 말은 학술용어로서 차이가 있다. 전제는 군주가 혼자 다 판단하고 결재하는 것을 말한다. 전제는 군주의 정력과 능력을 전제로 한다. 명태조 주원장이나 영락제는 전제군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전제를 행할 수 있는 군주는 극히 드물다. 정무는 관료에게 맡기고 최후 결재만을 내리는 정치양식을 독재라 말하는데, 독재자의 경우는 대부분이 허약한 인간이라서 그 정무는 환관의 수중에 떨어지게 마련이다. 박근혜는 전제형이 아닌 독재형의 인간이다. 진시황이나 주원장처럼 자기가 스스로 자기의 능력으로 대업을 성취하고 정무를 전횡하는 전제군주가 아닌 것이다.

십일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진달래를 키워내고…


▎시위에 참여한 군중들 중에는 가족 단위로, 특히 어린아이들까지 데리고 참여한 사람들이 많았다. / 사진·중앙포토
박근혜라는 인간의 삶의 특징은 ‘격절’이다. 대화나 개방이나 섞임, 그리고 생각의 교류가 전무한 ‘격절의 인간’이다. 최근 추미애 대표가 영수회담을 제안했다가 취소한 사건은 그 시말이 어떠했든지 간에, 의총의 대화가 있었고 생각의 교류가 있었으며 그 교류의 합리적 방안에 따라 자기의 의사를 취소했다. 이것이 바로 정치요 정상적인 인간이 걸어가는 도리이다. 공자도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라 했으니, 잘못을 저질렀으면 그것을 고치기를 꺼려하지 않는 것이 군자이다.

추미애는 군자라 말할 수 있다. 박근혜에게서는, 최근 김종필이 지적한 대로, 바로 이 “물탄개(勿憚改)”를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공자는 개탄한다. “잘못을 저지르고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잘못이다!(過而不改, 是謂過矣)”

명나라 조정은 내내 환관으로 들끓었다. 일본의 사학자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 1901~1995: 경도대학 학파의 거장)가 “명나라의 인민들은 대체적으로 말해 송나라의 인민보다 더 불행했다”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렇게 역사를 총체적으로 전관하여 말할 수 있는 그의 학식을 흠모했다. 아마도 박근혜 시대의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가장 불행한 시기를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국민 개개인의 의식의 심연에서부터 분노가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세월호 사건 때부터 이미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했다. 그때까지 아무도 감히 ‘하야’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나보고 용감하다고 말했으나 나는 별 공포심 없이 평심하게 한 말이다. 세월호 비극의 전 국민적 체험은 6·25전쟁을 전 국민이 텔레비전 화면으로 객관화시켜서 보면서 다시 체험하는 것에 상응하는, 대한민국 헌정사에 용서할 수 없는 거대사건으로 나의 의식에 부각되었다. 그래서 박근혜정부의 행태와 이승만의 6·25 전후의 행태를 비교하여 말하였던 것이다. 전쟁 이상의 사건이 터졌는데, 항상 외환보다 내우가 망국의 결정적 원인이라 말할 수 있는데, 내가 못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

나는 2016년 11월 12일 광화문 대집회를 향해서 국민들이 행진하도록 꾸준히 독려하였다. 김현정과의 대화를 시작으로, TBS텔레비전방송의 ‘품격시대’, 그리고 정봉주의 ‘전국구’,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11월 5일 내가 광화문 20만 인파의 무대 위에서 즉흥연설을 하게 된 사건이었다. 그때 나는 인파에 의해 무대 위로 떠밀어 올려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일주일 후에 반드시 이 무대 위에 서겠다고 민중과 약속했다.

나는 11월 12일, 약속대로 광화문 집회에 나갔다. 나가기 전에 김용민 군(김군은 팟캐스트 ‘김용민브리핑’을 운영하면서도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정규수업을 받는 착실한 생활을 하고 있다)을 통하여 주최측에 나의 출연을 상의하였고, 참여연대 사무처장 안진걸로부터 모시겠다는 약속을 용민 군을 통하여 전달받았다. 그래서 나는 백만 인파를 예상하고 즉흥연설은 결례라 생각하여 나 나름대로의 생각을 성실하게 요약하여 약 6분 낭독분의 연설문을 작성하였다. 그런데 막상 나가보니 몇 사람이서 강렬하게 내가 단상에 올라가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었다. 도대체 이 자리가 누구의 자리인데, 어느 한 사람이 마음대로 민주의 광장을 독점할 수 있단 말인가? 민주의 광장에도 물론 노래도 필요하고 만담도 필요하고 풍자와 구호의 반복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열광의 정열 속에 6분짜리 로고스를 심는 여유조차 배제해야 한단 말인가!


▎사진·중앙포토
십일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진달래를 키워내고
권력과 욕정을 뒤섞어
잠든 뿌리를 늦가을의 비로 깨운다
어느덧 민주의 광장에도
정의롭지 못한 내음새가 난다

나는 그 독단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투쟁해야만 했다.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민중과의 약속을 지켜야만 했다. 다음날 안진걸 군이 나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다!

왕정에서 민주로!

우리는 오늘, 신성한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이 땅 위에, 다시는 불의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도록, 진리와 정의와 자유의 횃불을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이 자리야말로 먼 훗날, 기나긴 왕정(王政)의 어둠을 민주(民主)의 광명으로 전환시킨 가장 결정적이고도, 가장 근원적이며, 가장 자각적인 혁명(革命)의 그때였다고 인류의 모든 역사가 기록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여러분들은 평화를 원하십니까? 전쟁을 원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자녀에게 공존과 사랑의 평화를 물려주시렵니까? 대결과 잔혹의 전쟁을 물려주시렵니까?

박근혜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애국적 결단


▎11월 12일 시청과 광화문광장에 모인 시위 군중은 건국 후 최대 규모였던 것으로 추산됐다. / 사진·중앙포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또다시 불확실과 불확정의 회오리바람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난주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을 때와는 또 다른 혼돈의 먹구름이 전 세계를 휘덮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힐러리가 패배했습니다. 힐러리로 대변된 미국 상층구조의 타성과 압제와 부패와 기만, 도덕불감증에 빠진 지성의 안일, 경제양극화를 극단화시킨 불평등의 죄악이 여지없이 패배한 것입니다. 그것은 트럼프의 승리가 아니라 미국 민중의 반역입니다. 1776년의 미국의 독립선언, 1788년 미국헌법이 비준된 이래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해온 모든 가치관이 결코 민주적이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한 민중이 더 이상 속을 수 없다는 것을 선포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제 미국은 갈등과 분열 속에서 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트럼프는 결코 미국사회 저변의 도덕적 열망을 구현하는 인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트럼프에 대한 판단을 보류해야 합니다. 확실한 것은 미국의 대중이 지속보다는 변화를, 안정보다는 전복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급격히 변하고 있습니다. 이 개변의 시대에, 우리는 트럼프의 한국에 대한 생각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논하고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의 의식 속에 먼저 트럼프정권의 미래진로를 형성할 수 있는 적극적 한국의 역사상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위대한 세계시민 여러분들께서 미국의 역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선도해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과의 대결을 원치 않으며, 평화적인 다양한 방법에 의한 통일을 지향하며,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통해 북핵을 제거시키며, 공존의 경제적인 번영을 세계인들과 더불어 누리고자 한다는 ‘평화의 이니셔티브’를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평화의 선포는 오로지 새로운 의식, 새로운 개벽의 지평 위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희망인 꽃다운 생명들이 세월호와 더불어 침몰하는 것을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방관하고, 혼의 비정상 운운하며 역사국정교과서를 강압적으로 제작하고, 남북의 유일한 통로였던 개성공단을 밑도 끝도 없이 폐쇄하고, 기나긴 협상 끝에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드배치를 불쑥 결정해버리고, 위안부문제를 일본침략자들의 구미에 맞게 합의해 버리며, 한일군사정보협정을 여론수렴 없이 일사천리 강행하며, 최순실이라는 사악한 존재의 농단과 농락에 국정전반을 팽개쳐버리는 그러한 정권, 끄떡하면 종북을 외치고, 반공으로 폭압하며, 북풍을 조작하는 그러한 박근혜 정권과 그의 모든 추종세력은 더 이상 국가의 운명을 관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더 이상 국가운영을 위탁할 수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이미 당신이 저지른 끔찍한 죄악은 사과나 타협이나, 혹은 질질 끌어서 모면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하루속히 물러나십시오. 아무리 깊게, 또 깊게, 또 깊게 생각해보아도, 오늘의 난국을 해결하는 열쇠는 당신의 양심의 용단에 매달려 있습니다. 하야하십시오! 당신의 하야야 말로 모든 난국을 정의롭게 수습할 수 있는 첩경이며, 대한민국 민주의 역사의 여정에 위대한 이정표를 수립할 수 있는, 그대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애국적 결단입니다. 이 민족을 전쟁의 위협과 민생의 파탄에서 구원하여 평화와 공존과 번영의 기쁨을 누리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언론제현에게 호소합니다. 주저 말고 한마음으로 박 대통령의 하야를 권고하십시오. 그러한 권고만이 우리나라 언론이 이 시대의 자랑스러운 사명을 다했다는 기록을 청사에 남기게 될 것입니다. 진보언론, 보수언론을 막론하고 다같이 나설 때입니다. 이 백만 민중의 함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천명(天命)이 이미 박근혜를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저는 대구 송현여고 조성혜양의 이 가냘픈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여러분 저는 두렵습니다.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이 다른 사건들처럼 점차 희미해지고, 변질되어 잊혀질까 봐!”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의지가 박약해지지 않도록 서로를 격려하며, 진리의 등불을 밝히며, 승리의 그날까지, 개벽의 그날까지, 하야의 그날까지, 투쟁! 투쟁! 투쟁! _2016년 11월 12일 광화문 광장에서

훌륭한 인격 갖춘 과도기의 총리 확보해야


▎촛불을 소중하게 감싸 안은 시위 참가자의 모습.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자신의 분노와 비판적 견해를 가장 평화로운 방법으로 표현했다.
내가 광화문 혁명의 광장에서 느낀 소감은 지도부의 부재, 아니 체계적인 혁명 비전의 부재, 다시 말해서 혁괘(革卦)를 넘어서는 정괘(鼎卦)의 방략이 부재한 것이다.

트로츠키가 혁명은 ‘광적 영감(mad inspiration)’이라 말했는데 모두 미쳐 돌아가기만 한다면 사태는 또다시 어디로 빠져나갈지 예측불허다! 광적 영감은 반드시 공조된 야3당의 정치권과 체계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현재 박근혜의 하야를 촉구할 수 있는 힘은 근원적으로 국민의 함성의 압박에서 온다. 그러나 그것은 기실 너무 추상적이다. 실상 그 구체적 압력은 두 소스밖에 없다! 언론과 검찰이다. 언론과 검찰이 정신 차리고 민족사의 혼을 망각치 않는다면 박근혜는 막다른 골목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태의 긴박함을 전제로 탄핵, 하야, 2선 후퇴, 질서 있는 퇴진 등등의 여러 방략이 있지만, 현재 정괘(鼎卦)의 핵심은 훌륭한 인격을 갖춘 과도기의 총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나는 이 <월간중앙>의 특별기획, 2017대선주자 릴레이 인터뷰를 맡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내가 평상적으로 아는 사람을 포함하면, 남경필, 안희정, 박원순, 문재인, 김종인, 손학규, 심상정, 이재명, 김부겸, 박지원 등과 매우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을 포함하여 대선후보로 꼽힐 수 있는 모든 인물들을 만나 인터뷰할 생각이었지만 이제 그러한 기획은 의미 없는 프로젝트가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기획을 맡으면서 내가 살고있는 현대사에 대하여 깊은 통찰과 혜안을 얻었다. 나는 그 과정을 통하여 ‘현대사’라는 말을 ‘지금사(只今史)’라는 나 자신의 학술용어로 바꾸게 되었다. 지금, 당장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에 대하여 확고한 통시적·공시적 인식을 가져야 되겠다고 생각했

다. 지금 이 순간의 역사의 빠홀과 랑그를 다 장악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사’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매일매일 급격하게 변해가는 역사의 홍류 속에서 지금사는 신문·텔레비젼 기자의 영역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철학자의 몫은 아니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지금사에서 다시 현대사 정도로 후퇴할 생각이다. 전체를 침묵 속에 관망하는 사색인의 입장으로 나는 물러날 것이다. 나는 진실로 해야 할 공부가 너무도 많다.

그 동안 나에게 이 무제약적인 지면을 허락해준 <월간중앙>과 <중앙일보>의 제현께 감사, 또 감사의 염을 표한다. 단지 이 시점에서 갑자기 절필한다는 것도 어색한 일이고 독자들의 기대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긴박한 역사적 국면에서 <중앙일보>가 나의 붓을 요청할 때는, 대선후보라는 전제가 없이 역사를 움직일 수 있는 결정적인 인물들과 대담을 계속 할 수 있다. 내가 국민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박근혜류의 정치적 인격과는 근원적으로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며, 우리나라 정치는 우수한 지도자들을 이미 기성의 장 속에서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혼란상을 생각할 때, 우리의 정치현실은 미국과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밝은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에 대하여 신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 우리는 대권후보를 논의할 계제가 아니다. 조만간 책임 있는 총리를 여야합의로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손학규나 김종인 같은 인물을 떠올리지만 이들에 대해서는 호오가 너무 극단적으로 갈려 정치권의 합의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인터뷰를 해가는 과정에서 책임총리로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 인물은 김부겸이다. 김부겸은 우선 TK출신인데도 불구하고 평생을 적극적인 민주투사로 살아왔다. 다시 말해서 지연이나 학연, 투쟁동아리 의식을 초월하는 민주적 가치가 치열하게 몸에 배인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한때 한나라당에서 의원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속한 민주계파의 이동에 따라 자동적으로 흘러가게 된 결과일 뿐이며 그가 자발적으로 민주당의 흐름에서 이탈한 것은 아니다. 그는 2003년 ‘독수리5형제’의 한 사람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했다.

내가 김부겸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의 ‘인간적인 안온함’이다. 그는 너무도 대하기가 편한 사람이다. 너무도 진지하게 타인의 말을 듣는다. 그리고 어떠한 사람에 대해서도 폄하의 발언을 하지 않는다. 그는 체질화된 휴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어리지도 않고 늙지도 않았다. 1976년 학번이니까 정계의 중핵을 형성할 만하다. 그는 여당의 국회의원들과도 매우 깊은 신뢰감을 구축해왔다. 나는 김부겸이야말로 이 과도기적인 시대에 위대한 과업을 달성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믿는다. 김부겸에게 나는 물었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주어지는 직분에 충실할 뿐이고 항상 천명이 맡겨주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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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호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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