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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취재] 최순실 사단의 3년8개월 국정농단 전모 

특별검찰, 청와대·검찰 진실 은폐 여부 밝혀야 

정효식·이동현 기자 jjpol@joongang.co.kr
안종범·차은택·정호성·송성각 등 ‘구속자 동지들’은 공범 또는 종범(從犯)… 우병우 前 수석 최순실 비리 내사과정에서 특별감찰 방해 의혹도 수사 필요

▎비선실세 논란으로 대한민국을 혼돈 상태로 빠트린 최순실 씨 모녀가 지난 6월 2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비덱 타우누스 호텔’ 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다. / 사진·뉴시스
모질고도 모진 41년 간의 악연이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고(故) 최태민(1912~1994)-최순실(60·구속) 이야기다. 아버지 최태민 15년, 이후 26년은 딸 최순실이 박 대통령의 후광을 빌려 사욕을 채웠다. 1977년 9월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최태민에 대한 친국(親鞠)을 시작으로 역대 정권마다 이들의 관계를 바로잡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맹목적 비호에 의해 실패했다. 그 결과 악연의 마지막 3년8개월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박 대통령의 운명도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아버지 최태민은 1975년 3월 6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영애였던 박 대통령에게 “꿈에 육영수 여사가 나타나 근혜양을 도와주라 했다”며 편지를 보낸 후 처음 만났다. 이후 대한구국선교단(새마음봉사단) 총재, 명예총재, 육영재단 회장·고문 등으로 행세하며 박 대통령이 1990년 11월 육영재단 이사장을 사퇴할 때까지 각종 비리의 원흉으로 지목됐다.

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시절 작성된 ‘최태민 비위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에서 기부받은 구국봉사단 자금 횡령이 2억2135만원, 인사청탁·토지불하·공사수주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해 알선수재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 2억1400만원 등 비리 액수가 4억원 넘게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1979년 10·26 직후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 지시로 도태구 서울지검 성동지청장을 팀장으로 40여 명의 인력으로 두 달 동안 최씨 비리를 조사한 결과 13억원가량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수사팀도 최씨가 당시 “근혜 양이 봉사단 예금통장 등 모든 것을 관리한다”고 책임을 모두 떠넘김에 따라 사라진 돈의 행방을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1980년대 영남대재단과 육영재단에서도 최씨가 기부금 부정입학(4억3000만원), 경주 불국사 토지 매각(11억원), 육영재단 새마음병원 매각(3억5000만원) 등을 통해 이권을 챙겼다는 증언도 계속 나오고 있다. 현재 수천억 원대에 이르는 순득·순실·순천 세 자매의 재산의 원천이 됐다는 게 조순제(2008년 작고) 전 영남대재단 이사 등 당시 임직원들의 증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이 분노하고 모욕감을 느낀 건 최씨 일가의 과거가 아니다. 최순실이 지난 3년 8개월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라는 정호성(47·구속)·안봉근(50)·이재만(50) 전 비서관을 수족처럼 부리고 안종범(57·구속)·조원동(60) 전 경제수석을 통해 정부 부처와 대기업을 마음대로 움직이며 국정을 파탄시킨 때문이다.

최씨는 53개 대기업으로부터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 원을 걷고, 청와대 수석과 장·차관, 승마협회 등 각종 공공기관장 인사에 개입하고, 국책사업인 ‘문화창조’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이권사업으로 변질시켰다. 최씨를 배경으로 현 정부의 ‘문화계 황태자’로 불린 차은택(47·구속)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은 새로운 국민체조(‘늘품체조’)까지 이권에 활용했을 정도다.

이렇게까지 최씨가 국정을 파탄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들 범죄행위에 직접 관여했기 때문이란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점차 밝혀지고 있다. 안종범 전 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은 물론 재단에 기부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등 대기업 사주들도 검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지난해 7월 24일 박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 17명을 청와대로 불러 “한류 확산을 위해 기업들이 도와줘야 한다. 재단을 만들어 민관 합동으로 지원하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대통령은 당일인 24일과 다음날인 25일 청와대와 시내 한 호텔에서 7대 그룹 총수와 별도로 만나 “재단 설립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직접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언급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2012년 대선 전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구상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CF감독 차은택 씨나 미르재단과 관련된 행사에 자주 참석했다. 2014년 8월 차씨 연출 뮤지컬 ‘원데이’ 공연 직전에 차씨와 함께 무대에 선 박 대통령. / 사진·중앙포토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는 당시 독대 직전 안종범 전 수석이 7대 그룹에서 정부에 요구하는 현안을 받은 후 실제 대통령과 대화 내용을 종합해 작성한 ‘7대 그룹 현안 메모’(안종범 메모)를 압수수색에서 확보했다. 여기에 총수의 특별사면을 부탁하는 ‘경영 공백 해소’나 ‘기업 인수·합병’ 등의 청탁성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검찰은 안종범 메모를 근거로 7대 그룹이 독대 3개월 후부터 미르재단(2015년 10월), K스포츠재단(2016년 1월)에 출연한 자금에 대가성이 있다고 보고 박근혜 대통령과 안종범·최순실 등 세 명을 제3자 뇌물수수 공범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삼성그룹 204억원, 현대차 128억원, SK 111억원, LG 78억원, 포스코 49억원, 롯데 45억원, GS 42억원, 한화 25억원, KT 18억원, LS 13억원, 두산 11억원, 한진 10억원 등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안종범 전 수석은 구속 이후 검찰에서 “지난해 10월 박 대통령이 미르재단 설립 준비 상황을 물었으나 실무 준비가 거의 되지 않은 사실을 알고 역정을 냈다”고 진술했다. 박 대통령의 역정에 안 전 수석이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 같은 해 10월 25일 기금을 내라는 공문을 각 기업에 보내고 이튿날인 26일 설립 신청서를 냈다. 다음 날인 10월 27일 문체부 승인까지 미르재단 설립이 사흘 만에 일사천리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앙일보> 태스크포스팀은 “최순실 씨가 재단 설립을 구상한 건 2012년 대통령선거 직전부터였다”는 증언을 받아냈다. 측근 A씨는 “최씨는 이미 박 대통령 당선 전부터 ‘재단-주변 회사(페이퍼 컴퍼니)’ 형태의 사업구상을 설명하곤 했다”며 “이 같은 최씨의 초기 구상을 구체화 한 것은 차은택이었다”고 말했다.

차씨의 측근인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 김홍탁(55) 대표가 재단 설립 8개월 전인 지난해 2월 직원들에게 재단에 대해 설명하는 녹취록도 확보됐다. 김 대표는 녹취록에서 “(사업에) 돈 대주는 물주는 있는 거지. 재단이래 재단”이라며 “(재단은) 확실한 한 조직을 이루는 단체로 박근혜 대통령을 추앙하는 그런 모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단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재산이 어마어마한 사람들”이라며 “재단 중 한 사람이 포스코 회장(권오준)”이란 말도 했다.

11월 8일 오전 6시40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수사관 수십 명이 삼성그룹의 심장인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40층에 있는 그룹 미래전략실에 들이닥쳤다. 검찰이 삼성그룹의 심장인 본사 사옥을 압수수색한 건 2008년 4월 특검 수사 이후 8년만 이었다. 삼성그룹이 두 재단에 204억원이라는 가장 많은 돈을 낸 것과 별도로 삼성 계열사들이 지난해 9~10월 최씨가 독일 현지에 설립한 코어스포츠(현 비덱스포츠)로 280만 유로(약 35억원)을 송금한 경위를 수사하기 위해서였다.

삼성전자(박상진 사장)는 지난해 2월 한화생명(차남규 사장)으로부터 승마협회 회장사를 넘겨 받았다. 이어 “골프의 박세리, 피계의 김연아 선수처럼 승마의 국민적 우상 탄생에 적극 지원한다”는 ‘대한승마협회 중장기 로드맵’(2015년 10월)에 따라 최씨의 딸 정유라(20) 씨를 포함한 승마 유망주의 독일 현지 전지 훈련과 말 구입 비용 명목으로 해당 비용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의 수족 역할을 했던 정호성(왼쪽) 비서관과 안종범 수석 역시 구속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김종찬 대한승마협회 전무이사는 “협회는 삼성의 후원금 전달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우리를 통하지 않고 삼성이 직거래한 것”이라고 검찰에 진술했다. 이 때문에 삼성-정유라 지원은 승마협회가 아니라 삼성물산 회장 출신인 현명관(75) 마사회 회장이 가교 역할을 한 것이란 의혹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의혹이 제기된 것은 삼성이 지난해 5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구 에버랜드)간 합병을 추진할 당시 삼성물산 최대 주주였던 국민연금(9.79%)이 찬성했기 때문이다. 홍완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당시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반대 의견을 냈음에도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가 찬성 결정을 내려 최씨와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또 2014년 11월 한화그룹과의 삼성탈레스·삼성테크윈 등 방산(防産) 및 화학사 ‘빅딜’ 과정도 도마에 올랐다. 한화그룹 쪽에서 “빅딜의 전제조건으로 승마협회 회장사 인수를 요구했다”는 삼성 측 주장이 나오면서다. 지난해 3월 한화-삼성 간의 공정거래위원회 최종 승인 과정에 정호성(47·구속)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이에 대해 한화그룹은 “빅딜 협상이 진행되기 전 이미 회장사를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승마계가 인천 아시안게임(2014년 10월)까지만 맡아달라고 했던 것”이라며 “한화생명에서 빅딜과 상관없이 삼성이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개별적으로 제안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반면 삼성 고위 관계자는 “빅딜 협상 당시 고용승계 등을 해결할 문제가 많아 한화의 요구조건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최씨 모녀를 지원한 데 대해 삼성 측은 “최순실 씨와 가까운 승마계 실세인 박원오(66) 전 승마협회 전무가 이른바 ‘200억원 지원 프로젝트’를 제안하면서 협박했고, 회장사를 맡은 뒤 최씨가 직접 접근해와 어쩔 수 없이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롯데에 70억원 추가 요구했다 돌려줘


▎최순실 씨가 수많은 기자에 둘러싸인 채 10월 3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롯데그룹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45억원을 냈다. 하지만 국세청은 올해 3월 롯데건설, 4월 호텔롯데·롯데하이마트 등 전방위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그런 롯데그룹 본사로 3월 17일 정현식(63)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 등이 “경기도 하남 스포츠센터 건립에 필요하다”며 70억원을 추가로 요구해 5월 6개 계열사가 돈을 송금했다.

그런데 한 달만인 6월 7일 K스포츠재단은 “돌려주겠다”는 공문을 보내온 후 6월 9일부터 13일까지 당초 송금한 계열사별로 돈을 돌려 보냈다. 다음 날인 6월 10일 서울중앙지검 롯데 수사팀은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와 신격호 총괄 회장, 신동빈 회장의 집무실 및 자택 등을 대대적으로 압수 수색했다. 결국 K스포츠재단이 롯데그룹 수사착수 사실을 청와대로부터 미리 전해들은 후 문제의 돈을 돌려보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에 대해 대기업 모금의 실무 책임자였던 안종범 전 수석도 검찰에서 “롯데로부터 추가로 70억원을 받고 돌려준 경위에 대해선 나중에야 들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최순실씨나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 다른 경로로 롯데 추가 모금과 반환이 이뤄졌다는 뜻이다.

두 재단에 111억원의 출연금을 낸 SK그룹과 3억원을 낸 부영그룹도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추가 요구를 받았지만 내지 않았다고 한다.

SK그룹에는 올해 2월 K스포츠재단이 80억원을 추가로 낼 것을 요구했다. 지난해 최태원(56) 회장은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이 됐지만 동생 최재원(53) 수석부회장은 복역 중이던 시점이다. 고심하던 SK 측은 “사업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금액이 너무 많다”며 30억원만 추가 출연할 것을 역제안했다. K스포츠재단은 SK와 협상 과정에서 결국 추가출연 요구를 포기했다고 한다.

부영그룹의 경우 올해 2월 26일 정현식 전 사무총장 등 K스포츠재단이 이중근 회장을 만나 70억~80억원을 추가 요구하는 자리에 안종범 전 수석이 직접 배석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이 같은 제안에 “최선을 다해 도울 수 있도록 하겠다. (국세청에서) 부당한 세무조사를 받게 됐는데 이 부분을 도와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결국 부영 측의 세무조사 무마 요구가 부담돼 추가 모금도 무산됐다.

차은택은 문화창조 예산, 장시호는 평창올림픽 겨냥


▎박근혜 대통령이 10월 24일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치고 발언대를 내려오자 김종훈 무소속 의원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최순실 씨가 최측근 차은택 전 본부장과 조카 장시호(37, 최순득 씨 딸)씨를 통해 수천억 원대 대형 국책사업까지 개입한 것은 국정농단의 또 다른 양상이다. 차씨가 2014년 기획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과 장씨가 주도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이권 개입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별한 직업이 없는 가정주부 최씨가 권력을 손에 쥔 것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장·차관, 국책사업 추진본부장 등 고위직 인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씨는 박 대통령 등에게 부탁해 유명 가수 뮤직비디오 감독자이자 CF감독이던 차씨를 2014년 8월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 같은 해 9월 인천아시안게임 개·폐막식 연출, 10월 이탈리아 밀라노엑스포 한국관 총감독에 임명했다. 이어 2015년 3월 미래부·문체부 1급 공무원 자리인 창조경제추진 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에 임명했다. 2014년 8월 차은택의 홍익대 대학원 지도교수였던 김종덕(59) 씨를 유진룡 전 장관 후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2014년 12월엔 차씨 외삼촌인 김상률(56) 숙명여대 교수를 대통령교육문화수석, 차씨 광고계 선배인 송성각(58·구속) 씨를 한국콘텐츠진흥원장에 앉혔다.

이어 최순실·차은택 사단은 2014년 중반 문화체육관광부 국책사업으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을 기획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본떠 만든 ▷민관합동 문화창조융합센터(서울 상암동)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 내에 조성한 문화창조 벤처단지(서울 청계천로) ▷한류 테마파크 및 관광단지 K-컬처밸리(경기 일산) ▷문화창조벤처 스타트업 기업인을 육성하는 문화창조아카데미(서울 홍릉동) 등이 핵심 4대 사업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2월 11일 문화창조융합밸트 출범식에서 “문화창조융합벨트가 문화 콘텐트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관련 사업예산은 날개를 단 듯이 늘어났다. 사업 첫해인 2014년 71억원이던 예산은 119억원, 903억원, 1278억원, 1870억원, 1870억원으로 2014~2019년 6년간 총 6112억원이 투입되는 거대 프로젝트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 문화창조벤처단지내 한류체험관인 ‘K스타일허브’사업 예산은 2015년 6월 관광기금 26억원에 불과하다가 문체부가 171억으로 증액을 요청한 후 하루 만에 기획재정부가 승인했다. 문체부는 2016년에도 한식문화시설 시설·운영비로 54억원을 책정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차씨 등이 개입해 주도해온 개발도상국 원조(ODA) 사업 ‘코리아에이드’는 명확한 사업 계획도 없이 내년 예산으로 143억원을 책정했다. 2015년 15억원이던 K팝 아레나 사업 예산은 2017년 237억원으로 불어나 있고, 재외 한국문화원 운영 사업은 2015년 395억에서 2017년 979억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등 문체부의 ‘최순실-차은택 예산’은 2017년에만 2734억원에 달했다.

최씨가 다른 측근인 고영태(40) 씨를 통해 설립한 더블루K와 조카 장시호 씨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누림기획’, ‘더스포츠엠’ 등 차명 회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이권을 노린 정황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더블루K는 지난 3월 8일 스위스의 스포츠시설 전문건설업체 누슬리(Nussli)와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이 자리에 안종범 전 수석과 김종(55) 전 문체부 2차관이 참석했다. 최씨는 이후 조양호 전 평창올림픽조직위원장에게 ”누슬리에 3000억원대 올림픽 개·폐막식장 및 임시관중석 등 가건물(오버레이) 공사를 맡길 것”을 요구하다가 수용하지 않자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을 통해 조 전 위원장을 물러나도록 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상태다.

문체부는 ‘동계스포츠 영재개발 육성지원’ 명목으로 장시호 씨 영재센터와 회사들에도 2015년 2억4000만원, 올해 4억8000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문체부 직원들은 지난 9월 강원도청을 방문해 “올림픽 (강릉)빙상경기장 사후 활용과 운영을 비영리재단 법인에 맡기자”며 K스포츠재단과 영재 센터에 올림픽 시설운영권을 통째 넘기려 한 움직임도 드러났다.

이재현 회장의 눈물겨운 문화창조사업


▎정유라 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 개명 전 이름인 유연으로 표기돼 있다. / 사진·중앙포토
CJ그룹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정권의 눈밖에 났다’는 소문이 돌던 기업이다. 문화계 거물이던 이미경(58) 전 부회장이 2012년 대선과정에서 영화 <광해>, 케이블 tvN의 새터데이나이트라이브(SNL) 코너였던 <여의도 텔레토비>로 친노 기업인으로 낙인찍히면서다. 또 2007년 대선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고려대(법학과) 출신인 교우회 부회장이던 이재현(56) 회장이 이명박 당시 후보를 지원한 것도 원인이란 관측이 많았다.

실제 2013년 5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CJ그룹에 대해 전격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그해 1600억원대 탈세·횡령·배임 혐의로 이재현 회장을 구속기소했고, 신장병과 샤르코마리투스(CMT)라는 희귀 유전병으로 형집행정지를 거듭하던 이 회장은 2016년 7월 징역 2년 6개월형을 확정받았다.

이 회장 구속에 이어 2013년 12월에는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손경식(77) CJ그룹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의 구체적인 사퇴 일자까지 언급하는 녹음파일이 최근 공개되기도 했다.

조 전 수석은 공개된 녹음 파일에서 “(이 부회장의 퇴진)이 너무 늦으면 진짜 저희가 난리가 난다. 지금도 늦었을지도 모른다”고 CJ 측을 압박했다. 손 회장이 “그럼 VIP(대통령) 말씀을 저한테 전하신 것이냐”고 묻자 상대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날 조 전 수석은 “2013년 12월 28일까지 사퇴를 시키십시오. 안 그러면 재수사가 들어갈 겁니다”라고 위협까지 했다고 한다. 이후 CJ그룹 측은 녹음을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실에 제보까지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이듬해 9월 이 부회장이 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건너가자 최순실·차은택 씨가 CJ그룹 문화사업 전반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해 8~10월 최씨는 예산 400억원 규모의 문화창조융합센터 계획이 담긴 보고서를 작성했고, 실제 CJ는 이듬해 2월까지 자비를 들여 서울 상암동 CJ E&M 본사 건물 내에 문화창조융합센터를 완공했다.

이어 총 1조4000억원을 투자해 2017년 완공 예정인 경기도 고양시 한류월드 부지에 테마파크 및 관광단지를 조성하는 ‘K컬처밸리’ 사업자로 나섰다. 이뿐 아니라 CJ는 지난해 말 한국콘텐트진흥원에 현물 기부를 하는 방식으로 청계천 벤처단지내부에 52억여 원을 들여 ‘셀스테이지’라는 공연장을 지어 헌납했다.

이재현 회장이 징역형이 확정된 다음달인 올해 8·15특사로 잔여 형기 집행면제 특별사면과 특별복권까지 함께 받아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국민적 분노 불 지핀 정유라, 말 타고 ‘이대’로


▎10월 26일 대구 2·28 기념 중앙공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下野)를 요구하는 대구·경북지역 시민단체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사진·공정식
최순실 국정농단 가운데 국민적 분노에 불을 지핀 건 최씨 비리 가운데 가장 개인적인 부분인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부정입학과 학점·출석 특혜 의혹이었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학내 시위로 불거진 부정입학 의혹은 정씨가 이대 입학 직후인 2014년 12월 3월 페이스북에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고 쓴 글 전문이 공개되면서 전국 학부모와 중·고교생들을 들끓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1월 13일 100만 촛불시위에 수천 명의 교복부대를 거리로 나서게 만든 것도 이에 대한 분노였다.

최씨는 이대 부정입학 직전 딸의 입학자격을 만들기 위해 2014년 9월 인천아시안게임 승마 단체전 출전권을 따는 데도 각종 특혜를 받고, 부정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발단은 2013년 4월 경북 상주에서 열린 춘계승마대회부터였다. 정유라는 이 대회에서 승마 유망주 김모군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그러자 최씨가 심판 판정에 항의해 당시 심판들이 경찰 수사를 받았다. 정씨에게 낮은 점수를 줬다는 이준근 전 한국마사회 승마교육 원장은 “이후 3년간 심판으로 설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승마협회를 포함한 체육계 전반에 대한 문체부 특별감사와 최씨의 체육계 장악의 계기가 됐다. 같은 해 7월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지난번 태권도 심판 문제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사건이 있어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실력이 있는데도 불공정하게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새 정부에선 있어선 안 되겠다”고 하면서다.

같은 해 9월 감사 도중 노태강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이 “승마협회에 내부에 최순실 씨 측과 반대파 파벌 싸움이 심각하다. 양측 모두 문제가 많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후 경질됐다. 그해 10월 최씨와 가까운 김종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가 체육을 관장하는 문체부 2차관에 임명되기도 했다. 2014년 6월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정유라 씨는 실수를 반복하며 1차시기 12위를 했지만 2·3차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종합 5위로 단체전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인천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걸었다.

이후 이화여대가 2014년 9월부터 2015년도 체육특기자전형에 승마 종목을 확대해 입학전형을 실시했고 원서접수 마감 이후인 9월 20일 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인정해 정씨를 합격시켰다는 게 부정입학 의혹은 핵심이다. 면접 당일 그해 10월 18일 이대 입학처장이 “금메달을 가져온 학생을 뽑으라”고 말했다는 증언과 정씨가 승마 선수복에 금메달을 걸고 나타났다는 점도 의혹을 키웠다.

이대는 정씨가 입학 후에 출석을 제대로 하지 않아 F학점을 맞자 학칙을 개정해 해외 전지훈련을 출석일 수에 포함해 주고, 출석미달로 제적을 경고한 지도교수를 최씨 항의로 교체해주기도 했다. 이에 ‘이대는 순실여대냐’라는 비아냥과 국민적 분노가 터져 나오자 결국 지난달 10월 18일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개교 130년 만에 처음으로 불명예 퇴진하고, 교육부 특별감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또 정씨의 이대 부정입학은 청담고 3학년 수업일수 193일 중 실제 등교한 날이 17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고교 졸업자격 논란으로 확대됐다.

3인방, 정윤회의 십상시 아닌 최순실의 ‘머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1월 6일 서울 중앙지검으로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우 수석은 일부 기자의 질문을 받자 째려보는 듯한, 일명 ‘레이저’ 시선을 보냈다. / 사진·중앙포토
최씨가 경제·문화·체육계에 전방위로 위세를 떨친 데는 손발이 돼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호성·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 3인방은 박 대통령이 1998년 4·2 재보궐선거(대구 달성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직후 최씨의 전 남편 정윤회(61) 씨가 직접 뽑은 후 18년을 곁에서 보좌해온 비서들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는 이들 중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대포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연설문 등 청와대 문건을 “최순실 씨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들으라”고 지시하는 육성이 담긴 녹음파일을 확보했다. 해당 문건을 최씨에게 e메일 등으로 보낸 후 “문건을 보냈다”고 확인 전화를 건 내용도 고스란히 녹음파일로 압수됐다.

JTBC가 10월 24일 최순실 씨 태블릿PC에서 박 대통령 청와대 문건 44건을 포함해 200여 개 파일을 발견했다고 보도한 직후 정 전 비서관이 “청와대에 들어온 후 최씨를 만난 적 없고 문건을 준 적 없다”고 해명한 게 거짓말로 드러난 것이다. 검찰은 이에 3인방 가운데 가장 먼저 정 전 비서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구속했다.

11월 14일 검찰에 나란히 소환된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과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은 정 전 비서관과 최씨 태블릿 PC에 남은 e메일 계정 ‘greatpark1819@naver.com’을 공유하면서 청와대 문건 유출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안 전 비서관의 경우 2013년 2월 취임 이후부터 최씨와 언니 최순득(64) 씨, 성형외과 의사 등을 수시로 출입시켜줬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최씨의 한 측근은 중앙일보 태스크포스팀과 만나 “언니 최순득 씨가 요가를 즐겨 나도 최순실 씨와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과 요가를 하기도 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최씨 자매가 다닌 차움병원의 의사출신으로 대통령 자문의를 지낸 김모 교수도 언론에 “안 전 비서관 차로 청와대로 들어가 박 대통령에게 비타민 주사를 놓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안 전 비서관은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 사정기관 내부 요직에 있는 ‘최순실 라인’에게서 직보를 받고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재만 전 비서관은 청와대 시설관리와 사이버 보안을 총괄하는 총무비서관으로서 청와대 문건이 최씨에게 유출되는 과정을 몰랐을 리 없을 것이라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문고리 3인방에 대한 검찰 수사 진행사항은 불과 1년 10개월 전인 2015년 1월 5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발표했던 “정윤회 십상시 회동 문건 허구”라는 내용과 정반대 결론이다.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 유출 피의자로 구속기소됐던 박관천(49) 경정이 검찰에서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은 최순실 씨가 1위이고, 정윤회 씨가 2위, 박근혜 대통령은 3위다”라고 진술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공개되기도 했다.

검찰과 청와대가 진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했던 것인지 최순실 국정농단의 가려온 세력에 대해서도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여야는 11월 14일 ‘최순실 등 국정농단 의혹사건 특별검사법’에 합의하면서 특검 수사대상에 이런 내용도 포함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재임기간 최순실 비리를 예방하지 못한 직무유기·방조·비호 의혹,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및 최순실 비리 내사 과정에서 우 전 수석이 영향력을 행사에 해임되도록 했다는 특별감찰 방해 의혹 등이다.

- 정효식·이동현 기자 jjpol@joongang.co.kr

201612호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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