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단독 인터뷰] ‘최순실의 前 남자’ 정윤회의 심경토로 70분 

“충신과 간신은 종이 한 장 차이… 기본 못 지켜 파국 맞은 것” 

김포그니 기자 pognee@joongang.co.kr
대통령 모시는 데 이견 있었던 것도 이혼 사유 중 하나, 그래도 난 직언은 했다
최씨 조사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잘못 있다면 책임져야


▎‘비선 실세’ 논란의 대상이 됐던 정윤회 씨가 2014년 11월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다. 정씨는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동향감찰 보고서가 외부로 유출되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 사진·중앙포토
“충신과 간신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기본을 지켰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때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秘線)실세로 알려졌던 정윤회(62) 씨가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입을 열었다. 현재 정씨는 서울을 떠나 지방 한적한 곳에서 칩거 중이다.

정씨는 7·10·11월 세 차례에 거친 70분간의 전화통화에서 “다 잊고 시골로 내려왔다. 예전 일에 대해서는 감출 것도, 감춰야 할 것도 없다”며 최근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부인했다. 이어 그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 신념을 갖고 밤새 노력했는데 모든 게 물거품이 돼버렸다. 지금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게 슬프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이 박 대통령을 보좌했을 때는 특별한 ‘잡음’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씨가 중심이 돼 보좌진이 움직였을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자신이 일선에서 물러서자 모든 게 틀어졌다는 얘기로도 해석됐다. 전부인 최씨와의 이혼도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방법론에 의견차가 있었던 게 한 이유였다고 말했다.

정씨는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 때 박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공식적으로’ 2012년 대선까지 함께 일했다. 박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정씨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대구 달성군에 국회의원으로 처음 나왔을 때였다. 개인적으로 캠프를 차려 선거를 치르려니 전혀 도움 받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윤회 씨가 돕겠다 해서 순수하게 도움받았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이재만(50) 전 총무비서관, 정호성(47) 전 부속비서관은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정 씨가 직접 뽑은 인물들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정씨는 줄곧 박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지목돼왔다.

“좋은 마무리 바라는 마음에서 시골에서 칩거 중”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의혹의 중심인 최순실 씨가 10월 31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검찰에 출석했다. 검은 모자를 눌러쓴 최씨는 포토라인에 서서 울먹이다 작은 목소리로 “죽을 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 사진·중앙포토
정씨는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1970년대 구국봉사단을 이끌던 고(故) 최태민 씨의 딸 순실 씨와 1995년 결혼했다. 하지만 2년 전 19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이혼했다. ‘최순실-청와대 실세설’은 지난해 초 박관천 전 경정(전 청와대 행정관)이 검찰 조사에서 “우리나라 권력순위는 최순실이 1위, 정윤회가 2위, 박근혜 대통령은 3위”라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그리고 이 주장 가운데 일부가 최근 사실로 판명 났다. 비선실세의 정확한 실체와 규모를 조사해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정씨에 대해서도 다시금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당초 기자는 정씨와 비(非)보도를 전제로 통화했다. 그러나 최 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대부분 사실로 판명되면서 국민적 분노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월간중앙>은 정 씨의 ‘심경고백’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만 그 내용을 공개하기로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집 앞에 취재진이 진을 쳐서 집에 못 들어간 지 몇 주 됐다. 지금은 조용히 머리 식힐 곳에 와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현실정치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할 마음이 없다. 요즘 관심이 전혀 없다. 시골에서 고추 심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2014년 최씨와 이혼 후 강원도로 내려갔다고 들었다.

“내가 조용히 사는 건 딴 게 아니다. 박 대통령이 잘 마무리하셔야 나도 나중에 인정받지 않겠나? 그리고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주변에 적만 있다. 그래서 다 정리하고 시골로 왔다. 그때부터 평온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일이 신경 쓰다 보면 죽어야지.”

최씨 일가의 비리가 보도되고 있다.


▎정윤회 씨의 딸 유라 씨(왼쪽)가 독일의 한 호텔에서 자신의 승마 코치와 나란히 서 있다. 그는 이화여대 편법 입학 등으로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요즘은 뉴스를 잘 안 본다. 나와 상관없는 일에 내 이름이 나오는 게 괴롭기 때문이다. 아무것(혜택) 없이 이렇게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내가 거론되는지 모르겠다. 시골에서 조용히 살면 박수받을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나에 대한 뉴스를 보면 우리 사회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들 사지가 멀쩡한데 이러고 살고 싶겠나. (시골에서) 칩거하고 있는 이유는 오로지 초심을 지켜서 그분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인데….”

최씨가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없나?

“도와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내가 뭐라도 좀 알았다면 도와줄 수 있겠지만. 난 정말 오래전에 손 놓은 문제다.”

배우자였는데 마음 아프지 않나?

“얘기하고 싶지 않다. 충신과 간신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살다 보면 기본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기본에 충실하면 크게 실패할 일이 없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최씨가) 수사를 성실히 받는 게 중요하다.”

이화여대 입학 건 등으로 외동딸 유라 씨까지 도마에 올랐다.

“어쩌겠나.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수밖에 없지 않나. 살면서 (잘못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요즘은 세상이 바뀌어서 불가능하다. 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옳게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

최씨도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옳은 일을 한 게 아닐까?

“그래도 그렇지,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더라도 법을 어긴다면… 그건 잘못된 일이다.”

“내가 잘못한 것? 있으면 가져와봐라”


▎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 엄삼탁(왼쪽) 국민회의 후보와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가 나란히 후보등록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당시 정윤회 씨는 박 후보의 선거지원에 나서면서 참모 활동을 시작했다. / 사진·중앙포토
최씨의 국정농단에 정윤회 씨도 무관하지 않았을 거라는 시각이 있다.

“결혼해서 함께 살았으니까 주변에서 그렇게 의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혼 후 나는 숨길 게 없다. 굳이 최씨와 선을 긋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말이다.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한번 가지고 와라. 그러면 다 말하겠다.”

최씨가 어떻게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책임져야 하는 건 당연하다. 당연한 일이고, 성실히 조사받아야지. 영원히 도망칠 수 없는 거고. 옳고 그른 거는 따져야 하고 잘못된 부분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정씨는 2014년 11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동향감찰 보고서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른바 ‘정윤회 국정 개입설’이 제기된 것이다. 그가 매달 두 차례 박근혜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 등 ‘십상시(十常侍)’와 모여 청와대 내부 동향, 현 정부 인사 동향 등을 보고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문고리 3인방은 박 대통령 취임 후 청와대 부속실에서 근무하며 대통령과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게이트 키퍼’로 알려져왔다. 그런데 이들이 박 대통령 이외에도 정씨를 ‘상전’으로 모시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문건이 공개되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이는 곧 ‘정윤회 국정 개입설’로 이어졌다.

야 3당은 최순실 게이트 특검과 관련해 ‘정윤회 문건파동’도 수사대상에 넣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그 건(件)과 관련해서는 감출 것도 없고 감춰야 할 것도 없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자꾸 나오니까…. 오직 그분이 잘되길 바라서 칩거하고 있을 뿐인데 남들은 내가 마치 무슨 죄가 있어 숨어 지내는 줄 의심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전 부인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관련 없고 아는 바도 없다. 그저 내 업보라고 생각하고 있다.”

‘대통령은 하야하라’는 말까지 나온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박 대통령의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안타까운 사람이 나일 것이다. 그분이 처음 정치권에 들어올 때부터 같이 일했다. 그때는 보좌진이 나 혼자였다. 그분의 심적 고통을 옆에서 묵묵히 지키며 ‘죽겠다’는 각오로 모셨다. 나 역시 꿈도 많고 하고 싶었던 것도 많았었다. 하지만 평범한 삶을 포기하겠다는 결심으로 오로지 그분을 위해 살았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더 안타깝게 다가오는 것 같다.”

박 대통령과 결별한 이유가 무엇인가?

“요즘 들어 ‘박 대통령과 왜 오래 함께하지 않았느냐’며 아쉬워하는 분들이 있더라. 다 지난 얘기다.”

얼마나 어렵게 모셨길래.

“과거에 사업 등 꿈도 있고 그럴 나이에 그분을 돕기로 결심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정말 어렵게 모셨다. 그때는 박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었다. 당시 김대중 정부 시절이라 그분 옆에 있으면 다들 죽는 줄 알았기 때문에. 하지만 남자로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건 너무 하다. 약한 여자인데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그래서 그때 엄삼탁 씨와 두 번을 붙었다. 운전하는 친구랑 둘이 찾아가서 담판 짓고 그랬다. 그때는 목숨 걸고 정말 죽을 각오로 그랬다. 오직 그분을 위해 다 이겨냈다.”

“내가 모실 때는 승승장구하셨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 11월 12일 광화문광장 일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100만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에 대해 정씨는 “박 대통령을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사진·중앙포토
그런 충정이 생긴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내 성격이 좀 남자다운 편이다. 약한 여자를 보면 지켜주고 싶은…. 남자다운 성격이다. 당시 그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많았다. 옛날에 아버지(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문제가 그분을 힘들게 했다. 그걸 지켜보면서 어떤 공명심이 생기더라. 그 마음 하나로 충성을 다했다. 지금도 지키고 싶다. 그래서 내가 깨끗이… (한참 말을 잇지 못하다가) 접고 내려왔다. 내 역할을 거기까지였다.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이 그분을 위해 일해야지, 이젠.”

당시 박 대통령을 어떻게 모셨나?

“글쎄, 그런 건 훗날 주변에서 평가해줄 문제다. 다만 나는 적어도 일할 때는 박 대통령께 직언했다. 그래서 주변에 있던 직원들이 그 상황(박 대통령에게 정씨가 직언하는 모습)을 굉장히 어려워했다. 그 정도로 아닌 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정직하게 일했다. 솔직한 얘기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라고는….”

지금 재산이 별로 없나?

“뭐, 의미 없는 얘기니 그냥 넘어가자. 다만 지금 나에게 재물보다 값진 재산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바로 그분을 모셨던 과거라고 당당히 말하겠다. 지금은 이 모양이 됐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남자로서 잘살지 않았나? 내가 보좌했을 때는 박 대통령께도 아무 문제없었고 승승장구하셨다. 한 번도 법적인 잡음이라든지 지금처럼 나락으로 떨어진 적도 없으셨다.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계셨다.”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었을 텐데.

“내가 그분을 모시기 전에 대한항공에서 10년간 일했지만 그때도 문제가 없었다. 그 비결이 뭔 줄 아나? 바로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만은 실수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특히 박 대통령을 모셨을 때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지금도 불면증 때문에 잠을 못 잔다. 과거에는 새벽 3시 전에 자본 적이 없다. 실수나 잡음이 나지 않도록 항상 새벽까지 고민했다.”

결혼생활 동안에도 최씨가 도 넘는 행위를 저질렀나?

“내가 있을 때는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다. 내 앞에서는 그런 일을 벌일 수 없었다, 구조상…. 무엇보다도 내 성격에 그런 걸 인정 못하니까. 지금처럼 잡음이 나오게 된 건 이혼 뒤 (최 씨를) 제대로 관리 못한 제 불찰이다.”

최순실 씨와 정윤회 씨가 이혼한 것을 단순한 부부문제로 국한 지을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2014년 이른바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정씨가 비선실세로 부각돼 박 대통령에게 부담이 되자 두 사람이 이혼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은 국정 관련 문건이 담긴 최씨의 태블릿 PC가 발견된 것에 대해 “태블릿 PC에 담긴 자료는 정씨와 최씨의 이혼 전인 2014년쯤까지만 있다”며 “이 PC의 주인도 정씨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정 전 의원은 2007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캠프의 박근혜 네거티브 팀장으로 일했다.

이어 정 전 의원은 “최씨의 국정농단사건은 박 대통령 주변에 있었던 정 씨가 사라진 뒤 벌어진 것”이라며 “그가 사라지니까 전혀 기본도 없고 견적도 나오지 않는 최씨가 나서면서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정씨가 최소한 최씨와 이혼을 결정한 2014년 5월 전까지는 여러 형태로 국정의 숨은 실세 노릇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에 정씨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정두언 전 의원이 최씨의 태블릿 PC는 정씨의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황당한 주장이다. 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른 일을 선택하며 살았다. ‘모 아니면 도’ 이런 식으로 한번 아니라고 생각되면 바로 부러지는 성격이다. 이혼도 그래서 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로서 멋있는 공명심에 몰입해서 살아왔다. 박 대통령에 대한 내 자세도 늘 그랬다.”

이혼은 왜 했나?

“남녀가 이혼하는 이유가 뭐 따로 있겠나. 모르겠다. 정말….(침묵) 서로 좋은데도 헤어졌다면 거짓말이고. 이혼 당시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박 대통령을 모시는 데 이견이 있었던 게 이혼 사유가 됐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 이유도 있었다. 그분을 보좌하는 스타일이 (최씨와는) 많이 달랐다.”

정씨의 부친인 정관모(85) 씨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의 이혼 배경에 대해 “며느리(최씨)가 박 대통령에게 아들(정씨)을 인정하지 않게끔 진언했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정)윤회가 거기서 실망한 것 같다. 자기가 (박 대통령에게) 신임을 얻어서 한참 성장해가는데 왜 나를 도리어 대통령에게까지 그렇게 하느냐는 식으로…”라고 말했다. 이에 정씨는 “우리 아버님도 연세가 여든 살이 넘으셨다”며 “원래 서울대를 졸업하신 똑똑한 분이었는데 나이를 잡수시고 나서 판단력이 부족해지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윤회 씨의 부친 정관모 씨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며느리가 박 대통령에게 아들을 인정하지 않게끔 진언했다”라고 했다 / 사진·중앙포토
“대통령에게 신뢰받자 최씨가 질투”


▎2014년 청와대에서 유출돼 논란됐던 정윤회 씨 동향 문건. 이 문건에는 박근혜 정부의 숨은 실세라는 의혹을 받아온 정씨가 현직 청와대 비서관 등을 만나 국정에 개입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 사진·중앙포토
박 대통령으로부터 신뢰받는 모습을 보고는 최씨가 질투했다는 소문은 사실인가?

“그런 것도 있었다. 초창기 때부터 ‘거기’에 몸담고 있을 때는, 뭐 하여튼… 나를 질투하긴 했다. 그런데 결국 나중에 판명되지 않았나? 내가 옳았다는 게. 몸담고 있었을 때는 누가 옳은지 드러나지 않는다. 내가 옳았는지 간신이 옳았는지.”

‘청와대 문건’ 파동 때 일선에서 갑자기 밀려났다는 설이 있다.

“억울한 건 없다, 왜냐면 억울한 게 있으면 법에 저촉되거나 어떤 문제가 있었겠지. 할 말은 많지만 지금 나서면 그분께 누(累)가 될 거라 생각한다.”

“소나기 그치면 말할 날 올 것”

그래도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텐데.

“소나기 그치고 날씨 개면 천천히 지난 일을 얘기하고 싶다. (검찰에서) 결론이 나야, 할 말도 하는 거지. 언젠가는 말할 날이 올 거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과거의 선택이 후회되지는 않나?

“요즘은 ‘과연 내가 옳은 판단을 한 걸까’ 그런 생각도 든다. 사실 내가 이제 직장에 들어갈 수 있나, 아니면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겠나? 그렇게 되면 사방에서 난리 칠 게 뻔하다. 나를 써준 사람은 곤란을 겪을 것이고. 그냥 죽은 듯이 자연에 묻혀 사는 수밖에 없다. 내가 박 대통령을 이용해서 한몫 잡았을 거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많다. 일반적으로 그런 의심을 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때로는 이 세상에 전혀 예측하기 어려운 한 차원 높은 단계의 마음도 있는 거다. 세속적인 욕구를 뛰어넘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우리 국민이 나에 대해서도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좌진이 갖춰야 할 요건이 뭐라고 생각하나?

“능력보다는 자신이 모시는 분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가 중요하다. 보좌진은 주군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떤 분을 모실 경우 ‘나를 버리고 그분을 위해 어느정도 할 수 있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럴 때 좋은 리더십도 나오고 좋은 안도 나온다. 관심이란 게 하찮은 것 같지만 중요하다.”

어떤 것에 관심 가져야 한다고 보는가?

“모든 것이지. 내가 모시는 주군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그분의 100%가 아니라 200%를 알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나를 내세우면 안 된다. 나는 없어야 한다. 보좌진이 나서려고 한다? 그럼 애초에 그런 쪽의 일을 시작하지 말았어야지.”

정씨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박 대통령에게 하는 얘기였다. “지금 박 대통령께서도 같이 일했던 직원을 평가하실 때 능력보다는 자신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에 주목하셔야 한다.”

박 대통령과 멀어졌는데 섭섭한 점은 없나?

“내가 할 수 있는 거 있으면 해드리는 게 그게 남자의 공명심 아니겠나? 그분께는 좋은 보좌진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분이 가장 어렵고 힘들 때 보좌했으니까 그걸로 만족한다. 좋은 보좌관이 있어야 좋은 통치자가 있는 거다. 내가 지금 이렇게 있지만 나에 대해서는 나중에 좋은 평가가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텐데.

“(약간의 침묵 후) 나중에…. 언젠가는 나도 말할 날이 올 거다. 그때 정리해서 하고 싶은 얘기는 털어놓고 싶다.”

그는 “요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읽고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을 읽고 미움받을 용기를 갖게 됐다고 한다. 정씨는 “여태까지는 그렇게 못 살았는데 이제는 미움받고 살 자신이 생겼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난 돈키호테 같은 삶을 살았다”며 “대통령께서 (검찰) 조사받는 건 할 수 없는 일이다. 요즘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겠나. 결과에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시면 된다”고 말했다.

- 김포그니 기자 pognee@joongang.co.kr

201612호 (2016.1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