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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박정희의 ‘총아(寵兒)’ 이건개가 본 최태민 

“93년에도 큰영애 만나 멀리하라고 당부했다” 

글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정리 김가은 인턴기자 사진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서울시경국장(서울경찰청장) 사임 직전인 75년 초 청와대 들어가 구두·서면보고 ‘못 만나게 하셔야’… 역대 정권 병폐 대통령 독점체제에서 비롯된 게 대부분,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 시급

▎이건개 법무법인 ‘주원’의 대표변호사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박 대통령에게 최태민에 대해 서면·대면 보고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건개(75) 법무법인 ‘주원’의 대표변호사는 박정희·박근혜 대통령을 관통(貫通) 하는 인물이다. 그는 만 30세이던 71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발탁돼 서울경찰청장(당시 내무부 치안국 서울시경국장)에 임명됐다. 수시로 대통령을 만났고 구두·서면보고를 했음은 물론이다. 그는 “박 대통령 면전에서 쓴소리를 할 때면 육영수 여사가 늘 옆구리를 찔렀다. (직언을) 더 많이 하라는 신호였다”고 회고했다.

2012년 무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이 변호사는 그해 11월 22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예비후보직을 사퇴했다. 이 변호사는 이날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그나마 박 후보가 정치인 중 안보를 강조하고 지킬 의지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박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고 사퇴의 변(辯)을 밝혔다.

제1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만 30세에 최연소 서울경찰청장이 된 이 변호사는 대검 중앙 수사본부장, 대검 공안부장, 서울고검장 등을 지냈다. 15대 총선 때는 자유민주연합 간판으로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2000년 국회의원을 그만둔 뒤로는 주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올케인 서향희 변호사와 ‘주원’을 설립해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서 변호사는 2011년 새로운 법무법인을 차려 독립했다.

<월간중앙>이 11월 15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주원’에서 이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요즘 김종인(76)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과 함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추진에 앞장서고 있다. 이 변호사는 “아무래도 박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여야가 협의해서 명예로운 퇴진의 길을 열어줬으면 좋겠다”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이어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해야 대통령 1인 체제에서 벗어나 나라의 틀을 다시 짤 수 있다”며 개헌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절호의 협치 기회, 퇴진의 길 열어줘야


▎71년 12월 25일 이건개 서울시경국장(현 서울경찰청장)이 대연각 화재현장에서 김현옥 내무장관에게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요즘 나라 걱정이 클 것 같은데.

“이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만들 때가 왔다고 본다. 역대 정권에서 병폐 원인의 90% 이상이 대통령 1인 독점 권한에 있었다. 그래서 일찍이 <대통령제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역대 정권의 병폐와 새로운 한국의 길>이라는 책을 써서 대통령제의 폐해를 지적했다. 또 나는 20년 전부터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외치고 있다. 어떤 대통령들은 기업인에게 돈을 받았고, 어떤 대통령들은 검찰과 국세청을 통해 정적(政敵)을 핍박했다. 또 어떤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하루에 400만원짜리 호텔 특실을 빌려서 10억원 이상 내는 사람에겐 밥을 먹여 보내고, 9억원 미만 내는 사람에겐 차를 먹여서 보내기도 했다. 공무원들은 자신의 업무 수행보다는 대통령 심기 살피기에만 매달렸다. 이번에 최순실 사태도 대통령의 독점적 권한 때문에 생겼다.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해야 한다. 청년 변호사와 청년들을 통해 국회의원들에게(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서명을 받도록 하겠다.”

현 정부에서 개헌이 가능하다고 보나?

“할 수 있다.”

내년 대선 전에 이뤄질까?

“물론이다. 이번 사태는 박근혜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사태다. 100만 명이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그런데 소위 제도권 정치인들은 그 자리에 앉아서 웃고 있었다. 웃을 일인가? 국회에서 철야하며 토론해서라도 대안을 제시해야지. 야당도 갈팡질팡하고 있지 않나? 이 혼란이 여야가 협치(協治)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본다. 협치를 통해 현 정권의 명예로운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 현 정권은 임기를 다 채우기 힘들 것이다. 영(令)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여야 국회의원들은 당리당략을 떠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예비 대선주자들은 자신들의 계산에 맞춰 현 정권을 이용만 하려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그러면 100만 명의 분노가 야당으로 옮겨갈 것이다.”

박 대통령이 현실적으로 임기를 채우기 어려운 만큼 여야 합의로 길을 열어줘야 된다는 것인가?

“그렇다. 이 불행한 사태를 통해 역사에 남을 올바른 나라의 틀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자는 것이다. 자유당 때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의 횡포는 많았다. 이 사태가 단순히 ‘박근혜 물러가라’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 앞으로 대통령은 외교·안보·국방을, 총리는 내치를 맡아야 한다.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는 이제 필요 없다. 어느 것이 국가와 인권의 본질에 맞는지가 중요하다.”

분권형 대통령제의 장점은 무엇일까?

“표(票)만 중시하던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고 나면 민생과 치안이 뒤처지고, 국가 본연의 우선순위를 무시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다음 정권은 다시 국가 업무의 연속성을 파괴해 왔다. 한마디로 국력의 낭비다. 1인 독점 권한 체제 하에서 정보·수사기관이 100% 예속(隸屬)되기 때문에 인권이 상실된다. 더욱이 중국·미국·일본 등과 얽힌 국제 상황을 보면 대한민국은 갈수록 사면초가다. 이 상태에서 외교·안보·국방을 격상시키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대통령은 외교·안보·국방을 맡고, 내치는 총리에게 위임해 협치를 해야 한다. 외교·안보·국방 전담 대통령제로 개헌해야 한다.”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분담을 시키자는 것인데.

“총리는 타협과 협치, 소통에 능한 사람이 맡으면 된다. 100여 년 전 구한말, 세계가 소용돌이일 때 우리는 중국이냐 일본이냐의 기로에서 방황했다. 1세기가 지난 지금은 ‘중국이냐 미국이냐’의 선택에 당면해 있다. 서쪽에서 밀려오는 중국의 패권주의와 동쪽에서 일어나는 미국의 신보호주의 사이에서 진퇴양난이다. 정당과 정파를 떠난 외교·안보·국방의 강화가 필요하다. 여기에 외교·안보·국방 전담 대통령제 개헌의 당위성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특별히 아끼는 젊은 인재였다.


▎97년 9월 18일 국회 정치개혁입법특위 전체회의에서 김중위(왼쪽에서 셋째) 위원장이 신한국당 김학원, 자민련 이건개, 새정치국민회의 김진배 간사(왼쪽부터)와 특위 일정을 협의하고 있다.
“선친(이용문 장군)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자주 만나셨다.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육군 중령·대령일 때부터 알았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나한테 ‘대통령은 험한 바다에서 배를 운항하는 선장과 같다. 그러니 어디에 암초가 있고 어디에 장애물이 있는지 정확히 볼 수 있게 도와달라. 대통령이 잘한다는 말은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귀가 닳도록 듣고 있으니 자네같이 젊은 친구는 잘못한다는 얘기를 가감 없이 직언해달라’고 했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사건 이후 경찰의 기강이 문제가 됐다. 박 대통령이 ‘이거 안 되겠다’ 싶어 경찰의 위계질서를 잡으려 했다. 경찰에 인맥이 없는 젊은 사람이나 검사 출신을 찾는 과정에서 발탁된 것이다. 대통령은 내게 ‘허름한 점퍼 입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했다. 매일 서면보고, 일주일에 한 번 대면보고를 했다. 대통령도 사람인지라 내가 쓴소리를 하면 안색이 변했다. 그럴 때마다 육영수 여사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더하라’는 신호였다. 보고를 다 마치고 나면 대통령은 ‘고맙네. 또 해주게’라고 격려해줬다. 박 대통령이 인권을 탄압했다는 비판이 있는데 사실과 다른 것이 있다. 대통령으로부터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고문 등 권한남용과 관련한 조사를 지시받은 적이 있었다. 조사해보니 (고문의) 증거가 나왔다. 그러자 대통령은 곧바로 중앙정보부장을 교체했다. 인권탄압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

“검찰 인사권, 청와대로부터 독립해야”


▎육군본부 작전교육국 근무 시절 이용문(왼쪽) 국장과 박정희 차장.
경찰청장 시절 최태민에 관한 정보도 수집했다고 들었다.

“75년 초였다. 검찰로 돌아가기 전, 미국 하버드대로 유학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출국 전 마지막으로 대통령에게 최태민과 관련해 보고했다. ‘문제될 인물’이라는 내용으로 직접 말씀드리고 서류(서면)도 드렸다. 대통령에게 ‘큰영애가 (최태민을) 못 만나게 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후 나는 유학을 떠났다. 93년 내가 서울지검장을 할 때였다. 당시 자연인이던 박근혜 영애한테 연락이 와서 만났다. 나는 (영애의) 일 처리를 도와주면서 ‘최태민을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최태민이 사망하기 1년 전이었다.”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크다. 검찰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까?

“(정치권 등에서) 대검중앙수사부를 해체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중수부가 생긴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사실 검찰은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정보가 부족하다. 나는 중수부 창설 및 명칭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다. 범죄정보 수집교육도 내가 시켰다. 그때부터 검찰의 정보력이 좀 생겼지만 여전히 경찰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검찰개혁은 두 가지로 봐야 한다. 첫째, 인사권이 청와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현재는 검찰간부가 승진하는 데 청와대 입김이 없으면 안 되는 구조다.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대통령 심기만 살피게 되는 것이다.”

대검 중수부는 검찰총장의 하명사건을 수사하는 총장의 ‘직할부대’다. 중수부의 전신은 1949년 12월 출범한 중앙수사국이다. 73년 1월 중앙수사국이 특별수사부로 개편됐고, 81년 4월 중수부로 개칭됐다. 중수부는 형사부·공안부·강력부 등 대검 내 다른 부서와 역할이 확연히 다르다. 형사부 등은 일선 검찰청의 사건에 대해 지휘·감독만 한다. 그러나 중수부는 대검 소속 검찰연구관을 활용하고 일선 지검·지청에서 근무하는 검사를 파견받아 독자적으로 수사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기능은 전국 검찰 특수부의 수사를 매일 보고받고 조율하는 일이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 훼손 등의 이유로 비판받던 중수부는 2013년 박근혜 정권 출범과 함께 폐지됐다.

총장도 검찰이 자체적으로 선출해야 한다는 것인가?

“정보·수사기관 공무원의 급(級)은 낮춰야 한다. 그렇게 해서 분권형 대통령제하의 총리가 (검찰총장을) 임명하면 된다. 명칭도 일본식인 검찰·경찰 대신 호민관(護民官)·호민사(護民使)로 해야 한다. 또 검찰을 공안수사본부와 민생수사본부로 나눠야 한다. 요즘 같은 시국에 검찰에서 민생에 신경을 쓰기 어렵다. 가령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돈 1000만 원을 떼였다고 하자. 검찰에 고소·고발한다 해도 구제받는 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검찰과 경찰은 숙제를 미룬다. 그러다 보니 변호사는 돈 벌기가 좋다. 검찰과 경찰은 자기들의 수사권만 생각하는데 국민을 위한 수사권으로 개혁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의 필수덕목 ‘사명감’


▎이건개 변호사는 “횃불 사명주의와 민족적 직분사명주의를 주장·전파함으로써 올바른 국가의 틀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차기 대통령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건개 변호사의 저서 [대통령제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역대 정권의 병폐와 새로운 한국의 길]. 그는 20년 전부터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외치고 있다.
“내년 1월 초(超)당파 안보민생회의에서 ‘대통령의 자격’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할 예정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보의식이다. 고구려·백제·신라를 비롯해 한반도에 있던 나라들은 모두 안보의식이 없으면 망했다. 북한과 친하게 지내겠다는 건 좋다. 그런데 북한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같은 민족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을 멸망시키려는 세력이기도 하다. 다음으로는 경제성장과 공권력 행사에 대한 통찰력이다. 반드시 둘 다 갖춰야 한다. 한쪽이 없으면 절대 경제가 성장할 수 없다. 그리고 사명의식이 있어야 한다. 공무원과 기업인이 열심히 뛸 수 있는 사명의식을 대통령이 불어넣어줘야 된다.”

어려운 시국이다.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선량한 국민들은 큰 흐름을 좆아간다. 큰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제도권 정치인들과 언론이다. 제도권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정신력을 불어넣는 역할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본인들이 먼저 정신무장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점이 매우 부족하다고 본다. 이런 난국에는 국회에서 밤 10시까지 토론하고 아침 9시에 출근하며 머리를 맞대야 한다. 공개토론도 해야 한다. 그런데 왜 파별(派別)로 나뉘어서 이러쿵저러쿵하는가. 정치인들은 당리당략·입신양명·대권욕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횃불 사명주의와 민족적 직분사명주의를 주장하고 전파시키려고 한다. 국가의 올바른 틀을 만드는 데 미력이나마 보탤 것을 약속한다.”

- 글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정리 김가은 인턴기자 사진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201612호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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