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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취재]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본 2017 대선 기상도 

내년 판도 완전 리셋(reset)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이충형·유성운 기자 adche@joongang.co.kr
與, 반기문 카드 기획한 ‘친박’ 추락하면서 김무성 등 비주류 상승세… 탈당·분당 초읽기
野, 1위 탈환했지만 외연 확장의 덫에 걸린 문재인… 이재명, 2위 급부상 ‘최대 수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11월 7일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 탈당을 공식 요구했다.(왼쪽) /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11월 15일 “대통령이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전국적인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 사진·중앙포토
최순실 게이트가 정치권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개헌으로 국정 주도권을 쥐려 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이내 밀어닥친 최순실 쓰나미로 ‘식물 대통령’ 신세가 됐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스탠스를 잃고 내분에 빠져 분당·해체 지경에 이르렀다. 집권이 눈앞에 성큼 다가온 야권은 정국 주도권을 가졌지만 ‘부자 몸조심’하듯 소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내년 대선까지 1년 남짓 남은 상황에서 10여 명에 이르는 여야 ‘잠룡’의 희비도 최순실 사태로 극명하게 갈린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에게 현 기상도는 ‘매우 맑음’, 반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겐 ‘흐림’일 것이다. 다른 대선주자들도 맑으면 맑은 대로,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현 상태를 최대한 이용해 자신의 무게를 키우려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차기 대통령까지 최순실이 결정한다’는 웃지 못할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최순실 사태를 접하는 잠룡들의 표정도 제각각이다.

“위기가 기회” 깃발 든 김무성

“판이 커졌다.”

새누리당 5선 정병국 의원은 “최순실 파문으로 변수가 더욱 많아졌기 때문에 기존의 후보들로 이뤄진 구도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 대선주자들은 일단 고민이 깊어졌다. 가뜩이나 야권 ‘잠룡’들보다 지지율이 처지는 상황에서 보수 지지기반을 급격히 허무는 최악의 악재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5%(11월 4일 한국갤럽 발표)까지 추락한 상황에서 ‘새누리당에선 누가 대선에 나와도 당선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이 삽시간에 확산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위기가 곧 기회’라는 인식 속에서 정치적 외연을 넓히고, 지지율을 올리는 모멘텀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시작됐다. 특히 비주류 주자들은 박 대통령을 떠받쳐온 ‘콘크리트 지지층’이 무너지고 당내 친박 주류 세력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운신의 폭이 커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위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여당 내부에선 비박 성향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의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여당 의원들이 이미 김 전 대표와 유 의원에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쪽은 김 전 대표다. 그를 포함해 남 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 비박계 잠룡 5인은 11월 1일 긴급 회동을 갖고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새누리당은 재창당의 길로 가야 한다”고 선언하며 “그 길을 향한 첫 걸음은 이정현 당 대표의 사퇴”라고 주장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 대해 우리 모두 엄중한 책임을 통감하며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도 했다.

김 전 대표는 전날엔 비박계 등 의원 40여 명이 참석한 회동에서 “당 지도부의 인식이 매우 안이한 것 아니냐”며 지도부 총사퇴를 처음 언급했다. 11월 9일 ‘국가전략포럼 비상시국 대토론회’에선 “박 대통령이 눈물을 보이며 사죄했지만 잘못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모든 잘못을 뉘우치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찔끔찔끔 하다 보니 국민의 분노가 더 커지고 있다”고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토론회에 참석한 범여권 원로들이 ‘국회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권 행사를 주저해선 안 된다’는 주문에도 공감하며 이번 사태가 ‘헌법 위반’이라고 단언했다. 대통령 탄핵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의견을 낸 것이다.

10일 친박계 조원진 최고위원이 “김 전 대표가 대통령의 탈당, 출당 조치까지 가능하다고 한 발언은 국민은 물론 당원의 동의도 얻기가 어렵다”며 “발언을 조심하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김 전 대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국정공백과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대국적 결단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강성 발언을 이어갔다.

김 전 대표는 한때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다가 현재는 한 자릿수의 군소 후보로 전락한 상태다. 이 때문에 그가 다시 유력 대선주자로 올라설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있다. 반면 친박의 잘잘못을 따지고 나선 의원들의 대부분이 김무성계라는 점에서 당내 후보 선거에서 김 전 대표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김 전 대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여권 대선주자로 거론되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인물이다. 그가 4·13총선 이후 공천 파동의 책임을 지고 당 대표에서 자진 사퇴했지만 항간에는 대선 준비를 위한 수순이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평소 대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언제든 권토중래를 노린다고 인식돼왔다. 하지만 반 총장으로 집중된 관심을 끌어오기에는 그간 마땅한 모멘텀이 없었다. 이런 측면에서 ‘최순실 사태’는 김 전 대표에게 정치적 이득을 챙겨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남경필·원희룡·오세훈도 대열 합류


▎11월 1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 모인 새누리당 대선주자들. 왼쪽부터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김무성 전 대표, 김문수 전 경기지사, 원희룡 2 제주지사. / 사진· 중앙포토
비박계인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김 전 대표와 공동 기자회견을 갖는 등 보조를 맞추고 있다. 남 지사는 11월 9일 고려대 특강에서 “박 대통령은 빨리 2선으로 물러나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청와대 일개 비서들이 장관들을 컨트롤할 정도니 비선이 끼어들어 비효율이 발생한다”며 “권력을 나누지 않고 소통하겠다는 건 뻥(거짓말)”이라고 힐난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도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행정부 통할과 국방·외교까지 수행하는 대통령 권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있는지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박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다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 전 시장도 10월 30일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검찰의 청와대 압수수색 실패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의 결단에 의해 조속히 실행돼야 한다”고 말해 검찰과 청와대를 압박했다.

남 지사와 원 지사는 새누리당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인물로 부각되고 있지만 당내 기반이 약하다. 오 전 시장도 4·13총선 전까진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손꼽혔지만 지난 총선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에 밀려 대선주자로서의 동력에 치명타를 입은 상황이다. 하지만 최순실 파문으로 친박계가 공들인 반 총장 카드가 힘을 잃으면서 이들 역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는 평가다.

대선 국면에서 여당의 새로운 변수는 탈당과 분당이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 측은 “의총에서 친박들이 책임을 지고 탈당해야 한다고 말하려다 참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여당은 지금 친박 중심 지도부의 사퇴를 놓고 친박과 비박이 대립하고 있다. 대선후보를 놓고 대립할 경우 분당할 가능성도 존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식한 듯 이정현 대표는 광화문에 100만 (주최측 추산) 국민이 모여 집회를 가진 다음 날인 11월 13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연 후 “당헌을 개정해서 우리 당의 내년 대선후보 분들도 당 대표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대선 1년 6개월 전 당 대표를 맡은 이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한 당헌에 손을 대겠다는 제안이다.

유승민 독자 노선 구축? ‘갈 곳 잃은’ 반기문은 어디로


▎독자노선을 걷고 있는 유승민 의원은 새누리당 내에서 김무성 의원을 제치고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 사진·중앙포토
유승민 의원은 앞서 언급한 비박 대선주자들과 약간 떨어져 걷고 있다. 11월 1일 5인 회동에도 초대받았지만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유 의원이 여타 후보와 행보를 달리하며 독자 노선을 구축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원내대표에서 물러났고, 공천에서 배제돼 무소속으로 살아 돌아온 유승민 카드가 신선하다”며 “새누리당은 새롭게 개혁적인 인물이 필요한데 유승민 카드가 가장 적합해 보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 국면도 유 의원에게 나쁠 게 없다. 지역구(대구 동을)가 박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TK(대구·경북)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간 박 대통령, 친박계와 각을 세우고 싸워왔기 때문이다. 그는 11월 13일 당내 비주류 정치인들이 결집한 비상시국회의에서도 “지금은 대통령도, 당도, 모든 걸 내려놓고 던져버려야 할 때”라며 “대통령께서 개인을 생각할 게 아니라 국가를 생각하셔야 한다. 결단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압박했다. 9일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 직후엔 “야 3당은 대통령의 제안을 무조건 거부할 것이 아니라 하루 속히 총리 적임자를 추천해야 한다. 대통령께서도 총리의 권한 범위에 대해 보다 분명한 입장을 밝혀 국정 중단 사태가 장기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균형 있는 입장을 취했다. 4월 총선에서 측근들이 대거 탈락하면서 당내 우군이 별로 없다는 점은 약점이다. 11월 11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유 의원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은 4%로 새누리당 내에선 김무성 전 대표(2%) 등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최순실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잠룡은 반기문 사무총장이다. 반 총장은 최씨의 국정농단 정황이 전면적으로 드러난 직후인 11월 들어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선두를 내줬다. 가장 주요한 원인은 박 대통령 지지율과의 연동 현상이다. 그간 반 총장이 친박 후보로 등장할 것이란 각인이 대중에게 깊이 박혀 있는 것이다.

반 총장 지지율 하락에 대해 그의 한 측근 인사는 “반 총장을 여권 후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지지율이 여권과 동반 하락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라고 수긍했다. 하지만 “반 총장이 친박 후보로 나설지, 야권 후보로 나설지, 제3지대 후보로 나설지 여부를 아직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현 지지율은 지레짐작하는 지지율일 뿐”이라며 예단을 경계했다. 그는 “결국엔 최순실 사태로 인한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여권, 특히 친박 대선주자로 인식되던 반 총장 거취는 매우 모호해졌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반 총장이 병든 보수의 메시아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한 당 관계자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 밑으로 내려가면서 반 총장을 양자로 들이려는 친박양자론은 힘을 잃었다”고 했다.

내년 대선구도는 문재인-안철수-반기문의 3자 구도, 문재인-안철수-반기문-여당 후보 4자 구도로 변할 가능성이 생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야당과 마찬가지로 여권도 분열돼 복수 후보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역대 대선을 보면 홀수 구도는 거의 없었고 짝수 구도가 일반적이었다”며 “내년 대선구도가 4자 또는 양자 구도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만약 민주당과 경쟁하는 국민의당이 반 총장과 손을 잡고 새누리당 일부 세력까지 합세한다면 문 전 대표와의 대선 승부는 가늠하기 어렵다. 여기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 등 문 전 대표와 결별한 유력 인사들도 함께할 수 있다. 익명을 원한 정치평론가는 “문재인 전 대표에 힘이 실릴수록 다른 대선주자들은 다른 지점에서 대선을 도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들이 반 총장과 연대한다면 문 전 대표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대선판도 변화가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반 총장과 문 전 대표에게 ‘위기’와 ‘희망’의 양면을 보여주고 있다.

“양자 구도로 바뀔 가능성”…문재인에겐 최악일 수도


▎11월 10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팬클럽 ‘반딧불이 창립총회’ 참석자들이 반 총장 홍보 동영상을 보고 있다. / 사진·뉴시스
문재인 전 대표는 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며 야권을 대표하는 유력 대선주자로서의 다시 발돋움했다. 문 전 대표는 11월 3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대선주자 지지율 순위에서 20.9%를 얻어 반기문 사무총장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문 전 대표가 같은 조사에서 1위에 오른 것은 지난 8월 이후 석 달 만이다. 그는 반 총장이 지난 8월 미국에서 국회 여야 원내대표들과 만나 “내년 1월 중순경 귀국하겠다”고 밝힌 직후 2위로 밀려난 뒤부터 한 번도 1위에 오른 적이 없었다. 또 그동안 새누리당 친박(親朴)을 중심으로 반 총장을 대선 후보로 옹립하려 한다는 이른바 ‘반기문 대망론’에 직격탄을 맞고 고전했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위치가 역전된 셈이다.

하지만 문 전 대표 측도 고민은 있다. 비록 지지율이 상승하기는 했지만 당 지지율의 상승치에는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10월 24일가 최순실 씨의 태블릿 PC에서 박 대통령의 주요 연설문과 국정 자료를 발견했다고 보도한 이후 민주당의 지지율은 29.2%(10월 27일)에서 33.0%(11월 3일)로 3.8%포인트 오른 반면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18.9%에서 20.9%로 2% 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런 경우 통상적으로는 주요 대선후보의 지지율 상승폭이 당 지지율 상승폭보다 더 크기 마련인데, 지금 상황은 정반대”라며 “또한 무소속인 반 총장의 지지율이 22.2%에서 17.1%로 5%포인트 가까이 빠지는 동안 문 전 대표가 이의 절반도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이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이 본격화되기 전인 9월 14일 같은 조사에서도 19.0%를 기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문 전 대표가 새롭게 얻은 성과는 사실상 그리 많지 않은 셈이다.

일각에서는 문 전 대표의 ‘과도한’ 신중 행보가 지지층과 중도층에 별다른 어필을 하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11월 12일 문 전 대표가 서울 도심 촛불집회에 참석한 것을 두고 일부 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하다가 숟가락만 얹는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 같은 목소리가 반영된 것인지 11월 10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지지율 조사에서 문 전 대표는 20.8%를 기록해 전주보다 0.1%포인트 빠지기도 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 용산구 서울역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당내에서는 대선 승리를 위해 ‘산토끼’로 분류되는 중도층을 잡아야 하는 문 전 대표 입장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친문계의 한 초선 의원은 “문 전 대표와 지지세력 간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문 전 대표가 나서서 거리시위 등을 주도하면 지금 당장은 당내 지지층으로부터 환호를 받을지 몰라도 중도층을 불안하게 만들어 대선에서 또 패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 전 대표의 이 같은 입장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이것이 현재 지지율 1위에 오른 문 전 대표의 딜레마”라고도 표현했다.

한편, 야권에서 문 전 대표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사실상 이번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안 전 대표는 최순실 게이트의 책임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등 그동안의 행보와 달리 야권 유력 정치인으로서의 결기를 내보였다. 또 민주당이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범위를 놓고 우왕좌왕하는 동안 “여야 합의 총리가 내치와 외치를 모두 맡아야 한다”며 일찌감치 박 대통령의 내·외치 포기를 못박기도 했다.

김병준 총리 카드에 스텝 꼬인 안철수는 ‘본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세 번째)와 만난 민주당 대선후보 5인. 왼쪽부터 이재명 성남시장, 문재인 전 대표, 추 대표, 김부겸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 사진·중앙포토
또 11월 12일 촛불시위 때는 이른바 ‘3단계 퇴진론’이라는 구체적인 정국 해법의 로드맵을 제시하기도 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오후 대전 동구 국민체육센터에서 열린 비상시국 간담회 및 팬클럽 ‘동그라미’ 창립대회에서 “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의 마음을 수용해 책임지고 퇴진하겠다’고 정치적 퇴진을 선언하고, 여야가 합의해 총리를 뽑아야 한다”며 “여야 합의 총리가 대통령의 법적 퇴진 시기까지 명시한 ‘향후 정치적 시간표’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정치적 고비마다 ‘뜸’을 들여 ‘간철수’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던 안 전 대표로서는 이전에 없던 발 빠른 대처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더 이상 ‘간철수’가 아니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당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는 문제에서 스텝이 꼬였다. 김동철·유성엽 의원 등 당내 주류 세력인 호남권 의원들의 반발을 뚫고 ‘김병준 비대위원장 카드’를 밀어붙였다. 당내 호남파인 천정배 의원은 이와 관련해 “안 전 대표가 당 비대위원장으로 모셔야 되겠다고 고집한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김 교수를 황교안 국무총리에 이은 차기 총리 후보로 발표하면서 힘이 빠졌다. 모처럼 당내 주도권을 놓고 강공 모드로 달리던 안 전 대표로서는 뜻하지 않은 일격을 맞은 셈이었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선후보 지지율이 정체 상태에 놓였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안 전 대표의 지지율은 외부 정치 상황의 움직임과 별개로 10% 선에서 머물고 있다. 안정적인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좋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당장 차기 대권을 노리는 안 전 대표로서는 미소를 지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호남권에서 문재인 전 대표에 이어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에게도 밀리며 3위에 머무르고 있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국민의당 관계자도 “우리 당의 본거지에서조차 3위로 밀렸다는 것은 비상상황”이라며 “대선주자로서 위상을 다시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의 하야’를 기치로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회동을 갖는 등 정치적 공간을 넓히기 위한 시도를 모색하는 중이다.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에 맞선 범여권 후보로 옹립되는 것 아니냐는 발 빠른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여야를 합쳐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가장 큰 수혜를 얻은 대선 주자를 꼽으라면 단연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11월 4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시장은 9.1%로 문재인 전 대표에 이어 민주당 내 2위를 기록했다. 출마 선언을 할 때 대부분 눈여겨보지 않던 이 시장이 어느새 박원순 서울시장(5.9%)과 안희정 충남지사(4.3%)를 제치고 멀찌감치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10.7%)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는 상황이다.

이재명 시장의 동력은 거침없는 직설(혹은 독설)과 즉각적인 행동, 소위 ‘사이다’처럼 지지자들을 환호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그는 지난 10월 27일 ‘썰전’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대선주자의 첫 ‘하야’ 언급) 10월 29일에는 대선 주자로서는 유일하게 서울에서 열린 첫 도심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 시장을 야권의 ‘트럼프’에 비유하기도 한다. 외부 평가에 개의치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SNS에 가감 없이 쏟아내는 것이며, 자신에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을 비판의 도마에 올린다는 점 등이 비슷하다는 이유다.

당내 2위 뒤바뀐 이재명 ‘웃고’, 박원순 ‘울고’


▎이재명 성남시장은 대선주자 중 처음으로 박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했다. 11월 12일 더불어민주당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탄대회에 참석한 이 시장. / 사진·뉴시스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 시장의 행보를 ‘집토끼’ 사냥법으로 해석한다.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을 목표로 중도층 공략에 나서는 동안, 갈증을 느끼는 야권 지지층을 흡수해서 살찌우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집토끼 공략은 2위권 주자들의 숙명이다. 일단 당내 2위 주자로서 위치를 확보하면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 대역전을 모색할 수도 있고, 혹은 3~6위 주자들과 함께 ‘반 1위 연대’를 구축해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2위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과거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와 같은 대역전승을 재현할 수도 있다. 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번 미국 대선을 보니 결국 진성 지지층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런 점에서 이재명 시장의 전략이 나쁘지는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하야하고, 거국내각이 들어서면서 최순실 게이트의 폭풍이 잦아들면 이 시장의 폭발력도 어느 정도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받고 있다.

이 같은 이 시장의 상승세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박원순 서울시장. 오랫동안 문재인 전 대표에 이어 민주당 내 2위 주자이던 박 시장은 이 시장의 상승과 함께 주저앉고 있다. 한때 박 시장 측은 무명에 가까운 이 시장과 경쟁자로 분류되는 것조차 불쾌한 반응을 보였지만 지금은 지지율이 뒤지는 데다 그 격차가 두 배 가까이 벌어진 상태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탓인지 경남에서 2박3일 일정을 소화 중이던 박 시장은 서울 도심의 1차 촛불집회가 끝난 다음 날(10월 30일)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경했다. 이어 촛불집회와 대통령 하야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청년수당’을 비롯해 간혹 반대편들로부터 ‘포퓰리즘’이라고 공격받는 행보가 비슷하게 겹친다는 분석도 있다. 이 시장과 박 시장이 같은 파이를 두고 다투다 보니 동반 상승보다는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의 방식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 ‘히든카드’로 분류되던 안희정 충남지사와 김부겸 의원은 이번 정국에서 이렇다 할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온건파로 분류되는 김부겸 의원은 박 대통령이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국회가 총리 후보를 추천해 달라. 내각을 통할하게 할 것”이라고 한 제안을 두고 “대통령이 할 만큼 했다. 총리 인선을 준비하자”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당의 입장과 배치되자 다시 거둬들이는 등 현 정국에서 이득을 보지 못한 축에 속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뛰어넘겠다”며 중도로의 확장을 꾀하던 안희정 지사도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도 비교적 말을 아끼고 있다. 박 대통령의 하야나 거국중립 내각 등에 대해서도 원론 수준의 입장만 내놓다 보니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중도 확장성이 가장 큰 무기인 안 지사가 지금 선명성 경쟁을 하다가는 자신의 장점마저 잃게 된다”고 말했다. 즉, 이번 국면이 지나갈 때까지 도정에 전념하는 것이 최선의 방어책이라는 것이다.

- 이충형·유성운 기자 adche@joongang.co.kr

201612호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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