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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제3지대’ 정치 폭발하나 

“문재인을 잡아라” 친박 몰락 빈틈 노린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탈당 수순 비박계, 위태로운 야권공조… 정치권 이합집산 본격화 조짐
친박을 대체할 새로운 ‘21세기형 보수’로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여야를 대체할 세력으로 제3지대가 급부상하고 있다. 일찌감치 제3지대를 위한 플랫폼 정당을 선언한 국민의당이 11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전 대표(왼쪽)와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 사진·중앙포토
2016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정계가 출렁인다. 천지가 개벽해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2주 연속 5%(한국갤럽 발표)를 기록했다. 헌정 사상 최저 지지율이다. 새누리당에선 대표적 친박 인사인 이정현 대표가 궁지에 몰렸다. 새누리당 비주류는 친박 지도부 사퇴를 촉구하며 ‘딴 살림’(비상시국회의)을 차렸다. 사실상 분당 수순에 접어든 모양새다.

야권은 우여곡절 끝에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 깨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관계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선주자 지지율 1위에 오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국민의당의 경계심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국민의당뿐 아니라 민주당 내 비주류의 반문(反文)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이 같은 안개정국 속에서 점점 분명해지는 것도 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대선시계가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문재인의 대항마, 몰락한 친박의 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세력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제3지대’가 다시금 조명 받는 이유다.

<월간중앙>이 100만 촛불집회가 열린 다음 날인 11월 13일 실시한 여론조사(76쪽 기사 참조)에서는 응답자의 65.2%가 정계개편을 예상했다. 그중 “새누리당이 친박과 비박으로 나뉘어 두 개의 보수정당이 나올 것”(33.0%)이란 응답에 이어 “새누리당 비박이 탈당 후 국민의당과 함께 ‘제3지대’를 만드는 방식이 될 것”(23.9%)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제3지대’는 중도를 표방하지만 양극단으로 통하는 친박·친문 패권주의 반대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비패권지대’로도 통한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는 최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정계개편이 일어난다면 비패권지대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제3지대’에 대한 논의는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의 범위를 넘어섰다. 이제 ‘그 폭발력은 어디까지일까’로 논의의 중심추가 옮겨지고 있다. 몰락 수순에 있는 친박을 대체할 새로운 21세기형 보수로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제3지대가 제1지대로 올라설 수 있을까.

‘딴 살림’ 차린 새누리, “분당 수순 돌입”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11월 14일 국회 당 대표실 앞에서 자신의 사퇴를 주장하는 원외당협위원장들과 만나 이야기 나눈 후 자리를 뜨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새누리당은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100만 국민의 분노의 직격탄을 맞았다. 진박(진짜 박근혜계) 이정현 대표에 대한 사퇴 요구가 잇따르고 있고, 이 대표가 임명한 당직자들은 줄줄이 사퇴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자진 사퇴는 없다”며 버티기에 돌입하면서 당내 분란은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이 대표는 11월 14일 조기 전당대회(내년 1월 21일) 카드를 꺼내들면서 “거국내각 구성과 관계없이 늦어도 12월 20일에는 사퇴하겠다”는 구체적인 퇴진 일정까지 밝혔지만 ‘꼼수’라며 당내 반발만 샀다. 다음날 마련한 3선 의원 간담회에서도 단 한명이 참석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전날 정진석 원내 대표가 주재한 3선 의원 오찬 회동에 12명이나 참석한 것과 대조적이다.

새누리당은 11월 15일 사실상 분당 수순에 돌입했다. 비주류가 중심이 된 비상시국위원회가 이날 지도부 격인 비상시 국대표자회의를 구성하면서다. 대표자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김문수 전 경기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대선주자를 비롯해 심재철 국회부의장, 정병국·나경원·주호영·김재경·강석호 의원 등 총 12명이다.

이를 계기로 친박-비박 갈등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 대표는 “남경필, 오세훈, 김문수, 원희룡 (등은) 대선 지지율 10% 넘기 전엔 어디 가서 대권주자란 말도 꺼내지 마십쇼”라고 독설을 퍼부었고, 남 지사는 “(이 대표는) 박근혜교를 믿는 사이비 종교의 신도 같은 느낌“이라고 맞받아쳤다.

새누리당 비주류의 탈당은 이제 시간문제인 듯하다. 김무성 전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재로서는 이정현 대표 체제의 사퇴가 순리”라면서도 “이 순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또 다른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독일을 방문 중인 남경필 경기지사도 15일(현지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미 새누리당은 국민들 마음 속에서 지워졌다”며 “(당 지도부가) 지금 이 상태로 뭉개고 간다면 중대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발언을 두고 “친박 지도부의 사퇴를 계기로 탈당 명분을 쌓고 있다”(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는 해석이 나온다. 서 소장은 “비박은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상 지도부 사퇴를 명분으로 밟을 다음 수순은 탈당밖에 없다”며 “제3지대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최영일 정치평론가도 “새누리당은 해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해체 수준의 재창당을 하더라도 결국 ‘헤쳐모여’가 이뤄진다”고 했다. “제3지대론이 탄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비박을 중심으로 해서 새누리당 다수가 박 대통령의 어마무시한 실정과 그 책임론에서 탈출하기 위해 제3지대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제3지대가 굉장한 폭발력이 있다”(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주장도 나온다. 박 교수는 “국민은 한국의 정치판을 통째로 바꾸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바꿀 만한 정치세력이나 대안이 없다는 게 우리 정치의 위기”라고 규정한다. 그는 “기성정치를 상징하는 1번 ‘친박’은 이런 변화의 욕구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고, 2번 ‘친노’는 친박과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통해 기득권 정치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제3지대라는 엄청난 공간이 남아 있다”고 했다.

‘따로 또 같이’ 위태로운 야권공조


▎이정현 대표의 사퇴를 촉구해온 새누리당 비주류는 비상시국회의를 구성하면서 한 지붕 아래 두 집 살림을 차렸다. 사실상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 사진·뉴시스
야권은 위태로운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11월 14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뒤늦게 당론으로 정하면서 표면상으로는 야권공조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날 불거진 영수회담 논란으로 벌어진 간극을 좁히기에는 역부족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양자 영수회담을 제안했고 청와대는 이를 즉각 수용했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당장 반발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추 대표와 청와대와 모종의 거래설까지 제기했다. 특히 이번 회담을 제안한 막후로 김민석 민주당 특보단장을 지목하고 “추미애의 최순실”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추 대표가 정치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러자 추 대표도 “그럼 제1당 대표가 가만있으란 말이냐”고 응수하면서 야권공조에 파열음을 불렀다.

양자회담이 민주당 내 반발에 부딪혀 불발되자 박 위원장이 환영의 뜻을 밝히고 야권공조 입장을 확인하긴 했지만 양당 간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형국이다. 박 위원장은 16일 문재인 전 대표가 제안한 ‘비상시국기구’ 구성을 거절했다. 그는 “이미 시민사회단체와 조율하고 설득한 결과가 박 대통령에 대한 탈당과 퇴진요구 아니냐”며 “필요하면 시민사회와 협의할 수는 있지만, 연대 기구 구성은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특히 이날 예정됐던 시민사회단체와 야3 당 대표 오찬 간담회가 돌연 취소된 것은 불안정한 야권공조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날 불참 의사를 밝힌 추 대표 측은 일정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영수회담 사태의 앙금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왔다. 야3당은 대신 17일 본 회의를 마친 뒤 회동키로 뒤늦게 합의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의 공동전선이 형성됐다는 점이다. 공통분모는 여야를 통틀어 대선주자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견제다. 새누리당은 노골적으로 문 전 대표를 비난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 퇴진을 주장한 문재인 전 대표가) 민중혁명으로 정부를 전복하려는 생각인 것 같다”(김무성 전 대표)거나 “대통령이 다 된 줄 착각하고 있다”(정진석 원내대표)는 발언들이다. 국민의당에선 박지원 위원장이 문 전 대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다. 문 전 대표가 ‘호남의 지지가 없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4·13 총선 당시 발언에 대해 “정권교체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 광주 호남에서 우리당이 지지받기 위한 전략적인 판단”이라고 해명하거나, “지금은 개헌을 논의한 시점이 아니다”라고 밝힌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박 위원장은 문 전 대표의 호남 발언에 대해 “호남을 생각한다면서 완전히 무시하는 일”이라고 발끈했다. 또 개헌 문제와 관련해선 “실낱처럼 개헌을 고리로 뭉쳐가던 여야 의원들이 허탈감을 갖게 됐다”며 “현 시국을 풀고 (자신의) 대권가도로 갔으면 한다”고 질타했다. 이에 문 전 대표 측 김경수 의원은 “박 비대위원장은 분열의 언어 대신 단결의 언어로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광폭행보 안철수, 반기문·손학규와 손잡나


▎박 대통령 퇴진을 위해 구축된 야권 공조체제는 위태롭다. 11월 9일 국회에서 만난 야3당 대표. 왼쪽부터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 사진·중앙포토
제3지대론의 핵심은 어느 지점에서, 누구를 중심으로 모이느냐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다. 안 전 대표는 지난 8월 “양극단을 제외한 합리적 개혁을 원하는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야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번 <월간중앙> 여론조사에서도 정계개편이 일어날 경우 제3지대를 이끌 인물로 안철수 전 대표가 18.4%를 얻어 1위로 꼽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17.6%),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17.6%),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10.1%)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안 전 대표가 몸담고 있는 국민의당이 제3지대의 베이스캠프가 될 가능성도 높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당의 문을 활짝 열고 누구든 받아서 치열하게 경쟁하게 하는 대선후보 플랫폼 정당을 만들겠다”(8월 10일)라고 선언한 만큼 국민의당 입장에서도 새로운 이들의 유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안 전 대표는 이번 최순실 정국에서도 앞장서고 있다. 11월 4일 온라인 서명운동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박근혜 대통령 퇴진운동에 착수했고, 8일엔 ‘비상시국 수습을 위한 정치지도자회의’ 소집을 공개 제안하기도 했다. 다음 날 박원순 서울시장과 단독 회동을 갖고 “박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고 공동 입장을 정리한 데 이어 16일엔 안희정 충남지사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참석한 행사장에 일부러 찾아가 “함께 정국수습 방안에 대해 가진 생각을 교환하고 합의점을 찾아가자”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누가 제3지대에 참여할까. 정치권에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우선적으로 꼽힌다. 친박이 기획했던 반기문 카드가 무용지물이 되면서 반 총장이 사실상 갈 곳이 없어졌고, 손 전 대표는 정계복귀 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면서 국민의당과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이 연대는 새누리당 비박 측에도 열려 있다. 손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새누리당에서 비박은 중도 쪽에 가깝고 개혁 성향이 강한 분들이기 때문에 제3지대에 맞는 것 같다”며 “정치권에서 새판짜기를 염원하고 중도를 지향한다면 누구든지 만날 수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안 전 대표와 가까운 이태규 의원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중도를 지향하거나 새로운 어떤 정치의 지형을 꿈꾼다면 같은 논의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며 안철수-반기문 연대 가능성을 밝혔고, 반 총장도 사석에서 “정치 행보를 본격화할 경우 확장성을 키우기 위해 다른 세력과 연합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3지대의 폭발성을 예측한 김종인 전 대표의 역할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 민주당은 경선을 하더라도 문재인의 일방적 독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문재인 진영에 참여하지 않는 세력과 비박 등의 연대가 모색될 것”이라며 “김종인 전 대표가 거기에서 역할을 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했다. 이외에도 현재 외곽에서 세력화를 추진하고 있는 정의화 전국회의장(‘새한국의 비전’ 이사장)과 이재오·최병국 전 의원(늘푸른한국당 창당추진위원회 공동대표) 등이 제3지대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된다.

제3지대가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제3지대가 새누리당 친박을 대체할 새로운 ‘21세기형 보수’를 표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최영일 평론가)는 것이다.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제3지대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확장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제3지대는 야권을 기반으로 했다면, 새누리당 지지층이 붕괴된 현재 상황에서 제3지대는 여야, 진보와 보수 양쪽 세력을 아우르게 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3지대가 이제는 제3지대가 아니다”(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내년 대선에서 친박이 후보를 내더라도 군소 후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고,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3지대 간 양자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윤 센터장은 “제3지대는 제1지대(새누리당)와 제2지대(더불어민주당) 사이의 새로운 영역인 중도층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었지만, 제1지대가 붕괴해서 정비하지 못한다면 3지대가 1지대를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최 평론가는 “제3지대는 ‘특정 후보에게 특혜는 줄 수 없지만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 들어와라, 불쏘시개가 되든지 킹이 되든지 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비민주당 후보가 다 몰려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김무성·유승민·반기문·안철수·손학규 이 정도 주자들만 갖고도 제3지대는 흥행 판을 여는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이런 상황은 문재인 전 대표로서도 나쁠 게 없다는 분석이다. 문 전 대표로서는 ‘1여 2야’ 구도의 야권분열이 가장 큰 부담이었지만, ‘헤쳐모여’를 통해 일대일 구도로 정리된다면 그로서도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다. 민주당 안에는 ‘절대 탈당하지 않을’ 후보군도 이미 충분하다. 이번 최순실 정국에서 인기가 급증한 이재명 성남시장이 있고,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안희정 충남지사와의 러닝메이트 등 다양한 조합을 활용해 얼마든지 경선 흥행을 도모해볼 수 있다.

제3지대를 한 데 묶을 구심점으로는 ‘개헌’이 주목받고 있다. 윤 센터장은 “최순실 사태는 현재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시스템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개헌의 정당성을 높여줬다”며 “개헌을 매개로 한 연대나 세력화 시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박상병 초빙교수는 “개헌과 동시에 정치혁신이 제3지대 결성의 가장 중요한 명분”이라며 “국민의 기본권을 어떻게 보장하고 정치혁신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논의를 통해 개헌의 밑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개헌은 전략이 아니라 새 시대의 가치와 비전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치혁신, 공정성장, 남북평화체제 같은 몇 가지 핵심정책에서 연대를 이루고 ‘내년에 집권한 뒤에 새 정부에서 개헌을 하겠다’고 한다면 성공적인 연대가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개헌’ 고리로 연대… 선(先) 집권 후(後) 개헌 수순


▎개헌론자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왼쪽)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11월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손 전 대표와 안 전 대표. / 사진·뉴시스
제3지대론에서 거론되는 인물들은 대부분 대표적인 개헌론자다. 김무성 전 대표는 11월 9일 “(국정농단) 진상규명과 그에 대한 엄벌을 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시는 우리 국민에게 실망을 드리지 않기 위해 체제를 바꾸는 개헌에 몰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헌법보다 대통령을 위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왕적 권력관계”라며 “나는 (박 대통령과) 동지적 관계이지 상하관계가 아니라고 말하다가 멀어졌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2014년 10월 중국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개헌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 전 대표와 보조를 맞추고 있는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15일 “(촛불집회) 광장의 함성은 우리에게 답을 던진 게 아니라 문제를 던진 것이다. 답을 내놓을 책무는 국회에 있다”며 “국회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개헌 논의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인 전 대표는 13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70년 동안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했던 정치체제, 경제운용 체제를 바꾸려면 개헌을 1차적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내각제를 주장해온 김 전 대표는 “최순실 사태는 대통령제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내각제는) 개인적 횡포를 부릴 소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제3지대는 개헌을 고리로 하지 않으면 열리지 않을 것”이라면서 “제3지대는 언젠가는 열린다”고 주장했다.

손학규 전 대표는 지난 10월 정계복귀 일성으로 “현재의 체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더 이상 나라를 끌고 갈 수 없다. 이제 제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며 개헌을 주장했다. 최근 최순실 사태에 대해서도 “지금은 책임총리가 아니고 거국내각 총리여야 한다”면서 “거국내각은 과도정부가 되어야 하고 과도정부는 7공화국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11월 21일에는 ‘개헌을 통한 연정형 권력구조의 제도화’ 등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어 개헌론 띄우기에 나설 예정이다. 손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이제 개헌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조만간 안철수 전 대표와 만나게 될 것”이라고 개헌을 고리로 한 연대에 적극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분권형 대통령제 같은 개헌 문제가 나오면 문재인의 시대는 끝장이기 때문에 절대 개헌을 주장할 리 없다”면서 “안철수 의원도 문재인 대세론이 바뀌지 않으면 개헌에 소극적이나마 찬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안철수 전 대표 측은 “지금 개헌을 고리로 연대하면 무조건 욕먹게 돼 있다”면서도 “이 사태를 초래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해서 대선후보들이 각자 안을 내놓은 뒤 ‘정권 초기에 무조건 개헌하겠다’고 약속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당장 개헌을 논의하는 것에 대해선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되면 국정공백을 수습해야 할 정치권이 개헌을 갖고 싸우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지만, 공약으로서의 개헌은 결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구상은 제각각, 최종 합의점 도출 여부가 관건

제3지대로 모이기 위한 명분과 동력은 마련됐지만 넘어야 할 산은 적지 않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지만, 그 시기와 최종 합의점에 대해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더구나 박 대통령 퇴진 후 정국 수습 방안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개헌을 당장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선(先) 국정 수습 후(後) 개헌’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다. 김무성 전 대표는 대통령의 퇴진이 아닌 탄핵을, 손학규 전 대표는 대통령의 2선 후퇴(새 내각의 수습 후 퇴임)를 각각 주장하고 있다. 안철수 전 대표는 ‘대통령 퇴진 선언-여야 합의 총리-정치 일정 확정’의 3단계 방안을 제시하고 조기 대선을 주장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박 대통령의 거취가 결정되지 않은 현재 국면에서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를 고리로 해서 연대하는 게 우선”이라고 짚었다. 이어 “당장은 현 상황에 대한 타개책, 그 후 수습 국면에서 개헌의 방향 이 두 가지가 제3지대의 결성을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엇보다 어떻게 합의점을 도출해낼 지가 관건이다. 제3지대에 거론되는 인사들이 선호하는 권력구조는 대통령 4년중임제와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 등 제각각이다. 김종인 전 대표는 내각제를, 김무성 전 대표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각각 선호한다. 안철수 전 대표는 “중대선거구제 개편이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를 개선한 뒤 개헌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개헌보다 쉬운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합의하지 못하면 더 난이도 높은 개헌은 합의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 문제도 걸림돌로 지적된다. 윤희웅 센터장은 “대통령제가 아닌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를 도입한다면 현재 국회의원의 임기가 3년이나 남았기 때문에 매끄럽게 진행되긴 어렵다”며 “당장 개헌을 한 뒤에 선거를 치르기는 어렵고,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고 대선을 치르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김종인 전 대표는 “개헌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며 “이미 준비된 개헌안이 있기 때문에 다른 의견이나 변화를 반영할 약간의 수정만 거치면 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201612호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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