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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미국 대선] 인간 트럼프를 통해 본 미국과 세계의 앞날 

글로벌 비즈니스맨 정치의 도래 그는 ‘반칙왕’이 아니다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상하 양원과 연방법원까지 석권, 88년 만의 최강 리더십 행사… 북핵문제 해결에서도 강펀치 앞세워 대화하되 평화협정 체결 현실화할 수도

▎11월 9일 대선 승리 직후 연설 단상에 오른 도널드 트럼프가 막내아들 배런과 부인 멜라니아, 장녀 이방카, 사위 쿠슈너(왼쪽부터)를 바라보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2016년 늦가을과 초겨울 한국의 상황을 이모티콘으로 표현한다면?

예술적 상상력에 따라 갖가지 캐릭터가 나오겠지만, 속된 말로 이른바 ‘멘붕’을 의미하는 이모티콘이 가장 많지 않을까? 귀·눈·입을 막고 있는 원숭이 3형제나 머리에 붉은 뿔이 달린 악마형 모나리자, 귓전을 스치는 초고음 뭉크의 ‘절규’같은 것들이다. 탄식·비명을 동반한 오디오 겸비 이모티콘이라면 더 어울릴 듯하다. 로키산맥 절벽에 드리워진 밧줄 위를 걸어가는 허수아비, 비바람이 몰아치는 저녁에 바람막이를 상실한 등화(燈火), M60 중화기로 무장한 근육질의 람보도 떠오른다. 말이 필요 없다. 받침도 빼먹고 띄어쓰기도 엉망인 메시지를 보내기보다 화끈한 이모티콘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 나라가 2016년 말의 한국이다. 안절부절·좌불안석(坐不安席)·낙담상혼(落膽喪魂)·불안초조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지금 한국인의 심정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소식은 연말 이모티콘 2.0시대를 여는 또 다른 동인(動因)이다. 가운데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악을 쓰는 옥수수 이모티콘이 필요하다고나 할까?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트럼프가 한반도 전체를 야구공으로 생각하면서 방망이로 내치려는 순간의 이모티콘도 출시될 듯하다. 한반도야구공의 중간 실밥 어딘가에는 핵폭탄과 보르도 와인을 움켜진 뚜껑머리 뚱보가 걸려 있다. 작지만 비명소리가 같은 것이 울려 퍼진다. “방망이로 한번 내쳐보라우, 사방팔방 전부 골로 갈테니까!….”

웃고 떠드는 순간 스쳐 지나가는 ‘현상’이 아니다. 전 세계 60억 인구가 피부로 체감하면서 4년간 함께 살아가야 할, 눈앞의 ‘현실’이 트럼프 당선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대반전, 글로벌 충격, 미친 미국 등등의 기사 카피가 눈에 띈다.

[CNN]이 선거 당일 발표한 힐러리 클린턴 당선 확률은 90% 이상이었다. 외국 뉴스를 모범답안으로 하던 한국에서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건이 터진 것이다.

올 들어 필자는 세 차례에 걸친 <월간중앙>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 현상의 의미와 미래를 진단해왔다. 흑백 분리형 사고에 기초한, 누가 이길지에 대한 족집게 전망이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 현상이 보통 미국인의 정서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아주 정상적인 상황이란 사실을 누차 강조했다. 인종차별주의자나 상습적인 성추행자, 나아가 미국 제일주의에 빠진 우물 안 개구리가 뉴스 속 트럼프의 모습이다.

그러나 악명 높은 반칙왕의 이면에는 리버럴 미디어의 조직적인 편견이 도사리고 있다. 필자가 보면 [CNN]은 북한 김정은 체제 아래의 <평양방송>과 같은 역할에 준하는, 외눈박이 프로파간다 미디어로 느껴진다. 독재를 대신해 리버럴리즘에 올인하는 미디어가 [CNN]이나 <뉴욕타임스>와 같은 미국 주류의 미디어다. ‘어떻게 그 유명한 뉴욕타임스가?’라고 반문할 듯하다. 원숭이 3형제 이모티콘에서 보듯, 눈·코·귀가 덮이면 일방통행 상태로 들어갈 뿐이다. 반(反) 트럼프 정서는 마치 냉전체제 당시의 이데올로기와 같은 의미로 미국 미디어로 확산됐다. 내막을 모르는 한국 언론은 미국 미디어의 반(反)트럼프 정서를 120% 수입해 보도한다. 트럼프 당선 후 나타난 한국 주식시장에서의 폭락사태는 좋은 증거다. 다음 날 미국 증시시장보다 더 큰 폭락세가 서울에서 일어났다. 리버럴 미디어의 힘은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강하다.

유권자들은 어떻게 왜곡된 정보에 놀아났나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소식을 담은 11월 9일자 [시카고트리뷴] 1면 . / 사진·중앙포토
한국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선거 때가 되면 ‘카더라 소문’이나 일방적 증언들이 쏟아져 나온다. 보통 타블로이드 신문에나 등장하는 <선데이서울>형 가십에 불과하다. 그러나 2016년 선거기간 동안 미국 주요 미디어들은 앞을 다투면서 여과 없이 기사화한다. 미국 미디어 보도를 열심히 접한 사람이라면 트럼프를 거의 성폭행범 수준으로 받아들였을 듯하다.

21세기 들어 나타난 미국 미디어의 변화 중 하나지만, 여성·흑인·히스패닉과 같은 마이너리티 출신 저널리스트 수가 엄청 늘고 있다. 필자의 주관적 판단이지만, 주요 미디어의 10년차 이하 저널리스트를 기준으로 할 때, 대략 80% 가까이가 마이너리티에 해당될 듯하다. 백인 저널리스트는 많아야 30%대로, 양적인 측면에서 마이너리티로 전락한 지 오래다.

기본적으로 트럼프는 백인들이 세운 미국 재건을 슬로건으로 하면서 등장한 정치가다. 당선 후 축하인사를 위해 뉴욕 무대에 오른 트럼프와 부통령 당선인 마이크 펜스 가족들의 면면을 보자. 1950년대 이전의 필름으로 돌아가는 듯한 백인 일색의 가정이다. 근육질 남성이 보여줄 수 있는 강한 리더십도 트럼프의 특징 중 하나다. 마이너리티 입장에서 보면 적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 나아가 한국에 무차별적으로 투하된 반칙왕 트럼프에 관한 이미지는 바로 그 같은 미디어 내부의 변화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정책이나 비전이 아니라 트럼프가 던진 말 한마디에 시비를 걸면서 사사건건 대립한 것이 2016년 대선 보도의 특징이다. 대반전, 글로벌 충격, 미친 미국과 같은 반응은 바로 그런 왜곡된 정보에 놀아난 사람들에게 나타난 공통점이다. 도시 밖 미국인과 만나 5분간만 얘기를 나눠봐도 힐러리의 압승, 트럼프의 완패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한번 단추가 어긋나면 마지막까지 엉키게 된다. 리버럴 미디어의 광기에 휘둘린 한국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트럼프 당선 후로도 반칙왕 트럼프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뜨리지 못한다. 캐나다 이민 관련 웹사이트가 망명을 원하는 반(反)트럼프 미국인들에 의해 다운됐다는 식의 보도가 대표적인 예다. 가십 정도 뉴스인데도 마치 미국 전체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처럼 주요 뉴스로 처리된다. 서버 다운이 캐나다 망명을 원하는 사람들이 아닌 내부의 기술적 문제로 발생했다는 점과 문제가 된 사이트가 이민법만이 아닌 세법·퇴역군인·연금에 관한 정보도 제공한다는 점도 무시된다. 뉴욕과 대도시 전역이 반트럼프 데모로 몸살을 앓는다는 식의 타블로이드 가십성 뉴스도 큰 제목과 함께 한국인에게 알려진다.

한국과 일본의 너무나 다른 트럼프 대처법


▎미국 내에서 반(反)외국인 정서가 확산되면서 이민법 개혁을 추진한 오바마 대통령을 비판하는 여론도 증가했다.
인터넷 시대이기에 눈과 귀가 항상 열려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정반대다. 전체적 판세를 못 읽는 탓도 있지만, 워낙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에 보고 싶거나 듣고 싶은 부분에만 신경을 쓰게 된다. 따라서 정확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고 머뭇거리게 된다. 명(明)이 청(淸)에 의해 완전히 몰락한 것이 1683년이다. 조선은 명이 뿌리째 뽑힌 지 200여 년이 지난 한말(韓末)까지도 명을 받들었다. 대세는 청으로 흘러갔지만, 오랑캐 청을 비난하면서 명에 대한 의리로 똘똘 뭉쳤다.

과장이라고 비난할지 모르겠지만, 트럼프 당선 직후 나타난 한국 내 눈먼 세계관은 17세기 말 이후 조선의 중국관, 세계관과 너무나 닮아있다. 변한 상황에 곧바로 적응하기보다 이미 끝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게 연연하며 어제를 되씹어보는 행태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고 말하지만, 다리는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엉켜 있다. 당선인 발표 직후 불과 하루 만에 트럼프 회동을 성사해낸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내년 1월부터 대통령으로 일할 트럼프는 전 세계 정치·외교 전문가들에게 고난도 과제를 제시한 상태다. 트럼프의 미국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며, 세계 각국을 어떤 식으로 대처할 것인가? 특히 한국의 경우 선거운동 기간 중에 보여준 트럼프의 부정적 발언으로 인해, 한층 더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향후 전망에 나서고 있다. 개개인의 취향에 맞춘 ‘로또 뽑기’식 전망이 넘치지만, 필자는 다른 각도에서 내일에 관한 얘기를 살펴보려 한다. 색안경을 벗고, 트럼프란 인간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통한 미래 전망이다. 선거기간 중 보여준 정치가로서의 트럼프가 아니라 원래부터 갖고 있던 인간성이나 인생 궤적에 기초한 분석이다.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철수할지 여부는 앞으로 펼쳐질 국제정세 변화나 트럼프 주변 외교전문가들의 판단에 의해 종합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무임승차론에 대해 언급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구체화하기까지는 여러 단계의 논의를 거쳐야 한다. 과연 그 같은 단계로 나아갈지, 나아간다면 몇 단계까지 거칠지, 얼마 동안의 기간에 걸쳐 계단에 뛰어오를지 등의 각론이 필요하다. 신이 아닌 이상 구체적으로 벌어질 그 같은 상황들을 전부 알아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간 트럼프의 행적이나 사고를 객관적으로 짚어볼 경우 미래에 관한 전망도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

필자가 워싱턴에서 생활한 것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덕분에 지금까지 전부 다섯 번의 미국 대선을 지켜봤다. 미국인에게 대선은 엔터테인먼트 빅 이벤트에 해당된다. 선거를 통해 새로운 스타와 캐릭터가 생성, 발전 그리고 소멸된다. 다섯 번의 선거를 지켜보면서 내린 결론이지만, 뭔가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면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상 가능하거나 어제를 떠올리게 하는 진부한 캐릭터는 퇴장이다. 전통, 역사에 기초한 선거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방식이나 절차는 법에 기반한 전통과 역사에 기초한다.

세상의 권태감을 날리는 예측 불가능성


▎지난 5월 판문점을 방문한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은 “우리는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강력한 준비태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진·중앙포토
그러나 콘텐트는 다르다. 미국은 젊은 나라다. 미국인은 ‘항상’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복잡하고 심오한 가치가 아니라, 당장 눈에 들어오고 향긋한 냄새가 나는 상상 밖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남다르다. 힐러리와 트럼프 가운데 누가 더 새로운 캐릭터일까? 트럼프 연설을 한 번이라도 들어봤다면 트럼프가 왜 미국인의 지지를 받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이는 70세 ‘꼰대’에 속하지만, 콘텐트는 재미와 흥미로 메워져 있다. 억세고 정제되지 않은, 불량기와 비린내로 뒤덮인 캐릭터지만 한 번만 접해도 빨려 들어간다. 선동가라고 하지만, 결정은 세계 최고의 패권국인 미국 내 국민이 결정한다. 선동가 여부는 그들이 결정한다.

힐러리의 경우 정당하며 착하고 올곧은 세상이지만, 너무도 빤하다. 흥미는 물론 재미도 없다. 심각한 얼굴로 정책과 미래를 올바르게 논하는 모범생 정치가는 한국인이 선호하는 캐릭터다. 미국은 다르다.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지난 주말의 여가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 트럼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전 대통령, 실비오 벨루스코니 이탈리아 전 총리, 나아가 클린턴 전 대통령과 같은 지도자들은 지식인의 혐오대상자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돈문제는 물론, 성추문과 같은 바지 아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정치가들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이 본받아서는 안될 19금 영역의 기피인물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들을 지도자로 뽑고, 실각이나 퇴임 후에도 또다시 그리워한다. 예측불가능한 그들의 캐릭터를 통해 무미건조한 세상의 권태감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트럼프의 형에 관한 얘기는 인간 트럼프를 이해하는 필수적 요소로, 필자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트럼프는 독일계 부동산업자를 아버지로 둔, 3남 2녀 형제 속에서 자랐다. 남자로는 차남에 해당된다. 장남인 프레드 트럼프는 여덟 살 위다. 아버지 트럼프는 세상을 두 개로 나눠 자식들에게 보여줬다. 승자와 패자다. 승자는 말이 없지만, 패자는 변명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승자를 지칭하는 말로 ‘킬러(Killer)’라는 단어를 애용한다. 승자가 아닐 경우 ‘더 킬드(The Killed)’ 즉 죽음이란 의미다. 이기고 지는 것을 죽고 사는 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차남 트럼프는 아버지를 닮아 패자로서의 변명이 아니라, 승자로서의 결과에 충실한다. 장남 프레드는 그렇지 못했다. 성격이 모질지 못하고, 스스로의 취미 생활에도 충실한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다. 아버지가 바라는 식의 승자논리를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과도한 기대 탓이겠지만, 아버지와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부동산 후계자로서의 길에서 멀어진다. 비행기 조종을 취미로 하면서 가족을 떠나 혼자서 여행하는 것이 일상화된다. 고독은 고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과는 알코올중독이다. 43세가 되던 1981년 알코올중독으로 사망한다. 당시 차남 트럼프는 35세였다. 올해 1월 2일자 <뉴욕타임스>는 당시 형의 죽음에 대한 트럼프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차남 트럼프는 당시 (형이 보여준) 한순간의 나쁜 선택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피부로 느끼게 된다. 그의 형의 고통스런 모습을 보면서 트럼프는 술과 담배를 멀리하게 된다.”

의외의 일로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트럼프는 술과 담배를 가까이하지 않는다. 젊었을 때 마리화나에 손을 대고,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부인 미셸 오바마의 눈을 피해 백악관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오바마와는 전혀 다른 자기절제형 캐릭터다. 형의 죽음을 통해 전혀 다른 인생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한 인물이 바로 트럼프다.

필자 주변에서도 봤지만, 형제나 자매의 죽음은 부모의 죽음과 전혀 다른 듯하다. 자신의 피붙이란 이유도 있겠지만, 같은 나이 또래가 한순간 사라질 때 느끼는 상실감은 자신의 인생으로 곧장 파고든다. 세대가 다른 부모의 경우 나이가 있어 세상을 뜬다고 볼 수 있지만, 인생을 함께 즐겨야 할 나이에 사라진 동세대 형제의 경우 전혀 다른 차원으로 해석된다. 미래나 상상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예외가 아니라는, 현실로서의 죽음을 직감하게 된다. 70세의 트럼프는 자신의 인생의 절반이 되던 35년 전 ‘차갑고도 선명한’ 현실을 체득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트럼프는 형의 죽음을 슬픔이나 공포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와 투혼을 다지는 계기로 삼았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부동산에 올인한 이유는 단순히 패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만이 아닌, 형과 같은 죽음에 이르지 않으려는 필사적 노력으로 풀이된다. ‘패자=변명=죽음’이란 의미다. 허풍쟁이·반칙왕·성추행범·세금포탈범으로 비치는 트럼프지만,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를 절제하면서 살아가는,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다. 형 프레드를 통해 사선(死線)을 넘었던 인물이 2016년 미국의 선택이 된 것이다.

트럼프가 35세 이후 자기절제형 캐릭터로 무장했다는 점은 앞으로 펼칠 리더십을 이해하게 하는 증거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아버지의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이미 어릴 때부터 가족 내 경쟁을 체득했고, 형의 죽음조차 목격한 상태에서 무서울 것이 없는 캐릭터로 변해갔다.

죽음을 일찍 경험할 경우 두 가지 측면이 나타난다. 다시는 죽음을 원치 않는 스타일과, 반대로 죽음이 눈앞에 닥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성격이다. 여러 행적을 종합해볼 때 트럼프는 후자의 영역에 들어가는 인물이다. 스스로도 수차례 강조했지만, 대통령이 되는 순간 지상군을 파견해 시리아의 이슬람국가(IS)를 쓸어버리겠다고 공언했다. 오바마의 경우 공격에 따른 미군의 희생을 염려해 드론과 같은 테크놀로지에 의존해왔다. 트럼프는 그와 정반대로 갈 것이다. 작전 도중 미군 수십 명이 죽어도 눈도 깜짝 안 할 사람이다. 여론이 들끓어도 오히려 거꾸로 더 많은 피를 요구할 것이다. 필요악으로서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식이다. 단언컨대 트럼프 집권 100일의 출발점은 이슬람국가에 대한 승리에서 시작될 것이다. 장기적인 승리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단기적 승리라 하더라도 일단 지상군 파견을 통해 미국민의 자신감을 회복시켜주는 데 주력할 것이다.

트럼프와 오바마는 도플갱어?


▎트럼프 당선인은 오바마 대통령의 주요 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중앙포토
그렇다면 북한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슬람국가 문제가 1차원인데 비해 북한 문제는 3차원 방정식에 해당된다. 수십 명 정도가 아니라, 수천~수만 명 미군의 피가 필요할지 모른다. 한국의 경우 미군보다 수백 배, 수천 배의 희생을 동반할 것이다. 고난도의 외교력이 필요한 작업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오바마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대응이 이뤄지리라는 점이다. 오바마 스타일의 미소나 여유가 아니라 항상 오른손 강펀치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대화하는 강성 외교와 능동적 협상이 트럼프의 이미지로 나타날 것이다. 물론, 오른손 강펀치는 북한만이 아니라 중국 나아가 한국을 타깃으로 할 수도 있다.

필자의 주관적 판단이지만, 오바마는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트럼프와 가장 비슷한 캐릭터로 느껴진다. 엉터리 분석이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내막으로 들어가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2016년 대선에서 오해한 부분 중 하나는 오바마와 힐러리의 관계다. 오바마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힐러리를 응원할 경우, 임기말에도 50% 이상의 지지율을 자랑하는 대통령의 후광이 힐러리로 넘어갈 것으로 관측됐다.

엄청난 착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바마는 민주당에서 자유로운 인물이다. 좀 심하게 얘기하자면 무관하다. 힐러리의 경우 민주당 여성 대통령 후보로서의 정치가지만, 오바마는 민주당 간판으로서의 정치가가 아니다. 오바마는 정당 여부를 떠나 개인 오바마에 기초한 정치가다. 멀리는 케네디 집안의 도움에서부터 이후 상원의원에 나선 뒤 불과 2년 만에 민주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 오바마다.

정치가 오바마는 스스로의 강력한 카리스마에다가 민주당 옷을 덧붙였을 뿐이다. 사실 오바마 지지자는 민주당·공화당과 같은 당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흑인 정치가에 대한 속죄 의식 나아가 동정이라 보는 사람도 있지만, 당을 떠나 한 인간에 대한 매력으로서 오바마를 지지한다. 11월 12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지지자와 과거 오바마의 지지한 사람이 서로 겹친다고 보도했다. 오바마는 민주당 지지자들에 의해 탄생된 힐러리와 같은 당에 기초한 정치가가 아니다.

트럼프가 오바마와 비슷한 점은 트럼프 역시 당을 기반으로 한 인물이 아니란 사실에서 확인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트럼프는 투표 최종일까지 공화당 지도부와 삐걱거린 인물이다. 공화당 내부에서 반(反)트럼프 정치가가 나올 정도로 당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한 인물이다. 당이 아니라, 당을 넘어서 국민에게 직접 다가간 정치가가 바로 트럼프다.

오바마처럼 공화·민주 모두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정치가는 아니지만, 공화당 틀 속에 들어가 표를 모은 기존의 대통령 후보들과는 크게 차별화된다. 워싱턴에 위치한 중앙당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정치가 아닌, 스스로가 개발한 정치 스타일을 통해 백악관에 입성한 인물이 바로 오바마와 트럼프다.

흥미롭게도 트럼프가 가장 싫어하는 정치가는 바로 오바마다. 집권 스타일이 너무도 비슷하지만, 자신과 정반대편에선 상대란 점에서 일찍부터 경계대상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정치평론가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뜻을 둔 직접적인 계기가 2011년 4월 30일 발생했다고 풀이한다. 그전에 이미 대통령 출마를 공언한 적은 있지만, 비즈니스 차원의 립서비스에 불과했다고 한다. 비즈니스를 위한 정치였지만, 비즈니스가 아닌 정치 우선에 기초한 대통령 출마를 고려한 계기가 2011년 봄이라고 한다.

이날은 백악관 기자단(WHCA)이 주최한 대통령과의 만찬파티가 이뤄진 날이다. 워싱턴에서 가장 큰 호텔인 힐튼에서 벌어진 행사로, 보통 3000명 정도가 참가하는 초대형 이벤트다. 남자의 경우 턱시도, 여자는 이브닝 드레스를 전제로한 격조 높은 만찬이다. 필자 역시 2010년 5월 1일 힐튼호텔에서 열린 만찬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지만, 대략 미국 유력인사 전부가 모인다고 보면 된다. 정치만이 아니라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예술계 인사도 총동원된다. 파티가 시작되기 2시간 전부터 모여 서로가 인사를 나누기에 바쁘다. 정부 고관이 참가하는 파티에 샴페인과 와인이 터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WHCA 만찬에서는 예외적으로 미국산 스파클링 와인으로 축배를 올린다.

오바마 레거시의 완전한 소멸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거리에 나와 환호성을 지르는 미국 시민들. / 사진· 중앙포토
2011년 WHCA 파티는 오바마 집권 3년차인 동시에, 제2기 출마를 거의 공언한 시기다. 재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에 벌어졌다. 언제나처럼 파티는 대통령의 연설에서 시작됐다. 대통령의 유머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유쾌한 연설로, 이른바 코미디언 총사령관(Comedian in Chief)으로서의 무대다.

당시 오바마 연설의 핵심은 자신의 출생에 관한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슬람계 흑인이란 공화당 측의 공격에 맞선 반격이다. 연설은 ‘나는 진짜 미국인이다(I am a real American)’이란 노래에서부터 시작됐다. 하와이에서 등록된 자신의 출생 기록부를 보여주면서 가짜 미국인이 아니란 점을 유머로 풀어나갔다.

연설이 시작된 지 9분이 지나자, 오바마는 대통령 바로 앞에 설치된 파티장 중앙 테이블에 있는 한 인물을 지목한다. 트럼프다. 당시 트럼프는 오바마의 출생신고서가 날조된 것이라고 연일 미디어에 폭로하고 있었다. 오바마는 트럼프를 지목하면서 미국이 달에 간 것도 거짓이라고 말하는 인물이라고 창피를 줬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갈 경우 건물 전체를 호텔·골프장·카지노로 운영할 것이라고 말한다. 트럼프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요리 전문 리얼리티 방송의 수준도 폄하한다.

유머를 섞은 연설이지만, 트럼프를 눈앞에 둔 비난성 발언은 전체 연설 18분 가운데 3분가량 이뤄진다. 겉으로 웃음을 보이던 트럼프지만, 미국 유력인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도전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이날의 모욕에 있다고 미국 정치가들은 분석한다. “네가 이토록 수모를 준 것처럼, 나도 대통령에 올라 너에게 피눈물이 나도록 하겠다”라는 심정으로 대선에 도전한 것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엄청나게 큰 결과는 아주 사소한 감정에서 비롯된다. 오바마 레거시에 해당되는 부분들을 하나도 남김 없이 끝장내겠다는 개인적 한풀이가 트럼프를 대선에 내몬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의료개혁으로 대표되는 오바마의 업적만이 아니라, 오바마 스타일의 정치·외교·군사에 관한 모든 것이 뒤집힐 것이란 전망이 가능해진다. 오바마와 비슷한 정치 스타일의 정치가지만, 오바마의 반대편에 선 정책으로 미국을 이끌겠다는 생각이다.

국제정치 전문가들의 생각과 다를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트럼프가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해본다. 이유는 개인적 배경과 주변 상황으로 이분해서 설명할 수 있다.

개인적 배경은 뉴욕 비즈니스맨으로서의 관록과 자기절제형 캐릭터로 집약된다. 뉴욕에서 성공한 비즈니스맨, 특히 뭔가를 직접 만들어 눈앞에 보여주는 부동산왕으로서의 궤적은 정치무대에서의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입으로 살아가는 말로서의 정치가가 아니라, 구체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글로벌 비지니스맨 정치가다. 주변 상황이란 상하 양원은 물론 연방법원조차 공화당이 석권한 상태에서 이뤄질 강력한 리더십이다. 정책을 펴나가는 데에 뭣 하나 막히는 것이 없다. 1928년 공화당 후버 대통령 당선 당시와 같은 상하 양원의 공화당 장악이 88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민주주의 대형(大兄) 미국에서의 실질적 파워는 의회에 있다. 외교·국방에 관한 대통령의 영향력이 강하지만, 실제로는 의회의 입법과 예산권에 기초한 파워에 불과하다. 트럼프는 문제가 생겨도 의회 탓으로 돌릴 수가 없다. 공화당 주도 하의 의회와의 협조를 통해 강한 미국 만들기에 적극 나설 수가 있다. 같은 공화당이라 해도 의회와 마찰이 일어날 경우 트럼트 정치도 돈키호테 스타일로 끝날 것이다. 일부 정치학자는 이미 그 같은 파국을 예언하고 있다.

강한 미국의 희생양은 한반도?


▎미국 백악관과 1.5㎞ 떨어진 거리에 자리한 워싱턴DC의 트럼프인터내셔널호텔 정문에 내걸린 성조기. / 사진·중앙포토
주목할 부분은 강한 미국 만들기가 한국이나 외국에 항상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냉전이 끝난 지 28년이 지난 현재, 약한 황혼대국으로 접어든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북한 핵문제나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팽창정책은 그 같은 상황에서 나타난 부산물이다. 강한 미국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발생할 수 있고 한반도는 언제든지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다. 현재 벌어지는 국내 정치 상황을 보면 한반도의 내일이 어둡게 느껴진다. 미국과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은 반대 대상이 아니라, 현실로서 대처해야 할 새로운 과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냉전이 끝난 지 28년째다. 강산이 변하는 만큼 냉전 때 구축된 냉전사고도 변해야 한다. 옳고 그르고가 아닌 현실이다.

트럼프는 결코 반칙왕이 아니다. 그가 가진 단점보다 장점에 얼마나 주목하면서 대응하는 것이 한국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과 클린턴 대통령의 집권 초기 상황에서 보듯 많은 실수와 마찰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두 아마추어 대통령이 그러했듯이 결과적으로 트럼프도 잘해 나갈 것이다.

욕하고 비난하기보다 칭찬하면서 배우는 것이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상대방의 장점에 유의하면서 배워나간다면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역사가 증명해왔듯이, 적은 밖이 아닌 내부에 있다. 트럼프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스스로의 마음 자세와 전략·전술을 다지는 것이 한층 더 중요하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201612호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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