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Home>월간중앙>사람과 사람

[특별 인터뷰] “청와대도 문고리 3인방은 힘없다고 했다” 

박 대통령 당선 예언한 묘심화 스님의 시대유감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 올여름 청와대 비서관 찾아와 실세는 따로 있다는 뉘앙스 풍겨
■ 박근혜 의원 시절 “대통령 되면 정윤회 비롯한 측근 해외에 보내라” 조언해줘
■ 언론사 사장이 ‘빙의의 대가이신데 최태민 귀신은 못 떼어놓느냐’고 물어


▎1. 한국에 ‘여미륵’이 탄생할 것을 예언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탄생을 역설한 한국불교 법성종 묘심화 종정스님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과 자주 만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올해 들어 찾아온 청와대 비서진에게 “금이 많은 지도자가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 2. 묘심화 스님이 여성 대통령 탄생을 예고한 저서 <빙의>(2002)와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2006).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발칵 뒤집혀진 10월 말, 서울 구기동 자비정사 앞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기 시작했다. 한국불교 법성종 묘심화(65) 종정스님(이하 묘심화 스님)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몇 년 앞서서 예언한데다 의원 시절 자주 만나왔던 것으로 알려져서다. 최순실 씨의 전 남편 정윤회 씨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과 한때 가까웠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굿판을 벌였다는 의혹에 묘심화 스님이 지목되면서 기자들은 문 앞에서 하루 종일 대기하기도 했다.

“나는 사실 미리 경고를 줬어요.”

<월간중앙>과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묘심화 스님은 한숨을 내쉬듯 이렇게 말했다. 누구보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기원했을 그는 최근 사태에 대해 할말이 많은 듯했다. 11월 4일 자비정사에서 그를 만났다. 마침 이날은 대통령의 제2차 대국민담화 사과 발언이 있던 날이었다. 묘심화 스님은 지난여름 청와대 모 수석실에서 근무하는 비서관이 찾아왔을 때 “8, 9월부터 굉장히 나쁠 것”이라며 충분히 경고했다고 했다.

언제 청와대에 경고를 건넸나요?

“얼마 안 됐어요. 불과 몇 달 전이야. 여름에. 청와대에서 불교신도라는 비서관 모씨와 두 분이 찾아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앞으로 VIP(대통령)의 운은 어떠냐고 묻더군.”

뭐라고 답변하셨나요?

“금년 8, 9월부터 회오리 바람이 부는 것처럼 무척 힘든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어. 금년 병신년은 불과 금이 싸우는 해로 금이 많은 지도자는 버티기 어려울 거라고 했지. 측근들이 스스로 내려오든지 다 끊어내든지 해야 한다고 일러줬어.”

반응은 어땠습니까?

“(당시 찾아온) 비서관이 뜻밖의 말을 하더라고.”

어떤 말을 하던가요?

“‘문고리 3인방이 뭐 힘이 있나요’라고 했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은 권력이 없다는 식으로.”

다른 이야기도 있었나요?

“동행한 일행은 자신은 정윤회도 잘 알고, 최순실 언니도 안다고 했어요. 그래서 ‘최순실?’ 하고 내가 반문하니까 무슨 모임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요즘은 잘 안 만난다고 바로 그러긴 했어.”

그 내용이 대통령에게 전달됐을까요?

“글쎄 그거는 모르는 일이지요.”

정윤회 씨나 안봉근 비서관은 언제 봤나요?

“박근혜 의원 시절부터 자주 봐왔죠. 그런데 2007년 박 의원이 몇 번 나한테 서운함 비치시고는 못 봤어.”

박근혜 대통령과는 많이 가까우셨나 봐요.

“의원 시절에는 자주 뵙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주로 혼자 만나셨나요?

“같이 온 사람들은 늘 있었지. 정윤회, 안봉근은 자주 봤어.”

정윤회 씨와 안봉근 전 비서관은 어떤 인물이었나요?

“말이 별로 없었어. 들어오면 별 얘기도 없었어요. 자리가 불편해서 뭐 얘기할 수 있나. 보통 밖에서 기다리고 박근혜 의원님과 둘이서 얘기했지.”

마음이 많이 착잡하시겠어요.

“참 가슴이 아파요. 오늘 담화 보니까 얼굴이 많이 상하셨더라고. 지금 5%대의 지지율인데 (잘못됐다는 걸) 이제 깨달으시면 되겠나. 저렇게 지혜가 없으셨던 분인가 이런 생각도 들고 안타깝죠.”(그는 이 대목에서 목이 메인 듯했다)

“대통령, 굿판까지 벌일 사람은 아냐”


▎묘심화 스님은 “최태민·최순실 이름이 나오면 심기 불편해 한다고 들어서 실명을 거론한 적은 없다”며 “언젠가 터질까 우려했다”고 했다. 1975년 9월 5일 청와대에서 최태민(오른쪽 셋째)을 비롯한 구국선교단 일행이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큰영애를 만나고 있다.
최근 묘심화 스님은 빗발치는 전화에 시달렸다. 자비정사 앞에 기자들이 와도 문을 굳게 닫아놓았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게 그의 답이었다. 처음 기자가 만남을 요청했을 때도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한때 그가 응원하고 지지했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행여 누가 될까 싶어서였다. 그는 예전부터 “심각하게 우려해왔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굿판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안 그래도 다른 언론사에서 ‘그 굿을 혹시 스님이 한 게 아니냐’고 묻더라고. 하도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어. 다른 정치인들과 영산재에 참석한 적은 있지만 박 대통령과는 만나지도 않았어. 그런데 대통령은 절대로 그런 것 할 사람은 아냐.”

무속과 관련돼 있진 않을 거라는 건가요?

"절대 그런 건 아니에요. 최태민과 관련된 그런 건 아니야.”

최순실 씨에 대해서 보거나 들은 바 없으셨는지.

“최순실 씨는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요.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가 된 뒤 주변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최순실 얘기도 듣게 됐지.”

이미 꽤 알려졌었군요?

“항간에서는 다 알았지. 여당 사람들 이런 얘기 모르면 사람도 아니지. 그걸 우려를 했어요. 최순실은 사람의 탈을 뒤집어 썼다고 생각해요. 최태민도 마찬가지고. 그 아버지에 그 딸이지.”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요구를 했을 듯한데.

“어느 언론사 사장이 나한테 ‘묘 스님은 빙의의 대가이신데 어떻게 최태민 귀신은 못 떼어놓습니까’라고 물었어요. 난 최태민 씨를 천도한 적도, 다스린 적도, 입에 올린 적도 없어요.”

당시 박근혜 의원과 최순실 씨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나요?

“앞에서 최순실, 최태민 이름을 얘기한 적은 없어요. 그 얘기만 하면 심기 불편해 한다고 들었고, 그분 자존심이 있는데 어떻게 해. 말 못했지. 그런데 정말 걱정은 많이 했어.”

이런 사태에 대한 걱정이었나요?

“아니. 이 정도일 줄은. 최순실은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여자는 광대뼈가 나오면 고집과 아집으로 자신을 망치게 돼요. 점점 대통령의 상이 많이 바뀐다는 생각을 했지. 예전엔 순수했던 얼굴을 저렇게 변하게 만드는 자가 누구인가 하고 답답했어.”

왜 그랬을까요?

“자기가 살아온 삶이, 너무나 구중궁궐 안에 살아왔기 때문에 사람을 믿지 못하고, 편하고 가까운 사람만 믿을 수밖에 없었겠지. 어느 날 공주에서, 영애에서, 쫓겨났어요. 극도의 상처와 스트레스에서는 사람이 혼미해져요. 그러니까 이상한 사람한테 기댄 거지.”

혈육마저 다 멀리 했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차단했다고 그러잖아요. 육영수 여사의 여우 목도리도 재수없다고 해서 공매에 나왔다는 거 아닙니까. 혈육을 만나면 운이 나간다고 해가지고. 그런데 지만과 근령이 안 들어가길 천만다행이지, 들어갔으면 똑같은 입장이 됐어.”

박근령 씨와 박지만 씨는 만나시나요?

“요즘은 안 만나. 예전엔 몇 번 봤지.”

‘여성대통령’ 얘기 나간 뒤 박근혜 자비정사 직접 찾아와


▎묘심화 스님의 정진처인 자비정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위한 천도재를 1년에 두 번씩 거행하고 있다. 2002년 첫 천도재에는 당시 박근혜 의원이 참석했다.
묘심화 스님은 ‘악령에 시달리는 사람을 구제하는 스님’이다. 그는 수많은 빙의 환자를 불교 전통 의식인 구병시식(救病施食)을 통해 치유했다. 2005년 영국 BBC 방송과 국내 방송사에서 소개되며 주목을 받았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에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자비정사로 묘심화 스님을 찾았다. 그해 1월 묘심화 스님이 자신의 저서 <빙의(憑依)>에서 한국에 ‘여미륵’ 즉,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것을 예고하면서다.

이후 박근혜 의원은 자비정사에 자주 왔다고 한다. 자비정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영정과 위폐를 봉안하고 천도재(薦度齋, 세상을 떠난 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고자 치르는 불교의식)를 거행하기도 했다. 당시 박근혜 의원도 천도재에 참석했다. 지금도 1년에 두 번씩 천도재를 거행하는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첫 만남은 어떻게 이뤄진 거에요?

“2002년 <빙의> 책 말미에 청와대가 흉한 터라는 얘기를 적으면서 청와대나 서울을 옮기든, 아니면 여왕을 모시라는 말을 적었어요. 2월 아니면 3월로 생각이 되는데(책 발간은 1월) 전화가 옵니다. ‘박근혜 의원입니다. 저기, 찾아봐도 될까요’ 하더라고요. 책 보고 연락했다면서.”

당시 박근혜 의원의 첫 인상은 어땠어요?

“발목까지 오는 갈색 긴 치마에 자켓을 입었는데 정말 예뻤어요. 참 순수하고, 맑은 사람으로 보였어요. 지금의 얼굴은 전혀 아니야. (TV에서 본) 지금의 얼굴은 도저히 그때의 얼굴하고 비교가 안 돼. 내 책을 보고 찾아온 첫 번째 여성 정치인이었단 말이에요. 나도 기대가 있었던 것 같아. 박 의원은 스스로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고 듣는 걸 좋아했어. 말씀은 없으셨어도 정권에 욕심은 많았던 분이었단 생각을 해요.”

책 쓰실 때 박근혜 대통령을 염두에 두신 건 아니었는지.

“전혀 아니었어요. 그런데 전화 오기 며칠 전에 묘하게 박정희 전 대통령 꿈을 꾸긴 했어요. 박근혜 의원이 오기 며칠 전에 참 묘한 꿈을 꿨어요. 그게 생생하게 기억이 안 나네.”

처음에 와서 박 의원은 무엇을 물었습니까?

“‘그렇게 청와대 터가 안 좋습니까’ 물었어. ‘네, 안 좋습니다. 거기는 불타는 북악산이 있고 남성의 산이니 남성이 들어가면 불에 타 죽는 흉터입니다’ 그랬어요. 그리고 인왕산보다 낙산이 낮아 자식들과 주변 측근들이 화를 당하는 흉한 곳이라고 했지.”

뭐라 하시던가요?

“딱 한 마디 ‘참 무서워요’ 라고 하더라고.”

만나서 어떤 말씀 나누셨는지.

“의원님의 정치적 스승은 바로 부모이신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님이라고. 그분들과 정치적 라이벌이 되셔야 한다고 했지. 머잖아 동북아 정세는 이조말엽 대원군 시절과 아주 비슷한 상황으로 역사의 재판을 보게 될 것이라고, 주변 국가와 한반도의 생존을 위해 전력투구해 줄 것을 당부했어요. 또 바른 말과 싫은 소리를 하는 충신을 더욱 가까이 안아서 곁에 가까이 하고, 듣기 좋은 말과 아첨하는 자를 조심하라고.”

스님이 가장 강조하셨던 건 뭔가요?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계속했던 것 같아. 성군이 되시라. 포덕의 정치를 펼치시라. 주변 정리를 해야 한다. 강장 밑에 약졸 없고 약장 밑에 강졸이 없습니다. 주변에 덕장·명장·강장들로 꽉꽉 채우십시오. 그런데 다 마이동풍(馬耳東風)이 된 거 같아, 지금 보면.”

2002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천도재를 거행하셨을 당시 박근혜 의원이 참석했다고 들었습니다.

“첫 번째, 2002년도 천도재 모실 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님에 대한 얘기를 자주 했어요. 꿈 얘기도 하고. 박 의원이 ‘참, 두 분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그랬어.”

박 대통령에게 빨간 옷도 자주 입으라고 하셨다면서요?

“박근혜 대통령 불이 없어요, 사주에. 불의 기운을 줘야 해. 그래서 빨간 옷을 입어라 이런 얘기도 내가 많이 했던 것 같아. 청와대 들어가는 날 빨간 옷을 입고 들어가는데 이걸 최순실이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씁쓸했지.”

처음 박 의원에게서 선덕여왕의 모습을 봤다는 묘심화 스님은 2006년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라는 책에서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될 것을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듬해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했다. 이후 박 대통령은 아쉬운 감정을 내비친 뒤 다시는 스님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어쩌면 그 사람들이 끊어놨을지도 모르지”

(박 대통령과) 갑자기 연이 멀어졌다고 했죠.

“처음에는 내가 먼저 말씀드렸지.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 책이 딱 나왔을 때 전화가 왔더라고. ‘스님 책 잘 봤습니다. 안 과장(안봉근)을 시켜서 봤어요’라고. 그래서 내가 이 책이 혹여 누가 될까 싶어서 ‘뵙지 말자 여기도 오시지 말라’ 했더니, 얘기하시더라고. ‘내가 만약에 대통령이 되면 여성 무학대사 같은 분이 되어야 하는데 왜 그런 얘기를 하십니까’ 하더라고.”

그런데 왜 멀어졌습니까?

“원망 섞인 이야기를 두 번 들었던 것 같아. 박 의원이 북한을 다녀왔잖아(박근혜 의원는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그해 5월 11일 3박4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이회창 후보가 떨어지고 나서 서울역에서 잠깐 만났는데 ‘스님이 나보고 거기 가라고 하지 않으셨느냐’고 말하더라고.”

또 한번 (박 대통령과) 갈라서게 된 건 언제였나요?

“2007년 이명박 후보와의 경선에서 패배했을 때였어요. 어떤 포럼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같은 테이블에 앉았어요. ‘(예측이 틀렸는데) 스님 요즘 독자들에게 어떻게 얘기를 하세요?’라고 묻더라고. 평소와는 다르게 차갑고 낯설게 느껴졌어.”

그게 마지막이었습니까?

“그러고 나서 한 번도 못 봤어요. 나도 어쩌면 그 사람들이(최순실) 끊어놨을지 모르지. 어느 날 저렇게 쌀쌀하게 연락 하나 없고. 대통령이 됐는데도, 인사 전화 한 번은 왔을 텐데, 그런 생각이 안 들겠어요? 하지만 근거가 없는 얘기니까. 그 후에 내가 한 번 서신을 보낸 것 같아요.”

어떤 내용을 적으셨어요?

“덕담을 위주로 썼지요. 만약 청와대에 들어가서 정치를 잘하면 ‘묘심화 스님 예언이 적중했구나’라는 평을 듣겠지만, 반대로 간신들에게 휩싸여 그릇된 정치를 하시면 나도 같이 무너질 것이란 내용을 썼어. 가까이 있는 사람을 멀리 하라고. 대통령이 됐을 때 절대로 자기를 버려야 하며, 주변 사람을 정리하라고 했어요.”

대통령이 가장 잘못한 일을 꼽는다면요.

“지도자가 정에 이끌려 살면, 나라가 망하게 돼있어요. ‘내가 어려울 때, 내가 힘들 때’라는 말이 어디 있어요. 나를 버려야지요. 그리고 부모의 명예에 흠집을 내는 것은 도리가 아니죠. 현명한 지도자는 백성의 총명한 의견을 모아 국정에 반영하는 사람이에요. 백성의 참된 말을 귀담아듣고, 허물을 지적하면 기꺼이 받아들여 고쳐나가는 자세가 필요해요.”

회복이 될까요?

“물 한 잔으로 산불을 끌 수는 없잖아요. 아무리 한 사람의 총명이 밝다 해도 만민의 총명을 모은 것보다 밝지 못한 법이에요. 무릇 지도자라면 백성의 말을 귀담아들을 줄 알아야 하는데, 소통을 안 했어요. 귀담아 듣고, 허물을 지적하면 이를 고쳐나가는 자세가 필요한데, 그걸 전혀 안 들었어요. 지금은 너무 늦었어.”

앞으로 어떤 지도자가 나와야 할까요?

“임진왜란에서 12척의 배만으로 133척의 왜적과 싸워 승리한 이순신 장군과 같은 분이 아닐까요. 안으로는 용맹함과 청빈함,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청렴한 생활을 하고, 깊은 효심을 지닌 선비 말입니다. 또 탁월한 리더십을 갖췄고요. 밖으로는 무관 출신에 얼굴이 갸름하고, 눈은 크지 않은 분으로 예견됩니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201612호 (2016.1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