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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2017 대선주자 릴레이 인터뷰] 도올이 묻고, 문재인이 답하다 

“정권교체 최적임자 나오면 미련 없이 양보할 것” 

기획·진행=한기홍, 김포그니 월간중앙 기자 glutton4@joongang.co.kr / 사진=주기중 기자 clickJ@joongang.co.kr
정권교체라는 국민 열망 구현하는 대의에만 헌신… 후보 간 협력은 있을지언정 막판 치사한 결말은 보이지 않을 것

도올은 문재인이 참여정부의 공·과 중에서 공 아닌 과를 정말 치열하게 반성하지 않는 한, 그의 정치적 미래는 매우 미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전적으로 미지의 미래를 향해 자기를 죽이는 것, 끝내 자기정당화의 오만을 죽이는 것이 문재인의 자리라는 것이다. 순결하게 자기존재를 무화(無化)시키는 바로 그 순간, 문재인의 진정한 가치는 홀연히 떠오를지 모른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는 도올과의 인터뷰를 통해 “정권교체라는 국민의 열망을 구현하는 대의에 헌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운명적인 기자생활을 시작한 것이 2002년 12월이었는데, 15년이 되도록 단 한 번도 문재인을 인터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새록새록 느껴졌다. 나는 수없이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는데, 어째서 문재인이 안 걸렸을까? 그 해답은 상당히 단순했다. 전문적 정치인으로서의 문재인의 삶은 매우 최근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운명>이라는 그의 자서전적 에세이는 전혀 선거나 정치홍보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책이 아니다. 그래서 진실이 묻어난다. 지금도 문재인 그 인간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운명>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될 것이다.

시위 전력 있다는 이유로 판사 임용 거부돼


▎지난 12월 2일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가 국회 앞에서 ‘국민이 이깁니다’는 현장 연설로 ‘문재인의 호소(號召)’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전민규
그런데 이 책은 2011년 6월에 상재되었다. 문재인 자신이 말하기를 결국 <운명>이라는 책 때문에 정계로 투신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그가 제19대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은 이듬해 2012년 4월의 일이고, 그가 민주통합당 제18대 대선후보로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대통령직을 겨룬 것이 그해 12월의 일이다. 그러니까 결국 문재인이 정치를 한 것은 5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5년 동안 나는 별로 신문 글을 쓰지 않았으니 부닥칠 일이 없었던 것이다.

문재인은 전통적인 화법으로 말하자면, 함경남도 흥남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의 가족이 그 유명한 노래,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라는 가사의 주인공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키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는 피난살이 중 거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북한 치하에서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한 분이라 했으니, 당시로서는 지식인이었고 호학지사였다. 호학지사인 만큼 생활력이 없어 가난한 살림을 꾸려갔으나, 아들 문재인에게는 어려운 가운데서 의롭게 사는 모범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문재인은 독서력과 사회의식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 문재인은 머리가 좋아 부산의 경기라고 불렸던 최고 수재학교 경남중학교에 입학했고, 중·고교 6년 동안 부모 간섭을 안 받고 학과목과 무관한 독서와 신문 읽기를 즐기다가 사회적 관심은 증대되고 성적은 점점 나빠졌다. 1차 대학입시에 미끄러질 수밖에 없었다. 2차로 들어간 곳이 경희대 법대였다. 그가 대학교에 들어간 바로 그해에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상징인 10월 유신이 선포되었다. 나 도올은 기나긴 7년간의 방황의 대학생활을 끝내고 대만 유학길에 올랐을 때, 문재인은 대학교 1학년이 된 것이다. 그러니 강렬한 사회의식을 가졌던 그의 험난한, 감방생활로 점철된 대학생활은 쉽사리 그림이 그려진다. 특전사 공수부대 군대생활, 고시공부, 박정희의 암살, 1980년 봄학기 일괄복학, 이러한 격동의 세월 속에서 문재인은 유치장에 구속된 상태에서 사법고시 합격의 낭보를 듣는다. 1982년 8월,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면서 문재인은 판사를 지망했다. 연수원 성적이 차석인데다가 수료식에서 법무부장관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당시는 연수원의 수료생 전원이 희망에 따라 판사나 검사로 인용되던 때이었기 때문에, 판사에 임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결국 면접 때 데모꾼이었다는 아주 터무니없는 이유로 판사임용이 거부된다.

이때 만약 판사로 임용되었더라면 오늘의 문재인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헌재 같은 곳의 재판관으로 점잖게 앉아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변호사 개업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했고, 여러 유수한 로펌의 제의도 있었으나 숙고 끝에 처량하게 고향 부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곳에서 노무현이라는 변호사를 만난다.

더 이상, 내가 문재인이나 노무현의 인생에 관해 이야기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허나 이 두 사람의 이야기, 그 삶의 피륙이 엮어가는 시대사는, 나의 생애에 있어서는 오직 나 개인의 실존적 문제를 부둥켜안고 방대한 고전의 서향에만 매몰되어 있던 시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들의 삶의 치열함에 대하여 나는 외경을 느낀다. 나에게는 진리추구를 향한 에로스적 동경의 순결함이 있었다고 한다면, 문재인-노무현 이들에게는 최소한 법조인으로서 부끄럼 없이 정의롭게, 깨끗하게, 가식 없이 살아야겠다는 사회의식의 순결함이 있었던 것이다.

그 순결함의 역정은 문재인의 얼굴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 그의 얼굴은 거짓을 모른다. 법조인으로서 그렇게 순결하게 살다 보니 세칭 인권변호사가 될 수밖에 없었고, 인권을 변호하면서 깨끗하게 살려고 발버둥치다가 그 한계를 절감하면서, 결국 정치로 나아가 사회를 구조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하는 결의를 굳히게 되는 과정이란, 우리가 구태여 어떠한 가치평가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 사실 그대로의 진정성이 우리에게 충분한 의미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용 중에서 사도 바울이 인간의 죄(Sin)라는 것을 ‘자기정당화(self-justification)’라고 규정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로마서>에, 바울의 언어로서 ‘자기정당화’라는 개념이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세기 신학자들,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나,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 같은 거목들의 논쟁에서 쓰여진 개념이다. 인간의 자기정당화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다. 여기 ‘정당화(justification)’라는 말의 영어단어를 보면 그 앞에 ‘정의(justice)’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정당화라는 것은 “정의로움을 판정한다”는 법정 용어이다. 그런데 이 판정은 피고인인 인간이 스스로 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판사로 앉아있는 법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화는 셀프(self)일 수가 없다. 피고인과 판사가 동일인인 재판정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화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정의롭게 하심”이라고 하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내가 문재인에게 강조한 것은 참여정부에 대한 모든 업보의 판결에 관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정의롭게 하심”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을 스스로 문재인이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고 말한 것이다. 스스로 판결을 내리는 자기정당화는 ‘존재의 왜곡’을 수반하며, 자기충족(self-sufficiency)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죄업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지 도덕적 부당행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자족의 환상이 불러일으키는 존재의 왜곡인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죄는 이러한 근원적인 의지의 무기력성에 관한 것이다.“오호라! 나는 곤고로운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아니 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 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롬 7:19)

각성된 민주의식의 장에 던지는 하나의 기준 의궤


▎인간의 죄가 ‘자기정당화’에 있다는 것을 갈파한 사도 바울. / 사진·중앙포토
죄의 반대는 무죄가 아니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무죄일 수가 없다. 몸을 가지고 산다는 것 자체가 죄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죄의 반대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죄(hamartia)의 반대는 신앙(pistis)이다. 신앙이란 우리가 말하는 “교회를 나간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단순한 교리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라고 하는 초세간적인 절대적 타자(the Wholly Other)에게 나의 존재를 전적으로 개방하는 것이다. 절대적 타자에로의 순종을 바울이나 불트만은 신앙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신앙이라는 개념은 곧 인간 존재의 구원이라고 하는 사건으로 연결된다.

내가 너무 갑자기 예수쟁이 신학자 같은 말을 쏟아놓았는데, 나는 요즈음 바울의 로마인에게 보내는 서한에 관하여 방대한 주석을 다는 <로마 서강해>라는 책을 집필하고 있다. 느닷없이 찾아온 조선대륙 광장의 촛불혁명이라는 전혀 새로운 역사적 국면 속에서 우리 민족의 ‘구원’이라고 하는 테마가 나의 사유를 사로잡았다. 그래서 젊은 날에 동경했던 바울이라는 인물의 사상의 문을 다시 두드리게 된 것이다.

나는 문재인이 참여정부의 공·과 중에서 공 아닌 과를 정말 치열하게 반성하지 않는 한, 그의 정치적 미래는 매우 미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인터뷰에서 보여지고 있는 문재인의 노무현 디펜스는 의리 있는 한 사나이의 물러설 수 없는 자신감, 당당함일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자리가 그의 자리일 수는 없다.

전적으로 미지의 미래를 향해 자기를 죽이는 것, 끝내 자기 정당화의 오만을 죽이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불교가 말하는 무아의 해탈일 수도 있고, 노자가 말하는 무위의 다스림(無爲之治)일 수도 있다. 나와의 첫 인터뷰에서 인간 문재인은 순결하게 자기존재를 무화(無化)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면의 제약으로 긴 인터뷰 내용을 다 싣지 못했음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특히 나는 한국 농촌의 문제에 관하여 정치인들이 정말 진심 어린 구체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풍요로운 농촌’이다. 그것은 국토의 보전이며 국체의 온전이며, 국가의 건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음의 문장은 중앙일보 지면에 12월 16일자로 실렸던 인터뷰 기사를 같은 날 발간된 월간중앙에 전재하는 것이다. 혹자는 인터뷰를 남의 말이나 비꼬고, 트집이나 잡고, 비판적 견해를 피력하는 장기(長技)를 발연하는 장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이 인터뷰 기사를 조선민중의 각성된 민주의식의 장에 던지는 하나의 기준 의궤로서 제시하고자 한다. 한국의 정치가 더 이상 권력을 탐하는 살쾡이들의 각축장이 아니라는 것을 과시하는 새로운 광명의 은총이라는 것을 웅변하고자 한다. 조선의 민중이여! 깨어 있으라!

정세의 급격한 변화가 대선주자로서의 문재인의 위상을 중후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그의 발언과 그 배면에 깔린 그의 의도를 정확하게 짚어보는 것은 국민들이 이 시대를 진단하고 바른 평가를 내리는 데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문재인은 조류독감 농가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서 농촌으로 떠난다고 했다. 나는 14일 그를 마포의 어느 까페에서 아침 일찍 만났다.


▎지난 11월 8일 추미애 더민주 대표(왼쪽에서 셋째)가 대선 주자들과 함께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정국 상황을 논의했다. 이날 회동에는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해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김부겸 의원 등이 참석했다. / 사진·전민규
그대의 삶의 역정을 조망하기 위해, 나는 그대가 쓴 <운명>이라는 책을 새벽 2시까지 정독했다.

“내 나름대로는 공들여 열심히 쓴 책이고, 결국 나를 정치세계로 디미는 계기가 되었다. 대중의 호응도 컸다.”

몇 부나 팔렸길래.

“30만 부가 넘게 팔렸다.”

그 책을 정독하면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대 스스로 삶을 개척했고 또 인간 노무현과 같이 헤쳐 나간 인간 문재인의 삶의 피눈물 나는 역정과 격랑, 그 진실과 순정, 치열한 정의감, 도덕적 정결에 대하여 나는 깊은 경외감을 느꼈다. 그러나 노무현이 집권한 이후의 삶은 패배와 실책, 무기력과 변명의 연속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대북송금 특검, 검찰개혁, 국정원개혁, 이라크파병, 사법개혁, 국가보안법 문제, 한미 FTA, 10·4남북공동성명…. 그 무엇도 확실하게 포지티브한 결실을 내지 못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현황을 초래한 역사흐름에 대하여 참여정부와 그대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참여정부 5년은 공·과가 함께 있었다. 집권 당시 가장 집약된 시대정신은 정치적 민주주의의 확립이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상당한 성취를 거두었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니까 경제적 불평등,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 등등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회경제적 문제가 대두됐는데 참여정부는 이 부분에서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내 생각에는 평가가 거꾸로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도대체 어느 근거 위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확립했다고 자부하는가? 사회경제적 문제는 항상 있어온 문제지 참여정부의 특수문제는 아니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확립이란 누가 들어서도 역행할 수 없는 제도의 확립을 말하는데, 참여정부는 언론·검찰·사법·행정·입법의 제도 면에서 본질적인 변화를 이룩한 것이 없다. 검찰의 중립과 독립 운운하면서 부정한 검찰세력을 더 키워놓았을 뿐 아닌가?

“정치검찰의 행태에 대한 확실한 청산을 하고, 그 토대 위에서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했어야 했다. 집권자의 선의로서, 정치권력이 검찰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수준에 머무른 나이브한 자세, 그리고 정권의 교체와 더불어 곧 정치검찰의 폐습으로 역행한 사태는 반성되어야 한다.”

수사권은 경찰에, 기소권은 검찰에 분리 귀속


▎2011년 5월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서울갤러리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추모전시회에서 그림 속 노 전 대통령에게 막걸리를 따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정치검찰 행태에 관한 청산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의 물갈이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 자체가 확고한 제도적 개혁이 되어야 하는데, 대통령이 법무장관 배석 하에 검찰과 언변으로 맞장 뜨는 식의 졸렬한 행동, 그러한 나이브한 사고는 정권 내내 지속된 것이다. 검찰의 농락에 내내 휘말린 것이다. 뭔가 현재의 문재인은 새로운 제도적 비전을 제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검찰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많은 권한을 함께 다 가지고 있다. 이 문제를 여기서 소상히 전부 다룰 수는 없다. 단지 두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수사권은 경찰에, 기소권은 검찰에 분리귀속시킴으로서 서로를 견제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둘째,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서(공수처)라는 독립기관을 만들어, 검찰을 포함한 모든 고위공직자를 성역 없이 수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공수처는 행정지휘체계로부터 독립된 기관이어야 한다. 그리고 검찰이라는 조직 그 자체를 다원화시키는 확고한 의미가 있어야 하며, 수사는 물론 기소까지 다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단지 현 시점에서는 한시적이라는 단서를 붙여놓고 더 깊은 근원적인 제도개혁에 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참여정부의 제도적 개혁의 실패에 관한 근원적인 반성은 노무현 대통령이 너무 시대를 앞서가 국내의 민주적 개혁에 관한 조급한 집념만 앞섰고, 국가의 모든 문제를 총체적으로 국제역학의 관계에서 바라보는 대국적인 시각과 정책의 프라이오리티(priority:우선순위)를 분간할 줄 아는 지혜가 부족했다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대연정이니 지역구도 타파니 하는 집념에 앞서 대북송금 특검이니, 이라크파병, 국가 보안법 폐지, 한미 FTA, 제주도 해군기지니 하는 제반문제를 보다 정의롭게 해결하는 슬기로운 인식의 틀이 결핍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문제는 국제적인 시각이 없이는 작은 국내문제 하나도 풀릴 길이 없다.

“이라크파병은 나도 끝까지 반대했다. 노무현도 개인적으로는 이라크파병에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의 결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지금 내가 뭔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파악하고 있질 못하다. 나는 이라크파병에 대한 도덕적인 호오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이제 도덕가가 아니라 정치가이다. 부시정권의 이라크 침공은 미국의 위기였고 약점이었고 허점이었고, 전 세계 우방의 비난의 대상이었다. 그 시점에 우리가 파병을 한다는 것은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양보를 얻어낼 수 있는 외교적 우위의 호기였다. 이러한 호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북의 화해를 조성할 수 있는 군사적 제 여건을 정비했더라면 오늘의 사드 배치와 같은 몰지각한 결말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라크파병을 통해 우리는 6자회담을 따내었다. 엄청난 성과가 아닌가?”

지리멸렬한 6자회담 통해 도대체 구체적으로 따낸 성과가 무엇인가?

“총체적으로 보면 참여정부 시절에 국제정치와 남북관계에 대전환을 이룩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이 주장하는 세부적인 사항을 잘 모르는 나 같은 보통 국민들에게 남북관계는, 노태우의 북방정책에 이어 그나마 김대중 정부 시절에 눈부신 진전이 있었을 뿐, 참여정부는 그것을 후퇴시켰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국제관계도 김대중의 빅딜 경제정책으로부터 한미 FTA에 이르기까지 미국경제에로의 예속성이 증가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하게 주체적인 국제역학의 진전이 없었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의 가치관에 영합한 꼴이 되고 말았다. 10·4 남북정상선언도 몰락하는 말기의 코스메틱밖에 더 되는가?

“그렇지 않다. 10·4선언이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정권 동안에 단 한 건의 군사충돌도 없었다. 꾸준한 신뢰의 축적이 있었던 것이다. 2005년의 9·19공동성명(북한의 핵무기파기선언)이 제대로 지켜졌더라면 보다 일찍 정상회담을 할 수 있었는데 유감이다.”

당신은 독실한 기독교인 아닌가? 바울이 로마서에서 죄는 부덕이 아니라 자기정당화를 일컫는 것이라 했다. 당신은 율법적 결백을 말하고 있지 근원적 반성을 말하고 있지 않다. 국민은 새로운 정치, 새로운 국가, 새로운 가치를 갈망하고 있는데 지금 변명을 말해서 되겠는가? 아마도 그래서 이재명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북관계를 우리가 주도해나가고 미국의 위성정보보다 더 긴밀한 실제적 정보를 우리가 확보할 때만이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을 외교전에서 리드할 수 있다. 그리고 남북화해야말로 우리의 민생을 궁극적으로 해결하고, 젊은이들에게 헬조선을 탈출하는 무궁한 꿈을 제공할 수 있다는 국가정책기조에 관한 신념을 나는 확고하게 가지고 있다. 지난번 대선 때도 나는 임기 첫해에 남북정상회담을 가지겠다, 아니, 당선된다면 취임식 때 아예 북한을 초청하겠다고 공약했다.”

좋다! 지금 당신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치자! 그리고 지금 북한도 갈 수 있고 미국도 갈 수 있다고 치자! 어딜 먼저 가겠는가?

“주저 없이 말한다. 나는 북한을 먼저 가겠다. 단지 사전에 그 당위성에 관하여 미국, 일본, 중국에 충분한 설명을 할 것이다.”

촛불시위, 아니 촛불혁명으로 국민 개개인이 모든 이념을 초월하여 국가의 정의로운 모습에 대한 자각을 심화시키고 있는 이 시점은 남북문제를 새로운 민생활로로서 강렬하게 표출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여태까지 종북 운운하면서 국민의 삶의 가치를 왜곡시켜온 구질서에 대한 근원적 항거를 표방해야만 한다.

“나는 참여정부에 참여한 것 때문에 죄인으로 규정된다 할지라도, 나는 할 말은 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국제적 안목에서 비록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정치적 민주화, 권위주의 타파, 권력기관의 개혁 이런 분야에서 이룩한 진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 민주의 정신이, 정권이 바뀌면서 사라진 듯이 보였지만, 결국 오늘의 촛불집회의 꺼질 수 없는 불꽃으로 되살아나 우리 민족을 휘덮은 먹구름을 불살랐다. 국민으로서 주권자 의식을 심어주고 국민을 국민답게 만들어준 것은 참여정부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헌재 판결 전 퇴진해야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철수를 발표한 2016년 2월 10일 개성공단으로 가는 길목인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를 차량들이 지나고 있다. / 사진·김성룡
지금 당신은 과거를 논할 겨를이 없다. 내가 계속 주장하고 있는 제도적 개혁에 관한 청사진을 말해보라.

“첫째, 경제적 불평등을 혁파할 것이다. 둘째, 그 원천인 재벌을 개혁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확실히 끊을 것이다. 그들이 반시장적 행위를 하면 법에 의하여 그들을 시장으로부터 퇴출시킬 것이다. 셋째, 이러한 경제민주화는 정치민주화의 확실한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정치민주화를 확고하게 성취할 것이다. 넷째, 우리사회의 불공정, 기회의 불균등을 해소할 것이다. 다섯째, 반칙과 특권을 타파할 것이다. 친일청산·독재청산을 아직도 못했는데 이러한 구조를 혁파하고 단호한 응징을 감행할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나는 추상적인 얘기밖에는 못하지만 앞으로 구체적인 제도적 방안을 하나씩 선포해나갈 것이다.”

언론문제는?

“공영방송의 객관성을 우선 확보할 것이다. 정권의 홍보방송이 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이다. 종편의 특혜를 없애고, 재인가 시기에 원칙대로 심사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로드맵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지 말고 즉각 퇴진해야 한다. 탄핵은 국가가 책임을 묻는 것이고 사임은 스스로 반성하면서 책임지는 것이다. 박근혜 리스크를 조기종식 시키는 것이야말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박근혜 리스크란 무엇인가?

“국민의 선출에 의한 정통성이 사라지고 선출되지 않은 사람이 대행을 하고 있는 비정상적 불확실성이 초래하는 공백, 특히 외교적, 경제적 공백을 의미한다. 이 리스크는 하루속히 종식될수록 좋다. 헌재의 판결도 조속히 이루어질수록 좋다. 헌재도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리라고 믿는다.”

탄핵사유를 일일이 따로 심사하지 말고 총체적으로 묶어 심의를 해도 될 것이다. 박한철 소장 임기만료가 1월 31일이니까, 그 전에 이루어지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조기판결의 방향으로 잘 진행된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사임도 촉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헌재가 탄핵기각을 결정하면 어쩌나?

“국민들의 헌법의식이 곧 헌법이다.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런 판결을 내린다면 다음은 혁명밖에는 없다.”

이재명 현상은 아름다워… 민주당 외연확장일 뿐


▎도올은 문재인 전 대표에게 “덕을 추구하는 데 주도면밀한 사람은 사악한 세상도 그를 어지럽힐 수 없다”는 맹자의 문구를 선사했다.
사임이나 탄핵가결 후 60일 내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선거가 빠를수록 그대에게 유리하다는 계산이 있는가?

“나는 지금 정치적 계산을 하지 않는다. 오직 리더십의 정통성이 무너진 상태가 빨리 종식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의 일념밖엔 없다.”

좋다! 정치적 계산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당내경선이 벌어질 경우, 박원순, 안희정, 김부겸, 이재명 이런 인물은 모두 훌륭한 인재들이다. 이들 중 누구 하나가 그대를 치고 월등히 올라간다면, 막판에 끝까지 버티는 것보다 자기를 접어 그를 지원하는 것이 더 효과가 크다고 판단될 때는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는가?

“확실히 말해두겠다. 나는 정권교체라는 국민의 열망을 구현하는 대의에만 헌신하겠다. 내가 꼭 대통령을 해야 한다는 직위에 대한 집념은 없다. 단지 현재로서는 내가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거론된 5명 사이에서 막판에 협력이 이루어질지언정 치사한 결말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제3지대 운운하는 사람들이 개헌을 들먹인다.

“헌법이 무슨 죄인가? 헌법을 지키지 않아서 생긴 문제인데 개헌을 빌미로 집권의 기회를 노리는 여의도식 셈법은 민심의 바다를 헤쳐나갈 수 없다.”

이재명의 인기는?

“아름다운 현상이다. 이재명 시장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지는 것은 우리 더불어민주당의 외연의 확장일 뿐이다. 환영한다. 지지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잡음은 선거를 재미있게 만드는 애교로 봐달라.”

사드 배치와 개성공단 문제는?

“개성공단은 즉각 재개해야 하고, 사드배치는 차기정권의 과제로 넘겨야 한다. 공론화의 과정을 거쳐 미·중과 상의하면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반기문 총장에 대한 전망은?

“관심 없다. 전망도 할 수 없다.”

문재인은 조류독감 현장으로 총망히 자리를 떴다. 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주우리자(周于利者) 흉년불능살(凶年不能殺), 주우덕자(周于德者) 사세불능란(邪世不能亂)”이라는 맹자의 문구를 선사했다. “이익을 추구하는 데 주도면밀한 사람은 흉년도 그를 죽일 수 없고, 덕을 추구하는 데 주도면밀한 사람은 사악한 세상도 그를 어지럽힐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덕을 추구하는 것도 이(利)를 추구하는 것 못지않게 주도면밀해야 한다는 것이다.

- 기획·진행=한기홍, 김포그니 월간중앙 기자 glutton4@joongang.co.kr / 사진=주기중 기자 clickJ@joongang.co.kr

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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