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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대통령 탄핵정국 ‘빅5’ 대선전략 

결승점 모르는 채 스타트 끊다 

박성현·추인영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실기하면 만회할 기회 주어지지 않는 끝장 경쟁에 돌입... ‘최순실 게이트’, ‘대통령 탄핵’ 민심이 여전히 최대 변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19대 대선 시계가 더 빨리 돌아간다. 헌법재판소가 인용 판결을 내린다면 그로부터 60일 이내 대선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탄핵정국과 촛불집회는 대선 주자들의 운명도 뒤바꿔 놓았다. 급부상한 잠룡이 있는가 하면 관심권에서 멀어진 경우도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향배에 따라서 주자들 간 희비가 다시 엇갈릴 가능성도 있다. 결승점(대선일자)이 어딘지도 모르는 채 주자들은 스타트부터 끊어야 할 처지다. 가팔라진 정국만큼이나 대선주자들의 숨결도 거칠어진다.


▎새해 대선 출마가 점쳐지는 여·야 잠룡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재명 성남시장,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왼쪽부터). / 사진·중앙포토
1.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 집토끼 잡는 정면돌파로 선회, 섣부른 공세엔 즉각 반격

5~6개 조언그룹 두고 등거리 정치 “2012년 때 실수 다시 안 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번 정국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문 전 대표 스스로도 “엄연히 1번 주자”라고 일컬을 만큼 대선주자 지지율 1위에 올랐다.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에서 동시에 견제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는 ‘이 판국에 내가 먹는다’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한다”(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거나 “‘탄핵 후 대통령 즉각 사임’을 주장하며 조기 대선을 치르겠다는 욕심을 드러내고 있다”(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비판들이다. 김동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2월 14일 문 전 대표가 대선 전 개헌 논의에 반대하는 것을 두고 “제왕적 대통령을 본인도 하고 싶다는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문 전 대표는 이 같은 공격에 ‘맞받아치기’로 응수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12월 2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 완장을 찼다’는 일련의 비판에 대해 “제가 대통령이 될까 봐 무서워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개헌에 대해선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에 집중해야 하는 이 시기에 개헌을 하자고 나서는 것은 여기서 새누리당의 집권을 연장해주겠다는 것”이라며 “혼자서는 집권하기가 어려우니 이렇게 권력을 나눠서 먹자, 그런 거래를 하자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제3지대론에 대해서도 1990년 3당 합당에 비유하면서 “이번에는 어떻게든 호남을 끌어들여서 정권 연장을 하고자 하는 새누리당의 욕망이 만든 기획이 제3지대”라고 비난했다. 문 전 대표가 12월 11일 “시민사회가 참여한 가운데 촛불민심이 요구하는 청산과 개혁을 위한 입법과제를 선정하고 추진하자”며 ‘사회개혁기구’를 제안한 것도 ‘집토끼’ 단속 차원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문 전 대표의 강경한 기조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기에 보였던 신중한 모습과는 대비된다. 이러한 초기 대응이 집토끼를 잡지 못하고 이재명 성남시장의 추격을 허용했다는 판단에 정면돌파 쪽으로 기조를 바꿨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문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최순실 게이트 사건 초기에 온건하게 대응했다 집토끼를 놓쳤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를 돕는 한 전직 중진 의원도 “상황이 문재인에게 유리해진 것일 뿐, 그 상황을 문재인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라며 “자신 있게 나가는 모습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변화’는 불안정한 리더십의 반영이라는 역공에 직면했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2월 12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처음 거국내각도 거론했다가 중립내각도 거론했다가 명예퇴진도 거론했다가 나중에 촛불시위가 격렬해지니까 결국 탄핵이라는 쪽으로 강도를 높여서 굉장히 극단적인 소리도 많이 했다”고 꼬집었다. 또 “그 모습이 과연 일반 국민에게 좋게 비쳤겠나”라고 회의적 평가를 내렸다. 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문재인 전 대표가 고정 지지층을 염두에 두고 강경한 행보를 보이는 것은 오히려 실책이 될 수 있다”며 “부동층을 포섭하기 위해 신뢰감과 안정감을 주는 리더의 이미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적 쇄신 통해 조직정비… 싱크탱크 가동도 본격화


▎스스로도 “엄연히 1번 주자”라고 일컫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인적쇄신 작업에 돌입해 조직을 정비하며 출전을 준비 중이다. / 사진·전민규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가장 유리한 상황에서도 20% 박스권에 갇혀 있는 지지율이다. 지난 9월만 해도 지지율 5%를 넘지 못했던 이재명 시장이 10% 후반대로 치고 올라오는 사이에 문 전 대표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친박 후보로 거론됐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번 사태 속에서도 문 전 대표와 비슷한 지지율 수준을 유지하면서 건재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당 지지율과의 격차도 문제다. 더불어민주당은 탄핵정국 속에서 지지율이 10%포인트 이상 상승해 30% 후반대에 진입했지만,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20%대 초·중반에 머무르고 있다. 당 핵심 관계자는 “대선 후보가 당 지지율을 따라잡지 못하고, 10%대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문 전 대표의 본선 경쟁력에 의문을 표했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표 측 인사인 임종석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야권 후보 지지율의 총합은 꽤 높다”며 “야권 후보들에게 분산돼 있는 표심이 조정을 받기 시작하면 쏠림 현상이 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다른 주자들에 비해 한 발 앞서 움직이고 있다. 임종석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영입해 인적 쇄신에 나선 게 대표적이다. 임 전 시장은 지난 대선에서 논란이 됐던 비선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조직과 전략을 총괄하고 있다. 문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김경수 의원은 언론창구를 전담해 소통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주변에 5~6개의 별도 그룹을 통해 정치적으로 조언을 구하되, 어느 쪽에도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등 거리’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김 의원은 “지난 대선에 비해 의사결정과정이 훨씬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변했다”며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책 행보도 본격화했다. 지난 10월 출범한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은 12월 13일 ‘촛불민심과 새로운 대한민국’ 토론회를 주최했다. 문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국가 대청소’를 공언하고 대한민국 새 비전으로 ‘공정국가·책임국가·협력국가’를 제시했다. 그는 “검찰·재벌·행정·언론·입시 등에서의 불공정 구조와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는 고위 공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해야 한다”고도 했다. 임 전 부시장은 “촛불민심은 박 대통령의 퇴진이나 탄핵을 넘어 우리 사회에 누적된 문제들의 근본적인 변화를 원하는 것”이라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비전과 철학을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을 누구보다 많이 갖고 있다”고 했다.

2.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 ‘나를 더 이상 새누리당에 귀속시키지 말라’


▎박근혜-최순실 사태가 터지면서 친박의 지원을 받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입지도 흔들리는 듯했지만 반 총장은 대안 없는 보수세력을 대표할 인물로 여전히 건재하다. / 사진·중앙포토
중간지대에서 몸 풀다 보수 아우르는 대통합 시나리오 ‘꿈틀’

“유엔에서 열리는 다자 정상회의에 가보면 미·중·러·일 심지어 영국까지 강대국 지도자들이 득실댄다. 그런 회의에 박근혜 대통령이 혼자일 때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 등이 함께 할 때는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한국의 대통령은 국제무대에서 그런 분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반 총장은 우리 편에서 모든 일에 힘을 보탰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기 전 박 대통령의 청와대 참모가 한 말이다. 외교무대에 선 박 대통령이 반 총장에게 신세를 졌다는 뜻이다. 이 참모는 반 총장의 대선 출마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의 우호적 관계에 주목했다. 그는 “반 총장이 나오면 나오는 것이고, 안 나오면 안 나오는 것”이라며 “(대선 출마 여부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거리를 뒀다. 그러면서도 반 총장의 대선 출마를 상정해 “반 총장에게 대통령이 우호적이지. 국제무대에서 같이 뛰어보면 안다. 우호적이 될 수밖에…”라고 했다. 두 사람이 일종의 ‘품앗이’ 내지 ‘보은(報恩)’의 관계에 있다는 심증을 갖게 하는 발언이다. 친박계가 반 총장을 민다는 소문이 근거 없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시계바늘을 [JTBC]의 태블릿PC 보도(10월 24일) 이전으로 돌린다면 반 총장은 보수 진영의 유일무이한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했었다. 여야를 통틀어 부동의 지지율 1위 잠룡이었고, 이처럼 박 대통령의 호감을 산 ‘기대주’ 였다. 비록 친박계에서 “반 총장도 정책과 후보 적합성을 놓고 혹독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나서 양측 관계가 냉랭해지기는 했지만 ‘반기문 대망론’ 자체를 부정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박 대통령 탄핵 이후 새누리당은 친박-비박계 진흙탕 내전으로 빠져들었고 덩달아 반 총장의 지지율도 하향 조정되는 추세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인 한국갤럽의 10월 둘째 주 여론조사에서 27%이던 반 총장 지지율이 두 달 뒤인 12월 둘째 주엔 20%로 7%포인트 줄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동률을 이뤘고 18%를 얻은 이재명 성남시장에게는 턱밑 추격을 허용했다. 지난 5월 제주 방문 이후 처음으로 한국갤럽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 포함된 반 총장은 이후 줄곧 20대 후반의 지지율로 경쟁자들을 여유 있게 앞서왔으나 최근 문재인 전 대표와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을 보인다. 리얼미터가 12월 12~1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19.5%를 얻어 문재인 전 대표(24%)에 이어 2위에 머물렀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문 전 대표가 7주째 선두를 달린다. 반 총장이 최순실 게이트의 유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한국갤럽은 “반 총장은 현재 당적이 없지만 새누리당 지지층과 무당층에서 가장 높은 선호도를 기록하고 있어 사실상 여권의 유력후보로 분류된다”면서 “그러나 최근 최순실 파문을 맞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도가 동반 하락하는 등 여권의 와해가 반 총장에게 부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동반 몰락이라는 급변한 환경 속으로 그가 돌아온다. 10년 동안의 유엔 사무총장 직을 내려놓고 새해 대선 ‘잠룡’의 한 사람으로 국민들 앞에 나선다. 그의 대선 도전은 기정사실화돼 있다. 반 총장의 사람으로 분류되는 성일종 새누리당 의원은 “반 총장은 역사적 책무가 주어지면 회피하거나 외면할 분이 아니다”면서 “국민과 함께 주어진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반 총장과 자주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진 임덕규 월간 디플로머시 회장도 “반 총장 개인을 위한다면 대선에 나오지 않는 게 상책”이라면서도 “하지만 그에게는 (최순실 국정농단 등으로) 땅에 떨어진 대한민국의 명예를 되살릴 책임이 있다”고 대선 출마 쪽에 힘을 실었다.

“반 총장은 한국의 대통령들을 도왔다”

정치권의 관심은 범여권 주자라는 인식이 굳어진 그의 대선 행보에 쏠리고 있다. 현재 여권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이 높고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 따라서 반 총장이 새해 귀국하더라도 새누리당 주류 친박계와 손잡는 일은 없으리라는 게 일반의 관측이다. 임덕규 회장은 “반 총장은 특정 정당에 입당한 일이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정당생활을 한 일이 없다. 따라서 정당의 혜택을 받은 적도 없다. 굳이 도움을 받았다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출 당시의) 노무현 대통령의 정당(열린우리당) 덕을 본 게 전부다. 다른 정당이나 대통령은 여기에 끼어들 자리가 없다.”

이 말은 반 총장이 새누리당에 부채의식이 없으므로 보수 정당에 그를 귀속시켜 보지 말아달라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나아가 앞서 박 대통령의 참모도 언급했듯이 반 총장이 외교 무대에서 한국의 대통령을 도와줬으면 도와줬지 손 벌린 일은 없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결국 박 대통령을 추종하는 친박계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한 새누리당과 연을 맺을 확률은 극히 적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반 총장이 친박계를 제외한 다른 정치세력과 힘을 합치거나 제 3지대에서 독자세력을 모색하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성일종 의원은 더 구체적으로 반 총장이 ‘중간 단계’를 모색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정국 상황이 극히 유동적인 만큼 특정 정당, 세력과의 전면적 협력보다는 중립 지대에서 몸을 풀면서 중도적 외연 확장에 치중하라는 것. 성 의원은 “지금 단계에서는 이런 분석이 틀린 게 아니지만 최종 단계에서는 지역과 세대를 뛰어넘어 건강한 대한민국 세력을 다 아우를 것”이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새누리당이 친박과 비박으로 갈라진 상태에서 반 총장이 독자적인 깃발을 들면 보수는 더 분열되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보수진영에는 대선에 나설 인물이 마땅치 않은 게 엄연한 현실이다. 궁극적으로는 반 총장이 보수진영을 거의 흡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날 것이다.”

반 총장을 잘 아는 이들은 이처럼 그가 최대한 중간지대에 포지셔닝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보수층이 그의 지지기반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여권에 유력한 후보가 없는데 반해 야권에는 경쟁력 있는 후보들이 넘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반 총장이 보수진영과 연대해 대선에 임할 가능성이 높다”고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전망한다. “우선은 새누리당에서 분화하는 세력과 보조를 같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전체 정치지형에서 차지하는 보수의 포션 자체가 감소하는 경향을 감안한다면 좀 더 큰 틀에서 중도 진영과의 연계도 생각할 것이다.”

3. 이재명 성남시장 | ‘정공법’ 문재인에 ‘게릴라전’으로 맞서 돌풍


▎‘대중의 공간, 대중의 언어’를 표방하며 당내 2위 대선주자로 우뚝 올라선 이재명 성남시장. / 사진·중앙포토
“기존 대선 문법으로는 풀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대선 주자 후보군에서 이름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이 시장은 이번 사태를 통해 민주당 ‘넘버2’로 우뚝 올라섰다. 이 시장 측에서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당혹스러워 할 정도다. 가장 눈길이 가는 대목은 12월 12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 호남 민심이다. 이 시장은 이 조사에서 광주·전라 지지율 21.3%를 기록해 문재인 전 대표를 0.2%포인트 차이로 따라붙었다. 지난주(15.4%)보다 5.9%포인트나 상승한 수치다.

일각에선 지난 2002년 ‘호남이 미는 영남 후보’ 콘셉트로 대선 경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 시장을 비교하기도 한다. 한 민주당 의원은 “문재인에 대해서는 반문 정서가 있고, 안철수는 호남이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새누리당과 연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시장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시장 측은 “문재인 전 대표보다 오히려 확장성이 더 크다”고 자신한다. “응답자 중 성향별 분포도를 보수·중도·진보로 따져봤을 때 일반적으로 문재인 전 대표는 1 : 2 : 3 으로 진보층이 가장 많지만, 이재명 시장은 1 : 2 : 2.1 수준으로 중도층의 지지가 생각보다 높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어떤 후보가 최종적으로 대선 주자가 되더라도 지지한다고 전제한다면 이재명 시장이 문재인 전 대표보다 확장성이 크고 야권통합에 대한 저항감이 적다”는 것이다.

이 시장이 급부상한 배경은 ‘사이다’란 별명이 말해주듯 간결하고 명쾌한 화법이 첫 번째로 꼽힌다. 광화문광장에 가장 먼저 참여한 정치인도, 박 대통령의 퇴진과 탄핵을 가장 먼저 주장한 정치인도 이 시장이었다. “대중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대중의 공간에 있는 정치인”이라는 이 시장 측의 자평대로, 그의 정치 스타일이나 행보는 일반 정치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이 시장은 문재인 전 대표와도 큰 차이를 보인다. 문 전 대표가 ‘정공법’을 구사한다면 이재명 성남시장은 ‘게릴라전’을 구사한다. 이 시장 측은 문 전 대표의 3대 요소로 싱크탱크, 전국 조직망, 공식 팬클럽을 꼽았다. 최근 발족한 싱크탱크 ‘정책공감 국민성장’과 친문계 전·현직 의원들을 중심으로 갖춰진 지역조직, 공식 팬클럽인 ‘문팬’ 등을 일컫는다.

국회에선 전·현직 의원들을 중심으로 친문계가 형성돼 있지만, 친이재명계는 아직 없다. 이 시장 측은 “단식할 때는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선별적 무상복지정책이 이슈일 때는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들이 돕는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다”며 “꼭 비문계뿐만 아니라 의원들이 두루두루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어떤 정책이나 이슈를 추진하고 관철하기 위해 의제를 확산시키기 위한 협조 차원”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기존 대선 문법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강연, SNS 등 직접 소통이 강점, 정책행보에도 속도

하지만 이 시장이 본선에 나설 경우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시장이 사용하는 언어가 너무 과격하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통령직을 박탈한 후 구속해서 형사처벌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끌어 잡아 박정희의 유해 옆으로 보내주자”는 등의 발언이다. 가족 문제도 얽혀 있다. 이 시장의 형 이재선 씨는 ‘종북시장 퇴출운동’을 벌여온 대표적 반이재명 인사다. 최근엔 ‘박사모’ 성남지부장을 맡기도 했다. 이 시장 측은 이에 대해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대중의 언어를 가장 잘 사용하는 정치인”이라며 “변화된 패러다임을 보지 않고 기존의 잣대를 대고 평가하기 때문에 그런 우려가 나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재명 시장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박 대통령의 구속과 처벌, 공범으로서 새누리당의 정치적 해체를 끈질기게 주장하는 한편, 대한민국의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정치적으로는 국민의당과 연대설이 끊이지 않는 비박계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이 시장은 “자기 존재를 ‘비박’이라고 규정하는 것조차 탄핵국면에서 자기 생존을 위한 전략”이라며 “김무성·유승민 의원은 국민을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몰아넣은 헌정을 농락한 대통령이 속한 당에서 당대표, 원내대표를 했던 사람들이다. 그 당에서 중요한 책임을 지고 역할을 했던 사람들도 다 함께 책임지고 정계 은퇴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장 측은 “비박계는 박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이다. 같이 정치를 할 수 없는 상대”라며 “이 정권에서 조금이라도 권력을 행사했던 사람들의 실체가 알려지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책 행보에서도 속도를 낼 방침이다. 이 시장은 12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문 전 대표가 밝힌 공정·책임·협력 구상에 대해 “이재명이 지향하는 국가의 미래가 바로 공정국가”라고 화답했다. 이 시장은 최근 몇 년 동안 매달 전문가 그룹과 스터디를 통해 분야별로 준비했던 내용을 조만간 정리해 공개할 계획이다. 이 시장 측은 “촛불민심은 박근혜라는 범죄자 한 명을 날리는 수준의 요구가 아니라, 기존의 정치·경제 등 사회질서 전반의 혁명적 변화에 대한 욕구가 분출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나아가 “비정상적 권력과 사회구조, 불평등한 경제구조를 어떻게 바로잡을지 촛불민심의 요구에 대해 탄핵 절차와 무관하게 준비되는 대로 국민에게 이야기하고 소통할 생각”이라고 했다.

4.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 박근혜 게이트 잘 대처했는데…개헌카드 ‘만지작’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이번 정국에서 나름대로 안정적으로 대처하고도 저평가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 사진·중앙포토
“저와 새누리당의 연대를 말하면 악의적 정치공작”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대표는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저평가주’로 꼽힌다. 선제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서명운동에 나섰고, 일관성 있게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 일련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국민의 평가는 결코 후하지 않다. 국민의당이 탄핵소추안 발의 날짜를 놓고 혼선을 빚으면서 안 전 대표에게 불똥이 튀었다는 분석이다. 안 전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안철수 전 대표는 국회의원으로서는 탄핵정국을 잘 이끌어왔다고 평가받지만, 당의 미숙함과 당내 혼선 때문에 피해를 본 것”이라며 “안개가 걷히면 안 전 대표가 일관성 있게 선도적으로 이 정국을 이끌어왔다는 점에 대한 평가가 다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나 이재명 시장에 대해선 “누가 민주당 후보가 되더라도 국민통합, 경제문제, 합리적 보수층까지 아우르는 포용력 등 모든 부분에서 경쟁력을 증명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호남에서도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은 안 전 대표로서는 더욱 아픈 대목이다. 12월 12일 리얼미터 조사에선 광주·전라에서 16.9%의 지지율을 기록, 21.3%를 얻은 이재명 성남 시장에게 밀려 3위를 기록했다. 호남에 팽배한 ‘반문’ 정서의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이 시장에게 밀린 셈이다. 국민의당에선 “친문이 SNS를 통해 새누리당 연대 프레임을 걸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안 전 대표가 12월 14일 “새누리당이 단 한순간이라도 여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나라가 이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 시간 이후에도 저와 새누리당의 연대를 말하면 이는 악의적이고 정치공작”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는 “새누리당은 박근혜 게이트의 공범”이라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새누리당과의 연대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새누리당 해체, 새누리당의 불법자산 국고 환수, 박근혜 게이트 공범 처벌 등도 주장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안 전 대표가 독자적으로 세력을 구축하기는 힘들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평가다. 최근 다시 탄력을 받는 제3지대론에서 안철수 전 대표가 핵심 인물로 거론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안철수 전 대표는 손학규 전 대표와 손잡고 새누리당 비박계가 창당하는 신당으로 합류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내에서도 “비박 연대를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면서도 내심 비박계가 신당을 창당해도 지지율이 15%를 넘지 못할 것으로 보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안철수 전 대표와의 연대를 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가치적 측면이나 이념적 스펙트럼을 봤을 때 안철수가 비박계와 가장 가깝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안 전 대표도 직접 인재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한다. 안 전 대표측 관계자는 “가치와 비전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영입하기 위해 사람들을 직접 많이 만나고 있다”고 전했다.

일단 손학규 전 대표와의 연대작업은 사실상 시작됐다. 12월 13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손 전 대표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포럼 창립 10주년 기념식엔 안 전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 등을 포함한 국민의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했다. 김종인 전 대표와 이종걸·박영선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비문 계도 함께했다. 손 전 대표는 기조연설에서 “7공화국 건설에 나설 개혁세력을 한데 묶는 일을 하겠다”며 “‘국민주권개혁회의(가칭)’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87년 체제 속에서 대통령 선거를 치르자는 측은 한마디로 기득권 세력”이라고 전제, “제2의 박근혜가 나와도 좋다. 나만 대통령이 되면 된다는 말이야말로 바로 호헌세력의 진면목”이라며 문 전 대표를 ‘제2의 박근혜’에 빗대기까지 했다.

손 전 대표는 창당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두고 보자”고 했지만, “친박·친문을 뺀 세력이 함께하는 창당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안 전 대표와 국민의당이 주장해온 “친문-친박 양 극단을 제외한 합리적 개혁세력과 함께해야 한다”는 말과 맥락이 통한다. 김동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오늘이 꼭 창당대회 같다. 정치를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다 모였다”며 “다 함께 7공화국을 열자”고 했다.

“안개 걷히면 재평가 이뤄질 것” 정책행보도 뚜벅뚜벅

손학규-안철수 연대는 일단 ‘개헌’을 고리로 이뤄졌다. 안철수 전 대표의 개헌 관련 발언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안 전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선순위로 따지자면 민생 문제와 선거제도 개혁이 먼저”라면서도 “개헌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틀 전인 12월 11일까지만 해도 기자간담회에서 “정치권에서 합의를 이루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개헌에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안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는 국정공백으로 인한 비정상적 상황이기 때문에 개헌만 논의할 수는 없고,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판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라며 “개혁 과제로서 개헌 또한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회 개헌특위가 생기는 상황에서 논의를 안 할 순 없다”면서도 ‘선 공약 (대선) 후 개헌’ 입장을 고수했다.

안 전 대표는 인재 영입을 통해 외연 확장을 꾀하는 한편, 정책적으로는 기존의 ‘공정성장’ 기조를 유지하면서 박근혜-최순실 사태로 드러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당 싱크탱크인 국민정책연구원이 개최하는 릴레이 토론회에 참석해 비전을 구체적으로 가다듬겠다는 계획이다. 안 전 대표 측은 “이번 정국이 어느 정도 지나가면 가장 중요한 과제로 검찰개혁과 재벌개혁이 꼽힐 것”이라고 했다.

5.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 막무가내 친박계와 불안한 동거…개혁보수 리더 자임


▎비박계의 중심이 된 유승민ㆍ김무성 의원은 탈당의 갈림길에 섰다. 이미 탈당을 시사한 김 의원과 달리, 보수의 메카인 TK를 기반으로 둔 유 의원에게 탈당은 쉽지 않은 선택지다. / 사진·전민규
새누리당 밖에서 온건 보수층과 새 둥지 차릴 수도

새누리당 비박계는 12월 15일 불길한 기분을 갖게 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접했다. 바로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발표한 정당지지율 조사 결과다. 이 회사는 14일 하루 동안 전국 성인 1037명을 대상으로 새누리당 분당시 정당 지지율을 조사했다. 그 결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35.9%로 1위를 차지했고 친박당과 비박당 각각 12.6%의 지지율을 얻었다. 여권의 주류격인 친박계의 지지율이 12.6%에 불과하다는 쪽에 초점을 두는 이들은 보수의 분화가 임박했다는 예감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친박계의 관전포인트를 달랐다. 새누리당 지지층 중에서는 54%가 이정현-최경환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친박계 정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김무성-유승민 중심의 비박계 정당은 25.4%에 그친 점에 주목한다. 친박계의 한 전략통은 “이게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마음”이라고 가뭄에 단비 만난듯 반색했다. 실제로 새누리당 특히 친박계의 아성이라 할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 고령층에서 보수층 결집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새누리당은 탄핵정국 이전과 견줘 지지기반이 반쪽으로 감소하면서 사실상 친박당화되고 있다”면서 “그래서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층이 친박당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온건 지지층이 새누리당에서 빠져나가면서 새누리당 균형추가 친박계 쪽으로 기운다는 말이다.

이런 자신감에 기반했는지 친박계는 비박계의 김무성·유승민 의원을 한데 묶어 “두 의원과는 당을 함께할 수 없다”며 탈당을 요구했다. 친박계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선 두 의원이 해당 행위, 분파 행위를 저질렀다고 공격했다.

비박계의 잠룡으로 일컬어지는 유승민 의원은 이런 조건에서 친박계를 제압하고 당의 혁신을 이끌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친박계의 거친 공세에 유 의원은 “당 안에서 개혁을 위해 끝까지 싸우고 탈당은 늘 마지막 카드라고 생각한다”며 내부 개혁을 우선시하는 입장을 보여왔다. 박 대통령과 결정적으로 갈라진 계기로 작용한 2015년 4월 국회 원내 교섭단체 대표 연설 때부터 주장해온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구현하자면 보수의 본류인 새누리당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유 의원과 정치적 행보를 같이해 온 이종훈 전 의원은 “새누리당 내에서의 개혁이 성과를 내고 유 의원이 자신의 약속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면 보수층은 그를 지지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내 갈등 양상이 친박과 비박의 싸움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본질은 수구 보수와 개혁 보수의 투쟁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개혁보수를 이끌 거의 유일한 리더인 유 의원이 보수의 본류인 새누리당을 쉽게 등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당 원내대표에 이어 비상대책위원장까지 친박계가 장악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유 의원 본인도 12월 14일 “친박 지도부가 리모컨으로 조종할 수 있는 비대위원장을 선출한다면 당이 파국으로 가지 않겠느냐”며 탈당의 문을 열어뒀다. 기존의 친박계의 일방주의적 행보로 볼 때 유 의원은 탈당 등 극단적 선택을 강요당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영남이라는 ‘기반’과 혁신이라는 ‘명분’

앞서 봤듯이 온건 지지층이 빠져나간 새누리당 지지층 성향이 비박계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데 유 의원의 고민이 있다. 어쩌면 이들은 유 의원에게 강한 거부감마저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 의원에게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 하나는 새누리당을 깨지 않고 혁신을 통해 등을 돌린 온건 지지층을 다시 새누리당으로 끌어모으는 방식이다. 또 하나는 탈당을 해서 이탈한 새누리당 지지층과 중간층 유권자들을 기반으로 하는 새 둥지를 만드는 길이다. 친박계의 독주가 계속된다면 후자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는 “유 의원의 행보는 본인보다는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고 말한다. 아직도 당내 다수파를 점하는 친박계가 권력의지를 굽히지 않는 이상 유 의원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탈당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정치적 기반인 대구·경북(TK)은 새누리당의 철두철미한 교두보이자 보수 권력의 메카로 자리해왔다. 친박계와 강력히 결합돼 있는 TK 기반과 유리되면 그의 정치적 입지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이재혁 대구·경북녹색연합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하면서 전국적 인지도를 키워온 유 의원이지만 근거지인 대구·경북에서의 정치적 세력화는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을 제대로 혁신하고 보수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한울 교수는 유 의원이 딜레마에 봉착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온건, 합리적 보수층들이 이미 당 지지층에서 이탈한 상태고, 남아있는 당 지지층은 오히려 유 의원에 대한 반감을 키울 수 있다.”

유 의원은 결단의 순간마다 자기 다짐과 같은 말을 되뇌곤 했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2015년 7월 원내대표직을 사퇴할 때,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을 탈당할 때,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서도 이 물음을 자신에게 던졌다.

그는 늘 “정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열린 가슴으로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12월 8일 국회의 탄핵 소추안 표결을 앞두고서는 ‘정의로운 공화국을 위한 전진’ 제하의 보도자료에서 ‘검찰 공소장만 봐도 사유가 충분하다’며 박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친박계와의 갈등이 격화될 경우 유 의원은 탈당이든, 출당이든 또 한번 새누리당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유 의원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 이종훈 전 의원은 “최순실 국정농단의 여파로 정의, 공정성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국민도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시대적 요구인 정의와 공정성을 구현할 능력 있는 지도자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남이라는 ‘기반’과 혁신이라는 ‘명분’을 동시에 껴안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순간 유 의원이 일생의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점쳐진다.

- 박성현·추인영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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