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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패권경쟁’ 불확실성의 동북아 정세 

한반도, ‘스트롱맨’들에게 포위되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주변 4강 지도자 모두 강력한 리더십 앞세워 자국의 이익 극대화에 올인… 친분관계에 기초한 합종연횡 시도할 경우 한반도는 ‘바람 앞의 등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오른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1월 17일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요즘 국제사회에 ‘스트롱맨’(strong man)이라는 용어가 회자되고 있다. 옥스퍼드 사전은 스트롱맨을 ‘협박과 폭력을 사용해 나라를 통치하는 지도자’, ‘신체적으로 굉장히 강한 남자, 주로 서커스장에서 공연하는 장사(壯士)’로 정의한다. 위키피디아는 스트롱맨을 ‘힘으로 지배하고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정치적 지도자’라고 설명한다. 스트롱맨은 민족주의·애국주의·국가주의·순혈주의에 강력하고 남성적인 리더십 등을 앞세우는 권위주의적 지도자 또는 독재자를 뜻한다.

우연인지 몰라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등 한반도 주변 4강의 국가 최고지도자들이 모두 스트롱맨이다. 이들 4명의 지도자는 모두 역대 최고 수준의 강력하고 안정적인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

이들의 특징도 비슷하다. 국내적으로 애국심을 자극하고, 언론을 통제하거나 언론과 대립하고, 반대파와 갈등을 벌이거나 숙청해왔다. 대외적으로 자국우선주의를 앞세우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추진하거나 펼치려 한다. 게다가 트럼프 당선인은 백인민족주의, 시진핑 주석은 중화민족주의, 푸틴 대통령은 슬라브민족주의, 아베 총리는 사무라이민족주의를 기치로 내걸었다.

푸틴 “러시아의 영토는 끝이 없다”


▎지난 6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악수하는 푸틴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주석. / 사진·중앙포토
스트롱맨이란 용어는 2012년 5월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 당시 총리가 대통령에 당선돼 크렘린궁으로 복귀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푸틴은 헌법의 3연임 금지조항에 따라 총리 자리로 물러났다 2012년 다시 대통령이 됐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강한 러시아의 재건’을 선언하면서 옛 소련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강력한 대내외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푸틴 대통령은 이를 위해 옛 소련권의 재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2014년 3월 주민 대부분이 러시아계인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푸틴의 지지율은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89%까지 오르기도 했다. 당시 유가 하락 및 미국과 유럽의 강력한 경제제재 조치로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은 그동안 마이너스를 기록했는데도 푸틴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는 것은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러시아의 민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15년부터 이슬람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척결을 명분으로 내세워 시리아 내전에 군사 개입하면서 러시아의 힘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푸틴은 시리아 내전에 군사개입을 통해 중동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극대화하면서 러시아가 미국의 강력한 도전자라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각인시켰다. 푸틴은 이와 함께 군사력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게다가 푸틴 대통령은 나토(NATO)의 동진을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 군 병력을 중·동유럽에 배치하기도 했다. 특히 푸틴은 ‘슬라브민족주의’를 앞세우면서 강한 러시아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푸틴은 최근 “러시아의 영토는 끝이 없다”는 말까지 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과 닮은 꼴인 스트롱맨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다. 시 주석은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되면서 권력을 차지했다. 2013년 3월 국가주석 자리에 오른 시 주석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기치로 내걸었다. 시 주석은 이를 위해 군사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경제대국으로 더욱 우뚝 선다는 원대한 계획을 추진해왔다. 시 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부국(富國)과 강군(强軍)을 함께 해야 한다”면서 ‘중화민족주의’를 강조했다.

그가 추진하는 전략은 무엇보다 영토와 영해를 확대하는 것이다. 시 주석은 1842년(아편전쟁에서 패한 후 불평등조약 체결)부터 1949년(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의 ‘굴욕의 세기’를 바꿔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출해왔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건설해 군사기지화하는 의도는 남중국해를 무력으로 실효지배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대혁명을 부르는 시진핑의 ‘황제’ 권력


▎지난 9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폐막 후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서 만난 아베 총리(왼쪽)와 시진핑 주석. / 사진·중앙포토
시 주석의 또 다른 전략은 경제질서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국제통화기금(IMF)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을 통해 구축해온 경제질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난 1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공식 출범시켰다. 시 주석은 또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과 해상의 실크로드 구축)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시 주석의 구상은 육·해상 두 축을 통해 해당 국가들의 교통 인프라를 연결하고 자유무역지대를 만들며 위안화를 결제수단으로 확산시키는 ‘범중화경제권’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중국몽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2021)이 되는 시점에 샤오캉(小康: 전 국민이 중산층이 되는 사회) 시대를 열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2049) 때는 미국을 뛰어넘는 초강대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의 공통점은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 강한 리더십을 통해 국가를 통치하는 등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여왔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옛 소련의 사회주의 성향이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무늬만 민주주의 국가이고, 중국은 공산당이 일당독재로 지배하는 공산주의 국가다.

푸틴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그동안 국제적으로 상당한 비판을 받아왔다. 푸틴 대통령의 정적들은 조직적으로 투옥, 추방되고 협박과 괴롭힘을 당했다. 일부 정치인들은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처럼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야당 후보들은 정치적으로 결집할 수 없고 TV에도 나갈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들에 대한 기부자는 협박당하고 선거운동은 조직적으로 방해받기도 했다. 대표적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가 집행유예 판결로 가까스로 풀려났다. 푸틴 3기 집권에 반대하는 공연을 펼쳤던 여성 펑크 록그룹 푸시 라이엇(Pussy Riot) 단원들은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언론의 자유도 탄압했다. 푸틴 대통령의 언론사 통제는 은밀하고 교묘하게 진행된다. 과거처럼 군대나 경찰을 앞세워 방송사를 포위하거나 언론인을 겨냥한 테러 등을 가하는 것은 사라졌다. 대신 러시아 정부는 언론사 사주에 대한 횡령과 세금 탈루 등 전 방위적 비리 감찰을 벌인다. 러시아 국영매체들은 푸틴 대통령의 청렴함, 결단력, 국민을 위한 정치 등을 강조하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시 주석은 사실상 1인 독재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시 주석은 그동안 반(反)부패운동을 활용해 자신의 정적과 거물급 경쟁자들을 제거했다. 대표적 인물로 전임 상무위원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처벌한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을 비롯해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비서실장이던 링지화(令計劃) 통일전선부장(장관급) 등이 있다.

시 주석은 지난 10월 열린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전회)에서 ‘핵심’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면서 명실상부한 중국의 최고권력자가 됐다. 중국에서 핵심이라는 호칭으로 불린 최고지도자는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주석, 덩샤오핑(鄧小平) 전 중앙군사위 주석,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밖에 없었다. 시 주석에게 핵심이라는 호칭이 공식 사용된 것은 중국 지도부의 집단지도체제가 무력화됐음을 의미한다.

중국 공산당은 마오 전 주석의 1인 지배체제의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덩샤오핑 때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했다. 집단지도체제는 최고결정기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7명의 상무위원이 권력을 나눠 갖는 구조를 말한다. 이런 집단 지도체제는 장 전 수석을 거쳐 후 전 주석 시대부터 정착됐다. 하지만 6중 전회에서 시 주석에게 핵심이라는 호칭을 공식적으로 붙임으로써 시 주석은 앞으로 서방언론들의 지적처럼 ‘황제’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시 주석 집권 이후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언론과 인권 탄압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일각에선 중국 언론이 공산당과 최고지도자에게 충성만을 외치는 ‘문화대혁명시대’로 퇴보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연전연승 아베의 ‘극우 본색’


▎크림반도의 러시아 편입을 지지하는 주민들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그려진 포스터를 들고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인 일본에서도 스트롱맨이 등장했다. 2012년 12월 총선에서 당시 집권 여당인 민주당을 물리치고 자민당을 대승으로 이끈 아베 신조( 安倍晋三) 총리가 스트롱맨이다. 당시 일본은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이란 엄청난 재해로 국가 전체가 무기력한 상황이었다. 국가 위기상황에서 강력한 지도자가 나오길 바랐던 일본 국민은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고 주장한 아베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아베는 2013년 참의원선거, 2014년 중의원선거, 지난 7월 참의원선거에서 모두 압승하는 등 선거 불패의 기록을 세웠다.

선거 승리에 힘입어 아베는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겠다면서 ‘극우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아베는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었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말까지 듣는다. 실제로 아베는 2013년 12월 한국과 중국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들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아베는 2015년 9월 자위대의 무력행사를 가능하게 한 안보법안(안보 관련 11개 법률 제·개정안)을 국회에서 강행 통과시키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1월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 참여하는 육상자위대를 남수단에 파견하면서 안보법에 의거해 ‘출동경호’ 임무까지 부여했다. 출동경호란 PKO로 파견된 타국의 군대가 습격받았을 경우 자위대원이 현장에 출동해 총기류 등 무기를 사용해 구조하는 것을 말한다. 자위대가 사실상 전투 임무를 하게 된 셈이다. 아베는 또 ‘전후체제’(패전 후 수립된 평화헌법체제)를 탈피하겠다면서 개헌하기 위해 노골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아베는 영토와 역사문제를 이용해 민족주의를 부추겨왔다. 아베 신조의 이름에 들어간 ‘신(晋)’은 다카스기 신사쿠(군대를 현대화해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의 서막을 여는 데 기여한 청년 사무라이)의 ‘신’에서 따온 것이다. 아베의 피와 머릿속에는 일종의 ‘사무라이민족주의’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아베 총리는 정적인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간사장을 지방 창생담당상이라는 한직으로 좌천시키는 등 자신에게 반대하는 정치인을 내각에서 배제했다. 아베 총리는 또 공영방송인 NHK 회장을 뽑는 경영위원회에 측근 5명을 위원으로 집어넣었다. 이들 덕분에 아베의 지지자인 모미이 가쓰토(籾井勝人) 전 미쓰이물산 부사장이 NHK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방송·통신업계를 관장하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무상은 지난 2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방송국이 정치적 공평성을 결여한 방송을 반복한다고 판단되면 방송법과 전파법에 입각해 전파사용 정지를 명령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발언에 대해 일본 언론계는 아베 정권에 비판적 언론에 ‘공평성 결여’라는 낙인을 찍어 문을 닫게 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라고 보고 있다. 일본 언론계는 아베의 이런 언론 통제를 강하게 비판한다. 실제로 일본 언론인 5명이 지난 3월 아베가 언론 통제를 일삼고 있다면서 규탄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11월 8일 실시된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또 다른 형태의 스트롱맨이 탄생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스트롱맨의 ‘자질’을 고루 갖췄다. 트럼프는 대선기간 내내 무슬림 입국금지와 불법체류자 즉각 추방 등 무수한 막말과 인종차별 및 여성비하 발언을 쏟아냈다. 부동산 재벌이자 정치경험이 전혀 없는 ‘아웃사이더’(비주류)인 트럼프가 예상을 깨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기성 워싱턴 정치에 분노하고 세계화 때문에 중산층이 붕괴된 미국사회에 절망한 백인 노동자(앵그리 화이트)들의 변화 요구 덕분이다.

백인민족주의·보호무역주의 깃발 내건 미국 대통령


▎2013년 1월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인근 해역으로 불법 침입한 대만 어선과 대만 순시선에 물대포를 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Make America Great Again)’는 슬로건을 앞세우면서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기치로 내걸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미국인, 궁극적으로는 최대 인종인 백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미국우선주의는 중동 등에서 벌어지는 글로벌 분쟁에 개입해 정부 예산을 낭비하지 말고 실속을 차려야 한다는 ‘신고립주의’이기도 하다. 트럼프를 찍은 백인 유권자는 58%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 지지(37%)와 격차가 21% 포인트에 달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트럼프가 부인하기는 하지만 일종의 ‘백인민족주의(White Nationalism)’를 주창한다고 말할 수 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백인우월주의, 반(反)이민자 정서를 기치로 내세우는 이른바 ‘대안우파(altright)’가 급부상하고 있다. 대안우파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는 ‘백인민족주의’이고 최소한 ‘백인 중심의 정치(white identity politics)’다. 이민자를 모두 내쫓고 ‘백인만의 미국’을 세우는 것이 목표다. 트럼프는 대안우파로 꼽히는 인물이자 극우 인터넷 매체인 ‘브레이트 바트’ 대표인 스티브 배넌을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수석고문으로 임명하면서 대안 우파에 힘을 싣기도 했다.

트럼프는 새해 1월 20일 대통령 취임 첫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재협상을 선언하는 등 보호무역주의 깃발을 높이 들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는 그동안 불공정한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미국의 일자리가 없어지거나 크게 줄어들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트럼프는 중국과 무역전쟁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첫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무역전쟁을 선포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또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면서 나토 회원국들은 물론 한국·일본·사우디아라비아 등에도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주류 언론의 비판적 보도에 취재 거부와 비난으로 적대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트럼프는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언론매체들을 노골적으로 성토하기도 했다. 심지어 트럼프는 의 제프 저커 사장을 지목하며 “당신네 방송이 싫다”면서 “CNN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보일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지난 7월 말부터 지금까지 4개월 가까이 기자회견을 열지 않고 있다. 차기 정부의 주요 인선 내용이나 정책 운용 방침은 트위터를 통해 발표할 뿐 취재기자들의 질문은 거의 받지 않는다. 트럼프의 측근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미디어들은 이번 대선에서 편파보도로 완전히 불명예 그 자체였다”며 “트럼프가 꼭 기자회견을 할 의무는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권이나 성(性) 평등, 법치에 큰 관심이 없는 트럼프는 중동의 다른 독재자들과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 이후 가장 먼저 그에게 축하인사를 전한 인물은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집트 대통령 압델 파타 엘시시다. 엘시시는 언론을 통제하고 반대파를 사법살인하려 하는 등 전형적인 독재자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7월 쿠데타를 진압하고 대대적 숙청으로 철권통치를 강화하며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옹호하기도 했다.

트럼프 “크림반도 주민들은 러시아에 속하는 것을 선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1월 뉴욕타임스 본사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마치고 떠나면서 사람들을 향해 엄지를 추켜세우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스트롱맨들은 외교적으로는 국제기구를 통한 만남보다 ‘맨투맨’ 정상회담을 선호한다. 아베 총리가 11월 17일 뉴욕의 트럼프타워를 방문해 트럼프 당선인과 만나 1시간30분간이나 대화를 나눈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아베 총리는 트럼프 당선인에게 골프클럽을 선물로 전달했고, 트럼프 당선인은 아베 총리에게 셔츠 등 골프용품을 건넸다. 아베 총리는 외국의 국가 정상으론 처음으로 트럼프 당선인을 만났다. 두 사람의 회동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트럼프는 페이스북에 “아베 총리가 우리 집에 들러줘 기뻤다. 멋진 우정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건물 아래 차량 대기 장소까지 내려가 아베 총리를 배웅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는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이고, 트럼프와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스트롱맨들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신들끼리 친분과 연대를 강조한다. 트럼프와 푸틴은 ‘브로맨스(bromance)’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간 상대방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브로맨스는 형제(brother)와 로맨스(romance)를 합성한 신조어로, 남자들끼리 갖는 매우 두텁고 친밀한 관계를 뜻한다. 트럼프는 그동안 푸틴에게 우호적 태도를 보이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러시아와 관계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과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극도로 악화된 상태다. 특히 미국은 유럽연합(EU)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해왔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지난 7월 “크림반도 주민들은 차라리 러시아에 속해 있는 것을 선호한다”며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을 옹호했다. 트럼프는 시리아 사태에 대해서도 “우리는 시리아 반군의 실체가 뭔지를 모른다”면서 “나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전혀 좋아하지 않지만, 알 아사드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를 제거하고 있고, 러시아도 마찬가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푸틴도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주장해온 트럼프를 좋게 평가해왔다. 푸틴은 “트럼프가 특출나고 재능 있는 인물”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푸틴이 서방 국가 지도자들에게 찬사를 보낸 것은 트럼프가 유일하다. 러시아 국영언론들은 그동안 미국 대선 과정을 보도하면서 일방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해왔다.

트럼프는 푸틴과는 친하고, 시진핑과는 거리를 둔다. 푸틴은 시진핑과도 가깝다. 아베는 트럼프와 행보를 같이하면서 푸틴과 연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진핑은 푸틴과 연대하면서 아베는 적대시한다. 이들 4명은 자국 우선주의에 따라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종연횡할 수도 있다. 트럼프와 푸틴의 브로맨스, 시진핑과 푸틴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트럼프와 아베의 전통적 동맹 관계, 푸틴과 아베의 전략적 연대 등이 가능하다.

‘크레이지 맨’ 북한 김정은까지 머리 위에 존재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한 레스토랑 벽에 그려진 푸틴과 트럼프의 키스 벽화 앞에서 연인이 입맞추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공교롭게도 이들 4명 지도자는 임기도 비슷하다. 트럼프의 임기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다. 재선할 경우 2025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다. 트럼프는 차기 정부 장관 인선을 하면서 “향후 8년간 정부를 운영할 인사들의 진용을 짜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는 임기를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2020년 차기 대선 출마를 벌써부터 구상하는 듯하다. 시 주석의 임기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다. 중국 공산당에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지켜온 ‘잠규칙’(潛規則)’이 있다. 이 중 하나가 ‘칠상팔하’(七上八下: 68세 이상의 국가 지도자는 은퇴)다. 이 규칙에 따라 내년 가을 19차 공산당 대회에서 시 주석과 리커창 총리를 제외한 5명의 상무위원은 전원 교체 대상이다. 1948년생으로 내년 만 69세가 되는 시 주석의 최측근인 왕치산 상무위원도 퇴진해야 한다.

그런데 왕 상무위원이 유임되면 1953년생인 시 주석도 69세가 되는 2022년 이후 유임될 수 있다. 중국은 헌법상 국가 주석은 임기(10년)가 있으나 총서기는 임기가 없다. 덩샤오핑이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함 하나로 오랫동안 최고지도자로 군림한 것처럼 시 주석이 2022년 이후 상무위원으로 건재하면 2027년까지 총서기 직함을 가지고 최고 지도자로서 남아 있을 수 있다.

푸틴의 임기는 2018년까지다. 푸틴이 대선에 다시 출마해 승리한다면 네 번째로 대통령을 맡으면서 2024년까지 통치할 수 있다. 아베의 임기는 2018년까지다. 그런데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현재 최대 6년인 총재 임기를 9년까지 늘리기로 결정했다. 내각제인 일본에선 집권당 총재가 총리가 된다. 아베가 2018년 당 대회에서 총재로 다시 선출된다면 2021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현재 자민당에는 아베 총리에게 맞설 인물이 없어 2021년까지 재임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향후 국제질서는 이들 4명 지도자의 노선과 정책에 따라 좌지우지될 것이 분명하다. 이들 4명의 스트롱맨이 충돌하거나 대립할 수 있는 지역은 한반도, 남중국해, 시리아, 우크라이나 등이다. 특히 한국은 이들 4명의 스트롱맨에 둘러싸여 있는데다 ‘크레이지 맨’(crazy man)인 북한 김정은까지 머리 위에 있다. 4강의 스트롱맨이 한반도를 놓고 패권 다툼을 본격적으로 벌일 경우, 자칫하면 한국은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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