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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창립 50주년 맞는 대우 김우중 전 회장이 말하는 기업가정신 

“새 대통령이 국정 혼란 잘 수습할 것” 

글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 훌륭한 지도자가 나선다면 어려운 과제도 극복 가능해
■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 치적 훼손되지 않아
■ 국내 기업들, 보호무역주의에 대비해 해외 현지 생산설비 늘려야
■ GYBM 양성사업, 대우 50년 DNA 전파하는 내 생애 마지막 역작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해외로 나가면 우리 민족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알게 된다고 강조한다.
“나는 여러 차례에 걸쳐 대우그룹의 김우중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마다 감명 깊었던 것은 김우중 씨의 젊은 열정. 폭넓은 국제적 시야와 무한한 행동력, 그리고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이었다.”

1990년 일본에서 발행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김우중 저) 일어판에 실린 일본 종합상사 니쇼이와이(日商岩井) 하야미 마사루(速水 優) 회장의 추천사의 한 대목이다. 하야미 회장은 추천사를 쓰면서 김 회장에게 ‘어디 계신가’라고 물어보았던 모양이다. “미얀마 출장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는 일화도 함께 소개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여전히 ‘출장 중’이다. 미얀마·베트남 등 아세안(ASEAN) 국가로 내보낼 청년실업가 양성에 인생의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다. 바로 글로벌 YBM(GYBM, Global Young Business Manager·글로벌 청년 사업가) 육성사업이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운용하는 GYBM 프로그램은 베트남·미얀마 등 해외에서 취업·창업하려는 청년들을 모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김 전 회장은 연중 8~9개월을 동남아 현지에 머무르며 GYBM 청년들의 멘토로 활동한다. 1980~90년대 한국 굴지의 재벌 그룹 총수로 세계시장을 호령했다면, 이제는 그의 DNA를 이어받을 ‘김우중 칠더런’ 배출에 올인하는 것이다.

“당분간 박정희 같은 지도자 나오기 어려워”


▎1993년 방한한 보 반 키에트 베트남 총리와 환담을 나누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 사진·중앙포토
2017년 새해는 대우그룹의 모체인 대우실업(현 포스코대우)이 창립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대우그룹은 1999년 기업재무구조개선(워크아웃) 판정을 받아 해체되는 등 실패한 기업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저성장, 청년실업, 양극화라는 현실에 고달픈 국민의 뇌리에 대우그룹의 ‘세계경영’ 기치는 개발연대를 떠올리게 하는 아련한 향수로 다가선다. 최근에는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파로 대한민국을 산업화의 영광으로 이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위상과 치적마저 추락할 위기에 처했다. 더불어 한국경제의 성장엔진도 식어간다.

얼마 남지 않은 창업 1세대의 한 사람인 김우중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호(號)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월간중앙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던 12월 9일 오후 리노베이션이 한창인 서울 중국 남대문로 대우재단 빌딩 18층에서 김 전 회장을 만났다. 재계의 풍운아이자 비운의 상징이기도 한 그는 21세기 바람직한 기업가정신, 청년실업 해소 방안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일화도 함께 소개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대한민국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한국의 개발연대를 이끌어온 입장에서 안타까움이 앞서겠다.

“정치고, 뭐고, 내가 할 일이 아니기에 뭐라 할 말이 없다. 사실 요즘 관심도 없다. 간혹 주변에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물어보는 정도다. 정치든 뭐든 당사자들이 다 잘 알아서 하겠지 하고 생각할 따름이다.”

한국이 다시 혼란과 충격을 딛고 정상 궤도에 올라설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 어려운 상황을 잘 헤쳐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분간은 수고스럽고 곤란하겠지. 어려운 일을 매끄럽게 잘 푸는 게 능력 있는 대통령이 할 일이다.”

새 대통령이 뽑히면 국가적 혼란이 수습되고 도약도 가능하리라고 보나?

“(이런 혼란과 후유증이) 그리 단기간에 해소되지는 않을 듯하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우수하다. 해외 어디를 돌아봐도 이런 나라, 이런 국민은 없다. 아이디어도 좋고 자신감도 넘친다. 훌륭한 지도자가 나선다면 어려운 과제도 다 극복할 수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나라의 장래를 밝게 보는 사람이다.”

2년 전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아무래도 가장 역사에 남을 사람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 한다”고 했다.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마저 급격하게 절하되는 분위기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지도자가 또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늘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에게 도움 되는 일이라면 그게 뭐든 실행에 옮기는 스타일이었다. 요즘 이런저런 말들이 들리던데…. 역사는 이미 이뤄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마저) 허물어지는 건 아니라고 본다.”

대우 50년 정리하는 출판·전시회·다큐멘터리 제작


▎1990년 서울 통일축구대회에 참석한 북측 임원들과 보도진이 대우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자동차 제작 공정을 지켜보고 있다. / 사진· 중앙포토
박 대통령의 탄핵과 박 전 대통령의 공적은 별개라는 말인가?

“맞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지도자는 당분간 나오기 어렵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김 전 회장의 기억이 애틋하다고 하던데.

“박정희 대통령께서 1970년대 서울역 앞 대우센터(현 서울 스퀘어빌딩) 지하에 있는 일식집을 자주 찾으셨다. 들를 때마다 연락을 주시곤 했는데, 술 한잔 드시면 ‘우중아’ ‘우중아’라고 부르며 껴안는 등 정을 많이 내는 분이셨다. 저녁식사에 배석한 비서실장·경호실장·서울시장 등 참석자들도 깜짝 놀랄 정도였으니까. 그런 자리에서 내가 평소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전해드렸다. 저축률을 높이는 방안의 하나로 도입된 근로자재산형성 저축이나 문맹 퇴치를 목표로 한 산업체 부설학교도 대통령과 대화하면서 자연스레 정책구상으로 발전한 게 아닌가 싶다. 나는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많은 편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힘들어 할 때면 내 나름대로 성심성의껏 이런저런 도움을 주고자 했다. 다 나라를 위한 것이니까. 이 점은 어디를 가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다. 큰영애 시절 만난 박 대통령은 상당히 똑똑하고 괜찮았던 인상으로 남아 있다.”

새해는 대우그룹 창립 50주년(1967년 3월 22일 창립)이 되는 해다. 반세기 역사를 돌이켜보면 감회가 남다를 듯하다.

“그저 세계를 종횡무진 내달린 기억만 남아 있다. 수출을 많이 하면 마치 애국이라도 하는 냥 밤낮없이 바쁘게, 열심히 일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 시절이 어느덧 50년이다. 본격적인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 것은 대우가 처음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한국이 해외로 나가 활동한 지가 그 정도 된다는 말과도 같다. 대우의 지난 50년 동안의 경험과 자신감은 소중한 자산이다.”

한국사회에 어떤 공헌을 했나?

“대우그룹이 한국경제와 기업에 준 영감이랄까, 공헌을 들자면 첫째 해외로 눈을 돌리게 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해 보였다. 수출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던 시절 와이셔츠를 해외에 내다 팔았다. 국내 은행도 수출 관련 금융 개념을 모르던 시절이다. 대우가 제일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해서 함께 성장했다. 둘째는 산업화에 동참했다는 점이다. 수출에서 시작해 조선·자동차·중공업 등을 이끌었다.”

대우그룹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면 우리 재계에 어떤 변화가 왔을까?

“옛 독립국가연합(CIS)과 동유럽·아프리카·중동·동남아 시장에서 대우의 명성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한국기업들이 이를 잘 활용했다면 현지 진출도 더 용이해지고, 시장지배력도 키웠을 텐데…, 대우가 해체되면서 이런 무형의 자산도 함께 매몰되고 말았다. 대우가 해외로 나갈 땐 혼자 가는 게 아니라 관련 제품과 부품을 생산하는 중견·중소기업과 동반진출을 꾀했다. 대우가 주도적으로 치고 나가면 1, 2차 밴드들이 그 뒤를 따르는 방식이다. 그랬다면 국내 기업의 글로벌화도 더욱 가속화하고 경제의 파이도 더 커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2017년 대우그룹 창립 50주년에 펼쳐질 기념사업이 눈길을 모은다?

“조촐하게 치르고자 한다. 그래도 50주년 생일인데 대우에 몸담았던 사람들끼리 기념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서 기록물도 정리하고 내부 행사도 갖기로 했다.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에서 연설한 것이나 언론사 인터뷰 자료 등 대우의 역사를 말해주는 기록물이 예상보다 많았다. 강연록과 어록을 중심으로 책도 펴낼 계획이다. 또 대우의 세계경영 현장을 담은 사진물, 대우가 만든 주력 제품, 대표 상품 같은 것들을 기념품으로 모아 전시회도 열 참이다. 또 그 시절의 열정과 패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도 제작 중이다. 글로벌 인재 육성과 관련해 전문가 초빙 강연회도 50주년 사업의 주요 내용이다.”

남들이 ‘그룹’이라 부를 때 우린 ‘대우가족’이라 불러


▎한때 대우그룹의 본사로 김우중 전 회장이 ‘세계경영’을 지휘했던 서울스퀘어빌딩(옛 대우센터). / 사진·중앙포토
대우 하면 제일 먼저 ‘세계경영’을 떠올리게 된다.

“마음속에 늘 세계를 품었다. 모든 기준을 세계 무대로 삼았고…. 글로벌 마인드, 글로벌 스탠더드로 생각했다. 대우는 한국 기업 가운데 해외 진출과 관련한 모든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모든 해외시장을 대우가 나가서 개척했고, 심지어 우리 정부가 사회주의 국가들과 수교하도록 주선하기까지 했다. 시장이 열리면 또 다른 시장을 찾아 이동하는 게 그 시절 우리의 운명, 사명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만 아니었으면 상황이 아주 좋았을 텐데. 당시 내가 너무 자신감이 넘쳐 내 주장만 하다 그만….”(웃음)

당시 대우그룹의 분식회계는 국민경제에 큰 충격과 후유증을 안겼다. 또 23조원에 이르는 대우그룹 임원 추징금 문제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이에 대해 대우 측은 대우사태 수습에 들어간 공적자금은 모두 회수됐고, 법원이 개인적 이득이 없는데도 천문학적 금액을 추징한 것은 대우를 외환 위기의 희생양으로 삼은 결과라고 항변한다. 추징금 부분에 대해 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법무법인 서울의 이석연 대표변호사(전 법제처장)는 “법원이 해외로 도피시켰다고 본 재산은 대우 계열사 회생 절차를 거치면서 회수됐으며, 추징금도 죄형법정주의를 어긴 징벌적 판결로 헌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회한이 남나?

“대우라는 이름은 비록 사라졌지만 계열사들은 살아남아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우가 있고 없고를 떠나 ‘대우정신’이 살아있으면 대우도 살아 있는 것이고, 그 정신이 사라지면 기업이 있어도 있는 게 아니다. 대우의 옛 임직원들이 아직도 대우정신에 충만해 이렇게 젊은이들과 다시 해외 진출(GYBM 육성)을 꿈꾸고 있다. 대우는 아직도 살아있다. 젊은이들과 함께 새 시대를 맞아 더욱 창조적으로 대우 정신을 발전시켜 나가고자 한다.”

‘세계경영’, ‘대우 정신’이 재평가받는 날이 올까?

“나는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을 항상 느끼며 살았던 듯하다.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대우를 창업하고 나를 위해, 나라를 위해 새 도전을 하고 싶었다.”

대표적 사례를 들자면?

“바로 해외 진출이었다. 수출하면 밑진다고 생각하던 그 시절 나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덤벼들었다. 처음부터 대우는 수출이 중심이었고, 수입·내수는 안 했다. 그렇게 해서 수출전선에 뛰어든 지 5년 만에 수출 2위까지 올라갔으니 엄청난 성공을 이룬 셈이다. 대우의 발전 궤적이 대한민국의 경제성장 궤적과 겹친다는 생각도 해본다.”

대우가 다른 기업들과 차별화한 포인트는 뭐였나?

“우리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갖게 된 공통의 가치, 컨센서스가 대단히 강했다는 사실이다. 남들이 ‘그룹’이라고 부를 때 ‘대우가족’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또 사훈도 ‘창조·도전·희생’으로 강한 소명의식을 담았다.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공유되기에 아주 강한 정신력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과 자신감, 결단력, 선구자 정신 등 이런 것들이 대우 결속력의 원천인 셈이다.”

그는 기업의 자세로 결단을 강조했다고 한다. 다음과 같은 식이다. “기업가란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가야 하며, 한 번의 선택에 연연하기보다 계속 기회를 찾고 새로운 선택을 이어나갈 수 있게 행동해야 한다.” 그는 특히 “후회할 일이 있으면 그만큼 더 노력해 다시 바로잡으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청년실업가 중에서 ‘제 2 김우중’ 나올 것


▎1998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폴란드 루블린에서 열린 대우자동차 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초석을 놓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결단의 순간은 어떤 마음가짐을 요하나?

“역사를 봐도 위대한 결단의 순간들이 역으로 발전의 기회가 된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이루어지는 것도 없다.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일을 벌이라고 촉구한다. 사실 결단의 두려움이란 실패나 성공을 극단적으로 가르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경중을 다투는 데서 비롯되는 법이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이 긍정적 사고와 철저한 준비라고 본다.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시장에 들어가면서 무섭고 두렵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일을 하겠나? 내가 처음 가서 남보다 먼저 그 시장에서 기회를 얻겠다는 긍정적 마인드로 시작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 마음이면 준비도 더 철저하게 할 수 있다.”

그 대우정신을 GYBM 양성에 불어넣고 있다. 주요 활동무대를 동남아로 잡은 이유가 있나?

“2009년 GYBM을 구상할 적에 첫째 목표를 청년실업 해소에 뒀다. 향후 우리가 뻗어나갈 시장, 전략적 협력이 가능한 지역이 어딘지 물색했다. 미국·중국·일본? 천만에. 베트남·미얀마·인도네시아·태국 등 동남아 지역이다. 청년들이 이곳에서 뿌리 내려 50년 후에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면 중국의 화교, 이스라엘의 유대인 못지않은 파워를 가진 집단을 형성할 것으로 믿었다. 2016년에도 190명이 졸업한다. 2~3년 후면 모두 15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에서 ‘제 2의 김우중’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청년들로 하여금 야망을 갖게 하는 방법은 뭘까?

“1차 목표는 꿈을 키워주는 것이다. 그 다음이 네크워크 형성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더 부강해지는 것이다. 그런 사명감을 가지라고 청년들에게 주문한다. 그게 우리의 목표이자 마지막 미션이다.”

21세기는 꿈을 갖기 힘든 시대 아닌가?

“나는 늘 GYBM 연수생들에게 ‘꿈 중독자’가 되라고 요청한다. 꿈이 크고 선명하면 남이 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열심히 하게 된다. 베트남에서는 연수생들에게 자기 꿈과 비전, 계획 등을 써서 내게 편지로 보내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억지 시늉만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할아버지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고민을 털어놔보라고 했더니 연수생들이 비로소 자신만의 꿈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1936년생인데 지금도 현역같이 활동이 왕성하다. 이 정도면 같은 연령층 중에서는 가장 잘나가는 게 아닌가?

“이왕 하는 것이므로 마지막까지 심혈을 기울이고자 한다. 나라와 국민에게 조그만 흔적이라도 남기고자 열심히 산다.”

GYBM은 청년들이 저성장시대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한국을 떠나 동남아 등 신흥시장에서 취업과 창업의 기회를 찾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2015년 12월 베트남을 찾아 GYBM 교육과정을 둘러보고 현지 기업에서 새 삶을 개척하는 졸업생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현장의 리얼한 장면과 김우중 전 회장의 분투기를 담은 GYBM 관련 책도 조만간 출판한다. 박 교수는 “1967년 와이셔츠를 해외에 수출하던 대우가 이제는 인재의 글로벌화를 통해 사람을 수출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우수한 인재를 해외에 수출한다는 것이며, GYBM도 그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도전의식과 투지, 자긍심을 겸비한 청년들이 아시아시장에서 꿈을 펼치도록 도와주는 게 GYBM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트럼프와 함께 박세리 US 오픈 우승 장면 시청


▎2012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GYBM 1기생들과 얘기를 나누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 사진제공·대우세계경영연구회
창업 1세대들은 국가 현안에 대한 입장 표명에 적극적이었다. 김 전 회장만 해도 관료들에게 제대로 하라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요즘은 모두가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세상이 된 듯하다.

“시대가 바뀐 탓이다. 예전에는 굶주림을 이겨내는 게 시대의 과제였고, 수만 명의 근로자과 고락을 같이하며 제품을 만들어내는 게 기업의 책무였다. 지금은 금융·정보기술(IT)·소프트웨어와 같은 지식산업이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세상이 변한 것이지. 재계나 언론이나 당당하게 소신을 밝히기 어려운 시대로 접어든 듯하다.”

2020년쯤 한국이 세계에서 굉장한 위상을 갖추리라 예측하기도 했는데.

“우리는 맨손으로 시작해 50년 만에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 인도네시아·미얀마·필리핀 등 숱한 국가들이 50년 전에는 우리와 비슷했거나 오히려 잘살았다. 지금 우리가 이만큼 앞서나갈 수 있는 것은 1년을 10년처럼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2020년이 몇 년 안 남았다. 우리 경제가 정점에 도달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지금 한국은 선진국 문턱에서 휘청거린다. 새해 한국경제를 진단한다면?

“우리나라는 뭘 하든 수출 없이는 답이 없다. 국내시장은 좁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나마 지금은 전 세계가 자유무역협정(FTA)이라고 해서 교역도 활발하고 자유무역을 우선시한다. 미래는 유동적이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미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이 말해주듯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은 미리 해외에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국내 부품을 조달해 쓰는 방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대우는 트럼프와 합작해 한국시장에서 주상복합아파트 건축 붐을 일으킨 적도 있다. 김 전 회장이 만나본 트럼프는 어떤 사람이었나?

“당시 나는 트럼프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트럼프의 사업을 담당하는 대우 계열사 사장들이 주로 그를 상대했다. 대우건설이 트럼프와 제휴해 국내 7곳에 ‘트럼프’란 브랜드로 건물을 올렸다. 하지만 1998년 미국에 가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은 생생하다. 그날(7월 8일)이 바로 프로 골퍼 박세리 선수가 US오픈에서 우승한 날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사무실을 방문하는데 그가 US오픈 결승전이 열린다며 함께 TV를 시청하자고 하더라. 박세리의 우승 장면을 트럼프와 함께 시청했다.”

트럼프가 한미관계를 잘 이끌어갈까?

“나는 장사꾼이었다. 정치나 외교에 대해선 할 이야기가 없다.”

1992년 대선 출마를 검토했던 것으로 안다. 정치를 했으면 기업 운영만큼 잘했을까?

“아니, 장사꾼이 무슨 정치를 잘했겠나?(웃음) 대선 출마설? 괜히 하는 소리지.”

얼마 전 타계한 쿠바의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도 인연이 있지 않나?

“1994년 대우그룹이 중남미시장 개척에 나설 때 쿠바를 방문해 그와 만났다. 사람이 괴짜지만 능력이 대단해 보였다. 오랜 세월 쿠바의 지도자 생활을 한 것부터가 그랬다. 국민들로부터 추앙받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도 양국은 미수교 상태다. 그런 나라와도 교역이 가능했나?

“대우는 쿠바와 장사를 제법 했다. 당시 쿠바는 사탕수수가 주력 수출품이었고 중국으로부터 쌀을 수입해 먹을 때였다. 그래서 대우가 중국의 쌀을 사서 쿠바에 주는 대신 사탕수수를 받아 세계시장에 내다팔았어. 소위 3각무역을 한 셈이지. 한 가지 에피소드를 전하자면, 한국정부의 고위 공무원이 미수교국 쿠바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국교가 없어 어떻게 교섭해야 할지도 모르던 그 공무원에게 우리가 사람을 붙여 쿠바 입국을 도왔다.”

쿠바에 생산공장 세우려던 계획, 미국 의식해 접어


▎1992년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 등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앞줄 왼쪽 넷째). / 사진·중앙포토
미국의 봉쇄를 당하던 카스트로 입장에서는 대우가 무척 고마웠을 법한데.

“쿠바와 제대로 사업을 해볼 요량으로 현지에 공장을 세울 생각까지 했다. 계약까지 했는데 결국 연기되고 말았다. 우방국인 미국이 쿠바를 봉쇄하는 마당에 우리가 대놓고 거래에 나서기란 어려운 일이다. 행여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라도 하면 대우의 미국사업이 어려워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 교역도 우회적으로 많이 진행하던 시절이었다. 쿠바인들은 상냥하고 열심히 일하는 민족이다. 지금도 쿠바 하면 기억에 떠오르는 건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살아보려고 무던히 애를 쓰던 쿠바인들의 모습이다.”

세계경영을 표방한 김 전 회장은 서방국가뿐 아니라 사회주의권 지도자들과도 두루 만났다. 장쩌민·후진타오(중국),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피델 카스트로 등이 대표적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 아예 북한특사로 활동하는 등 북한 김일성 주석과 20여 차례 만났다고 2014년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밝혔다. 김 주석과는 인간적으로 깊은 신뢰관계를 형성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얼마 전 노진환 전 서울신문 사장은 1990년대 권좌에서 밀려난 김일성 주석이 김 회장에게 해외에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고 자신의 회고록 <시대의 격랑 속에서>에 썼다. 사실인가?

“(소리 내서 웃으며) 북한을 하도 자주 왔다갔다해서 에피소드가 많은데 전부 잊어버렸다.”(웃음)

김 전 회장의 한 측근은 이와 관련해 “그런 비화(秘話)는 있어도 말 못하고, 없어도 말 못하는 법”이라며 “김 주석과 김 전 회장은 가장 가까이 지낸 사이다. 이제 김 주석은 이세상 사람이 아니고, 김 전 회장은 기억 안 난다고 하니 없던 일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측근은 “당시 김 주석이 남한에 대해서는 훤히 꿰뚫는데 반해 지구촌 돌아가는 사정에는 어두워 김 전 회장에게 많이 듣고 참고한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김일성은 어떤 사람이었나?

“김일성도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다. 북한이라는 나라를 수십 년 동안 통치한 것을 보면 그것만으로도 능력이 있는 것이지. 특사로 북한을 찾은 내게 많은 것을 해줬다. 사상이나 이념을 떠나 합당한 보답을 했다. 나는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시장이 엄청나게 큰 중국을 활용할 수 있어 양쪽에 다 도움이 된다는 설명을 했다. 김일성은 좀 이상한 사람이지만 아주 매력이 있는 사람이다.”

기업가는 지갑의 돈을 세는 순간 끝난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자신감을 잃으면 젊음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기업인, 경제인들에 하고픈 말이 있다면?

“과거에 강연에 초대받으면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기업가는 자기 지갑에 돈이 얼마 있는지 들여다보는 순간이 끝이라고 했다. 소유에 집착하는 순간 더 이상 도전의지가 생겨나지 않는 법이니까. 사업은 항상 새로운 도전과 성취를 지향하는 열정으로 하는 것이지. ‘열심히 해서 안 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기업가는 바로 이런 자세로 일해야 한다.”

GYBM 참가자들에게 ‘창의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창의성은 어디서 나오는가?

“나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것들을 시도했다. 예컨대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시장을 개방하기에 앞서 그 속으로 뛰어들어 가능성을 키웠다. 우즈베키스탄의 예를 자주 든다. 막상 가보니 돈이 없는 나라가 경제발전은 갈망하고 있었다. 그 나라에 흔한 게 면화였는데, 면방산업을 키워 수출하게 해주고 자동차산업을 하는 기회를 열었다. 앞서의 쿠바도 같은 경우다. 그 나라의 눈으로 보면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인다. 그걸 세계시장과 연결하니 해법이 도출되더라. 창의적 사고는 특별한 게 아니다. 명확한 기준을 갖고 남다른 접근을 꾀하는 게 창의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패기랄까,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말들을 한다. 이 또한 시대의 산물일까?

“내가 GYBM을 처음 시작하고 연수생들을 만났을 때 놀란 게 있다. 충분히 자질이 있고 능력도 있어 다 되는데도 자신감을 결여했더라. 자신감이 없으면 도전을 못하고, 그러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도전해야 성취를 하지. 그런 의미에서 자신감이 없다는 것은 젊음을 포기한 것과 같다고 늘 강조한다. 해외로 나가서 비즈니스로 경쟁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뛰어난 민족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과거에는 우리가 밖으로 나가본 역사가 없었기 때문에 우수한지 어떤지 비교할 수 없었다. 이제는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절대 기죽지 않을 것이다. GYBM으로 내 마지막을 정리할 생각이다.”

- 글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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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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