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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동병상련 연구] 비우는 행복, 미니멀리즘 대유행 

최.소.주.의 ‘인생도 호올~쭉해져라’ 

김경철 일본 고단샤 서울통신원(뉴스잡지 부문)
불필요한 물건, 나쁜 음식, 저장된 연락처 줄여가기 등으로 ‘단순화’ 열풍··· 자본주의 상징하는 소유로부터 벗어나 ‘인생의 본질’ 찾는 반문화운동으로

최근 SNS를 중심으로 젊은층에서 유행하는 ‘있어빌리티’라는 신조어가 있다. ‘있어 보이다+ability’의 조합으로 “있어 보이게 하는 것도 능력이다”라는 의미다. 은근슬쩍 자신의 값비싼 소유물을 노출하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실제보다 ‘있어 보이게’ 포장하는 기술을 말한다.

있어빌리티 유행의 배경에는 ‘많이 가질수록 행복하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 미래학자들은 2016년을 대표하는 소비 트렌드로 SNS 소통과 과시소비 현상을 지적하기도 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경제구조 속에서 보다 많이 소비하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 살고 있으며 얼마나 더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정반대로 버릴수록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소주의’의 삶을 지향하는 이른바 ‘미니멀리스트’이다.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고 최소한의 물품으로 생활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본질이다. 건축과 미술, 음악 등의 분야에서 형태와 색채 등 장식적인 요소를 최소한으로 절제하고 본질을 추구하는 콘셉트다. 1960년대 미국에서 탄생한 ‘미니멀리즘’을 라이프스타일에 적용했다. 2010년 미국의 조슈아 필즈 밀번과 라이언 니커디머스는 ‘TheMinimalists.com’이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하면서 ‘미니멀리즘’을 제창했다. 두 사람은 억대 연봉을 받으며 20대의 젊은 나이에 많은 부를 축적했지만 항상 부족하고 인생은 공허하기만 했다.

그들은 많은 물건과 인간관계가 자신들의 인생에서 자유를 빼앗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서 과잉돼 있는 것들을 처분하는 방법”으로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추구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페이스북의 창시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늘 똑같은 복장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저커버그는 항상 회색 티셔츠를 고집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모든 에너지를 상품과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생활 속의 작은 선택은 가능한 한 줄이고 싶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스티브 잡스 또한 항상 검은색 터틀넥에 청바지를 입으면서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그의 모든 에너지가 집중되어 탄생한 아이폰에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잡스의 철학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물건이 넘쳐나고 허세와 소유욕이 지배하는 현대사회. 한국과 일본에서는 요즘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절제와 무소유의 삶을 통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만 찾으려 노력하는 미니멀리스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국 | 인생 의 다운사이징 현상 - “비워내니 여유롭다”


“토스터기, 전기주전자 비워냈어요! 빵은 프라이팬에 구우면 되고 물은 그냥 주전자로 가스 불에 끓여서 먹어요.”

“학창시절의 추억이 깃든 다이어리 다섯 개를 버렸어요. 사진이나 중요한 글은 스캔해두고 나머지는 빡빡 찢어서 쓰레기통으로….”

“웨딩 촬영 때 입은 5년 된 한복을 처분했어요. 남편은 촬영 후 한 번도 안 입고 저는 그해 명절에 한 번 입었네요. 5년 동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놈을 처분하고 나니 속 시원하네요.”

온라인 카페 ‘미니멀 라이프’에서 실천하고 있는 ‘미니멀리즘게임’ 게시판에는 회원들이 처분한 물건 리스트와 사진이 매일 수십 건씩 올라온다. 미니멀리즘 게임이란 미국의 조슈아 필즈 밀번과 라이언 니커디머스가 제안하고 전 세계의 미니멀리스트가 동참하고 있는 ‘비워내기’ 게임이다. 날짜에 맞춰 그 숫자만큼 물건을 버리는 것인데 1일에는 1개, 2일에는 2개… 이렇게 30일간 비워내다 보면 한 달에 465개의 물건을 정리할 수 있다. 카페 운영자인 황윤정(48) 씨는 카페에서 추구하는 미니멀 라이프란 “단순한 정리정돈이 아니라 내 인생에 가치를 더해주는 꼭 필요한 것들만 소유하려는 삶”이라고 정의한다.

교사로 일하며 자녀 셋을 둔 맞벌이 주부 황씨는 퇴근 후 그녀를 기다리는 청소, 빨래, 설거지 등의 일 때문에 집이 또 다른 직장처럼 생각됐다고 한다. 우연히 미니멀리스트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고 처음엔 ‘집안일 좀 덜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했다. 물건을 비우면서 자연스럽게 삶의 방식까지 변화됐다고 한다. “물건을 비우면서 자연스럽게 환경과 동물복지, 기부, 공정무역, 건강한 식재료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지금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동물제품은 구입하지 않게 되었고 지구를 오염시키고 제3세계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물건도 사지 않으며 식재료는 꼭 필요한 만큼만 구입하여 항상 신선한 재료로 요리하고 있다.”

황씨는 이제 하루 종일 집안일에 시달리는 대신 독서도 하고 글도 쓰는 취미생활을 즐기게 됐다. 덕분에 지난 9월에는 <버리면 버릴수록 행복해졌다>라는 책을 출판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는 말한다. “삶은 여행이다. 어마어마하게 큰 캐리어에 온갖 짐을 다 넣고 들고 다니는 여행만큼 피곤한 여행은 없다. 내가 관리할 능력이 되는 만큼만 가볍게 최소한으로 지니며 이 세상 소풍 마치는 것이 목표다.”

10년차 신문기자 출신의 탁진현(36) 씨는 최악의 시기를 겪다가 미니멀리스트의 삶으로 인생을 재정비하게 됐다. “2011~2012년 최악의 삶이라고 느낀 시기가 있었다. 많은 업무량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그즈음 실연을 겪었고, 건강에도 적신호가 왔다. 일, 인간관계, 건강 문제가 한꺼번에 생긴 것이다. 어느 날 베란다에 쌓인 몇 박스 분량의, 엄청난 양의 서류뭉치를 버렸는데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홀가분함을 느꼈다.”

방심하면 ‘요요’ 현상도 있을 수 있어


▎<버리면 버릴수록 행복해졌다>의 저자 황윤정 씨의 신발장과 서랍. 황씨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해 “단순한 정리정돈이 아니라 인생에 가치를 더해주는 필요한 것만 소유하는 삶”이라고 했다. / 사진제공·황윤정
음식과 인간관계로도 확장돼갔다. 건강을 위해 가공식품과 같은 몸에 나쁜 음식은 일체 끊고 핸드폰에 저장돼 있던 1700명의 연락처를 지워가면서 인간관계도 정리했다.

“그전에는 사는 게 참 어렵다고 느꼈었는데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자 여유가 생겼다. 더 큰 집, 더 많은 물건 등 남들이 정해놓은 행복의 기준만 좇은 아등바등한 삶에서 벗어나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게 됐다.”

시간과 돈에 쫓기고 관계에 치이는 복잡한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단순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는 탁씨는 <심플라이프>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강의를 다니며 자신이 경험한 미니멀리스트로서의 행복을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살고 있다.

“가장 쉬운 것부터 줄이면 된다. 예를 들어 식품·화장품·잡지처럼 유효기간 지난 것→ 애착이 없는 것→ 볼펜처럼 똑같은 것이 여러 개 있는 것→ 스마트폰에 있는 기능인 계산기, 명함첩처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 1년 또는 2년 이상 쓰지 않는 것→ 책처럼 다른 곳에서 쉽게 빌릴 수 있는 것→ 추억의 물건 등의 순으로 비우면 조금 더 빠르고 수월하게 비울 수 있다.”

탁진현 씨는 단순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방심하면 요요처럼 수십 년간 몸에 밴 소비 습관 탓에 다시 물건이 늘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마음을 함께 비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머릿속은 다시 복잡해지고 물건을 비우는 의미가 없어진다고 충고한다.

“나는 물건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법으로 한계를 정해 놓았는데 가령 옷은 25벌, 펜은 2개, 소품은 여행가방 하나 정도만 소유하도록 하고 있다. 마음을 비우기 위한 습관으로 매일 산책과 아침청소를 하면서 마음의 찌꺼기도 털어 낸다.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마음을 비워 불필요한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미니멀리즘 열풍이 일본을 거쳐 국내에도 상륙했다. 인터파크 도서는 올해 상반기 핫이슈 키워드로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알파고’ 그리고 ‘미니멀리즘’을 꼽았다. 인터파크 도서에 따르면 올해 1~3월 미니멀리즘 관련 도서의 판매량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3배나 증가했다.

최근에는 정서적인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도서도 증가하는 추세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관련 카페도 급증했다. ‘미니멀 라이프’는 2014년 12월에 개설돼 현재는 5만 2000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미니멀리스트’, ‘미니멀리즘’ 등의 각종 카페가 활동 중이다. 북유럽스타일이라고 일컬어지는 군더더기 없이 실용성을 강조한 이케아의 가구, 유니클로 패션과 무인양품의 소품 등 디자인과 가격에서 거품을 거둬낸 생활용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비본질의 삶에서 벗어나 본질의 삶에 충실”


▎미니멀리스트 강현양 주부는 버리는 물건을 그림으로 그려 기록해뒀다. / 사진·중앙포토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국내 미니멀리즘 열풍의 배경에 대해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우선 ‘삶의 클라우드화 현상’이다. 전 세계적으로 ‘공유경제’가 대두되면서 굳이 물건을 구매해서 소유하지 않아도 체험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됐으며, 이 때문에 소비자들이 물건도 마치 클라우드나 가상공간에 저장하듯이 공유나 대여를 통해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개념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가치중심의 소비’다. 저성장시대로 접어들면서 물질적인 가치보다 정신적인 가치를 중요시하게 됐다. 과거처럼 체면과 과시를 위한 소비가 아니라 물건의 본질적인 가치나 품질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소유물을 기부하는 등의 행위로 줄여나가고 꼭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게 됐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젊은층들에 “럭셔리하고 매력적인 삶으로 비춰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사회일수록 많은 사람이 오히려 내려놓기, 느리게 살기, 자연친화적인 생활 등 여유가 있는 삶을 동경하고 럭셔리하다고 인식한다. 미니멀리즘 역시 같은 범주에 속하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우리 문단의 중견작가로서 수많은 시와 산문집을 펴낸 장석주 시인은 2000년 바쁘고 번거로운 일상에 파묻혀 살던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경기도 안성으로 내려와 최소주의 생활을 시작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8시간 글을 쓰고, 오후에는 산책과 독서, 밤 10시에 잠자리에 드는 단순한 삶이지만 충만함이 깃들었다고 한다. “출판사를 경영하고 남들과 다를 바 없이 바쁘게 살면서도 항상 풍요 속의 빈곤감 같은 걸 느꼈다. 시골에 내려오면서 성공신화를 따르던 삶에 깃든 빈곤감의 정체가 뭔지를 숙고하게 됐다. 노자와 장자를 공부하면서 먹고 쓰는 것 중심의 삶, 혹은 물자의 소비에 기반한 삶에서 빠져나오는 게 바로 욕망에 대한 제어이고, 이것이 빈곤감과 불행의 실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적게 먹고 적게 쓰자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고 그 실천적 대안이 느림과 비움이었다.”

장석주 시인은 미니멀리스트로서의 인생관을 담은 산문집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을 펴내면서 미니멀리즘의 본질에도 주목했다. “단순함의 미학 추구, 작은 집에서 살기 운동, 소식이 좋다는 인식의 확산, 적게 벌고 적게 쓰자는 각성 등은 사회 전반의 낭비와 소비에 제동을 걸려는 생태주의적 각성이며,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주류 문화에 대한 반동에서 촉발된 일종의 반문화운동으로서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이다. 성공과 소유가 행복을 가져준다는 믿음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허구이고 거품일 뿐이다. 미니멀리스트는 자본주의가 유포하는 허구적 신화를 따르지 않고 가치와 충만함에 집중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미니멀리스트는 비본질의 삶에서 벗어나 본질의 삶에 충실하려는 사람들인 것이다.”

일본 | 단샤리(斷捨離) 사상에서 미니멀리스트까지 - “최소한의 물건으로 사는 삶의 쾌적함”


스스로를 “무엇이든 버리고 싶어하는 병”에 걸렸다고 진단하는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유루이 마이 씨는 일본에서 미니멀리스트의 원조격으로 유명하다. 4단 만화로 구성된 그녀의 코믹에세이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다> 시리즈는 20만 부를 넘는 판매부수를 기록하며 드라마로까지 제작돼 인기를 누렸다. 남편과 어머니, 두 살배기 아들, 고양이 4마리와 함께 지내는 그녀의 집은 책 제목처럼 아무것도 없이 놀랄 만큼 살풍경하다.

거실에는 테이블과 의자 4개가 놓여 있고 벽에는 TV와 DVD 플레이어, 시계가 걸려 있을 뿐이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침실에는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밖으로는 물건이 전혀 나와 있지 않은 주방, 그나마 수납장 속에는 전기밥솥과 전자레인지, 냄비 3개, 프라이팬 2개, 그리고 4인 가족들을 위한 총 12개의 식기와 컵 11개가 전부이다. 욕실 앞에는 젖은 발을 닦는 매트 한 장 놓여 있지 않고 내부에는 세면대 옆 비누가 전부다. 집 어디에도 필요 최소한의 물건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어린 아들이 가지고 놀 법한 장난감 하나 눈에 띄지 않는다.

대지진 이후 번번히 쏟아지는 물건 보며 정리 결심


▎‘미니멀리스트 키친 이수부’의 이수부 셰프.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요리의 간결함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식재료를 접시에 나눠 담았다. / 사진제공·중앙포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루리 마이 씨는 대대로 물려받은 낡은 집에서 조상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물건들에 파묻혀 살았다. “아까워”가 입버릇인 그녀의 할머니는 다 먹은 푸딩 병이나 편의점에서 받아 온 플라스틱 스푼까지 깨끗이 씻어 보관하는 타입이었다. 광고회사에 근무하던 그 역시 일이 너무 바빠서 자기 방조차 정리할 여력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센다이 시에 거주하던 그는 오래된 집 안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물건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며 가족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흉기로 둔갑한 공포스러운 현장을 경험했다. 거의 다 무너져 내린 집에서 손전등과 비상식량 등의 피난도구를 빼내려 해도 물건이 너무 많아서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할 정도였다.

가족들과 집 밖으로 나온 순간에 또 물건들이 눈앞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본 그녀는 “이런 집에서는 두 번 다시 살고 싶지 않다”고 결심했다. 끔찍한 경험을 통해 그녀는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을 위해 최소한의 필요한 물건만을 엄선해서 집에 두기로 했다. 판단이 서지 않을 때는 일정기간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두고 정말 필요한가를 확인한 후에 버린다. “최종적으로는 트렁크 하나에 다 담을 수 있는 정도만 물건을 남기고 싶다”는 그녀는 하나를 사면 하나를 버리는 철칙을 지키는 것으로 적게 가진 자유로움을 지켜나가고 있다.

유루이 마이 씨가 미니멀리스트의 원조격이라면 최근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미니멀리스트는 단연 사사키 후미오 씨다. 현재 최소한의 물건으로 생활하는 쾌적함을 만끽하고 있는 그도 과거에는 ‘아까워’, ‘비쌌는데’, ‘다시 쓸 수 있을 텐데’, ‘언젠가는 사용하겠지’ 하는 마음이 강해서 좀처럼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하던 사사키 씨의 책상 위는 책더미와 원고, 서류들로 파묻혔고 필요한 자료를 찾으려면 수십 분을 낭비해야만 했다. 카메라와 CD, 책을 사 모으는 취미 덕에 그의 집 역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2013년, 인터넷을 통해 ‘미니멀리스트’라는 단어를 접한 그는 외국의 미니멀리스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1년에 걸쳐서 자신의 물건을 조금씩 처분하기 시작했다.

1년 만에 소유물의 95%를 처분한 그는 11년간이나 살던 집을 떠나 20㎡의 작은 원룸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삿짐을 싸는 데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사사키 씨가 ‘취조실’이라고 부르는 거실 겸 침실에는 무인양품에서 구입한 1인용 접이식 책상과 의자만 놓았다. 책상 위에는 노트북 한 대와 스마트폰 한 대뿐이다. 과거에 그의 책상 위를 어지럽혔던 원고, 서적, 자료들을 전부 디지털화해서 노트북에 저장해뒀다. 음악은 아이튠스를 통해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즐겨 듣던 CD도 남김없이 처분했다. 잠을 잘 때는 붙박이장에 접어둔 매트리스를 꺼내서 사용한다. 옷장 속에는 셔츠 3개, 바지 4개에 약간의 트레이닝복이 전부이다. 욕실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액체비누 하나로 대처한다.

사사키 씨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저서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통해 현대는 물건이 없어도 되는 시대라고 강조한다. 그는 스마트폰 한 대만 있으면 유선전화, 카메라, 시계, 달력, 메모장, 다이어리, 게임기, 오디오도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유물을 줄여나가다 보니 물건이 적으면 적을수록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걸 실감했다고 한다. 그는 “물건을 줄이는 것으로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과거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유물에 자신의 가치를 투영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낙심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정말 필요한 물건들로만 생활하면서 타인과 비교하는 일도, 물건에게 휘둘리는 일도 없어진 반면 시간과 집중력이 늘고 행동력도 높아졌다”고 말한다.

‘미니멀 라이프’ 다룬 책 출판계 휩쓸어


일본에서는 최근 2~3년 동안 미니멀리스트라는 말이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2015년 유행어 대상 후보에 올랐을 정도로 미니멀한 라이프스타일이 인기를 끌고 있다. 2016년 상반기 일본의 전자책 출판계를 결산한 ‘전자책 페어’에서 선정한 ‘도움이 된 생활/실용서 순위’에는 1위가 <일주일 만에 80%를 버리는 기술>(후데코 지음), 2위가 <무인양품으로 시작하는 미니멀리스트 생활>(야마구치 세이코 지음), 3위가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아이를 키워 보자>(유루이 마이 지음)로 미니멀리스트 관련 서적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미니멀리스트의 유행은 2009년에 출판된 베스트셀러 <단샤리>(야마시타 히데코 지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리정돈이 서툴렀던 주부 야마시타 히데코 씨는 대학 시절에 배운 요가의 수행법인 단행(斷行), 사행(捨行), 리행(離行)을 정리정돈에 도입해 “불필요한 물건이 들어오는 것을 끊고(斷), 공간을 차지하는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고(捨), 물건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離)” 단샤리(斷捨離) 정리술을 개발했다. 그녀는 단샤리란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해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함으로써 생활의 조화를 추구하는 ‘사상’이라 칭하며,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공간뿐 아니라 마음까지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쾌적한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후 단샤리는 물건뿐 아니라 업무, 인간관계, 인생전반에 이르기까지 널리 적용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단샤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샤리안’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선풍적인 인기 덕에 야마시타 씨는 ‘단샤리’에 대한 상표권을 등록하며 저작권 보호까지 나섰을 정도다.

2010년 12월에는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 씨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 출판되며 100만부를 넘기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손에 들어봐서 가슴이 두근거리는가 아닌가로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구분한다”는 정리법을 개발, 집안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면 그 사람의 생각과 삶의 방식, 인생까지가 긍정적으로 변화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책은 20개국에서 번역 출판되며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특히 미국에서는 2015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곤도 씨가 뽑힐 정도로 인기를 끌며 미국의 미니멀리스트들에게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단샤리와 인생이 빛나는 정리술, 그리고 최근에 유행하는 미니멀리스트까지, 소유물을 줄이는 것으로 인생을 변화시킨다는 라이프스타일이 일본인들에게 크게 어필되고 있는 배경에는 일본특유의 문화가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미니멀리스트 중에는 유루이 씨처럼 대지진을 경험하면서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바뀐 사람이 많다. 인기 연예인으로 활동 중인 문화평론가 피터 씨는 방송에서 “대지진 후에 물건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허무함, 죄악감을 느끼고 명품이나 보석을 처분하는 단샤리를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베스트셀러 <일주일에 80%을 버리는 기술>의 저자인 후데코 씨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단샤리에서 일거에 미니멀리스트로 탈바꿈했다고 털어놨다.

사지 않고 빌려서, 렌탈 서비스 인기


▎탁진현 씨의 옷장(오른쪽)과 방 내부. 탁씨는 여행가방에 들어갈 만큼 최소한의 물건만 갖고 생활한다고 한다. 일상에서도 여행자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고 싶어 방 한쪽에 여행가방을 세워둔다. / 사진제공·탁진현
페이스북 등의 SNS가 등장하면서 물건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도 삶의 방식을 주장하고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들이 생겨나는 한편, 세계의 모든 물건을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있을 만큼 물건이 넘치는 일본사회에서 일부러 물건을 ‘소유하지 않는’ 가치관이 유행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의 공산당기관지인 <런민일보>는 ‘단샤리 일본인의 생활철학’이라는 칼럼을 통해 수십 년 전의 일본인들에게는 지금의 중국과 마찬가지로 ‘소유=행복’이라는 문화가 유행했지만 여러 차례 경제위기에 직면하면서 이러한 문화에 대해 반성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소한 주의>의 저자인 누마하타 나오키 씨는 일본의 미니멀리즘은 서양에서 들어온 문화가 아니라 다도와 같은 일본 특유의 문화에서 엿보이는 선(禪)의 세계관에서 파생된 것으로 소유물을 줄이는 것으로 소비 사회의 규범에 도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산업계에서는 미니멀리스트를 위한 각종 렌탈 서비스가 새롭게 탄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가구와 가전, 이불은 물론 옷이나 액세서리까지 빌려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에어클로젯’은 매월 6800엔(약 7만4000원) 정도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스타일리스트가 자신의 기호에 맞추어서 골라준 옷 세 벌을 받아 사용하는 서비스다. 입다가 질리게 되면 언제든지 반송하고 다른 옷으로 빌릴 수 있다. 매달 6800엔으로 얼마든지 명품백을 렌탈해주는 ‘렉서스’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회의장소나 파티장소, 혼자서 쉴 수 있는 개인용 공간 등 스페이스를 빌려주는 렌탈 서비스업도 성업 중이다. 이 중 ‘스페이스 마켓’이라는 업체에서는 1시간 한도로 무인도와 야구장까지 빌릴 수 있다고 한다. 경영 컨설던트인 후지모토 쇼우 씨는 2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저성장시대의 일본사회에서 소비문화가 ‘소유’에서 ‘사용’으로 전환되어 있으며 물건을 소유하는 것을 ‘촌스러운’ 가치관으로 보는 시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그는 물건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늘어감에 따라 ‘렌탈’과 ‘공유’가 유망 직종으로 부상할 것이며 “아마존에서 팔리는 모든 물건이 식품을 제외하고 전부 렌탈이나 공유로 대체되는 시대가 도래한다”고 전망했다.

- 김경철 일본 고단샤 서울통신원(뉴스잡지 부문)

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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