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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유광종의 한자 時評(1) 進退] 욕망에 눈이 멀면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다 

 

유광종 출판사 ‘책밭’ 고문
동서고금(東西古今) 불문 진퇴에는 고도의 판단력과 용기 필요... 국민은 정유년 닭 울음소리에 진퇴유곡의 어둠 가시기를 소망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던 한 경찰관이 갑작스럽게 내리는 소나기에 교통안내 입간판 뒤로 몸을 피하고 있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진퇴(進退). 이 한자 낱말은 우리에게 매우 친근하다. 나아감과 물러섬을 가리키는 단어다. 자주 쓰는 말이기는 하지만 실제 인생의 중요한 길목에서 나아가거나 물러서는 때를 정확하게 잡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사업의 영역, 사람과의 교제, 일상의 많은 순간에서 우리는 나아가고 물러서는 때를 잘못 판단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단어를 이루는 앞 글자 進(진)의 원래 글자꼴은 사람이 움직이는 (행위), 그리고 (새)가 등장한다. 풀이는 다소 엇갈린다. 일본 학자의 풀이는 군대 등이 앞으로 나아감에 있어서 새의 깃털, 날갯짓 등을 보면서 방향을 잡는 행위라고 본다. 다른 풀이는 새가 뒤로 날 수 없다는 점을 따져 ‘앞으로만 나아감’의 뜻을 얻었다고 설명한다.

아무튼 풀이는 달라도 이 글자가 목표로 삼은 방향을 좇아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얻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을 가리키는 진보(進步), 움직여 나아감을 뜻하는 행진(行進), 밀고 나아가는 추진(推進), 나아가 펼쳐지는 진전(進展), 나아가 새 국면으로 향하는 진출(進出) 등 이어지는 단어가 무수하다 싶을 정도다.

뒤의 글자 退(퇴)는 걸어 움직이는 (행위)에 ‘어그러지다’ ‘엇갈리다’라는 새김의 (간)이 합쳐졌다. 초기 글자꼴을 두고 벌이는 풀이는 역시 다소간의 차이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 글자 또한 ‘어긋나게 움직이는 일’의 새김을 얻은 데 이어 ‘뒤로 물러서다’의 뜻으로 분명히 발전했다.

나아가고 물러서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동서(東西)와 고금(古今)을 가리지 않고 이 진퇴(進退)는 고도의 판단력을 필요로 했다. 삶의 크고 작은 일은 물론이고, 사느냐 죽느냐를 가리는 전쟁터에서 진퇴의 문제는 생사의 길목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진퇴와 같은 맥락의 단어는 그래서 매우 많다. ‘행동거지’라고 할 때의 거지(擧止)도 움직이거나 멈추는 행위다. 행지(行止)도 그와 같다. 움직임(行)과 멈춤(止)을 병렬한 구성이다. 그와는 다소 다르지만, 멈춤을 강조하는 단어도 꽤 많다. 지지(知止)라고 하는 경우다. 멈춰야 할 때를 알아 나아가지 않는 일이다. 족함을 알지 못해 정도 이상으로 나아가는 일을 경계할 때는 지족(知足)이라고 했다.

그렇듯 물러서는 일은 나아가는 행위보다 때로는 매우 많은 노심(勞心)에 초사(焦思)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어렵다. 제가 지닌 상당 부분의 권력과 재물, 기회 등을 저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 때문인지 물러나는 일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해서 ‘용퇴(勇退)’라는 낱말이 만들어졌다. 나름대로 유래가 있는 말이다.

중국 춘추시대 월(越)나라 구천(勾踐)을 도와 오(吳)를 꺾는 데 성공한 사람의 하나가 범려(BC 536~BC 448 추정)다. 그가 지닌 역사적 위상은 매우 높다. 중국 역사의 가장 대표적인 지략가(智略家)로 꼽히기 때문이다. 그는 월나라 왕 구천이 이웃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와 세력 다툼을 벌이다가 패해 지독한 궁지에 몰렸을 때 함께 고생했던 측근 대신이었다. 그러나 굵직한 책략 몇 가지를 만들어 결국 구천을 도와 오나라 부차를 꺾었다.(와신상담, 臥薪嘗膽) 월나라 부흥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공신 중의 공신이었다.

와신상담의 ‘기획자’ 범려의 용퇴

그런 그가 월나라 왕 구천과 함께 오나라를 제압했을 때 보인 행동이 이채롭다. 그는 숨어 지내는 길을 택했다. 오나라를 무찌르는 과정에서 가장 빼어난 공신이었음에도 그는 자리에서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자신이 사랑한 여인 서시(西施)와 함께 강호(江湖)로 숨어들어 이름을 바꾼 뒤 상인으로서 거대한 부를 쌓았다.

그는 구천의 사람됨을 믿지 못했다. 함께 어려운 시절을 겪을 수는 있으나 성공을 거둔 뒤에 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간파했다. 그래서 그는 달콤한 유혹을 모두 끊고 강호에 몸을 맡긴다. 그런 그의 행동을 두고 중국인들은 거센 물길에서 용감하게 물러난다는 뜻의 ‘급류용퇴(急流勇退 혹은 激流勇退)’라는 표현을 쓴다.

그냥 물러나면 물러나는 것인데 왜 하필이면 용기라는 의미의 ‘용(勇)’을 붙였을까. 그 용의 본질은 ‘과단(果斷)’에 있다. 이 과단이 무엇인가. 열매를 뜻하는 果(과)와 단호히 끊는다는 뜻의 斷(단)이 붙었다. 앞의 果(과)는 ‘열매’, ‘과실’의 새김에서 발전해 ‘단단하게 맺어진 상태’의 의미까지 얻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果斷(과단)’은 ‘과감하게 끊어 버리다’의 뜻이다.

거듭 말하지만 물러나는 일이 나아감보다 더 어렵다. 오욕칠정(五慾七情)의 감성체인 사람은 그로부터 다시 번지는 수많은 욕망에 눈과 마음이 쉽게 어두워진다. 따라서 그런 욕망을 끊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물러남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에서 굳이 ‘勇退(용퇴)’라고 적었을 테다.

나아가고 물러남은 모두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 ‘때’를 맞추지 못하면 실패한다. 몸은 몸대로 망가지고, 이름은 이름대로 무너진다. 이를 중국에서는 ‘身敗名裂(신패명렬)’이라고 적는다. 늑대가 웅크렸던 자리처럼 이름이 볼썽사납게 망가진다는 뜻에서 ‘聲名狼藉(성명낭자)’라고 표현키도 하며, 냄새 나는 이름이 멀리 퍼진다고 해서 ‘臭名遠揚(취명원양)’이라고도 적는다.

제 안의 욕망에 눈이 어두워지면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지경에 빠진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진퇴유곡(進退維谷)이라고 적는다. ‘앞으로 나아가도(進), 뒤로 물러서도(退) 깊은계곡(谷)이다(維)’라는 엮음이다. 같은 맥락의 성어로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이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2016년 11월 불거진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를 마주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가 그런 경우였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그로써 청와대가 성난 촛불 민심에 마구 떠밀리는 때다. 촛불시위가 광화문 광장을 기점으로 전국 전역에서 번지고 있다.

정유(丁酉)년 닭의 해가 곧 밝는다. 새해의 아침에 우리는 나아감과 물러섬의 긴장감을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크게는 사느냐 죽느냐의 길목, 작게는 삶 속 대소사의 성패(成敗)를 가르는 요소가 바로 나아감과 물러섬의 정확한 가늠과 가름에 달려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새벽을 알리는 정유년 닭 울음소리에 우리 대한민국이 이미 들어선 진퇴유곡의 어둠이 어서 가셨으면 싶다.

유광종 - 중어중문학(학사), 중국 고대문자학(석사 홍콩)을 공부했다. 중앙일보에서 대만 타이베이 특파원, 베이징 특파원, 외교안보 선임기자, 논설위원을 지냈다. 현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저서로 <유광종의 지하철 한자 여행 1, 2호선>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 1, 2권> 등이 있다.

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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