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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큰 사람 되고 싶거든 큰물에서 놀아라”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먹잇감 풍부한 바다로 나가 몸집을 불려 회귀하는 연어

▎연어는 자기장지도와 후각기억에 의존해 회귀한다. / 사진·중앙포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강원도 양양 남대천에서 연어잡이가 한창이다. 그런데 연어 회귀율이 해마다 조금씩 떨어져 드디어 1000마리를 내보내면 고작 두 마리만 돌아오는 셈인 0.2%까지 떨어졌단다. 강의 오염이 심해지고, 지구온난화도 그 원인일 것으로 본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린 연어가 바다에서 성장하는 동안 호시탐탐 넘보는 바다표범·물개나 대구·상어 같은 대형어류와 물새·가마우지·갈매기들에게 몽땅 잡아먹힌 탓이다.

매년 그러하듯이 사로잡은 암·수 연어의 알과 정자를 인공수정시킨 뒤, 대여섯 달 새 5~6㎝대로 자란 어린 연어 1000만 마리 정도를 이듬해 봄에 남대천에다 놓아 보낸다. 방류된 새끼연어는 베링해나 알래스카만 등 북태평양까지 2만여㎞의 고달픈 긴 여정을 억척스럽게 보낸 뒤, 거기에서 2~4년 동안 자란 어미연어는 여러 달을 마구 헤엄쳐 기어코 자기 안태본(安胎本·본래 태어난 고향)인 남대천으로 되돌아온다.

연어(鰱魚, salmon)는 송어(松魚), 산천어(山川魚)와 함께 연어과에 속하고, 민물에서 태어난 뒤 바다로 나가 거기에서 일생의 거의 전부를 보내고, 다시 민물로 돌아와 산란하는 소하성어류(溯河性魚類)이다. 연어는 태평양연어(Pacific salmon)와 대서양연어(Atlantic salmon)가 있고, 우리나라연어(Oncorhynchus keta )는 태평양연어로‘chum salmon’ 또는 ‘keta salmon’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우리나라·일본·러시아·알래스카·캐나다 등지의 북태평양에 분포한다.

Chum salmon은 몸길이 70~80㎝, 체중 4.4~10㎏ 정도로 등(背)은 담청색, 배(腹)는 은백색이고, 머리가 원뿔꼴이며, 주둥이가 툭 튀어나왔고, 이빨은 날카롭다. 다른 연어과 어류들처럼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 사이에 지방덩어리인 기름지느러미(adipose fin)가 있다. 연어는 강에서 산란하고, 치어(smolt)는 얼마 동안 강에서 머물다 바다로 내려간다. 먹을거리가 풍부한 바다로 나가기에 큰 덩치로 자라지만 먹잇감이 적은 강에 있었다면 그렇게 크게 자라지 못한다. 바다로 가지 않은, 강에 갇힌 육봉(陸封)송어인 산천어가 몸집이 작은 까닭도 먹이 때문이다. 연어가 바다로 가는 뜻을 알겠다. 그래서 “큰 사람이 되고 싶거든 큰물에 놀아라”라고 하는 것!

연어 맛은 산란 직전 바다에서 잡은 것이 윗길

연어는 얼마쯤 자라면 몸속의 생물시계(biological clock)가 모천회귀(母川回歸, homing migration) 본능을 작동시킨다. 그 먼 곳을 갔던 물고기가 어떻게 다시 제가 태어난 곳을 찾는지? 여러 가설(假說) 가운데 가장 믿음이 가는 것은 철새들처럼 먼바다에서는 뇌 속에 저장된 자기장지도(磁氣場地圖)를 쓰다가 강 근처에 와서는 강물 냄새를 기억하는 후각세포의 후각기억(嗅覺記憶)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 또한 기특하고 불가사의하다.

연어는 통상 방류한 뒤 3~4년이면 모천을 회귀한다. 9~11월 바야흐로 산란기가 되어서 눈알을 부라리고 기세 좋게 시끌벅적, 옆옆이 미어터지게 줄지어 오른다. 암·수컷들은 모두 몸에 진한 붉은빛의 아롱진 홍색 무늬가 생기니 혼인색(婚姻色)인데, 이때면 이미 먹이를 더 이상 먹지 않는다. 혼인색이란 어류·양서류·파충류 등이 번식기가 되면 나타나는 독특한 빛깔로 거의가 수컷에 생긴다.

강 중·상류의 모래자갈이 깔려 있는 곳에 다다라서 산란을 시작한다. 암컷이 줄곧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 접시모양의 지름 1m, 깊이 30㎝ 남짓의 옴팍한 웅덩이(산란장, 産卵場)를 허겁지겁 재게 파는 동안 수컷은 주변에서 암컷을 보호한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벼락같이 정자를 뿌려 수정시킨다. 암컷은 이렇게 두세 번에 걸쳐 6000개의 알을 낳고, 알 낳기를 마친 암컷은 꼬리를 대차게 살랑살랑 흔들어 모래자갈로 알을 잘 덮어준다. 산란(産卵)·방정(放精, 정자 뿌림)을 끝낸 어미, 아비는 끝내 너덜너덜해지면서 시나브로 일생을 마감한다. 이렇게 미련 없이 사라지는 게 자연의 법칙일텐데…. 필자도 마찬가지지만 어찌하여 인간늙다리들은 구질구질하게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되는지….

수정란은 3~4개월 만에 부화한 어린 연어는 겨울 강에 퍽도 먹을 게 없는지라 난황낭(卵黃囊)의 양분으로 버티면서 숨어 지내다가 이듬해 봄이 오면 마침내 바다로 내려간다. 새끼연어가 강에 사는 동안에는 파마크(parr mark)라 불리는 타원형의 위장(僞裝)무늬를 가지지만 민물을 떠나 바다에 들 무렵이면 무늬가 없어지고 몸은 은백색으로 변한다. 북태평양에 도착한 연어는 물 반 먹이 반인 그곳에서 새우 등의 갑각류나 오징어, 잔 물고기들을 먹고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란다.

연어 맛은 산란 직전 바다에서 잡은 것이 윗길이고, 강 상류에서 잡힌 것은 진이 다 빠진 탓에 맛대가리가 없다. 그리고 자연산 연어가 양식 연어에 비해 지방산 등이 훨씬 많이 들었다. 연어에는 영양소가 풍부하지만 무엇보다 불포화지방산(오메가-3 지방산, omega-3 fatty acid)인 EPA(eicosapentaenoic acid)와 DHA(docosa hexaenoic acid)가 많다. 연어는 회·초밥·구이·통조림·훈제·피자·파스타 등으로 쓰고, 연어알도 일품이다.

그런데 본래 자연산 연어의 주 먹이가 새우 등의 갑각류(甲殼類)라 그들의 붉은 색소가 연어 살에 배여 살이 연분홍인데다 알도 붉다. 그러나 깊은 바닷속 가두리에서 키운 양식 연어의 먹잇감은 대구 등 흰살 생선이기에 연어 살색이 회색빛이다. 그래서 연분홍 빛깔 나는 연어 살을 만들기 위해 카로티노이드계 색소인 아스타잔틴(astaxanthin)을 섞은 사료를 먹인다.

그리고 노르웨이·칠레·영국 등이 대표적인 연어 양식 국가이고, 우리도 한류가 흐르는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서 양식한 국산연어가 11월 중에 우리 식탁에 오를 것이라 한다. 오래 살고 볼일이다.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 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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