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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 ‘돌싱’ 변호사의 재혼 컨설팅 

새 동반자를 꿈꾸는가? 전혼의 그림자를 벗어라! 

정은세(가명) 변호사 ycnexa2me@gmail.com
한 번의 이혼을 통해 ‘사랑은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음에도 반려자를 다시 찾는 이들이 늘어간다. 가장 안전하고 실용적인 ‘제 2의 결혼법’은 무엇일까

100세 시대가 멀지 않았다. 한 평생을 살면서 만나는 배우자 수가 머잖아 두세 명은 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사람도 있다. 최근 이혼율과 재혼율이 급격히 늘고 있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한번 실패한 결혼, 또다시 실패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이혼전문 변호사가 직접 목격한 재혼의 성패 원인과 해결책을 공개한다.


▎이혼한 남녀 치고 한번쯤 재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주변에는 이혼도 늘고 있지만 실제로 재혼을 꿈꾸는 이들도 늘어간다. / 사 진·중앙포토
이혼하고 나서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는 남자에게 지인들은 재혼을 권한다. “그렇게 부실하게 먹다가는 너 일찍 죽는다.” 아내가 생긴다는 건 영양소를 고루 갖춘 집밥을 보장받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혼하고 아등바등하며 사는 여자에게도 지인들은 재혼을 권한다. “한번쯤은 남자와 행복하게 살아봐야 하지 않겠느냐.” 남편이 생긴다는 건 진정한 사랑을 얻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혼한 남녀 치고 한번쯤 재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연애는 상대방과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없기 때문에 심적으로 부담 없지만 어쩐지 허전하다. 언제든지 헤어지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다시 결혼하자니 머리 복잡해질 일이 많을 것 같아 주저주저하게 된다.

이혼변호사로서 주변을 살펴보면, 그래도 재혼을 꿈꾸는 이가 많다. 어쩌면 그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난해 40대 후반에 재혼에 골인한 한 여자 선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순간 변호사의 ‘촉’으로 싸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그녀는 이혼을 문의해왔다. 또다시 이혼을 결정하게 된 그 속사정이 궁금해졌다.

그 선배는 내가 이혼녀로서 갖게 된 어려움을 털어놓았던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재혼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내 가슴은 마치 실연이라도 당한 듯 툭 내려앉았다. 그녀가 열애 중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재혼 소식은 그 느낌이 달랐다.

평소 돈 불리는 재미와 자녀 양육밖에 모르던 그녀였기 때문에 이혼 후 열애에 빠졌다는 얘기도 신기했다. 이혼 직후 시작한 자영업이 잘된데다 이재에 밝아서 동년배에 비해 재산이 꽤 있는 편이었다. 돈도 있는데다 새로 남자도 생겼으니 인생을 즐길 일만 남은 것 같았는데 다시 재혼이라니! 게다가 첫 결혼이 남편의 외도로 파탄이 난 지 20년이나 지나서 이뤄진 재혼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녀가 재혼을 후회하는 이유


▎영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의 한 장면. 주인공인 30대 ‘골드미스’들은 어설픈 결혼으로 이혼에 이르기보다는 화려한 싱글의 삶을 택한다. / 사진·중앙포토
재혼한 상대는 외모와 재력을 모두 갖춘 남자였다. 60대 초반이지만 관리를 잘해서 외모가 50대로 보일 정도였다. 직접 운영하는 사업체도 시작한 지 오래돼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추었다. 한마디로 외모도 되고 모은 자산도 적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녀의 전 남편도 알고 있었는데 재혼남이 그보다 훨씬 더 나아 보였다. 그래서일까? 재혼 직후 그녀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신이 나서 남편 자랑을 하기도 하고 혼자 사는 내 염장을 지르려고 작정했는지 복에 겨운 투정까지 부려가며 재미있게 살았다.

재혼을 통해 그녀는 20년 만에 아내 역할에 임하게 됐지만 첫 번째 결혼 생활 때처럼 주방에 얽매여 살지 않았다. 남편도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업이어서 집밥은 점심 시간이 다 되어 차려내는 가벼운 브런치가 전부였고, 저녁식사는 집 근처의 푸드코트에서 사먹는 식으로 지냈다. 아니면 와인에 곁들이는 안주를 저녁삼아 로맨틱하게 한 끼를 때우기도 하는 환상적인 나날이 이어졌다.

양쪽 자녀가 합해서 네 명이었지만 모두 성년이었기 때문에 자녀 양육의 부담도 없었다. 재혼이다 보니 양가 식구가 까다롭게 굴지도 않아서 둘만의 생활이 전부인 최상의 결혼이었다.

그런 생활을 2년 정도 영유하던 그녀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지난해부터 그녀가 갑자기 내게 상속 문제를 물어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재산이 꽤 되고 각각 전혼에서 낳은 자녀들이 있어 재산문제가 ‘화약고’가 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변호사인 나조차 몰랐다.

그녀는 자신이 사망했다고 가정했을 때 만천하에 드러날 수밖에 없는 재산인 부동산과 주식을 처분해서 세금을 덜 내고 온전히 자녀 둘에게만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에 대해 물었다. 이어 미리 유류분을 감안한 유언장 작성 등 묘안을 짜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지레짐작으로 ‘남편이 빛 좋은 개살구였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상속을 둘러싼 개인적인 사연이 있었다. 재혼 후 2년 정도가 지났을 때 그녀는 남편이 자신과 재혼하기 직전에 전혼 자녀에게 많은 재산을 넘겨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버지로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되면서도 남편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것 같아 서운했다고 한다. 돈 욕심 때문이 아니라 남편과 자신 사이에 결코 무너지지 않을 어떤 벽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전문가 입장에서 봤을 때 그녀의 남편이 재혼 직전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한 이유는 아마도 재혼 후 상속을 대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민법에서는 배우자가 있는 경우 배우자와 자녀가 공동상속인이 되는데 상속분에서 배우자의 몫이 자녀 몫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자산이 많은 재혼남의 경우 그만한 자산을 이룰 때 재혼 상대방이 기여한 게 별로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훗날 새로운 배우자가 제 혈육보다 상속을 더 받게 될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한 심리적 반감이 있을 수 있다. 더군다나 자신의 이혼으로 아이들에게 마음고생을 시켰다는 심적 부채감도 있어 ‘재산이라도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남편은 그녀가 생활비를 요구할 때마다 군소리 없이 주기는 했지만 통장을 맡긴다거나 한 달 치 생활비를 한 번에 준 적은 없었다. 그녀도 이혼 후 줄곧 자신이 번 돈으로 생활비를 쓰고 재테크도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는 게 영 어색하고 자존심도 상해서 일상적인 생활비는 그녀 돈으로 썼었다.

재혼한 아내에게 남편이 통장을 맡기느냐의 여부는 부부간의 신뢰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요즘 일부 젊은 부부는 생활비를 반반씩 부담하고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관리하는 방식으로 살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관습적으로 남편이 아내에게 돈을 맡기는 걸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계모(계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라!


▎유모차를 끌고 가는 한 아버지의 모습. 40~50대 세대의 경우 혈육에 대한 개념이 고루한 경우가 많다. 전혼에서 얻은 자녀와의 관계를 재혼한 배우자와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얘기다. / 사진·중앙포토
특히 그녀의 남편은 60대다. 그 연령대면 아내에게 최소한 생활비라도 맡기고 알아서 살림하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재혼 직전 자신의 자녀에게 재산을 미리 정리해주고 새로 맞은 아내에게 생활비를 일일이 타서 쓰게 하는 그에게 재혼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었다. 그녀를 그저 ‘몇 년간 살다 헤어질 수도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생활비 문제 이외에도 이런저런 소소한 일을 겪으며 그녀는 ‘이런 게 재혼인가’ 하고 실망했고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도 고백할 게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남편 쪽 자녀의 성공을 겉으로만 칭찬했을 때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그녀의 아들이 군대에서 문제를 일으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때 남편이 위로라고 건네는 말이 외려 부화를 돋궜다고 했다. 남편의 자녀는 명문 대학을 졸업했고 취직도 잘해서 제 몫을 하고 있는데 반해 그녀의 자녀는 대학도 한참 떨어지는데다 군대에서 말썽까지 피우니 속이 상할 일이었다.

각자 자녀가 있어서 그런지 초혼 때의 부부생활과는 사뭇 다른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상대방의 자녀를 두고 느끼는 질투심 때문에 죄책감을 많이 느끼곤 했다. 그러나 초혼인 부부도 서로 경쟁심을 느끼고 평소 콤플렉스라고 느끼는 부분을 건들면 발끈하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이혼녀에게 혼자 키워 낸 자식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자녀를 두고 경쟁심을 느끼는 것이 아닌데도 그녀는 자신이 유별난 탓에 ‘내가 계모라서 그런가’ 하는 죄의식까지 갖게 된 것 같다.

고민 끝에 그녀는 재혼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왕 재혼한 거 남편과 똑같이 자신의 재산을 미리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생활비 한 달치를 한 번에 달라고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지금도 나를 만나면 재혼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혼자 살라고 권한다. 평소 좋아하던 모임에도 뜸하게 나오는 그녀를 보면서 어쩌면 말하지 못하는 더 깊은 사연이 있으리란 생각도 들지만 묻지 않았다. 생활비 한 달치를 한번에 받고 살고 있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그녀는 두 번째 이혼을 결행할 만큼 도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재혼 시장에서 나는 겉보기에는 조건 좋은 이혼녀다. 나이가 젊다고 할 수 있는 40대 여성인데다 딸 하나를 키우고 있어 남자 입장에서는 부담을 덜 느낀다고 한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주는 부유한 느낌도 크게 한 몫 한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재혼을 권유하는 경우가 시간이 지날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황혼 로맨스는 꿈꾸어도 재혼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유는 명료하다. 서로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의 재혼은 결코 초혼과 같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부와 계모라는 고정관념을 지워버리기가 쉽지 않다.

현실에서 생물학적인 부모보다 더 좋은 계부와 계모도 있고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 아이도 진심으로 대하는 멋진 남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낙관적인 입장에서 재혼을 감행할 용기가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정 상대방의 자녀에게 충실할 수 있을지도 자신 없다.

더 비관적인 생각까지 해보자면 애 아빠가 딸의 등을 두들기거나 반갑다며 왈칵 안으면 기분 좋게 쳐다볼 수 있지만 재혼한 남편이 내 딸에게 같은 행동을 했을 때는 마냥 흐뭇하게만 바라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세간에 보도되는 사건보다 훨씬 많이 인척 간에 성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접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일 게 뻔하다.

이혼한 지 어느덧 15년이 되어간다. 여전히 생계의 부담을 지고 있고 사춘기에 접어든 딸로 인해 울 때도 있다. 만일 재혼까지 한 상황이라면 이런 부담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갈등으로 번졌을 거라 생각한다. 게다가 내 나이에 맞게 재혼 상대를 고른다면 40~50대 남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40~50대 세대의 경우 혈육에 대한 개념이 고루한 경우가 많다. 전혼에서 얻은 자녀와의 관계를 재혼한 배우자와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얘기다.

때로는 계모(또는 계부)에게 빠져 친자식을 학대하는 친부모의 사건도 보도되지만 대다수 부모는 자녀가 재혼한 배우자보다 먼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혼을 상담하러 온 대부분이 꼭 하는 말은 ‘재혼 생활 내내 소외감을 느꼈다’는 토로다.

‘그들 사이에 내가 군식구로 낀 것 같다’는 느낌, ‘살림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지 아내가 필요했던 게 아닌 것 같다’는 느낌, ‘남편의 딸이 부부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 같다’는 느낌 등 드라마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면을 실제로 얘기한다. 정신과 의사도 아닌 이혼 변호사인 내게 말이다.

열 효자보다 악처 한 명이 낫다?


▎국내 이혼상담 10건 중 약 2건은 재혼 부부다. 이들의 이혼 사유는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로 인한 갈등이고, 재혼 기간도 짧은 경우가 많다. / 사진·중앙포토
앞서 소개한 사례처럼 남편이 자신을 믿고 돈을 맡기지 않는다는 불만도 이혼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남편이 아내에게 돈을 안 맡기는 상황에 대해 대다수 한국 여성은 ‘남편이 아내를 못 믿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때문에 재혼한 남편이 그렇다면 아내 입장에서는 ‘나는 그저 밥해주고 청소해주는 존재일 뿐’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이런 한국 특유의 민감한 돈 문제에 전혼의 자녀까지 얽히게 되면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재혼을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다. ‘열 효자보다 악처 한 명이 낫다’는 옛말이 사실일까 봐 두려울 때도 있다. 이런 노파심에 대해 골드미스인 한 후배는 “조만간 100세 시대가 올 거다”라며 격려한다.

앞으로 결혼·출산을 거부하는 남녀가 많아지는 풍조가 더 심해질 거란 얘기다. 결국 훗날 우리가 노인이 됐을 경우 이성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게 될 것이다. 결혼하지 않은 싱글이 많아질 테니까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사회도 현재 서구처럼 다양한 결혼 형태를 갖출 거라고 생각한다. 경제 환경은 더 나빠지고 사회 분위기는 더 개인적으로 변하면서 동거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그만큼 이혼율도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게 분명하다.

이렇듯 관계의 형태가 다양화되면 옵션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한 평생 만나는 배우자의 수가 최소 두세 명은 될 것이다. 결국 지금과 같은 재혼가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얘깃거리도 못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재 재혼 부부는 초혼과는 다른 이유로 갈등을 겪고 있다.

경험상 10건 중 2건은 반드시 재혼 부부의 이혼 상담이다. 이혼 사유는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로 인한 갈등이고, 재혼 기간도 짧은 경우가 많다. 상담사례에 비춰보면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질 경우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데 그 증폭되는 정도가 재혼이 초혼보다 더 컸다. 특히 여자에게 돈으로 인한 갈등의 모습이 더 많이 드러났다. 아마도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 재혼을 결정하는 여자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재혼 생활이 짧은 경우가 더 많은 이유는 초혼 때 이미 이혼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 번의 이혼은 남녀 불문하고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잘못된 재혼이라면 빨리 갈라서는 게 서로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만 재혼 부부는 이혼할 때 합의가 힘든 경우가 많다. 바로 서로 자녀가 있는 상황에서 재혼 후 자녀를 낳은 경우가 그렇다. 어느 한 쪽이 초혼이거나 한 쪽만 자녀가 있는 상황에서 재혼해 자녀를 낳은 경우는 그나마 갈등이 덜하다.

재혼 후 낳은 자녀의 양육권을 부부 모두가 원할 때는 ‘혹시 상대방이 전혼에서 낳은 자녀에게 재혼 후 낳은 아이가 치이지는 않을까? 아니면 성폭력에 노출되지는 않을까’ 하며 이런저런 걱정으로 합의가 쉽지 않다. 한번은 2년 동안 법정다툼을 벌여서야 겨우 합의된 사건도 있었다.

당시 양측 자녀 모두에게 최선인 결과를 얻기 위해 재판부가 양육 환경조사를 지시하고 법정에서 야단치기도 하는 등 어떻게든 판결이 아닌 합의로 끝내려고 애쓰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변호사로서 당사자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인간적으로 두 사람 모두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어 짜증이 많이 났던 사건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재혼을 결심하고 실제 재혼했다면 현재에 ‘올인’해서 살아야 한다. 전혼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면 재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재혼 상대방의 조건을 자기 편한 대로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그 조건을 감내할 수 있을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예컨대 전혼에서 얻은 자녀의 양육비를 부담하고 자녀를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면 재혼 부부 모두 그 조건을 감내할 자세가 돼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재혼 후 양육비 지급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벌이가 좋은 사람은 전 배우자에게 월 150만원 상당의 양육비를 준다고 해도 재혼 생활에 부담이 없다. 그러나 300만 원대 월급을 받는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전 배우자에게 양육비로 월 80만원~100만원을 지급하고 나면 생활이 쉽지 않다.

아내의 유학비를 챙겨주는 재혼남편


▎2005년 찰스 영국 왕세자가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 두 번째 결혼이다. 중·장년층의 재혼은 자녀 양육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결혼이 이뤄지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더구나 이혼하면서 재산이 반으로 줄고 새로 집을 월세로 얻었다면 이것저것 나가는 비용이 많아 현실적으로 재혼이 쉽지 않다. 거기에 재혼 상대방과 돈으로 인한 갈등까지 생기면 양육비 지급을 끊어버리고 애들도 만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비겁한 변명’이다. 이혼으로 부모만 힘든 게 아니라 자녀도 힘들다. 그리고 아이는 부모의 이혼에 원인 제공을 한 게 없다. 등 터진 새우 꼴인 아이에게 ‘너보다는 내 자신의 생활이 먼저’라서 양육비를 못 주겠다고 하는 건 최소한의 부모 노릇도 거부하는 뻔뻔한 태도다.

양육비를 뺀 벌이로는 재혼이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최소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재혼하지 말아야 한다. 꼭 같이 살고 싶은 상대가 생겼다면 양육비를 끊을 게 아니라 ‘투 잡’을 뛰어야 한다.

한번은 의뢰인인 한 남성이 월 500만 원대 월급에서 양육비로 월 300만원을 지급하도록 하고 이혼을 마무리한 적이 있다. 그 의뢰인은 아내에게 너무 지친 나머지 아내가 원하는 조건을 모두 받아들이고 하루라도 빨리 이혼하고 싶어 했다. 조건이 너무 파격적이라 나조차 옆에서 말렸지만 태도가 워낙 강경했다.

그는 이혼 후 두 번 재혼을 했다. 그러나 결국 몇 달 안 가서 모두 이혼으로 끝났다. 전혼의 자녀에게 지급하는 양육비가 문제였다. 생활비의 대부분이 전혼의 자녀에게 빠져나가자 재혼한 아내가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탓이다. 양육비가 너무 적거나 많아서 부담이 될 경우 금액을 다시 정해달라는 ‘양육비심판청구’를 법원에 할 수 있다. 그에게 양육비감액심판청구를 권해봤지만 거절했다.

“양육비 지급기간이 10년 남았는데 그때만 기다린다”고 농담조로 말하는 그를 보면서 300만원 양육비 조건을 더 강하게 말렸어야 했다는 후회도 하지만 그가 분명 멋진 아빠라는 건 거부하기 어려운 사실인 듯 싶다.

지인 중에 전혼에서 낳은 사춘기 아들을 데리고 재혼한 여성이 있다. 뜨겁게 연애해서 한 재혼이었지만 재혼 남편에게 얕보이기도 싫고 괜히 아들 눈칫밥 먹이게 될까 봐 전남편이 양육비를 준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현재 그녀는 친정의 도움으로 아들의 교육비를 감당하고 있다.

반대로 전혼에서 낳은 딸의 유학비를 재혼 남편에게 당당히 요구한 경우도 봤다. 부잣집 딸인 그녀의 첫 결혼은 집안 간의 정략적인 면이 강해서 부모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나중에 속칭 ‘사기결혼’ 수준의 유책사유가 남편 쪽에 있음을 알게 된 친정에서 이혼을 시켰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신의 오판으로 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기 때문에 이혼 후 생활을 친정에서 도맡아 챙겼다. 이후 그녀는 40대 초반에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재혼했다. 당시 외국에서 유학 중이었던 그녀를 위해 재혼 남편은 학비를 부담키로 했다.

그녀는 가까운 사람끼리 모인 자리에서 “남편이 이번 학기에는 돈을 좀 늦게 주더라”면서 짜증을 내비쳤다. 한 지인이 “유학비를 챙겨주는 남편은 드물다. 참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라고 칭찬하자 그녀는 반기를 들었다.

“결혼했는데 당연히 생활비는 남편이 부담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가 내 딸과 남편 딸 구분해서 밥상 차리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학비라고 뭐가 다르겠어요?”

그 자리에서 이 말을 듣던 사람들은 ‘그래도 대놓고 유학비 달라는 말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말이 신선하면서도 백 번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혼과 재혼 구분 없이 남편은 다 같은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태도가 믿음직해 보였다. 적어도 그녀의 아이들은 편히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여러 가지 갈등 소지를 안고 있는 게 재혼이지만 그래도 재혼만이 가진 축복도 있다. 무엇보다도 결혼 생활이 어떤 건지 연습돼 있는 상황에서 이뤄진 결혼이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특히 중·장년층의 재혼은 자녀 양육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결혼이 이뤄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다.

넉넉한 재정 형편에서 부부의 취미가 같다면 최상의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어쨌거나 20년 넘게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부부 대부분이 각 방을 쓰는 걸 당연하다 여기고 있을 때 뜨거운 연애를 한다는 건 분명 행운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 주인공 은수는 이혼녀다.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재혼은 할 수 없다며 이별을 고한다. 전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새 출발도 할 수 있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 사진·중앙포토
최근 ‘치와와커플’이라는 애칭까지 붙은 개그맨 김국진과 가수 강수지의 열애 소식에 달린 댓글 중 인상 깊은 게 있었다.

“중년의 연애라고 하면 등산복을 입은 남녀가 술에 취해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는 것만 연상됐었는데 치와와 커플을 보면서 중년의 연애도 풋풋하고 사랑스럽다는 걸 알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치와와 커플의 사랑을 예쁘게 보는 시선이 많다는 건 두 사람에 대한 호감도와 상관없이 재혼에 대한 사회인식도 많이 바뀌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혼 경험이 있다고 해서 이성을 보는 눈이 발전하는 건 아니다. 이혼으로 다친 자존심을 회복하겠다고 조건이 좋은 상대를 고르는 데 집중하다 정작 사람의 됨됨이를 놓치는 실수를 종종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혼한 아내를 의식해서 아내보다 나이가 어린 여자만 찾는 경우도 있다.

전혼의 배우자와 똑같은 유형의 사람과 재혼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전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이혼했으면서 또다시 끼가 철철 넘치는 남자를 데려와 ‘나한테 너무 다정다감하게 잘하는 남자’라고 소개한다. 전 부인의 강한 성격과 일 욕심 때문에 계속 부딪혔으면서 누가 봐도 자존심 강하고 자신이 먼저인 여자를 ‘멋있는 여자’라고 소개하는 식이다.

때문에 재혼을 생각한다면 전혼이 왜 이혼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문제점들을 찬찬히 숙고하는 시간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온전히 상대방 잘못으로 이혼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상대방을 선택한 자신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찾아야 한다.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 전 배우자가 이미 재혼해서 큰 문제없이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이 왜 나와는 갈등이 많았는지, 그 갈등을 왜 극복하지 못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문제점을 찾았다면 이를 반복하지 않도록 자신의 성격 등 잘못된 점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도 전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재혼을 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전 배우자를 의식하고 있고 전혼의 자녀에게 죄책감을 안고 있다면 재혼하지 않는 게 낫다.

전 배우자가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경우 재혼 후에 좋은 음식만 봐도 전혼 자녀가 생각나고 내가 이렇게 웃어도 되나 하고 힘들어 하는 경우가 있다. 이왕 한 재혼인데 부모이기도 하지만 여자(남자)로서의 인생도 필요함을 인정하고,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좋은 상대를 만났다면 아이에게 이해를 구하고 현재 생활에 충실해야 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주인공 은수는 이혼한 여성이다. 은수는 방송일로 만나게 된 상우에게 유명한 대사 “라면 먹고 갈래요?”라고 유혹하면서 그들의 연애가 시작된다. 사랑이 변한다고 믿는 은수의 마음이 시들어가면서 둘의 사랑도 끝난다. 상우는 이별을 받아들이면서 은수에게 묻는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이혼한 사람은 ‘사랑이 변한다’는 걸 뼈저리게 알고 있다. 하지만 또다시 사랑을 꿈꾸고 재혼을 꿈꾸는 것은 새로운 사랑은 변하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랑은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욱 빛나는 법이다. 그리고 경험을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경험은 가치가 있게 된다.

당신은 재혼을 꿈꾸는가? 먼저 나에게 삐뚤어진 계모(계부) 근성은 없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이혼 후 겪은 여러 풍상으로 인해 내 품이 더 넓어졌다면,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 형태가 얼마나 소중한 건지 잘 알기에 초혼에서보다 더 큰 희생과 인내를 감내할 자신이 있다면, 그대의 새로운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 정은세(가명) 변호사 ycnexa2me@gmail.com

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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