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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인터뷰] LPGA 신인상·최소타상 휩쓴 ‘메이저 퀸’ 전인지 

“저한테는 아직 피울 꽃이 더 있는걸요” 

정영재 스포츠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사진 김상선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
우승컵 들어올린 13개 대회 중 7개가 메이저, 2016년 상금만 20억원 이상 획득 “테니스·스쿼시 등 운동으로 스트레스 해소… 결혼은 서른 살 넘어서 할래요”

▎전인지가 8월 17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 골프코스에서 열린 여자골프 1라운드에서 1번홀 티샷을 하고 있다. / 사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16년 병신년(丙申年)은 어감부터가 썩 좋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국민은 지난 한 해 동안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참 많이도 겪었다.

여자프로골프 ‘메이저 퀸’ 전인지(23·하이트진로)도 그랬다. 그는 2016년 3월 ‘러기지 게이트(Luggage Gate)’를 겪었다. 싱가포르 공항에서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가다 위에서 굴러 내려온 짐(가방)에 맞아 엉덩방아를 찧었다. 꼬리뼈를 다쳤고, 척추 5·6번 사이에 충격을 받았다. 짐의 주인이 ‘라이벌’ 장하나(25·BC카드)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증폭됐다. 일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가 이어졌고, 화해는 했지만 전인지·장하나 측 모두 상처를 입었다.

전인지는 지난 시즌 내내 이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리우올림픽 출전권을 땄지만 공동 13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전인지는 놀라운 ‘회복 탄력성’을 보여줬다. 9월에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컵을 안았다. 이 대회에서 전인지가 기록한 21언더파 263타는 역대 메이저 남녀 통산 최소타 기록이었다.

지난 11월 21일 LPGA 마지막 대회(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도 마지막 날 리디아 고(뉴질랜드·세계랭킹 1위)와 피 말리는 접전 끝에 베어트로피(LPGA 최저타수상)를 따내기도 했다. 결국 전인지는 LPGA 신인상에 올랐다.

LPGA 루키 시즌을 마치고 귀국해 5주간의 꿀맛 같은 휴식을 보내고 있던 전인지를 <월간중앙>이 단독으로 만났다. 인터뷰는 그의 스윙코치이자 멘털 트레이너인 박원 JTBC 해설위원이 운영하는 박원골프아카데미(경기도 분당 남서울컨트리클럽 제2연습장 내)에서 이뤄졌다.

‘넣고 싶다’는 마음을 ‘어떻게 넣을까’로 바꿔


▎LPGA 루키 시즌을 마치고 귀국해 꿀맛 같은 휴식시간을 보내고 있는 전인지가 <월간중앙>과 만났다. 인터뷰를 마친 전인지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골프채도 미국에 놓고 왔다던데 정말 꿀맛 같은 휴식이겠네요?

“아니요. 학교(고려대 국제스포츠학부)를 이번에 마치려고 7과목을 신청했거든요. 기말고사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그리고 크리스마스까지 5주간 골프 클럽을 잡지 않는 건 허리 부상 완치를 위해 의사 선생님이 명령하신 거예요.”(웃음)

초등학교 때 공부를 썩 잘했고 수학영재 출신이라면서요? 혹시 수학이 골프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수학을 잘했다고 말씀드리긴 부끄럽고, 수학을 좋아했어요. 열심히 했고 재미를 느꼈는데 운동 시작하면서 공부랑 멀어지게 됐죠. 골프와 수학은, 정반대 같잖아요? 운동은 몸으로 해야 하고, 머리로는 정리가 된 거 같아도 몸이 반응해서 나오는 동작이 전혀 다를 수도 있고요.”

퍼팅 라인을 읽는데 수학이 도움이 된다는 사람도 있던데요.

“그린 읽을 때 슬로프(경사)에 따라 포인트 잡아 계산하는 선수도 있지만 저는 감을 더 믿는 편이에요. 발에 느껴지는 감각, 또는 눈에 보이는 슬로프를 더 중요시하죠.”

베어트로피를 놓고 리디아 고와 맞대결을 한 마지막 날 분위기는 어땠나요?

“베어트로피라는 큰 상을 놓고 있어서인지 둘 다 초반엔 잘 안 풀렸어요. 하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이기도 했고, 리디아와 경기를 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기 때문에 후반 시작하면서 ‘우리 멋지게 버디 많이 해보자’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리디아가 10·11·12번 홀에서 3연속 버디를 하는 거예요. 정말 대단했지만 끝난 게 아니어서 마지막까지 집중하려고 했어요.”

“버디 많이 하자”는 얘기를 하자마자 리디아가 3연속 버디를 하는 걸 보고 마음이 좀 복잡하진 않았나요?

“전혀요. 이 어린 선수가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챙기나 할 정도로 리디아는 멋진 사람이고, 그래서 함께 라운드하는 게 즐거운 투어 동료입니다. 그런 선수가 멋진 샷과 퍼팅을 보여주고 박수받는다면 저도 진심으로 박수를 쳐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렇게 베풀었을 때 마음이 편하고 반대로 축하를 받았을 때 감사함을 느끼게 됐어요.”

그렇게 마음을 곱게 써서인지 마지막 세 홀 연속 버디를 했죠?

“17번 홀은 핀 위치가 어렵고 홀 앞에 급경사가 있는 데다 그린이 단단해 까다로운 곳이었어요. 마지막 홀도 버디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뒷바람이 강하고 그린에 공을 떨어뜨리면 튕겨나가는 조건이었죠. 반대로 공이 조금만 짧게 떨어지면 오르막이라 안 올라가고. 캐디와 상의한 뒤 선택한 클럽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자신 있게 하려고 했어요. 샷을 한 뒤 날아가는 공을 바라보며 ‘잘 친 샷이다’고 생각했죠. 공이 홀 앞에 잘 붙었고, 퍼팅도 성공했어요. 그 마지막 퍼팅의 의미를 알고 있으니 넣고 싶다는 마음이 얼마나 컸겠어요? 그런데 ‘넣고 싶다. 넣어야 한다’는 생각을 바꿔 ‘어떻게 하면 이 퍼트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하는 쪽으로 끌고 왔어요.”

전인지는 박원 원장을 ‘스승님’이라고 소개한다. 그만큼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박 원장은 전인지라는 ‘될성부른 떡잎’을 5년 만에 ‘샷과 멘털이 가장 뛰어난 스타’로 키워냈다. 박 원장이 처음 만난 고교 시절 전인지는 좋은 체격(175㎝)과 남다른 호기심을 가졌음에도 잘못된 스윙 습관 때문에 목과 어깨에 고질적인 부상을 안고 있었다. 박 원장은 전인지의 스윙을 부드럽게 바꿔주면서 목과 어깨도 정상으로 돌려놓았다.

박원 원장, ‘웃으면서 골프 하는 법’ 가르쳐줘


▎2015년 5월 26일 경기 여주 블루헤런 골프장에서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투어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전인지.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살롱파스컵,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전인지는 한 시즌에 한·미·일 메이저 대회를 석권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 사진제공·KLPGA
박 원장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는 미국 미시건주립대에서 환경정책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 출신이다. 취미로 골프를 시작했다가 교습가가 됐다. 박 원장은 또한 멘털 트레이닝 이론을 실전에 접목시키는 전문가다. 선수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고 맞춤형 처방을 내린다. 박 원장은 리디아 고와의 마지막 대결을 앞두고 전인지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리디아는 이 한 라운드에 베어트로피 외에도 랭킹 포인트, 상금 1위 등 많은 타이틀이 걸려 있다. 우리는 루키 시즌에 할 만큼 했다. 너는 큰 대회에 강하고 후반에 피치를 올리는 스타일이다. 리디아도 그런 점을 두려워할 거다. 그러니 끝까지 재미있게 웃으면서 해라.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거기서 희열을 느껴라.”

전인지가 늘 생글생글 웃으며 플레이하는 것도 박 원장의 지속적인 가르침 덕이 컸다고 한다. ‘골프는 남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전인지의 골프 철학도 박 원장에게서 배운 것이다.

리우올림픽 대표 엔트리(4명)를 놓고 막판까지 치열한 경쟁을 펼쳤는데, 막상 올림픽에서는 성적이 썩 좋지는 않았어요.

“올림픽 전에 한국에 잠깐 들어왔어요. 주위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현지에 가서 시차적응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저는 허리가 아파 치료를 받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죠. 최선을 다해 부상을 치료하고 브라질로 넘어갔는데…. 아쉬운 부분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이 에비앙에서 큰 도움이 됐습니다.”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세운 남녀 메이저 통산 최소타(21언더파)는 단순한 기록 외 뭔가 특별한 의미가 담겼을 것 같은데요.

“에비앙 챔피언십이 열리는 곳을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해요. 가장 즐거운 마음으로 가는 곳이고 꼭 한 번 우승하고 싶은 대회죠. 근데 그 전 2년 동안 성적이 안 좋았어요. 지난해 컷 탈락한 뒤에 스승님에게 ‘내년에 이곳에 온다면 가진 것 다 쏟아내 우승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어요. 그걸 이뤄냈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죠. 메이저 최소타 해낸 건 큰 실감이 안 나요. 엄청난 부담감 때문에 그렇게 18홀이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는 기억만 나요.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하고, ‘몇 타 치면 최소타’라는 걸 알고 시작했으니까요.”

전인지 프로는 유독 메이저 대회에 강한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요.

“지금까지 국제·국내대회 13번 우승 중 7번이 메이저니까 절반이 넘네요. 모든 대회가 소중하지만 선수들이 메이저에 포커스를 맞추는 게 사실이거든요. 전 어려운 코스를 도전하는 걸 좋아하고, 그런 코스에서 제 장점이 잘 발휘되는 것 같아요. 스승님과 캐디·스태프 등 모두가 베스트(최고 성적)를 내려고 한마음으로 노력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캐디인 데이비드 존스(북아일랜드)는 어떤 사람인가요?

“굉장히 긍정적인 분이에요. 남남인데 코스에서는 같이 생활하는 거잖아요? 모르는 사람이고 문화적 차이로 불편함이 생길 수 있는데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생각의 차이를 대화로 잘 풀어가고 잘 들어주는 분이죠. 제가 가고자 하는 길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늘 감사합니다.”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 뒤 프랑스어로 소감을 말한 게 화제가 됐어요.

“에비앙 마지막 날 코스에서 중얼중얼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많이 잡혔다고 하네요. 프랑스 갤러러들이 많아 우승하면 ‘감사합니다’ 정도가 아니라 프랑스어로 진심을 담아 전달하고 싶었어요. 근데 프랑스어 발음이 너무 어려워요. 코스에서도 틈날 때마다 연습했는데 그게 오히려 플레이에 도움이 됐어요. 경기 때 4시간 넘게 골프만 생각하는 건 너무 힘들거든요. 다른 생각하고 릴랙스하고 있다가 다시 샷할 때 집중하곤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뭐라고 인사를 했는데요?

“마담 므슈, 메르시 보크(신사숙녀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다음엔 까먹어서 영어로 했어요. 제가 코스 밖에서는 엄청 소심하거든요. 혹시나 틀리면 어떡하나 하고요. 멍석 깔아주면 잘 못해요.”(웃음)

근데 미국에서는 영어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면서요?

“미국 투어 초반에는 ‘영어가 너무 힘들어요. 한국이나 일본에서 그냥 편하게 골프 하고 싶어요’ 하면서 새벽 내내 울었던 적도 있었어요. 여러 가지 감정이 생겼고, 친구들·선생님·부모님·할머니 등등 보고 싶은 사람도 너무 많았어요. 그래도 ‘어차피 해야 하는 거 열심히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며 마음을 다잡았죠.”

그럴 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나요?

“제가 정말 복받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투어 선수 중에도 있고, 미국에 사는 학교 선배도 있어요. 서로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 해도 큰 힘이 되죠.”

스트레스가 쌓이면 어떻게 푸나요?

“저는 술을 잘 못해요. 대신 뛰는 걸 좋아합니다. 작년에는 한창 나노블럭 만드는 데 빠져 있었는데, 몸을 이용하는 게스트레스가 더 잘 풀리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 스쿼시나 테니스를 배웠는데 그것도 엄청 재미있어요. 근데 늘 부상을 조심해야죠. 호기심이 많아 뭐든 조금씩 해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편입니다.”

“러기지 게이트 거치며 많이 단단해져”


▎전인지는 무엇이든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려 한다. “사람마다 꽃을 피우는 시기가 다르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인생 최고의 샷을 꼽자면?

“딱 떠오르는 순간이 서너 개 있어요. 낚시에도 손맛이란 게 있잖아요. 몸에 전율이 찌르르 흐르는 거요. 2015년 두산매치플레이 챔피언십 우승할 때 3번 홀에서 홀인원을 했어요. 8번 아이언으로 하이 페이드를 구사했는데, 거짓말 안 보태고 1㎝ 오차도 없이 생각한 대로 날아가서, 원하는 곳에 떨어져서, 원하는 그림대로 굴러가 홀에 떨어졌어요. 볼이 그린 경사를 타고 졸졸졸 흘러 홀 안으로 사라지는 걸 보면서 진짜 온 몸에 전율을 느꼈어요. 베어트로피를 확정한 마지막 버디 퍼팅과 그 전의 세컨드 샷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인생 최악의 샷은?

“최악의 샷을 실수 또는 실패한 샷이라고 한다면 저는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해요. 2014년 LPGA 하나외환 챔피언십 마지막 날 연장전에서 세 번째 샷을 해저드에 빠뜨렸어요. ‘어떻게 이런 샷을 했지’ 싶을 정도였죠. 그 뒤로 그 거리의 샷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에비앙 챔피언십 때 100m 안팎 남은 거리에서 한 번도 실수 없이 공을 그린에 올렸죠. 실패한 샷이 더 좋은 기회가 됐으니까 그건 실패가 아닌 거죠.”

<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는 축구선수 이영표의 책 제목이 생각나네요. 그런 의미에서 ‘러기지 게이트’도 마무리가 잘됐나요?

“아~.(길게 한숨을 쉰 뒤) 스스로 정말 많이 단단해진 것 같아요. 어떤 힘든 일이 와도 빨리 털어내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됐구나 느꼈어요. 힘들지 않을 수 없었죠. 그래서 더 감사한 게 그 시간을 통과하면서 ‘내 주변에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많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운동선수가 안 다치면 제일 좋죠. 하지만 그 시간을 보내면서 정말 소중한 것이 뭔지 느낄 수 있었어요.”

관련된 질문을 더 하려 하자 전인지가 말을 가로막았다. “이 얘기는 다 끝난 거고 잘 마무리됐기 때문에 여기서 딱 끝내고 싶어요.”

2016년 시즌 상금으로만 20억원을 넘게 벌었네요? 돈 많이 버니까 좋죠?

“네, 하하. 내가 벌어서 의미 있게 쓰이는 돈을 볼 때마다 행복해요. 어디 가서 얘기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기부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어디에 쓸 건지는 팀원 모두가 고민하고 또 제가 직접 보고 느낀 뒤에 결정합니다. 주변 분들이 피곤할 수 있지만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재테크는 누가 도와주나요?

“부모님과 공유하면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를 배웁니다. 돈이 어떻게 쓰이고 나가는지를 보면서 돈에 대한 소중함, 버는 것보다 쓰는 게 어렵다는 것도 느끼게 돼요. 저를 위해 쓰는 거요? 친구들과 학교 앞 보세(保稅) 옷가게에서 쇼핑 하는 정도죠.”

투어 프로생활 하면서 대학 공부를 하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요. ‘프로골퍼로서 돈과 명성도 얻고, 제대로 공부도 안 하면서 대학 졸업장까지 받으려 한다’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거든요.

“제가 학교 수업을 좋아하는 큰 이유는 버릴 게 하나도 없어서예요. 교수님들이 도움되는 수업을 해주시기 위해 노력하시는 게 느껴지거든요. 스포츠마케팅, 운동역학, 해부학 등 운동선수 그만두더라도 학교에서 배운 걸로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더라고요.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서 아쉽지만 시간이 될 때마다 출석하고 대회 때는 리포트를 제출합니다. 4학년 때는 영어 강의가 있는데 국내에 있으면서 영어 감을 잃지 않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상의 어깨 쪽에 학교 이름만 붙여 놓고 수업에 거의 안 들어오는 선수들도 있죠?

“모두가 같은 생각일 수는 없잖아요? 제가 누군가를 가르쳐 본 적은 없지만, 똑같이 10개를 줬는데 다 가져가는 학생도 있고, 5~6개 가져가는 사람도 있지 않겠어요? 저는 주어진 건 최대한 얻어가려고 해요. 그런 생각의 힘이 골프를 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도 같고요.”

“골프는 내 운명, 하길 잘했다”


▎미국 플로리다의 디즈니랜드에 있는 코끼리 덤보 위에 올라타 있는 전인지. 호기심이 많은 데다 우직한 모습이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과 닮았다고 해서 전인지는 ‘덤보’란 별명을 얻었다. / 사진제공·전인지 인스타그램
결혼에 대한 생각은? 언제 어떤 사람과 하고 싶은가요?

“그동안은 20대에 하고 싶었어요. 저랑 가장 친한 서희경(전 프로골퍼) 언니가 결혼해서 사는 모습 보니 진짜 행복해 보이고, 형부도 좋으신 분이고요. 희경 언니와 형부, 그리고 제가 단톡방을 해요. (박)인비 언니도 오빠(남편 남기협)가 옆에서 챙겨주시는 것 보니까 빨리 결혼 하고 싶더라고요. 근데 두 달 정도 전부터 생각이 바뀌었어요. ‘결혼은 서른 넘어서 하자’고요.”

왜 바뀌었죠?

“20대는 열심히 골프 하고 즐겁게 있다가 서른 살 넘어서 하고 싶어졌어요. 아빠한테도 그렇게 말씀드렸고요. 근데 늦게 가겠다는 사람이 빨리 간다는 말도 있으니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죠. 제일 중요한 건 저랑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거겠죠. 서로에 대한 배려심이 있고 잘 맞는 사람이라야 함께 오랫동안 잘살 수 있잖아요.”

너무 많은 걸 이루다 보니 새로운 동기부여가 쉽진 않겠어요?

“아닙니다. 에비앙 우승 이후에 ‘내 인생의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앞으로 이뤄가야 할 게 너무 많아요. 장기 목표를 두고, 작은 것들을 하나하나 이뤄가고 있습니다. 그 목표가 뭔지는 비밀이지만 제가 어떤 선수,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가는지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먼 훗날, 골프선수를 선택했기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다른 길에 미련이 남지는 않을까요?

“저는 골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전 무엇이 됐든 남하고 비교하지 않아요. 내 인생의 꽃이 아직 피지 않았다고 말씀드린 건 꽃이 빨리 피는 사람, 늦게 피는 사람, 빨리 피어서 빨리 지는 사람, 늦게 지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죠. 저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조급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장 눈앞에 뭐가 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꽃이 아직 피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꽃을 피우기 위해서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앞두고 전인지를 잘 아는 사람이 “그 친구 여우예요, 여우” 라고 귀띔했다. 만나 보니 여우보다 훨씬 급(級)이 높았다. 인터뷰를 마치며 “노인이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라고 했더니 전인지가 당황하며 말했다. “노인 아닌데. 스물세 살인데….”

- 정영재 스포츠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사진 김상선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

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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