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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정여울의 ‘셀프 테라피’(1)] ‘아직’ 건강한 사람들을 위한 심리학 

내 안에 숨겨진, 나만의 아픔은 뭘까 

정여울 문학평론가
그토록 이기적이면서도 결국 자기파괴적인, 무척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참 많이 아픈 현대인들. ‘나 자신의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를 직시하는 데서 내 마음의 치유는 시작된다!

▎뭉크의 <절규>. 뭉크의 그림은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화가 스스로의 아픔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현대인의 정신적 고통을 형상화한다. / 그림제공·정여울
‘이별 공격’이라는 말이 있다. 연인에게 버려지기 전에 내 쪽에서 먼저 그를 버리는 선제공격을 가리키는 말이다. 버려지는 쪽이 되기보다는 먼저 버리고 떠나는 쪽이 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이별통보라는 기습을 당하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선수를 치는 이 민첩한 행보가 처음에는 순간적인 승리감을 줄 수 있지만,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이별 공격의 여진은 끈질기게 지속된다. 정말 그가 싫어져서가 아니라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저지른 행동이라면, 이별 공격은 더더욱 상대방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자해에 가까워진다. 이별을 선언한 것은 내 쪽이지만 더 커다란 내상을 입는 쪽도 이쪽인 것이다. 이별 공격만이 아니다. 상처받기 전에, 내 쪽에서 먼저 상처를 주기로 결심하는 것. ‘상처받는 쪽’이 약자이고, ‘상처 주는 자’가 강자라는 편견이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마음에도 예방주사가 필요하다


▎윤동주는 시 <병원>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사람들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을 날카롭게 묘사한다. / 그림제공·정여울
인간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왜 그토록 이기적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일삼는 걸까? 이것은 바로 방어기제(self-defense system) 때문이다. 처음에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상처받을지 모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별을 택하지만, 사랑에 별책부록처럼 꼭 달라붙는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기 위해 상대를 먼저 공격하는 잔인성을 서슴지 않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방어기제가 결국 자신의 뒤통수를 친다는 점이다. 순간적으로는 자신을 방어하는 데 성공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문제를 더 심화시키는 쪽으로 이끌게 된다. 사랑으로 인한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 아예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 실패가 두려워서 새로운 시도나 모험 자체를 멈추는 것, 누군가로 인해 받은 상처로 인해 그와 조금만 외모가 비슷한 사람만 봐도 ‘저 사람은 나에게 상처를 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이 모든 자기방어적 판단이 결국 가리키는 것은 ‘나 자신의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다. 그 문제들을 정면으로 직시하지 못하는 한 치유는 시작조차 될 수가 없다.

윤동주의 시 <병원>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病)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試鍊), 이 지나친 피로(疲勞).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이 시는 ‘분명히 아픈데,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 왜 아픈지 알 수 없는 사람들’, 즉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사람들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을 날카롭게 묘사한다. 의사도 정확히 진단할 수 없는 병, 그러나 환자는 분명히 앓고 있는 병. 의사들이 흔히 ‘심인성 질환’이라고 하는 것들은 실제로 분명히 존재한다. “요새 힘든 일 있으세요? 스트레스 많이 받으세요?”하고 물어보는 의사들의 질문처럼, 몸과 마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는 실제로 존재한다. 정신과의사 베셀 반 데어 폴크의 <몸은 기억한다>(을유문화사, 2016)라는 책에는 트라우마가 신체에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을 수많은 임상 사례들을 통해 증명한다. 텔레비전에서는 음식을 비롯한 생활습관을 강조하는 건강관리 프로그램이 수없이 쏟아지지만, 정작 우리는 그 건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마음의 건강’을 보살피는 데는 소홀하다. 몸에는 그토록 많은 영양제와 예방접종을 시도하면서, 마음에는 그 어떤 물도 햇빛도 바람도 공기도 공급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 마음에도 비타민이 필요하고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이 우리 자신의 트라우마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인문학의 예방주사라고 생각한다. 문학이나 영화라는 영양제도 있고, 심리학이라는 보다 직접적인 예방접종도 있는 셈이다.

학교 밖에서 인문학 강연을 하다 보면 뜻밖에 많이 받는 질문이 바로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질문이다. 글 쓰는 사람은 당연히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가장 예민한 축’에 속하는 작가들에게 심리를 치유하는 방법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자기치유 방법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일을 해보는 것이다. 여행이나 산책을 하거나, 영화나 전시를 보거나, 그리운 사람들을 잠깐씩이라도 만나는 것. 그것만으로도 스트레스는 자연스럽게 풀린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하는 휴식’을 꿈꾸었는데, 그런 것은 성격상 불가능했다. 쉬는 방법을 모르는 일중독 상태에 길들어버린 나에게는 ‘휴식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다른 일을 하면서, 오직 ‘나’에게로만 집중된 리비도를 분산시키는 것. ‘내 일’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일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시간이 나에게는 치유의 시작이 된다. 우리가 느끼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나는 잘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자기인식 때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흐의 <자화상>. 고흐는 자신의 심리적 상처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 그림제공·정여울
건강한 사람들을 위한 심리학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의 아이리스(케이트 윈슬렛)는 ‘착한 사람’이라는 세간의 평가 속에 자신의 상처를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 사진제공·정여울
어떻게 하면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문제를 궁리하기 위해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내게는 무척 행운이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나와 타인, 현실과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있다. 가장 놀라운 점 중의 하나는 굉장히 정상적인 사람들, 심지어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도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집 바깥에서는 둘도 없는 인격자요 유능한 사회인이지만, 집 안으로만 들어가면 온갖 짜증과 분노로 타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타인에게 보여주는 페르소나와 자기 안에 숨기고 있는 내면의 그림자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정신건강은 악화된다. 겉으로는 매우 정상적이며 심지어 주변의 칭찬을 듣는 사람이지만, 속으로는 곪아 터져가는 내면의 상처가 그를 안으로부터 무너뜨린다. ‘착한 사람’이라는 세간의 평가 속에 자신의 숨은 상처를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전형적인 사례다.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의 아이리스(케이트 윈슬렛)가 바로 그런 경우다. 그녀는 인정 많고, 배려가 넘치며, 유능하기까지 한 편집자다. 그런데 아이리스의 삶은 영 평탄하지가 않다. 그녀는 출판사 편집 업무를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의 온갖 뒤치다꺼리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남자 재스퍼는 다른 애인이 있으면서도 아이리스에게 계속 곁눈질을 하고, 심지어 그녀를 수족처럼 부려먹는다. 걸핏하면 잡무를 떠맡기고, 아이리스의 재능을 이용하기 위해 ‘내가 책을 낼 건데, 내 글을 좀 봐달라’며 아이처럼 조르기도 한다. 아이리스는 재스퍼의 바람기와 이기심을 알면서도 다 받아준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어쩌면 그도 나를 사랑해줄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하지만 그 일방적인 착취의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망가지고, 무너져가는 건 오직 아이리스뿐이었다.

아이리스는 마침내 재스퍼가 다른 여자와 약혼했다는 선언을 듣고 망연자실하여 결코 재스퍼가 찾지 못할 것 같은 머나먼 미국 땅으로 여행을 떠난다. 영국에 살던 아이리스와 미국에 사는 아만다(카메론 디아즈)는 서로 집을 바꿔 살아보기로 하면서, ‘내 인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보는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아이리스는 그곳에서 자신의 배려와 온화함이 타인에게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실현의 한 방법임을 깨닫게 된다. 자신을 이용하거나 착취하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껴주는 마일스(잭 블랙)를 만나면서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는 것을 느낀다. 이런 그녀의 변화조차 눈치 채지 못한 재스퍼는 언제나 자신의 24시간 ‘항시대기조’처럼 도움을 청할 수 있었던 아이리스가 없어지자 공황 상태에 빠진다. 언제나 ‘이래라저래라’ 명령을 하던 재스퍼가 마침내 그 머나먼 미국 땅으로 아이리스를 찾아와 ‘네가 필요하다’고 고백하지만, 아이리스는 그 ‘필요’가 사랑이 아닌 ‘이기심의 발로’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착하디 착한 아이리스에게는 바로 이런 날카로운 독화살 같은 말이 필요했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라고 몇 번이나 외치면서, 아이리스는 비로소 ‘사랑에 묶여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자신’이 그 사랑이라는 이름의 포승줄에서 해방되는 것을 느낀다.

‘그 일 이전과 그 일 이후’의 나, 트라우마의 시작


▎정신분석은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정신분석을 통해서 멋진 성격을 창조해낼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 사진제공·정여울
‘당신은 참 착한 사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오랏줄에 묶여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에게 이 영화는 도움이 될 것이다. ‘너는 착한 사람’이라는 타인의 평가는 결국 ‘나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착해야만 한다’는 자기 암시로 이어지고, 바로 그렇게 굳어지고 각인된 자기암시는 결국 ‘착하지 않으면 나는 버림받을 것이다’라는 절망적인 트라우마 상태로 자신을 이끌어갈 수 있다. ‘착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착해야만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병적인 것이다. 이렇듯 무척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참 많이 아픈 우리 현대인들에게, 심리학 공부는 굳이 병원에 가지 않아도 내가 나를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아직 내가 나를 스스로 돌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자기치유의 첫걸음을 시작해야 한다.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안의 고통은 경감될 수 있다. 스트레스는 일시적이고, 통제 가능하다. 트라우마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도 모르는 순간에 덮쳐올 수 있기에, 통제 불가능하고, 평생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시험이 끝나면 나는 해방’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스트레스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시험 운이 없다’‘나는 무슨 시험을 봐도 합격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트라우마에 가깝다. 고부 간의 갈등으로 짜증이 폭발한다 하더라도, ‘시어머니를 안 보면 괜찮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스트레스다. 하지만 ‘이 남자와 같이 사는 한 나는 시어머니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고 느낀다면, 고부 갈등이 자신의 모든 일상에 먹구름을 드리운다면, 그것은 트라우마에 가깝다. 스트레스는 어떤 눈에 띄는 원인 때문에 일시적으로 마음이 불편하고 긴장되는 상태이지만, 트라우마는 ‘그 일 이전과 그 일 이후’의 나는 영원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트라우마의 뿌리가 될 수밖에 없다. 연인이나 친구의 사고사, 부모나 자식의 때 이른 죽음은 우리 마음속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정신분석은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이렇게 말한다. “정신분석을 통해서 멋진 성격을 창조해낼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정신분석은 단지 개인적인 성향들을 밝은 곳으로 드러내고, 그런 다음에 그것들을 가능한 한 완벽하게 발전시키고 조화시키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보다 심리학책을 읽는 것에서 훨씬 커다란 도움을 받았다. 특히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는 개념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우리는 흔히 상처받은 사람은 타인에게 더 큰 상처를 주거나,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수많은 심리학자나 타인에게 치유의 영감을 주는 수많은 예술가는 돌이킬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상처받은 사람’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받고도 아무 것도 배우지 않는 정신의 황폐함’이 문제다. 나는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을 통해 내 아픔의 원인을 간접적으로 유추해낸다. 내가 아직 건강하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건강해 보이는 사람도 실은 마음속에 깊은 아픔을 묻고 살아간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마크 월린은 이 책에서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에게 자기 안의 ‘핵심문장’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내 안의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핵심문장은 자기치유의 이정표가 된다.
심리학자 마크 월린의 <트라우마는 유전된다>는 상처를 언어로 표현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공황장애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 전문가인 마크 월린은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거나 머리카락을 뽑는 등의 자해를 하는 사람들, 원인 모를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며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에게 자기 안의 ‘핵심문장’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자기 안의 상처를 핵심적으로 요약하는 문장을 스스로 찾아보는 것이다. 핵심문장은 여러 개일 수도 있다. 예컨대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든지, ‘나는 모든 걸 잃었어’‘나는 실패할 거야’‘그들은 나를 거부할 거야’‘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라는 식의 문장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면, 그 핵심문장은 가족 안의 트라우마와 관계 있는 경우가 많으며,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 왔으나 스스로 미처 ‘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한 아픔일 가능성이 많다.

그 핵심문장을 향해, ‘나를 보살피는 또 하나의 자아’가 속삭이는 치유의 문장을 읊조리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된다. 예컨대 <트라우마는 유전된다>의 저자는 나약한 부모를 보살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자녀들을 위해 이런 치유의 문장을 선물한다. “너는 내 자식일 뿐이야. 내 감정이 네 감정일 필요는 없단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한단다. 내 사랑을 얻으려 그 무엇도 할 필요가 없단다.” “너는 나를 보살펴왔고 나는 그러도록 내버려두었어. 이제 더는 그러지 말자.” “어떤 아이에게도 이건 너무 지나친 일이란다.” 나는 실제로 이런 문장을 읽는 순간, 스스로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나 또한 ‘힘든 부모님을 보살피는 씩씩한 장녀’가 되기 위해 평생 ‘내 맘대로 살 권리’를 저당 잡힌 듯한 피해의식에 시달려왔던 것이다.

내 안의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핵심문장은 자기치유의 이정표가 된다. 핵심문장은 단순한 증상이 아닌 ‘원인’을 표적으로 삼게 해주어 자기 안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길의 ‘지도’가 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다가, 가슴을 찌르는 문장을 만났다. “자신의 고통·슬픔·상처에 거리를 두는 딱 그만큼 연인에게도 거리를 두게 된다.” 스티븐 레빈과 온드리아 레빈의 <사랑하는 사람들 끌어안기(Embracing the beloved)>라는 책에 나오는 문장이라고 한다. 연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한 거리 두기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지닌 스트레스나 트라우마가 내가 만들어가는 인간관계에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다. 해결되지 않는 스트레스가 짜증스러운 인간관계를 만들고, 과거의 트라우마가 발목을 붙잡아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데 치명적인 장애가 되곤 한다. 우리는 자신의 고통·슬픔·상처에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는가. 바로 그만큼의 거리가 타인 사이의 거리를 규정한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에곤 실레의 <자화상>은 극심한 우울과 불안에 시달렸던 화가 스스로의 심리적 고통을 ‘일그러진 신체’의 기이한 이미지로 묘사해내고 있다. / 그림제공·정여울
당신의 아픔을 극적으로 요약하는 핵심문장은 무엇인가? 그 문장을 종이 위에 또박또박 써 내려가보자. 그것이 당신 안의 트라우마를 그리는 첫 번째 로드맵이 될 것이다. 그 트라우마의 지도를 펼쳐놓고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내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나는 얼마 전 내 안의 뼈아픈 핵심문장을 찾아내곤 망연자실했다. “나는 이 상처를 결코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내 안의 핵심문장이었다. ‘이 상처’의 개인적인 내용보다 더 아픈 것은, 그 상처로 인해 내가 느낀 깊은 절망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처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 상처에 곧바로 대응하는 또 다른 치유의 문장이 떠올랐다. “너는 그 상처로 무너지지 않아. 너는 지금까지 정말로 잘 견뎌왔어.” 이 문장을 쓰는 순간, 나는 어느새 ‘상처 때문에 무력해진 사람’이 아니라 ‘항상 그 상처와 용감하게 싸우는 전사’가 되는 느낌이었다. 바로 이런 문장을 스스로 생각해낼 수 있게 해준 것이야말로 심리학이 내게 준 선물이다. 내 상처를 타인이 치유해줄 수 있다는 환상을 뛰어넘어, 내가 내 상처를 치유하는 적극적인 모험을 떠나는 것. 나는 심리학을 통해 오늘도 깨닫는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인하고, 지혜롭고, 용감한 존재라는 것을.

정여울 - 작가, 문학평론가. 1976년생. 서울대 독문과 졸업 후 같은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2004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했다. 저서로 <공부할 권리>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마음의 서재> <헤세로 가는 길> 등이 있다. 제3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했다.

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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