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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재 | ‘異論’의 역사] ‘나무꾼과 선녀’ 설화에 얽힌 비밀 

청(淸) 왕조 세운 여진족과 우리 민족의 관계를 밝히는 열쇠 

전원철 미국변호사, 법학박사
오랑캐. ‘여진’은 때로는 복속하고 때로는 침탈하며 조선의 변방을 어지럽혔다. 그러다 17세기 들어 이들은 조선을 제압하고 나아가 대륙의 주인이 됐다. 바로 청나라다. 그런데 이 청나라의 시조설화 ‘백두산의 세 선녀’는 우리의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와 흡사하다. 같은 전래 설화를 공유하는 한민족과 여진. 2회에 걸쳐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가 암시하는 우리 역사의 비밀을 파헤친다.

▎포고리 옹순(布庫哩雍順)을 손가마에 태우고 가는 삼성인(三姓人)들. <만주실록>에 실린 삽화다. / 사진· 중앙포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초등학교 시절 국어교과서에서 전래 설화인 ‘나무꾼과 선녀’라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나무꾼이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숨겨주었다. 사슴은 감사의 뜻으로 선녀들이 목욕하는 못이 있음을 귀띔해 주며, 선녀들이 목욕하는 틈에 날개옷을 감춰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면 집으로 데려와 아내로 삼으라고 한다. 다만 아이가 셋이 될 때까지는 날개옷을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무꾼은 사슴이 일러준 대로 하여 선녀를 아내로 맞아 아이 둘을 낳았다. 어느 날 선녀는 이제 아이까지 낳았으니 날개옷을 보여달라고 부탁한다. 나무꾼이 건네준 날개옷을 입은 선녀는 결국 두 아이의 손을 잡고 훨훨 날아 하늘로 올라갔다. 낙담한 나무꾼 앞에 다시 사슴이 나타나 다시 못으로 가면 하늘에서 두레박이 내려올 것이니 그 두레박을 타고 가라고 알려준다. 나무꾼은 사슴의 말대로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선녀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

이후로도 이야기는 한참이나 더 이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는 이 이야기의 원형은 여기까지라고 믿는다. 뒷이야기는 후세에 여러 가지 이유로 덧붙여졌다는 해석이다. 이 이야기의 원류는 과연 무엇일까?


▎1682년 이탈리아에서 그린 여진 지도. 그 아래 길게 표시된 곳이 한반도다. / 사진·중앙포토
‘나무꾼과 선녀’ 또는 ‘백두산의 세 선녀’


▎포륵호리(布勒瑚裡) 못에서 멱을 감는 세 선녀. <만주실록 (滿洲實錄)>의 한 부분이다. / 사진·중앙포토
놀랍게도 이 이야기와 너무나도 흡사한 줄거리를 가진 전설이 중국 청(淸) 왕조의 역사책에 등장한다. 청 왕조는 동아시아 만주에서 발흥해 중국(中國) 대륙으로 진출해 자기네보다 약 150배는 많은 한족(漢族)을 1912년까지, 1945년 망한 만주국까지 포함하면 300여 년이나 다스리며 거대한 제국을 이뤘다. 바로 이 청 왕조의 시조인 아이신교로(愛新覺羅) 포고리 옹순(布庫哩雍順)과 관련된 이야기다. 천총(天聰) 9년(1635)에 쓰인 청나라 역사책 <만주실록(滿洲實錄)> 속의 시조전설 ‘백두산의 세 선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장백산(長白山-백두산: 만주어로 Glomin(긴), Shanggiyan(흰), Alin(뫼)의 한자 표기/필자 주) 동북쪽 포고리산(布庫哩山) 아래 한 못(泊)인 포특호리(布勒瑚裡)에서 은굴렌(恩古倫)·정구렌(正古倫)·페쿨렌(佛庫倫)이라는 세 선녀(三仙女)가 목욕을 했다. 세 선녀가 목욕을 마치고 물가로 오르니, 신령스런 까치(神鵲)가 붉은 열매(朱果) 하나를 물어다 막내 페쿨렌의 옷 위에 내려놓았다. 그 색이 매우 아름다워 페쿨렌이 그 열매를 입에 물고 옷을 입으려 하는 순간 열매가 뱃속으로 들어가 곧 감(感)하여 아이를 배었다. 페쿨렌이 두 언니에게 ‘내가 배부른 것을 느껴 같이 올라갈 수 없으니 이를 어찌 하오리까’ 하자 두 언니는 ‘우리도 예전에 단약(丹藥)을 먹어보았는데, 죽을 이치는 없더라. 이것도 하늘의 뜻이니 너의 몸이 가벼워지는 때를 기다려 올라와도 늦지 않다’고 하였다.


▎<만주실록>에 등장하는 백두산과 압록강, 혼동강, 애호강. / 사진·중앙포토
이리하여 땅에 남은 페쿨렌은 얼마 후 사내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자라자 페쿨렌은 ‘하늘이 너를 태어나게 한 것은 너로 하여금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잡고자 한 것이니, 그곳으로 가거라’ 하고 배 한 척을 내주고는 이내 사라져버렸다. 이에 아들이 배를 타고 물길을 따라 내려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이르러 기슭에서 버들가지를 꺾어 의자처럼 만들고 홀로 그 위에 앉았다. 그곳은 장백산 동남쪽 악모휘(鄂謨輝) 땅 악다리성(鄂多理城)이었다. 악다리성에는 세 씨족(三姓)이 살면서 서로 웅장(雄長)을 다투며 하루 종일 죽이고 다치고 했다. 마침 한 사람이 물을 길러 왔다 생긴 모습이 범상찮은 아이를 보고 서로 싸우는 곳으로 돌아가 무리에게 알렸다.

‘그대들은 다투지 마라. 내가 물을 길러 간 곳에서 한 놀라운 사내를 만났는데, 보통사람이 아니다. 생각컨대 하늘이 이 사람을 낳은 데는 연유가 있을 듯싶다. 어서 가서 이 사내를 보도록 하라.’

이 말을 들은 삼성인(三姓人)들이 전쟁을 멈추고 가서 보니 과연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놀라서 캐물으니, 사내가 대답하기를 ‘나는 천녀(天女) 페쿨렌(佛庫倫)에게서 났다. 성(姓)은 아이신(愛新=金)교로(覺羅=姓)이고, 이름은 포고리 옹순(布庫哩雍順)이다. 하늘이 너희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나를 내려 보냈다’며 어머니가 부탁한 말을 무리에게 전했다. 그러자 무리가 놀라워하며 ‘이 사람은 걸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하고는 곧 손을 마주잡고 가마를 만들어 태우고 돌아오니 삼성인들은 싸움을 멈추었다.

삼성인들은 모두 포고리 옹순을 받들어 임금(主)으로 모시고, 백리(百里)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포고리 옹순은 나라 이름을 만주(滿洲)라고 정하고 시조(始祖)가 되었는데, 남조(南朝-조선과 명나라/필자 주)는 이를 잘못 불러 건주(建州)라고 하였다.”

청나라 시조 전설이 얽힌 ‘백두산의 세 선녀’ 이야기를 우리 전래 설화인 ‘나무꾼과 선녀’와 연관지어 말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나무꾼과 선녀’의 원류가 ‘백두산의 세 선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내용의 설화를 공유한다는 것은 같은 민족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우리 땅 백두산에서 태어나 ‘여진(女眞)’이라고 불리던 백성을 다스린 이야기의 주인공 ‘아이신교로 포고리 옹순’은 바로 우리 한민족의 핏줄이라는 것이다.

좀 더 살펴보자. 표고리 옹순은 조선 태조 대 함경도 회령(會寧) 지방의 장관이자, 여진 수령인 ‘알타리(斡朶里) 두만(豆漫=만호, 벼슬 이름)이자 협온(夾溫, 벼슬 이름)인 맹가 첩목아(猛哥帖木兒)’와 동일 인물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다루고, 이번 호에는 우선 ‘백두산 세 선녀’에 담긴 이야기부터 살펴본다) 맹가 첩목아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태조 4년의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회령 지방에 살던 여진 추장 맹가 첩목아는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서울로 와서 숙위하기도 하고, 이후 때마다 자기가 다스리던 여진족의 상태를 보고하고 지방 정사를 논했다. 이 맹가 첩목아가 바로 청나라를 세운 아이신교로 누르하치의 6대조다. 그러므로 누르하치가 세운 청나라는 우리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과장해 말하자면 한반도의 조선은 제1조선 또는 동조선이고, 청나라는 중국 대륙에 세워진 제2조선 또는 서조선이라고 할 수 있다.

선녀의 아들이 머무른 곳은?


▎까치가 물어온 열매를 먹고 아이를 배 언니 들과 헤어지는 페쿨렌(佛庫倫)과, 장성한 아들에게 길을 떠나 나라를 바로잡기를 당부하는 페쿨렌. 역시 <만주실록>의 한 부분이다. / 사진·중앙포토
이처럼 놀라운 결론을 말하는 ‘백두산의 세 선녀’ 이야기를 조목조목 따져보자.

‘백두산 세 선녀’ 이야기에 따르면, 포고리 옹순은 장백산, 곧 백두산의 동북쪽에 있는 ‘포고리산(布庫哩山)’ 아래 못인 ‘포륵호리(布勒瑚裡)’에서 태어났다. ‘포고리산’은 만주어로 ‘부쿠리(Bukuri) 알린(Alin)’으로, 이는 달리 ‘보코리산’ 혹은 ‘무쿠리산’이다. 이 말은 당(唐)대에 편찬된 산스크리트어(梵語) 소사전 <범어잡명(梵語雜名)>에서 “고구려는 무구리(高句麗曰畝俱理)라고 한다”는 기록으로 보아 ‘무구리(畝俱理)산’, 곧 ‘고구려(高句麗)산’이라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말갈산’이다. 또 ‘포륵호리’ 못은 만주어로 ‘불후리(Bulhuri)’인데, 그 뜻은 ‘솟아오르는 모양’이다. 이는 곧 화산으로 솟아오른 백두산 꼭대기의 못인 ‘천지(天池)’를 말한다.

다음은 세 선녀(三仙女)의 이름이다. 세 선녀의 이름은 첫째 은굴렌(Enggulen), 둘째는 정굴렌(Jenggulen), 그리고 막내는 페쿨렌(Fekulen)이다. 이들 이름은 각각 나라 이름을 말한다. 은굴렌은 ‘큰구려(고구려)’, 정굴렌은 ‘진구룬’ 곧 ‘진국=발해’, 페쿨렌은 ‘옛 나라(金 왕조)’라는 뜻이다. 즉, 세 여인의 이름은 우리 역사상 왕조 이름을 취한 것으로, 통상 학자들이 생각하는 퉁구스(Tungus)-만주어가 아니라, 고구려-말갈어다.

이번에는 ‘아이신교로 포고리 옹순’이라는 주인공의 성과 이름에 대한 이야기다. 우선 ‘아이신교로’라는 성에 대해 살펴보자. <만주실록>에는 “성 아이신은 한어로 ‘금’이고, 교로는 ‘성’이라는 말이다(姓愛新漢語金也, 覺羅姓也)”라고 기록했다. <만주실록>에는 “나는 선녀 페쿠룬에게서 태어났다. 성은 아이신교로이고, 이름은 포고리 옹순이다. 하늘이 나를 내려 보내 너희들의 난을 평정하려 하니…(我及天女佛庫倫所生, 姓愛新漢語金也 覺羅姓也, 名布庫哩雍順 天降我定汝等之亂…)”라는 기록도 있다. 그러므로 ‘아이신교로’라는 성은 한어(漢語)로 ‘금성(金姓)’, 우리말로는 ‘금씨네’라는 뜻이다.


▎포고리 옹순은 청 태조 누르하치의 6대조다. / 사진·중앙포토
그렇다면 그의 이름 ‘포고리 옹순’은 또 무슨 뜻일까? 앞서 우리는 ‘포고리산’은 만주어로 ‘부쿠리 알린’이고, 이는 <범어잡명>의 “고구려는 무구리라고 한다”는 말에 따라 ‘무구리산’ 곧 ‘고구려산’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포고리 옹순’은 ‘무구리 옹순’ 곧 ‘고구려 옹순’이라는 말이 된다. 나아가 ‘옹순(雍順)’이라는 말에 대해 알아보자. <청태조무황제실록(清太祖武皇帝實錄)>에서 “성 애신(아이신)은 화언(지나인의 말)으로 금이며, 각라(교로)는 성이고(姓愛新華言金也覺羅姓也), 이름은 포고리 영웅이다(名布庫里英雄)”라고 했다. 즉 ‘포고리 옹순’은 ‘포고리 영웅’이라는 말이다. 포고리 용순은 여진-만주식으로 ‘부쿠리 용슌’이며 이를 같은 소리를 가진 한자로 적은 것이다. 결국 ‘포고리 옹순’은 ‘무구리(畝俱理) 영웅(英雄)’ 곧 ‘고구려 영웅’을 의미한다.

이제 세 선녀 이야기에 등장하는 지명을 살펴볼 차례다. 세 선녀 이야기에서 주인공 포고리 옹순이 어머니의 말에 따라 배에 몸을 싣고 물길을 타고 내려가 닿았다는 장소는 “장백산 동남 악모휘(鄂謨輝) 땅”의 ‘악다리성(鄂多理城)’이라고 했다. 이 악다리성은 과연 어디일까? 우선 ‘악모휘 땅’이 <청태조무황제실록>에는 “장백산 동남 오막혜(鰲莫惠) 땅(地) 이름(名) 오타리성(鰲朵裡城)”이라고도 기록되었다. 직설하면 ‘악모휘’ 또는 ‘오막혜’ 땅은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에 기록된 누르하치의 6대조인 “오도리(吾都里) 만호(萬戶) 동 맹가 첩목아(童猛哥帖木兒)”가 살던 고향 ‘오음회(吾音會)’와 같은 곳이다.

<태조실록>은 “오음회 오도리 만호 동 맹가 첩목아(吾音會吾都里萬戶童猛哥帖木兒)”라고 적었다. 이는 ‘지방(吾音會)+마을명(吾都里)+관직(萬戶)+성(童)+이름(猛哥 帖木兒)’이라는 구조로 된 말이다. 풀이하면 ‘오음회 지방의 오도리 성에 사는 만호 동맹가첩목아’라는 말이다. 또 <만주실록>과<청태조무황제실록>이 말하는 ‘악모휘’, ‘오막혜’는 둘 다 만주말로, 그 소리가 ‘어머호이(Emehoi)’다. 이는 옛 소리로 ‘엄호이(Emhoi)’로, 오늘날의 ‘오음회’와 같은 소리다.

이 ‘오음회’는 오늘날 어디인가? 국사편찬위원회의 연구에 따르면 오음회는 ‘회령’의 옛 이름이다. 각 사서에 적힌 오음회의 다른 이름을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오랑캐’와 ‘오량카이’와 ‘올량합’


그렇다면 포고리 옹순이 살았던 마을로 <만주실록>에는 “장백산 동남 악모휘 땅에 있는 악다리성”, <청태조무황제실록>에서는 ‘오타리성’이라고 한 지명에 대한 궁금증도 자연스럽게 풀린다. 이미 살펴본 <태조실록>의 “오음회 오도리 만호 동 맹가 첩목아”라는 기록이 알려준다. ‘악다리성’이나 ‘오타리성’은 바로 ‘오도리(吾都里)’다. ‘악다리’와 ‘오타리’는 만주어에서는 다같이 ‘어두리(Eduri/Enduri)’로 발음되는데, <태조실록>의 ‘오도리’ 역시 ‘어두리’이기 때문이다. 청대의 만주인들은 ‘Eduri’를 ‘성스러운’, ‘신령’이라는 뜻이라고 풀이했는데, 그렇다면 ‘악다리성’은 만주의 시조가 살던 ‘성스러운 성’인 셈이다.

‘동 맹가 첩목아’라는 이름과 그의 칭호에는 또 어떤 뜻이 담겼을까? <조선왕조실록> 태조 4년(1395) 기록에서는 그가 살며 다스린 지방과 관칭, 이름을 오늘날의 소리로 “알타리(斡朶里) 두만(豆漫=만호) 협온(夾溫) 맹가 첩목아 (猛哥帖木兒)”라고 적혔다. 이는 같은 시기의 <조선왕조실록> 다른 부분에서 언급한 “오도리(吾都里) 만호(萬戶) 동 맹가 첩목아(童猛哥帖木兒)”와 정확히 일치하는 말이다. ‘알타리’의 만주어 발음도 ‘어두리(Eduri/Enduri)’다. 결국 <만주실록>에서 포고리 옹순이 도착한 ‘장백산 동남 악모휘 땅에 있는 악다리성’의 ‘악다리성’은 ‘오도리 만호 동 맹가 첩목아’가 살았던 ‘오도리’이자 ‘알타리 두만 협온 맹가 첩목아’가 살았던 ‘알타리’다. ‘오도리’ 또는 ‘알타리’는 같은 지명이 남아 있지 않아 오늘날의 동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함경북도 회령 지방 경내의 한 마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청 시조 포고리 옹순이 물길을 타고 내려가 닿았다는 ‘장백산 동남 악모휘 땅의 악다리성’은 ‘오도리 만호 동 맹가 첩목아가 살았다는 오음회’, 오늘날 지명으로는 회령인 것이다.


한편 ‘악다리성’ 또는 ‘오도리’, ‘알타리’는 만주어로 ‘endure(거룩한, 성스러운, 신령스러운)’라는 말로, 뒤에서 보듯 청 시조가 나고 삼성여진의 수령이 사는 ‘성스러운 마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표로 정리하면 <표2>와 같다.


▎포고리 옹순이 백성을 다스리던 악다리성 (鄂多理城)은 우리 땅 회령(會寧)이다. 두만강 건너에서 바라본 회령시. / 사진·중앙포토
이제 ‘백두산 세 선녀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된다.

“전설 속의 청 시조이자 백두산 천지에서 태어난 포고리 옹순은 물길을 따라 백두산 동쪽인 회령(會寧)으로 가서 그곳에서 서로 웅장(雄長)을 다투던 세 여진 씨족(三姓)을 만났다. 포고리 옹순이 그곳에 간 연유를 말하니, 삼성인들은 그를 임금으로 추대하고 백리(百里)라는 사람의 딸을 아내로 주어 혼인하게 했다. 여기서 ‘백리’는 ‘베크리/매크리’로 ‘무크리=고구려’라는 말이고, 8세기 투르크어로는 ‘고구려/발해’를 ‘뵈클리(Bokli)’라고 적었으며, 후대의 투르크인들은 이를 ‘마크리(Makri)’라고 했다. 거기서 포고리 옹순은 마침내 자신의 나라 이름(號)을 만주(滿洲)라고 하고, 청나라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건주(建州)라고도 하는데, 이 땅은 함경북도 회령과 두만강 건너의 길림골(吉林省) 일대다.” [‘건주(建州)’는 ‘칸(建)의 땅(州)’이라는 뜻이다. 곧 여진-만주는 칸의 땅이라는 말이다. <고려사>에서 왕건(王建)과 그 아버지 용건(龍建), 할아버지 작제건(作帝建)의 이름에 나오는 ‘건(建, 옛소리 ‘카안’)’을 ‘각간(角干, 干, 곧 왕)’이라는 뜻이라고 쓴 것과 같다]

아직 한 가지가 더 남았다. 포고리 옹순이 악다리성에서 만났다는 ‘삼성(三姓)’은 과연 어떤 종족인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 역시 <조선왕조실록> 태조 4년조의 기사에 나와 있다. 기사는 “…여진(女眞)은 알타리(斡朶里) 두만(豆漫) 협온(夾溫) 맹가 첩목아(猛哥帖木兒)…(알타리 투만 아래 19마을과 마을장 명단 생략/필자 주)이며, 올랑합(兀郞哈)은 토문(土門)의 괄아아팔아속(括兒牙八兒速)이며, 혐진 올적합(嫌眞兀狄哈)은 고주(古州)의 괄아아걸목나(括兒牙乞木那), …남돌 올적합(南突兀狄哈)은 속평강(速平江)·남돌아라합백안(南突阿刺哈伯顔)이며, 활아간 올적합(闊兒看兀狄哈)은 안춘(眼春)·괄아아독성개(括兒牙禿成改) 등이 이것이다”고 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이들 ‘삼성(三姓)’은 태조 이성계의 속민 명단에 들어 있는 함경도 땅과 그 이웃 지방에 퍼져 살던 알타리(斡朶里)·올량합(兀良哈)·올적합(兀狄哈)이라는 세 여진(三女眞) 부족이다.


▎명 나라 때의 여진 무사도. 사나운 기개가 엿보인다. / 사진·중앙포토
기록에서 이들 여러 여진(女眞) 부락을 대표하는 대명사를 기준으로 분류해 보면 24부락은 오직 3부류로 정리된다. ‘알타리(어두리)=오도리=악다리(어두리)’, ‘올량합’, ‘올적합’이 그것이다. 이들 청 시조의 백성 가운데 오도리 계라고 할 수 있는 만주족은 오늘날 중국에서 약 1000만 명이 살고 있다. 올량합은 ‘오랑캐’의 어원으로, 몽골어로는 ‘오랑카이’이며, 오늘날에도 몽골과 러시아령 투바 등지에, 올적합은 두만강 건너 연해주와 하바로프스크 주에서 우디게이(Udighei) 족으로 살아간다. 조선 태조 대에 함경도와 두만강 건너에 살던 ‘세 여신(三女眞)’ 부족, ‘삼성여진(三姓女眞)’의 후예들이다.

그런데 이 ‘삼성여진’은 우리 역사 및 우리 민족과 어떤 관계였을까? 우리는 오늘날 ‘여진(女眞)’을 우리 민족과는 전혀 다른, 혹은 별 관련 없는 종족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조선왕조실록> 태조4년의 지록은 우리의 생각이 올바르지 못함을 알려준다. <태조실록>은 이들 ‘삼성여진’ 각각에 포함된 부락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진(女眞)은 알타리…오량합…올적합 등이 이것이다. 임금이 즉위한 뒤 적당히 만호(萬戶)와 천호(千戶)의 벼슬을 주고, (여진인) 이두란(李豆闌)을 시켜 여진을 초무하여 피발(被髮, 헝클어진 머리)하는 풍속을 고쳐 모두 관대(冠帶, 갓과 허리끈)를 띠게 하고, 금수와 같은 행동을 고쳐 예의의 교화를 익히게 하여 우리나라 사람과 서로 혼인하도록 하고, 복역과 납부를 편호(編戶, 백성, 신민)와 다름이 없게 하였다.”

‘삼성조신(三姓女眞)’의 백성을 조선 백성으로 간주했다는 말이다.

“동북(東北)은 만물이 피어나는 곳”


▎20세기 초의 우디게이족. / 사진·중앙포토
<만주실록>은 청 시조 ‘포고리 옹순’이 오늘날 회령 경내의 한 마을인 ‘악다리성’에 와서 살면서 ‘삼성여진’ 부족의 추대를 받아 그 임금이 되고, 그 지방 백리의 딸을 아내로 맞아 살면서 나라 이름을 ‘만주’라고 하고 청나라의 시조가 되었다고 했다. 반면 <조선왕조실록> 태조 4년 기록은 “여진은 알타리 두만 협온 맹가 첩목아 등이 그것이다”라고 하여 ‘협온 맹가 첩목아’를 모든 ‘삼성조신’ 마을의 수위에 두어, 이 인물이 부족장의 위치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두 기록의 내용은 정확히 일치한다.

‘동 맹가 첩목아(童猛哥帖木兒)’의 이름과 칭호를 태조 4년의 기록에서는 ‘알타리(斡朶里) 두만(豆漫) 협온(夾溫) 맹가 첩목아(猛哥帖木兒)’라고 적었다. ‘협온 맹가 첩목아’는 ‘관칭+이름’의 구조로 된 말이다. 여기서 ‘협온(夾溫)’의 옛 소리는 ‘카간’이다. 즉 ‘협온 맹가 첩목아’는 ‘카간(夾溫) 멍커 테무르(猛哥帖木兒: 몽골 만주식 발음으로 맏것, 맏이, 장남)’라는 뜻이다. 여진어 관칭 ‘카간’은 우리 옛 말 ‘각간(角干)’ 또는 ‘가한(可汗)’에서 온 말이고, 몽골어로도 ‘가한(可汗)’이며, 금대의 여진어로는 ‘캉안=카안’으로 발음됐던 ‘항안(杭安)’이며, 만주어로는 ‘한(汗)’이다. 이는 ‘베일러(貝勒)’와 함께 ‘왕자’ 또는 ‘군주’를 이르며, 곧 ‘임금(主)’을 나타내는 말이다. <청태조무황제실록>도 포고리 영웅에 관해 분명히 ‘오랑캐 나라의 임금(夷國主)’이라는 표현을 썼다.

곧 맹가 첩목아(멍커 테무르)는 포고리 옹순의 ‘악다리성-삼성여진’을 통치한, <만주실록>에서 말하는 ‘임금’이자 다른 사서가 말하는 여진인들의 ‘베일러’, 즉 군주였다. 그와 그 백성 ‘삼성여진’은 동시에 동시대 인물인 조선 태조 이성계의 ‘편호(編戶)’, 곧 조선의 신민(臣民)이었다.


▎1900년대 만주족. / 사진·중앙포토
이상에서 보듯 ‘나무꾼과 선녀’ 설화는 함경도 여진 지방의 지배자이자, 조선 태조 이성계의 지방장관이었던 청나라 시조 아이신교로 포고리 옹순의 탄생신화인 ‘세 선녀’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포고리 옹순은 백두산 천지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발원해 동으로 흐르는 두만강을 따라 내려가 회령에 정착해 삼성여진의 군주가 되어 만주의 시조가 되었다. 그는 조선의 북방 여진의 군주이자 태조의 신민이었다. 그의 6대손인 누르하치가 중원을 장악한 청나라를 건국한 것이다.


▎여진과 조선의 임금이었던 조선 태조 이성계. / 사진·중앙포토
조선 후기의 문신 성해응(成海應)은 1840년(헌종 6)께 간행한 자신의 저서 <연경재전집외집(硏經齋全集外集)>의 ‘역대제왕세계보(歷代帝王世系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동과 요서(遼東西)는 강하고 용맹하기가 비할 바가 없다. 동한(東漢) 이후 장성(邊塞)을 쳐들어가 중국의 걱정거리가 된 자(爲中國患者)는 고구려(高句麗)·선비(鮮卑)의 무리다. 송(宋)나라 뒤에 이르러서는 곧 흑수여진(黑水女眞)의 족속(금 왕조)이 중국(中國)에 들어가 대강(大江)의 이북을 점령했다. 야인(野人) 여진족(女眞之族)이 중국(中國)에 들어가 천하(天下)를 통일(混一)했다. 이를 보니 천지의 기(天地之氣)는 바로 동북(東北)에 있도다. 동북(東北)은 만물이 피어나는 곳(物之所發)이다.”

결국 ‘중국(中國)’을 다스린 자는 바로 함경도 출신의 우리 백성이었던 것이다.

*다음 회에서는 ‘포고리 옹순(布庫里雍順)’을 왜 ‘알타리(斡朶里) 두만(豆漫) 협온(夾溫) 맹가 첩목아(猛哥帖木兒)’로 보는가? 또 ‘선녀’로 표상된 그의 어머니는 실존인물로서 과연 누구인가를 살펴본다.

전원철 - 법학박사이자 중앙아시아 및 북방민족 사학가.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법학을 공부했다. 미국 변호사로 활동하며, 체첸전쟁 당시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현장주재관으로 일하는 등 유엔 전문 기관에서도 일했다. 역사 복원에 매력을 느껴 고구려발해학회·한국몽골학회 회원으로 활약하며 <몽골제국의 기원, 칭기스 칸 선대의 비밀스런 역사> 등 다수의 역사 분야 저서와 글을 썼다.

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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