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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리포트] 트럼프 시대, 김정은의 선택은? 

핵· ICBM으로 위협 ‘협상가’ 트럼프와 대화 모색 가능성도 

박용한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김정은 위원장은 새해 벽두부터 신년사를 통해 핵무기와 ICBM 개발 의지를 내보이며 협박성 메시지를 내놓았다. 이에 미국은 ICBM 격추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트럼프의 한 핵심 참모는 대북 선제공격 옵션까지 언급했는데…. 트럼프 시대 김정은의 대미전략은 어떻게 전개될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1월 1일 신년사에서 핵무기 개발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북한은 지난 1년 동안 핵실험을 두 번이나 실시하며 위협을 고조시켰다. 미국 차기 대통령에 트럼프가 당선되는 이변이 연출되며 한미동맹과 동북아 질서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급증했다. 주변국의 상황도 복잡하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반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 ‘군사정보보호’ 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 등 역사적 난제를 해결하기보다 위기를 증폭 시키고 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의 복잡하고 위험한 정세는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쌓이고 있다.

2017년 새해 벽두부터 북에서 날아온 것은 협박성 메시지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녹화중계되는 신년사를 통해 올해에도 핵무기 개발 의지를 강조했다. 북핵 위기는 여전히 계속된다는 것을 새해 첫날부터 각인시켰다. 태평양 건너편에서 취임식을 준비하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도 그냥 웃어넘기지 않았다. 북한의 주장을 일축하면서 본격적인 세력 대결을 암시했다.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트럼프 시대에 ‘마지막 도박’을 시작한 김정은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또 그런 북한을 바라보는 ‘스트롱맨’ 트럼프의 대응 전략은 뭘까?

북한 당국은 매년 1월 1일이 되면 신년사에서 전년도에 대한 평가와 새해 노동당의 정책을 대내외에 공표한다. 일반적인 국가에서 대통령이 발표하는 연두교서와 비슷하다. 북한 연구자들이 새해 첫날부터 김정은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정은이 육성으로 발표한 신년사는 정치·경제·군사·사회문화·대남·대외 등에 관한 내용을 순서대로 나열했다.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뿐 아니라 한국의 국내정세도 언급했다. 대외분야의 핵심은 핵문제와 대미관계로 이뤄졌다. 매년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작은 변화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전년도와 다르게 강조한 부분이 있다면, 이 부분이 북한의 정책적 의도를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북한은 올해 신년사에서 대미관계와 남북관계 방향을 제시하며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의지를 강조했다. 신년사는 지난해 두 차례 반복한 핵실험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 제7차 당 대회 개최, ‘200일 전투’와 ‘70일 전투’의 성과를 강조했다. 그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국방력 강화의 획기적 전환’이라는 표현 아래 강조한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있다. 북한은 구체적인 성과를 열거하면서 특히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핵 무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과 선제공격 능력을 계속 강화하겠다”며 구체적인 핵무기 개발 능력을 과시했다. 김정은은 신년사를 통해 트럼프에 맞서는 기조를 보여줬다. 트럼프 정권이 안착하기 전에 군사력 완성이 가능하다고 과시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동안 “미국을 위협하는 세력은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제압하겠다.”고 수차례 밝혔다.
그러나 북한의 바람과 달리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 정보당국자는 “김정은의 조급증이 드러난 신년사였다”고 평가하며 “북한의 미사일 개발 수준이 수개월 안에 완성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1월 11일 공개한 ‘2016 국방백서’에서 북한의 개발능력 한계를 지적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평가하면서 2014년에는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추정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한 백서에서는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로 위협의 수준을 낮췄다.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은 “북한의 최근 실험결과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사항을 반영해 북한의 ICBM 능력을 현실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북한은 자체적으로 개발 중인 ICBM(KN-08 또는 KN-14) 실험을 여러 차례 했지만 실패했다. ICBM의 2·3단계 엔진에 사용하는 무수단 미사일 실험을 총 8회 실시했는데 그중 단 한 번만 성공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트럼프가 본격적으로 대북 외교압박 또는 군사행동을 시작하기 이전, 각료 인선이 마무리되는 3월까지를 골든타임으로 보고 있다. 그때까지 협상을 마무리하거나 그럴 수 없다면 유리한 조건이라도 만들어놓자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의 신년사는 북한의 이런 의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탈북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는 신년사 분석보고서에서 “한국과 미국에 구체적인 핵협상 방안을 제시했다”면서 “김정은의 최대 관심은 핵과 미사일문제이며 핵보유국의 지위를 받아낸다는 전략이 실패할까 봐 초조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런 초조함이 3월에 예정된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지 않으면 핵실험이나 ICBM 발사 실험을 할 수 있다며 한국과 미국을 협박하는 김정은의 신년사로 이어진 것이다.

美에 실질적 위협 수단인 ICBM 개발 박차


▎1월 10일 뉴욕에서 폭스뉴스와 인터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오른쪽). 트럼프는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고 중국이 그 문제를 풀 수 있는데 그들은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취임을 앞둔 트럼프는 북한의 협박성 신년사를 즉각 맞받아쳤다. 김정은이 신년사를 발표한 하루 뒤인 1월 2일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그런 일(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어떤 세력도 좌시하지 않겠다”고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다. 무력을 사용해 제압하겠다고 수없이 반복하기도 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부장관도 1월 6일 현재 진행중인 대북제재의 국면을 평가하면서 “북한에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압박을 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러나는 오바마 정부의 고위인사마저 온건정책의 여지를 부정한 것이다. 더구나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국의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 일본의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성 사무차관과 ‘제6차 외교차관협의회’ 직후 마련된 공동기자회견에서 한미일의 공조가 굳건하다는 것도 보여줬다.

북한은 1월 8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외무성 대변인 문답에서 미국을 규탄했다. 북한이 ICBM을 개발한 이유는 “북한에 대한 자주권과 생존권을 말살하고자 적대정책에 매달려온 미국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핵무기 고도화를 진척시켜 수소탄을 개발하고 표준화, 규격화된 핵탄두를 보유했다”면서 “최고수뇌부가 결심하는 임의의 시각, 임의의 장소에서 발사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 수위를 높였다. 대북제재 국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또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해 미국의 정책변화를 촉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미국 정계의 반응은 강경발언 일색이다. 미국 공화당 소속 데빈 누네스 하원 정보위원장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북한은 세계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정권”이며 “트럼프 당선인은 북한을 단호하게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도 NBC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의 ICBM이 미국이나 동맹을 위협한다면 격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밤 당장 전투가 벌어져도 승리할 수 있다”는 전투 슬로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정권교체기에 빈틈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다만, 미국 정가의 이런 강경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ICBM 개발을 지속할 경우 미국은 대응방안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핵무기 소형화 수준에 매우 근접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수소탄 개발에 성공했다는 북한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증폭핵분열탄을 개발하고 있으나 폭발 규모를 보면 6kt(1kt=TNT 1000t 폭발규모)에 그쳐 일반적인 수준(50kt 이상)에는 매우 미달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협이다. 폭발규모가 10kt 수준의 소형화된 핵탄두 개발에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다만, ICBM 개발이 완료되어야 마침내 잠재적 위협을 넘어 실존하는 위기가 된다. 북한은 지금도 핵무기를 주한미군을 상대로 사용할 수 있겠지만 미국이 체감하는 본토에 대한 위협과는 수준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미 본토에 직접 위협을 가할 수 있는 ICBM 개발에 북한이 열을 올리는 이유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북한은 핵무기 보유와 북ㆍ미 협상 유도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다목적 전략을 구사한다”고 해석했다.

지난해 9월 마이클 멀린 전 미국 합참의장은 “미국은 자위적 측면에서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말해 선제공격론의 불씨를 키운 적이 있다. 물론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능력에 근접하고 위협한다면”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트럼프 선거캠프에서도 이에 동조한 바 있다. 당시에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취임에 즈음해 더욱 구체적 발언이 나왔다. 1월 12일 트럼프가 국방장관으로 지명한 제임스 매티스는 “어떤 것도 논의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저지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대북 선제공격 옵션을 암시했다.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열린 장관 인준 청문회에서 한 이 발언은 향후 트럼트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미 1월 8일 북한은 “선제공격 능력을 계속 강화해나갈 것”이라며 미국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선제공격론은 흔히 압도적인 군사력, 외과수술식 폭격이 가능한 첨단 전력을 보유한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옵션이고 종종 언급되기도 한다. 사실 미국이 아닌 다른 어떤 국가도 쉽게 성공 가능성을 말하기는 어렵다. 한마디로 미국이니까 가능한 군사전략이다. 미국은 열쇠구멍도 본다고 해서 ‘키홀’이라 불리는 첩보위성을 운용하고 있다. 또 냉전시기 옛 소련을 정찰했던 ‘U-2’와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까지 다종의 정보수집 자산으로 북한을 실시간 감시할 수 있다. 여기에 정밀유도무기를 싣고 괌에서 이륙해 2시간 내에 북한 전역을 폭격할 수 있는 ‘B-1B’를 비롯한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폭격기 ‘B-52H’, ‘B-2A’, ‘F-22’는 이미 수 차례 한국을 다녀갔다. 창문 크기의 목표물에 정확하게 명중하는 유도무기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미군과 함께 근무하는 한 당국자는 2003년 이라크전쟁 중 사담 후세인의 은신처를 공격한 ‘Big One Operation’ 작전을 거론하며 “정보 확인, 결심, 타격까지 1시간 내에 가능하다”고 전한다.

뿐만 아니라 의도된 바와 다르게 대규모 충돌이나 전쟁으로 확산되더라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다면 선제공격론을 제시할 수 없다. 한·미 연합군의 대 북한 전쟁 우위는 “여러 번 실시된 워게임에서 확인된다”고 관계자는 말했다. 또한 “오히려 북한이 선제공격을 시도할 경우 사실상 정권의 붕괴를 각오해야 한다”고 전했다. 최근 우리 군 당국은 유사시 북한의 전쟁지도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을 수행할 특수임무여단을 올해 창설한다고 밝혔다. 1월 4일 국방부는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에게 ‘2017년도 업무계획’을 보고하면서 애초 계획보다 2년을 앞당겨 부대 창설을 완료하겠다고 말했다.

핵 동결 조건으로 국면전환 가능성도


▎트럼프의 핵심참모인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 후보자는 1월 12일 상원 군사위원회 인준청문회에 참석해 “북핵 위협과 맞서 동맹국과 협력을 긴밀히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미 당국의 선제공격론이 아무 조건 없이 고려되는 것은 아니다.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1월 10일 “북한의 ICBM이 미국이나 동맹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굳이 격추하지 않고 비행정보를 보겠다”며 한 발 물러났다.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전 나토군 사령관도 “미국은 북한이 핵역량을 보유했다는 것만으로 선제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과거에도 선제공격을 고려했지만 결국 협상을 통한 해결 방법을 선택했다. 클린턴은 1994년 북한 핵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식’ 정밀폭격을 검토했다. 북한이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사찰 거부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해 더는 대화로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물론 이듬해 ‘제네바 합의’로 위기를 벗어났지만 북핵문제는 재발했다. 그러나 공격을 통한 제거 방안을 제외했던 클린턴은 끝까지 대화를 선호했다. 더구나 2000년에는 김정일 특사로 방미한 조명록을 만났고, 2주 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내기도 했다. 부시(Bush Jr.)는 2001년 취임 직후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으로 이전 행정부의 전략을 모두 부정했다. 2002년에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비난하고 김정일 정권을 축출한다는 목표도 갖고 있었다. 미군은 2003년 후세인을 체포해 ‘독재자’ 제거를 실제로 보여줬다. 당시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아미티지는 부시가 외국 정상들에게 원색적인 표현으로 김정일을 혐오했다고 회고한다. 다만, 강경정책은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6자회담’을 활용한 협상으로 기울었다. 2009년 집권한 오바마도 ‘전략적 인내’를 지속하며 선제공격이나 무력 사용은 배제했다.

북한 핵실험을 억제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트럼프는 집권 이후 오바마를 부정하는 ‘ABO(Anything But Obama)’가 예상된다. 북한을 혐오하는 트럼프의 개인적 인식도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도 대통령의 개인적 인식에 영향받았다. 다만, ‘협상가’ 트럼프가 북한과 어떤 거래를 할지 알 수 없다. ‘북핵 불용’은 역대 미국 행정부의 공통된 견해였지만 최근 ‘현존 핵무기’와 ‘미래 핵무기’를 구분하려는 조짐이 보인다. 미국의 대북정책, 특히 ‘북핵정책’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롤러코스터’처럼 급변했다. 어떤 변화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미국이 협상에 나서더라도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한다. 첫째, 완전한 핵 폐기와 ICBM 개발 중단을 주장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무력을 사용하자는 주장. 그리고 둘째, 일단 동결 수준에 만족하더라도 협상을 통해 국면전환을 추진하자는 의견이다. 1월 20일에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트럼트는 4년 뒤 재선하기 위해 이번 임기 내에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이 때문에 무력사용보다 정치·경제적 부담이 적은 협상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집권 후반기에 들어 재선을 의식한 트럼트가 북한과 협상에 본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이런 가능성을 생각하고 평화공세 전략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 산하 연구원은 전반적으로 북한이 2018년 전반기에는 평화공세로 대화국면을 조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말 ‘2016년도 정세평가 및 2017년도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하고 내년도 북한정세를 전망하면서 “미국이 대화를 거절할 경우 북한은 결국 한국 또는 중국과 먼저 만나고 북·미 대화의 기회를 엿볼 것”이라며 다양한 시나리오를 전망했다.

미국은 북한 ICBM 발사시설이나 핵무기 개발시설에 대한 선제공격 또는 협상 중에서 유리한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협상에 나선다면 적극적으로 결과를 유도하면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일부 허용할 수도 있다. 물론 미국 내에서도 찬반 주장이 격돌할 것이다. 미국의 협상 조건은 동결 수준에 만족하겠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동결 단계 이후 폐기 약속을 거부할 경우 마땅한 제재조치가 없다. 다시 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가거나 동결 수준에 정체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협상 경험을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북학이 실전 배치한 무수단 미사일. 수차례 시험발사에서 실패를 거듭해 실효성 논란도 일었다.
이런 논쟁이 미국만의 문제라면 논란의 여지가 적다. 그러나 한국의 핵심적인 국가이익, 안보위기와 연결된다. 미국이 만약 북핵 동결 수준에서 협상에 만족할 경우 동맹 간 불화가 예상된다. 안보 관련 관계자는 “미국은 비확산만 보장된다면 북한의 핵 보유도 용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 8년간 ‘전략적 인내’로 북한 핵 문제를 방치할 때 이미 한국과 미국의 북한 핵 전략은 불일치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완전한 폐기가 아니라면 협상에 만족하기 어려울 것이다. 천영우 전 대통령 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이 평화공세로 나오고 미국은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할 경우 동맹국 간 균열이 우려된다”면서 “한국의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자국의 심대한 국가이익을 논의하는 강대국 정책에서 때때로 소외된 경험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명과 왜가 조선의 영토를 분할 통치한다는 ‘할지(割地) 논쟁’부터 필리핀과 조선을 주고 받은 미국과 일본의 ‘가쓰라-테프트 밀약’ 등 다양하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1994년 북핵 위기에서 미국이 북한 폭격을 논의하던 순간 한국의 대표는 그곳에 없었다.

김정은의 시간 벌기 전술 경계해야


▎북한은 지난해 6월 23일 중장거리 전략탄도로켓 화성-10(무수단 미사일) 시험발사(6차)에 성공했다고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발사 성공을 자축하며 관계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가시화되면서 국방부는 ‘국방백서’에서 통일 관련 표현을 수정했다. 지난 2014년 백서에서는 “평화통일을 뒷받침한다”면서 “평화정착을 이룩하여 평화적 통일에 이바지한다”고 기술했다. 반면 올해 발행된 백서는 “핵과 전쟁의 공포가 없는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어내고”라면서 통일보다 핵과 전쟁을 강조했다. 그만큼 위기가 커졌다는 의미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평화와 통일은 궁극적 목표이지만 지난해 북한이 핵실험을 두 차례나 실시했기 때문에 임박한 위협을 우선적으로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한국의 대선 정국에서 기존 대북정책의 문제점을 인식하는 걸 넘어 북한의 평화공세에 지나치게 동조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남북대화 또는 북미대화는 비핵화 과정과 별개로 진행할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해 실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이준희 박사는 “평화를 주장하면서도 핵무기를 개발하는 북한의 이중적인 속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완료가 임박한 시점에 전략적 판단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다. 대북협상에 나섰던 한 정부 당국자도 “결과적으로 북한의 WMD 개발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면서 “과거처럼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를 쓸 수 있다. 그만큼 유래가 오래되었고 해석도 다양하다. 또 여기에 참여하는 행위자도 다양하다. 만장일치가 아니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자주 어긋났다. 일본도 6자회담 결과와 다르게 독자노선을 여러 번 걸어갔다. 러시아도 나름의 이해를 계산하고 있다. 북한문제,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를 자처하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는 현실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주변국의 이해관계가 때로는 한국의 절박한 필요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낸다. 미국은 중국을 움직이려 하지만 쉽지 않다는 걸 한국도 안다.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북한의 핵무기를 마주한 한국은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보려 한다. 비록 많은 비용이 들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제3자에게는 남의 문제로 치부될 뿐이다. 오히려 적반하장식 액션을 보일 때도 종종 있다. 지금과 같은 엄중한 시기에 전략폭격기로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는 중국 당국의 행태가 한 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핵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하자면 무엇보다 대화에 나서려는 북한의 움직임이 가시화돼야 한다. 사실 북한 자신도 현 국면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북제재 국면에 힘겹게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백도 했다. 이번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 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인민의 참된 충복, 충실한 심부름꾼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데서 그 일단이 엿보인다. 이를 두고 정영태 동양대 교수는 “김일성 시대 인민대중을 중시하며 이를 명분으로 난관을 타파하려던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고 평했다. 트럼프 시대를 맞은 북한이 협박전술이 아닌 진정성 있는 대화의 노력을 과연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 주목된다.

- 박용한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201702호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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