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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세] 트럼프 정권 출범과 아시아의 혼돈 

“이제 중국은 제 힘으로 대처하라”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트럼프, 아베 정상회담에서 안보·경제 분야 파국에 가까운 견해차… 중국·러시아가 아시아에서 패권 휘둘러도 미국은 관망 가능성

▎일시 귀국명령을 받은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1월 9일 김포공항으로 들어서고 있다.
1월 9일 정오를 조금 넘은 시각, 도쿄의 하늘 관문인 하네다 공항에는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연말연시를 해외에서 보내는 인기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가 많은 일본에서는 새해 벽두 취재진이 공항에서 장사진을 치는 일은 말하자면 연례행사인 셈이다.

그러나 이날 공항에 몰려든 취재진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연예인도, 운동 선수도 아니었다.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였다. 대사는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기자단에 둘러싸였다. 하지만 날아드는 질문에는 입을 꾹 다문 채, 대기하던 리무진에 올라타고 외무성을 향했다.

이날은 모리모토 야스유키 주부산총영사도 귀국했다. 두 사람은 기시다 후미오 외무대신으로부터 ‘일시귀국 명령’을 받았다.

이날로부터 4일 전인 1월 5일. 연말연시의 긴 휴가를 마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시무식’이 일본 전역에서 열리는 날이었다. 자민당 총재인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자민당 본부에 나가 자민당 소속의 국회의원들 앞에서 편안한 분위기로 신년인사를 했다.

“닭띠 해는 재수가 좋은 해입니다. 12년 전 닭띠 해에는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했습니다. 24년 전 닭띠 해는 내가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된 해입니다. 올해도 정초부터 3일 동안 맑게 갠 날씨 덕분에 설날을 지낸 호텔에서 매일 아름다운 후지산을 바라보면서 일본을 세계의 중심에서 빛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산 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에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꽃들이 놓여 있다.
아베 총리는 점심식사를 마친 후 자민당사와 가까운 호텔 뉴오타니에서 경제 3단체가 공동주최하는 신년축하파티에 참가해,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의 경영자들 앞에서 다시 미소 가득한 얼굴로 신년 축사를 했다.

“1월 2일 사카키바라(사카키바라 사다유키) 경단련 회장과 올해 첫 골프를 쳤습니다만, 아주 좋은 스코어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사카키바라 회장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올해도 꼭 여러분들과 함께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본’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총리 관저로 돌아간 아베 총리는 지금까지 기분 좋은 정월 분위기에 취해 있던 얼굴이 일순 굳어지면서 잇달아 외교 분야의 간부들을 관저로 불러 모았다. 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 국장, 기타무라 시게루 내각정보관, 스기야마 하루키 공안조사청 차장, 아키바 다케오 외무성 외무심의관, 카나쓰기 겐지 아시아대양주 국장, 아사카와 마사츠구 재무성 재무관 등등.

트럼프 정부 탄생은 미국발 새로운 ‘9·11’ 테러사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오른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1월 17일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만났다.
아베 총리는 간부들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도대체 한국은 정초부터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일한 위안부 합의(2016년 12월 28일)가 1년이 지나는 동안 일본 정부는 10억 엔을 지불하며 성실하게 합의사항을 이행해왔다. 그런데도 한국은 1년이 넘도록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채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상을 철거하지 않고 있다. 그뿐인가! (12월 30일) 또다시 부산에 새로운 위안부상을 설치하기까지 했다. 일한 합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적이며 동시에 불가역적 해결’이 아니었던가? 일본으로서는 이제 인내의 한계에 도달했다!”

이날 총리 관저에서는 한국에 대한 ‘4개 항목의 즉각적인 대항조치’를 결정했다.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대사와 모리모토 야스유키 주부산총영사의 일시 귀국 ▷일한 통화스와프 협의 중단 ▷일한 차관급 경제 협의 연기 ▷부산 총영사관직원에 의한 부산시 관련 행사 참가 보류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가 들려준다.

“실제로는 더 엄격한 대항조치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일본 정부로서는 우선은 항의했다고 하는 형식이 한국에 전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해서 그중에서 가장 가벼운 조치를 4가지 항목으로 발표한 것이다. 예상대로 한국에서 큰 반향이 있는 듯하다. 한국의 보도들은 수시로 총리 관저에 보고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일본 정부의 이번 ‘대항조치’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확실히 부산에 소녀상이 설치된 것은 지난해 말이었지만, 지난 1년 동안 한국측이 서울의 위안부상을 철거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 번도 이번과 같은 형태의 항의 표시를 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는커녕, 마치 소녀상 문제는 양국 간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일본은 한국과 북한 문제를 둘러싼 외무 당국 간부 모임을 열었고, 한·중·일 외무장관 회담을 열었으며, GSOMIA(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을 체결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집무 정지 조치에 의해 연기가 되어버렸지만, 작년 12월에는 도쿄에서 한·중·일 3개국 정상회담 개최도 예정됐었다.

즉, 아베 정권의 돌연한 분노는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왜 정초부터 갑자기 한국에게 달려드는 것인가? 나는 취재를 계속하는 동안 하나의 ‘추측’에 이르렀다. 지금으로서는 ‘추측’에 지나치지 않지만, 전혀 잘못된 추측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설명하자면, 일본 정부의 신경질적인 반응은 1월 20일 출범하는 미 트럼프 정권에 대한 ‘불안’에서 오는 초조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번과 같은 종류의 ‘초조함’을, 2개월쯤 전에 일본의 정부청사가 밀집한 도쿄 가스미가세키에서 느낀 적이 있다. 지난해 11월 9일 오후, 미국의 모든 매스컴이 ‘트럼프 새로운 대통령 탄생’을 속보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 시점부터 나는 각 관청을 돌며 관료들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예상을 뒤엎고, 클린턴 후보가 아닌 트럼프 후보가 승리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이때 일본의 관료들에게서 들은 말은 다음과 같은 원망과 신음소리였다.

“이번 일은 미국발 새로운 ‘9·11’ 테러사건이다. 2001년은 미국의 외부에서부터 테러가 가해졌지만, 15년 후인 지금은 미국 내부에서 지뢰가 작렬한 것이다. 게다가 그 결과, ‘과격파 집단’이 화이트하우스의 ‘점거’에 완전히 성공해버린 것이다.”

“지난 여름 영국이 EU로부터 탈퇴를 확정했을 때, ‘이것으로 세계는 서로를 증오하는 암흑의 시대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하는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선거로 인한 충격은 그때의 50배는 된다.”

아베의 ‘지구본 외교’도 흔들


▎욱일승천기를 단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군비증강 압력을 받는다.
가스미가세키 이상으로 긴박감에 휩싸인 곳이 총리 관저였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이날 외무성의 스기야마 신스케 사무차관, 이시카네 기미히로 종합외교정책국장, 모리 타케요시 북미국장 등을 잇달아 관저에 호출해서 화풀이를 했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건가! 외무성에서는 지금까지 일관되게 ‘클린턴이 틀림없이 승리한다’고 보고하지 않았나! 이야기가 왜 틀리냔 말이야!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나 일·미동맹은 앞으로 어떻게 돼버리는 거야!

어쨌든 한시라도 빨리, 특히 시진핑 중국 주석보다 먼저 트럼프 차기 대통령과 전화를 연결하도록 하게! 이어서 하루 빨리 방미할 수 있도록, 특히 시 주석보다 앞서서 트럼프 차기 대통령과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아베 총리는 평소부터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최대의 라이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때문에 ‘지구본 외교’라고 스스로가 명명한 아베 외교는 기본적으로 ‘중국에 대항한다’는 것을 전제로 전략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 전제에는 미국이라고 하는 ‘두목’이 있어야 가능했다.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수지가 맞지 않으면 미군을 아시아에서 철수시킨다”, “북한의 핵개발이 위협이라고 생각한다면 일본도 핵무장을 하면 된다”, “대통령 취임식 날에 TPP를 사퇴할 것이다” 등등, 아베 정권에 있어서 도저히 순순히 들어 넘길 수 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때문에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 탄생’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빨리 트럼프 차기 대통령과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겠다’는 초조감에 사로잡힌 것이다.

2015년 6월 트럼프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을 때, 아베 총리는 마치 특수한 육감이라도 작용한 것처럼 “이 남자와 빨리 파이프를 만들라”고 외무성에 지시했다. 하지만 외무성은 “트럼프는 정치 경험도 없이 그저 유명세를 타고 싶어서 나온 후보자로, 17명이나 난립하는 공화당 후보자 중 가장 가능성이 낮은 후보”라고 총리에게 진언했다고 한다. 총리 관저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아베 총리가 대통령 선거 직전인 2016년 9월, 유엔 총회에 맞춰서 미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외무성은 ‘클린턴 후보만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트럼프 후보까지 만나게 되면 클린턴 후보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가 있습니다’라며 아베 총리를 만류했다. 그래서 아베 총리는 클린턴 후보와 TV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악수를 하며 ‘양국의 확고한 동맹 관계를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가고 싶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그래도 아베 총리는 본인의 간절한 희망으로 트럼프와 친한 재팬소사이어티의 윌버 로스 회장과도 살며시 면회를 가졌다. 로스 회장이 트럼프 정권의 상무장관으로 내정돼 어떻게든 면목을 유지했다.”

슬프게도, 일본 외무성에 있는 약 6000명이나 되는 직원 중, ‘도널드 트럼프’라고 씌어진 명함을 가지고 있는 외교관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면식이 있는 외교관조차 거의 없었다. 외무성 관계자가 다음과 같이 밝힌다.

“2016년 봄, 트럼프 후보가 공화당의 공식후보가 될 것 같다고 전해지자 아베 총리의 지시로 ‘트럼프 후보와 친한 일본인’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떠오른 인물은 단 두 사람밖에 없었다. 한 사람은 후쿠자와 다케시 미쓰비시지소(미쓰비시 계열의 부동산회사) 명예고문으로, 일본의 거품경제 때, 미쓰비시지소가 록펠러 빌딩을 매입하면서 트럼프와 서로 알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트럼프와 마지막으로 골프를 친 것이 20년도 더 지났다고 하니 제대로 된 파이프 역할은 기대할 수 없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트럼프가 라스베이거스에 소유하고 있는 카지노에 드나들면서 트럼프와 두 번에 걸친 전설의 명승부를 펼쳤다고 하는 일본인이다. 첫 번째는 그가 이겼는데, 화가 치민 트럼프가 한 번 더 승부를 요청하고, 결국 두 번째는 트럼프가 이겼다고 전해 들었다. 그런데 그 일본인을 조사해보니 야마나시 출신의 건설업자였는데, 이미 사망한 것이 확인되었다.”

즉, 1억2000명의 일본 국민 중에 트럼프 차기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미국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었다. 총리 관저 관계자가 계속해서 들려준다.

“결국, 뉴욕 주재의 경제산업성의 관료를 동원해서 최후 수단에 나섰다. 트럼프가 살고 있는 곳이 뉴욕의 트럼프타워 최상층인 66∼68층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래서 트럼프타워에 오피스가 있는 몇 안 되는 일본 업체에 신신당부를 해서 최상층에 올라가서 트럼프 가족과 직접 담판을 해달라고 한 것이다. 이 전술이 성공해 트럼프의 전화번호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11월 10일 아침, 아베 총리는 10여 분 동안 트럼프 차기 대통령과의 통화에 성공했다.”

트럼프 “나는 일본의 행동에는 간섭하지 않을 것”


▎2월 4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공식 서명식이 열렸다.
아베 총리는 “11월 19, 20일 페루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 참가하기 때문에, 그 직전인 17일에 뉴욕에 들러서 만나고 싶다”고 간절히 부탁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기분 좋게 “트럼프타워의 자랑인 맛있는 스테이크로 디너를 대접하겠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해서 11월 17일 저녁, 결국 아베 총리는 염원하던 트럼프 차기 대통령과의 면담을 성사시킨 것이다. 외국 정상 중에서는 최초이며, 동시에 현재까지 유일한 면담이 되었다.

일본 정부 관계자에 의하면, 먼저 TPP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양자간의 격론이 있었다고 한다.

“TPP는 미국의 국익을 손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거 기간 동안에 말한 대로 내가 대통령에게 취임한 날에 탈퇴할 것이다.”(트럼프)

“그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TPP는 미국의 국익에 일치하는 것으로, 자동차 분야에서 농업 분야까지, 일본이나 기타 참가국이 미국에 대폭 양보해서 타결한 것이다.”(아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TPP는 미국의 제조업과 고용을 파괴시키는 잘못된 협정이며, 누가 뭐라고 해도 즉각 탈퇴할 것이다.”(트럼프)

“TPP는 단순히 아시아·태평양 12개국 간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라, 앞으로의 아시아·태평양의 경제와 무역의 주도권을 중국이 아닌 미국과 일본이 가져오기 위한 전략적인 측면도 있다. 만약 TPP가 취소되면 아시아 패권은 명실공히 중국에 빼앗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으로서는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다. 그것은 미국의 국익을 생각해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아베)

“일본이 멈출 수 없다고 한다면 뜻대로 진행하면 되지 않은가? 나는 일본의 행동에는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트럼프)

결국 TPP에 관해서 양자 대담은 완전히 결렬됐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타워 방문 뒤 참석한 페루 APEC에서 TPP 12개 가맹국과 모임을 갖고 TPP를 계속 추진시켜갈 것을 확인했다. 이어 다음 방문지인 아르헨티나에서의 공식 일정을 마친 11월 22일 아침 기자회견을 열고 “TPP를 달성할 각오이며, 미국이 빠진다면 의미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기자회견이 끝난 18분 뒤, 트럼프는 자신의 SNS를 통해 다음과 같은 비디오 메시지를 발표했다.

“우리나라에 재앙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TPP로부터의 탈퇴 의사를 통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는 12월 15일 일본 국회에서 TPP를 비준을 밀어붙였다. 심야에 TPP법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을 때 아베의 얼굴에서 미소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두 사람 회담에서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안전보장과 관련해 아베는 트럼프에게 영어로 된 자료를 내보이면서 간절히 호소했다.

“일·미 동맹은 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구심점이며, 만약 일·미 동맹이 조금이라도 흔들린다면 아시아 전역의 패권을 중국에 빼앗겨버린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센카쿠 제도를 점령하고, 대만을 점령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는 혼란에 빠지고 아시아를 최대의 무역 거점으로 삼고 있는 미국의 국익을 손상시키는 결과가 된다.”

일본은 남중국해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는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아베 일본 총리가 12월 16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경제협력 회담에서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나는 군사 분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 때문에”라고 전제한 후, 회담에 배석한 마이클 플린 전 국방정보국장이 대신 설명하도록 했다. 플린 전 국장은 나중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됐다.

플린 전 국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과 일본의 동맹은 그레이트 파워와 로컬 파워의 관계에 있다. 트럼프 신정권 아래서 미국은 전 세계에서 억지력을 행사하는 그레이트 파워로 존속하되, 각 지역에서는 로컬 파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맹국에도 GDP의 2%를 기준으로 방위비 증액을 요구할 것이다. 미국은 필요한 무기와 군인을 제공하겠지만 그 비용은 로컬 파워가 부담하게 한다는 것이다.”

플린 전 국장이 설명한 것은 사실 오바마 정권 시절인 2012년 1월 미 국방부가 발표한 새로운 국방전략지침(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의 유지: 21세기의 국방 우선사항)에서 등장한 ‘오프쇼어 밸런싱(Offshore Balancing, 역외 균형)’의 전략을 보다 구체화한 것이었다.

동아시아에 관해서 설명하자면, 미군은 동아시아 지역의 동맹국에서 서서히 철수해 괌, 하와이, 앵커리지를 거점으로 활동한다. 유사시 동맹국에 미군이 병력과 무기를 지원하지만, 평상시에는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이 중국을 억제하고, 한국은 북한을 억제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4월 방일 당시, “센카쿠 제도의 방위는 일·미 안보에 포함된다”라고 밝힌 바 있다. 2015년 10월 이후에는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 요새화를 저지하는 ‘항행의 자유작전’을 감행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군과의 한미 합동 군사훈련 규모도 확대하는 등 아시아 관여를 오히려 강화해왔다.

그런데 트럼프 정권은, 다시 오프쇼어 밸런싱 전략을 들고 나온 것이다. 더불어 아베가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군사 요새화에 매진하고 있으며, 이 점이 아시아 지역의 큰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고 설명하자, 트럼프와 플린은 침착하게 다음과 같이 되물었다고 한다.

“걱정거리라면 왜 일본은 남중국해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는가? 왜 태평양 반대편의 우리나라 군대에만 의지하고 있는가?”

트럼프에게 있어서 일·미 군사동맹이란, 미군이 일본을 방위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미국의 무기를 끊임없이 구입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비쳤다. 때문에 아베는 2017년 1월 국회에서 미사일 방위 관련 비용으로 새롭게 1880억 엔의 예산을 추가하고 미국에 무기 구입을 약속했다. 그리고 나서 “일·미 동맹은 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요점”이라고 거듭 강조한 것이었다.

이 첫 번째 회담은 예정 시간인 45분을 훨씬 넘어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트럼프타워를 떠난 아베 총리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TPP는 이제 파국을 맞을 것이며 아시아 경제, 무역의 주도권은 중국 손에 넘어갈 것이다. 더불어 가까운 미래에 센카쿠 제도를 둘러싸고 일·중이 국지전을 벌인다고 해도 미군은 더 이상 지켜주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와의 첫 만남에서 희소식도 있었다. 아베가 일본 헌법 개정에 관한 지론을 폈을 때의 일이다. 트럼프는 태연하게 말했다.

“당신이 일본의 헌법을 개정하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하면 될 것이다. 나는 일본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

러시아에도 일본은 이미 ‘불필요한 카드’


▎지난해 8월 영유권 분쟁 해역인 센카쿠열도 인근을 지나는 중국 해경선.
이렇게 아베는 11월 23일 마치 부모에게 버려진 소년과 같은 심경으로 귀국했다.

계속되는 12월에도 ‘아베 외교’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12월 15일과 16일의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방일이었다. 아베는 당초, 북방 영토(쿠릴 열도)의 4개 섬 중, 적어도 홋카이도에 인접한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 섬을 러시아에서 되찾을 수 있도록 푸틴에게 약속을 받아내면서 2016년의 아베 외교를 결산하고 싶었다.

11월 9일 트럼프 후보가 승리함으로써 모든 계산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그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가 일본과의 교섭에 응해온 것은 일본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우크라이나 문제를 둘러싸고 G7(선진 7개국)로부터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숨구멍을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보다도 훨씬 슬기롭다”던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러시아는 2017년 1월 이후 미국과 직접 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러시아에 일본은 이미 ‘불필요한 카드’가 되어버린 것이다.

때문에 아베가 푸틴을 자신의 고향인 야마구치까지 초대해 공을 들인 ‘온천 회담’은 뜨거운 온천의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대단히 쌀쌀한 분위기로 치달았다.

당일 푸틴은 회담지인 야마구치에 2시간4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게다가, 마중 나간 아베가 “우리 고향 온천은 어떤 피로도 말끔히 씻어준다”고 하자 푸틴은 “(일본이 북방 영토 문제로) 지치지 않게 해주는 것이 최고”라고 빈정댔다. 그리고 북방 영토에 관해서는, 완전한 ‘제로 회담’으로 막을 내렸다.

아베는 계속해서 12월 26일과 27일 기시다 후미오 외무 대신, 이나다 도모미 방위각료를 데리고 하와이의 진주만을 방문했다. 이 방미는 5월에 오바마가 히로시마를 방문한 것에 대한 ‘답례 여행’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정은 전혀 다르다. 앞서의 총리 관저 관계자가 밝힌다.

“11월 페루 APEC에 갔을 때, 오바마가 대단히 험악한 얼굴로 아베가 트럼프를 만난 것에 대해 엄중 항의했다. ‘2017년 1월 20일까지는 바로 내가 미국의 대통령이다!’라고 한 것이었다. 아베가 오바마에게 사과를 하러 간 것이다.”

‘미국은 더 이상 지켜 주지 않는다’라는 아베의 초조함이 이번의 나가미네 대사의 일시 귀국 조치의 한 원인이 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앞으로 미국이 아시아의 동맹국과 우방국을 지켜 주지 않는 상황이 온다면, 가장 강력한 우호·협력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나라가 한국과 일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과 일본 이외의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는 넓은 의미에서의 ‘중화권’에 속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만 화교 경제에 의지하지 않는 민족국가이며, 양국 모두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나라다. 그 때문에 한국과 일본이 언제까지나 싸움을 계속한다면, 어느 샌가 양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체가 ‘대중화권’이 되어버릴 것이다.

동아시아는 한반도, 센카쿠 제도, 대만 해협, 남중국해라고 하는 ‘4개의 화약고’가 있다. 각각 불꽃은 흩뿌리고 있지만 ‘대폭발’에는 아직 이르지 않고 있다. 미국이라고 하는 ‘세계의 경찰관’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라는 새로운 대통령은 “세계의 경찰관을 포기한다”라고 공언하고 있다. 즉, 아시아를 묶고 있던 사슬은 느슨해지고, 미국에 보호받던 한국과 일본의 리스크가 커지는 것이다. 그런 때에 한·일이 서로 으르렁대고 있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201702호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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