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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한자 時評(2) 中國] 담 안에 자신을 가둔 그들 

본래는 나라 이름 아닌 성(城) 중심으로 만들어진 호칭… 활력 이미지에 감춰진 강파른 집착·보복 읽을 수 있어야. 

유광종

▎중국은 6000년의 장구(長久)한 역사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약 14억 명)와 넷째로 넓은 영토(9596만㎢)를 자랑한다. 만리장성 성벽에 내걸린 오성홍기(五星紅旗) 사이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요즘 ‘대세’를 이루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사람들 십중팔구는 “중국”이라고 서슴없이 대답한다. 개혁·개방 이후 채 40년도 지나지 않아 세계의 경제 중심으로, 또는 거대한 군사력 보유 국가로 떠오르고 있으니 그렇다. 그런 경제와 국력 신장으로 중국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이 나라 이름을 한자로 적으면 바로 中國(중국)이다. 그러나 본래 나라 이름을 가리켰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 말은 원래 성(城)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호칭이다. ‘나라’를 지칭하는 글자 國(국)에는 두 개의 네모가 보인다. 겉의 큰 네모와 안의 작은 네모다.

이 두 네모 모두는 성으로 둘러싸인 장소를 말한다. 대개 동양사회의 옛 성은 한 지역을 중심으로 두 겹을 두른다. 작은 범위로 둘러친 곳은 城(성), 그보다는 바깥 둘레에 크게 쌓은 것을 郭(곽)이라고 했다. 둘을 함께 부르면서 나온 낱말이 성곽(城郭)이다. 글자 國(국)은 이렇듯 두 겹으로 쌓은 성곽을 표현한 글자다.

처음 등장할 때 낱말의 구성은 ‘국중(國中)’인 경우가 많았다. 성이나 곽으로 둘러싸인 곳 안에 있는 것이라는 식의 엮음이다. 큰 규모의 성이나 곽을 두를 수 있는 곳은 범상치 않다. 권력의 크기가 남을 압도할 만큼에 이르러야 한다. 따라서 이런 성이나 곽을 두른 곳에는 대개 권력의 중심인 천자(天子)가 있었다.

중국의 정체성이 뚜렷한 모습으로 등장하기 한참 전의 일이다. 보통은 서주(西周, BC 1046~BC 771) 때의 일이다. 봉건제를 실시했던 서주 때는 도성(都城)에 천자가 있고, 사방의 군소국가에 제후들이 있는 형국이었다. 당시 서주의 천자가 있던 경성(京城), 또는 경사(京師)가 곧 국중(國中)이자 중국(中國)이다. 따라서 지금 중국이라는 나라 이름과는 차이가 있었던 셈이다.

당시의 중국은 지금 중국 북부 지역의 아주 좁은 범위에 해당하는 이른바 ‘중원(中原)’이 거의 전부였다. 지금처럼 광활한 면적을 차지한 적은 없었다. 당시에 중원을 비롯해 일부 주변 지역을 포함해 지칭한 중국의 원래 이름은 다양하다.

우선 赤縣(적현)이 보인다. 진시황(秦始皇)이 출현하기 훨씬 전에 등장했던 단어다. 아무래도 빨강을 선호했던 周(주)나라의 전통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아울러 중국 전역을 아홉 개의 주로 나눴다고 해서 九州(구주), 또는 신령한 땅이라는 뜻에서 神州(신주)라고도 했다.

성찰 결여된 배려 부족이 ‘진짜’ 모습


▎중국 최초의 중앙집권적 통일제국인 진(秦)나라를 건설한 진시황(秦始皇, BC 259~BC 210). 진시황 사후 진나라(BC 221~BC 206)도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가장 많이 썼던 옛 중국의 명칭이 華(화) 또는 夏(하)다. 중국을 세계의 중심이라는 뜻에서 華(화)로 표기했는데, 이 글자는 원래 해나 달의 주변에서 나오는 광채(光彩)를 가리켰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 훌륭한 것, 나아가 예쁘고 고운 것의 의미를 얻으면서 발전했다. 자신을 華(화)로 표기하고, 주변을 ‘오랑캐’라는 뜻의 夷(이)로 적어 세계를 華夷(화이)로 적었던 중국의 중화주의(中華主義) 세계관은 잘 알려져 있다.

夏(하)는 전설상의 왕조를 가리키는 글자다. 어쨌든 華(화)와 夏(하)가 번갈아 끼어들면서 고대 중국의 자부심을 표현했다. 게다가 ‘모두’ ‘전체’라는 뜻의 諸(제)라는 글자를 앞에 붙여 諸華(제화), 諸夏(제하)라는 호칭이 등장했고, 때로는 中夏(중하), 方夏(방하)라는 이름도 썼다.

남이 중국을 불렀던 옛 명칭도 다양하다. 우선은 支那(지나)가 대표적이다. 원래는 인도에서 중국을 호칭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인도인들은 고대 중국을 Chini라 불렀고, 한자로 음역하는 과정에서 支那(지나)가 나왔다는 설명이다. 인도유럽어계의 고대 로마제국 사람들이 중국을 부르는 호칭 Sinoa, 프랑스어 권역 사람들이 불렀던 Chine 등이 다 이런 맥락이다. 물론 중국 전역을 최초로 통일했던 진시황의 秦(진)나라를 겨냥했던 호칭이다.

Cathay라는 표현도 있다. 조금 후대의 이야기다. 거란(契丹)이 중국의 광역을 다스렸을 때 서양인들이 중국을 불렀던 호칭이다. 지금은 캐새이 퍼시픽(Cathay Pacific, 한자로는 國泰)이라는 항공사의 이름에서 볼 수 있는 단어다. Cathay는 거란 사람들을 일컫는 ‘키타이’에서 유래했다. 중국 광역을 점령했던 옛 거란의 위세를 느끼게 해주는 명칭이다.

중국은 또 漢(한)과 唐(당)이라는 글자로 통칭하기도 했다. 중국 역대 왕조 중에서 가장 강력하며 번창했던 왕조라서 그랬던 모양이다. 漢(한)은 중국 초기 문명이 자리를 잡을 때 그 정체성을 이루는 바탕 개념으로 등장했던 까닭에 지금도 효용이 매우 높은 편이다.

당시의 글자 체계를 한자(漢字)로 표현한다거나, 그 문장을 漢文(한문)으로 적는 일이 그렇다. 지금까지 중국인의 대부분을 漢族(한족)으로 적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외국에 사는 중국인의 거리를 唐人街(당인가)라고 적거나, 중국인의 전통 복장을 唐裝(당장)이라고 적는다. 외국에 있는 중국인들이 자신의 고향을 唐山(당산)이라고 부를 때도 많다.

아무튼 중국의 호칭은 아주 다양하다. 거대한 면적에 세계 최다의 인구를 자랑하는 지구촌 구성원이라서 그렇다. 그런 중국이 요즘 화제다. 우리가 곧 배치할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DD)를 두고 벌이는 보복성 조치 때문이다.

한류를 제한하고, 한국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에 불이익을 안긴다. 자신의 전략적 이익에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가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점 때문이다. 제 전략적 이익에는 매우 골몰하는 형상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 위협에 직면한 한국의 안보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다.

이런 중국을 어떻게 봐야 할까. 새해 벽두부터 닥친 문제다. 정치권 일부 야당 의원은 중국의 전략에 흔들리고 있다. 안보 문제만은 국내의 갈등을 그대로 옮겨서 대응할 수 없다. 중국은 그저 이익의 잣대로 한국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자국 중심의 이해(利害) 관념을 향한 강파른 집착, 그에 뒤따르는 보복, 국제적인 규범과 절차 등을 무시하는 외교적 행보, 성찰(省察)을 결여한 배려 부족 등이 지금 나타나는 중국의 진짜 모습이다. 우리는 그 점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금까지 부상하는 중국을 그저 활력 넘치는 시장으로만 봤다.

1949년 건국한 현대 중국의 진짜 얼굴이 드러날 모양이다. 그에 걸맞은 이름을 다시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중국’이라는 호칭이 최선이다. 중국인은 예로부터 줄곧 성곽을 쌓아왔다. 國中(국중), 中國(중국) 등 오랜 한자 지칭이 그를 웅변한다. 그 뒤에 줄곧 담을 쌓고 쌓아 ‘인류 최대의 담’인 만리장성(萬里長城)까지 만들었다.

그로써 담을 쌓고 성 안에 몸을 숨겨 남을 바라본다. 자신의 안위에 지극히 민감하다. 대신 담 밖의 개활지(開豁地)로 나서기를 주저한다. 남과 어울려 더 큰 조화를 꿈꾸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그래서 담 안에 자신을 가둔 사람들이다. 아주 오래전의 호칭, ‘중국’이 그저 나온 것은 결코 아니다.

- 유광종

201702호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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