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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 ‘돌싱’ 변호사의 이혼 컨설팅 

“‘내가 이러려고 결혼했나’ 자괴감 들거든…” 

정은세(가명) 변호사 ycnexa2me@gmail.com
재혼 상대 정해두고 시작하는 계획이혼에서부터 거짓 임신까지… ‘배우자는 모르고 변호사는 알고 있는’ 특별한 이혼사례를 공개한다

최근 한국사회는 이혼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지만 정작 참고할 만한 정보가 전무하다. 필자는 16년 차 이혼전문 변호사로서 직접 이혼을 체험한 ‘돌싱’이다. 전문가로서, 여자로서 그만의 특이한 경험담을 통해 ‘이혼에 대한 A~Z’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수많은 부부가 다양한 이유로 이혼을 결정한다. 그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외부에서는 ‘성격차이’가 이혼의 주 원인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배우자조차 자신이 왜 이혼당했는지, 진짜 이유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 사진·중앙포토
그녀는 두 시간 째 “변호사님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고 있다. 흡사 점을 보러 온 것 같기도 하고 심리상담을 받으러 온 것도 같다. 나 역시 이혼 경험이 있는 터라 그녀의 갈팡질팡하고 있는 속내가 뭔지 잘 알고 있지만 공감하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왜? 이혼은 온전히 혼자 결정해야 하는 일이니까. 이혼은 법의 문제가 아니다. 인생에서 고비마다 오는 선택의 문제다. 남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결혼이라 하더라도 내가 견디기 힘들면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거고, 남 보기에 ‘왜 저러고 사느냐’고 혀를 찰 일이라도 그 따위 문제로 애들 고생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면 이혼은 고려 대상도 안 되는 것이다.

혹자는 힐러리 클린턴의 대통령 선거 패배 원인 중 하나로 그녀가 ‘르윈스키 스캔들’을 일으킨 남편과 이혼을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미국의 중상층 이상 여성에게 힐러리가 준 실망이 너무 컸다는 분석이다.

힐러리가 이혼을 고민하고 있을 때 어느 장관의 부인이 자기 경험을 얘기하면서 이랬다고 한다. “고작 그런 여자 때문에 우리 가정이 깨진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힐러리가 이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까지도 드러난 적이 없다. 당시 그녀의 담당 변호사가 있었다면 아마도 그만이 진실을 알고 있지 않을까?

남편도, 재판부도 모르는 진짜 이혼 사유


▎국내 이혼법정의 모습. 통상 이혼 재판과정에서 형사 고소까지 얽히게 되면 부부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감정싸움을 피하고 싶다면 변호사를 선임해 중재를 맡기는 게 낫다. / 사진·중앙포토
그때 힐러리가 2016년 대통령선거에 자신이 후보가 될 줄 알았다면 이혼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혼 결정은 때에 따라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거다.

국내에도 수많은 부부가 다양한 이유로 이혼을 결정한다. 이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외부에서는 ‘성격 차이’가 이혼의 주 원인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심지어 배우자조차 자신이 왜 이혼당했는지, 진짜 이유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이혼전문 변호사로서 그동안 지켜본 특이한 이혼 사례를 공개한다. 이를 통해 이혼의 실상을 소상히 알리고‘이런 선택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독자들께 전하고자 한다.

“이혼을 해야 될 것 같아요”라고 첫마디를 꺼내는 경우 소송으로 갈 가능성은 십중팔구다. “재판으로 가면 얼마나 받을 수 있나 궁금해서 왔어요”라고 첫마디를 꺼내면 결론 없이 돌아가는 상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혼을 고민하는 경우 변호사를 직접 만나든 인터넷 검색을 통하든 어떤 방식으로든 재산분할이나 위자료가 얼마나 될지, 아이 양육권을 가질 수 있는지 이것저것 알아본다.

어느 정도 견적이 나오면 그 정도 선에서 상대방이 양보해줘서 협의이혼이 되길 바란다. 자녀가 있든 없든 이왕 부부로 살아왔던 정이 있기에 굳이 재판으로 가서 ‘진흙탕 싸움’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혼 사건은 과장과 억지, 거짓말에 감정충돌이 뒤범벅된 진흙탕 싸움이 대부분이다. 거기에 형사 고소까지 얽히게 되면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다. 따라서 감정싸움을 피하고 싶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양보할 생각이 있다면, 당사자끼리 협의를 진행하느니 변호사를 선임해서 중재를 맡기는 게 나을 수 있다.

협의이혼이든 재판상이혼이든 이혼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하는 마지막 대안이다. 하지만 타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이유로 이혼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의 특별한 이혼 이유는 변호사만 알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재판부도 알 수가 없다. 재판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변호사가 진짜 이혼 이유를 숨기기 때문이다. 절대 밝힐 수 없었던 특별한 이혼 사유 중 으뜸은 아마도 그녀의 사연이 될 것 같다.

그녀와 남편 모두 이혼 경력을 갖고 있는 재혼이었다. 여자는 마흔 무렵에 한 재혼이었기에 임신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결혼 직후 바로 임신이 되었다. 아들을 낳고 얼마 동안은 큰 문제가 없었다.


▎JTBC 드라마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의 한 장면. 주인공 남편이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뒤 익명의 사람들과 교감하는 얘기다. 실제로 맞바람을 피우면서 이혼을 진행하는 부부도 있다. / 사진·중앙포토
그런데 출산 후 100일 무렵부터 여자의 히스테리한 면이 자주 보였고 남편과의 말다툼이 갈수록 험악해졌다. 2년도 채 안 되는 결혼 생활 내내 겉으로 드러난 다툼 원인은 돈 문제였다. 그날도 돈 얘기로 다투다 급기야 남편이 여자의 뺨을 때리는 일이 벌어졌다.

여자는 아들을 두고 혼자 집을 나왔다. 그녀는 전혼에서 받은 위자료와 재산분할액수가 제법 됐고 워낙 바지런한 성격이라 생활비 걱정은 없었다. 집에 두고 온 아들만 아니면 이혼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들 때문에 갈등하던 그녀가 상담을 청해왔다. 여자는 결혼생활에서 이런저런 불만스러웠던 얘기를 풀어놨다. 뺨을 때린 사건 때문에 평소 남편에게 폭력성이 있었느냐고 물으니 여자는 그날이 처음이었다고 했다. 남편이 왜 빚을 진 거냐고 물으니 여자는 남편이 생활비를 주기 위해 빚을 진 것 같다고 했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뺨을 때린 사건 외에는 남자에게 파탄 책임이 있다고 몰아세울 만한 이유가 부족해 보였다. 이혼을 원하느냐고 물으니 여자는 아들만 아니면 이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갈등하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겠지’ 생각했는데 며칠 후 소송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조정 기일에 그녀의 남편은 두 번의 이혼은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뺨을 때린 건 정말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진심이 느껴졌다. 조정위원도 이혼은 너무 성급한 거 아니냐고 여자에게 소 취하를 권했다.

여자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조정위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여자를 조정실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변호사님, 남편이랑 같이 살 자신이 없어요. 남편이랑 살면서 다른 남자 만나면 안 되잖아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물음이었다.

“진짜 문제가 뭐예요? 저한테 말씀 안 하신 게 있죠?”

여자는 한 달에 며칠은 온 몸에 열이 나고 관절이 쑤시는 증세를 오랫동안 앓아왔다고 한다. 주기적으로 통증이 찾아왔고 진통제로도 다스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막연하게 배란통과 생리통을 심하게 앓는 체질인가보다 여기며 지냈다.

그녀는 이혼을 후회하고 있진 않을까…


▎산후우울증으로 집안일을 손 놓고 있는 한 주부의 모습. ‘내가 이러려고 결혼했나’하는 자괴감이 들 때는 배우자의 자리를 시원하게 포기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 사진·중앙포토
남편과 다투고 나가 혼자 지내는 동안 어떤 남자와 하룻밤을 같이 지내게 됐다. 처음 느끼는 절정감이었다. 결국 주기적으로 만나는 사이가 됐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후 열이 나고 관절이 쑤시던 증세가 사라지다시피 했다. 여자는 자기가 앓아왔던 증세가 단순히 배란통이나 생리통이 아니었다고 확신했다.

남편은 잠자리에 관심이 없는 남자였다. 여자의 요구에 맞춰줄 의사도 의지도 없는 남자였다. 그녀는 그 통증을 다시 견디고 살 자신이 없다고 했다.

황당하기까지 한 여자의 얘기를 들은 그날 조정은 결렬됐다. 몇 달 뒤 결국 이혼 조정이 이뤄졌다. 재판부와 남편 모두 그녀가 정말 이혼을 원했던 이유는 모르고 있다.

이혼 사유 중 가장 특이한 사례에 해당하는 그녀의 얘기를 굳이 꺼낸 이유는 그녀가 여전히 이혼 결정을 잘했다고 만족하고 있을지 아니면 후회하고 있을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때 만약 이혼하지 않았다면 남편한테 엄청 히스테리를 부리며 살았을 테다. 나중에는 참다 못한 남편이 먼저 이혼을 요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극단으로 치닫기 전에 먼저 이혼을 결정한 그녀의 선택이 더 현명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법원은 부부가 실질적으로 부부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결혼이 파탄 나야 이혼을 인정해 준다. 그것도 파탄의 책임이 없는 쪽이 먼저 요구해야 이혼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한쪽에서 애정이 식었다고 이혼을 청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가끔 사랑하지 않는 남편(아내)과 이혼하고 싶다고 상담을 오는 경우가 있다. 주변에서는 ‘결혼은 연애와 다르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 무슨 애들이나 할 생각을 하느냐’고 면박을 주지만 그들은 진지하다.

종교적 신념 때문에 집총을 거부하며 교도소행을 자청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그들은 사랑 없는 결혼은 무의미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배우자와 데면데면한 생활을 수 년 째 유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애인이 생겨 결혼을 청산하고 싶어 하는 이도 있다.

애인이 있어 이혼을 원하면서도 이를 숨기고 ‘애정 없는 결혼은 위선’이라며 거들먹거리는 부류를 만나게 되면 “휴대전화 두 개 갖고 계시면 재판 중에 다 드러납니다”며 슬쩍 겁을 준다.

40대 중반의 그녀는 예민하다는 평을 듣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유별난 정도는 아닌 사람이었다.

부모님 친구 소개로 만난 남편과 짧은 연애 끝에 결혼한 그녀는 슬하에 남매를 키우며 애들이 대학만 들어가면 이혼해야겠다는 생각을 꽤 오래하며 살았다. 문제는 남편이 절대 이혼에 동의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나온다는 점이었다.

그녀가 이혼을 원하는 이유는 “더 이상 남편을 사랑하지 않고, 남편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다. 서글프게도 남편 또한 그녀의 그런 평가에 동의하고 있었다. 남편도 부부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인정했다.

다만 남편이 그녀와 다른 점은 ‘사랑하지 않는다’와 이혼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의 결혼생활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불행했다. 그래서 40대 중반의 나이에 이혼하지 않으면 자기 인생이 너무 아깝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혼하기 위해 ‘불량 아내’라도 되겠다


▎영화 <결혼전야>의 한 장면. 각자 약혼자가 있는 남녀 주인공이 결혼식 전날 하룻밤을 보낸다. 현실에서도 ‘사랑 없는 결혼도 괜찮다’는 배우자의 쿨한 주장 때문에 이혼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 사진·중앙포토
방법은 두 가지였다.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남편에, 시어머니 심술도 꽤 있었던 상황이라 이를 과장해서 소장을 제출하면 남편이 욱 해서 이혼에 동의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도 아니면 모’로 이혼소송을 내보는 방법이다.

문제는 남편이 끝까지 이혼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에게 뚜렷한 유책사유가 없기 때문에 그녀가 패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이혼 소송을 제기하기 어렵게 된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불량 아내’가 되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 꼴을 보고 그냥 있을 남편은 아니라는 게 그녀의 예측이었다. 이 방법은 변호사가 도와줄 수 있는 일도 아니거니와 별로 권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이러려고 변호사가 됐나’하는 자괴감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어떤 방법도 선택하지 못했다. 먼 훗날 그녀가 ‘왜 그때 모험을 감행하지 않았나’ 깊은 후회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녀의 결혼생활은 불행했고 그녀의 인생도 불행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혼했다’는 흔히 다른 표현으로 ‘결혼에 실패했다’고 불려진다. 이혼은 실패한 결혼이 되는 셈이다. 물론 이혼은 인생 중에서 결혼에만 국한되는 일이니, 당연히 이혼은 인생의 실패가 아니다.

하지만 이혼을 인생의 실패로까지 확대해서 생각하면서 열등감에 빠져 사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결혼이 곧 인생의 실패로까지 치닫는 경우도 있다.

그 남자는 소도시에서 건물 몇 채를 남겨주고 돌아가신 아버지 덕분에 직업은 없어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교수인 형도 있고 사모님 소리 듣는 누나도 있는 이른바 ‘빠질 것 없는’ 집안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외모 콤플렉스가 심한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과의 저녁 자리에서 그녀를 알게 됐다. 그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볼 정도로 외모가 빼어났다.

남자는 그녀의 외모에 우선 기가 죽어 그녀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바라는 게 없다 보니 만날 때마다 부담 없이 유쾌했다.

계절이 바뀌고 남자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몇 달간 대소변을 받아내야 할 정도로 심하게 다친 상황에서 그녀가 병문안을 한 번 왔고 요양 중일 때는 집에도 들렀다.

어느 날 그녀가 먼저 남자를 안는 일이 벌어졌다. 그날 이후 그녀는 더 자주 남자를 찾더니 어느 날 임신 사실을 알려 왔다.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아내가 버거운 남자와 그런 남편이 못마땅한 여자 사이의 갈등이 계속됐다. 설상가상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아들을 위해 교육비에 돈을 많이 쓰다 보니 상속받은 재산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지기 시작하면서 남자는 아이 교육비를 줄여보자고 했고 여자는 무책임한 아빠라고 남자를 힐난했다.

언제부턴가 그녀의 외박이 잦아졌다. 1주일에 2~3일은 찜질방에서 자고 온다는 전화였다. 남자는 의심스러웠지만 아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그렇게 푸나 보다 이해하려고 애썼다.

아이 학원비 문제로 다툼이 있은 다음 날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이혼의 소를 제기했다.

상담실에서 마주한 남자의 옷차림은 곤궁한 형편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남자는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얼떨결에 시작하게 된 결혼이었고, 한 번도 따뜻한 말 한마디 못 들어보고 살았으나 그녀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다고 했다.

막바지에 이혼은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위자료는 줄 수 없다고 했다. 양육비는 장애가 있다고 해도 형편이 안 되니 보통 수준으로만 지급하고 싶다고 했다. 재산분할은 결혼생활 동안 외려 재산이 줄었기 때문에 줄 게 없다고 했다.

법정에서 처음 본 그녀는 남자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화사한 머플러를 받친 정장 차림은 그녀의 늘씬한 몸매를 더 돋보이게 했고, 가늘고 길게 그린 갈매기 눈썹은 이탈리아 미녀를 연상케 했으며, 교양 있는 말씨는 판사의 호감을 끌어 내고 있었다.

그녀는 위자료와 재산분할, 양육비 어느 것도 양보 못한다고 했다. 남자는 울화가 치밀어 화만 버럭버럭 냈다. 변호사의 제지도 통하지 않았다. 판사 눈에 남자는 고집불통에 답답한 남편으로만 비치고 있었다.

남자의 인생 망쳐놓은 ‘거짓임신 결혼’의 비극


▎이혼 이유는 저마다 특별하지만 이혼 후 사는 모습은 특별하지 않다. 결국 이혼은 인생 전체를 두고 볼 때 순간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때문에 용기 내 잘못된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도 방법이다. / 사진·중앙포토
며칠 후 남자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아들이 자신의 아이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근거가 있느냐고 물으니 그냥 느낌이란다. 왠지 자신의 아이가 아닌 것 같았지만 결혼생활 중에는 어떤 조치를 취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혼을 하는 마당이니 그동안의 의문을 풀어보고 싶다고 했다.

사진을 보니 남자와 아이는 많이 닮아 보였다. 소송에 너무 몰입하다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망상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남자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 않나 싶어 걱정이 될 정도였다.

법원을 통해 유전자감정 신청을 했다가 친자인 것으로 드러나면 몰염치한 아빠로 몰려 조정에서 엄청 불리해지니 먼저 사설 감정기관에 가서 감정을 받아보라고 했다.

열흘도 지나지 않아 남자는 ‘친자가 아닐 확률이 99.9 어쩌고 퍼센트’라는 감정서를 들고 왔다.

남자는 이혼에 확신을 갖게 됐다고 하면서, 애가 불쌍하다는 말을 했지만 그렇다고 호적에 자신의 아이로 그대로 둘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급하게 굴 필요가 없어서 다음 재판 기일까지 기다렸다가 법정에서 감정서를 내밀었다.

변호사로서 묘한 승리감을 느끼며 위자료는 우리가 받아야 될 것 같다고 운을 띄웠다. 판사도 그녀도 놀란 얼굴이었다.

“아니에요”가 그녀의 첫마디였다. 그럼 법원을 통해서 유전자감정을 받겠다고 하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의도적으로 남자를 먼저 안았던 그날 오후, 그녀는 그대로 진실이 감춰질 줄 알았겠지만, 남자의 본능은 그녀의 위선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모든 청구를 포기하는 것으로 이혼 조정이 이뤄졌다.

이후 남자는 아이와의 관계도 정리하는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했다. 가끔 남자는 전화를 걸어와 “시간이 흐를수록 화가 더 난다”는 말만 반복했다.

남자는 그녀의 임신 때문에 결혼에 응했던 거고, 어리다고 할 만한 나이에 준비도 안 된 결혼으로 너무 긴 시간을 희생 당했다며 ‘인생을 사기당했다’는 말도 했다. 아이의 치료비와 교육비로 들어간 돈이 수억 원이 넘는다면서 그녀에게서 받아낼 수 없겠느냐고 전화할 때도 있었다.

그녀가 남자를 속이지 않았으면 남자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당시 20대의 나이였으니까 인생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도 충분했다. 그만큼 상속받은 재산을 불릴 수 있는 기회도 있었을 것이다.

이혼으로 해결된 건 아들이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밖에 없다. 속아서 살아 온 15년 세월은 위자료 몇 푼으로 해결될 일이 애초에 아닌 것이다. 더구나 소송이 끝나고 남자는 피해의식과 울화병이 치밀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심리치료를 받으라고 조언을 해주었지만 소용없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사취한 그녀의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

이처럼 결혼은 충동적으로 할 수 있지만 이혼은 계획적이어야 한다. 자존심 때문에, 화가 나서, 본때를 보여주려고 덜컥 이혼부터 하면 그 뒷감당이 쉽지 않다.

계획적인 이혼 중에 애인이나 심지어 재혼 상대를 준비해 두고 하는 이혼도 있다. 대개 배우자가 바람이 나서 이혼 요구를 받고 있던 상황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물론 재판부에는 절대 비밀이다.

여자는 동네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착한 사모님으로 제법 알려져 있는 인물이었고, 남편은 만능스포츠맨으로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탄탄한 소기업을 경영하고 있었다.

시댁 입장에서 보면 여자는 순진한 아들을 유혹해서 감히 욕심 낼 수 없는 집안에 시집온 거였고, 여자 입장에서는 귀여운 외모를 가진 자신에게 빠진 남편이 용감하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쟁취해 낸 결혼이었다.

여자와 남편 사이에는 딸만 둘이었다. 여자는 20년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남편의 취향이 워낙 다양(?)해서 상간녀들은 여자란 점을 빼고는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다.

은밀한 사유의 이혼, 그러나 그 후 삶도 특별할까?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운 적도 있고 상대 여자의 집에 쳐들어가 식구들 앞에서 개(!)망신을 준 적도 있다. 남편은 그때뿐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반복이었다.

그렇다고 여자와 남편 사이가 아주 나빴던 건 아니다. 여자는 늘 남편에게 ‘돌아올 거라 믿는다’는 자세였고, 남편은 ‘정리할 시간을 달라’는 식이었다.

남편의 바람기만 아니면 결혼생활은 안정적이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고 나면 여자는 골프와 봉사활동, 가까운 지인들과 해외여행 등으로 여유롭게 지냈다. 여자는 부부동반으로 1년에 한두 번씩 동남아로 골프여행을 가고 남편의 친목모임에도 잘 다녔다. 강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어느 일요일 오후 딸이 아빠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다 화면에 여자로 보이는 발신자 문자 창이 뜨자 SNS 잠금 패턴을 풀어본 것 같다. 주고받은 톡 내용은 적나라한 단어들로 넘쳐났다. 충격을 받은 딸은 엄마에게 바로 알렸다.

그동안 많은 상간녀를 상대하면서 갖게 된 노하우로 여자는 남편의 휴대전화에서 사진과 주고받은 문자, 이메일을 다수 확보했다. 남편의 비자금 계좌에서 상간녀에게 보낸 수천만 원의 돈 흐름도 밝혀냈다. 상간녀의 집 주소와 가게, 가족 관계 등 소위 눈이 뒤집혀 찾은 증거들을 들고 상담을 청해 왔다.

적반하장으로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고 있고, 상간녀는 주거침입으로 여자를 고소까지 한 상황이었다.

여자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딸이 알았다는 점에서 이혼은 해야 될 것 같은데 솔직히 두렵다고 했다. 그리고 이혼해주면 한창 불붙은 두 사람에게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 같아 너무 약이 오른다고 했다.

어차피 남편은 유책 배우자라서 재판상 이혼을 청구할 수는 없으니 본인에게 가장 유리한 때 이혼하라고 말해주고는 상담을 끝냈다.

2년쯤 뒤 잊고 있던 여자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돈을 최대한 많이 받아달라는 주문이었다. 마음이 어떻게 바뀌었느냐고 묻자 여자는 웃었다. 그 웃음이 묘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이 남편은 대출을 받아 또 다른 상간녀의 사업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만큼 재산은 줄어 있었다. 화가 날 상황인데 여자는 여유를 보였다. 외도 증거도 많고 재산도 부동산과 예금으로 갖고 있어서 조정은 쉽게 끝났다.

여자는 조금 허탈해하기는 했어도 울지 않았다. 허한 마음을 보듬어줄 남자가 생겼던 것이다.

파탄 난 사이라 하더라도 서류상 엄연히 유부녀인 여자에게 이혼을 종용하고 청혼하는 남자의 마음을 믿어도 되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그 남자가 있어서 이혼을 감행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의미만으로도 그 남자는 그녀에게 존재가치가 있어 보였다. 그녀는 절대 남자랑 같이 상담을 오지는 않았다. 변호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받아들여졌다.

이혼사건을 대리하다 보면 은밀한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 때로는 서면에 드러난 얘기보다 그 은밀한 속사정이 더 중요한 때도 있다. 그들의 이혼 이유는 은밀하고 특별했지만 이혼 후 사는 모습은 특별하지 않다. 그래서 이혼은 인생 전체를 두고 볼 때 순간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러려고 결혼했나’하는 자괴감이 들 때는 배우자의 자리를 시원하게 포기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문제는 순간에 불과한 이혼이 터닝포인트가 돼야만 한다는 점이다. 특별하지 않은 이유로 이혼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이혼 이유는 특별하지 않더라도 이혼 후 삶은 특별하길 기원한다.

- 정은세(가명) 변호사 ycnexa2m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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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호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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