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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협치의 전도사’ 이광재 여시재 부원장 

“안희정 대연정 제안은 결단 민주당 다이내믹 경선 불붙었다” 

글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 사진 조문규 기자
‘신문명 주역 아시아인’이 중요한 인생 비전… 정치적 MI F 극복 위해 모든 정파 협력해야

이광재 부원장은 향후 한국정치의 활로를 ‘연정의 실현’에서 찾는다. 좌우, 진보와 보수의 통합을 지향하는 바, 그것이 도래할 4차 산업혁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본다. 그는 안희정 지사의 지지율 급등에도 주목했다. 20%를 넘으면 경선구도에 역동적 변화가 올 것으로 그는 예측했다.


▎이광재 여시재 부원장은 “조기대선이 되면 총리·장관을 신속하게 임명하기 위해서도 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렸던 이광재(52) 여시재 부원장을 만났다. 이 부원장은 향후 한국정치의 활로를 ‘연정의 실현’에서 찾았던 인사다. 최근 안희정 충남지사가 대연정을 공론화하면서 이것이 이 부원장과 계획된 교감 아래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최근 안 지사의 지지율이 급등하면서 확고한 2인자군에 속하게 되자 이 부원장의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이 부원장은 인터뷰에서 자신은 좌우, 진보와 보수의 통합을 지향하는 바, “그 문제의식은 김부겸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 지사 등과 오랜 토론과 교유를 통해 더욱 심화됐다”고 밝혔다.

이 부원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 안대희 전 대법관 등이 포진한 싱크탱크 ‘여시재’를 사실상 총괄하고 있다. 한국의 브루킹스연구소를 기치로 내건 여시재의 비전은 ‘통일한국 시대의 미래 비전’ 찾기다. 광폭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여시재의 인적구성으로 볼 때 안 지사의 중도 우클릭 행보를 이 부원장 또는 여시재가 지원하는 게 아니냐는 설도 나돌았다. 이 부원장은 인터뷰에서 “여의도 선거캠프와는 일절 인연을 끊고 산다”면서 “내게는 통일시대 한반도인으로 사는 것, 신문명을 만든 아시아인으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한 인생의 비전”이라고 말했다. 정치권과 담을 쌓았다는 그의 발언에도 차차기 대선에서 이 전 부원장이 큰 꿈을 꿀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큰 판을 짜고 기획하는 능력에서 이광재는 여전히 탁월하다. 안희정-이광재의 경쟁은 아직 끝난 것으로 보기엔 이르다는 것이다.

안희정은 안정감, 저력이 있는 후보


▎지난해 10월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J글로벌-채텀하우스-여시재 포럼. / 사진·전민규
이 부원장은 “연설문을 스스로 쓰는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하며, 나와 안 지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훈련을 쌓았다”고 말했다. ‘문(文)보다 안(安)과 더 가깝다’는 항간의 설을 에둘러 확인해주는 발언으로 들어도 될까? 몇 번을 채근해보았지만 그는 그냥 웃기만 했다. 인터뷰는 2월 14일 ‘중앙일보’ 본사 인터뷰룸에서 두 시간여에 걸쳐 이뤄졌다.

평생의 친구 안희정 충남지사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결국 경선이 문재인·안희정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나?

“그렇진 않다. 안정감이 있고, 저력이 있는 사람이니까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본다. 안 지사의 지지율 상승이 문재인·이재명 두 분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어떤 측면에서 그런가?

“민주당 전체의 지지율이 높아졌다. 중간층과 충청지역당의 지지세가 확장됐다. 문재인 전 대표 입장에선 소위 친노 패권 프레임이 약화된 측면이 있다. 3자간 경쟁구도가 형성돼 이재명 성남시장이 진보적인 색깔을 분명히 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경선이 경선답게 되어가는 것이다.”

안희정 지사의 대연정 발언으로 큰 논란이 벌어졌는데, 안 지사가 말하는 대연정의 정확한 의미는 뭔가?

“안 지사의 정확한 의중은 잘 모르겠다. 연정의 ‘대상’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은 일단 뒤로 하고, 연정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게 저의 오랜 지론이다. 연정이 정치의 존재이유라고 보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제 혁신이 여야의 협치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혁신을 위한 연정, 대연정을 개혁의 후퇴로 보는 시각과는 완전히 다른 입장인데.

“디지털 시대로 진입하면서 후지·코닥필름이 사라졌다. 전혀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가 경제구도 전체를 뒤바꿀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혁신의 법안을 만들어내려면 결국 여야협치가 필요하다. 주변국을 돌아보면 정치지도자가 모두 스트롱맨이다. 트럼프 대통령,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 아베 총리 같은 강자를 상대로 외교전을 펼쳐야 한다. 여야가 힘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로는 ‘정치적 IMF 사태’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미증유의 정치대란이다. 극복하려면 연정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도 차기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여소야대에 직면한다. 연정할 수밖에 없는 정치구조다.”

탄핵이 인용되면 완충의 시기 없이 바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 이것도 위기 요인 아닌가?

“인수위를 통한 연습의 기회가 전혀 없이 바로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바로 총리·장관 임명하고 4대 주변 강국에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 일종의 비상상황이다. 이런 현실이 또한 연정을 정당화한다. 정치적 이상으로 봐도 그렇다. 결국 정치라는 게 국민에게 꿈을 파는 것 아닌가? 우리 정치에 연정의 DNA를 심어야 한다. 고대 로마족은 이웃 사비니 부족과 두 번이나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나서도 화해의 결단을 내린 적이 있다. 로마가 두 부족의 통합을 제안했고, 사비니 족에 왕의 자리를 양보했다. 이 때 탄생한 게 누마 왕이다. 위대한 로마의 전통은 사비니 족과 통합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는 사가들이 있다. 미국도 그런 사례가 있다. 귀족적 연방주의자였던 알렉산더 해밀턴과 농촌 기반의 반 연방주의자 토머스 제퍼슨이 사사건건 대립하다가 1790년 독립전쟁의 채무를 갚기 위해 대타협했다. 두 사람의 대립과 타협은 미국 정당정치의 위대한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단축도 고려했다


▎2011년 11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한 당시 민주당 이광재(왼쪽) 의원과 안희정 최고위원(가운데). / 사진·중앙포토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 연정을 제안했던 것이 떠오른다. 정치적 노림수를 의심한 당시 야당이 받지 않았다. 연정 제안과 실패는 굉장히 큰 정치적 상처로 남았다. 당시 상황을 어떻게 보았나?

“처음 당선자 시절 고건 씨를 초대 총리로 임명하겠다고 한 것도 야당 협조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참여정부와는 색깔이 다른 인물 아니었나? 당시 노무현 당선자는 이회창 후보를 만나고 싶어 했다. 대선 당시의 갈등을 털려고 했는데 이 후보는 안 만나주고 대선 재검표에 들어갔다. 냉랭한 관계로 대화가 안 풀렸다. 야당은 대북송금특검 안 하면 고건 총리 인준 안 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출범시켜야 하고…. 서리 체제로 막 나갈 수는 없었다. 남북대화 의지가 없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어쩔 수 없이 대북송금특검 요구를 받아야 했다. 노 대통령은 결국 권력의 일부를 내놓기로 결심했다. 나와 안희정 등 측근 몇 사람을 불렀다. 연정 제의를 하겠다고 해서 모두 반대했다. 일주일 후 다시 부르더니 울리히 벡의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란 책을 나눠 줬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 협조 없으면 정국운영 안 돼. 그러지 말고 박근혜 대표에게 총리 자리 주자. 상임위원장과 장관도 주자. 100%를 다 가질 수 없다’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100% 바꿀 수 있는 그런 세상은 없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오랜 지론이었다.”

노 대통령은 야당에 총리를 내줄 뿐만 아니고 임기까지도 단축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임기 단축까지 생각한 것을 보면 그의 연정론은 진심이었던 것 같다.

“선거가 너무 잦았다. 보궐선거 한 번씩 해도 결과에 따라 정치가 휘청휘청했다. 차라리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고 총선과 대선을 일치시켜 정상적인 나라로 만들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임기를 2년이나 줄이자는 결심을 했지만 노 대통령의 연정 제안은 결국 좌절됐다. 미래는 통합한 나라에만 있다. 링컨 대통령의 말이 인상 깊다. ‘갈라진 땅 위에는 집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연정의 대상과 관련해서 대연정이냐 소연정이냐 논란이 있다. 더민주가 자유한국당과 연정하자는 것은 개혁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 아닌가?

“김부겸 의원, 박원순 시장, 안철수 전 대표 등이 공동정부론을 주장하고 있다. 연정의 연장선상에 있는 논의다. 심판받아야 될 대상과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느냐고 주장하는 분들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현실은 엄중하다. 미래를 위해 전향적인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전제가 있다. 대선 후보끼리 비슷한 공약은 선거 전에 공동선언을 하거나 법안을 통과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면 국민은 손해는 안 본다. 대통령선거 끝나고 또 마음이 바뀌면 곤란하잖은가? 평창올림픽 4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도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키자. 대선이 끝나고 낙선한 분들을 4대 강국의 특사로 보내고, 내각 구성할 때도 상대당의 능력자를 총리나 장관으로 영입하면 얼마나 좋겠나. 권력은 나눌수록 커지는 것인데.”

한가한 법률만 다루고 있는 국회


▎지난 1월 고(故) 신영복 선생 1주기 추도식에서 만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안희정 충남지사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없었다면 대연정도 환영받았을 가능성이 큰데,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꾼 새누리당이 국정농단의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 아닌가?

“그런 우려는 충분히 알고 있다. 작은 법안 하나, 정책 하나에 힘을 합쳐 실적을 쌓아가다 보면 합리적으로 설득할 여지가 생긴다고 본다.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깔은 각각 그 자체로 존재하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같이 만들어낸다. 진정한 유대의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한다. 한 사람, 어느 한 세력에게만 의존해서는 나라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게 되지 않았나? 김영삼·김대중·김종필 같은 정치인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현행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되는 모든 권력을 정치적 반대세력에 자진해서 안배하는 일은 쉽지 않을 거 같다.

“지금 국민은 대한민국을 리셋 해달라는 거 아닌가? 리셋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여야가 국회에서 적어도 과반수를 넘겨야 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인데, 지금은 선진화법 때문에 특정 정당이 반대하면 어떤 법률도 만들 수 없다. 김성식 국민의당 의원이 ‘지금 국회에서의 입법활동은 국가의 리셋과 전혀 관련이 없는 한가한 법률만 다루고 있다’고 하더라.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치열한 토론과 과감한 양보가 불가피한데 그런 법률은 통과가 안 된다는 것이다.”

안희정 지사처럼 통 크게 대연정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인은 몇 안될 것이다. 인물에 의존하기보다 연정이 가능한 제도를 만드는 게 중요한 일 아닐까?

“지도자들이 ‘통합을 해야 살 수 있다’는 비상한 결단을 하는 게 우선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원정을 떠날 때 가지고 있던 황금을 부하들에게 다 나누어줬다고 한다. 그는 전쟁이 끝나면 더 많은 황금을 얻을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있었다. 실제로도 그는 출발할 때 갖고 있던 황금의 100배에 달하는 황금을 얻곤 했다. 지금 갖고 있는 권력을 이용해 나라를 크게 키우겠다는 꿈이 있다면 권력 나누는 걸 왜 두려워하겠나? 1000억원짜리 회사의 주식을 100% 갖기보다 1조원짜리로 회사를 키우고 10%의 주식을 갖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그러한 담대함과 신뢰가 있을 때 제도라는 것도 의미가 있다.”

탄핵심판 이후 정치세력 간 갈등이 더욱 극심해질 가능성도 있지 않나?

“촛불·태극기 집회를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양자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이냐 하는 문제다. 이 간극을 안 메우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겠나? 정권을 얻으면 100%의 권력을 행사하려는 게 문제다. 투표율 70%에 51% 득표로 당선한다 쳐도 실은 35%의 지지밖에 얻지 못한 것이다. 35%의 지지율을 가지고 100%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이제는 모자이크 권력의 시대가 왔다. 레고처럼 만나서 서로 집을 지어가는 시스템 말이다.”

마침 안희정 지사가 대연정 이야기를 한 것이 한편에선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안 지사가 20% 지지율을 넘어서게 되면 큰일을 낼지도 모른다.”

협치를 넘어 대연정이란 카드를 딱 내놓으니까 스케일이 자못 호방하게 보인다. 이 전 지사는 안 지사와 오랜 친구이며 연정에 대한 구상도 일치한다. 대의의 측면에서 안 지사를 힘껏 지원할 의사는 없나?

“더민주의 세 후보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자질과 능력 측면에서 빠지지 않는다. 멋진 경선이 이뤄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연정 이야기는 진짜 오래 논의한 테마다. 김부겸·안희정·남경필·원희룡 등과 함께 15년 넘게 토론했다. 지금은 순항의 시기가 아니므로 배 안에 탄 사람 전부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해야 한다.”

연설문 직접 쓰는 것이 비전이다


▎이광재 여시재 부원장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굉장히 다이내믹하게 치러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 전 지사라면 당연히 안 지사를 지지하는 게 맞다고 본다. 정치적으로도 맞고, 인간적으로도 맞는 선택 아닌가? 2015년 말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연설문 직접 쓰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연설문을 직접 쓰나?

“연설문을 자기 스스로 쓰는 사람이 지도자라는 생각은 확고하다. 연설문 쓰는 능력 안에 그 사람의 비전과 철학이 들어 있는 것이다. 머리를 빌리고 사람을 잘 골라 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큰 비전을 스스로 정립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나폴레옹이 ‘지도자는 희망을 파는 상인’이란 말을 했다. 상인은 자기 물건에 대해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신제품을 스스로 갖고 나와 대중에게 설명하지 않았나? 정치인으로 치면 연설문을 직접 쓰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내게 선거 자문을 구하러 오는 정치신인이 많은데, 그 사람들에게도 나는 자신의 비전을 써서 가져오라고 한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 왜… 어떻게. 이런 내용으로. 추상에서 헤매지 말고 딱 세 줄씩 써 오라고 한다. 선거에 당선된 사람은 그렇게 많은 일을 하지 못한다. 결국 자기의 꿈과 혁신적 가치, 그 몇 가지 과제에 집중하는 거다. 미셸 푸코는 ‘담론이 권력을 생산한다’고 말했다. 꿈과 정책의 비전을 담는 게 연설문인데 담론을 생산하는 능력이 바로 연설문 쓰는 능력과 상통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 중 명연설문 남긴 사람들이 많다. 그런 지도자는 대통령직도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래서 연설문 쓰는 능력을 저는 굉장히 강조한다.”

그러니까 더욱 궁금해지는데, 안희정 지사는 연설문을 직접 쓰나?

“일찍부터 훈련됐다. 안 지사와 저는 오래전부터 연설문을 직접 썼다.”

더민주 경선 결과를 예측한다면? 후발 주자들이 역전할 수 있을까?

“경선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되는데, 어느 구름 속에 비가 들어있는지 어찌 알겠나?”

1년 전에도 그런 발언을 했다.

“문재인·이재명·안희정 세 분 모두 특장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선이 굉장히 다이내믹해지지 않을까? 안 지사 같은 경우에는 결국 20%가 맥시멈 포인트가 될 거 같다. 현재 야권 지지를 다 합쳐도 60%를 넘지는 않을 것이다. 정권교체 열망은 한 80% 정도 되더라도 결국은 55∼60%의 표를 세 분이 나누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안 지사가 20%를 넘어서면 그건 의미 있는 수치가 된다. 보통 역동성과 활성화 지수라고 하는데, 경선 레이스에 변화 가능성이 생기는 거다. 그런데 이재명 시장도 현장능력이 굉장히 강한 분이어서 상당히 멋진 경선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이내믹 경선이 되리라 전망하는 근거는?

“정책과 이념적 스펙트럼, 지역의 다양성 측면에서 이번 경선은 유례가 없이 역동적이다. 부산경남·충청·경북 등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다. 전국정당 경선에는 역동성이 큰 활성화 에너지가 꼭 필요한데 지금이 바로 그런 구도다. 민주당 경선 중에서는 아마 최초의 일일 것이다. 다만 인터넷 상에서 지지자 간 설전이 너무 거칠다. 조조의 아들이 조비와 조식 둘인데 결국 당하게 되는 조식이 조비에게 ‘콩깍지를 태워 콩을 볶는구나. 솥 속의 콩은 울고 있다. 본래 한 뿌리에서 태어났거늘 어찌 이리도 급히 볶아대는가’ 이런 말을 했다는 고사가 있다. 후보자 간 격한 반응보다 서로 격려해주는 게 좋겠다. 선거가 끝났을 때 후유증도 줄이고 더 아름다운 경선이 되지 않을까 싶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헌재 앞에서 시위도 바로 근처에서는 안 했으면 좋겠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판결을 진지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어려운 국면에서 새로운 지도자가 탄생하기를 국민이 열망하고 있는데, 태풍이 불어 배가 뒤집히는 일은 막아야 한다. 태풍은 바다를 청소하는 일만 해야 한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지난해 1월 ‘뉴 리더 4인의 제주도 대토론회와 공동선언’ 행사에 참석한 김부겸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남경필 경기도지사, 안희정 충남도지사(왼쪽부터). / 사진·전민규
지난해 1월 월간중앙 주최 제주도 토론회에서 김부겸·남경필·원희룡·안희정 네 분이 모여 협치를 주제로 대토론회를 벌였다. 그때 안 지사는 연정에 대해서 그렇게 썩 정리된 생각이 없었다. 대연정은 오히려 원희룡 지사가 진지하게 개진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최근 안 지사가 ‘대연정’이란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을 한 것을 보며, 이것은 분명 이광재 전 지사와 깊은 토론을 한 결과 아닌가 생각했다. 맞는 추론 아닌가?

“저와 김부겸·남경필·원희룡·안희정 등 네 분은 꽤 오래전부터 협치와 연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외국도 같이 다니면서 권력 독식 구조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걸 극복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사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개혁은 여야 협치 없이 도저히 이뤄낼 수 없다. 안 지사가 대연정을 과감히 치고 나온 것은 현재 국가가 처한 상황을 굉장한 위기로 인식했기 때문 아닌가 생각한다. 남경필과 원희룡 지사, 김부겸 의원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강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만일 안희정 지사가 집권한다면 남경필·원희룡 이런 분들이 안희정 정부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함께할 수 있을까?

“모이면, 장난처럼 이야기한다. 우리가 같이 잘해나가야 한다고. 저희에겐 세대의 에너지가 있다고 본다. 사실 석회석과 대리석 성분은 같다. 압축과 고열의 과정을 어떻게 거쳐 가느냐에 따라 대리석처럼 단단해지기도 하고 석회석처럼 물러지기도 한다. 68학생운동세력이 그랬다. 68학생운동세력이 빌 클린턴부터 토니 블레어까지 미국과 유럽의 한 세대를 휩쓴 적이 있다. 김부겸·유승민·남경필·안희정·원희룡 등 동시대의 정치 리더는 ‘시대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누가 집권하더라도 좋은 기운이 형성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4 차 산업혁명은 원하지 않아도 찾아온다고 한다. 잘못하면 보통사람들의 일자리를 굉장히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지식 중심의 산업혁명이라 대중은 소외되는 것 아닌가,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거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또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4차 산업혁명을 추상적으로 보지 말자. 그 시대가 도래했을 때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것, 그것 없이는 못 사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만들어내면 사는 것이고, 못 만들어내면 도태하는 것이다. 냉장고·세탁기·발전소·인터넷·컴퓨터·핸드폰 다 미국이 만들었다. 우리 독창적으로 만든 게 없다. 없이는 못 사는 ‘그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 삼성 반도체 없이는 못 살지 않나? 디지털 4차 산업혁명에 반도체와 같은 걸 몇 개를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이다. 먼저 교육혁명을 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를 키우느냐 못 키우느냐, 여기서 결판이 난다. 디지털 문명은 인터넷·인공지능·로봇의 진화로 근육을 대체하고 뇌의 기능까지 지원한다. 결국 교육혁명을 통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탄생시키는 창의적 인간이 중요해진다. 우리는 인적자원밖에 없는 나라인데, 인적자원이 최고인 시대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 하나의 축복일지도 모른다. 저는 이 같은 문명사의 새 단계를 낙관한다. 디지털 혁명으로 교육 혁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향후 7∼10년 국가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서 우리가 미국을 앞서면 우리가 세계 4차산업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정은 인물보다 시스템이다

스마트 홈, 스마트 시티 구상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스마트 홈은 스마트 시티와 결합된다. 미래의 핵심 산업이다. 스마트시티 안에 인류 새 문명의 모든 게 다 들어 있다고 보면 된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 직장과 주거가 일치되는 사회가 온다. 보통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은행들은 거의 없어진다. 학교와 병원도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백화점도 문을 닫을 것이다. 자율주행차가 서서히 등장하고 있고 이 기술 발전의 속도가 혁명적이다. 머지않은 시대에 거대한 혁명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생각하면 누가 집권하더라도 공존하는 DNA를 심지 않을 수 없다. 무한정쟁의 시대를 마감하고 국가혁신의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연정을 이뤄야 한다. 정치공학이 아니다. 그래서 연정은 인물보다 시스템을 강조한다. 제가 늘 하고 싶은 것은 남북화해 통일시대의 한반도 주민, 신문명을 만드는 아시아인으로 사는 것이다.”

- 글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 사진 조문규 기자

201703호 (201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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