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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이슈분석] 시대정신 새로 쓴 미·일 ‘정상 합숙’ 

다음은 한국 차례? 트럼프 ‘스탠드 비하인드’의 노림수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북핵문제는 일본이 주도적 대처, 한국 입장은 고려 대상에서 아예 배제돼… 중국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 한·일 경제에 더 가혹하게 적용될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오른쪽)이 2월 11일 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주관적 판단이지만 한국의 근·현대사는 내부 갈등, 시대착오, 상황 오판의 연속으로 느껴진다. 조선 말기의 꽉 막힌 세계관, 일제강점기의 어둠, 아프리카 정치의 모델감인 해방 후의 국내정치, 닉슨 쇼크 이후 나타난 유신정국과 대통령 암살, 민주화 과정을 통해 드러난 좌우 앙금, 그리고 이 시간 현재 목격할 수 있는 태극기와 촛불….

현재 밀어닥친 상황은 차가운 현실보다 한층 더 싸늘하게 느껴진다. 저주에 가까운 ‘헬조선’ 논리는 기적이 사라진 데 대한 반감인지 모른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지만, 앞으로 모든 영역에 걸쳐 시베리아의 툰드라 같은 현실이 밀어닥칠 것이라고 말한다. 몇 천, 몇 백 배 기적은 냄비현상에 비견될 수 있는 순간적 착시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유리신발도 못 신고, 무도회에 다시는 설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면 모든 것에 대해 불안해진다. 헬조선만으로는 부족하고, 인간이 가진 본능처럼 희생양을 찾게 된다. 어느 틈엔가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대세로 정착된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잘못하고 있다는 세계관이다. 나만 정직하고 억울하고 불쌍하고 피해자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악·부정·비리·새치기의 원흉이자 가해자다. 공사(公私) 구별조차 못하는 대통령과 재벌후손들의 행태는 개개인의 피해의식을 높이는 촉매다. 남과 이웃에 이어 5000만 모두 서로 비난한다. 더불어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지도자도 모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최순실도 억울하다고 고함치는 시대다. 너무도 뻔한 이야기들이지만, 하고 싶은 말이 넘치고 넘친다.

결론은 하나다. 생전의 김수환 추기경이 강조한 ‘메아 쿨파(Mea Culpa)’, 즉 ‘나의 잘못’에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 나아가 현재의 황당한 모습 전부가 나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부 갈등, 시대착오, 상황 오판…. 그 모든 것이 내 잘못된 생각과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좌우, 갑을, 금수저·은수저, 종북·반북, 청년·장년, 정규직·비정규직, 강남·비강남…. 그 수많은 흑백 분류법을 통한 ‘너의 잘못’에 대한 해결점은 바로 ‘메아 쿨파’에 있다. 네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문제다.

외국까지 확대되는 ‘반(反) 메아 쿨파


▎1월 20일 미국 워싱턴DC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기념 무도회장에 모여 환호하는 지지자들
사실, 지금 당장 거리에 나가 ‘메아 쿨파’라고 외친다면 아마도 컬트 신자쯤으로 받아들여질 듯하다. 그러나 그 같은 자세가 문제해결의 첫 단추가 되리라 믿는다. ‘메아 쿨파’를 의식하는 한 생각과 행동 모든 것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타인의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하는 세계관도 갖게 될 듯하다. 말하고 나서기보다, 듣고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반(反) 메아 쿨파’로서 ‘너의 잘못’은 한국만이 아니라 외국으로까지 확대되는 형세다. 남의 나라는 물론, 남의 지도자를 비판하고 조롱거리로 만드는 것이 유행한다. 대표적 나라는 미국과 일본. 대표적 지도자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다.

신문·방송을 보자. 하루에 한두 번씩 반드시 등장하는, 추하고 거만하며 엉망이라 당장에라도 끝날 듯한 인물이 바로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의 잘못으로 세상이 어지럽고, 경제·정치·안보 모두가 추락하는 듯하다. 일본은 한국 근·현대사를 통틀어 모순의 원천이자 악의 대명사다. 을사늑약에 즈음한 당시의 메아 쿨파를 말했다가는 매국노로 날아갈 판이다. 2014년 말, 출범 당시부터 곧 사라질 것이라던 아베는 2020년 올림픽 이후를 넘보는 강력한 지도자로 부상한 지 오래다. 대학 졸업생에게 거의 완전고용률을 보장하는 지도자로서 국민적 지지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수위를 달린다.

트럼프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다. 리버럴 미디어가 이데올로기 차원으로 대하는 반(反)트럼프 논리가 아무런 여과 없이 한국에 흘러 들어온다. 미국 미디어가 그러하니 그대로 싣는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지혜로운 머리가 있다면 판단능력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결코 미국 사람들의 의사에 반하는 인물이 아니다. 미국 미디어의 리버럴 논리에 반할 뿐 열심히 잘해나가고 있다. 반대하는 국민도 있지만, 일단 대통령으로 뽑은 이상 찬성하거나 두고 보자는 이가 더 많다.

한심한 것은 한국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트럼프 탄핵’이라는 단어다. 초등학생들도 탄핵이라는 단어를 동요처럼 부르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미국 대통령의 탄핵이란 단어도 대수롭지 않게 사용한다. 검은 안경을 쓰면 세상 모든 것이 검게 보인다. 자신이 흔들리면 남도 둥둥 떠다니는 듯 느껴진다. 사실 ‘너의 잘못’ 논리만큼 세상을 간단히 살아가는 방법도 없다. 자신은 전부 옳고 상대는 전부 틀리다. 나쁜 점만 강조하면 된다. 물론 들어줄 사람도 없지만 일방적으로 소리치고 주장하면 끝이다.

‘메아 쿨파’에 무심할수록, ‘너의 잘못’에 목소리를 높일수록 스스로의 못난 부분과 무지함에 관대해진다. 2월 10일부터 이틀 동안 보여준 트럼프-아베 정상회담에 관한 한국 내 반응은 그 같은 세계관이 여실히 드러난 증거다. 두 사람의 정상회담과 관련해 한국의 신문·방송은 어떤 소식을 전했을까? 한국민이 가진 미·일 정상회담에 관한 평균적 인상은 무엇일까?

한국에 전해진 보도내용을 기초로 해볼 때 나름의 판단이 선다. 언론의 현실인식은 물론, 뉴스를 접한 시민들의 반응이나 인상도 결코 깊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에서 벌어진 해외토픽 정도의 뉴스로 와 닿는다. 바보 같은 모습으로 연출된 아베의 순간캡쳐 사진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나 할까? 트럼프와 아베 간 18초의 악수를 무지막지한 행동이라 조롱하는 듯한 기사, 아베의 트럼프 별장 체재비 지불, 트럼프 부인 멜라니아의 아베 부인 아키에(安倍昭恵)에 대한 홀대 같은 기사가 비중 있게 다뤄진다. 실은 전부 가십 정도에 그치는, 회담의 핵심과 동떨어진 기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조선 말기를 떠올리게 하는 대외인식


▎2월 10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만찬 중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아베 신조 총리 부부.
18홀이 아닌, 무려 5시간에 걸쳐 27홀을 돌면서 함께 골프를 치는 동안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정상회담이 아니라 정상합숙으로까지 느껴지는 48시간 동안 다섯 차례의 식사를 통해 어떤 현안들이 논의됐을까? 중국과 더불어 일본을 통상 환율 위반국이라고 말한 트럼프의 생각은 어떻게 됐는지, 중국과 일촉즉발까지 간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일본의 대응방안과 미군의 역할은 어떤 것일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같은 집단경제체제에 주력하는 아베와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강조하는 트럼프의 생각은 과연 합일점을 찾았는지, 북한 공격 주장을 서슴지 않는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과 만나 어떤 대응방안을 논의했는지 등.

굳이 외교·안보·경제 전문가가 아니라 해도 가질 만한 그같은 의문에 대한 답이나 전망이 한국에서는 거의 무시된 채 보도됐다. 기자회견 공동성명에 따른 1차 정보는 있지만, 그 배경이나 의미, 나아가 한반도로 밀려들 영향에 대한 분석은 ‘엄청’ 미흡하다. 탄핵정국과 이미 시작된 대선 분위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만, 세상 물정과 무관하던 조선 말기의 상황과 너무도 비슷하다. 인터넷으로 실시간 상황과 정보를 파악할 수 있지만, 전해지는 것은 아베의 순간캡쳐된 바보 사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 2월 10일 미·일정상회담은 한반도의 운명과 직결된 이벤트다. 후세 역사가들의 몫이겠지만, 필자는 1972년 닉슨의 베이징(北京) 방문 이후 나타났던 세계 신질서에 버금가는 변화가 트럼프-아베 회담을 통해 나타났다고 판단한다.

미국 대통령선거 전 월간중앙 기고문에서도 밝혔지만, 트럼프는 개인 트럼프로 끝나지 않는다. 트럼프는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자 결과로서의 캐릭터다. 한순간에 끝나는, 인종차별적이며 성폭행범으로까지 묘사되는 거만한 시대의 반역자가 아니다.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하이파이브를 하는 트럼프(왼쪽 세 번째) 대통령과 아베(왼쪽 두 번째) 총리.
4년만 참으면 트럼프가 가고 오바마 같은 인물이 등장하리라 믿을지 모르겠다.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 신문을 보면 아직도 오바마 레거시(Legacy)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지만, 미국에서 보면 오바마는 이미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역사상 레거시를 퇴임 후에도 갖고 있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

트럼프는 4년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정신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될 장기적 흐름 속의 인물이다. 당장 4년 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누가 대통령이 되든 트럼프가 강조하는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신이 당분간은 존재할 것이다. 반이민법 대통령 명령으로 인해 트럼프의 횡포(?)가 돋보이지만, 보통 미국인이라면 결코 반대하지 않을 사안이다. 미국에서 테러가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리버럴 미디어가 난리치지만 시민 대부분은 내심 트럼프의 반이민법을 지지한다.

트럼프에서 시작된 새로운 세계관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역시 월간중앙 기사에서 밝혔지만, 필자는 프랑스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프렉시트(Frexit)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2월 말 신문·방송을 대하면 프랑스의 트럼프로 통하는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펜이 차기 대통령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글을 쓰는 이 순간 파리를 여행하던 한국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흑인 폭력시위범들로부터 강도를 당했다고 한다. 프랑스 국민은 이 같은 소식을 거의 매일 접하며 살아간다. 더불어 오스트리아도 우익 성향의 정당과 지도자가 득세하고 있다. 영국(Brexit)에 이어 미국의 트럼프, 나아가 프랑스·오스트리아·독일·이탈리아, 그리고 북부유럽 전부가 과거와 다른 정치·경제·사회·안보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닉슨 쇼크에 버금가는 심야 북핵 기자회견


▎지난해 6월 영국의 브렉시트 후폭풍으로 증시가 폭락한 가운데 시위자들이 EU 깃발을 펼치며 브렉시트 재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일본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스페인의 프랑코가 1930년대 한 순간에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와 그의 아바타들이 세계 곳곳에서 출현하는 것은 결코 반(反)시대적 흐름이 아니다. 시대상황이 옳은지, 마음에 들지 여부는 관계없다. 때가 되면 현실로 눈앞에 닥칠 뿐이다. 트럼프-아베 회담은 그 같은 시대 흐름, 아니 시대정신의 출발점에 해당된다. 지정학적으로 일본 바로 옆에 붙은 한국으로서는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그렇다면 미·일정상회담, 나아가 정상합숙을 통해 어떤 문제가 논의됐을까? 두 사람의 관계나, 성명서·기자회견 등을 살펴볼 때 여러 관점에서 가늠할 수 있다. 필자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 가진 기자회견이다. 2월 11일 토요일 밤 10시35분 트럼프의 골프장 ‘마라라고(Mara Lago)’에서 이뤄진 것이다. 토요일 심야까지 일한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극히 드물 듯하다. 흥겹게 마지막 만찬을 즐기던 중 갑자기 이뤄졌다고 한다. 한국에도 통역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은 트럼프라는 식의 조롱 섞인 뉴스로 소개됐다.

당시 기자회견을 대하면서 필자는 닉슨 쇼크 때와 같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엄청난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사실, 기자회견 내용만 본다면 아주 단순하다. 아베가 중심에서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난한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폭거라면서 안보리 사항을 준수하라고 요구한다. 아베가 주로 하고 트럼프는 뒤에서 지켜보는 식이다. 놀랍게도 트럼프의 발언은 아베가 끝난 직후 15초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 국민들에게 강조하고 싶지만, 미국은 일본의 뒤에 서서 지켜주기 바란다. 일본은 100% 믿을 수 있는 동맹국이다.”

필자는 짧은 트럼프의 말을 들으면서 순간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귀를 의심했다. 미국 사람들에게 “Stand behind Japan”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영어로 ‘Stand behind’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좁은 의미로는 뒤에 선다, 넓은 의미로는 뒤에서 지원·지지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일본 뒤에 선다, 일본을 뒤에서 지지·지원한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 셈이다.

지지·지원과 같은 넓은 의미로 볼 때는 문제될 것이 없지만, 좁은 뜻으로 해석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일본을 앞에 세우고 미국은 뒤로 빠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북한 핵 문제는 일본의 문제일 뿐, 미국은 뒤에서 돕겠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사실 지금까지의 미국의 이미지는 ‘Stand behind US’, 즉 미국 뒤에 서거나 미국을 지지하라는 의미이거나 ‘Stand Japan US Together’, 즉 미·일이 함께 서서 대응한다는 식의 표현으로 압축될 수 있다. 좁게 또는 넓게 보든 관계없이, 미국이 일본보다 앞서서 싸우지 않겠다는 의지와 자세가 ‘Stand behind Japan’이라는 표현에서 묻어난다.

100% 믿을 수 있는 동맹국이란 말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Stand behind Japan’, 즉 일본 뒤에 숨은 미국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100% 신뢰로 풀이할 수 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만약 한국 대통령과 회담에서 트럼프가 북한문제와 관련해 ‘Stand behind Korea’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미군이 빠지고 한국이 나서라는 식으로 해석되지 않을까?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문제도 금방 터져 나올지 모른다.

일본이 전면에 나서서 북핵에 대응하라!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 (WEF)에 처음 참석해 연설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한국에서는 트럼프의 이어폰 무시 정도로 알려진 기자회견으로 전락했지만, 일본인들은 “Stand behind Japan”이라는 발언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미국이 빠지고, 일본이 전면에 나서서 북핵에 대응해야만 한다는 식의 미군 한계론에 관한 이야기다.

필자는 트럼프의 발언을 좁은, 그리고 넓은 의미를 모두 포함한 것으로 해석한다. 먼저 좁은 의미를 살펴보자. 근거는 아베가 천명한, 북한 핵에 맞선 자위대의 적기지 공격능력 정비·검토를 통해 재확인해볼 수 있다. 1월 26일 일본 국회에서 밝힌 아베의 생각이다. 평화헌법에 기초한 전수방위(專守防衛) 차원에서 벗어나, 일본을 공격할 적을 미리 나서서 타격해야 할 상황을 현재 최종 논의 중이라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미국과 긴밀한 상의를 거쳐 행하겠다고 강조한다.

적기지 선제공격 문제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발언 즉시 사퇴로 이어질 만한 발상이다. 그러나 아베의 발언 후 일본의 신문·방송 어디를 봐도 공격 논의에 대한 비난이 없다. 공격 능력을 갖춘 군사력은 아베만이 아닌, 일본 미디어와 지식인 대부분이 수용하는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군사력 증강과 군비산업 발전은 일본 재계의 일관된 입장이기도 하다. 일제 자동차처럼, 저렴하고 작고 뛰어난 군사무기를 개발해 전 세계에 수출하자는 발상이다. 일본 혼자만이 아닌, 미국과 공동개발을 통한 무기 수출이 일본식 군비산업 진흥방안의 기본이다. 그 같은 사정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Stand behind Japan”이라고 말한 것이다. 일방이 아니라, 서로 이해와 양해에 기초한 발언이다.

트럼프의 발언에서 필자가 두 번째로 놀란 것은 한국이라는 단어다.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미국·일본·한국 3국이 연계해 대응한다는 식의 표현은 북핵문제를 다루는 기본 전제에 해당한다. 트럼프는 ‘일본 100% 보장’을 외쳤지만, 한국은 아예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어떻게 해석 가능할까? 극단적으로 볼 때 ‘미국은 일본 뒤에 서서 북한문제를 다룰 것이며, 한국의 의향이나 자세는 미국의 관심사가 아니다’라는 식의 풀이도 가능해진다. 더불어 ‘100% 보장하는 일본이 앞으로 북핵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의미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분석도 가능하다.

‘Stand behind Japan’은 곧 한국에 닥칠 상황의 전조에 해당한다. 한국이 미리 준비하면서 ‘Stand behind Korea’라 한다면 그래도 안심할 수 있지만, 현재 상태를 보면 너무도 어둡게 느껴진다. 한국이 일본 뒤에 서서 북핵 문제를 다루는 ‘Stand behind Japan’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미국이 한국을 ‘Stand behind Japan’에 둘 경우 일본은 한국에 대해 반대급부를 원할 것이다. 위안부 소녀상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한국이 과연 일본에 대해 무슨 제안과 혜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일본 100% 보장과 관련한 한국의 신뢰도도 궁금해진다. 100%가 반드시 좋은 의미는 아니겠지만, 미국은 과연 한국을 몇 % 정도 믿을까? 믿거나 말거나 상관없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남이 나를 못 믿는다는 말은 나도 남을 믿을 수 없다는 의미로도 연결된다. 미국이 한국을, 한국이 미국을 불신하는 시대가 올 수 있고 어쩌면 이미 시작됐을 수도 있다.

‘메아 쿨파’라고 외치는 정치인 10명만 있어도


▎2월 13일 공개된 북한 중장거리 전략탄도미사일 북극성 2형 시험발사 현장.
경제문제는 미·일정상회담이 닉슨 쇼크에 버금가는 이유 중 하나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미·일경제협력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부통령과 부총리가 차후 논의한다는 식의 총론적 이야기만 오갔다. 일본 자동차 수출 흑자를 비롯해 껄끄러운 이야기는 이후 미·일경제협력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그러나 경제협력에 관한 기본 원칙과 가치에 관한 문제는 거론됐다. 일본의 신문·방송을 보면 이미 구체적인 각론이 논의 중이라고 한다. 미·일 간의 경제문제지만, 원칙과 가치는 2011년 완결된 한·미 FTA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한·미 FTA의 행방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미·일 정상 간에 합의된 경제원칙과 가치가 고스란히 한·미 FTA로 이어지리라는 점이다.

더불어 중국도 큰 변수다. 미·일정상회담 속의 경제문제지만, 자세히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중국을 의식한 논의임을 알 수 있다. 국영기업을 통한 중국의 불공평한 무역관행을 뿌리 뽑고, 지적재산권 강화도 논의됐다. 중국의 무차별 관세와 같은 불공정무역에 대한 제재도 거론됐다. 미·일정상회담에서 미·일 FTA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앞으로 미국이 중국과 일대일 무역협상에 들어갈 경우 적용될 기준과 원칙들이 미·일 경제논의를 통해 전부 합의됐다. 중국이 손을 쓸 수 없도록 일본이 나서서 틀을 확실히 잡은 것이다. 중국상품 자체에 대한 고과세만이 아니라, 중국 국영기업에 대한 제한은 물론 불공정 기업에 대한 강력한 과세도 가능해진다.

더불어 원산지 규제법에 의해 중국산 재료를 사용할 경우 한국에서 생산했다고 해도 별도의 세금을 물어야 한다. 대충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위반자는 아예 미국과 비즈니스를 전면 중단해야 할 상황으로 갈 수 있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중국에 대한 엄격한 적용은 북한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부과될 것이다. 이미 곳곳에서 흘러나오지만 ‘세컨더리 보이콧’, 즉 북한과 간접적으로 무역을 한 기업이나 개인에 대한 미국법 적용도 강화될 것이다. 현재 미국의 상황을 보면 세컨더리 보이콧이 적용될 경우 한국이라 해서 봐줄 이유가 없다. ‘같은 민족끼리’라는 발상은 국내용 논리에 불과하다. 북한과 연계된 세컨더리 보이콧의 영향력은 중국만이 아닌 한국·일본 모두에 ‘공평하게’ 적용될 것이다.

이솝 우화에는 늑대와 양치기에 관한 이야기가 두 개 존재한다. 모두가 잘 아는, 거짓말쟁이 양치기에 관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신뢰와 관련된, 늑대와 양치기에 관한 우화다. 어느 날 늑대가 양들에게 다가온다. 양치기 소년이 곧바로 무기와 함께 경계태세에 들어간다. 그러나 늑대는 양들을 공격하지 않고, 우리 밖을 오가면서 즐겁게 뛰논다. 가끔 소년에게도 다가와 꼬리를 흔들면서 다정하게 대한다. 며칠이 지나도 착하고도 친절한 행동에 변화가 없다. 소년은 비로소 의심을 풀고 친구로 받아들인다. 어느 날 양치기가 볼 일이 생겨 도시로 가게 된다. 친구가 된 늑대에게 양치기 일을 맡긴다. 며칠 뒤 도시에서 볼 일을 보고 돌아온 소년은 깜짝 놀라 주저앉는다. 양들이 전부 사라진 것이다. 양치기 역할의 늑대도 없다. 친구로 믿었던 늑대가 한 마리의 양도 남기지 않고 몽땅 잡아먹은 뒤 도망간 것이다.

늑대에 관련된 두 가지 우화는 2017년 한국의 현실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 거짓말을 일삼다 양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 잃은 양치기와 늑대가 조금 살랑거린다고 간까지 빼준 소년. 한국은 지금 어디쯤에서 늑대에 대한 경보와 경계에 들어서 있을까? 늑대와 양치기, 그리고 양 사이에 벌어지는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관계가 트럼프 시대를 맞아 현실화하고 있다. 미·일정상회담은 그 같은 현실이 한반도로 밀려드는 출발점에 해당된다. 의인 10명만 있어도 구약성경의 소돔성은 멸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메아 쿨파’라고 외치는 정치인 10명만 있어도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201703호 (201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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