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Home>월간중앙>사람과 사람

[석학과의 만남] 쑨거(孫歌) 중국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교수 

“중국은 중국만의 길로 간다” 

글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결핍된 상상을 이상화하고 표준삼아 다른 나라를 평가하는 것은 잘못…국가 아닌 민중이 자신들의 이해대로 각종 제도와 규정에 대처”

패권국가는 보편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패권국가가 단독으로 보편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예견되는 미래 패권, 중국은 보편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우리의 미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문제다.


▎쑨거 교수는 중국이 서양의 길로 나아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보편(普遍)은 ‘전체에 공통됨’이다. 특수(特殊)는 ‘부분에 한정됨”이다. 정치나 경제, 종교나 결혼은 인류라는 전체의 보편적 현상이다. 인류는 개인 이전에 나라로 구성됐다. 정치·경제·종교·결혼이 없는 나라는 없다. 민주정치, 시장제, 종교의 자유, 연애결혼은 원래는 서구(西歐)에 국한된 ‘특수’였으나, 이제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보편’이다.

보편과 특수를 가르는 기준은 물리력이든 소프트파워든 힘인 경우가 많다. ‘그들’의 힘이 막강하면 그들의 것은 보편, ‘우리’ 것은 특수로 치부된다. 세계화의 확산으로 서구라는 특수한 국제지역에서 나온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세계의 보편으로 더욱 공고히 자리 잡고 있다. 서구보다 미국이라는 패권국가가 단독으로 보편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많다. 패권 국가는 보편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동아시아의 보편·특수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전 세계 차원에서 보면 동아시아는 특수다. 하지만 적어도 동아시아 내부에서는 어떤 지역적 보편이 있는 게 아닐까? 없다면 동아시아적 보편성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게 필요한 것 아닐까?

쑨거(孫歌·61) 중국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교수 겸 베이징 제2외국어대학교 석좌교수(Distinguished Professor)는 중국에서 세계체제 속 동아시아의 보편·특수 문제를 고심해온 대표적인 학자다. 저서로 <아시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체 분산의 공간> <문학의 위치> <아시아라는 사유공간> 등이 있다. 언젠가는 미국의 패권에 본격적으로 도전할지도 모르는 중국이 보편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궁금했다. 쑨거 교수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중국이 다르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한·중·일 3국의 지식인을 비교한다면?

“한국의 지식인들은 중국·일본의 지식인들에 비해 위기의식과 현실감이 강하다. 한국 지식인들은 사유방식이 다양하다. 그래서 당연히 내부의 차이도 많은 듯하다. 나는 한국 지식인들의 사고가 중국·일본 지식인들의 세계 인식에 많은 깨우침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내게도 역시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은 이승만·박정희,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산에 대해 사회 전체의 합의가 없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경우는 어떤가? 중국은 역사에 대해, 특히 문화대혁명에 대해 대체적 합의가 있는 것 아닌가?

“중대한 문제에 대한 합의는 어느 사회에서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의 효과는 서로 다른 의견들이 선순환적 상호보완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현재 문화대혁명에 대한 중국사회의 인식에서 진정한 문제는 합의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아직도 관련 문제의 표면에 머무르고 역사 사실을 정리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장기집권은 독재 때문 아니다”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 전회)에 참석한 시진핑 국가주석(가운데)과 리커창 총리(오른쪽 세 번째).
한국에는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중국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지목하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공과(功過)를 따져보면 공이 더 많다. 중국을 본받아야 한다.’ 그런 주장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중국과 한국의 당대 정치는 직관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나는 이런 주장이 비생산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치인들의 공로와 과실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정치인들을 분석할 때 그들의 역사적 기능을 생각해야 한다.”

중국사회는 왜 마오를 존경하고 숭상하나?

“그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다. 첫째, 마오가 이끈 중국공산당은 중국 역사상 최초로 현대적 의미에서의 주권국가를 건설했다. 둘째, 그는 노동자와 농민을 국가의 주인이라고 계속적으로 강조했다. 셋째, 마오의 열렬한 이상주의가 그의 넘치는 카리스마를 만들어주었다. 중국사회는 개혁개방 이후 물질적 생활수준이 급속도로 향상됐다. 반대로 정신적 안식처가 돼주었던 것들은 그 기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오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그리움에 현실적 기능이 있다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

지식인들에게 마오 주석은 어떤 의미인가?

“사실 지식계층은 마오의 사상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아직 마오에 대한 연구는 실질적 진전이 없다. 한 시대를 하나의 정치가로 귀결시키려는 주장은 정치학 상식에 어긋난다. 마오에게는 정치적·역사적 에너지가 응집돼 있다. 이를 떠나서 마오를 하나의 개체로만 보면 안 된다.”

중국의 경우에는 친공산당 지식인과 공산당에 약간이라도 불만을 품은 지식인의 비율이 어느 정도 될까? 반반(半半)? 7 대 3이나 3 대 7일까?

“중국의 정치적 투쟁은 여·야 간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 내부에서 일어난다. 이는 중국정치가 한국정치와 구별되는 특징이다. 지금까지 중국공산당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을 단순히 독재 때문이라고 보면 타당치 않다. 중국공산당은 자신만의 특유의 정치 조정방식이 있다. 지식인들은 이 같은 정당 형태에 주목해야만 중국정치를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연구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 따라서 지식인의 친공산당이나 반공산당의 비율로 중국공산당을 이해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한국의 경우에도 경제성장률이 10%가 넘는 고성장시대가 끝나고 현재는 2%대다. 중국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저성장시대에 터져 나오는 사회적 불만을 중국공산당이 흡수할 수 있을까?

“중국은 국토 면적이 넓고 지역 간 경제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내부의 유동성으로 위기를 극복할 조건이 충분하다. 물론 이로 인해 새로운 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다. 사실 고성장시대에도 중국 민중은 불만이 많다. 중국 민중이 제일 큰 불만으로 여기는 경제정책의 과오는 모두 고성장기에 발생한 것이다. 지금은 그 후유증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일 뿐이다. 그리고 불만을 해소하는 역량은 중국공산당이 아니라 중국 민중들 그 자체에서 나온다. 민중이 서로 도우며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런 전통은 중국 역사의 계승이며, 지금도 그 역할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식 민주주의 이론에서는 중산계층이 민주주의의 중핵이라고 본다. 자본가도 노동자도 아닌 집단, 너무 부자도 너무 가난하지도 않은 계층이어서 정치에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중산계층의 위상은 어떤가?

“중국의 중산계층은 사실 중국사회에서 남들보다 먼저 부유해진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부당한 수단으로 갑자기 부유해진 사람도 있다. 중국에서 ‘벼락부자(暴發戶)’는 안 좋은 뜻이다. 돈은 있는데 교양이 없는 사람들로 인식된다. 물질적 이익만 추구하고 정신적 생활은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이 중국 중산계층의 주체가 된 듯하다.”

중국 중산계층이 정치 세력화할 가능성은?

“이 질문은 한국정치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중국의 정치형태는 다르다. 중산계층인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馬雲) 회장을 예로 삼아 말씀드리고 싶다. 알리바바는 인터넷을 이용해 전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 마윈은 평등·상호부조·호혜·자유의 세계질서를 제창한다. 이런 생각은 국가를 초월한 세계구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은 어렴풋한 초기 형태에 불과할 따름이다.”

마윈이 한국사람이라면 유력 정치인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

마윈이 한국사람이라면 유력 정치인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 “사실 중국과 한국의 정치를 비교하기 어렵다. 한국인들은 정치를 주로 정치권력과 정치인의 교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중국정치는 국가권력체제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넓은 사회 공간도 포함한다. 중국의 사회가 국가권력과 맺는 관계는 뒤얽혀 있으며, 국가정치와 완전한 대응관계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마윈은 ‘정치인’으로서 중국적 특색이 있다. 어느 의미에서 그는 중국 전통사회의 ‘향신(鄕紳)’ 역할을 계승한 것이다.”

‘위에서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서는 대책이 있다’


▎중국인들의 마오쩌둥에 대한 그리움은 고도 성장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세계주의·아시아주의·민족주의는 중국에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먼저 세계주의의 매개체는 인터넷이다. 얼마 전 중국 저장(浙江)성에서 개최된 제3회 국제인터넷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과 마윈은 모두 인터넷 문명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주의 분야에서 중국정부와 민간이 협력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토양에서는 아시아주의가 싹틀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하다. 20세기 초 쑨원(孫文, 1866~1925)과 리다자오(李大釗, 1888~1927)가 일본 아시아주의의 패권주의 성격을 비판한 의미에서 반테제(antithesis)로 새로운 아시아주의를 제기한 바 있다. 유일한 사례다. 그 후 마오가 ‘제3세계론’을 내세웠다. 지금 중국에서 쑨원과 리다자오의 아시아주의와 비슷한 개념은 ‘일대일로(一帶一路·신실크로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대일로의 핵심은 중국이 개발도상국들과 더불어 발전하는 것이다. 아마 한국의 사상가들은 ‘일대일로’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중국중심적 경향의 가능성을 경계하는 듯싶다. 중국은 다민족국가이기 때문에 민족주의로 중국사회를 분석하기 어렵다. 비록 소수민족과 한족 간에는 때로는 긴장도 하지만, 그런 긴장이 정치적 분리주의의 기초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중국 민주주의는 미래에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중국공산당의 진화, 서양식 다당제 민주주의의 수용, 어떤 ‘제3의 길’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가능성이 높은가?

“지금 세계에서 민주정치에 대한 상상이 아주 결핍한 상태다. 미국의 정치를 기본 모드로 삼는 이데올로기적 상상밖에 없다. 미국의 민주제도는 민주의 한 형식에 불과하고 완벽한 상태에 이루기에 아직은 요원하다. 이를 이상화하고 표준으로 삼아 다른 나라를 평가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현실적으로 중국공산당은 줄곧 자기조정을 해왔다. 더불어 수많은 외래적 요소를 수용해왔다. 하지만 이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중국 일반인들의 요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서양의 길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중국 국가가 아니라 민중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중국은 자신만의 길로 갈 것이다.”

‘제3의 길’의 어떤 기미(幾微)가 보이는가?

“중국식 민주는 투표·선거 등 제도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민중의 사회생활 속의 자아조절 기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를 들면 민중이 자신들의 이해대로 각종 제도와 규정에 대처한다. 이른바 ‘위에서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서는 대책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각급 행정 인원들의 일상일 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상식이기도 하다. 계약관계는 중국에서 신성함이 없고, 도덕적 판단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지금 중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민간의 도덕적 판단이 균형을 상실해 각 계층의 우려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그 길에는 결국 사회주의가 포함되는 것인가?

“오늘날까지의 역사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결코 자본주의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문제에 대해 더욱 치밀한 토론을 요하는 문제라는 뜻이다.”

지식인들은 힘도 없고 돈도 없다. 하지만 민중 못지않게 역사를 움직이는 세력으로 부상할 때도 있다. 중국 지식인들은 중국의 미래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가 있는가?

“사실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중국사회 전체가 미래에 대해 명확한 비전이 없다. 왜냐하면 중국은 현재 과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성도, 잠재력도 많다.”

- 글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박스기사] 쑨거 교수는 누구?


쑨거 교수는 중국에서 동아시아 담론을 전개해온 대표적 석학이다. 국내 대학들이 학술회의나 강연회에 초청하는 ‘단골’ 학자다. 쑨거 교수는 지난해 11월에도 한국을 찾았다. 경희대와 (재)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 주최하는 문명전환강좌 시리즈 ‘세계 지성에게 묻는다-문명전환과 아시아의 미래’에서 강연하기 위해서였다. 쑨거 교수는 11월 21일 경희대 크라운관에서 ‘보편성을 다시 생각하다’를 주제로 강연했다. 300여 명이 참석한 70분 강연에 이어 윤여일 씨의 사회로 50분간 열띤 대담과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강연에서 쑨거 교수는 “아시아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문명다양성을 가진 지역”이라며 “세계를 하나의 모델로 통합해야 하는 것인가? 다양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면 안 되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쑨거 교수는 서구식 선거제도나 인권의 보편성 문제에 대해 중국 내에 “서방 선진국들이 만들어낸 냉전 이데올로기이니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는 저항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인식론에서 냉전 이데올로기와 똑같은 구조를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시아인의 보편성 창조 능력

그는 “우리 아시아인이 새로운 보편성을 창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한다”며 “진정한 보편성이란 서로 다른 특수성을 연계하는 매개체이며, 민중은 이 매개체를 통해 특정한 지역이나 나라가 아닌 인류 전체에 행복을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는 국내 최초로 인문학 지원을 위해 2010년 11월 설립된 재단이다. 설립 목적은 ‘인간 정신의 보편적 발전과 인격의 탁월함을 추구하는 성찰의 인문학을 심화·확산시킨다’이다.

플라톤아카데미는 올해에는 ‘심리학으로 보는 인간, 세계 이해’를 주제로 삼았다. 9~11월에 걸쳐 총 6회 무료 강연이 예정됐다. 일, 뇌, 성공·관계, 사고·생각, 중독·행복 등 우리 삶과 밀접한 주제로 국내외 세계적 석학들이 강연자로 나선다. 대상은 인문학을 사랑하는 일반인 500명 내외, 장소는 서울대학교다. 유발 하라리, 슬라보예 지젝 등 플라톤아카데미의 지난 강연은 http://www.platonacademy.org에서 볼 수 있다.

201703호 (2017.0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