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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암살 쇼크] ‘비운의 장자’ 망명지에서 ‘불귀의 객(客)’으로 

서자(庶子) 콤플렉스, ‘꺼진 불’도 다시 껐다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2인조 여성 암살단에게 살해돼…김정은 소환명령에 불응 가능성, 한국 망명 차단 위해 제거한 듯

김정남(46)과 김정은(34)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럼에도 형에 대한 김정은의 콤플렉스는 상당했던 것 같다. 김정남은 김정일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 성혜림과 사이에서 낳은 장남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반면 김정은은 북에서 ‘2등 시민’ 취급을 받는 재일동포 출신 무용수 고영희의 아들이다. 권좌에 오른 뒤에도 어머니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유독 ‘백두혈통’을 강조하는 것도 ‘혈통 콤플렉스’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왼쪽)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6년 12월 인민군 제525군부대 직속 특수작전대대 전투원들의 청와대 타격 전투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 (오른쪽) 2010년 6월4일 마카오 알티라 호텔에서 안성규 중앙일보 기자와 인터뷰하는 김정남.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이복형(異服兄)인 김정남이 2월 13일 피살됐다. 망명 중이던 말레이시아에서 여성 2인조 특수 암살조에게 살해됐다.

이날 오전 9시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제2국제공항(KLIA2). 저가(低價)항공편 운항이 많은 제2공항은 늘 그렇듯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김정남은 1시간 뒤에 출발하는 마카오행 비행기 탑승 수속을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이때 두 여성이 접근했고, 이 중 한 여성이 김정남과 신체를 접촉했다.

김정남은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며 공항 카운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현지 경찰 발표에 따르면 “김정남은 ‘누군가 나를 뒤에서 잡아당긴 뒤 액체를 얼굴에 뿌렸다’고 말한 뒤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김정남은 곧바로 공항 내 진료소로 옮겨졌지만 고통은 되레 심해졌다. 김정남은 공항 응급차에 실려 30여 분 거리에 있는 푸트라자야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차 안에서 숨졌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말레이시아 수사당국이 촬영한 현장 사진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김정남의 상태를 보면 이송 중 사망했다기보다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사망한 것 같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김정남의 시신 상태로 볼 때 독극물 공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현지 일간지 <뉴스트레이츠타임스>에 따르면 부검 결과 김정남의 시신에서 별다른 주삿바늘 자국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매체는 김정남 부검 과정을 잘 아는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남의 얼굴을 포함한 신체에 아무런 주사 자국이 없었다고 전했다.


▎김정남은 해외생활 도중 일본인 기자와 만나 ‘김일성-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권력세습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등 북한체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2월 6일부터 말레이시아에 머무르던 김정남은 신변에 큰 위협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택시 대신 공항버스로 쿠알라룸푸르 도심에서 80㎞가량 떨어진 공항으로 향했으며, 마카오로 향하는 항공편 탑승 직전에 변을 당했다.

김정남은 김정일의 후계자가 김정은으로 굳어진 2010년 이후 마카오·중국·인도네시아·싱가포르·말레이시아·홍콩 등을 떠돌았다. 최근에는 주로 말레이시아에 머물렀고, 내연녀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싱가포르를 자주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남은 2014년에도 쿠알라룸푸르의 한식당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다.


▎말레이시아 현지 매체 더스타가 공항 CCTV에 포착된 김정남을 암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의 모습을 보도했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2월 15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 “독극물 테러는 확실하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마카오로 가려다 피살된 데 대해 “일주일 전에 이곳으로 왔다 가족들에게 가려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김정남이 피살된 지 3~4시간 후 “김정남으로 추정되는 46세의 북한 남성이 피살됐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그 남성이 김정남이라는 사실을 사진을 통해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북한은 5년 전부터 김정남 암살을 시도해왔다”며 “(김정은의) 성격 탓이지 않겠느냐? 그게(암살) 그날 이뤄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5년 전이라면 김정은이 권좌에 오른 시점이다.

후견인 장성택 사망으로 ‘끈’ 떨어져


▎1. 김일성의 가족사진. 김일성의 옆은 부인 김정숙이고, 품에 안겨 있는 아이는 김정일이다. / 2. 1981년 8월 평양에서 촬영한 김정일의 가족사진. 뒷줄은 왼쪽부터 김정일의 첫째 부인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과 그녀의 자녀인 이남옥·이일남(이한영), 앞줄은 김정일과 김정남. 성혜랑은 김정남을 맡아 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 3. 김정남의 어머니 성혜림. / 4. 김정은의 어머니 고영희.
해외를 전전하던 김정남은 2014년 이후 북한 내 ‘끈’이 완전히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를 챙겨온 것으로 알려진 고모부 장성택이 2013년 12월 처형된 데 이어 고모 김경희 노동당 비서마저 2선으로 퇴진했기 때문이다.

1971년생인 김정남은 9세 때인 1980년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다. 1981년부터는 스위스 제네바국제학교에서 2년간 유학생활을 했다. 김정은과 같은 스위스 유학파 출신이다.

1990년대 김정남은 북한 미사일의 해외 판매담당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미국이 금융기관을 통해 미사일 판매대금을 압박하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2001년 차명 여권으로 일본에 불법 입국하려다 적발·억류되면서 후계구도에서 완전히 탈락했다는 것이 유력한 ‘설(說)’이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남이 상당한 액수의 체재비를 김정일로부터 지원받았던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김정일 사망 후에는 지원이 사실상 끊겼다. 엎친 데 엎친 격으로 고모부인 장성택이 처형된 데 이어 고모인 김경희마저 병석에 드러눕자 매우 막막해졌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2년부터 김정남이 신변에 큰 위협을 느낀 나머지 마카오를 떠나 싱가포르로 은신처를 옮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3년 12월 장성택이 처형된 이후로는 사실상 은둔에 들어갔다.

김정남은 2014년 1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 한식당에서 포착됐다. 또 4개월 뒤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목격됐다. 같은 해 10월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언론과 만나 즉석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당시 언론들은 그가 유학 중이던 아들을 만나러 갔다고 보도했다.

김정남이 2012년 잠시 북한을 다녀갔다는 말도 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남은 2012년 평양에서 장성택을 만났다. 장성택은 “외국 매체에 북한의 권력세습 비판을 자제하라”고 충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남은 해외생활 도중 일본인 기자와 만나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권력세습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등 북한체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살려달라” 애원했건만…


▎김정일과 함께 현장지도에 나선 김정은. 두 손을 앞으로 공손하게 모은 모습이 눈에 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남이 북한당국으로부터 소환명령을 받았는데 이에 응하지 않아 피살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면서 “여러 정황을 종합해볼 때 김정은은 김정남을 북한으로 불러들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김정은 체제를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김정남이 피살됐을 가능성도 주목했다. 그는 “오래전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김정남이 현실적으로 김정은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는 아니다”라면서 “김정은 체제가 어느 정도 안정됐기 때문에 김정남이 김정은을 위협한다고 볼 수 없다. 그렇지만 꺼진 불도 용납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김정남이 제거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국정원 역시 김정은이 직접 살해를 지시했을 것으로 본다. 국정원 관계자는 “김정남 피살은 ‘스탠딩 오더’, 즉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명령”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북한이 5년 전부터 김정남에 대한 암살을 시도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김정남은 같은 해 4월 “나와 가족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편지를 김정은에게 보냈지만 소용없었다.

김정남이 한국으로 망명을 시도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한국으로의 망명을 차단하기 위해 북이 김정남을 살해한 것”이라며 “김정남의 망명 시도 정보를 입수한 북한당국이 기습 암살에 나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5년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이 소식통은 이어 “2012년 이명박 정부 때 김정남의 망명 시도가 있었고 준비도 거의 다 된 상태였다. 그런데 우리 정부 측에서 너무 부담스러워한 나머지 한국행이 좌절된 것으로 안다”며 “이런 상황에서 김정남이 최근 다시 망명 준비에 들어갔거나 최소한 의사를 타진하다 북한의 레이더에 포착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소식통은 “김정남이 의사를 비쳤든 우리 정부 측에서 제안했든 김정남의 망명과 관련한 정보가 흘러 나왔을 수 있다. 이를 북측에서 알고 소환명령을 내렸는데 김정남이 끝내 이를 거부하자 저들이 제거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연결하는 대북 비선이 김정남이었다는 일부 언론 보도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의원 시절이던 2002년 평양 방문 때 김정남이 박 대통령 측과 e메일을 주고받으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전했다.

권력의 걸림돌이라면 누구도 예외 없다


▎1.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 2. 김정은의 두 살 위 친형인 김정철
정부당국자는 “아무리 정치적 영향력이 없다고 해도 일개 공작부서가 자발적으로 ‘백두혈통’을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김정은이 김정남 암살을 최종 허락했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김정남에 대한 김정은의 ‘혈통 콤플렉스’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정은은 한·미 정부가 ‘김정은 정권교체’를 언급할 때마다 자신의 ‘대체재’로 거론돼온 김정남의 존재를 불편해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남은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북한 김씨 왕조의 적자(嫡子)”라며 “김정일의 서자(庶子)로 정통성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김정은에게 적통을 잇는 이복형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인권운동가 출신인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김정은이 백두혈통에 대해 굉장한 열등감이 있을 수 있고, 그런 것이 표현돼서 더더욱 김정남을 죽이려 했던 것 아닌가 싶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의 김정남 위해(危害) 가능성은 2009년 초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내정된 직후부터 제기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회복한 김정일은 후계문제를 고민하다 김정남 대신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목한 상태였다.

후계경쟁에서는 김정남이 밀려났지만 완전히 ‘꺼진 불’은 아니라는 말이 많았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남은 김정일의 눈밖에 나 해외를 전전하는 떠돌이 신세였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정권 2인자로 불리던 김경희·장성택 부부가 후견인이었다”며 “북한 내에 김정남을 추종하는 세력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이 시기에 김정남은 일본 언론 등과 인터뷰에서 “아버지도 3대 세습에 반대했다” “북한은 지금 선군(先軍)정치를 할 때가 아니라 개혁·개방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며 김정은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김정은으로서는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북한 정찰총국은 2010년 베이징에 머무르던 김정남 암살을 위해 공작원을 침투시켰다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중국당국이 북한 측에 ‘중국 내에서는 이런 일을 벌이지 말라’는 경고까지 했다”고 말했다.

김정남 암살에 김정은의 북한 내 ‘친중(親中)세력’ 견제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교가와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이 김정남을 보호해왔다는 이야기는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중국은 북한 내부의 쿠데타나 급변사태 등으로 ‘유고(有故)’ 상황이 벌어졌을 때 투입할 ‘예비카드’로 김정남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중국은 2012년 김정은 체제 출범 이전부터 김정남·장성택 등을 적극적으로 보호·관리해왔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로도 중국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김정은 체제를 압박하기 위한 중국식 대북정책이었다. 중국의 이 같은 의도를 잘 알고 있는 북한은 직간접적으로 불편함을 비쳐왔다.

통일부 관계자는 “중국이 김정남을 보호한 이유는 주도적으로 김정은 체제를 바꾸겠다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를 의도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김정은 체제의 연착륙 여부를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여러 가능성에 대비하자는 일종의 중국식 ‘플랜 비(Plan B)’”라며 “하지만 북한은 이를 내정간섭이자 압박으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김정남은 중국을 오갈 때 중국당국으로부터 각종 편의 제공과 함께 신변을 보호받았다. 집권 후 5년 동안 절대권력 구축에 전력투구해온 김정은으로서는 중국이 김정남을 보호하며 ‘만일’에 대비하는 모습에 불편함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당국자는 “김정은이 2013년 고모부 장성택을 제거한 것도 중국과 북한 내 친중파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김정남의 후견인이었던 장성택은 북한 내 친중파의 거두(巨頭)였다.

이런 이유로 장성택 처형 후 북·중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됐다. 중국으로서는 자신들이 관리하던 장성택을 북한이 사전통보도 없이 제거한 것이 못마땅했을 수 있다. 장성택 처형 5개월 후인 2013년 5월에야 북한은 북·중관계 정상화를 위해 최용해 당시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비롯한 특사단을 중국에 파견했다. 특사단은 김정은의 친서(親書)까지 들고 갔지만 중국 측은 냉담하기만 했다. 특사단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면담하기 위해 하루 종일 숙소에서 대기해야 하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다.

다음 차례는 ‘장손’ 김한솔? 김설송?

김정남이 변을 당하자 그의 맏아들 김한솔(22)의 신변에도 이상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한솔은 김일성가(家)의 장손(長孫)이다. 1995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한솔은 아버지가 있는 마카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마카오국제학교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국제학교 ‘유나이티드 월드 칼리지(UWC)’ 모스타르분교에서 공부했다.

김한솔은 2013년 9월 프랑스 명문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르아브르 캠퍼스에 입학해 국제사회의 이목을 이끌었다. 대학 입학 직후 김한솔은 대학 동기들과 파티를 즐기는 등 평범한 대학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해 12월 장성택이 처형된 이후 프랑스 사복경찰의 밀착경호를 받으며 생활했다. 한때 신변이상설이 제기됐지만 2014년 10월 다시 르아브르 캠퍼스에 건재한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가 다닌 파리정치대학 르아브르 캠퍼스는 아시아 지역 학(學)으로 특화된 곳이다. 입학생은 2년은 이 캠퍼스에서, 마지막 1년은 해외 자매학교 또는 파리의 본(本)캠퍼스에서 공부하도록 규정돼 있다.

현지 유학생 등에 따르면 김한솔은 2년간 르아브르 캠퍼스에서 학업을 이수했고, 마지막 1년은 파리 캠퍼스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김한솔은 지난해 9월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등록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한솔의 여자친구는 영국에 있다고 한다.

김한솔은 2012년 핀란드 공영방송 ‘Yle’에 출연해 “삼촌(김정은)이 어떻게 독재자가 됐는지 모른다. 그건 우선 할아버지(김정일)와 그분 사이의 일”이라며 “두 분 다 만나보지 못한 나로서는 궁금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한솔은 지난해 여름, 대학을 졸업한 뒤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간다”고 했다. 프랑스를 떠나 마카오나 중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정원은 김한솔이 마카오에 머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북 소식통도 “김정남의 본처와 아들은 중국 베이징에, 후처인 이혜경과 김한솔·김솔희 남매는 마카오에 각각 거주하며, 모두 중국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작 중국당국은 이를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하태경 의원은 “김정은의 엄마는 일본사람이니 후지산 혈통이다. 그것을 알고 폭로할 가능성이 있는 로열패밀리의 경우 앞으로 신변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며 “김설송도 북한 내에서 1호 숙청 대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설송은 김정일의 둘째 부인인 김용숙의 딸이다. 하 의원은 이어 “김설송은 1974년생으로 김정남보다 세 살 아래이고, 김정은 옆의 서기실에서 근무했다고 한다”며 “김정은의 가계나 권력 내 비밀을 많이 알고 있다”고 근거를 들었다. 그는 “북한에서 혈통의 신성함은 권력의 정통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암살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박스기사] 김정은 올해 運 최악, 대격변 있을 수도 - “7~8월 北 쿠데타 조짐 보인다”


지난해 12월 14일 한 남녀가 역학자인 토담(吐談) 김덕영(57·사진) 씨를 찾았다. 이들은 토담을 찾아오기 전 세 차례(12월 8, 9, 13일)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었다고 한다.

“북한 사람의 사주(四柱)도 잘 볼 수 있습니까?”

토담은 2012년 6월, 당시 무소속 돌풍을 이어가던 안철수 대선 후보의 도중하차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 2015년 1월 트럼프 공화당 예비후보의 대선 당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전(戰) 낙마 등을 자신의 홈페이지와 아프리카TV 등을 통해 예측했다. 이런 이유로 토담은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는 적잖은 화제를 모았다.

토담을 찾은 남녀는 일반인이 아닌 국가정보기관 소속 요원들이었다. 이들은 김정은·최용해(북한 노동당 부위원장)·황병서(군 총정치국장)·리설주(김정은의 처)·김여정(김정은의 여동생) 등의 사주를 토담 앞에 내놓았다. 올해 이들의 운이 어떨지 봐달라는 것이었다. 복채는 1인당 10만원씩, 총 60만원을 줬다고 토담은 전했다.

토담은 월간중앙과 전화통화에서 “김정은은 명석한 두뇌와 순발력을 타고났다. 하지만 뭐든 혼자 다 차지하려는, 즉 독식·독재 경향이 매우 강한 인물”이라며 “김정은의 올해 운은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7월 초~8월 초에 난(亂)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난이라는 것은 하극상과 그에 따른 대대적 숙청·피바람을 의미하며, 최악의 경우 쿠데타 발생 가능성도 엿보인다”며 “북한 내 최고 권력인 김정은에게 올해는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생기는 해다. 이는 곧 북한 전체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질 것이다. 북한의 대격변 가능성을 주목하고 잘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703호 (201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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