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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탄핵소추의 새 변수된 ‘김수현 녹음파일’의 진실 

메시지를 부정하고 싶으면 메신저를 공격하라? 

김포그니 기자 pognee@joongang.co.kr
29개 통화기록 입수 입체 해부…‘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vs ‘고영태 일당’의 사익 추구, 특검과 대통령 측 대리인단 주장 팽팽히 맞서

최순실의 비서 역할을 해온 김수현 고원기획 대표의 전화 녹음파일을 놓고 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이 파일을 근거로 ‘최순실 게이트는 고영태가 주도한 사기극’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문제의 녹취록을 들여다보면 최순실과 청와대에 불리한 내용이 적지 않다.


▎고영태 씨가 2월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열린 ‘최순실 등 국정농단 사건 9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그는 최근 ‘김수현 녹음파일’ 논란에 대해 “검찰에서 이미 조사받고 끝난 일”이라고 했다.
‘김수현 녹음파일’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변수로 떠올랐다. 이 녹음파일은 최순실(61) 씨의 비서 역할을 했던 김수현(37) 고원기획 대표가 2014년 5월부터 2016년 8월 사이에 자신의 휴대전화로 고영태(41) 씨 등과의 통화를 녹음한 것이다. (전체 녹음 분량의 10% 정도에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고씨가 등장하다 보니 ‘고영태 녹취록’으로도 불린다.)

최근 공개된 2~3개의 녹음파일에서 최순실 씨의 자금을 고영태 씨 등이 빼돌리려 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정황이 나오자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고씨 일당이 사익을 챙기기 위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기획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가령 지난해 2월 29일 고씨는 김 대표와의 통화에서 “제일 좋은 그림은 뭐냐면 이렇게 틀을 딱딱 몇 개 짜놓은 다음에 빵 터져서 날아가면 이게 다 우리 거니까, 난 그 그림을 짜고 있는 거지”라고 말하는 대목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씨는 지난 9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그 부분(2016년 2월 29일 녹음파일)은 당시 최순실 씨의 회사에 사표를 내려고 고민하던 시기에 녹음된 내용”이라며 “농담조의 말이었고, 이미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끝난 일”이라고 해명했다. 검찰은 “녹음파일 2000여 개 중 대부분은 김 대표의 영어회화 공부와 관련된 내용이고, 최씨의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된 파일은 29개 정도”라며 “조사 결과 혐의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판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주장처럼 과연 고씨는 최순실 일가의 권력을 등에 업고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최순실 게이트’를 조작한 것일까? 문제의 ‘김수현 녹음파일’을 통해 사건을 들여다봤다.

“최순실이 준 페이퍼에 두 개의 재단이…”


▎최순실 씨가 2월 9일 특검에 출석하고 있다. ‘김수현 녹음파일’ 일부에서 최씨가 독자적인 재단 설립을 통해 사익을 추구했다는 정황이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김수현 녹음파일’에 등장하는 인물은 고영태 씨를 비롯해 김수현 고원기획 대표, 유상영(41) 전 블루K 과장,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 등이다. 녹음이 시작된 2014년 5월은 김수현 대표가 ‘최순실 사단’에 합류한 때다. 녹음이 끝나는 2016년 8월은 고씨의 폭로로 ‘최순실 국정농단’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던 무렵이다.

김 대표는 2014년 지인의 소개로 고씨를 처음 만났다. 그는 지난해 11월 검찰 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인이 ‘가방을 만드는 고영태라는 동생이 있는데, 컴퓨터를 할 줄 모르니 좀 도와줘라. 고영태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으니 열심히 하면 돈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2014년 4월경 서울 논현동에 있는 커피숍에서 고영태를 처음 만났고, 다음달 1일부터 서울 삼성동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해 최순실 등과 함께 일을 하게 됐다.”

이때부터 김 대표의 휴대전화에 깔린 자동녹음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고씨를 비롯해 최순실 씨 주변 인물들과의 전화 통화가 녹음되기 시작했다. 검찰은 최씨 관련 인물들이 등장하는 29개 파일 중 고씨와 김 대표의 대화가 녹음된 한 파일(2015년 7월 29일 녹음)에 주목했다.

“일단은 니들 머리에서 보고서 형식으로 짜봐.”(고영태)

“10개 대기업에서 30억씩 꽂아서 300억짜리가 됐어…. 돗자리는 문체부에서 펴주고 복지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가는거다. 이렇게 해야지….”(김수현)


이에 대해 고씨는 검찰 조사에서 “제가 10개 기업들에 30억씩 출연금을 받아 재단을 설립하는 보고서를 만들어보라고 시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바로 이 대목을 최씨와 박 대통령이 공모한 증거로 파악했다. 반면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고씨 등이 K스포츠재단을 장악해 사익을 취하려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대기업에 출연금을 받아 재단을 설립하는 구상은 누가 한 것이냐”는 검찰 질문에 고씨는 “청와대에서 나온 문서로 알고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고, 최순실이 저에게 그런 내용이 담긴 페이퍼 한 장을 주면서 설립방안을 알아보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고씨는 또 “이 페이퍼에는 문화와 체육으로 각각 나뉘어 30억씩 10개 기업, 두 개 재단이 적혀 있었다”고도 했다. 다시 말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 설립의 주체는 다름 아닌 최씨라는 것이다.

검찰이 ‘김수현 녹취록’에서 최씨의 국정농단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판단하는 대목은 더 있다. 또 다른 파일(2015년 4월 7일 녹음)에는 고씨가 김 대표 등에게 “진짜 ‘VIP(박 대통령)’는 이 사람(최순실)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라고 말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진짜 뭐 하나 결정도, 뭐 글씨 하나, 연설문 토씨 하나, 다 어쨌든 여기서 수정을 보고 새벽 늦게라도 다 오케이 하고, 옷도 무슨 옷을 입어야 되고, 뒷배경을 어떻게 해야 하고, 비서진들 있잖아. 원래부터 보좌관들 비서진들 꽂아 넣은 게 아니야. 다 그냥 ‘야, 친하니까 그냥 너 비서 해’, 전혀 비서에 대해 모르는 애들을 갖다 놓고 그런 애들만 꽂아놨어. 그래서 일이 안 돼. VIP(박근혜 대통령)가 신임해봤자야. 신임해봤자 VIP가 쳐낼 X들은 다 ‘소장(최순실)’ 말 한마디면 다 까내는 거야. VIP가 믿는 사람은 소장밖에 없어.”(고영태)

최씨가 박 대통령의 인사·연설문·의상 등 국정의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빵 터져? 사직서 내기 전 농담으로 한 말”


▎‘최순실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서 김종 전 문체부 차관과 차은택 씨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유상영 전 블루K 과장은 지난 해 5월 김수현 고원기획 대표와의 통화에서 ‘김 전 차관과 차씨의 부적절한 커넥션에 대해 언급했다.
이 ‘김수현 녹음파일’에서는 국정의 실세는 최씨이며, 박 대통령은 최씨의 지시를 따르는 아바타로 묘사됐다. 박 대통령 측이 최씨를 “어려울 때 많이 도움을 주신 분” “(최씨를) 평범한 주부로 알았다”는 등 그동안 내놨던 해명과는 다른 부분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김수현 녹음파일’을 ‘반전카드’로 만지작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12월 7일 고씨는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서 “옷 100벌과 가방 30~40개를 최씨를 통해 박 대통령에게 전했고 대금은 최씨가 자기 돈으로 계산했다”고 증언했다. 그의 증언대로라면 박 대통령은 최씨로부터 지속적으로 뇌물을 받아온 셈이 된다. 그는 또 한 언론에 “최순실이 잘하는 거? 연설문 고치는 거?”라고 말해 최순실 국정농단의 불씨를 지피기도 했다. 고씨의 이러한 증언은 이번 사안이 단순히 최씨와 그 측근들이 저지른 비리사건이 아닌 대통령까지 연루된 게이트로 발전하는 단초가 됐다.

“메시지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말이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막바지에 이른 상황에서 코너에 몰린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으로서는 고씨는 신뢰할 수 없는 이라는 점을 최대한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가 그동안 했던 증언의 신빙성도 함께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월간중앙>이 단독 입수한 최순실 씨가 고씨에게 건넨 포스트잇과 서류. ‘ko(고) 청산서류’라고 적혀있다. 고씨는 “지난해 5월 자진해 사직서를 내는 과정에서 공교롭게도 최씨로부터 더블루K에서 사직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단서라며 주목한 파일은 지난해 2월 29일 녹음된 고씨와 김 대표의 통화 분이다. 이날 고씨는 “내가 제일 좋은 그림은 뭐냐면, 이렇게 틀을 딱딱 몇 개 짜놓은 다음 빵 터져 날아가면 이게 다 우리거니까, 난 그 그림을 짜고 있는 거지”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를 두고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이번 사건이 K스포츠재단을 장악하기 위해 고씨 주도로 그 일당이 벌인 국정농단이자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씨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그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검찰에서 이미 조사받고 문제없다고 해 끝난 일”이라며 “사석에서 한 농담”이라고 말했다. 이어 “잠적하는 동안에도 검찰에 적극적으로 출석해 조사받았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조사받을 수 있다. 불법행위가 있다면 얼마든지 처벌받겠다”고도 했다.

이를 두고 농담이라고 하기엔 고씨가 상당부분 구체적인 계획을 말하고 있어 믿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고씨는 “당시 최씨의 일을 돕는 데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다. 결국 얼마 안 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직장 그만두기 전에 주변 비위를 맞출 겸 사석에서 김 대표와 나눈 잡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지난해 5월 19일 더블루K 측에 사직서 양식을 요청해 메일로 전달받았다. 고씨가 사직서를 작성할 무렵 공교롭게도 최씨도 그에게 그만둘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후 최 씨가 고씨에게 ‘ko(고) 청산서류’라고 적힌 포스트잇을 전달한다. 회사를 그만두라는 뜻이다. 고씨의 사직서는 지난해 8월 초 수리됐다.

2016년 5월 3일 유상영 전 과장과 김 대표의 통화 녹음에서는 사직을 앞둔 고씨의 심경변화를 보여주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가 상황을 직시해야 하는 게, 영태는 사실 정황을 잘 모르고 회장님(최순실)의 푸시에 따라 바람 따라 흔들리는 것 같아. 우리가 만든 그 메커니즘에 대해 이해를 못하고,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게 반복되는 것 같거든. 어제도 (박)헌영(K스포츠재단 과장)이 이야기하는데, 영태 형은 전경련과 어버이연합…, 이런 사회적 이슈 같은 것에 개념도 없고 모른다는 거야. 이제 지쳐서 사람이 멍해져 있고, (정현식) 사무총장 등과도 대화가 안 되니까 단절되어 있는 거야. 심각하게 멍해 있다는 거야.”(유상영)

“저도 어제 생각을 정리하고 영태 형과 얘기하려고 한 건데, (…) 영태 형과 우리가 부딪치는 게…. 영태 형은 포지션 상 꼭대기에 있는 것(보고받는 자리)을 부담 가지는 것 같아요.” (김수현)


이 녹음파일에 따르면 고씨가 최순실의 지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최씨와 동등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고씨가 자신의 측근과 사전모의해 K스포츠재단을 장악하려 했다”는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주장과는 배치되는 부분이다. 또 고씨는 사회적 이슈에 관심 없을 뿐만 아니라 최씨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는 위치에 있는 것에도 부담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이어진 통화에서는 최씨가 독자적으로 사익을 추구했다는 정황마저 포착된다. 김 대표 등은 고씨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상황에서 최씨가 비자금을 조성하는 모습을 보이자,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고씨를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도 한다.

“우리가 가르마를 잘 타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월 13일 뇌물공여 피의자신분으로 특검에 소환됐다. 유상영 전 과장은 지난해 5월 김수현 대표에게 “최순실 씨가 독일에 비자금을 위한 현지법인을 설립했고 삼성의 돈이 들어갔다”고 했다.
최씨가 비자금 확보를 위해 독일에 설립한 ‘비덱’에 고씨의 명의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이어진다. 이들은 고씨가 이 과정에서 사익을 챙기지 못한 것을 암시하며 “(사익을 챙기기에) 지금은 늦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회장님이 독일 현지에서 비덱이라는 (비자금을) 받을 수 있는 독일 현지법인 하나 세팅한 거 알아? (중략) 내가 알기에는 이미 삼성에서 일부 돈이 들어갔다네. 나도 (박)헌영(K스포츠재단 과장)이가 얘기해줘서 안 거고. 헌영이가 그러던데, 독일에 더블루K 독일지사를 만들려고 하는데, 독일에 비덱이라는 걸 만들어서 그 돈을 빼려고 하는 거래. 왜냐면 비덱으로 들어간 돈은 목적사업이 한정돼 있어서 바로 빼긴 좀 그러니…. 중간에 더블루K를 끼워 넣어서 돈을 뺄 거라는 거지. 우리도 사실 이게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이 구조라면 그게 10억~20억이겠냐? 우리가 가르마를 잘 타야….”(유상영)

“내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부분이 더블루K나 영태 형 옆에서 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거든요. 지금 영태 형이 뭘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 영태 형이 제 얘기에 벽을 치고 있는 느낌을 받았거든요.”(김수현)

“우리가 ‘벨(김종 문체부 차관)’ 포지션에 들어가 있었으면 엄청 낫겠지. 차라리 차은택이 나을 수도 있겠고. 그런데 우리는 영태 포지션이기 때문에 그 포지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기획했어야 한다는 말이지. 그러려면 솔직히 영태가 회장님의 비자금을 만들고 이런 거에 좀 더 똘똘히 해서 그걸로 사업 기획하는 게 낫지. 그런데 지금은 늦었을 것 같고. 그걸 위해 (비덱을) 다 만들어 놓고 (최순실이 고영태의) 명의만 데리고 가는 거니깐. (…) ‘벨’이랑 차은택이랑 연결된 거 같다. 밑으로 해서. 벨과 차은택의 연결고리가 대명인 것 같거든. 왜냐하면 대명 아레나 공연은 차은택이가 할 거고. 시설은 벨이 먹을 거고. 어레인지 되는 게 대명이면 대명OOO이고 그렇지? 이런 교집합이 생기면, 아…. 영태가 이걸 알까? (중략) 우리 헌영이나 (강)지곤(K스포츠재단 차장)이나, 너나 내가 이렇게 있으면 형이 있는 바닥으로 삽질해도 돼.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영태도 우리 안으로 끄집어들일 수 있는 거고. 이 판에서는.”(유상영)


유 전 과장과 김 대표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고영태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어 당시에 고씨가 최씨 영향력 아래에서 꼼짝 못하고 있다는 내용도 포착됐다.

“지금 영태 형은 그로기(공황) 상태예요.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할 필요가 없는 거잖아요. 영태 형이 ‘소장(최순실)’을 맡고. 소장이 하는 거 우리가 한 발 앞서서 가면 되는 건데. 소장이 뒤집는 거는 막을 수 있는 건 영태 형인데, 그걸 안 막고 있다는 건지, 못 막고 있다는 건지. 제가 몇 번 ‘소장이 그건 하면….’ 그러면 영태 형이 ‘그건 나도 못해’ 이래 가지고. 중간에서 따로 받는 거 하려고 사람 모아놓고 있다고 하면…”(김수현)

“그 모아놨다는 거, 그거 때문에 불편해 하는 거야. 영태는.”(유상영)


이 녹취록에 대해 고영태 씨는 검찰 조사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2016년 5월경이면 제가 최순실 씨 옆에서 일을 돕는 것에 매우 지쳐 있을 때다. 김수현과 유상영이 저를 통해 최순실 씨의 일을 많이 도왔는데, 제가 더 이상 (최씨를 도우려는) 의지가 없으니 자기들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한 것 같다.”

그는 2월 5일 전화 통화에서도 “당시에는 모든 게 정상적이지 않았다. 최씨의 재단 자체가 정상적인 조직이 아니었다”고 했다. “K스포츠재단의 고위급 임원 몇몇은 가만히 앉아서 최씨 지시만 따르고, 재단 돈을 과하게 써댔다. 무식한 내가 봐도 비정상적인 일이라, 여기에 대한 불만을 ‘사무총장 몰아내고 재단을 장악하겠다’는 식의 농담으로 풀어낸 것”이라는 얘기다.

“아휴~ 내가 삼성을 어떻게 상대해?”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 국정농단 사건 수사 특별검사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가 브리핑을 하고 있다. 특검 측은 최근 “‘김수현 녹취록’ 관련 고영태 씨에 대한 수사는 이미 끝났으며 고씨를 입건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13차 변론에서 ‘김수현 녹음파일’ 29건을 증거로 채택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국회 탄핵 소추위원 측이 박 대통령 대리인 측보다 먼저 이 녹음파일을 증거로 신청했다는 점이다. 국회 측 관계자는 “‘김수현 녹음파일’이 탄핵소추 사유와 직접 관계는 없지만, 박 대통령 쪽에 불리하다고 보고 먼저 증거로 신청했다”며 “녹취록을 보면 박 대통령에게는 불리한 내용이 많은데도 이를 활용하려는 것은 박 대통령 측의 악수”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수현 녹음파일’에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관계와, 국정에서 최씨가 사익을 추구하려 했던 정황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한 예로 지난해 3월 17일 최철 문체부장관 보좌관은 국정농단의 실마리가 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최 보좌관이 고씨에게 “‘벨’은 사업을 좋아서가 아니라 ‘위’에서 찍어서 회장(최순실)이 일 도와주라고 하니까 하는 것”이라며 “재단은 사실 회장님이 제일 관심이 많다”고 얘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는 최씨가 김 전 차관을 통해 재단 운영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는 정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 최씨는 미르 등 재단 관여 의혹을 부인해왔다.

최 보좌관은 또 “(경제) 수석실에서 조정하는 거니까 모양새가 나쁘진 않다. 경제수석이 조정하면 청와대에서 내려온 거니까”라고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측은 두 재단이 전경련 주도로 만들어져 운영됐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 녹음파일에 따르면 청와대가 사실상 재단 관련 사안을 직접 주도한 것으로 돼 있다.

‘김수현 녹음파일’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또 있다. 지난해 3월 2일 김 대표는 ‘삼성과 상의해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고 하자 고씨는 ‘내게는 그럴 능력이 없고 최씨에게 말하라’며 발을 빼는 내용이다. 결국 모든 길은 최씨를 통하며, 최씨가 다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삼성문제 때문에 이 실장이 얘기할 게 있다고 연락달라고 했어요.”(김수현)

“삼성, 아유 내가 삼성을 어떻게 상대해?”(고영태)

“소장님한테 얘기할까요? 위에서 찍으면 되는 그 프로세스 있잖아요.”(김수현)

“알아서 찍으라 그래. 난 못 찍는다.”(고영태)


2015년도의 고씨 행적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당시 ‘김수현 녹취파일’엔 고씨가 최씨를 이용해 정부 인사에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고씨는 최철 당시 문체부장관 보좌관을 만나 정부부처 고위직 인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문체부) 1차(관) 누구냐? 박OO? 얘를 먼저 없애려면 사람이 있어야 해.”(고영태)

“윤○○. 기재부 출신이고. 우리는 그쪽 분야에서 빨아들일 수 있잖아.”(최철)


이에 대해 고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2015년 초·중반은 최씨와 사실상 접촉하지 않았을 때다. 최씨, 차은택 씨, 김종 전 차관 등의 부적절한 행각에 대한 자료를 모아 언론에 제보했지만 보도되지 않았고, 같은 해 말 최씨로부터 일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기 전까지 야인생활을 했었다”고 말했다. 고씨는 지난해 12월 검찰조사에서도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제가 최씨와 크게 다툰 후 최씨, 차은택씨, 김종 전 차관 등에 대한 비위사실을 수집해 2014년 말경 한 언론사에 제보했다. 그러나 보도되지 않아서 이후에도 저는 그에 대한 정보를 계속 모으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최 보좌관 등이 제가 최순실 씨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절대 정보를 줄 사람들이 아니라고 조언했다. 저도 정보를 얻을 생각에 최순실 씨와 계속 가깝게 지내는 것처럼 말했는데 최 보좌관 등이 실제 그렇게 믿고 위와 같은 대화를 나눈 것 같다.”

폭로에도 윤리가 있어야 한다고 여전히 고씨를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폭로를 위해 비위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사익을 추구했다는 게 만약 사실이라면 고씨를 의인이 아니라 공범으로 다뤄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특검은 “이미 김수현 녹음파일을 조사했고, 고씨에 대해 별 문제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법조계 일각에서는 고씨에 대한 사회적 의혹이 이어진다면 이는 ‘별건’으로 수사해야 한다는 반응도 나온다. 다시 말해 고씨의 혐의가 사실이더라도 국정농단의 본질과는 관계없으니 따로 다뤄야 한다는 뜻이다. 권성동 국회 탄핵소추위원은 “최순실 씨의 약점을 잘 아는 고씨가 이를 이용해 뭔가를 시도하다 실패한 사건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면서도 “이 사건과 관련해 고씨가 한 진술은 이미 안종범 전 수석 등 주요 관련 인물들의 진술과 증언, 객관적인 자료에 의해 사실로 확인되고 있어 거짓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 김포그니 기자 pognee@joongang.co.kr

201703호 (201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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