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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도진기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의 판례 평석 

“듀스 김성재 의문의 타살, 법원판결 과연 최선이었나” 

도진기 서울 북부지법 부장판사
대중과 법원의 판단 간 괴리가 가장 심한 케이스 중 하나…종합과 직관 논리의 관점에서 재조명한 판결의 문제점

피해자는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야 했다. 스물을 겨우 몇 년 넘긴 나이, 막 솔로 가수로 영예로운 출발을 하는 바로 그날이었다. 여자친구가 체포되어 법정에 섰지만 최종적으로 무죄를 받아 확정되었다. 도진기 판사는 판결에서 제시한 의심이 과연 ‘합리적’인가에 의심을 가졌다. 그는 “모든 작업은 비판을 견디고 진화해나가며, 판결도 예외일 리 없다”고 믿고 있다. 20년 전 판결에 도 판사가 다시 주목한 이유다. <편집자>


▎1995년 11월 1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타살된 가수 김성재. 그의 죽음은 대중과 법원의 판단 간 괴리가 가장 큰 사건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나는 작가가 된 덕분에 성장했다고 믿는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비판을 받아보았다는 점이다. 물론 칭찬만을 받을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다양한 독자를 상대로 작품 활동을 하는 일인데 그런 건 불가능하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까’ 하며 납득 못하는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갖가지 비판에 익숙해지면서 모든 이의 취향에 부응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고 다른 의견을 수용하게 되는 과정을 겪었다(그중에는 정체와 의도가 의심스러운 비난도 있었다. 이런 종류의 ‘타락한 비판’은 무시한다). 이렇게 잘리고 깎여나가는 경험을 통해 작가로서뿐 아니라 판사로서도 더 성장했다고 믿는다(이건 작가가 되면 얻으리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산물이었다).

판사는 비판에 익숙지 않은 존재다. 판결은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기치 아래 존중의 대상으로 되어 있다. 어떤 판결이 내려지면 정당성을 따지기보다는 그 결론을 인정하고 다음 단계를 강구하는 게 사회의 반응이다. 간혹 비판의 물결이 일더라도 정서적이고 즉물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니, 판사들은 무시하게 된다. 신문기사 몇 줄을 보고서 내린 판단과 두툼한 증거물 목록과 증인의 생생한 증언을 거친 판단의 무게가 같을 수는 없다. 그런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판결은 비판에서 조금 비껴서 있고(학술적인 ‘판례 평석’이란 게 있지만 비판이라기보다는 ‘판결 이해’에 가깝다), 대중의 비판을 받더라도 판사는 끄떡없다.

판사는 법률 전문가이자 오랜 세월 법과 사실인정이라는 한 우물을 판 베테랑이다. 일단은 그의 판단을 더 신뢰할 만하다. 하지만 이 안에 몸담고 있으면서 조금 달리 느껴온 점도 몇 가지 있다. 전문가에게는 ‘논리 협곡’이라고 불러도 좋을 맹점이 존재한다. 한 우물을 깊게 파들어갈수록 보이는 하늘은 좁아진다. 분석이 깊어지면 종합은 죽는다. 사회의 정서와 동떨어졌다고 질타당하는 결정들이 혹시 이런 논리 협곡에 빠져버린 건 아닌지 한번쯤 되돌아보는 일은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이건 건전한 비판에 해당될 거라고 믿는다. 새로운 형태의 판례 평석이라 불러도 좋다. 다만, 내가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판결보다 내가 더 판결을 잘할 수 있었다는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원래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게 비판이고, 훈수다. 그걸 하려는 것뿐이다.

듀스 김성재 살인사건은 아마 대중과 법원의 판단 간 괴리가 가장 심한 케이스 중 하나일 것이다. 피해자는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야 했다. 스물을 겨우 몇 년 넘긴 나이, 막 솔로 가수로 영예로운 출발을 하는 바로 그날이었다. 여자 친구가 체포되어 법정에 섰지만 최종적으로 무죄를 받아 확정되었다. 사람들은 그 결과에 분노했다.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그들의 분노와 의혹에는 과연 이유가 없는 것일까. 그저 신문기사만 보고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것뿐일까.

시사가 아니라 역사가 된 사건이라 할 만하다. 지금쯤은 재평가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제 와서 사건을 뒤집으려는 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판결문 안의 논리에 국한해서’ 과연 그 안에 사람들의 의심을 때려눕힐 만큼의 설득력이 있는지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일반론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비판과 피드백의 기회를 가져보자는 것이다(판결문을 텍스트로 삼을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 사건에 관해 지금 접할 수 있는 자료는 무척 제한적이다. 판결문 말고는 몇 개의 신문기사 정도가 전부다. 소송기록이나 수사기록은 당사자나 직접 관계자 말고는 접할 수 없다).

1995년 11월 19일, 듀스 출신 가수 김성재는 SBS <생방송 TV가요20>에서 솔로 데뷔무대를 가진 후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S호텔 별관 57호에 투숙했다. 치과대학생인 여자친구 이미영(가명), 매니저 김동형(가명)과 백 댄싱 팀 멤버 등 8명과 함께였다. 이들은 거실에 모여 공연장면을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를 반복해 시청하다가 밤이 되자 차례로 방으로 자러 들어갔고, 11월 20일 새벽 1시 거실에는 김성재와 여자친구 이미영 두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이미영은 김성재가 소파에 누워 있는 상태에서 그의 화장을 지워주고 몸을 주물러주며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벽 3시40분경 집으로 돌아갔다(이는 이미영의 진술이다). 아침 6시, 김동형이 일행 중 가장 먼저 깨어나 거실로 나갔다. 소파에 엎드려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려 누워있는 김성재를 보고 깨우려 했지만 일어나지 않자, 6시50분경 김성재를 뒤집어 똑바로 눕히고서 재차 그를 흔들었지만 그는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김성재의 몸에서 검출된 혼합 동물마취제


그의 오른쪽 팔에서만 28군데의 주사바늘 자국이 발견되었다(오른팔 위쪽 3곳. 오금 5곳, 아래쪽 20곳의 자국도 있었고, 모두 불규칙하게 정맥 혈관을 따라 분포되어 있었다). 피하출혈은 신선혈로서 사망 이전에 발생했으며, 근접한 시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되었다. 김성재의 혈액, 소변, 위 내용물에서는 틸레타민과 졸라제팜이라는 약물이 발견되었고 정상인보다 많은 마그네슘이 검출되었다. 다른 특이사항이 전혀 없었기에 부검의는 약물주입을 사망원인으로 판단했다(이상은 판결문에서 확정된 최소한의 사실이다).

처음에는 김성재의 약물오용으로 인한 사고사인가 했는데, 상황을 뒤집는 결정적인 제보가 날아왔다. 김성재의 마지막 순간에 같이 있었던 여자친구 이미영이 사건 얼마 전 동물 병원에서 ‘졸레틸 50’과 주사기를 구입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졸레틸 50’은 김성재의 몸에서 검출된 바로 그 틸레타민과 졸라제팜이 혼합된 동물마취제였다. 이미영은 부검결과가 나오기 직전, 동물병원 의사에게 약품구입 사실을 말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미영을 체포했고, 1심은 그녀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람들은 김성재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재판의 결론에 대부분 납득했다.

하지만 2심의 결론은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이미영은 무죄. 2심 재판부도 대중의 정서와 판단을 모를 리는 없다. 1심의 유죄 판단이 누구에게나 상식적으로 보였으니 이를 뒤엎는 일이 쉽지는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재판부는 도대체 어떤 근거로 무죄라는 판단을 한 걸까. 언론에서 보도된 사실을 토대로 모두가 유죄라 믿었던 그녀에게 어떤 억울한 속사정이 있었던 걸까.

판결문은 첫째, 김성재의 사망 시간대를 오전 1시에서 오전 2시50분 사이라고 추정한 1심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했다. 1심에서 사망 시간대를 추정한 근거는 이랬다. 사체의 혈액 중 적혈구가 아래쪽에 가라앉아 생기는 반점을 시반이라고 하는데, 사망한 지 최소 4시간이 지나 사체의 체위를 뒤집으면 적혈구 일부가 다시 아래쪽으로 이동해서 사체 위아래에 반점이 생기고, 이를 ‘양측성시반’이라 한다. 법의학자 3인(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겸 동대학 법의학 연구소장 A, 부검의 B, 검안의 C)은 그의 몸에 양측성시반이 보인다고 확인해주었다. 양측성시반이 나타나려면 사망한 지 최소 4시간 이상이 되어야 하고, 오전 6시 50분에 매니저가 김성재를 깨우면서 몸을 뒤집었으니, 이때부터 양측성 시반 형성에 필요한 최소시간인 4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오전 2시50분이 된다(즉, 늦어도 이 시각에는 김성재가 분명하게 죽어 있었다). 김성재가 살아 있는 모습을 사람들이 최후로 본 시간이 오전 1시. 그때부터 오전 2시50분 사이에 김성재와 같이 있었던 사람은 피고인 이미영뿐이다. 추정된 사망시각이 결정적으로 이미영을 지목하고 있었다.

2심 재판부는 법의학자들의 이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했다. 그들은 김성재의 사체 부검 직전에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고서 시반이 있다고 판단했는데, 시반이라고 지적한 지점이 각자 달랐고, 폴라로이드 사진의 특성상 거뭇한 음영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시반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이미영의 변호인은 직접 부검대 위에 올라 알몸으로 찍은 사진을 제출하였고, 이 사진에도 거뭇한 음영이 관찰되므로 김성재의 폴라로이드 사진만으로는 시반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B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고서 양측성시반이라고 판단한 법의학자 중 1인이었지만, 2심에서는 부검 사진 중 다른 법의학자 A가 시반이라고 지적한 부분은 사진 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시반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고, 2심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1심 이전에 있었던 다른 법의학자들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배척하였다.

사망시간 추단은 추측에 불과한 것


▎2인조 댄스그룹 듀스의 멤버 이현도(앞)와 김성재. 김성재는 솔로 데뷔 무대에 오른 직후 사망했다.
사망시각에 의문을 제기한 근거는 더 있다. 매니저 김동형은 오전 1시에 방에 자러 들어가면서 건조기를 작동시켜놓았는데, 아침 6시에 일어났을 때 건조기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건조기의 최대 타이머 작동시간은 135분이었으므로, 밤중에 누군가가 타이머를 재작동시켰다는 이야기가 된다. 판결문에서는 ‘건조기의 타이머는 범인에 의해 재작동된 것으로 보여지고 그 목적은 범행의 실행시에 일어날 수 있는 소음이나 범행현장의 이탈시 문에서 나는 소음 등을 중화시킬 목적이라고 추단’하고, 이러한 가정 하에서 오전 6시부터 역산하여 135분 이전인 오전 3시45분에는 김성재가 살아 있었거나 막 사망한 때일 거라고 판단했다(그렇다면 오전 1시부터 2시50분 사이에 사망했다는 원심의 추정이 깨지며, 그 시간 동안에 김성재와 같이 있었던 이미영의 혐의도 대폭 옅어진다).

또, 이미영이 별관 57호실을 나갔다고 진술한 시각이 오전 3시45분인데, 그녀가 범인이 아니라면 김성재는 그때 살아 있었을 것이고, 그녀가 범인이라면 김성재가 살아 있을 때 범행현장을 떠났다고 진술하는 쪽이 유리하므로 그 무렵에는 김성재가 생존해 있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판단했다. 결국 김성재의 사망시각은 빨라도 이미영이 방을 떠난 오전 3시45분 이후라는 것이 판결문상의 숨겨진 추정이다.

몇 가지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진다. 우선 폴라로이드 사진만으로 본 법의학자들이 판단미스를 했을 거라는 부분에 관해서다. 판사의 눈으로 보니, 보통사람의 알몸을 찍은 사진에서도 음영이 보이고 시체 사진에도 음영이 보이는데 다 비슷하고 혼동될 만한 거 아니냐, 하는 것이다. 하지만 판사는 법률전문가지 법의학전문가가 아니다. 전문가의 판정을 비전문가가 상식선에서 의아함을 품고 부정하는 건 성급해 보인다. 대개의 경우 그런 장면에서 전문가는 자신의 오류를 깨닫기보다는 답답함을 느낀다. 법정에 법의학자들을 불러 물어보았다면 폴라로이드 사진만으로 그렇게 판단한 전문적인 근거를 댔을 것이다. 전문가의 반론 기회도 주지 않고 일반인의 상식 판단의 선에서 부정해버리는 건 무슨 경우일까? 네이버 지식검색을 들고 와서 ‘판결이 이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며 항의하는 당사자를 볼 때 법관들이 느끼는 답답함을 기억하지 못한 걸까. 판결 전체를 관통하는 확증편향의 시작이 아닌지, 벌써부터 두려움이 든다.

우리나라 법의학자들이 ‘사진발’로 오독되는 경우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그런 중대한 증언을 했을까? 다른 법의학자 B가 2심 법정에서 조금 달리 증언했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A 박사가 지적한 부분은 시반이 아닐’ 거라는 정도의 진술이다. 이미 자신이 다른 부분을 시반으로 지적해놓은 상태니 그런 증언은 예상된 것 아닐까. 그의 증언만으로 다른 법의학자들 증언 전체를 부정하는 건 비약이다. 3명의 법의학자가 시반이라고 지적한 부분이 다르다는 이유로 믿기 어렵다고 했는데, 이건 그들을 중구난방으로 증언하는 행인 정도로 취급하는 셈이다. 전문가 세 명 모두가 오판했을 가능성은 오히려 세배로 낮아진다고 봐야 한다. 그중 누군가가 지적한 부분이 양측성시반에 해당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은 것이다.

건조기 타이머 문제도 그렇다. 범인이 재작동시킨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게 오로지 ‘범행을 저지르고 있는 동안’의 소음이나 혹은 ‘범행 직후’ 현장을 이탈할 때 문짝 소리 등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논리의 협곡’이 보인다


▎1995년 11월 당시 MBC 뉴스데스크 엄기영 앵커가 김성재 사건 수사 관련 뉴스를 보도하고 있다.
김성재는 그날 저녁 내내 웃통을 벗고 있었다고 한다(원래 집에서는 위에 아무것도 입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침에 발견될 때는 긴 팔 옷이 입혀져 있었다. 주사바늘이 당장 눈에 띄는 걸 꺼림칙해 한 범인이 입힌 것으로 추정된다. 될 수 있으면 범죄 현장을 늦게 발견시키게 하고픈 것이 범죄자의 심리다. 죽은 사람의 옷을 갈아입히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다. 더구나 범행 이후 당황하고 흥분된 상태에서 잘 될 리 만무하다. 범인은 범행현장과 사체의 사후 정리에 상당한 시간을 소모한 것 같다. 당연히 소음이 생길 터이고, 호텔 객실을 나서는 소음 또한 걱정되었으리라. 그래서 건조기의 타이머를 틀어놓았던 것 같다. 그렇게 보는 쪽이 주사기 찌르는 소음밖에 없을 행위를 무마하려 건조기를 틀었다는 추측보다는 더 그럴 듯하다. 적어도, 살인 ‘이후’에도 얼마든지 건조기 타이머를 작동시킬 이유가 있었다는 얘기다. 타이머 작동 무렵에 김성재가 살아 있었다거나 죽은 직후라고 가정하는 건 실제적으로나 추리적으로나 근거가 없다. 판결문은 범죄 실행 시 소음 제거를 위해서라고 ‘추단’할 수 있다는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이 추단 하에서는 김성재가 오전 3시45분에 살아 있었을 거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추단은 기껏해야 ‘추측’(그것도 근거가 미약한)에 불과하고, 겨우 이걸 근거로 법의학자들에 의해 확정된 사망시각의 반증으로 삼는 건 안 될 말이다(양측성시반의 문제로 법의학자들의 확인을 탄핵할 여지가 있는지는 앞서 언급했다).

이미영이 범인이라면 김성재가 살아 있을 때 떠났다고 진술했을 거라는 이유로 김성재가 사망한 시각은 그녀가 진술한 오전 3시 45분 이후일 거라는 부분도 납득이 어렵다. 범인을 마치 철저하게 합리적인 시장경제주체로서 행동하는 것처럼 상정한 논리다. 어차피 한밤중, 떠난 시각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솔직하게 말할 수도 있다. 나가면서 CCTV나 프런트의 직원이 보았을 수도 있으니 거짓말하는 쪽이 오히려 의심을 산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진술의 가능성이란 실로 다양하고 예측할 수 없는데, 어떻게 ‘오로지 이런 점 때문에 이렇게 진술했어야 한다’고 판단한단 말인가. ‘이게 최선입니까?’ 하며 사후적으로, 이성적으로만 판단하면 다 미흡할 뿐이다. 살인이다.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정상적인 이성이 작동하기 힘들다. 범죄의 모든 면에서 합격하는 범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완전범죄이니 법의 심판대에 오를 일도 없다. 범인이 판사가 예측하고 고려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상하다, 그러니 믿을 수 없다’라고 해선 안 된다.

2심 판결문은 약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이미영이 사건 직전 구입한 동물마취제 ‘졸레틸 50’ 1병은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한 양이라고 부검의 B가 진술한 바 있었다. 2심 법정에서는 개와 고양이를 상대로 한 동물실험보고서와 약품사용설명서 등이 제출되었는데, 이를 근거로 ‘졸레틸 1병은 사람에게 충분한 마취효과를 낼 수는 있으나 사망에 이르게 할 충분한 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그 증언을 배척해버렸다. 나아가 1병으로는 사람을 죽이기 어렵다는 위 판단을 근거로 이미영이 구입한 졸레틸 1병만이 김성재에게 투여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작은 개 1마리를 안락사시킬 만한 분량의 약물을 가지고 치과대학까지 나온 피고인이 건강한 청년을 죽일 수 있다고 믿었을 리 없으며, 설사 이미영이 투여하였다고 하더라도 졸레틸 1병이라는 분량에 비추어 살해의 범의를 가지고 투약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썼다. 김성재의 반항 없이 28군데나 주사바늘 자국을 남길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도 했다. 1심은 김성재의 혈액에서 67.8ppm, 뇨에서 281.5ppm의 마그네슘이 검출되었고, 이는 정상인보다 높은 수치라고 판단했지만(부검의 B는 김성재의 뇨중 마그네슘염 함량 수치가 높은 것으로 보아 외부에서 마그네슘염을 포함한 물질이 투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술), 2심은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1인분에서도 127.43mg의 마그네슘이 포함되어 있어 음식 섭취로도 마그네슘의 함량이 상승할 수 있고, 뇨 중 마그네슘염의 농도는 정상범위 내에 있기에 마그네슘이 외부에서 투입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분명히 김성재는 졸레틸 주사로 죽었다


앞서 이야기한 ‘논리 협곡’이 보인다. 판결문은 졸레틸 1병으로는 사람을 죽이기에 용량이 좀 부족한 듯하다는 입장이다. 설마 사인이 졸레틸이라는 결론 자체를 부정하는 뜻인 걸까? 하지만 법의학자, 부검의가 다른 특이점이 없는 걸로 보아 사인은 졸레틸(틸레타민과 졸라제팜)이라고 판단했고(마그네슘염도 검출되었지만 정상범위 내로도 볼 수 있다 하니 빼기로 한다), 김성재의 팔에는 주사기 자국이 28군데나 있었다. 졸레틸은 명백하게 그날 밤 김성재의 팔에 투여된 약물이다(지인들 모두 오전 1시 이전에는 김성재의 팔에 주사바늘 자국 따위는 없었다고 증언했다. 김성재는 웃통을 벗고 있었기에 이 사실은 거의 확정적이다). 김성재는 졸레틸 주사로 죽은 것이다. 범행에 준비된 용량이 그보다 작았다고 하여 ‘사인’이 뒤바뀌지는 않는다.

판결문도 차마 사인까지 뒤집으려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서 다른 결론을 내고 있다. ‘졸레틸 1병은 치사량에 못 미치는데, 김성재는 죽었다. 이미영은 졸레틸 1병만을 구입했다. 따라서 이미영이 졸레틸을 주사해서 김성재를 죽인 게 아니다.’ 풀어보면 이런 이야기가 된다.

우선 1병으론 용량이 부족하다는 판단부터 근거가 확고해 보이진 않는다. 1병으로도 사람을 죽일 만하다고 1심에서 전문가가 밝혔는데, 2심은 동물실험보고서와 약품 사용설명서를 근거로 삼아 독자적인 판단으로 1병 용량이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또다시 전문가가 무시되고 있다. 상식인이 상식을 근거로 전문분야의 판단을 내리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전문가들은 안다. 이렇게 판단하는 것도 ‘피고인의 이익’이라면 용인되는 걸까?

과연 용량이 부족한지 하는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판결문이 펼친 다음 단계의 논리를 보자. 치사량이 되기 어려운 졸레틸 1병만을 구입한 이미영은 범인이 될 수 없다는 논리 말이다. 과연 그런가? 이미영으로 향하는 혐의의 본질은 졸레틸이라는 특수한 약품과 주사기를 사건 직전에 샀다는 사실, 그리고 김성재는 졸레틸 주사로 죽었다는 사실이다. 약물의 종류가 같다면 이 상황에선 그 약물이라고 보는 게 맞다. 더구나 졸레틸이라는 아주 특수한 약물이다. 아닐 수가 있을까? 이미영이 구입한 게 아니라면 이 졸레틸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란 말인가? 판결문은 거기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피고인의 혐의에 의문만 제기하면 끝이라는 입장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영이 구입한 용량이 확실한 치사량에 ‘못 미칠 수도’ 있다고 해서 범행 자체가 부정된다는 논리는 낯설다.

이런 판단이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되는 경우는 딱 하나다. 비슷한 시기에, 졸레틸을 구입한 사람이 김성재의 주변에 여러 명 있는 경우다. 그중 이미영이 구입한 약물이 용량이 좀 부족하다면 혐의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이미영이 그 약품을 구입한 유일무이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김성재의 사망 시각 근처에 같이 있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용량 때문에 혐의 자체를 지운다는 건 어불성설이다(판결문은 외부인이나 그날 투숙했던 다른 지인의 범행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런 판단을 한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거의 불가능함을 아래에서 다시 보겠다).

치사량이란 어차피 특정 수치로 정해지는 게 아니다. 법정에 제출된 건 동물에 대한 실험보고나 약품 사용설명서뿐, 인체에 관해서는 용량이 검증된 바도 없다. 체질이나 컨디션에 따라서 얼마든지 결과는 가변적이다. 당시 부검을 담당했던 국과수 정희선 전 원장은 자신의 저서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알코올이 해독되는 과정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약 독물에 대한 신체반응도 마찬가지”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치사량인 농도가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그 차이를 100배까지 두기도 한다”고 하고 있다. 치사량은 점이 아니라 선이란 얘기다. 그 수치를 정해놓고서 죽지 않았으면 치사량이 아니라는 판결문식 논리를 전문가는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졸레틸 1병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안 죽을 수도 있겠는데, 어쨌든 김성재는 죽었다. 그렇다면 그게 김성재에겐 치사량이었다. 이렇게 판단해야 한다(사람을 죽인 양이 바로 치사량이다. 치사량이 아니라면 죽었어도 그 약물이 아니라는 논리는 거꾸로 되어 있다).

동기가 없다고 함부로 단정지을 순 없다


▎사망 직후 김성재의 몸에 형성된 시반(위)과 팔뚝에 남은 28개의 주사 바늘 흔적. (아래)
2심은 치과대학을 나온 피고인이 이 약물로 청년을 살해할 수 있다고 믿었을 리 없다고 했는데, 치과대학에서 동물안락사용 약물까지 공부할 것 같지는 않다. 뒤에서 보겠지만 이미영은 구입 당시에도 졸레틸을 콕 찍어서 달라고 한 게 아니라 애완견을 안락사시키는 방법을 물었고, 동물병원 의사가 졸레틸과 마그네슘, 주사기를 건네며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이미영은 졸레틸에 관해서라면 그 수의사가 알려주는 대로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보는 쪽이 사리에 맞다.

판결문은, 설사 이미영이 투여하였다고 하더라도 졸레틸 1병이라는 분량에 비추어 살해의 범의를 가지고 투약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한다. 이 논리는 이미영이 졸레틸의 치사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미리 알고 있었다고 전제해야 성립한다. 하지만 졸레틸 1병으로 사람을 확실하게 죽인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점은 재판 과정에서 병원에의 사실조회 등을 통해 겨우 드러난(재판부가 인정한) 사실이다. 이미영은 치사량이 얼마인지 인식하기 힘들었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저 수의사가 용법을 알려주는 대로 (죽일 수 있다고 믿고) 사용했을 거라 보는 쪽이 더 자연스럽다.

공소장이나 1심에서는 김성재에게 피로회복제라고 속여서 주사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는 반면, 2심은 김성재의 반항 없이 28군데나 주사바늘 자국을 남길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의사인 여자친구가 하는 말이라면 믿었을 수 있으니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한두 번의 주사로 마취가 되면 그 후로는 얼마든지 더 주사기를 찔러 넣을 수 있다. 다른 방식도 가능하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팔에 누군가가 28군데를 주사해서 살해했지 않은가. 그게 이미영이냐 다른 사람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이미영은 김성재와 싸우면서 가스총을 쏘기도 했고, 그가 외출하지 못하도록 몸을 끈과 테이프로 묶었을 정도로 평소 소유욕과 집착이 강했다. 김성재는 1995년 7월 가수활동에 지장을 주는 이미영과의 관계를 청산하려 마음먹은 채 미국으로 떠났고, 이미영은 김성재에게 연일 전화를 하여 마음을 되돌리려 하였으나 냉담한 반응만을 얻었다(이미영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었으나 김성재가 건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이미영은 자신이 곧 일본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니 그때까지만 잘해달라고 애원하여 김성재는 귀국 후 그녀를 만나주었다. 하지만 김성재의 마음이 이미 돌아선 것을 느낀 이미영은 증오심에, 혹은 그를 죽여서라도 소유하려는 마음에 결국 살해를 결심했다. 이것이 주변인의 증언과 주변 정황으로 미루어 1심이 추측한 이미영의 살해동기였다.

2심은 동기 면에서도 판단이 달랐다. 가스총은 실수로 쏘았다는 이미영의 변소를 받아들였고, 신체결박 사건도 장난삼아 벌어진 일이라 판단했다. 1995년 4월 이후부터 김성재와 이미영이 자주 싸운 사실은 인정되지만, 완전히 관계가 악화되었다고 보지는 않았다. 김성재의 모친이 이미영에게 잘해주었고, 김성재가 미국에 있을 때 이미영의 전화를 받기 싫었다면 한 달에 수십 회의 전화통화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며, 김성재가 미국에서 귀국했을 때 모친보다 먼저 이미영을 만났으며 선물까지 준비하였고, 사망 당일에도 이미영이 생방송 녹화를 하고, 김성재에게 안마를 해주는 등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는 점 등을 근거로 삼았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주변인들의 진술은 ‘통상의 연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다툼을 이미영이 범인으로 지목되자 적개심에서 과장하여 표현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고 일축했다.

DNA 같은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범행동기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범인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반증이 되는 건 아니다. 그저 ‘별 이유도 없어 보이는데 왜 그랬을까’하고 의문을 품을 수 있을 뿐이다.

DNA같이 확실한 증거가 없는 경우는 조금 다를 것이다. 어떤 이가 동기가 없다면 범행 자체도 했을 리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욕범으로 추정되지만 범인이 얻는 경제적 이익이 전혀 없다면? 우발범으로 보이지만 피해자와 원한관계나 다툼이 없다면? 이런 때에는 범인을 잘못 짚은 게 아닌가 충분히 의심해볼 수 있고, 그래야 한다. 반면에, 동기의 완전한 부재가 아니라, 동기를 납득할 만한 정황이 좀 부족해 보인다고 하여 범행을 부정할 만큼 결정적인 흠이 있다고 취급해선 안 된다. 특히 눈에 보이는 경제적 이익이 걸린 범죄가 아니라 증오나 사랑 같은 감정이 개재된 사건이라면 함부로 동기가 없다고 단정짓기 힘들다. 사람의 내면은 천태만상이니까.

동기 없으니 범행도 의심스럽다?


▎법정에서는 김성재의 사인이 된 졸레틸의 치사량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부검을 담당했던 정희선 전 국과수 원장(사진)은 자신의 저서에서 “약독물에 대한 개개인의 신체 반응은 천차만별”이라고 밝혔다.
김성재 사건의 경우는 어떨까. DNA같이 확실한 증거는 없는 사건이다. 그러니 동기가 아예 없다면 범행 자체도 의심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동기가 없다고 분명하게 잘라 말할 수 있을까. 열렬히 사랑하는 남자, 하지만 다툼이 많았다. 잡으려 해도 절대 잡히지 않고, 곧 자신의 손아귀를 벗어나려 한다. 아, 뒷부분은 지인의 증언 내지 의견이니 불확실하다고 제쳐 두자. 하지만 가스총 사건, 결박 사건은 실제로 있었다. 다만, 그 정도가 심각했느냐, 장난스럽게 넘길 수준이었냐는 해석이 갈릴 뿐이다. 아무튼 가스총이니, 결박이니, 조금은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2심은 다른 점들을 들어 통상의 사랑싸움에 불과한 것 같다고 판단하면서 지인의 증언을 배척했다. 복잡미묘한 남녀 간의 사랑 문제를 두고 그나마 사정을 더 잘 아는 지인의 진술에 대한 겸손한 청취보다 판사의 합리와 이성을 더 앞세운 느낌이다. 김성재와 거의 하루 종일 붙어 지내는 로드매니저의 증언조차 여기서는 깃털처럼 가볍게 치부되었다. 사랑에 판사식의 합리판단이 적중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하긴, 악의적인 집단 증언 왜곡의 사례도 없지 않으니, 피고인 보호 차원에서 2심의 선택을 일단 수긍해보자. 하지만 최소한의 팩트로만 보아도 둘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정도는 부인할 수 없고, 특히 더 좋아한 여자 쪽에서 큰 갈등과 고뇌가 있었음은 자명하다. 아무리 양보해도 동기가 뚜렷하지는 않다는 정도이지, 동기가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판결문은 통상의 다툼 정도가 아닌가, 사람을 죽일 만한 성격이나 동기가 있었을까 의문을 표하지만, 사랑의 고뇌에 빠진 청춘의 내면을 노회한 판사의 이성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초점이 맞지 않는다. 사랑할수록 미움도 커진다. 자신이 사랑한 연인을 살해하는 이별범죄는 아귀가 안 맞지만 실제로 일어난다. 김성재는 ‘범생이’들이 즐비한 판사들 사회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을 갖춘 남자였던 것 같다. 그와 사귀었던 이미영도 그만큼 깊이 빠졌고, 떠나갈지 모르는 그를 소유하기 위해 절망적인 심정이 되었을 수 있다. 그런 동기, 그런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어야 동기의 부재로 인해 범행의 증명이 흔들리게 되는데, 이 격정적인 청춘의 사랑 이야기에선 그런 단언을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 사건에서는 동기가 없으니 범행도 의심스럽다는 식의 판결문 논리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미영은 사건 발생 얼마 전, 자주 가던 동물병원에 들러 애완견을 안락사시키려 한다며 도움을 요청했고, 동물병원 의사인 금진석(가명)은 졸레틸과 주사기, 마그네슘을 팔면서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그 뒤 이미영은 사실은 동물을 안락사 시키려던 게 아니라 의사고시에 떨어진 후 괴로움에 자살하려 약물을 구입한 거였는데, 용기가 없어 쓰레기장에 버렸다고 진술했다(하지만 이미영이 약물은 구입한 건 의사고시에 떨어진 후 9개월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사건이 일어나고 김성재에 대한 부검이 이루어지기 직전, 이미영은 동물병원 의사를 불러내 자신이 약물을 구입한 사실을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1심은 이를 유죄의 근거로 삼았지만 2심은 다르게 보았다. 금진석의 말로는 이미영의 분위기가 범죄를 숨기려는 것보다는 난처한 처지에 놓여 부탁하는 정도로 보였다는 것이었고, 김성재의 마약투약설 등이 돌고 있었던 당시 상황에서 이미영이 환각작용과 신경안정작용이 있는 마취약물과 주사기를 사간 사실이 알려지면 곤경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고 걱정해서 금진석을 찾아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판결문의 합리적 의심 설득력 있나?


▎1995년 11월 24일 김성재의 영결식장에는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슬퍼하는 팬들과 지인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우선, 졸레틸에 환각작용 등이 있다는 게 과연 분명한가. 이점을 뒷받침할 자료는 재판에 제출되지 않았다. 판결문상으로는 졸레틸이 마약대용으로 사용된다는 변호인의 ‘주장’이 있었을 뿐이다. 김성재가 약물오용으로 사고사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하려는 의도겠지만, 입증은 없다. 졸레틸은 동물마취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판결문 어디에도 졸레틸이 환각성분이 있다거나 마약대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판단이 없다. 그런데, 돌연 판결문은 이미영이 ‘환각작용 등이 있는 졸레틸’을 사간 사실 때문에 오해받을까 봐 그랬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미영이 한 변명보다 오히려 더 좋은 해석을 붙여서 받아들여준 셈이다.

이런 이해가 가능하려면 이미영이 졸레틸에 환각작용 등이 있다고, 그래서 세간에 언급될 때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는 약품이라고 인식했어야 한다. 과연 이미영은 졸레틸에 마약성분이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렇게 믿어줄 근거는 전혀 없다. 그녀는 동물병원 수의사가 안락사용 약물이라고 전해주는 걸 그저 받아왔을 뿐이다. 더구나 곧장 버렸다고 했으니, 그 약물을 두고 환각성분이 있다고 오인했을 기회는 없어 보인다. 애당초, 이미영은 그 약물을 환각성분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주장까지는 안 한 것 같다(판결문이 이미영의 변명을 받아들이면서 그녀의 주장을 보충해서 상상한 것으로 보인다).

약물이 거론되는 난처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면 약물중독사로 보도되었던 사망 직후부터 그런 부탁을 할 이유가 존재했다. 그런데 왜 하필 부검이 시작되고 결과가 나오기 직전이었을까. 경황 중이어서 뒤늦게 그 생각이 떠올랐을 수도 있으니 이건 의문 정도에 불과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면모를 보았을 때, 부검을 하면 졸레틸 성분이 검출될 것을 예상하고 미리 동물병원 의사를 만나 입 막음을 하려 했다고 보는 1심 판단이 훨씬 더 상식에 부합해 보인다.

이제 판결문은 마지막 장벽을 펼친다. 법관들의 영원한 숙제이자 관문이며, 피고인들에게는 절대 방화벽 같은 존재. 바로 ‘합리적 의심’이다.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는 ‘합리적 의심’이 존재한다면 유죄로 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는 명백히 유죄인데, 어떻게 된 일이 법원에만 들어가면 이상하게 무죄 방면되느냐며 사람들의 공분을 사는 일이 주로 이 탓에 생긴다. 판사들도 상식인으로서는 유죄로 믿으면서 법리상 무죄로 하는 딜레마에 처하는 것도 이 법리 때문이다.

판결문은 두 가지 합리적 의심을 제시한다. 첫째는 외부인 침입의 가능성이다. 당시 일행이 투숙한 호텔 데스크 근무자가 폐쇄회로 화면을 통해 모든 출입자를 일일이 확인하였던 것은 아니며, 누구든지 투숙객을 통해 열쇠의 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도 통상 데스크에서는 출입구마다 설치된 폐쇄회로 화면을 통해 출입자를 감시하고 있고, 별관57호 현관문은 밖에서는 자동으로 닫히면서 잠기어 열쇠가 있어야만 열 수 있으며, 투숙객과 데스크에서 열쇠를 보관하고 있어 외부침입이 어렵다는 점은 인정했다.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듯, 외부인의 침입은 물리적으로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니 일어날 수 있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아무튼 루팡 같은 존재가 있어 그 곤란함을 뚫어내고 별관 57호에 침입했다고 가정하자. 근본적인 문제는 김성재의 살인에 졸레틸이라는 전대미문의 약물이 동원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유일무이하며,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아보기 드물 것 같다. 졸레틸, 졸레틸 하면서 재판 도중에 허다하게 나오니 어느 순간 익숙해진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사건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약품을 대체 누가 알기나 할까?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 여자친구가 졸레틸과 주사기를 구입했는데, 하필이면 침입자가 졸레틸을 김성재에게 주사할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 여기에 전제가 되었던 호텔방의 침입가능성과, 일행들만이 인식했을 건조기를 외부인이 엉뚱하게 재작동시켰을 가능성까지 곱하면 도대체이 확률은 어느 안드로메다까지 가야 하는 걸까?(아래에서 이야기하는 사망시각 추정의 장벽을 넘어야 하는 문제는 지면관계상 넣지도 않았다) 이걸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둘째로 제기한 ‘합리적 의심’은 내부인 범행가능성이다. 이미영이 호텔을 떠난 오전 3시40분경 이후 김성재의 다른 일행 7명 중 누군가가 거실로 나와 김성재에게 주사를 놓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외부인 침입설보다는 조금 그럴듯하다. 호텔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외부인이 침입해야 한다는 어려운 단계가 일단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사망시각의 난제를 넘어야 한다는 약점이 있다(이건 앞의 가설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앞서, 사망시각을 오전 1시에서 오전 2시50분 사이로 추정한 법의학자들의 견해를 배척한 2심 판단의 위험성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점을 인정한다면 오전 3시40분 이후에 김성재가 사망했다고 전제한 이 가능성은 대폭 줄어든다. 더 큰 난관은 역시 졸레틸이다(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마그네슘도 있다).

외부인 침입, 다른 내부인 소행?


하필이면 범인이 우연히도 이미영이 구입했던 이 특수한 약물을 김성재에게 주사했다는 어려운 가정을 해야 한다. 청산가리쯤만 되어도 양보할 수 있다. 비교적 흔한 독물이니까. 하지만 졸레틸은? 이 ‘듣도 보도 못한 잡’ 약물에 관해선 도저히 양보할 기분이 들지가 않는다. 마그네슘은 그보다는 덜하지 싶다. 하지만 졸레틸과 같이 검출되었단 점이 문제다. 두 희귀약물을 동시에, 우연히, 범인이 이미영과 겹치게 구해서 투여했을 개연성은 또다시 안드로메다로 향한다. 여기에 외부인이나 이미영과는 달리, 주사기와 약병을 적절히 처리해야 하는 어려움을 더해야 한다. 외부인 침입설보다 수학적 확률이 조금 낫다 뿐이지, 역시 ‘합리적 의심’이라고 하기엔 턱 없이 부족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상정해볼 수 있는 의심은 그나마 이것밖에 없다. 진범이 이미영에게 혐의가 가도록 함정을 판 경우. 범인은 어떤 경로로 이미영이 졸레틸과 주사기를 구입한 사실을 알았다. 범행을 그녀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다 데뷔무대를 가진 김성재와 그날 밤 같이 호텔에 투숙하게 되었고, 마침 이미영도 같이 있게 되었다. 그리도 또 마침 밤에 한동안 김성재와 이미영 둘 만이 같이 있었다. 또 안성맞춤으로 이미영이 새벽에 그곳을 혼자서 떠났다. 범인은 거실로 몰래 나와 김성재에게 독을 주사해 살해했다. 이런 스토리 말이다. 이 가설 아래서는 범인은 그날 밤 호텔에 투숙한 일행 중에 있다고 해야 한다. 몰래 졸레틸과 주사기를 숨기고 있다가 천우의 기회를 잡은 셈이 된다.

이런 의심까지 해보는 게 타당할까. 이런 수준의 함정파기와 우연의 만남은 거의 신이나 악마만이 가능할 것 같다. 추리소설로 쓴다고 해도 너무 억지라 독자들이 외면할 게 분명하다. ‘오컴의 면도날’이란 게 있다.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하지 말고 더 간단한 쪽을 선택하라는 원칙이다. 중세의 무익한 철학 논쟁을 종식시킨 이 논리 도구가 지금껏 살아남은 건 그만큼 쓸모 있고 옳다고 검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이 가설은 아웃이 분명하다.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이 ‘터무니없는 의심’은 판결문에 적시되지도 않았다. 아마 너무 터무니없어서 그런 듯하다.

판결문은 그 밖에도 여럿이 있던 호텔방이라는 곳이 살해 장소로서 부적합하다는 점이라든가, 피로회복제로 속여서 약물을 주사하였다는 검찰 주장의 범행방법이 부자연스럽다는 점을 의혹으로 들고 있다. 하지만 이미영이 범인이라는 사실 자체에 대한 ‘합리적 의심’으로 한 자리씩 차지하기에는 한참 모자란다.

호텔방이 살해장소로서 부적합해서 의문이라면 외부인 침입설이나 다른 내부인의 소행설 역시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 가정 아래서도 범행장소는 어떻든 호텔방이니까. 합리적 의심을 포함한 모든 범행가능성이 제로가 돼버린다. 피로회복제로 속였다는 범행방법이 부자연스럽다고 해서 주사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김성재가 스스로 주사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듯한데, 오른손잡이인 김성재가 오른팔에 28번이나 주사를 했을 리 없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제거된 가능성이었다. 그 바탕에는 마약유사품으로 사용했을지 모른다는 의혹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졸레틸이 마약대용으로 사용된다는 증거가 전혀 없고, 김성재나 이미영이 그렇게 믿었다고 볼 정황도 전혀 없다. 또, 이미영이 주장하지도 않은 약물주사 사고사로까지 판단하려는 건(약물이 졸레틸인 점이라든가 사망시각을 보면 사고사라 하더라도 이미영은 필시 알았거나 도왔다고 봐야 한다) 형사절차상의 직권주의를 감안하더라도 범위를 넘어섰다. 피고인이 놓쳤지만 재판부는 가능했던 공상까지 피고인의 이익으로 써먹는 건 과하다. 아무리 봐도 역시나 판사 기준의 이성과 합리성을 잣대로 삼은 것 같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호텔방이나 피로회복제 같은 문제들 보다, 이미영이 왜 그 춥고 쓸쓸한 11월의 새벽에 연인을 버려두고 홀로 호텔을 빠져나갔나 하는 점이 더 의심스럽다.

다시 말하지만 결론을 뒤집으려는 의도는 없다. 판결에 관계했던 분들을 공격하려는 의도 또한 당연히 없다. 당시 수사가 그다지 철저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미영이 약품을 구입한 사실에 환호해 디테일을 놓쳐버린 느낌도 든다. 판결문은 밝혀진 사실 안에서는 분석 논리에 충실했다. 나는 종합과 직관 논리의 관점에서 조금 다르게 뜯어보았다. 직접 재판을 담당하지 않았기에 책임 없이 쉽게 말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이미영이 졸레틸과 주사기, 마그네슘을 구입한지 얼마 안 되어 김성재가 같은 약물 주사로 사망했고, 법의학자들이 입을 모은 사망 추정시각에 같이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 이미영이라는 근본적인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말하고 싶었다. 판결에서 제시한 의심이 과연 ‘합리적’인가에 의심을 가졌다. 무엇보다 서두에 말했듯이, 판결을 순전히 논리적 측면에서 요모조모 살펴보는 일은 의미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모든 작업은 비판을 견디고 진화해나가며, 판결도 예외일 리 없다.

도진기 - 서울대 법과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현 서울 북부지법 부장판사. 2010년 <선택>으로 추리작가협회 신인상, 2013년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문광부 선정 올해의 청소년 도서, 2014년 <유다의 별> 한국추리문학 대상, 2015년 <가족의 탄생> 세종나눔도서 선정. 4개의 작품이 중국어로 번역됐고, <유다의 별>과 <백수탐정 진구> 시리즈는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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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호 (201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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