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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한자 時評(3) 풍운(風雲)] 큰 바람(風) 일어나고, 구름(雲) 치솟아 오를지니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탄핵 인용(認容) 여부 떠나 올해 안에는 새 대통령 선출
기상 변화 관리 못할 인물이라면 역사에 큰 죄 짓는 격


▎장쑤(江蘇) 출신인 한 고조 유방(劉邦)의 상(像). 그는 황제에 오른 뒤 고향을 찾아와 ‘풍운’의 뜻이 담긴 노래를 불렀다.
바람은 짧은 시간에 많은 곳에 미친다. 기압(氣壓)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바람은 아주 빠른 속도로 매우 넓은 곳에 이른다. 바람은 또한 적지 않은 변화를 예고한다. 적어도 기상(氣象)의 측면에서는 그렇다. 바람이 몰고 오는 것도 가볍지 않아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바람을 가리키는 한자 風(풍)의 풀이는 다소 엇갈리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원래 글자꼴을 보면 새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천상의 새인 봉(鳳)과 거의 동급으로 푸는 경우가 많다. 한자가 만들어지던 무렵에 사람들이 바람을 대하는 태도는 주로 기상의 변화와 관련이 있었던 듯하다. 대개 주술(呪術) 또는 제례(祭禮)의 맥락이다.

그래서 바람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하늘의 존재와 연관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우선 하늘의 새, 신조(神鳥)로서 봉황새를 바람과 같다고 인식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중에 들면서 鳥(조)라는 글자 요소를 빼고 虫(충 또는 훼)의 요소를 집어넣어 오늘날의 風(풍)에 이르렀다고 학자들은 풀고 있다.

아무튼 바람의 영향력은 자못 크다. 일시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가 다른 어느 것에 비해 거대하며 광범위하다. 그래서 풍속(風俗)이라고 하면 바람처럼 광대한 면적에 미치는 사람들의 인문, 또는 문화적 수준을 가리킨다. 그와 비슷한 맥락의 단어는 풍물(風物)·풍습(風習)이다.

너른 면적에 고루 드러나는 모습은 풍경(風景)이라고 적는다. 풍광(風光)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 국한할 수도 있다. 골고루 드러나는 사람의 모습을 적을 때는 풍모(風貌)라고 할 수 있다. 사람 또는 일반 대상의 평균적인 격조를 말할 때는 풍격(風格)이다.

그러나 오늘 글의 주제는 바람과 구름, 풍운(風雲)이다. 이는 우선 기상의 변화를 예고하는 말이다. 바람은 비에 앞서 닥치는 전조(前兆)일 때가 많다. 그래서 대표적인 조어의 하나가 풍우(風雨)다. 바람 뒤에 닥치는 비의 또 다른 지칭은 구름이다. 구름은 잔뜩 물기를 머금었다. 곧 비로 변해 땅에 내리는 존재다. 그래서 풍우와 풍운은 거의 동렬(同列)에 설 수 있는 낱말이다. 그러나 뉘앙스는 조금 다르다.

우선 풍우는 비 앞에 닥치는 바람, 그 뒤에 몰려오는 비를 지칭한다. 기상의 변화를 암시하는 단어다. 기상 변화는 결코 얌전하지만은 않다. 커다란 바람과 비가 몰려들 때는 재앙(災殃)으로 번진다. 그래서 단순한 기상의 변화를 넘어 앞으로 닥칠지 모를 위기의 요소를 가리킬 때가 많다.

비와 같은 흐름의 기상은 눈, 서리 등이다. 따라서 바람과 눈을 가리키는 풍설(風雪), 풍상(風霜)도 풍우와 별반 차이가 없는 낱말이다. 추운 날씨에 몰아치는 눈바람, 즉 풍설은 사람을 위협할 수 있다. 추위를 예고하는 바람과 서리, 즉 풍상도 마찬가지다. 모두 세상살이의 험난한 여정, 위기의 요소를 가리킨다.

물결을 그에 덧대는 경우도 많다. 풍파(風波)가 그런 맥락의 낱말이다.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은 역시 세상살이의 어려움, 내 앞에 닥치는 위기의 한 자락일 수 있다. 큰 물결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풍랑(風浪)이라고 적는다. 속에 담은 뜻은 마찬가지다. 풍도(風濤)도 그렇다.

잠룡(潛龍)들의 움직임만 분망(奔忙)한데

이 글의 주제로 다시 돌아가자. 풍운은 위의 바람과 비 또는 눈·서리·물결이 등장하는 한자 낱말들과 흐름이 같다. 앞으로 닥치는 기상의 변화, 또는 위기의 요소를 머금은 그 무엇으로 먼저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달리 풀어야 할 구석이 있다.

한(漢)을 세운 유방(劉邦)이 황제에 오른 뒤 자신의 고향인 지금 중국 장쑤(江蘇)의 패현(沛縣)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야말로 금의환향(錦衣還鄕)이랄 수 있었다. 그는 친지들을 불러놓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 첫 소절의 내용이 이렇다. “큰 바람이 일어나니 구름이 치솟아 오르도다(大風起兮雲飛揚).” 이어 그는 천하의 통일을 이뤘다는 자부, 앞으로 나라를 어떻게 이끌까에 관한 포부를 노래에 담았다.

따라서 노래의 맥락으로 보면 유방은 앞의 첫 소절에 등장하는 큰 바람과 구름, 즉 풍운으로써 천하에 닥쳤던 커다란 변화를 묘사한 셈이다. 그러나 예사로운 변화는 아니다. 풍운이 때로는 용(龍), 호랑이(虎)와 함께 등장하기 때문이다.

<역(易)>에는 “구름은 용을 좇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라 성인이 출현해 세상이 그를 본다(雲從龍, 風從虎,聖人作而萬物覩)”는 말이 나온다. 같은 성질의 존재끼리 모여들고 이어 세상을 구하는 좋은 인물이 나온다는 뜻이다. 용과 호랑이는 시세에 따라나오는 좋은 인물을 가리키고, 바람과 구름은 그에 걸맞은 상황을 지칭하는 것으로 풀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풍운이 지니는 함의는 조금 색다르다. 단순한 기상의 변화를 넘어 때로는 권력의 향배, 사회의 아주 커다란 변화, 또는 그런 시세(時勢)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풍운이라는 낱말은 앞의 풍우·풍설·풍파 등에 비해 정치적인 함량이 훨씬 더 높다.

따라서 유방이 제 고향으로 금의환향했을 때 부른 노래의 첫 소절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천하의 권력을 쥐기 전 일었던 거대한 변화, 그 시대의 흐름 속에 용과 호랑이로 표현할 수 있는 ‘영웅과 호걸’로서 제 이미지를 다 고려한 작사(作詞)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곡절을 거치면서 풍운이라는 낱말은 완연한 정치적 흐름에 올라탔다. 대단한 혁명(革命)의 시대, 또는 거대한 변혁(變革)의 계절에 등장하는 정치적인 인물들을 대개는 풍운아(風雲兒)라고 적는 이유가 다 여기서 비롯했으리라고 본다.

이제 우리에게도 그런 풍운이 닥쳤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을 두고 헌법재판소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탄핵이 이뤄진다면 곧장 새 권력 선출에 나서는 대선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적어도 올해 연말에는 새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나라의 꼴이 참 많이 망가져 있는 상태다. 혁신을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운명은 이제 암울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런 변혁의 꿈을 제대로 안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무수한 풍운아가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그야말로 한 고조 유방의 말처럼 “큰 바람이 일어나니 구름이 치솟아 오르는” 상황이다. 종국(終局)에 누구 손에 대한민국의 다음 권력이 쥐어질지는 현재로서는 전망하기 쉽지 않다. 하늘에 아직 오르지 못한 잠룡(潛龍)들의 움직임만 아주 분망(奔忙)하다.

그래도 풍운은 풍운이다. 바람에 이어 비를 내리는 구름이 몰아친다. 그 안에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위기의 요소도 잔뜩 담겨 있다. 따라서 곧 닥치는 기상의 변화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그 풍운을 좇아 나타나는 인물들은 민족 앞에, 역사 앞에 큰 죄를 짓고 만다. 풍운을 좇는 잠룡들이 이 점만은 명심해야 한다.

유광종 - 중어중문학(학사), 중국 고대문자학(석사 홍콩)을 공부했다. 중앙일보에서 대만 타이베이 특파원, 베이징 특파원, 외교안보 선임기자, 논설위원을 지냈다. 현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저서로 <유광종의 지하철 한자 여행 1, 2호선>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 1, 2권> 등이 있다.

201703호 (201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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