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Home>월간중앙>히스토리

[‘異論’의 역사(3)] 원수이자 은인, 청의 중원 정벌 뒤에 그가 있었다 

 

전원철 미국변호사, 법학박사
청 태조 누르하치(努兒哈赤)와 명 요동총병관 이성량(李成梁) 가문의 신묘한 인연… 부·조부 잃고 종살이 하다 원수의 부인 도움으로 탈출, 그 딸과 결혼했다는 기록도

지난 1, 2회에서는 청(淸) 시조인 ‘포고리 옹순’의 실체에 주목해 결국 청 황가(皇家)가 우리 조선민족의 피이자 우리땅 사람이었음을 밝혔다. 이번 호에서는 청 태조 누르하치와 또 다른 우리 민족의 후예인 요동총병관 이성량의 얽히고 설킨 인연을 따라가본다. 이성량은 임진왜란 때 구원병을 이끌고 조선에 온 명의 장수 이여송(李如松)의 아버지다.

지난 이야기에서 청(淸) 시조 전설 ‘세 선녀 이야기’에 등장하는 ‘포고리 옹순’. 우리와는 별 관계없는 ‘이민족’이자 하찮은 ‘오랑캐’라고 보았던 포고리 옹순은 사실은 ‘고구려 영웅’이라는 뜻이고, 그는 우리 땅 백두산 ‘하늘 못(天池)에서 태어나 함경도 회령으로 가서 삼성조션(여진 삼종족)의 군장이 된 인물이었다. 나아가 전설적 인물로만 알려진 그는 실존했던 인물로 조선 태조 이성계의 지방장관인 ‘동맹가 첩목아’였고, 그의 아우와 아들도 함경도 경성에서 세력을 누렸다. 특히 이 가문은 고구려 왕가의 가닥족속인 발해 왕족에서 나온 금(金) 왕가의 후손이니 결국 청 황가의 뿌리는 조선민족(朝鮮民族)이었다. 지난 이야기에서 살펴본 내용이다.

이처럼 한민족 선조를 둔 청 태조 아이신교로 누르하치(愛新覺羅 努兒哈赤, 1559~1626, 재위: 건주여진 1583~1616년, 후금 1616~26년)는 조선인(朝鮮人)들과 여러 차례 숙명적으로 만나며 끊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살아갔다. 청은 마치 오늘날의 남북한처럼 조선과 끊을 수 없는 운명이었다.



※ 해당 기사는 유료콘텐트로 [ 온라인 유료회원 ] 서비스를 통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703호 (2017.0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