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Home>월간중앙>히스토리

[김풍기의 선물의 文化史(3)] ‘茶’ 한잔에 봄기운을 담아 그대에게 

과욕(寡慾)으로 인도하는 ‘신묘(神妙)한’ 음료 

김풍기 강원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고려 후기 이후 상류층 중심 선물로 주고받아… 마음속에 자리한 홍진(紅塵)의 묵은 때 벗겨줘

▎곡우(양력 4월 20~21일) 직전 아낙네들이 보성군 회천면 대한다원에서 첫 녹찻잎을 따고 있다. 곡우 전에 따는 우전차(雨前茶)는 녹차 중 최상품으로 꼽힌다.
<금오신화>의 저자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평생을 방랑과 공부로 보낸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나이 열아홉, 삼각산 중흥사에서 과거시험 공부에 몰두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한껏 물기를 머금고 있는 5월 중순의 녹찻잎. 보성 다원(茶園)은 여린 잎만을 얻기 위해 기계가 아닌 사람 손으로 직접 잎을 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어렵게 자라던 한 소년에게 마지막 남아 있던 희망이 꺾이던 날의 기억은 그의 삶을 평생 지배했다. 그의 방랑과 번민은 뛰어난 문학작품을 탄생시켰고, 훗날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그 이야기들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그는 살아생전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미 전설이 돼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세월이 흐를수록 증폭되면서 다양하게 변주(變奏)됐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김시습에게 권력을 비판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이미지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시습과 관련해서는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서 평생 절의를 지킨 인물이라는 점, 뛰어난 시문을 창작했다는 점이 널리 알려져 있다. 조금 더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일생의 대부분을 ‘설잠(雪岑)’ 스님으로 살아가면서 뛰어난 저술과 수행을 했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조건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방외인(方外人)’, 즉 속세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갔던 인물로 기억한다. 세속적 권력과 삶의 양식에서 벗어나 자유를 구가하며 살아갔던 사람으로서의 이미지가 김시습의 일화 속에 투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의 일화 가운데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당시 최고의 명성을 떨치던 인물 중에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있었다. 그가 벽제(辟除) 소리 요란하게 거리를 지나며 조정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서둘러 길을 비키고 있는데 누군가가 서거정의 행차를 가로 막는 것이었다. 남루한 옷에 새끼줄로 허리띠를 두르고 머리에는 패랭이를 쓴 사람, 바로 김시습이었다.

그는 머리를 들어 서거정을 향해 소리쳤다. “강중(剛仲)이, 잘 지내나?” ‘강중’은 서거정의 자(字)다. 자를 부를 정도면 아주 친하거나 무례하거나, 둘 중 하나다. 허름하게 입은 녀석이 느닷없이 고관대작(高官大爵)의 행차를 막고 함부로 자를 불러대니 옆에 있던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그를 물리치려 했지만 서거정은 수레를 멈추고 서서 그와 한참 대화를 나눴다. 헤어져서 조정으로 들어가는 길에 어떤 관료 한 사람이 김시습을 처벌하겠다며 화를 냈다. 고위 관료를 큰길에서 모욕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자 서거정은 그만두라고 하면서 “미친 사람과 무얼 따지겠소? 지금 이 사람을 처벌하면 후대에 영원히 자네 이름에 누를 끼치게 될 거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왕의 명령으로 쓴 <김시습전(金時習傳)>에 나오는 내용이니 이와 관련된 기록 중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다 할 수 있다. 이 일화는 후에 많은 사람의 기록에 인용(引用)되면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김만중(金萬重)의 <서포일록(西浦日錄)>, 이정형(李廷馨)의 <지퇴당집(知退堂集)>, 성해응(成海應)의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등 많은 곳에서 이 일화가 등장한다.

내용의 요점은 아주 하찮은 한 지식인이 고관대작에게 전혀 꿀리지 않고 당당하게 응대했으며, 나아가 시대의 권력을 위해 혹은 부당한 권력을 위해 허리를 굽힌 서거정을 조롱했다는 것이었다. 훗날 김시습과 서거정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으리라는 이미지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형성됐다.

“차를 마시며 법담(法談)을 나누고 싶네”


▎도판(圖板) 목판본 김시습의 자사진찬도 (自寫進饌圖).
김시습과 서거정의 문집을 읽다 보면 두 사람이 주고받은 시가 꽤 여러 편 발견된다. 앞에서 소개했던 일화만을 통해서 두 사람의 대립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면 약간은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료를 세심하게 읽어보면 두 사람은 서로 존중하면서 꽤 정중한 교유(交遊)를 유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두 사람이 만난 초기의 기록은 김시습이 전국을 방랑하다가 경주 금오산에 은거해서 살고 있을 때였다. 서거정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김시습이 10대였을 때부터 아는 사이였다.

김시습도 어려서부터 문명(文名)과 절의로 이름이 높았지만, 서거정 역시 당대 최고의 문인으로 칭송받던 인물이다. 서거정이 시를 주고받을 정도로 김시습의 명성도 높았지만, 현실에서의 김시습은 ‘설잠’으로 불리는 스님일 뿐이었다.

두 사람의 교유는 꽤 오래 지속됐는데 김시습의 문집보다는 서거정의 문집에 그 교류의 흔적이 훨씬 많이 남아 있다. 서거정의 기록을 살펴보면 김시습이 자신에게 시를 지어달라는 요청을 귀찮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시를 지어주면서 자기 삶의 지향점을 그 속에 은근히 담고 있다. 비록 고위 관료로서 영화를 누리고 있는 삶이기는 했으나, 김시습에게는 자신에게 없는 또 다른 삶이 있고 서거정은 그 점을 부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거정은 김시습에게 보내거나 차운(次韻)해 지은 작품에서 주로 시·술·수행 등과 함께 이런 소망을 언급하곤 했다. “한참 동안 고승과 함께 정담을 나누노라니 돌솥에 부는 솔바람이 차 달이는 향기 보내온다.”(移時軟共高僧話, 石鼎松聲送煮茶: <사가시집> 권21)

여기서 ‘솔바람 소리’는 소나무 숲에 바람이 불어 마치 파도소리 같은 느낌을 준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차를 달이기 위해 물을 끓일 때 나는 소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속법을 넘어서 인간의 정신을 서늘하게 깨우는 진리의 세계를 논하고, 솔바람 가득한 곳에서 돌솥에 물을 끓여 차를 달이는 삶은 서거정에게 실현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물론 시간을 일부러 내서 다구(茶具)를 갖추고 사람들과 고담준론(高談峻論)을 펼치며 차를 한잔하는 것이야 마음먹으면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와 같은 삶의 모습을 일부러 만들어낸다고 해서 깊은 풍류와 인생의 즐거움을 맛볼 수는 없는 법이다. 김시습이 선물로 보내온 작설차(雀舌茶)를 대하면서 산중에서 살아가는 김시습의 즐거움이 바로 봄눈이 녹자마자 산으로 올라가 찻잎을 따고 그것을 차로 만들어 마시는 담박한 삶에 있다는 것을 서거정은 단박에 느낀다.

흰 종이에 차를 봉하고 겉봉에 몇 글자 써서 보내준 작설차를 뜯고 마시면서 서거정은 자신도 언젠가는 김시습을 찾아 산속으로 가서 “포단에 앉아 밝은 창 깨끗한 책상 앞에서, 돌솥에 솔바람 소리 나는 걸 함께 들을”(蒲團淨几紙窓明, 石鼎共聽松風聲: <사가시집> 권13) 마음을 가져보는 것이다.

일상 공간에서 비(非)일상의 공간으로


▎세종에서 성종까지 6명의 왕 아래에서 문병(文柄)을 장악했던 서거정의 화상.
차를 선물로 주고받는 사이에 아름다운 교유를 맺은 사례로 우리는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草衣禪師)를 거론한다. 신분과 나이를 넘어서 이렇게 깊은 마음을 나눈 예가 흔치는 않을 것이다. 초의가 만든 차와 그것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은 기록들은 우리나라 차 문화의 역사에 길이 빛나는 멋진 사례다.

차의 역사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고려시대에 오면 차와 관련된 유물뿐 아니라 상류층에서는 차를 마시는 문화적 분위기가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초기에는 차를 약으로 생각했다가 후대로 오면 음료로 취급한다. 고려시대의 풍속을 기록한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권32)에도 외국의 사신들이 오면 고려 조정에서는 연회를 하면서 차를 대접하는데 그것을 약으로 생각해서 사신들이 차를 다 마시지 않으면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여겨서 불쾌하게 생각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에 선불교에서 ‘다반사(茶飯事)’라든지 ‘끽다거(喫茶去)’와 같은 공안(公案)이 유행하면서 고려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음료로서의 차를 마시는 풍습이 널리 퍼진 것도 사실이다. 차를 마시는 방법에는 시대마다 차이가 있을지언정 차를 놓고 법담을 펼치는 일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고상한 삶의 모습으로 여겨졌다.

최치원이 중국에 있을 때 신차(新茶)를 선물로 받고 답례한 글이 남아 있거니와, 우리나라의 경우도 고려 후기 이후 차를 선물로 주고받은 기록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지금과는 달리 차는 대량으로 생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 민중들이 보편적으로 즐기기에는 난점(難點)이 있다.

상업적 유통이 그리 활발하지 못했던 고려나 조선으로서는 차를 구하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공물로 왕실에 바친 차를 하사 받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받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중국에서 수입해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역시 구하기 어려웠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차를 만들어 마시는 풍습이 있었으며, 기록상으로도 여러 종류의 차 이름이 남아 있다. 조선만 하더라도 외국에서 사신이 오거나 혹은 고위 관료들을 불러서 연회를 베풀 때 차를 대접하는 다례(茶禮)가 널리 행해졌으므로 이러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한 관청으로 ‘다방(茶房)’이 설치돼 조선 초기까지 운영되기도 했다. 또한 ‘다시(茶時)’라고 해서 사헌부(司憲府)의 관료들이 날마다 한 번씩 모여서 차를 마시면서 공적인 일을 의논하던 일이 상시적으로 시행됐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례 역시 일부 고위층 사이에서 있었던 일이라 일반 민중이 즐기는 품목은 아니었다. 그러니 차를 선물로 받으면 당연히 귀한 대접을 받았으며, 나아가 그러한 선물을 매개로 두 사람의 교유가 훨씬 깊어질 수 있었다. 차가 좋은 선물로 대접을 받았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그중 첫째가 바로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희귀성이다. 흔하게 주고받는 물품도 선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선물의 요건은 당연히 희귀성에 있다.

또 하나는 선물로 선택된 물품의 성격에 있다. 모든 선물은 어떤 물품인가에 따라 의미와 맥락을 가진다. 차는 속세의 번잡함을 벗어나 청정한 정신세계로 인도하는 우아한 품목이었다. 차를 마시는 것이 널리 알려진 당나라 때 육우(陸羽)가 이미 <다경(茶經)>을 지어 차의 의학적 효능과 정신적 측면에서의 즐거움을 논한 바 있다. 이 책은 고려 이후 이 땅의 지식인들에게 꽤 읽히면서 차 문화의 형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지금도 ‘다도’나 ‘다례’라는 이름으로 차를 마시는 행위가 의례화돼 시행되지만, 어떤 형태든 차를 마시는 행위는 일상의 공간을 비(非)일상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심지어 일거리가 쌓인 사무실 책상 위에서 차를 한잔 마주하는 순간 마음가짐이 새로워지면서 지친 삶의 위로가 되는 경우를 경험하기도 한다.

간단한 다구일망정 몇 가지 다구를 늘어놓고 물을 끓이는 것만으로도 내가 마련하는 찻자리는 순식간에 일상의 번우(煩憂)함을 넘어서 청정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러니 차를 선물하는 것은 청정한 세계를 선물하는 것과 같다. 그 희귀성은 물론이거니와 마음속에 두텁게 내려앉아 있던 홍진(紅塵)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신묘(神妙)한 음료를 선물로 주는 것이다.

차를 달이거나 우리기 위해 다구를 준비하고 물을 끓이고 차를 따라서 대접하고 마시는 모든 절차가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하는 힘을 가진다. 선물이 기본적으로 욕망과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차 선물의 경우 역설적이게도 욕망으로 가득한 일상을 벗어나 과욕(寡慾)의 비일상으로 인도한다. 이러한 비일상의 공간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일상을 꿈꾸는 것이다.

해마다 그해의 녹차가 나오면 보내주시는 분이 있다. 제다법(製茶法)을 공부하면서 강의도 하고 전통방식으로 차를 덖어서 만들기도 하는 분이다. 많은 양은 아니더라도 그 속에 깃든 정성을 생각하면 쉽게 마실 수 없다.

새순 속에 담긴 희망의 기운


▎맑은 물에 우려낸 작설차를 찻잔에 따르고 있다. 작설차는 숙취 해소와 함께 당뇨병·고혈압·빈혈 등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
찻잎을 실제로 따본 사람은 알겠지만 숙련된 사람들이 하루 종일 딴 잎을 차로 만들어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잎을 따서 여러 단계의 공정을 거쳐서 내 앞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었겠는가. 날을 잡아서 차를 개봉할 때는 언제나 설렌다.

우선 봄날의 햇살이 밝게 비치고 바람이 선들 불어서 조금 열어놓은 창으로 들어와야 한다. 좋아하는 책도 한 권 옆에 있으면 금상첨화다. 어떤 분들은 좋은 벗이 왔을 때 좋은 차를 개봉하는 즐거움을 말하기도 하지만, 혼자 앉아 새로 뜯은 차를 한잔 마시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선물로 받은 차를 다관(茶罐)에 넣고 물을 부으면 어느새 코끝에는 청향(淸香)이 맴돈다. 몇 잔을 마시면서 편안하게 기대앉아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 세상에 남부러울 것이 없다.

화려한 다구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격식을 차린 찻자리가 동반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찻잔 하나와 다관 하나, 책 한 권이면 편안하고 맑은 마음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온갖 복잡한 일이 쌓여 있는 공간도 차를 마시려고 주섬주섬 치우는 순간부터 맑은 향기 가득한 수행자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차를 마시고 책을 읽는 삶의 여유가 호사(豪奢)를 누리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한순간이다. 차를 꺼내는 순간 일상과는 다른 삶의 속도를 경험한다. 일에 치여서 살아가는 우리가 번우한 세속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욕망에 사로잡혀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리라. 녹차 한잔을 우리면서 푸른 물빛과 맑은 향에서 새봄의 기운을 느낀다.

순간, 내가 받은 차 선물은 그저 작은 차봉지 하나가 아니라 지난겨울 눈과 추위를 견디고 새순을 틔우며 한껏 품었던 봄의 기운이었음을 느낀다.

김풍기 - 강원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책과 노니는 것을 인생 최대의 즐거움으로 삼는 고전문학자. 매년 전국 대학교수들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2011년 엄이도종(掩耳盜鐘)]에 선정되는 등 현실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는다. 저서로 <옛 시에 매혹되다>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삼라만상을 열치다> 등이 있다.

201703호 (2017.0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