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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연의 ‘동서고금 좌충우돌’] “서양 근대정신의 뿌리는 공맹철학이다” 

‘분권형 개헌’이 시대정신, 대선 투표 때 개헌도 함께 해야… 외교안보 전업으로 하는 대통령, 권력은 줄지만 권위와 존경받을 것 

대담·정리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동서고금 좌충우돌’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막힘 없이 두루 살펴보려는 시도다. 공간적으로 동양과 서양,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현재를 정해진 방향 없이 오가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황태연(62, 동국대 정치외교학) 교수를 생각하며 떠올린 제목이다. 그의 삶이 동서고금을, 그의 공부와 사상이 좌충우돌을 연상시킨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대화여행을 시작한다.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의 삶을 되돌아보면 ‘동서고금(東西古今)’이 떠오른다. 그의 공부와 사상은 ‘좌충우돌(左衝右突)’을 연상시킨다.
마르크스가 실패한 정의,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길을 그는 동양과 서양을 가로지르며 찾고자 했다. 서양철학과 마르크스주의의 정의는 ‘사랑이 없는 정의’라고 그는 비판한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끝없는 갈등을 유발할 뿐이다. 공맹의 인의를 기반으로 한 사랑이 정의의 바탕을 이룰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의 문을 열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작금의 정치현실에 대한 해법은 뭘까?

그의 이력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55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황태연 교수는 1974년 서울대 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3학년 때 외무고시에 합격했으나 외교관의 꿈을 접고 대학원에 진학한다. 유신독재를 비판하는 운동권이었지만 어려운 외무고시에 도전해 합격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대학원에서는 마르크스주의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아예 독일로 유학해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 개념을 분석한 ‘지배와 노동’(1991)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한겨레신문> 통신원으로 동·서독 통일의 현장 분위기를 직접 전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시작에 불과하다.

마르크스 전문가가 됐지만 1990년대 분위기는 확 바뀌어 있었다. 마르크스는 이미 철 지난 유행이었다. 소련과 동구권이 해체되면서 ‘유행가’는 외면받았다. 그쪽에서 사회적 대안을 찾던 이들은 방황의 세월을 시작했다. 1994년 귀국해 동국대 교수로 취임하면서 새 공부를 시작했다. 동양철학이었다.


▎1. 중국 고대의 사상가이자 유교의 시조인 공자(孔子)의 초상. 황태연 교수는 “서양 근대 3대 혁명의 기본정신은 동양의 공맹철학에서 유래한다”고 말했다. / 2. 황태연 교수의 <공자와 세계>(전5권, 청계, 2011). 동양과 서양이 교류한 700여 년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역작이다.
영어·독일어 등 외국어에 능한 그는 서양어로 된 동양철학 서적을 두루 섭렵했다. 마르크스가 실패한 정의,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길을 그는 동서양을 가로지르며 찾고자 했다. 그 결과물이 <공자와 세계>(전5권, 청계, 2011)라는 방대한 분량의 책으로 출간됐다. 동양과 서양이 교류한 700여 년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역작이다.

황 교수가 보였던 정치적 행보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1997년 ‘DJP연합’을 제안한 인물이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1981년 프랑스에서 미테랑 정부가 들어설 때의 전략을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그는 “계급 대신 혈연과 지역전략을 써서 둘을 결합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엔 귀담아듣지 않았으나 총선 패배 후 수용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공맹철학으로 전환


▎1997년 11월 3일 후보단일화(일명 ‘DJP연합’)에 서명하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왼쪽)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 황태연 교수는 97년 DJP연합을 제안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1981년 프랑스에 미테랑 정부가 들어설 때의 전략을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공자와 세계>에서 보여준 그의 독특한 관점은 다시 <감정과 공감의 해석학>(전2권, 청계, 2015)에서 철학적으로 정리된 모습을 보인다. 철학계에서 무시되던 감정과 공감을 중심으로 동서양 사상을 해석해내려는 그만의 독창적 시도다. 서양철학과 마르크스주의에서 보여준 정의는 ‘사랑이 없는 정의’라고 그는 비판한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끝없는 갈등을 유발할 뿐이다. 공맹의 인의를 기반으로 한 사랑이 정의의 바탕을 이룰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의 문을 열 수 있다고 그는 내다본다.

감정과 공감의 해석학적 관심을 바탕으로 이번에 그는 한국역사의 재해석에 도전했다. 지난 1월에 나온 <갑오왜란과 아관망명>은 우리 근대사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해석이다. 지난해에 펴낸 <대한민국 국호의 유래와 민국의 의미>가 맛보기였다면 <갑오왜란과 아관망명>은 그의 역사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알린다. 내년 초까지 3종의 책을 잇달아 출간할 예정이다.

그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동서고금을 좌충우돌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연령과 건강을 감안할 때 앞으로 20여 년간 그가 어떤 세계를 펼쳐 보일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근대화의 정치사상’ ‘공자와 서구 계몽주의’ ‘공자의 충격과 근대유럽의 탄생’ ‘공자, 미국을 건국하다’ 등이 조만간 출간될 그의 저서의 가제목들이다.

이렇게 방대한 영역에 관심을 가진 그와 함께 동서고금을 좌충우돌하다 보면 특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 속에서 우리 시대의 어떤 좌표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환경정치학>(1992) <지역패권의 나라>(1997) <계몽의 기획>(2004) <서양 근대정치사상사>(2007) <사상체질과 리더십>(2003) <실증주역>(전2권, 2008) <중도개혁주의 정치철학>(2008) 같은 또 다른 저서도 그와의 대화여행에 양념을 더할 것이다.

이제 그와의 여정을 떠난다. 대통령 탄핵으로 말문을 열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탄핵안을 기안한 인물이 그였다는 점에서 남다른 시각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무소불위의 대통령제도를 비판하며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이도 그였다.


▎2004년 3월 21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재판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에서 보고서를 든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됐다는 소식을 어디서 접했습니까?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의미가 큰 사건인데 어떻게 평가하나요?

“현실문제로 시작하는군요. 연구실에서 지켜보았죠.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발전하는,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죠. 전문적 투사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옛날 민주화투쟁은 대중과 고립된 외로운 투쟁이었는데 이번엔 국민이 전면에 나서서 5개월이 넘는 장시간 투쟁을 계속해 평화적으로 마감한 데다 진실된 투쟁이었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그 기간에 국가가 흔들리지도 않았죠.”

촛불시위에서 대통령 탄핵에 이르는 과정을 ‘명예혁명’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동의하십니까? 세계적으로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을까요?

“명예혁명이라는 규정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영국에서 온 이름인데 사실은 불명예혁명이었습니다.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자기 나라 왕 제임스 2세를 추방했잖아요? 우리나라는 온 국민이 나서서 한 것이니 나는 국민혁명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시민혁명도 아니죠. 농민들이 트랙터 몰고 많이 올라오고, 어민들도 배를 타고 시위했습니다. 시민이라고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국민혁명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영국의 명예혁명은 사실상 불명예혁명”


▎2004년 3월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표결하는 박관용 의장과 야당 의원들에게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황태연 교수는 이번 헌재 판결의 기준으로 보면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도 탄핵 결정됐을 것이라고 했다.
명예혁명이 불명예혁명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명예혁명이란 것이 1688년 네덜란드의 윌리엄공 군대를 끌어들여 제임스 2세의 군대를 항복시킨 사건입니다. 윌리엄 공은 영국 공주와 결혼한 상태였죠. 이후 윌리엄공과 공주가 공동 왕위에 오릅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689년 영국 의회에서 왕위를 인정하고 왕과 계약을 통해 권리장전과 왕위계승법을 통과시키죠. 가톨릭은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성공회를 믿는 이들 가운데 왕권을 잇게 합니다. 중요한 것은 권리장전이죠. 프랑스 인권선언을 통해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인권과 참정권이 거의 나오니까. 영국은 프랑스보다 정치적으로 100년 앞서 발전해 있었어요. 이후 미국 독립혁명이 그 권리장전의 정신을 더 온전히 실현하지만, 이 물꼬가 없었으면 어려웠을 겁니다. 당시 존 로크 등 극소수의 사상가는 명예혁명으로 부르려고 했는데 의회에 의해 거부당합니다. ‘명예’라는 말도, ‘혁명’이라는 말도 다 거부당합니다. 그 뒤 80년간 영국 역사가들도 명예혁명이라는 말로 부르기를 거부하죠. 그로부터 100년이 지나 프랑스혁명 이후 비로소 명예혁명으로 부르게 됩니다. 미국혁명까지 합쳐 서양 근대의 3대 혁명으로 불리죠. 그런데 이 3대 근대 혁명의 기본정신은 모두 동양의 공맹철학에서 유래했습니다.”

서양 근대 혁명의 기본정신이 공자와 맹자의 철학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요?

“서양의 근대적 자유와 평등 이념, 케네와 애덤 스미스의 근대적 자유시장론, 근대적 관료제, 필기시험에 의한 공무원 임용고시와 탈신분제적 공무담임제, 근대적 권력분립제, 영국의 내각제, 로크의 혁명권 또는 저항권 이론, 세속적 정치문화와 정교분리, 보통교육과 3단계 학교제도, 근대적 관용 이념과 세계주의적 인도주의 및 인권사상, 복지국가론 등 수많은 사상적·제도적 근대화 아이콘은 모두 극동의 유교문화에서 받아들여 근대적 형태로 다듬어지고 재창조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획기적인 해석이신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서양의 근대적 자유 개념은 공자의 ‘무위이치(無爲而治: 강제적 작위 없는 정치)’와 ‘백성자치(百姓則君自治: 백성은 임금을 표준으로 삼아 자치한다)’의 이념으로부터 발전되었습니다. 근대적 평등론은 ‘무생이귀자(無生而貴者: 나면서부터 귀한 놈 없다)’라는 공자의 태생적 평등론과 중국 신사(紳士)제도의 탈(脫)신분적 평등주의를 수용한 것이죠. 이런 내용들을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에 서양사람들이 다 접합니다.”

동양 사상이 서양 근대의 초석을 놓았다는 황 교수의 분석은 많은 사례로 뒷받침된다. 근대적 자유시장론은 공맹과 사마천의 ‘무위(無爲)시장’ 이념과 중국의 자유교역정책에서 나온 것이고, 서양의 근대적 관료제는 극동 국가들의 관료제를 수용한 것이다. 필기 시험에 의한 공무원 임용고시제와 탈신분제적 공무담임제는 과거제로부터 가공된 것이다. 영국의 내각제와 권력분립제는 명·청대의 내각제와 분권적 정치문화로부터 발전돼 나온 것이다. (이 같은 사례와 근거는 황 교수의 저서 <공자와 세계> <감정과 공감의 해석학> 등 참조)

서양사람들은 별로 반가워할 내용이 아닌 듯한데, 이런 사실을 어떻게 밝혀내게 되었나요?

“동양의 사상과 유물이 200년 전 서양으로 나간 것을 200년 후 동양 사람들, 즉 현재의 우리는 잘 몰랐던 거죠. 전 세계에서 극동 국가들만 서구 문명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이룩하지 않습니까? 유럽에서도 동유럽·남유럽은 다 한국보다 못살아요. 유럽에서도 잘사는 극서 국가 10개국을 제외하면 다 우리보다 못삽니다. 중남미는 다 못 살고 발전하지 못했죠. 극동과 극서 국가만 근대화에 성공한 겁니다. 이슬람·불교 국가들도 다 국민총생산 1만 달러 미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왜 극동 국가만 근대화에 성공했는가를 생각해보면 유교 사상을 서유럽이 받아들였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양을 받아들일 때 갈등이 있었지만 세계 여러 나라와 비교해보면 가장 갈등이 적었습니다. 나는 여기에 주목했습니다. 뭔가 연관성의 비밀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서양에서 무수한 자료를 발굴했죠. 10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공자와 세계>는 그렇게 나왔습니다.”

“이번 기준으로 보면 노 전 대통령도 탄핵”


▎국민과 의회의 권리를 최종적으로 확인한 ‘권리장전’ 문서.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기안 경험이 있어 이번 탄핵인용에 대해서는 각별한 생각이 들었을 텐데요.

“소추 내용은 비슷한데 이번에는 가짓수가 많았습니다. 뇌물죄 등이 포함됐죠. 객관적 정황도 다릅니다. 당시에는 광장에 나와서 탄핵하라고 요구하진 않았죠. 강도가 낮았던 겁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탄핵역풍이 불었고,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됩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헌재가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관 중 한두 명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악연을 맺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검사로서 노무현을 취조한 사람도 있었죠. 사적 악연으로 재판을 한다는 강박을 느끼도록 언론에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헌법재판관들의 심판이 옹색한 상황에서 진행됐다는 말입니다. 이번에는 탄핵하라는 찬성이 압도적 상황이었죠.”

이번 헌재 판결과 비교한다면 어떻습니까?

“이번 기준으로 보면 노무현 대통령도 탄핵됐을 겁니다. 결정적인 것이 대통령 권한남용과 대의민주주의 위반,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는 것이었죠. 이 세 가지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습니다. 나머지 불성실 조항 등은 탄핵 범주는 아니라고 봤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때도 불성실 조항은 재판관들이 제외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재판관들은 지금 재판관들이 중시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선거법 위반은 인정했지만, 이번에 중시한 대의민주주의 위반과 헌법 수호 의지는 거론도 안 했어요. 노 대통령이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는 것을 탄핵안에서 밝혀 놓았습니다. 예컨대 ‘이놈의 헌법’이라고 공개석상에서 이야기하는 태도와 발언,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신경질을 내면서 국민이 부여한 대통령 직을 자기 마음대로 처분하려는 듯한 태도, 국민이 위임한 대통령 직을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것은 국민의 믿음을 배신한 것입니다. 이번에 재판관들이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없다는 내용은 본래 소추안에 없던 내용이었죠. 검찰 수사를 받는다고 하다 안 받은 것, 특검 안 받은 것 등을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고 재판관들이 판단한 것입니다. 이번 헌법재판관들의 엄정한 잣대를 댄다면 노 대통령도 온전치 못했을 것입니다.”

“현행 헌법으론 누가 대통령 돼도 깨끗한 정치 불가”


탄핵국면에서 대선국면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60일 내에 비상적으로 치러지는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이랄까,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개헌이겠죠. 헌정제도를 우리 몸에 맞게 고치는 것.”

지금은 우리 몸에 안 맞나요?

“두 가지인데, 개헌해서 우리 몸에 맞추는 것과 안보상황이 불안하니 안보 문제에 달라붙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요?

“우리 몸에 안 맞는 것은 대통령 직이 너무 센 정도를 넘어 과잉이라는 말입니다. 대통령이 다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과잉권력입니다. 남는 과잉권력을 대체로 측근들이 씁니다. 예를 들어 법무부의 검찰 인사를 보면 일일이 대통령이 다 모르니 누군가 대신하는 거죠. 다른 부서는 다른 부서대로,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말이죠. 그중 제일 센 사람들이 비선 실세예요. 친인척이 없더라도 측근들이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제도 아래서는 깨끗한 정치, 바른 정치 불가능합니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같은 일이 반복될 것입니다. 민주투사였던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대통령을 국가원수로 인정하되 내각을 관할하는 행정수반 역할은 총리에게 주는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2004년 당시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용어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개헌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때마다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는데, 작명한 당사자로서 어떻게 보시나요?

“분권형 대통령제는 영어로는 ‘세미 프레지덴셜 시스템’입니다. 반절 대통령제라고 할까요? 프랑스·오스트리아·핀란드·아일랜드 등 유럽의 13개 국가가 분권형 대통령제입니다.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죠. 이밖에 유럽에서 7개 국가가 내각제고, 스위스와 독일 두 나라가 집정부제를 실시합니다.”

집정부제는 어떤 형태인가요?

“집정부제는 ‘합법적 독재제도’라고 할 수 있어요. 스위스의 경우 7년의 통치기간 동안 국회가 집정관을 불신임할 수 없습니다. 독일은 총리 불신임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독일 총리는 영어로 ‘프라임 미니스터’라고 하지 않습니다. 연방 재상이란 의미를 가진 ‘챈슬러’로 영역합니다. ‘저먼 챈슬러’라고도 하죠. 불신임이 불가능한 총리라서, 대통령을 능가하는 총리라서 그렇습니다.”

다시 개헌 이야기로 돌아가보죠. 시기는 언제가 적당할까요?

“대통령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를 해서 개헌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4년중임제를 채택할 경우 다음 대통령이 온전히 임기 다 채우고 다시 출마해도 됩니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할 경우 총리는 어떻게 뽑나요?

“국회에서 다수당 혹은 다수연합 대표가 총리가 되는 겁니다. 대선과 국민투표를 함께 해서 당선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 헌법의 문제점을 피해갈 최선책이라고 봅니다. 이번 국민혁명을 충족시키는 길입니다. 국민혁명의 연장선에서 이번 같은 사태가 다시는 재발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가 의원직을 내놓고 탈당했는데요, 이른바 새로운 ‘빅텐트’가 탈당한 김 전 대표를 중심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그는 그걸 위해 노력하겠지만, 개인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은 아무리 비중 있는 인물이라도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것입니다.”

그럼 개헌은 누가 주도하나요?

“이미 국회에 개헌특위가 만들어져 있으며, 기본적인 것은 합의돼 있습니다. 3당(국민의당·바른정당·자유한국당)이 합치면 과반이 넘으니 발의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반대해도 개헌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나는 여기에 개헌의 기대를 겁니다.”

“대중국 문제와 사드 문제는 분리 대응해야”


▎2017년 3월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권한대행이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결정문을 읽고 있다. 황태연 교수는 헌재의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발전하는,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소회를 밝혔다.
아까 개헌과 함께 안보 이슈를 말씀하셨는데요.

“개헌에 안보문제의 키가 들어있습니다. 외교안보를 전업으로 하는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외교안보는 초당적으로 해야 한다는 게 국민의 요구 아닙니까? 새로운 헌법 하에서 외교·안보·국방에 전념할 수 있는 대통령이 당파에 구애받지 않고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추진할 수 있다는 거죠. 대통령의 권력은 반으로 줄었지만 권위와 존경은 더 늘어날 것입니다. 진정으로 외교·안보·국방에 몰입할 수 있게 됩니다. 안보문제의 30~40%는 해결하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미국의 사드배치와 이에 대한 중국의 보복으로 한국이 샌드위치 신세가 됐습니다. 대선주자들이 어떤 해법을 찾아내야 할까요?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THAAD). 황태연 교수는 “중국의 사드 보복은 3년 전 발효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쎄요. 모든 주자가 내 맘에는 미흡해서…. 나름 훌륭한 분들이지만, 안보가 꼬여 있는 이 복잡한 국면에서는 부족해 보여요.”

특별한 대안이 없을까요?

“대중국 문제와 사드 문제를 나눠서 봅시다. 중국이 사드 문제로 행패를 부리는데, 3년 전 발효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입니다. 정부의 개입은 물론 정부가 말리는 척하면서 부추겨도 위반입니다. 새 헌법에 따른 대통령은 외교안보 전문이니 좀 더 엄정하고 사려 깊게 처리 가능할 것입니다. 사드 문제는 우리 국내 문제이니 중국이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중국이 국방력을 키우면 되죠.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확약, 약속을 계속 해주는 전제로 한·중 FTA를 침해하지 말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을 제대로 뽑아야 합니다. 만약 사드를 배치하지 않을 경우 한·미동맹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한국의 국방과 안보를 더 튼튼히 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미사일 사정거리도 더 늘리고 미국에 더 많은 것을 얻어내야 합니다. 군사적 보상과 양보를 병행해야 한다는 겁니다. 절호의 찬스는 아니지만 궁하면 궁한 대로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중국과 관계 악화로 국민이 어수선한데,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는 고육지책이나 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 대담·정리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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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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