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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태영호 前 공사가 공개한 백두혈통론(論)의 실체 

“김정남 시신만 가져갈 수 있다면 김정은은 무슨 일이든 할 것” 

대담 - 김홍균 월간중앙 편집장 redkim@joongang.co.kr / 정리 - 최경호·박지현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 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 장자인 김정남이 기본 줄기라면 김정은 자신은 ‘곁가지’라고 느꼈을 것
■ 변화 택하는 듯했지만 체제붕괴 위협 느껴 김일성-김정일 승계로 선회
■ 3만 명 탈북시대, 적대계층·동요계층 넘어 ‘핵심계층’ 이탈도 가속화
■ 이미 활성화된 장마당 건드릴 경우 대대적 주민 반발로 인한 붕괴 가능성
■ 北 갈등·위기감 갈수록 팽배, 南 준비하지 않으면 통일 기회 놓칠 수도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公使)가 3월 10일 서울시내 모처에서 월간중앙과 단독으로 만났다. 지난 2월 김정남 피살사건으로 태 전 공사의 신변에 위협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정보당국은 경호인력을 늘리는 한편 외부활동 자제를 권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활동을 중지할 수 없다”며 월간중앙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는 “변화를 택하는 듯했던 김정은이 체제 붕괴의 위협을 느끼자 선대(先代)의 승계로 방향을 틀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북한의 붕괴에 대비하지 않으면 통일의 기회가 온다 하더라도 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난해 8월 초 태영호 전 공사 가족이 귀순했다. 통일부는 “태 공사는 북한대사관에서 현학봉 대사에 이어 서열 2위에 해당하며 지금까지 탈북한 북한 외교관 중 최고위급”이라고 밝혔다. 태 전 공사는 2013년 4월 영국 공사로 임명된 이래 2016년 8월 귀순할 때까지 3년 4개월 동안 영국에서 머물렀다.

태 공사는 국제사회에서 북한체제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인터뷰·강연 등을 통해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비판을 반박했다.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과 관련한 북한 측 입장을 설명하기도 했다. 유튜브에 올라 있는 한 강연에서 태 전 공사는 “미국이 우리의 핵 보유를 반대한다면 미국도 우리에게 핵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논리의 정연함과 유창한 영어실력이 돋보였다.

그랬던 태 전 공사의 망명과 관련해 통일부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그리고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와 장래문제 등이라고 (태 전 공사가)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도 태 전 공사는 “김정은 체제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귀순을 결심했다”면서 “북한은 내적으로 갈등과 위기가 커지고 있다. 한국이 지금이라도 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통일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남한 생활이 벌써 반년이 지났다. 그간의 근황이 궁금하다.

“잘 지내고 있다. 매일 분방(奔放)한 생활을 하고 있다.”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 주요 일과를 소개해달라.


▎태영호 전 공사의 탈북을 보도할 당시 영국 BBC의 화면.
“국가기관, 시민단체, 대북정책 전문가들을 만나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있다. 또 외국 언론들, 외국에서 온 대북정책 전문가들에게도 북한의 실상을 알리려 하고 있다.”

서울 생활에서 불편한 점은 없나?

“아직까지는 없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이 인용(認容)됐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면서 무엇을 느꼈나?

“전 과정을 TV 생중계로 지켜봤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원칙에 따라 내려진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을 기점으로 새로운 통합과 화합, 그리고 새로운 민주화의 시대가 열리기를 희망한다.”

지난 두세 달 동안 이방인으로서 촛불집회, 태극기집회를 보면서 느낀 바가 많았을 것 같다.

“정치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굉장히 높다는 걸 느꼈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매주 마주 서서 시위를 벌이는 광경은 난생 처음 봤다. 내가 생활했던 유럽에서는 국민이 정치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 이런(탄핵) 문제로 시위를 벌인다 해도 몇 천 명 정도 모였을 것이다. 광화문 광장 같은 큰 광장을 다 메운 광경은 처음 봤다.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 국가에 대한 관심이 북한에서도 일어나서 한반도가 하나로 통일되고 민주화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소원이다.”

평양에 울려 퍼졌던 마이웨이


▎김정은이 창단했다는 ‘모란봉 악단’. 한국으로 치면 걸그룹에 해당한다. 과거 북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짧은 치마에 팝송 공연 등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김정은 체제 이후 북한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경제부문에서 어느 정도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도 있는데.

“북한 경제의 하부구조는 김정은 집권 체제 이후 점점 더 불리한(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김정은 체제 이후 경제 사정이 많이 개선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반대다. 지금처럼 시장경제 요소가 늘어나고, 또 장마당에 대한 주민들의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김정은 정권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이런 현상은) 김정은 정권이 북한사회, 북한사람들에 대한 통제권을 점점 더 잃어가는 대표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북한체제 붕괴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는 뭔가?

“김정은 정권이 출범했을 때 사실은 북한에서도 기대가 많았다.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 체제 승계와 변화 사이에서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2012년 초 상황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요소가 많았다. 김정은이 ‘모란봉 악단’을 만들어서 첫 공연을 했을 때를 봤을 것이다. 모란봉 악단은 미국 노래 ‘마이웨이(My Way)’를 불렀고, 북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짧은 치마를 입었다. 한국으로 치면 걸그룹이었다. 또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돌 기념 평양시 군중집회에서 김정은은 ‘더는 북한 주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야 이제부터 좀 잘사는 길이 열리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북한은 개성공단을 운영하면 북한체제에 위협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사상과 조직생활을 잘 통제할 수 있게 되자 자신감을 보였다. 이런 경제특구를 북한 중심으로 확대해서 만들면 외화도 벌고 선진기술도 전수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김정은은 변화가 아닌 계승의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변했을까?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넘겨받은 북한을 아주 쉽게 이끌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이끌어보니 잘못하면 세습체제가 자신의 대에서 붕괴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됐다. 그래서 결국 할아버지-아버지로부터 이어져온 정책을 계승하는 방향으로 틀 수밖에 없었다.”

변화로 가는 듯하던 김정은이 계승으로 방향을 틀면서 내부적으로 어떤 곡절이 있었던 것인가?

“2013년 3월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했다. 병진노선이라는 것은 ‘변화가 아니라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정책을 계승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공식 선언이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문제도 외무성과 단 한마디 토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알다시피 김정은은 2013년 12월 ‘장성택파(派)’를 처형했다. 이는 계승으로 나아가는 데 반대하는 그 어떤 인물이나 세력도 단호히 치겠다는 의미였다. 이런 김정은을 보면서 기대와 희망은 다 접히고, 북한 엘리트층에서 ‘더는 북한 체제에 미래가 없다’는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은 체제의 걸림돌이 되는 사람이나 세력은 무조건 죽여버리는 공포통치로 가고 있다. 공포통치란 공포감을 극대화해서 체제를 끌고 가는 것이다. 공포통치가 지금까지는 상당한 효과를 봤다고 할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이 공포감에서 벗어나 김정은 체제를 반대하게 만들려면, 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아주는 정보가 외부에서 많이 그리고 강하게 유입돼야 한다.”

지난해 홍콩에서 열린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한 학생이 망명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김정은이 변화가 아니라 계승으로 나가면서 공포통치를 확대해가고 있다. ‘김정은 체제에 미래가 없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예상치 못했던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 내 북한식당에서 일하던 여성 종업원 13명이 지난해 4월 집단 탈북하지 않았나? 북한사회에서 탈북이란 말은 집 안에서조차 꺼내기 어려운 말이다. 그런데 같이 일하던 동료들 사이에서, 그것도 10여 명이 탈북을 모의했다는 것은 이미 북한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로 봐야 한다.”

외교라인도 ‘브레인’ 퇴출, 군인 출신으로 교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대사(大使)회의’에 참석한 외교관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조선중앙TV는 회의가 열린 시점을 공개하지 않은 채 지난해 7월 이 장면을 보도했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태영호 전 공사의 귀순을 계기로 재발 방지를 위해 외교관과 가족에 대한 소환령을 내렸다.
지난해 7월 17일 주룽(九龍)반도에 있는 홍콩과기대 기숙사를 빠져 나온 북한 학생 리정열(당시 18세) 군이 택시에 올라탔다. 공항 청사로 들어간 리군은 한국 항공사 카운터로 달려가 “북한사람이다.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리군은 한국 영사관을 통해 귀순 절차를 밟았다.

탈북자의 유형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지난 시기에는 북한에서 살기 어려워서 생계 목적으로 남한에 오는 사람이 많았다. 북한은 조선시대처럼 신분제 사회다. 북한에서는 성분제도라고 하는데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 세 가지로 나뉜다. 탈북자 3만 명 시대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에 온 사람들의 절대다수는 동요계층과 적대계층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김정은 정권 하에서 먹고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핵심계층에서 탈북자가 많이 나온다. 지난해 탈북한 북한식당 여종업원들도 북한에서는 핵심계층이다. 앞서 언급한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한 학생도 마찬가지다. 북한정권에 미래가 없다는 걸 인식하고 더 좋은 삶과 미래를 위해 한국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1971년 2월 주민성분조사사업을 실시, 전 주민을 3대 계층 51개 부류로 분류했다. 이어 76년에는 평양시민 성분 재조사 사업을 통해 성분불량자를 지방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지방주민의 평양 이주 금지와 함께 식량과 생필품을 평양시에 우선 공급하는 등 차별해왔다.

태 전 공사의 망명으로 북한의 유럽 외교라인이 많이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왔는데.

“현재 북한의 외무상은 리영호다. 외무성 수장에는 리영호 같은 책사(策士)를 앉혔지만 대사급은 제대 군인(군인 출신)들로 다 바꿨다. 현학봉 영국 대사, 리시홍 독일 대사 같은 능력 있는 외교관들은 전부 불러들이는 한편 로봇처럼 일할 사람들을 외교관으로 내세운 것이다.”

북한에 장마당 등 시장경제 요소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들었다.

“북한은 법률적으로(공식적으로)는 장마당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김정은이 장마당을 왜 없애지 못하는가? 장마당을 치는(없애는) 날에는 북한에서 대중 봉기가 일어난다는 것을 김정은은 잘 알고 있다. 비록 장마당이 장기적으로는 (체제에) 위협요소가 되지만 일정한 자유를 허용해주면서 주민들로부터 강력한 반발과 불만을 해소해보자는 생각이다. 북한에 2009년 화폐개혁(11월 30일 6차 화폐개혁)이 있었다. 당시 김정일은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과 저항을 예상하지 못했다. 1달러가 북한의 100원으로 고착시킨다고 발표하고 기존 화폐는 1인당 5000원까지만 새 화폐로 바꿔준다고 했다. 몇 백, 몇 천, 몇 억 원 갖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 화폐개혁 발표가 되자마자 북한 땅이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모든 상점과 장마당이 문을 다 닫아버렸다. 이 사태를 통해서 김정일과 북한정권은 강력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생존권을 건드렸을 때는 대대적인 저항이 일어나고, 이에 잘못 대처하면 하루아침에 정권이 붕괴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김정은 정권은 달갑지는 않지만 현재 변화하고 있는 북한의 경제시스템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의 곁가지론 vs 김정은의 백두혈통론


▎강철(가운데) 주(駐)말레이시아 북한대사가 3월 6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김정남 피살사건 수사와 관련, 말레이시아의 주권 침해 언행을 한 강 대사에게 추방명령을 내렸다.
김정남 피살사건을 이야기해보자. 태 전 공사는 이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보나?

“과거 김일성이 김정일을 후계자로 삼을 때는 하루아침에 정권을 넘겨준 것이 아니다. 당시 김정일의 후계구도 형성과정은 상향식이었다. 64년 김정일이 대학을 졸업하고 당 중앙위원회에 지도원으로 왔다. 그때부터 ‘내가 무조건 후계자가 되겠다’는 야심을 가졌다. 71년 김일성(1912년생) 탄생 60돌이었다. 북한에는 자식들이 부모에게 환갑상을 차려주면서 ‘인생을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는 자식한테 넘겨달라’는 풍습이 담겨 있다. 당시만 해도 김일성의 후처 아들인 김평일(체코 북한대사)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다. 김성혜가 낳은 김평일이 외모도 지모(智謀)도 김정일보다 우월했다. 이런 사정을 잘 알았던 김정일은 ‘이거 쉽지 않겠구나’ 하면서 내부 숙청을 시작했다. 김평일 측근들의 비리를 잡아서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김정일이 내놓은 이론이 바로 ‘곁가지론’이다. 기본 줄기가 튼튼하게 자라려면 곁가지를 쳐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누구도 곁가지론을 말하지 않는다. 곁가지론에 의하면 김정남이 기본 줄기이고, 김정은이 곁가지다. 그래서 김정은은 백두혈통론을 편다. 김정일의 피만 물려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김정은 혼자 백두혈통으로 인정받으려면 ‘곁가지론’과 함께 김정남을 빨리 땅속으로 묻는 길밖에 없다. 이것이 김정남 암살의 이유다.”

과거에 평양에서 김정남을 만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어떤 인물이었나?

“김정남이 90년대 말 스위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와보니 친구가 없었다. 심심하고 답답하니까 저녁이면 차(벤츠)를 몰고 평양 고려호텔로 가서 가라오케에서 술 먹고 노래하다 들어가곤 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김정남인 줄 몰랐다. 그런데 아들뻘 되는 김정남을 보고 호텔 간부들이 인사하더라. 선배에게 물었더니 ‘장군님 자제분’이라고 했다. ‘우리도 인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 선배가 나를 툭 치더니 ‘공식 후계자로 선포되지 않았는데 인사했다가 곁가지론에 걸릴 수 있다’며 말렸다.”

말레이시아는 북한에 외교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 나라인가?

“전 세계적으로 북한과 무비자 협정을 체결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가 말레이시아다. 그래서 북한이 세계로 나아가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나라다. 또 이슬람교도가 많지만 다른 이슬람 국가와 달리 극단적 성향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다른 문화에 대해 포용적이다. 경제의 중요한 부분은 화교들이 쥐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중국과도 상당히 가깝다. 중국에서 김정남을 김정은의 대체재로 생각했다는 말도 있다. 그런가 하면 김정남 피살사건과 관련해서는 미국에서 말레이시아 경찰에 정보를 제공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이 김정남을 김정은의 대안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중국은 김정은 체제와 북한체제의 안정을 바란다. 또 김정남이 김정은을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이 되지는 못한다. 장성택을 비롯해 김정남 주변의 사람들은 해외에서든 북한 내에서든 이미 다 숙청됐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정은으로서는 김정남이라는 인물이 아른거리는 것 자체가 신경 쓰였을 것이다. 김정남이 기본 줄기이고 자신은 곁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시점(2월)이었을까?

“추정해보건대 김정남을 죽여야 할 임무를 맡은 국가보위성에 김정은은 상당히 화를 냈을 것이다. ‘언제부터 죽이라고 했는데 왜 아직도 못 죽였느냐’라고. 북한체제에는 ▷즉시접수 ▷즉시집행 ▷즉시보고의 3대 원칙이 있다. 김정은이 무슨 말을 하면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즉시 시행한 뒤 보고하는 것이다. 제대로 못하면 국가보위부 고위층의 목이 날아갈 판이었을 것이다. 시점과 장소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니 대낮에 사람들이 많은 공항에서 암살한 것이다.”

“김정철이 관여? 그럴 위치 아니다”


▎1. 태영호 전 공사의 부인인 오혜선 씨는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인 오백룡 노동당 군사부장의 친척이다. 김일성이 1947년 6월 오백룡과 함께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했을 당시 모습.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백룡의 품에 안겨 있다. / 2. 김일성이 어머니인 강반석, 장남 김정일과 함께 찍은 사진. 유치원생쯤으로 보이는 김정일이 권총을 든 채 정면을 겨누고 있다.
북한의 테러수단이 한층 진화됐다는 분석이 많은데.

“사람들은 ‘은폐하지 않고 왜 저런 방법으로 김정남을 죽였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지금까지 북한은 자신들의 요원을 훈련시켜 감쪽같이 일을 저지르는 식의 테러를 해왔다. 이제는 한 단계 나아가서 북한요원들이 외국요원을 고용해서 살인을 감행한다. 일반적으로는 청부살인업자에게 수억 원 등 엄청난 대가를 약속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보면 ‘장난 살인’이다. TV 쇼에서 하는 것처럼 철없는 사람들을 고용해서 장난치듯 살인을 시킨 것이다. 지금 북한은 전 세계를 향해 ‘우린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뗀다.”

김정남의 시신 인도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만약 김정남 시신을 북한에서 가져가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는 김정은 체제의 걸림돌이 된다. 김정남의 생모 성혜림이 러시아 모스크바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김정은은 필연코 러시아 측과 상의해서 공동묘지를 없애버리려 할 것이다. 무슨 일만 터지면 성혜림의 묘지가 언론을 통해 비치는 것이 김정은으로서는 못마땅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정남이라는 존재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지워버리려면 그 시신마저도 북한으로 가져와서 없애버려야 한다.”

말레이시아가 김정남의 시신을 북한에 순순히 넘겨줄까?

“현재로서는 김정남 시신에 대한 ‘결정권’을 중국이 쥐고 있다. 김정남 시신 문제가 불거지자 북한은 리길성 외무성 부상(차관급)을 중국에 보냈다. 중국에 왜 갔을까? ‘절대 시신을 중국이 받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시신을 북한이 아니라 가족이 와서 가져가라’고 하는데 김정남의 가족이 어딨나? 아들 김한솔이 최근 마카오에서 나왔다는 설(인도네시아 경유해서 현재 미국 체류)도 있지만, (사건) 당시에는 김정남의 가족은 마카오에 한 명 있고, 베이징에 한 명 있었다. 가족이 나서서 시신을 달라고 해도 중국당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중국 영토에서 받아줄 수 없다’고 하면 말레이시아는 중국으로 보낼 수 없다. 그러니 북한이 중국한테 딱 붙은 것이다. 말레이시아 측은 ‘DNA 샘플을 검사하고 가족 품으로 시신을 보낼 테니 중국이 문을 열어달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문을 닫고 있다. 김정은으로서는 김정남의 시신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말레이시아와의 단교(斷交)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다.”

김한솔의 망명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가? 망명한다면 어느 나라로 갈까?

“김한솔의 속 생각(마음)을 모르기에 말하긴 어렵지만 ‘한국으로 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해봤다.”

지난해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이 런던에서 에릭 클랩튼 공연을 관람한 것이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당시 태 전 공사가 김정철을 수행했다. 그런데 최근에 김정철이 김정남의 암살에 관여했으리란 추측도 나오는데 어떻게 보나?

“신빙성이 없다고 본다. 내가 김정철과 사흘 동안 같이 지내봤는데 북한에서 그 어떤 영향을 행사하거나 결정 과정에 관여할 위치가 아니다.”

김정철은 한때 김정일의 후계 1순위로 꼽혔으나 동생에게 밀렸다. 김정철과 관련해 호르몬계 등 건강 이상설, 약물 복용설 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김정은 집권 이후로는 여동생 김여정과 함께 정권 내부에서 일정부분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김정철·김정은·김여정 삼남매가 강원도 원산의 특각(별장)에서 주기적으로 모여 현안을 논의한다는 정보가 있던데.

“형제·남매지간이니까 의견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철이 선두에서 뭔가 집행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김정철 관련설’은 김정남 사건과 관련해 북한에 쏟아지는 국제적 비난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궁지에 몰리면 미국 선제공격할 수도


▎1.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11년 10월 12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 창건 66주년을 기념해 열린 ‘은하수 10월 음악회’ 관람 사진을 보도했다. 김정일의 앞 탁자에 재떨이가 있는 것으로 봐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로도 흡연을 계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 2.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부인 리설주와 함께 팔짱을 끼고 평양의 릉라인민유원지를 시찰하고 있다고 2012년 7월 26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북한은 이날 처음으로 리설주의 이름을 밝혔다.
4월 15일은 김일성 탄생 105돌이다. 이를 전후로 도발 가능성 있을까?

“지금 김정은의 목표는 정면돌파를 통해 위기를 탈출하는 것이다. 정면돌파의 방법은 오직 하나다. 도발 수위를 극대화해 제재무용론, 즉 제재가 자신한테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제재무용론이라는 것은 협상으로 방향을 틀고 나가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정은은 한국의 대선이 끝날 때까지 도발 수위를 높여갈 것이다.”

미국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

“김정은은 만일 자신의 목숨이 끝날 때가 됐다고 판단되면 미국을 선제공격하는 것도 서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김정은은 리비아의 카다피, 이라크의 후세인 등 독재자들의 최후를 봤다. 이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적 개입으로 목이 달아났다. 김정은의 목숨이 좌지우지될 만큼 위기가 조성되면, 다시 말해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야 공격이나 해보고 죽자’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 강경책 기류가 고조되는 듯하다. 향후 북미 관계를 전망해본다면?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의 기류가 강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와 함께 단계적 핵 협상론도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으로 갈 것이냐, 제재로 갈 것이냐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김정은의 집권이 만 5년 지났다. 김정일과 비교하면 어떤가?

“김정일 때는 상당히 노련하고 은폐된 방법으로 통치했다. 비핵화할 것처럼 하면서 핵실험을 했고, 간부 처형도 은밀하게 진행했다. 그러나 지금 김정은은 광인(狂人)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게 바로 김정은의 통치스타일이다. ‘김정은은 미친 사람’이라는 이미지와 전략으로 한국과 세계에 다가가려 한다. 김정은은 ‘내가 미친 사람처럼 보여야 미국과 한국이 미친 사람을 달래려고 초콜릿이든 사탕이든 물려서 진정시키려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일종의 전략·전술로 보인다.”

김정은도 신변의 위협을 느낄 텐데 군부대 시찰 등을 다닐 때 어떤 안전조치를 취하나?

“외부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김정은은 자신의 동선(動線)을 숨기고 다닌다. 간부들도 김정은이 어디서 일하며 어디에 사는지 모른다. 나 역시 김정은의 차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김정은의 전용도로나 터널이 따로 있다. 겉으로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준비된 연출에 불과하다.”

대북제재에 대한 중국의 이행의지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효과적인 대북제재 수단은 무엇일까?

“중국이 김정은 체제를 허물어버리고 핵을 포기시키겠다고 결심만 하면 2~3년 안에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북한에 대해 석탄 수출 금지조치도 취하는 등 여러 가지 제재조치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중국이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거나 핵을 포기 시키겠다기보다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길들이자는 것이다. 중국의 목표는 동북아의 주도권을 자신들이 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만든 것이 6자회담이다. 미국·한국·러시아·일본을 테이블에 앉혔다. 그런데 북한이 이것을 박차고 나갔다. 다시(협상 테이블로) 들어올 때까지는 북한에 제재도 가하고 김정은을 아프게도 하는 것이다.”

해외 북한주민 8만 명, 통일에 역할 할 것


한국에 온 지 반년이 지났다.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좋은 점은 서비스 문화다. 한강 주변에서 놀다가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는 문화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충격을 받은 것은 교육열이다. 수학능력 영어듣기시험을 볼 때 비행기 등의 운항이 국가적으로 자제되는 것을 보면서 학업에 대한 열기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아직까지 불편한 점은 없다.”

아들이 둘 있다. 어떤 진로를 택하길 바라는가?

“큰애는 한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어한다. 자본주의 경제시스템 같은 걸 배우면 (훗날 통일이 됐을 때) 고향에 돌아가서 북한을 재건하는 데 도움될 것 같다. 둘째는 수학에 취미가 있다.”

태 전 공사의 맏아들은 런던의 한 대학에서 공중보건경제학 학위를 받았으며, 덴마크에서 태어난 작은아들은 명문으로 알려진 임페리얼 칼리지 진학을 앞두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귀순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된 이유를 다시 한 번 듣고 싶다. 또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탈북하게 했는가’를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김정은의 행태를 보면서 북한정권에는 미래가 없다고 느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런 정권을 위해 계속 복무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가 오갔다. 그때마다 부모로서 부끄럽고 창피했다. 현재 한국에 3만 명의 탈북민이 있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해외에 나가 있는 북한사람은 총 7만~8만 명에 이른다. 인터넷을 통해서 한국에 와 있는 탈북민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다 보고 있다. 그들이 통일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에 와 있는 탈북민들이 하나돼 통일운동에 나서게 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북한 내적으로 갈등과 위기감이 팽배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한국이 북한사회를 제대로 보고 이제라도 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통일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북한이 붕괴되면) 그 즉시 움직일 수 있는 체제를 구비해놓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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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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