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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리포트] 북·미 강경파 대결 시기의 북핵 해법 

집단지도체제의 핵 ‘서기실’에 주목하라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김정남 암살은 체제 비밀 유지 위한 극약처방…참수작전은 성공 가능성 낮아, ‘시장’이 답

첩보영화에서나 볼 만한 가공할 암살공작이 각국의 사람이 몰리는 공항 한폭판에서 버젓이 벌어졌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똑똑히 봐두라는 듯이 말이다. 북한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비운의 주인공이다. 독극물에 의한 말레이시아 공항에서의 피살. 그 원인과 배경을 놓고 온갖 설이 난무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경고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잇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계속된다. 불확실성의 안개가 자욱한 남북관계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2010년 6월 4일 마카오의 알티라(ALTIRA)호텔 10층 식당 앞에서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하던 김정남. 이날 정남 씨는 아들 김한솔(당시 15세)에 대한 질문에 “가족 프라이버시는 지켜달라”는 등 진지한 자세로 인터뷰에 응했다.
지난 2월 말레이시아에서 벌어진 김정남 암살사건 이후 북한체제의 전망과 관련한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요소를 배경으로 한다. 먼저 지난해 북한의 4차, 5차 핵실험과 SLBM인 북극성1호 발사 등 연이은 도발로 확인되는 북한의 전례 없는 공격적 성향이다. 특히 3월 9일자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 기사에 따르면 지난 3월 6일, 4발을 동시 발사한 미사일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독수리연습 중 북한의 지도부를 포함한 선제 타격작전에 대한 대응훈련이라는 것이다. 단순한 테스트가 아니라 한·미의 선제공격에 대응해 일본 내 미군기지를 핵 탑재 전략탄도미사일로 공격하는 핵전쟁 연습인 것이다.

다음으로 지난 1월 시작된 미국 트럼프 정부의 공격적 대 아시아정책과 연관된다. <월스트리트저널> 3월 2일자 보도에 의하면 북한의 중·장거리 전략탄도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암살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맥파랜드 주관으로 대북 군사력 사용 또는 체제전환전략(Regime Change)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검토했다고 한다. 이러한 북한과 미국의 강경파 대 강경파의 대결은 한반도를 심각한 위기국면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북한 체제에 대한 정확하고 깊이 있는 이해가 중요하다.

김정남 암살과 관련해 일부 전문가와 언론은 김정은이 북한체제 변화 과정에서 자신의 대체인물이 될 수 있고, 중국의 지원 가능성이 있는 김정남을 없애려 한 것이 암살의 중요한 배경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그 이유는 첫째, 김정남은 기본적으로 여자·술 문제 등으로 생활이 문란해 북한노동당과 중국공산당에서 정치적 신뢰도가 대단히 낮은 인물이다. 둘째, 김정남은 장성택의 경우와 달리 북한 내에 정치세력도 없고, 북한체제를 지도하려는 야심을 세우지도 않았다. 따라서 김정남을 북한 내에서든 중국에서든 김정은의 대체인물로 세우려 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김정남(동그라미 안)이 지난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습당하기 직전의 모습을 포착한 CCTV 영상. 피습 직후 김정남은 공항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공항 의료실까지 스스로 걸어갔다.
김정남 암살의 배경을 찾아본다면 세계 어느 곳보다 비밀이 많은 김정은 체제가 내부기밀 유출 가능성을 우려했을 수 있다. 김정남은 성장과정에서 김정일의 동생 김경희가 대모 역할을 해왔는데, 김경희는 북한체제와 관련해 그 누구보다 많은 비밀을 알고 있다. 따라서 김경희-김정남 라인을 통한 정보유출 문제가 암살의 배경일 수 있다.

피살된 김정남과 사형당한 장성택의 차이


▎김정남이 지난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습당하는 순간의 CCTV 영상. 김씨가 한 여성으로부터 독극물 공격을 받고 있다.
중국이 북한에 친중정권을 세우기 위한 공작 차원에서 김정남을 김정은의 대체인물로 세우려 했다는 것도 근거가 부족하다. 중국공산당은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정치국 상무위 산하에 한반도공작소조(조장 시진핑)를 구성해 북핵·북한 문제에 대한 기본정책을 재정립했다. 그 핵심은 북핵 문제와 북한 문제를 분리해 북핵 문제는 단계적, 중·장기적으로 해결하고, 가장 중요하게는 친중정권을 세워 북핵·북한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것을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정책기조 하에 두 가지 핵심 사업을 추진한다. 첫째는 북한의 대표적 친중파에 정치적 야심과 세력까지 갖춘 장성택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이는 장성택의 판결문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장성택은 2013년 12월 초 김정은 체제의 핵심인 서기실·조직지도부·보위부가 주도하는 숙청의 칼날에 쓰러진다. 중국공산당의 두 번째 사업은 1957년 김일성에 의해 숙청된 친중 공산주의자 그룹인 ‘연안파’의 후손들을 재정비, 교육해 북한체제 전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추진한다. 한국전쟁 이후 김일성은 북한노동당 내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남노당파를 숙청한 데 이어 1957년에는 친중파인 연안파와 소련파를 숙청한다. 이 과정에서 수천 명 이상의 연안파가 숙청을 피해 중국으로 피신한다. 2009년 중국공산당이 대북정책과 관련해 체계적인 북한의 친중파 육성을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연안파의 후손들이었다.

김정일 통치체제와 김정은의 서기실


▎함경남도 함흥반도체재료공장과 국가과학원 함흥분원을 방문했을 당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뒤로 김 위원장의 매제(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 노동당 부장의 모습이 보인다.
이처럼 중국의 북한 내 친중파 육성은 대단히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추진돼 왔다. 따라서 김정남의 경우 생활의 문란함으로 보나 정치적 신뢰도로 보나 중국공산당이 김정은의 대체 인물로 고려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고, 구체적 근거가 부족한 것이다.

필자는 지난해 3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북한 문제 해법을 모색하는 토론회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북한 통치체제의 핵심인 서기실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밝힌 바 있다. 그 배경은 북한의 지난해 1월 4차 핵실험과 2월 광명성4호 발사 이후 미국과 한국 일부에서 제기된 ‘김정은 참수작전’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서기실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는 북한 내에서도 비공개로 해온 탓도 있어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조차 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필자는 2001년과 2002년 방북해 SK텔레콤 북한담당 상무로서 남북통신협상을 진행한 바 있다. 사회주의체제, 그중에서도 북한에서 통신은 체제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통신문제와 관련해서는 통치체제의 핵심들이 관여할 수밖에 없다. 남북통신협상은 단순한 남북경제협력사업과는 다른 것이었다. 따라서 협상 파트너는 체신성과 조선체신회사가 아니라 군수공업부와 북한 통치체제의 핵심인 서기실 간부들이었다. 이러한 경험 등을 통해 북한 통치체제에서 서기실의 존재와 역할 등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지난해 7월 탈북한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태영호의 증언으로 서기실의 역할이 부각되었다. 그는 서기실에 대해 ‘공식 기관인 조직지도부와 달리 서기실은 숨겨진 기구다. 김정은을 보좌하는 집단으로 그 힘이 막강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김일성 시대에는 서기실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노동당의 비서국이 총비서인 김일성을 보좌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정도였다. 당시 실질적 권력의 중심은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였다. 대표적 사례가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1974년 정치국 상무위 회의다. 이 회의에서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정되기 전까지 김일성은 최종 결정을 유보한 상태였다. 당시 김일성의 처인 김성애와 김일성의 동생이면서 정치국 상무위원인 김영주, 빨치산 원로로 역시 정치국 상무위원인 최용건은 김일성과 김성애의 아들인 김평일을 후계자로 밀었다. 반면 김정일은 1960년대 말부터 치열한 권력투쟁을 전개하면서 당시 정치국 상무위원이던 빨치산 원로 최현과 오진우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결국 김정일·최현·오진우의 강력한 추진력에 의해 1974년 정치국 상무위 회의에서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1980년 6차 당대회에서 공식적으로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하게 된다.

오바마와 트럼프의 한반도정책 차이


▎북한 통치제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면서도 숨겨진 기구인 서기실의 존재를 부각시킨 태영호(55)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
김정일은 1980년 후계자로 공식화된 이후 주체사상의 수령론에 기초한 새로운 통치제제를 구축해 나간다. 수령론에 기초한 통치체제란 김일성 시대의 노동당 중심 통치가 아닌 수령-당-대중의 새로운 통치 시스템으로, 당보다 수령의 절대적 지위와 역할에 기초한 통치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일은 이 같은 새로운 통치 시스템을 김일성·김정일 공동 통치기간으로 평가되는 1980년부터 1994년 김일성 사망 시기까지 과도적으로 운영하다 김일성 사후 명실상부하게 수령의 절대적 지위와 역할에 기반한 수령-당-대중 통치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수령을 보좌하기 위한 조직으로 서기실의 존재와 역할이 단계적으로 확대됐다. 서기실은 엄밀히 말하자면 당 조직이 아닌 수령의 비서조직이라 할 수 있고, 당의 조직지도부 등을 통해 자신의 지도력과 집행력을 담보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 시대의 서기실은 공포정치와 분할통치에 능했던 김정일의 통치술에 의해 실무적 지원 기능 중심으로 역할했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의 낙점에 의해 2010년 9월 당대표자대회에서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은은 2011년 말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의 수령으로 등극했지만 김정일과 달리 명실상부한 수령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형식상 수령의 지위에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김정일 시대 북한 통치체제의 핵심 역할을 해왔던 서기실과 함께 내용적으로 집단지도체제적 통치 시스템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명실상부한 북한의 지도자였지만 노동당 중심의 통치를 했던 김일성 시대와, 수령-당-대중의 통치 시스템에 기반해 명실상부한 절대적 수령으로서 지위와 역할을 가졌던 김정일 시대와, 형식적으로는 수령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김정은과 서기실 핵심 인사를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적 성격을 가진 김정은 시대의 특징을 분명히 이해해야 정확한 북핵·북한 문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은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로 대표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 수습, 대테러전쟁, 대이란협상, 유럽에서 러시아 위협에 대한 대응 등과 관련한 정책 우선순위에 밀려 실효성 있는 정책을 실행한 것이 없다시피 했다. 대아시아정책과 관련해서는 ‘아시아로의 중심이동(Pivot to Asia)’을 위한 환태평양경제협력체(TPP)등을 추진했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 실험 전까지 박근혜 정부의 친중정책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 사드배치 결정 이후 한·미 관계가 회복되었지만 북핵·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전된 해결책은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 등장한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정부와 전혀 다른 대아시아정책·대한국정책·대북정책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트럼프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전략의 제1의 경쟁자로 상정했던 소련-러시아를 중국으로 바꾸려 한다. 1970년대 미·중 수교에 기반해 소련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던 키신저가 이번에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러시아가 연대하는 새로운 세계전략을 조언하고 있다. 키신저는 트럼프 정부의 신임 국무장관 틸러슨과 새로운 대북 전략을 위한 회의를 주관하는 맥파랜드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추천했다고 한다. 미국의 중국 견제를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세계전략은 동북아시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특히 북핵·북한 문제라는 민감한 문제와 결합되어 있는 데다 사드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 간의 아시아 헤게모니를 위한 경쟁의 장이 돼버린 한국이 대표적인 약한 고리라 할 수 있다.

둘째, 트럼프 정부의 핵심 키워드인 ‘경제민족주의(Economic Nationalism)’는 대한정책의 중요한 변동을 야기할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경제의 양극화와 경제회복을 위해 백악관 수석전략가 배넌의 조언에 따라 경제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경제민족주의는 미국·유럽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양극화 문제, 중동 등 실패국가의 이민자문제, 세계화의 후유증 등과 맞물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등을 거치면서 미국과 유럽을 휩쓸고 있다. 이는 상당기간 세계사의 중심적인 이념적·정책적 배경이 될 것이며, 트럼프 정부의 경제 민족주의와 미국우선주의에 기초한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은 큰 변화가 예측된다. 정책 내용의 변화뿐만 아니라 실행방식에서도 신사적이고, 한국에 대해 우호적 감정이 많았던 오바마와는 다를 것이다. 오바마 정부 시기에 예외적 사례인 바이든 부통령의 2013년 말 방한 시 ‘한국은 미국편에 설 것인지, 중국편에 설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 이상으로 더욱 분명한 한국의 국가전략을 묻게 될 것이다. 이는 향후 한국과 한반도의 운명을 가르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셋째,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에서는 참수작전 등 군사행동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트럼프 정부는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 및 전략탄도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암살 등을 배경으로 군사행동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다. 특히 매티스 국방장관,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말만 많고 행동은 없는(All talk No action) 것을 대단히 싫어하는 강경파 장군들이다. 오바마 정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특히 최근 거론되는 김정은 참수작전, 정밀 타격(Surgical Strike)은 북한의 강성대응과 맞물려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한국전쟁 종전 이후 최고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북한 정권의 선진화’ 유도가 현실적 대책


▎황해남도 삼천메기공장을 방문해 활짝 웃는 김정은 노동당위원장. 이복형인 김정남이 피살된 뒤 두 번째 공개 일정이다. 김정일 생일 75주년 당 중앙보고대회에서 보인 초췌한 모습과 대조된다.
그런데 현재 미국과 한국의 일부 강경파가 거론하는 김정은 참수작전 또는 정밀타격작전은 성공 가능성에 대한 정확한 해답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작전의 목표는 성공하지 못한 채 한반도는 전쟁이라는 대재앙에 휩쓸릴 것이다.

북한은 한국전쟁 시 평양까지 융단폭격 당한 경험을 배경으로 전 국토를 요새화하고 핵심 시설을 지하화하는 작업을 오랜 기간 진행해왔다. 또한 통치 시스템도 김정일 시대에 수령-당-대중 유일적 독재체제를 구축하고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수령과 서기실 중심의 지휘체계를 구축했다고 평가된다. 이는 김정일 사후와 장성택 숙청 전후 과정을 통해 그 체제 내 구성을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 통치체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김정은 참수작전 또는 정밀타격작전으로 북한의 체제전환(Regime Change)을 실현시키기는 대단히 힘들다.

결국 북핵·북한 문제 해결은 이 같은 군사작전이 아닌 종합적 전략을 기반으로 북한정권의 선진화(Regime Evolution)를 이끌어내는 것이 현실적이다. 북한체제 최대 위기였던 1990년대 말 100만 명 내외의 아사사태를 야기했던 식량난을 해결한 것은 북한 노동당도 아니었고, 한국이나 중국의 지원도 아닌 시장이었다. 2002년 ‘7.1경제관리개선 조치’ 이후 2014년 ‘5.30조치’까지 우여곡절을 거치지만 시장의 허용이 조금씩 확대되는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은 시장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식량난을 극복해왔다. 이 과정에서 북한주민들과 당 간부들 내에서 시장의 필요성,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이를 확대시키려는 세력들이 성장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한미동맹 강화를 통한 ‘맞춤형 개입정책’ 필요


▎지난 2월 15일 김정남 피살 사건 이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김 위원장은 김정일의 생일을 하루 앞두고 열리는 중앙보고대회에 최근 2년 연속 불참했으나 올해는 참석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행사 내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따라서 북핵문제는 1단계에서는 남·북·미·중 협상 등을 통해 동결과 비확산을 실현하고, 2단계 완전한 해결과 북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시장을 통한 변화’라는 대전략 위에서 북한정권의 선진화를 위한 맞춤형 개입정책(Optimized Engagement Policy) 또는 종합전략이 필요하다. 이 종합 전략에는 남북경협 확대를 기반으로 한 북한 내의 시장경제 확산과 개혁개방을 선호하는 정치세력을 육성하는 전략이 핵심이다.

그리고 미국 트럼프 정부의 등장으로 한반도 전쟁 가능성 고조라는 위기와 한·미동맹에 기초한 스마트한 전략으로 한반도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가 동시에 오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는 북한 노동당 내의 30% 정도로 추정되고 여전히 적화통일을 추진하는 강경파와, 트럼프 정부에서 미·중 간 전쟁 가능성까지 고려하는 대중 강경파 배넌 및 군사적 행동에 주저함이 없는 매티스 국방장관,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등의 강경파가 충돌할 경우다. 이러한 전쟁 가능성을 차단하고 평화적 통일을 추진할 수 있는 핵심 관건은 한·미동맹의 강화다. 한·미동맹이 약화하면 미국은 한·미 간의 협의 없이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사드배치의 경우 이를 반대하거나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자신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서는 경제민족주의와 자유주의적 애국주의에 기초한 한·미동맹을 새롭게 강화, 발전시켜야 한다. 세계사적 추세인 경제민족주의를 이해하고, 나아가 시민민족주의(Civic Nationalism), 포용적 민족주의(Inclusive Nationalism) 개념을 포괄하는 자유주의적 애국주의에 기초한 새로운 한·미동맹의 재정립과 발전이 필요하다. 이 같은 새로운 한·미동맹에 기초해 군사작전이 아닌 시장을 통한 변화라는 한·미의 공동 전략으로 북한을 변화시켜야 한다. 특히 트럼프 정부의 틸러슨 국무장관은 러시아의 푸틴과 친분도 두텁고 엑손모빌 CEO때 사할린 유전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배경 등을 가지고 있음을 고려해 두만강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남·북·러 합작 대규모 경제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한·미 합작의 북한 변화전략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핵심적 지렛대가 될 것이다.

한반도 정세가 대단히 민감하고 복잡하다. 보수와 진보 공히 원칙적 주장이나 주관적 희망을 말할 것이 아니라 김정은 체제와 트럼프 정부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초한 구체적 처방전(Prescription)을 내놓아야 할 때다.

구해우 - 1964년생,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북한의 개혁개방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SK텔레콤 북한담당 상무,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객원연구원, 미래전략연구원 초대이사장 및 5기 원장, 국가정보원 북한담당기획관(1급) 등을 역임하였으며, 통일문제의 연구와 실천에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 <김정은 체제와 북한의 개혁개방>, <통일선진국의 전략을 묻다>가 있다.

201704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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