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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김정남 특종 전문 고미 요지 기자가 말하는 ‘형제의 난’ 

“위협이야 하겠지만, 목숨까지 끊을 줄이야!”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정통성 결핍된 김정은의 권력 독점화가 빚은 최대의 참극… 중국도 김정남을 김정은 대신할 지도자로 옹립할 구상은 없었을 것

▎고미 요지 도쿄신문 편집위원은 김정남이 정이 많고 관계를 소중히 여겼다고 말한다.
김정남 암살 소식이 전해진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어간다. 전 국민 나아가 전 세계의 관심을 끌던 고급 첩보 미스터리 사건으로 연일 보도됐지만, 어느 틈엔가 잊혀져 가고 있다. 이 글은 생전에 김정남을 가장 가까이서 본 일본인의 기억에 관한 인터뷰다. 일본 <도쿄신문> 편집위원 고미 요지(五味洋治) 씨다. 1958년 생으로 서울과 베이징(北京) 특파원 출신이다. 현재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국제정치 관련 논객으로 활동한다. 김정남 생전에 이메일 150여 통과, 단독 인터뷰 두 차례를 비롯해 전부 세 번 만났다. 관련 얘기는 기사로 책으로 만들어져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김정남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기자이자 외국인인 셈이다.

김정남 테러암살이 확인되는 순간 전 세계 미디어로부터의 수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도쿄 외신기자 클럽에도 불려가 기자간담회도 가졌다. 고미 씨와의 인터뷰에 주목한 이유는 북한의 김정남이 아니라, 김정남을 통해 북한 나아가 김정남을 저울에 올린 상태에서 보는 북한 권력층의 이면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김정남 가십에 흥분하는, 관음증에 기초한 인터뷰와 무관하다.

고미 씨는 김정남 이전에 한국은 물론 중국 통으로 동북아시아 전체를 통찰하는 눈을 갖고 있다. 구글 지도로 치자면 김정남을 중심으로 한 북한으로의 줌아웃과 같은 인터뷰다. 안타깝지만 고미 씨는 북한을 가장 잘 아는 나라는 한국이 아닌 중국이라 단언한다. 고인이 됐지만 김정남이 남긴 언행은 김정은은 물론 북한 권력구조와 북한이란 나라 자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기행(奇行) 망명객쯤으로 비치는 김정남 개인에 그칠 문제가 아니다. 고미 씨는 김정남에 대한 구체적 팩트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현역기자다. 김정남을 가장 잘 알고 있고, 가장 잘 이해한 외국인 고미 씨를 통해 김정은과 북한의 내일을 가늠해보자. 인터뷰는 3월 9일 페이스북 전화통화로 이뤄졌다.

“본국의 경고에서 운명을 예감했던 거 아닐까”


▎2011년 1월 마카오의 호텔 카페에서 김정남과 만난 고미 요지 편집위원(오른쪽).
생전에 김정남이 스스로에게 닥칠 어두운 운명을 예견한 적 있는가?

“내가 그와 대화에 기초해 <도쿄신문>에 기사를 쓴 것에 대한 이메일이 왔다. 글과 관련해 본국에서 경고를 받았기에 당분간 정치에 관한 얘기를 못할 듯하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글이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렇지만 테러암살까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아무리 극단이라 해도 백두혈통을 죽인다는 것이 북한에서 가능한 일인가? 위협이야 하겠지만, 목숨을 끊을 줄이야! 아버지인 김정일을 봐도 배다른 동생 김평일을 죽이지는 않았다. 외국에 자리를 만들어 쫓아내는 정도라면 이해하지만, 같은 아버지 밑의 형제를 죽인다는 것은 상상 밖이었다.

김정은의 암살 명령이 진짜라면 유교주의 전통을 가진 국가에서 벌어진 최대의 참극이라고 생각된다. 피를 나눈 형제를 어떻게 죽이는가? 물론 정통성이 결핍된 김정은이 자신의 권위를 독점화하려는 과정에서 형을 살해한 것은 지극히 유교주의에 맞는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

사망소식이 진짜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심정은?

“나와 만나 북한 문제라든가, 김정은 체제에 대해 말하면서 뭔가 큰 영향을 줄 것을 기대했었다. 메일을 왕복 150여 건 주고받았고, 직접 만난 것도 세 번이나 되기에, 서로 마음을 튼 친구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김정남은 나를 한국어로 ‘기자님’이라 부르면서 극진히 예를 차렸다. 일을 떠나 친한 시기가 있었고 해서, 죽음을 확인했을 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이 전신에 와 닿았다.”

언제 처음 김정남을 만났는가?

“2004년 9월 베이징 공항에서 북한 외교사절단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고영희가 사망했다는 소식도 있고 해서 확인하기 위해 북한 외교관들을 만나러 나갔다. 당시 베이징(北京)은 2~3개월 주기로 일·북간 외교관 모임이 이뤄지던 장소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평양 방문 후 실무회담 장소가 바로 베이징이다. 고려항공 착륙시간에 맞춰 기다리던 중 낯익은 인물이 한 명 나타났다. 2001년 일본 전역을 깜짝 놀라게 한 김정남이었다.

공항에는 나만이 아니라, 6~7명의 일본 기자도 함께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어가 가능하다. 당시 일본 언론의 서울주재 특파원 출신자 상당수가 베이징에 1~2년 기간 동안 체류하고 있었다. 일·북 회담 지원차 나온 셈이다. 김정남을 본 순간 나를 비롯한 일본기자 대부분이 반신반의하면서 따라갔다. “김정남 씨인가요”라고 물으니까, 순순히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함께 걸어가면서 한 30분 정도 얘기를 나눴다.”

혼자만 만난 것이 아닌가?

“일본인 기자 모두가 함께 만났다. 그게 첫 만남이다. 김정남과의 두 번째 연은 이후 2004년 12월이다. 베이징 공항에 갔던 일본인 기자 모두가 김정남이라 칭하는 사람으로부터의 이메일을 받았다. “당시 공항이라서 깊은 얘기를 못했는데 미안했고, 신년을 잘 보내길 바란다…”와 같은 취지의 메일이었다.”

첫인상은 어떠했는가?

“일본인이라면 2001년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왔을 때의 강렬한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다. 표정도 험악했지만, 헤어스타일과 옷차림도 야쿠자와 같은 ‘날라리’ 스타일이었기에 한층 더 머릿속에 선명히 남았다. 베이징 공항에서 만났을 때는 재킷과 셔츠를 입은 모습으로, 금목걸이 같은 것을 걸고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3년 전보다 안정된 외모를 하고 있었다.”

고미 씨는 김정남 사망 후 인터넷상에서 무차별 인신공격을 당했다. 김정남 관련 책의 출판 당시 본인 동의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책 때문에 암살당했다는 식의 얘기가 퍼지면서 고초를 당했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기사로 수년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에 크게 두려워하거나 문제를 삼지는 않았다. 반대로 격려해주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김정남 관련 책을 냈기에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었고, 테러 암살도 전 세계 모두가 비중 있게 다뤘다는 평가다. 그 책이 없었다면 김정남에 대한 존재도 그렇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고, 세계가 그의 죽음에 대해 무관심하게 대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죽음에 관련된 문제이기에 어떤 식으로든 고미씨 자신도 책임감이 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어머니 성혜림 등 집에서는 서울말 써”


▎19세 때인 1990년 사촌누나인 이남옥(성혜랑의 딸)과 사냥을 나간 김정남.
왜 고미 씨를 비롯해 일본인 기자들과의 교류를 시작했다고 보는가?


▎고미 요지 편집위원과 김정남과의 대화를 기록한 책은 한국어로도 번역됐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하는 일본 기자들의 자세에 대해 감동했기 때문이 아닐까 판단된다. 2004년 베이징 공항에서의 김정남에 대한 뉴스가 나간 뒤 마카오 곳곳에 일본 TV방송국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마카오는 좁은 곳이다. 조금만 확인하면 동선(動線)을 파악할 수 있다. 김정남이 즐겨 찾는 생과일주스가게를 비롯해 갈만한 모든 곳에 텔레비전 카메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화도 나고 신경질이 났겠지만, 창 밖에서 무한정 기다리는 일본 기자들을 보면서 뭔가 감동한 듯하다. 본인에게서 들었지만 일본 기자들의 일에 대한 성실성을 보면서 자신도 마음 자세를 가다듬어야 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워낙 고독하기에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자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유명인처럼 수많은 텔레비전이 따라다니고 하면 뭔가 기분이 좋아진다고나 할까?”

메일은 어떤 식으로 이뤄졌나?

“그냥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메일 첫머리에 인사가 들어간다. 끝부분에도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식의 인사말을 반드시 붙인다. 버릇이 있어서, 내가 메일을 보낸 답은 전부 몰아서 오는 것이 아니라, 끊어졌다가 이어지는 식으로 3~4차례 연속해서 왔다. 아마도 비행기로 이동 중에 답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메일에 관한 얘긴데, 마카오에서 내가 만났을 당시, 휴대전화기의 수신 신호음이 계속 터졌다. 아이폰 같은 모바일이 아니다. 한글도 있지만 영어 메일도 많은 듯했다.”

통상 대화는 어느 나라 말로 했나?

“물론 한국어다. 외국어의 경우 영어가 아주 유창했다. 영어를 매일 생활어로 사용하는 듯 했다. 일본어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음식 주문하거나 택시를 타고 행선지를 말하는 수준으로 보였다. 도쿄에 왔을 때도 영어만 사용했다고 말했다. 한국어는 서로 존칭으로 대화를 했다. 북한 특유의 사투리라든가 표현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가령 북한 사람들이 자주 쓰는 ‘일 없어요’와 같은 표현이 없다. 왜냐고 물어보니까 어머니와 할머니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성혜림은 원래 서울 사람이다. 할머니도 서울 사람이고 해서 집에서는 모두 서울말을 썼다고 했다.”

만나는 동안 술이나 식사비를 누가 부담했나?

“중국 요리를 먹을 때는 자주 오는 레스토랑이기에 자기가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위스키는 앉는 즉시 돈을 지불하는 곳이었기에 각자가 부담했다. 돈을 낼 때는 뭔가 과장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더치페이하는 식이다.”

한국인과 구별되는 점은?

“교육 수준이 높은 서양인을 만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대화도 아주 낮은 목소리로 하고 자연스럽다. 프라이버시에 관한 얘기를 묻지 않는 점도 보통 한국인과 다른 듯하다. 한국인 사이에 가면 먼저 나오는 얘기인, 나이·가족·아이에 관한 관심이나 질문이 전혀 없었다. 내가 취미에 대해 물어봤지만, 자식과 함께 텔레비전 게임을 하는 것이 취미라고 말했다. 컴퓨터로 연결해 두 명이 함께 벌이는 게임일 듯하다.”

고미 씨는 김정남의 교양 수준이 상당히 높은 듯 느껴졌다고 말한다. 질문을 하면 하나도 무시하지 않고 답을 해줬다고 한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고, 좀 예민한 문제는 ‘노코멘트’로 확실히 의견을 밝혔다.

“마카오에서는 한국 친구들과도 교류”


▎2001년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추방당하는 김정남.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했는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과 일본에 친구가 있다고 들었고, 특히 한국 친구들은 마카오까지 와서 함께 밥도 먹고 논다고 말했다. 한국 친구들이 올 때는 잡지책을 갖고 오기에 전부 읽는다고 전했다.”

이번 테러암살로 누가 가장 이득을 봤다고 생각하는가?

“단기적으로 본다면 물론 김정은일 것이다. 자신에게 반대하거나 말을 듣지 않을 경우 형제든 누구든 예외가 없다는 식의 무언의 메시지를 모두에게 전하면서 권력을 지켜나갈 수 있다. 현재 북한 내부는 아마 엄청난 공포와 긴장에 휩싸여 있을 듯 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달라진다. 공포감이야 조성하겠지만, 뭘 해도 못 믿을 인물로 전락한 셈이다. 핵이나 미사일은 국가 방어나, 북한식 이유인 인공위성 개발이란 명목으로 변명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국까지 나가 암살을 했다는 것은 그 어떤 식으로도 용서받기 어렵다. 트럼프는 물론 중국조차 돌아설 판이다. 식민지보상금까지 고려하는 나라가 일본이지만 이번 사건으로 그런 논의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북한의 전면적인 고립은 피할 수 없을 듯하다.”

2001년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김정남이 세계에 데뷔한, 디즈니랜드 방문차 도쿄에 들렸을 때의 얘기다. 일본 신문을 보면 이미 그 이전에 김정남의 도쿄 방문이 일상화된 듯하다. 일본 공안은 모든 것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불법입국을 방조했다고 한다.

왜 새삼스럽게 김정남 위조여권 사건이 발생했고, 추방으로 이뤄졌는가?

“간단히 말해 일본 내 혼란으로 인해 터진 사건이라 보면 된다. 사실 공안은 김정남의 모든 행적을 알고 북한에 관한 정보를 얻는 데 주력해왔다. 조총련 계통의 사람들이 공항에 마중을 왔다는 점에서부터 누구를 어디서 만나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전부 알았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김정남에 관한 정보는 공항의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게는 전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출입국 직원이 위조여권임을 확인하고, 곧바로 언론에 알려지면서 일본 전역에서 난리가 났고 일단 강제추방으로 결론지어진 것이다. 당시 일본 정치도 혼란기였다. 외무성의 경우 장관이던 다나카 마키코와 외무성 관료들 간의 대립도 원인 중 하나다. 명령체계가 엉망이 되고 내부 조율도 어려운 상황에서 모두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 강제 추방으로 귀결된 것이다.”

당시 이례적으로 얼굴을 공표했는데?

“경찰 측은 범죄자니까 얼굴을 공표해서 추방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외무성 관료는 차후 일·북 관계를 생각해 조용히 처리하길 원했다고 들었다. 서로 대립하다가 경찰 측이 이긴 것이다. 2001년 김정남 추방 당시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일본만이 아닌 한국에도 많다. 뭔가 거만하지만 그래도 상대방을 압도하는 강한 기(氣) 같은 것을 느꼈을 듯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김정남은 ‘왜 새삼스럽게?’란 의미의 무언의 표정을 흘렸을 듯하다. ‘매번 알면서도 아무런 문제없이 불법입국을 인정해주더니,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왔는데 왜?’라는 듯이 말이다.”

디즈니랜드 사건으로 김정남이 김정일 후계자에서 탈락했다고 하는데?

“그 질문을 김정은에게 직접 던졌다.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디즈니랜드 사건이 후계자 탈락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원래부터 후계자로 나설 생각도 없었기에 새삼스럽게 2001년 추방 사건 때문에 추락했다는 것이 아니라고 김정남이 말했다. 이미 그 이전에 본인 스스로가 후계자로 나설 생각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1년 사건은 부끄러운 일로, 이후 다시는 타국의 위조여권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정남 본인만이 아니라 북한 전체가 위조여권 사용을 금지했다는 말도 했다.”

“김정남, 한국 망명 고려해본 적 없어”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은 최근 유튜브를 통해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자기와 비슷한 처지인 작은 아버지격인 김평일이나 김정철에 대해 얘기한 적 있는가?

“김평일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없다. 김정철은 외국에서 두세 번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정철에 대해서는 좋은 친구이고, 서로 마음이 잘 통한다고 말했다. 외국은 아마도 유럽 어딘가로 생각된다. 김정은과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일찍부터 외국 생활을 했고, 김정은과 나이 차가 열 살 이상씩 나니까 만날 기회가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김정남이 피살 전에 생활 면에서 어려웠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급 일본요리집이나 한식을 즐겼고,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로 자주 여행을 다녔다는 보도가 나온다. 돈이 없어 한국 망명도 생각했다는 식의 보도는 믿기 어렵고, 그런 느낌도 받은 적이 없다. 본인도 나에게 망명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망명을 고려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중국이 마치 김정남을 김정은 유사시의 카드로 간직했다는 보도는 어떻게 보나?

“김정남 테러와 관련해 중국이 화를 냈다는 식의 보도도 있는데 중국 공안 고위책임자로부터 직접 들은 바에 따르면 조금 다르다. 김정남은 김정은을 대신할 카드가 아니라, 이웃나라 지도자의 아들이기에 보호하고 있다는 식으로 들었다. 북한에서 큰일이 벌어져 중국에까지 영향을 줄 경우의 대비책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김정일의 아들이란 점에서 김정남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나 치안 측면의 안전 카드라면 이해가 가지만, 김정은을 대신한 차기 지도자 옹립 구상 같은 발상은 전혀 없다고 생각된다.”

김정남의 중국관은?

“내 정보에 따르면 최근 중국과 그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던 듯하다. 김정남은 원래 베이징과 마카오를 오가는 여행이 잦았다. 최근 4~5년간은 주로 동남아시아로만 돌아다녔다. 중국 공안의 감시도 심하고, 여러 면에서 중국으로부터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신문에도 나오지만, 중국 내부의 혼란이 김정남 암살의 이유 중 하나라는 얘기도 들린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군이나 정보계통의 정적(政敵)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생긴 힘의 공백이다. 김정남에 대해 무심한 사람들이 공안을 담당하면서 그 피해가 김정남에게 간 것이란 분석이다. 김한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중국이 김한솔을 차기 후계자로 옹립하고자 보호한다는 식의 보도를 믿지 않는다.”

한국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비쳐졌나?

“그렇게 긍정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북한과의 협상에 임할 때 너무 체면을 앞세우는 등 좀 지나친 듯하다고 말했다. 내가 한국에 대한 질문을 별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별로 언급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김정남을 잘 아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한국 TV 드라마는 아주 많이 봤다고 한다. 한국에 가본 적이 있는가도 물어봤지만 들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제주도에 다녀온 적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정남이 남북한의 전쟁 가능성을 언급한 적이 있는가?

“전쟁이란 단어를 꺼낸 적은 없지만, 북한이 관심을 끌기 위해 극단으로 간다는 얘기는 했다. 북한의 그러한 배경을 충분히 이해한 뒤에 정책을 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남 암살에다 납치문제도 있고 해서 북·일 수교는 물 건너간 문제인가?

“트럼프의 구체적인 북한 정책 요강이 6월쯤 만들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때까지 일본은 북한에 대해 아무런 방안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은 납치문제로 인해 자신이 수상이 됐다고 말하지만, 북한에 대해 미국에 앞서 나설 가능성은 없다. 사실, 군사·외교·경제문제 협의에 있어 일·미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좋다. 현재 일본 외무성의 최고 관심사는 미국과 러시아다. 북한·한국·중국과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뒤로 밀린다.

미·러 관계뿐만 아니라 한국·중국과 같은 근린(近隣)외교를 안정적으로 하는 게 장기적으로 좋다는 얘기도 외무성 안에서 들려오지만 아베 입장에서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헌법 개정이나 자위대 강화 문제를 생각하면 중국·북한이 적으로 있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는 판단일지 모르겠다.”

만약 김정은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누가 뒤를 이을 것이라 보는가?

“여러 가능성이 있겠지만, 나는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라고 본다. 김여정 스스로가 전권을 장악한다기보다 형식상 지도자로서 북한을 이끌 것이라 생각한다. 백두혈통 가운데 외부에 비쳐지는 인물이고, 노동당 고급간부로 행정경험도 있다는 점에서 유일무이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김정은 대신할 유일무이한 선택은 김여정”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독극물 공격을 받은 김정남은 사고 직후 공항 안내데스크에 도움을 요청했다.
한국에 망명한 태영호 전 공사는 김정은이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을 살해하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말했다. 서방으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진 김한솔은 김정남 사망 직후 전 세계 뉴스메이커로 자리 잡는다. 김정남의 몫을 더해, 북한 권력구조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김정남 사후 김한솔의 행방과 미래에 관심이 쏠린다. 김정남은 어떻게 얘기를 했나?

“자기 자식이지만, 아주 잘 맞는다고 얘기했다. 자연보호, 원자력발전소 반대, 환경 문제 등에 관해 김한솔이 자신의 생각과 비슷하다고 전했다. 아버지로서 자식을 자랑하는 느낌도 들었다. 여자·술·도박에 관한 김정남의 행적이 여기저기 보도됐지만, 어리지 않은 자식을 보면서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한 듯하다.”

아버지의 몇 안 되는 지인 중 한 명으로서, 자식인 김한솔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설마 김한솔까지 위해를 가할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몇 마디 전하고 싶다. 아버지가 한때 (내게) 북한에 대해 솔직하게 언급하는 과정에서 경계대상이 된 듯하지만, 김한솔은 누가 뭐라 해도 김정남을 잇는 백두혈통이다. 아버지의 유업으로서, 또 북한의 좋은 미래를 위해 자신의 생각을 전 세계에 솔직하게 밝혀주길 바란다.”

김정남은 4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미 고인이 된, 한 인간으로서의 김정남을 어떻게 평가하고 싶은가?

“온갖 감정이 겹친다. 내가 몸져누워 메일을 못 보낸다고 답하면 몇 차례나 내게 위로 메일을 보내준 사람이다. 연말연시, 설날에도 반드시 안부인사를 보내주던 ‘정이 많은(やさしい)’ 인물로 기억된다. 그런 편지는 나만 받은 것이 아니라 다른 일본 기자들도 마찬가지지만, 친구를 중히 여기고 한 번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술을 마실 때는 정치나 북한과 같은 복잡한 문제를 전혀 꺼내지 않는 타입이었다. 술을 즐기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는 낙천적인 사람이다. 인생을 아주 즐기는 사람이었다고나 할까? 직접 만나면 재미있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다시 한번 더 그의 명복을 빈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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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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